https://youtu.be/n_dA3T2jWkI?si=pABP4Zch1zegfabM
이문세 / 옛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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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노트에서
장 석남
그때 내 품에는
얼마나 많은 빛들이 있었는가
바람이 풀밭을 스치면
풀밭의 그 수런댐으로 나는
이 세계 바깥까지
얼마나 길게 투명한 개울을
만들 수 있었던가
물 위에 뜨던 그 많은 빛들 ,
좆아서
긴 시간을 견디어 여기까지 내려와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
그리고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그때는 내 품에 또한
얼마나 많은 모서리들이
옹색하게 살았던가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
그래 그 옆에서 숨죽일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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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앞으로의 날 보다
지난 날들을 자주 돌아 보게 된다.
희망이란 것이 사라져가고 ,
이미 정해져 있을 것 같은 내일에 대한
기대 역시 손에 잡히지 않는다.
어떤 특별한 꺼리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 나이에 무슨 연애를 할 것이며
이 나이에 유별나게 골몰해야 할 일도 없으니,
남은 건 그저 지난 날을 반추하는 게 아닌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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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의 친구들을 보면 다들 열심히 살아간다
꼭 돈을 벌고 치재의 의무가 지나간 나이건만 호구지책 내지는 소일꺼리로 일터로 향하는 길은 소중한 시간이다
그로인해 나의 자아 . 자존을 지키고 품위를 지키기 위한 몸부림의 시간이기도 하다
아슬아슬한 삶의 고갯길을 걷고 오르다
어느 날 다시 지난 시절들 돌아다 보면
첫새벽의 우물물을 길어 오르듯
맑아서 때 묻지 않았던 날의 내가 거기에 있다
오늘 장 석남 詩人의 " 옛 노트에서 " 를 몇 번씩 되뇌이다 유리알 처럼 투명했던 꿈을 꾸었던 나를 발견하고 또 무참하게 깨어져버린 날의 절망의 시간에서 허우적거리던 나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다
스무 살 쯤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 세상에 너 같은 몽상가는 없다 " 고 말이다
누렇게 떠버린 잡초밭에도 바람은 불었나 보다
꿈만 꾸는 일상이 얼마나 값어치 없는 일인가
꿈이 꿈으로 사그라지는 일은 옹색하기 그지없다
...... 중략 .........
희미했던 것들이 이제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영롱했던 무지개는 아주 먼 곳에 걸려 있다
무지개는 무지개일 뿐이다
돌아 보는 저녁 노을이 이제 슬퍼 보이지 않는다
군내나는 세월이지만 아직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이 있으니 .....
"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
폴 발레리 / 해변의 묘지
그림 / Monic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