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章 長髮의 美少女.
일반적으로 신체에 공력이 충만한 사람들은 그 소화력도 자연 왕성해지기 마련이었다.
물론 공력이 고강한 사람들이 하나같이 대식가(大食 는 아니었지만 그러나 일단 그들이 대식가가 되면 소화력에는 자신이 생기게 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이 황화예의 상승무학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들은 전신의 기(氣)가 부드럽게 하나로 이어지게 되고 거의 막히고 끊어지고 뭉쳐지는 일들이 없기 때문에 피의 흐름이 좋아지게 되고 병(病)이 없어지게 되며 장수(長壽)를 누릴 수가 있게 되는 것이었다.
가우왕도 본래부터 대식가였지만 근래들어서 공력이 그와 같은 경지에 오르고 나서 더욱 식욕이 왕성(旺盛)해진 모양이었다.
이윽고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가우왕은 바가지로 술을 뜨려다가 말고는 다소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느새 금존청이 가득 들어 있었던 작은 항아리 하나가 그만 바닥을 드러내게 되고 말았던 것이었다.
기실 탁자위의 요리들도 고급스럽고 값비싼 것들이었지만 그 금존청도 또한 그에 못지않게 귀하고 값비싼 것이어서 그 작은 항아리 하나라면 거의 은자 열냥은 족히 나갈 것이었다.
"어? 이게 벌써 바닥이 드러났나?"
가우왕이 다소 미안하고 섭섭한 듯한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는 것을 보고 남궁청우는 웃으며 말했다.
"그럼 어서 더 시키게. 아마도 한 열개 정도 시키는 것이 좋겠군. 오늘의술값은 내가 부담하는 것이니 자네들은 걱정하지 마시게."
본래 그 금존청은 값비싼 것인 만큼 또한 매우 독한 술이었다. 일반 사람들이라면 그저 작은 항아리 하나가 아니라 그것의 일할(一割)정도가 되는 작은 병에 담겨져 있는 것만 마셔도 이내 얼큰한 취기를 느끼게 되는 것이었지만 그러나 지금 가우왕에게는 전혀 그것이 소용이 닿지 않는 것이었다. 그 금존청은 본래 비싸기도 한 것이지만 그것을 만드는데 있어서 상당한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고 또한 그 분량도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에 귀한 것이었다. 가우왕은 남궁청우의 말에 따르려다가 문득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사실 이 술을 마시려니 조금 감질나는 느낌이 드는군요. 저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그저 죽엽청(竹葉淸)이 제격이지요. 지금부터는 죽엽청을 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이어 가우왕은 즉시 주위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점원을 불러서 다시 주문했다.
"이봐, 가서 이런 좋은 술은 말고 죽엽청을 가져오도록 하게. 죽엽청을 우선 큰 것으로 두 항아리만 가져오면 좋겠네."
점원은 공손히 대답을 하고는 물러갔다. 이어 그 점원은 다른 점원들과 함께 커다란 두 개의 항아리에 담겨져 있는 죽엽청(竹葉淸)을 내왔는데 역시 아직 개봉되지 않은 것이었다.
뚜껑을 덮고 있는 종이에는 그것이 빚어진 날짜가 적혀 있었는데 따져보니 이미 십년이나 묵은 것이었다.
방덕승이 그것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우왕, 자네는 조금 전에 죽엽청은 값싼 술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겠지만 이제는 그 말이 틀렸다는 것을 알겠나?"
(......)
가우왕은 다소 의아해져서 물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지?"
방덕승은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 천하에 가장 널리 퍼져 있는 것이 바로 그 죽엽청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가장 흔한 술이라고 하여 값싸게 생각하지만 기실은 거기에도 많은 등급이 있다는 것이네. 일반 싸구려 주막에서 아무렇게나 빚어서 파는 것은 그야말로 싸구려 술이라고 할 수가 있지만, 이런 곳에서 오랜 전통을 가지고 정성을 다해서 빚어서 오래도록 묵혀두는 것은 결코 싸구려라고 할 수가 없지. 자네는 잘못 생각했다고 생각이 들지 않나?"
가우왕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마...... 하지만 이 두개의 항아리가 최소한 저 금존청의 작은 항아리 하나보다는 값이 쌀 것이 아닌가?"
방덕승은 웃으며 점원을 가리켰다.
"저 사람에게 직접 물어보면 알게 될 것일세."
그 점원은 지금 의복을 단정하게 차려 입고서 일행의 다소 가까운 위치에서 시중을 들어주기 위해서 대기하고 있는 중이었다.
가우왕은 즉시 그 점원을 불러서 물어보았다.
"이봐, 이 죽엽청도 비싼 술이라는 말인가?"
점원은 은근히 이쪽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던 참이라 즉시 상대방의 의문에 대해서 파악하고 공손하게 대답해 주었다.
"예. 저희 영웅루(英雄樓)의 죽엽청은 또한 그 전통이 깊기로 유명한 것입니다. 가끔씩 다른 지방에서 그 맛을 보기 위해서 일부러 찾아오기도 합니다. 가격으로 말하자면 금존청에는 비할 수가 없지만, 그러나 이 커다란 항아리 하나는 금존청 작은 항아리의 가격보다 두 배는 비싼 것입니다."
점원이 대답을 하고서 다시 물러가자 방덕승은 웃으며 가우왕에게 말했다.
"그것 보라구. 이제 알겠나?"
가우왕은 눈이 휘둥그레져 있었다.
"이 죽엽청의 가격이 그렇게도 비싼 것이라는 말인가?......"
방덕승은 웃으며 다시 물었다.
"그래 자네는 이제 어떻게 할 셈인가?"
가우왕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다가 웃으며 대꾸했다.
"뭘 어떻게 하나? 어쨌든 이 죽엽청의 가격은 금존청의 가격보다 싼 것이 아닌가, 게다가 이미 가져온 것인데 다시 도로 물린다는 것은 내 체면에 맞지 않는 것이지."
이어 가우왕이 손수 하나의 뚜껑을 개봉하자 그야말로 그윽하고도 진한 죽엽청(竹葉淸)의 깊은 향기가 주위를 진동시키는 것이었다.
"으으, 역시 훌륭한 맛이군 그래."
가우왕은 순간 참을 수가 없다는 듯이 얼른 바가지로 조금 떠서 맛을 본 다음에 크게 입맛을 다시면서 남궁청우를 바라보았다.
"가주께서는 한잔 하시겠습니까?"
남궁청우는 아직 잔이 비워지지 않았으므로 웃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야. 자네나 실컷 마시도록 하게."
가우왕은 그만 입이 크게 벌어졌다.
"아이구, 이거 내가 미안해서 어쩌나......"
겉으로는 미안하다고 하면서 가우왕은 이내 계속해서 술을 퍼마시고 음식들을 주린 듯이 먹기 시작했다.
남궁청우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오늘은 우왕만 신이 나는 날이로군. 헌데 자네들은 어째서 그렇게 가만히 있나? 술을 마시고 싶지 않은가 보지?"
방덕승이 다른 바가지로 죽엽청을 직접 떠서 맛을 보다가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 그 두 사람은 지금 다른 일에 보다 관심이 쏠려 있는데 저 술과 음식들이 눈에 들어오기나 하겠습니까?"
남궁청우는 그를 향해 다시 물었다.
"무슨 다른 일에 관심이 있다는 말인가?"
방덕승은 웃으며 두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대답했다.
"그거야 물론 청춘사업이죠. 가주님께서는 이번에 혹시 새로 매부를 두 명 얻게 되는 것이 아닙니까?"
(......)
남궁청우는 은근히 안색이 붉어져 있는 좌선비와 서무구를 건너다 보면서 문득 이렇게 다시 화제를 돌렸다.
"음, 그건 그렇고 자네들은 어제 돌아가서 그 비급들을 한번씩 읽어 보았는가? 그래 연성하기에 어떤 문제가 없을 것 같던가?"
가우왕이 술을 마시면서 대답했다.
"가주님께서 그렇게 저희들을 도와주시고 계시니 어떤 문제도 없을 것입니다. 앞으로 자연히 우리들의 무공도 아주 높아지게 될 것이고요."
(......)
좌선비가 문득 입을 열어 물었다.
"가주님께서는 어제 그 가주님을 습격 했었다는 자들이 어떤 자들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남궁청우는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글쎄...... 자네들은 어떤 자들이라고 생각하는가?"
방덕승이 문득 끼어 들어서 물었다.
"혹시 어제 말했던 그, 필살유혼(必殺流魂)이라는 자객의 짓이 아닐까요?"
(......)
가우왕이 술을 마시다가 말고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저어, 듣자니 어제 가주님을 그쪽으로 모셔갔던 사람은 바로 제왕각 원로의 둘째 손자였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어제 거기에서 인혼전(引魂箭)도 나타났었다면서요?"
(......)
남궁청우가 잠자코 있자 방덕승이 이번에는 가우왕에게 질문했다.
"어제 가주님을 호위하고 계셨던 백호당주께서는 그 흉수들과 대전까지 하셨다고 했는데 백호당주께서는 흉수가 어떤 무공을 썼다고 하시던가?"
가우왕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엄친께서는 흉수의 검법(劍法)에 대해서 잘 알 수가 없으셨다고 하더군."
이윽고 네 사람의 시선은 남궁청우의 의견을 들으려는 듯이 그를 향해 집중되었다.
남궁청우는 미소하며 말했다.
"나도 아직은 뭐라고 말할 수가 없네. 앞으로 자연히 그들의 정체(正體)가 드러나게 되겠지."
......
방덕승 등은 다소 기대를 했었는데 그와 같은 대답을 듣게 되자 약간 실망하는 듯한 표정들이었다.
가우왕이 웃으며 말했다.
"이제 그런 얘기는 그만하고, 우선 주흥이나 돋우기 위해서 가주님께서 저희들에게 이 자리에서 한수를 보여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남궁청우는 그를 바라보다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는 지금 이 자리에서 아직 주흥이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 같으니 핑계삼아 내가 한 수를 보여주도록 하지."
(......!)
방덕승 등은 그 말에 눈빛을 크게 빛냈다. 기실 남궁청우가 더러 무학을 펼쳐보인 적이 있기는 해도 이렇게 눈앞에서 관전할 수 있도록 해보인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남궁청우는 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즉시 우수를 가볍게 들어올렸다. 그러
자 개봉되어 있는 항아리속의 죽엽청이 느닷없이 그의 손짓을 따라서 허공에 기다란 술 줄기를 형성하면서 올라가더니 이윽고 둥근 원호(圓弧)를 그리면서 그의 비어있는 술잔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
가우왕 등은 처음에는 남궁청우가 공력을 운용하여 그와 같은 접인신공(接引神功)의 절기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남궁청우의 손짓의 미묘한 움직임과 술 줄기의 정묘한 변화를 집중해서 주시했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괴이(怪異)한 일이 벌어졌다.
남궁청우의 술잔은 조금 전에 금존청을 따라서 마시던 것으로서 다소 작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 순간에 항아리에서 솟구쳐 나오고 있는 술 줄기는 공력에 의해서 결집된 것으로서 그 양이 상당히 많은 것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작은 술잔속으로 계속해서 쏟아져 들어가고 있는 술 줄기는 밖으로 넘치지 않는 것이 아닌가?
물론 그것이 술잔의 위로 기다란 술 줄기를 형성하는 것도 아니었다. 마치 그것은 아래쪽이 뚫려서 술을 무한정 받아들일 수 있는 작은 연못이라도 되는 것처럼 술잔속의 술의 양은 일단 가득 차게 되자 전혀 늘지 않는 것이었다.
(......!)
그것은 실로 괴이쩍고도 불가사의(不可思議)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그 작은 술잔의 아래쪽이 터져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치 사술(邪術)을 보고 있는 듯한 놀라운 광경에 가우왕 등은 일시에 취기(醉氣)가 모두 달아나 버리는 것 같았다.
이윽고 그 하나의 항아리의 술이 모두 작은 술잔 속으로 사라지게 되자 남궁청우는 그 작은 술잔을 들어 올리면서 말했다.
"자, 누가 나의 술잔을 받아 마시겠소?"
(......)
가우왕은 멍하니 놀란 상태에서 바라보다가 이윽고 물었다.
"그게 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남궁청우는 미소하며 대답했다.
"이러한 이치는 그대들이 쉽게 이해할 수가 없을 것이오. 나는 단지 흥미삼아 이러한 것을 펼쳐 보인 것이니, 그대들은 어서 술이나 받아 마시는 것이 어떻겠소?"
방덕승이 다시 질문했다.
"그것은 혹시 공력으로 술을 증류시켜서 응축시킨 것이 아닙니까? 주정(酒
精)처럼 말이죠."
남궁청우는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할 수가 있소."
(......)
남궁청우는 방덕승에게 다시 물었다.
"이 술잔속의 술을 모두 마실 수가 있겠소?"
방덕승은 잠시 생각하다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것이 주정이라면 금방 취하겠지만, 그러나 일단 마실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이어 방덕승은 남궁청우가 건네주는 술잔을 한손으로 받았다. 헌데 바로 그때의 일이었다.
방덕승은 그 작은 술잔을 받자마자 흡사 한손이 꺾일 듯이 엄청난 무게가 느껴지는 것을 보고는 경악하여 급히 진기를 끌어올리는 한편으로 안색이 대변했다.
"아니, 이...... 이럴 수가!"
남궁청우는 놀라며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방덕승을 향해 웃으며 다시 말했다.
"이상하오?"
방덕승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어떻게 이 작은 술잔이 이렇게 많은 무게가 나갈 수가 있습니까?"
남궁청우는 미소하며 대답했다.
"저기에 있는 항아리의 술이 모두 그 안에 들어 있으니 당연한 일이 아니겠소?"
(......?)
방덕승은 일시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멍한 표정이 되었다. 정말로 그 작은 술잔이 커다란 항아리안의 술의 무게가 나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남궁청우는 다시 말했다.
"어서 마시고 다 마시지 못하면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것이 어떻겠소?"
방덕승은 마침 어이가 없게 생각하고 있었던 참이라 정말로 알아보기 위해서 술잔을 들고서 마시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방덕승은 작은 술잔을 들고서 계속해서 꿀꺽꿀꺽 하고 들이켰지만 괴이하게도 역시 술잔속의 술은 거의 줄어들지 않는 것이었다.
(......!)
방덕승은 한참동안 마시고서 얼굴이 벌겋게 취기가 오르고서야 비로소 포
기한 듯이 술잔을 입에서 떼었다.
"어디 내가 한번 마셔보자!"
가우왕이 즉시 손을 내밀었으나 남궁청우는 웃으며 말렸다.
"그대는 나중에 마시기로 하고 우선은 선비와 무구가 마시도록 하게."
남궁청우의 그 말에 가우왕은 손을 멈칫하고 즉시 좌선비가 받아서 마시기 시작했다.
그 역시 술잔의 무게와 끊임없이 술이 나오는 것을 보고는 경악한 표정이었다.
이윽고 그 역시 한참동안 마시다가 그 술이 끊어지지 않는 것을 보고는 하는 수 없이 술잔을 옆의 서무구에게 돌렸다.
서무구 역시 크게 놀란 표정으로 술을 많이 마셔댔으며 역시 술잔속의 술이 줄지 않는 것을 보고서 이윽고 그것을 가우왕에게 건네주게 되었다. 그런데 그 때는 이미 술잔의 무게는 반항아리의 술의 무게는 될 것이었다.
술잔속의 술은 절반정도 차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역시 가우왕도 그 술을 다 마시지 못하고서 손을 내리고 말았다.
남궁청우가 웃으면서 그 술잔을 받아들자 좌선비가 참지 못하고서 입을 열어 물었다.
"옛날에 끝없이 물건이 튀어나오는 보물이 있었다고 하던데 이 술잔속의 술도 그와 같은 이치인 것입니까?"
남궁청우는 미소하며 대답했다.
"좋을 대로 생각하는 것이 좋소. 어쨌든 일단은 모두가 취한 것이 아니오?"
그렇다.
일단은 사대호위는 하나같이 얼큰한 취기를 느끼고 있어서 그들을 취하게 하려는 남궁청우의 의도는 성공한 셈이었다.
가우왕 등은 잠시 멍하니 남궁청우를 바라보다가 그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보자 이내 술을 마시기 시작했으며 점차로 그 속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술을 일단 취하도록 마시게 되면 점점 더 술을 찾게 되기 마련이었다.
남궁청우가 조용히 바라보는 가운데 그들 네 명은 점차로 깊이 술에 취해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다시 한번 그 술잔을 돌림으로서 그 술잔속의 술을 모두 비워버리자 이윽고 남은 하나의 항아리의 뚜껑을 뜯고서 마시기 시작했다.
점차로 깊이 취하게 되자 그들의 입에서는 이내 호기(豪氣)에 가득한 소리들과 함께 강호상의 얘기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로 그 무렵에 느닷없이 주위를 지키고 있던 점원 하나가 일행에게 다가오더니 이와 같은 말을 전하는 것이었다.
"저어 가주님, 저쪽에 앉아 있는 여자 분이 지금 가주님의 함자를 묻고 있는데요?"
아니나 다를까 남궁청우 등이 구석진 자리로 시선을 돌려보니 어느새 그 자리에는 세 명의 회색 승복을 걸친 여인들이 자리하고 앉아서 음식을 들고 있었는데, 단정하게 그저 음식만을 먹고 있는 두 명의 중년의 비구니들과는 달리, 한명의 장발(長髮)의 승복을 걸친 미소녀(美少女)는 그저 멍하니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회색 승복을 걸친 소녀는 용모가 지극히 수려(秀麗)한 형상이었지만 무엇보다도 그녀를 눈부시게 하는 점은 그녀의 기질(氣質)이 아주 맑고 깨끗하다는 사실이었다. 실로 그녀는 한눈에 보기에도 세속의 사람이 아닌 것 같이 아름다웠다.
비록 승복을 걸치고 있었지만 그녀의 용모가 가지약 보다도 훨씬 아름다운 것이라는 사실을 남궁청우는 물론 사대호위도 부인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기이한 것은 어째서 그녀가 이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보아하니 그녀는 지금 남궁청우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남궁청우가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녀는 문득 안색을 온통 붉게 물들이더니 감당하지 못하고서 고개를 푹 숙이는 것이었다.
방덕승이 그것을 보고서 웃으며 말했다.
"아마도 그녀가 가주님께 한 눈에 반한 모양입니다."
(......)
남궁청우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이내 내색하지 않고서 점원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가서 가르쳐 드리도록 하시오. 사람의 이름을 묻는다는 것은 죄(罪)가 아니지."
방덕승이 문득 가우왕에게 물었다.
"이봐, 가주님께서 다시 여자를 맞아들이는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지?"
가우왕은 이미 상당히 취한 모습이었다. 물론 공력을 운용하게 되면 금방이라도 취기를 없앨 수가 있는 그들이었지만 모처럼의 취기를 제거하고 싶지는 않았다.
가우왕은 약간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빌어먹을, 가주님이야 워낙에 훌륭하신 분이니 설령 삼처사첩(三妻四妾)을 거느리시게 된다고 해도 상관이 없겠지. 나의 그 누이는 이미 가주님의 정실이라고 인정을 받았으니 사실 나보다도 훨씬 행복한 편이라구."
일행은 다시 가우왕의어깨를 툭툭 치면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
* * *
다음날 아침 남궁청우는 일찍이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그가 침상의 휘장을 걷고 탁자가 있는 쪽으로 걸어 나오자 가지약은 이미 일어나서 단장하고 있다가 웃으며 그를 반겼다.
"안녕히 주무셨나요, 정랑?"
남궁청우는 그녀의 몸을 부드럽게 안고서 입맞춤을 해주면서 말을 받았다.
"그래 지약 그대도 잘 잤소?"
가지약은 남궁청우의 품속에서 살짝 눈을 흘기면서 대꾸했다.
"흥, 당신께서 간밤에도 저를 밤새도록 괴롭혔으니 제가 편히 잘 수가 있겠나요?"
비록 겉으로는 그와 같이 눈을 흘기고 있었지만 내심으로는 정말로 행복해하는 표정이었다.
남궁청우는 어제 저녁에 사대호위와 영웅루에서 술을 마시다가 이윽고 약속한대로 일찍이 돌아와서 식사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으며 이미 즐거움이 붙기 시작한 가지약과의 방사(房事)를 치르느라고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했었다.
가지약은 아직 나이도 어리고 또한 여자이기 때문에 그러한 재미에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 모양이었으나 자신이 남궁청우의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에는 두말할 나위도 없이 좋아했다.
"사실 우리가 좀더 빨리 아이를 만들어야 어머니께서도 더욱 좋아하실 것이 아니겠소? 게다가 나는 오늘부터는 집안에서 잠을 자는 일이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므로 그대는 곧 편안해질 것이오."
그러나 가지약은 이내 그의 품속에 깊이 파고들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저는 당신의 사랑을 받는 것이 더욱 행복해요."
수줍은 듯이 말하는 그녀의 얼굴은 오늘따라 더욱 화사한 혈색(血色)이 생겨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일신에 내공(內功)을 가지고 있는 무림고수이기 때문에 하룻밤의 방사가 제아무리 뜨거웠다고 해도 기력이 탈진되는 일 따위는 없는 것이었다.
남궁청우는 가지약의 몸을 가볍게 안아들고는 창문쪽으로 다가갔다.
휘장을 조금 열어젖히고서 아래쪽을 내려다보던 그는 문득 의아해하며 말했다.
"아니, 저들이 어째서 벌써부터 와 있는 거지?“
* * *
좌선비 등의 사대호위가 벌써부터 와서 후원에서 남궁석약 등과 함께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던 것이었다.
남궁청우는 이내 세수를 하고나서 아침식사를 마친 뒤에 그들 사대호위와함께 오랜만에 집무실로 나아갔다.
오늘은 바로 그가 며칠 전에 정했던 세가의 소회의(小會議)가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남궁청우는 일단 그 소회의를 마치고 난 이후에는 바로 시찰을 떠나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