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1장 나타난 奇人
개방방주 백염호개 진방산은 흉험해 덮쳐오는 귀파 손예랑의
괴장에 식은땀을 흘렸다.
이십여 초가 지나자 그는 손목이 저려오며 손발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타구봉법이 비록 개방의 독문절기였지만 손예랑의 괴장은
음유의 강약을 조절하면서 기묘하게 휘어지는데 도저히 대적하기가
어려웠다.
한쪽에서 지켜보던 청해존자가 담담히 외쳤다.
{예랑, 잠시 손속을 멈추시오.}
손예랑은 힐끗 그를 쳐다보고 냉랭히 외쳤다.
{늙은이도 마음이 동하면 덤비지 그래?}
그러면서 그녀는 재빨리 괴장을 독랄하게 휘둘렀다.
(저 늙은이가 방해하기 전에 이놈을 먼저 없애야지.)
손예랑은 내심 살기를 품으며 벼락같이 괴장을
유성간월의 수법으로 후려치며 좌수를 재빨리 튕겼다
순간 두 가닥의 지풍이 소리 없이 뻗어갔다.
청해존자는 손예랑이 지풍을 전개하자 다급히 외치면서
뛰어들었다.
{방주, 산화지(散花指)를 조심하시오!}
진방산은 그의 외침에 재빨리 옆으로 몸을 날렸다.
그와 동시 청해존자의 장력이 지풍을 막으며 좌수로
금나수법을 사용해 괴장을 잡아갔다.
{늙은이가 죽고 싶다면 어쩔 수 없지!}
손예랑은 분노성을 지르며 괴장을 회전시켰다.
순간 청해존자는 움찔하면서 손을 반듯이 치켜세우면서
칼날같이 괴장을 쳤다.
탕!
장과 괴장이 부딪치자 둔탁한 소음이 터졌다.
{이런 육시랄 늙은이!}
손예랑은 손목이 끊어질 듯 아파오자 괴장을 좌수로
옮기며 재빨리 혈마지를 쏘아냈다.
펑! 펑! 펑!
세 가닥의 혈마지가 섬전같이 쏘아오자 청해존자는
대경실색한 표정으로 허리를 굽혔다.
목표를 잃은 혈마지는 기둥과 부딪치자 불길을 퉁겼다.
팟팟팟!
단단한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기둥이 한 치나 패여 들어갔다.
청해존자와 중인들은 새삼 혈마지의 위력에 가슴이 철렁했다.
{예랑, 혈마지가 비록 절세의 지공이지만 이 안에 있는
사람들을 다 당할 수는 없을 것이요.}
청해존자는 재빨리 외치며 뒤로 물러섰다.
{닥쳐라, 오가야! 네놈들이 떼거리로 덤벼도 이 노파는 눈
하나 깜짝 안할 테니 헛소리 말고 이것이나 받아 봐라.}
괴장을 맹렬히 휘두르며 우수를 부챗살처럼 펼치며 오지를
쳐냈다. 그와 동시에 손예랑의 전음술로 적용화련에게 말했다.
{련아야, 아무래도 이들을 당하기는 무리이니 너라도 빨리
빠져나가거라.}
적용화련은 흠칫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들은 하나같이 당대의 고수들이다. 나 혼자라면
모르겠지만 나의 아이까지 있으니...
우선 여기를 피하고 보자
손예랑이 잡힌다 해도 이들은 그녀를 죽이지는 않을 것이니
먼저 피해야 되겠어.)
그렇게 결정을 마음 속으로 내리자 그녀는 추호도 지체하지
않고 몸을 밖으로 날렸다.
휙!
환영분광(幻影分光)의 절대적인 경공신법을 쓰는 그녀의
신형은 전광석화처럼 빨랐다.
공기를 가르는 파공음이 들린다 싶자 어느새 그녀의 신형은
문을 지나 마당에 내려서고 있었다.
{잡아랏!}
제일 먼저 그녀가 도피하는 것을 본 송방춘이 크게 외치며
몸을 날렸다.
순간 손예랑은 청해존자에게 재빨리 장력을 쏟아내고 문 앞을
막아섰다.
{이놈아, 내가 살아 있는 이상 아무도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한다!}
그녀는 교갈을 지르며 괴장을 맹렬히 휘둘렀다.
송방춘은 그녀의 선풍같은 위세에 뒤로 물러났다.
이내 몇 사람이 한꺼번에 달려 들었지만 문은 작고 손예랑이
지키고 있으니 제대로 뚫고 나갈 수가 없었다.
돌연 황보가혜가 몸을 날리며 외쳤다.
{창문으로 나가라!}
그녀의 말이 끝났을 때 몇 사람의 인영이 재빨리 창문으로 몸을 날렸다.
손예랑은 분통이 터졌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마당에는 적용화련을 따라온 흑의인들과 송방춘의 수하들이
손발을 날쌔게 움직이며 맹렬하게 싸우고 있었다.
헌데 흑의인들의 무예가 하나같이 신랄하고 악랄하며 송방춘의
수하들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대청에서 백상천, 황보가혜, 냉유도 등이 달려 나와
합세하자 흑의인들은 반대로 몰리기 시작했다.
{혜매, 이곳은 우리에게 맡기고 빨리 그 마녀를 추적하시오!}
백상천의 이 말에 황보가혜는 맹렬히 검을 휘둘러 한
흑의인의 가슴을 찌르며 재빨리 몸을 날렸다.
{먼저 갈 테니 빨리 따라오세요!}
황보가혜가 정문을 벗어나자 뒤따라 나온 개방방주, 냉유도
등이 급히 그녀의 뒤를 따랐다.
어느새 나온 송방춘, 단천금, 유주랑 등도 이들에
못지않은 신법을 전개하면서 뒤를 따랐다.
헌데 그 중 단천금의 신법은 마치 물 위를 스치듯이 날아
가는데, 그것은 절정의 경공신법인 초상비(草上飛)임이 분명했다.
그가 땅을 디딘 부분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었다.
초상비의 경공을 발휘할 수 있다면 그는 결코 혜천대사에 못지않을
공력을 지닌 것이 아닌가?
아무리 그가 광동성 명문집안의 출신이라 해도 그의 나이로
불 때 한 갑자의 공력 없이는 시전할 수 없다는 초상비를 시전한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가흥현를 벗어나 동쪽으로 화살처럼 신형을 날리는 적용화련의
신법은 마치 바람 같았다.
이미 날은 어둑해지는데 길가던 평인 몇 사람이 그녀를
보았지만 그들의 눈에는 희끗한 그림자만이 스쳐 지났을 뿐이었다.
한동안 관도를 달리던 그녀는 일순 관도 옆 숲 속으로 방향을
꺾었다.
하늘에는 어느 덧 먹구름이 몰려들고 있었다.
먹구름에 가려져 떠오르는 달(月)도 사라지고 있었다
. 숲 속은 갑자기 음산해지는 것 같았다.
휘이__잉_!
서늘한 바람(風)이 적용화련의 머리카락을 날렸다.
그녀는 초조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고개를 숙였다.
품 안에 아기는 수혈이 점혈되어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문득 그녀의 봉황을 닮은 듯한 눈에 이슬이 맺혔다.
(아이야. 너만은 곱디곱게 키울려고 했는데..어미를
잘못 만나서.)
문득 이때, 멀리서 은은한 고함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꿈에서 깨어난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벌써 쫓아 왔구나... 이 아이를 위해서라도 나는 절대
붙잡힐 수 없다.}
그녀는 자신에게 외치듯이 중얼거리며 재빨리 신형을 날렸다.
돌연 뇌성벽력과 함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후두두두...
처음에는 빗방울이 듬성하다가 곧 바람과 함께 차가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늘은 짙은 먹구름으로 뒤덮이고 사위는 먹물같이 어두워졌다.
쏴아_ 아_!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숲속은 자욱한 우연에 휩싸여 마치장막에 덮힌 듯 뿌옇게
화했으며 천지가 온통 빗소리로 우울한 분위기를 이루었다.
적용화련은 아기를 품속에 꼬옥 껴안고 미친 듯이 달려갔다.
문득, 한 소리 폭갈이 터져 나왔다.
{서랏!}
말과 동시에 한 줄기 검광이 벼락같이 날아왔다.
적용화련은 허공에서 재빨리 호선을 그리며 내려섰다.
천갈 냉유도, 일 년 전과 달리 그의 표정은 더욱 뜨겁고
잔인함을 풍기고 있었다.
전날 마교에 의해 수모를 당한 그는 마교의 인물들에게
이를 갈고 있었다.
{흐흐... 정말 예쁜 얼굴이야.}
그는 음흉맞은 괴소를 흘리며 말했다.
{사내라면 한 번쯤 목숨을 걸고 사랑하고 싶은 미모란
말이야. 하나 당신은 마교의 계집, 즐기는 거라면 몰라도 흐흐흐..!}
잠시 말을 멈춘 냉유도는 칙칙한 시선으로 적용화련의 몸매를
핥듯이 훑어봤다.
{흐흐 물론 내가 당신을 원한다 해도 당신 같은 여인에게 나
정도야 눈에 차지도 않겠지. 안 그래?}
적용화련은 냉유도의 욕정에 천 눈초리에 치를 떨었다.
{더러운 인간 같으니...!}
그녀는 차갑게 외치고는 재빨리 몸을 날리며 섬섬옥수를 뻗었다.
{흐흐...진정하시지.}
냉유도는 비웃음을 흘리며 추파조란(推波助瀾)의 검식으로
검을 엇비스듬히 쳐냈다.
그러자 적용화련의 장력이 갑자기 사라지고 손목을 비틀면서
식중이지를 뻗었다.
펑! 펑!
두 줄기의 혈마지가 섬광처럼 쏘아왔다.
{혈마지!}
냉유도가 경악성을 터뜨리며 다급하게 피하려 했다.
그러나 그녀의 혈마지의 성취는 귀파 손예랑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위력적이었다.
{우욱!}
냉유도는 나직한 신음성을 흘리며 뒤로 주춤 물러섰다.
그의 왼쪽 어깨에 손가락만한 구멍이 뚫려 피가 솟아 나왔다.
순간 적용화련의 신형은 비조처럼 숲속으로 사라졌다.
냉유도는 흠칫 놀라며 버럭 노성을 질렀다.
{마녀가 동쪽으로 달아났소.}
외침과 동시에 그는 상처의 고통을 무릅쓰고 재빨리
뒤를 쫓았다.
쏴아아...!
폭우는 여전히 줄기차게 쏟아져 내렸다.
전신에 비로 후줄근히젖은 적용화련은 입술을 꼬옥 깨물었다.
(나는 비를 맞아도 괜찮지만 아기만은 안 돼. 어디 동굴이라도.)
그녀는 분노와 초조에 미칠 것만 같았다.
[멈춰라 마녀!]
그때 싸늘한 외침과 함께 갑자기 전면에서 두 개의 인영이
튀어나와 그녀를 막아섰다.
(개방방주와 송방춘!)
나타난 인물들을 확인한 적용화련은 내심 당황을 금치 못했다.
그녀를 막아선 자들은 바로 개방방주 진방산과 송방춘이었던
것이다.
(이 두 사람은 나 혼자로서 감당하기 힘들다!)
적용화련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때 송방춘은 원한에 찬 눈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요녀! 순순히 항복을 한다면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
요녀란 말에 적용화련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닥쳐요. 간악한 늙은이, 감언이설로 함정에 빠뜨리다니
그래도 당신들이 정파백도를 자처하는 작자인가요?}
듣고 있던 진방산이 냉막하게 말했다.
{마의 무리들에게 수단방법을 가릴 필요는 없겠지.}
원래 악을 원수처럼 증오하는 진방산은 냉혹하게 말하며
천천히 앞으로 다가섰다.
{마교의 악마들은 수단이 잔혹하고 교활하니 그에 걸맞은
대응을 해주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닥쳐라!]
적용화련은 참지 못하고 섬섬옥수를 뻗었다.
순간 두 줄기 핏빛 섬광이 벼락처럼 전상방의 미간과 천돌혈을 향해
쏘아갔다.
{혈마지로군!}
진방산은 흠칫 놀라며 재빨리 죽장을 휘둘렀다.
바로 그 순간 적용화련의 신형이 발도 움직이지 않고 무릎도
굽히지 않은 채 몸을 꼿꼿이 허공으로 날렸다.
그녀의 목적은 진방산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달아날 틈을 만드는
것이었다.
[어딜...!]
진방산은 그녀의 가공할 신법에 내심 놀라면서도 그림자같이
그녀의 뒤로 따라 붙이며 죽장으로 하반신을 쓸어갔다.
그러자 적용화련은 몸을 허공에서 눕히며 우수로 질풍같이
일장을 쳐냈다.
그녀의 이 장법은 눈부실 정도로 빨랐으며 진방산은 자칫 오산으로 피할래야 피할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옆에 있던 송방춘이 깜짝 놀라며 외쳤다.
{방주, 조심하시오!}
다급히 외치는 동시에 그는 벼락같이 일장을 뻗었다.
순간 그의장력이 적용화련의 장력과 부딪치자 그 사이 진방산은 재빨리 몸을 피했다.
적용화련은 장력이 부딪치자 그 탄력을 이용해 비조같이 왼쪽
숲으로 날아갔다.
{내려가라!}
헌데 그 순간 허공에서 노성이 터지면서 한 줄기 웅후한
장력이 쏟아졌다.
적용화련은 깜짝 놀라며 급히 일장을 쳐냈다.
퍼펑!
북치는 듯한 굉음과 동시에 그녀는 호선을 그리며 땅에
내려섰다.
그 와함께 몇 줄기의 인영이 내려서면서 그녀를 포위했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는 적용화련의 눈빛이 가늘게 떨렸다.
천갈 냉유도를 위시하여 혜천대사, 황보가혜 등 모두 칠인이 그녀를
빙 둘러 싸고 있지 않는가?
{아미타불...}
혜천대사가 나직이 불호성을 외웠다.
{여시주, 아이를 위해서라도 순순히 우리를 따라가는 것이
좋을 듯 하외다.}
적용화련은 문득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호호호... 대사님, 호의는 고맙지만 나의 아들도 결코
어미가 순순히 잡히는 것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예요.}
황보가혜가 날카롭게 외쳤다.
{저런 요녀에게 사정을 둘 필요는 없어요. 이런 때 어린
자식까지 들먹이다니 역시 마교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만사만악
(萬邪萬惡)의 악인(惡人)들 뿐이예요.}
송방춘이 동의하듯 말했다.
{대사님, 그렇습니다. 마교의 무리들에게 조금도 사정을
둘 필요가 없습니다.}
혜천대사는 미간을 찌푸리며 불호를 외웠다.
{아미타불... 여시주, 이 늙은이는 더 이상 피를 원하지
않소. 손 선배는 이미 잡혔고 다른 자들은 모두 죽었으니 응원군은
없을 것이외다.}
적용화련은 가슴이 철렁했다.
(그들이 모조리 죽고 손대랑마저 잡혔다니...
혜천대사는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대로 끌려갈 수는 없어!)
일순 그녀는 힐끗 주위를 살펴보면서 그 중 제일 약하게
보이는 황보가혜를 향해 번갯불처럼 비쾌하게 쏘아갔다.
갑자기 전광석화처럼 적용화련이 공격해 오자 황보가혜는
재빨리 검을 휘두른다.
하지만 그녀는 비록 검을 쳐올렸으나 초식이 반도 채 펼치기
전에 어깨에 일장을 맞고 물러섰다.
그와 동시 적용화련의 신형은 바람같이 그녀를 스치고 지나갔다.
{멈추어랏!}
옆에 있던 송방춘이 벼락같이 일장을 쪼개왔다.
적용화련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뒤로 돌리며 지풍을
퉁겼다. 이 수법은 그녀가 필사의 도주를 위해 전력으로 시전한 것이라
송방춘이 대경실색하면서 피하려고 했지만 한 가닥의 질풍이
그의 장력을 뚫고 미심을 파고 들었다.
{으억!}
송방춘은 비명을 토하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가 갑자기 죽어 버리자 중인들은 일순간 살기가 솟구쳤다.
{죽어랏!}
냉유도가 벼락같이 외치며 검과 몸이 혼연일체가 되어
적용화련의 등을 향해 날아갔다.
신검합일(神劍合一),
어검술의 초보단계로 여기서 한 단계 올라가면 백 장 밖에서도 검을
날려 적을 상상할 수도 있는 검도(劍道)의 상승경지였다.
냉유도의 신형은 빛살처럼 빨랐다.
적용화련은 등 뒤로 부터 서릿발 같은 검기가 날아오자 허공에서 재주를 넘으며 손끝을 칼날같이 세워 검을 후려쳤다.
쾅!
장과 검이 부딪치는 순간 두 사람의 신형은 아래로 떨어졌다.
냉유도는 부딪치는 순간 쇠를 치는 듯한 느낌에 하마터면
검을놓칠 뻔했다.
{천마산수(天魔散手)! 아미타불...}
혜천대사는 놀라운 듯 외치며 불호를 외웠다.
적용화련은 냉유도의 검을 막기는 했으나 공력을 이을 수가
없어서 재빨리 내려서며 다시 발끝으로 땅을 박차고 솟아올랐다.
순간 진방산의 죽창이 벼락같이 옆구리를 파고 듬과 동시에
황보가혜가 어느새 득달같이 달려와 검으로 아기를 향해
찔러왔다.
적용화련은 미친 듯이 노했다.
설마 아기를 노리고 살수를 쓸줄이야 꿈에도 생각지 못한
그녀였다.
{비열한 수법을 쓰다니!}
적용화련은 노호성을 지르며 몸을 돌려 겨우 그녀의 검을
피했다.
그러나 진방산의 죽장은 피하기 어려웠다.
그녀는 다급히 섬섬옥수로 지풍을 쏘아내며 왼발로 죽장을 걷어찼다.
이같은 그녀의 수법은 실로 기묘하면서도 유효적절했다.
쏴__ 아_ 아!
장대같이 굵은 빗줄기는 그칠 줄 모르고 쏟아져 내렸다.
혜원대사는 폭우를 전신으로 맞으면서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한 여인을, 그것도 아기를 안은 여인을 합공하는 눈앞의 사람들을
지켜보는 그의 입가에 쓰디쓴 고소가 스쳤다.
(아미타불! 정도인으로서 아무리 그녀가 마교의
사람이라지만 수명이 협공을 하다니...)
그는 내심 죄책감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헌데 혜원대사 말고도 처음부터 끝까지 못마땅한 표정으로
적용화련을 합공하는 군협들을 지켜보는 두 사람이 더 있었다.
그들은 바로 광동 다씨 세가의 소가주인 단천금과 황실
어영위의 부장인 유주강이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장내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을 뿐 행동도
없이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벌써 오십여 합이 지났다.
진방산의 죽장은 정대하면서도 날카롭고 황보가혜의
신녀검은 서릿발같은 예기를 뿌리면서 악랄하게 아기를 노리고 찔러
갔다.
적용화련은 절묘한 신법과 혈마지로서 대응하고 있지만
그녀는 점차 수세에 몰리고 있었다.
사실 품에 어린 아기를 안고 한 손으로만 두 사람을 상대한다는 것만
해도 기적 같은 일이 아닌가?
황보가혜의 눈빛이 돌연 매서워졌다.
죽어랏, 요녀!}
그녀는 증오서린 교갈을 외치며 신녀검을 휘둘렀다
검끝은 정확히 아기의 머리를 향해 베어갔다. 도저히 여인으로서는
상상도 할수 없는 악랄한 수법이었다.
일 년 전만 하더라도 천진난만하고 순진무구하던 황보가혜가
이니었던가?
허나 무림맹이 폐허로 변하고 그녀의 부친마저 잃은 지금
그녀는 증오와 원한에 불타는 여인이 되어버렸다.
사실 누구라도 그녀의 입장이 된다면 욕할 수만은 없는
일이 아닌가?
거기에다 내심 연대강을 사랑했던 그녀로서는 오히려 당연한
일일는지도 모른다.
적용화련은 황망히 천마산수의 진결을 운기하면서 신녀검을
엇 비스듬히 후려쳤다.
그 순간 기다리기라도 한 듯 진방산의 죽장이 벼락같이 어깨를
후려쳐왔다.
{으음!}
재빨리 몸을 허공으로 날렸지만 이미 지칠대로 지친
적용화련은 죽장을 완전히 피하지 못하고 다리에 맞고 말았다.
그녀는 실 끊어진 연처럼 추락했다.
{호호호. 요녀! 우선 네년의 얼굴에 멋진 상처를 만들어
주겠다.}
황보가혜는 득의양양한 웃음을 터뜨리며 좌장을 쳐내는
동시 신녀검으로 적용화련을 베어갔다.
황보가혜의 장력이 아기의 몸을 향해 날아오자 적용화련은
비명을 지르며 급히 몸을 틀어 아기를 감싸 안았다.
{안 돼, 아기만은... 으윽!}
놀라 외치던 그녀는 그 바람에 신녀검에 어깨가 베어져
나뒹굴었다.
산발한 머리는 아무렇게나 흘러내리고 전신은 피로 젖었다
어깨에서 흘러내린 선혈이 아기의 얼굴을 적시자, 적용화련은
처참히 부르짖었다.
[호호! 죽엇!]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황보가혜가 재차 일검을 뻗어왔다.
이미 중상을 입은 적용화련은 꼼짝없이 그녀의 일검에 베일 위기에
처했다.
적용화련의 얼굴에 절망의 빛이 떠올랐다.
차앙!
바로 그 위기의 순간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면서
적용화련을 베려던 황보가혜의 보검이 튕겨나갔다
돌연 옆에서 날아든 장검이 그녀의 신녀검을 막은 것이다.
[단공자! 당신이...!]
[무슨 짓이오?]
중인들은 눈을 부릅뜨며 황보가헤의 공격을 물리친 인물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손을 써서 적용화련을 구한 인물은 바로 광동 단씨
세가의 소가주인 단천금이었다.
적용화련을 막아선 단천금은 혜천대사 등 중인들의 얼굴을
일별하며 냉랭히 말했다.
{그녀가 아무리 마도의 사람이라고는 하나 정도인으로서
협공 을하는 것만 해도 수치스런 일인데 하물며 어린아이까지 죽이려고
하다니, 나 단천금 비록 정의협객은 아니지만 이런 부당한 일은
참을 수가 없소!}
그의 냉랭한 목소리는 의분에 떨리고 있었다.
{단공자, 그녀는 마교의 요녀요.}
개방방주 진방산이 무슨 짓이냐는 듯이 외쳤다.
단천금은 냉랭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선배, 내비록 우연히 이일에 말려들기는 했으나 공도에
어긋하는 일에는 동조할 수 없소.}
황보가혜는 경멸서린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흥, 처음부터 그랬다면 왜 지금에서야 나서지요?}
단천금은 흠칫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왜요, 내 말이 가슴이 떨리는가요. 저 요녀가 미인이라서
나서는 게 아니고 의분을 느꼈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왜 처음부터
나서지 그랬어요.}
황보가혜의 어조는 잔뜩 비웃음이 담겨 있었다.
단천금의 눈빛이 흔들렸다.
마치 잘못을 저지른 아이가 겁에 질린 것처럼 얼굴이
붉어졌다.
{무어라고 해도 나는 상관치 않겠소. 허나 이 분 소저를 더
이상 핍박한다면 나 단천금은 비록 힘이 없으나 결코 이 일을 좌시하지
않겠소.}
혜천대사는 침중한 표정으로 불호를 외웠다.
{아미타불... 단시주, 시주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가
아니라 이 일은 무림의 장래가 달려 있으니 저 분 여시주를 소림으로
데려가야 하오.}
{혜천대사님, 저는 평소 누구보다도 대사님을 존경해
왔습니다. 헌데 아무리 무림의 일이라고는 하지만 한 모자를
핍박하면서까지 무림의 장래를 위한다는 것은 저로써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단천금은 담담히 말했다.
{이들 모자를 괴롭혀서 정의를 위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일 같습니다.}
혜천대사는 심히 괴로운지 침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진방산은 힐끗 적용화련의 모습을 주시하며 말했다.
{단공자, 젊은 혈기에 의분을 느끼는 것은 이해하지만, 자네는
마교의 악랄함을 모르고 있네.}
황보가혜가 신녀검을 휘두르며 외쳤다.
{더 이상 말을 것도 없어요. 우리의 일을 방해한다면 그
누구도살려 둘 수 없어요!}
단천금은 신녀검이 벼락같이 날아오자 송문고검(松紋古劍)을
중상단으로 겨누며 바쾌하게 흔들었다.
순간 세 가닥의 한광이 꽃잎처럼 퍼지면서 신녀검을 봉쇄했다.
{삼황검법(三皇劍法)_!}
개방방주 진방산은 해연히 놀라며 외쳤다.
{이제 보니 단공자는 황궁의 무예를 익혔군!}
말과 동시에 그의 죽장이 비쾌하게 단천금의 손목을 후리쳐
왔다.
삼황검법(三皇劍法)-!
이는 황궁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비전무예로 황실을 경호하는
무인들이 익히고 있다는 삼황검법은 화려하면서도 현묘한 무예였다.
황보가혜는 단천금의 검법이 이렇게 기묘할 줄은 몰랐는지라
재빨리 옆으로 피하면서 석자나 물러섰다.
이때 마침 진방산이 공격하자 그 틈을 놓칠세라 신속하게
적용화련을 찔러갔다.
흠칫 놀란 단천금이 다급히 외쳤다.
{유형, 그녀를 막으시오!}
이 말에 한쪽에 서 있던 유주강은 자신도 모르게 황보가혜를
막으려고 몸을 날렸으나 이미 늦은 감이 있었다.
신녀검의 검끝은 간신히 나무에 기대어 선 적용화련의
옆구리를 악랄하게 파고들었다.
이미 탈진할 대로 탈진한 적용화련은 그것을 피할 힘이 없었다.
절대절명의 순간이었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아미타불...!}
한소리 천둥치는 듯한 불호성이 중인들의 귓전을 파고 든다
싶자 황보가혜는 갑자기 한 가닥 부드러운 경력이 자신을 떠미는 것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적용화련의 몸은 무엇에 딸려가듯 한쪽으로 홱
날아갔다.
갑작스런 이 사태에 중인들은 모두 손을 멈추고 한쪽을
쳐다보았다.
쏴아아!
폭우가 쏟아지는 나무 사이에 허름한 승포를 걸친 노승이 한명 표연히 서있었다.
하늘에서는 장대발같은 폭우가 세차게 쏟아져 내리고 있지만
노승의 승포에는 한 점의 물기도 묻어 있지 않고 빗물이 그의 몸에 닿을
때마다 퉁기듯이 비껴 내렸다.
무형의 기운에 딸려간 적용화련과 아기는 노승의 품에 안겨
있는데 이미 수혈이 점혈 되었는지 두 눈을 감고 있었다.
중인들은 노승의 몸에서 펼쳐지는 무형의 선천강기에 경악의
눈빛이 되었다.
{사숙조님!}
바로 그 직후 혜천대사가 갑자기 무릎을 꿇고 이마를 진흙탕에
박았다.
노승은 한 점의 탁기도 없는 고요한 시선으로 중인들을
둘러보았다.
{아미타불... 정도인으로서 마도와 똑같이 행동을 한다면
마도인과 다를 바가 있겠는가?}
담담한 목소리였으나 중인들의 귓전에 닿았을 때는 천둥치듯
크게 울렸다.
그러자 진방산, 황보가혜, 냉유도 등은 자신들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노승은 바로 범천신불(梵天神佛) 법공대선사였다.
그는 나직이 탄식을 흘리며 어깨를 슬쩍 흔들었다.
순간 그의 신형이 솟구친다 싶자 어느새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혜천대사는 한동안 망연한 눈빛으로 법공대선사가 사리진
방향을 응시했다.
법공선사를 본 적이 없는 단천금과 유주강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혜천대사를 쳐다보았다.
{아미타불...}
혜천대사는 나직이 불호성을 외우며 힘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따라 중인들도 느릿하게 폭우 속으로 사라져 갔다.
단천금과 유주랑은 고개를 흔들었다.
{유형, 방금 그 노승이 누구인데 혜천대사 같은 분도 무릎을
꿇 는단 말이오?}
유주강은 고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제 삼십대도 되지않은 그들이 어떻게 해서 백년 전의 법공대선사를
알겠는가?
쏴아아아...
폭우는 끊임없이 쏟아져 내렸다.
담사는 천천히 눈을 떴다.
눈을 뜬 순간 뇌옥연의 수려한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그는
다시 눈을 감았다.
뇌옥연은 애정이 담뿍서린 얼굴로 그의 품에 가만히 얼굴을 묻었다.
객방의 등잔 불빛은 꺼질 듯이 흔들거렸다.
{조노인은 어디 갔소?}
{그 분은 소림으로 먼저 가셨어요?}
뇌옥연의 대답에 담사는 힐끗 그녀의 얼굴을 응시했다.
{조노인이 말하기를 담랑께서도 소림으로 오면 했어요.
이번에 소림에서 마교와의 결전을 위해 강호 각대문파에 은밀히
무림첩을 배포했어요.}
담사는 가만히 몸을 일으켰다.
순간 가슴에서 은은한 통증이 번지자 이를 악물고 자세를
바로했다.
{담랑,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조노인의 말로는 이틀 정도는
쉬어야 한다고 했어요.}
그녀는 급히 외치며 담사의 몸을 부축했다.
{나는 괜찮소. 운기조식을 할 테니 주위나 살펴 주시오.}
담사는 냉랭히 말을 하며 책상 다리를 하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뇌옥연은 무슨 말을 할듯 입술을 오물거렸으나 그의 엄숙한
표정에 원망스러운 듯 눈을 흘기며 문쪽을 감시했다.
어느 새 폭우가 그치고 가느다란 빗줄기가 가끔 창문을
두드렸다.
뇌옥연은 지루한 표정으로 힐끗 담사를 응시했다.
벌써 두 시진담사의 자세는 일점의 움직임도 없이 무아지경에
빠져 있었다.
문득 담사의 눈빛에 번쩍 빛이 났다.
그와 동시 나직이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천천히 자세를
고쳤다.
뇌옥연은 그가 눈을 뜨자 한 마리 제비처럼 훌쩍 날아 담사의 품에 안겨들었다.
{이제 괜찮으신가요?}
담사는 차마 그녀를 뿌리치지 못하고 담담히 말했다.
{나는 괜찮소. 그런데 나에게 무슨 약을 먹였소?}
뇌옥연은 요염한 미소를 지었다.
{조노인이 대환단(大丸丹)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것을..}
{대환단이라면 소림사의 성약(聖藥)이 아니오?}
담사가 놀란 듯이 외치자 뇌옥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환단(大丸丹)-!
소림의 절세 신단으로 평범한 사람이 먹는다면 무병장수
하는 것은 물론이요, 무예를 익힌 사람이 복용한면 단숨에 삼십 년의
공력을 높여주는 천하에 보기 드문 절세 영약이었다.
{조노인의 말로는 그 성약이 준극봉의 노신선에게 얻은 것이라고 했어요.}
담사는 이 말에 고소를 지었다.
(법공대사에게 받았는가 보군.)
그는 내심 법공대사의 모습을 그리며 천천히 침상에서 내려왔다.
뇌옥연은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밤이 깊었는데 어디로 가시려고...?}
담사는 움찔한 표정으로 그녀를 주시했다.
밤새 그를 간호하느라고 약간 헬쓱한 표정이었지만 그녀의
미모는 조금도 손상이 없었다.
게다가, 애틋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자태는 실로
가련해 하면서도 사내의 욕심을 자극시켰다.
담사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이미 담사에 의해 소녀에서 한명의 성숙한 여인으로 변한
뇌옥연은 그의 눈빛을 받으며 수줍은 듯 고개를 숙였다.
담사의 손끝이 가만히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그러자 뇌옥연은무너지듯 그의 품에 안겨들었다.
뇌옥연은 자신의 몸이 침상에 눕혀지는 것을 느끼며 가만히
말했다.
{불을 꺼 주세요!}
담사는 피식 실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퉁기자 방안은 일순
어둠에 잠겨 들었다.
담사는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뇌옥연의 몸은 불같이 뜨거웠다. 그의 움직임이 빨라질 때마다 그녀는 온몸으로 흐느꼈다.
비록 그녀와 두 번째의 관계였으나 담사는 꽃뱀처럼 안겨드는
그녀의 율동에 새삼 여인의 정열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 혼신의
힘으로 파고들었다.
뇌옥연은 사지백해로 번지는 황홀한 희열에 자지러지는 비음을
터뜨렸다.
여인으로서의 본능에 눈을 뜬 그녀는 끝없이 함몰되어 가는
분홍빛 나락에 전신을 내맡겼다.
파도가 굽이쳐 올 때마다 그녀의 입에서는 짐승같은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담사
사내는 강했고 여인은 활화산이었다.
광란의 밤은 그렇게 깊이 긴 밤을 지세우고 있었다.
첫댓글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