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수필문예대학 출신 작가 작품>
퇴고
이홍선
달이 휘영청 밝다. 사람들이 돌아가고 새들도 떠난 달빛 요요한 소공원엔 도서관만 환하게 불을 밝혔다. 하루 일을 끝낸 사람들이 매서운 바람을 뚫고 그곳에 모여든다. 천자문 강좌다. 젊은이도 있지만 나이 든 이가 더 많다. 여든이 넘은 노인들도 보인다.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의 눈빛은 초롱초롱하고 향학열은 교실 안을 뜨겁게 달군다.
강사 선생의 탁월한 실력과 재미난 강의가 입소문을 타고 번지면서 수강생이 구름처럼 모인다. 두 사람씩 앉을 수 있는 책상 앞에 서너 명이 끼여 앉아 함께 수업을 듣는다. 그래도 교육생은 늘어만 간다. 요즘 이름난 선생의 강의를 듣기 위해 아이돌 팬클럽 회원처럼 따라다니는 이도 많다. 나도 그중의 한사람이다. 오늘도 나는 오전에는 구미 여헌기념관에서 맹자를, 오후엔 칠곡 문화원에서 논어를 배웠고, 저녁에는 왜관 소공원 도서관에서 천자문 공부를 하고 있다.
『천자문』사언시 250구 중 퇴위양국(推位讓國) 구절에서 퇴(推)자부터 강의를 시작한다. 추상적으로 밀 때는 추, 물리적으로 밀 때는 퇴로 읽는다고 가르친다. ‘鳥宿池邊樹(조숙지변수) 僧敲月下門(승고월하문)’이라는 문장을 예로 든다. 순간 깜짝 놀랐다. 우리 집 거실 벽에 떡하니 걸려 있는 글이 아닌가.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이신 성파 대종사께서 십여 년 전 통도사 주지로 계실 때 붓글씨 한 점을 선물 받았다. 덕망 높은 스님 한 분 모셔 놓은 듯 거실 중앙 벽에 소중하게 걸어두었다. 가정을 지켜주는 수호신처럼 마냥 든든했다. 스님의 글씨 한 점 가지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자부심이 일었다. 집을 찾은 손님들이 스님의 글씨를 알아보기라도 하면 은근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뜻도 잘 모르고 걸어둔 글귀의 의미를 한문 공부를 하면서야 제대로 알게 되었다.
‘새는 연못가 나무 위에서 잠들고 스님은 달 아래 문을 두드리네.’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가 이응유거(李凝幽居)란 제목으로 지은 시의 한 구절이다.
선생님의 강의는 열기를 더해 간다. 어느 날 승려 가도가 당나귀를 타고 길을 가다가 문득 좋은 시상이 떠올랐다 결구의 승고월하문(僧敲月下門)에서 문(門)을 밀다 의 推(퇴)로 할지, 두드리다 의 敲(고)로 할지 골똘히 생각하다가 경조윤(京兆尹)이란 높은 벼슬이었던 한유(韓愈)의 수레와 부딪치고 말았다. 한유 앞으로 끌려간 그가 사실대로 이야기하자 노여운 기색 없이 한참 생각하더니 “역시 민다는 ‘퇴(推)’보다는 두드린다는 ‘고(敲)’가 좋을 듯하네”라고 말했다. 이후 이들은 둘도 없는 시우(詩友)가 되었고 한유와의 사귐을 계기로 환속해서 시작(詩作)에 전념했다고 한다. 이 시 한 구절에서 퇴고라는 말이 생겨났고, 推(퇴)와 敲(고) 모두 문장을 다듬는다는 뜻이 없는데도, 그러한 뜻을 지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집에서 늘 보던 이 문장이 퇴고란 의미의 연원이 되었다니 놀랍다. 글자 하나에도 깊이 고민하는 대문장가 가도의 모습이 우리 집 거실에 가득 찬듯하다. 어느 작가는 퇴고를 산고에 비유하기도 한다. 진정한 글쓰기는 퇴고에서 시작된다는 말이다. 적벽부를 쓴 소동파는 파지가 한 삼태기가 나올 정도로, 톨스토이도 전쟁과 평화를 90회 이상 퇴고했다고 한다. 헤밍웨이도 노인과 바다를 쓰면서 400회 이상 퇴고를 했고 조지훈도 그의 데뷔작인 승무를 2년여 동안에 걸 처 만들어 냈다고 하지 않던가. 대가들의 한편 글에 정성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정말 일필휘지는 없는 일임을 새삼 알아차린다.
여고 시절 나의 꿈은 글을 쓰는 것이었다. 그 시절에 만든 빛바랜 문집을 만지작거리며 아직도 꿈만 꾸고 있다. 글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으면 캄캄하고 두려움이 앞선다. 글이 무엇인지 아직도 모른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40여 년의 공직생활을 끝냈다. 가족들에게는 미안함이 컸지만, 직장에서는 최선을 다하며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으려 애를 썼다. 여러 부서를 거치면서 마음껏 일했었다. 어떤 일을 하던 열정만은 뜨거웠지만 돌아보면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워낙에 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 성미라 다른 일은 같이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당연히 퇴직 후의 생활을 준비할 겨를이 없었다. 요즘 하나둘 시작한 취미 활동으로 현역 시절 못지않게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가끔은 허허롭다. 다시 살아보고 싶을 때가 있다.
외람되게도 시절 운 따라 작가라는 이름을 받은 지 몇 해 흘렀지만, 글은 여전히 피안의 언덕 같다. 쓸수록 어렵다. 쓰는 것보다 퇴고하는 것이 더 어려움을 실감한다. 그만큼 퇴고의 힘이 크다는 방증일 터이다. 몇 날 며칠이나 글 한 편을 두고 씨름한다. 다시 살아보고 싶은 내 삶을 퇴고할 수야 없지만, 글로써 지난 내 세월을 퇴고(推敲)하는 것이라며 인내한다.
고개를 들어 교실 안을 둘러본다. 대부분 아는 얼굴들이다. 별처럼 빛나는 그들의 눈에도 지우고 싶은 사연 하나쯤 담겨있지 않을까.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인생을 다듬고자 노력하는 빛이 역력하다.
집안 가득 가도가 함께 살고 있으니 언젠가 나도 문향이 묻어나는 글 한 편 남기고 싶다. 그날을 꿈꾸며 어설픈 문장을 두드린다.
(《수필문예》 제22집, 2023. 수필문예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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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프로필
2018 ≪수필과 비평 ≫등단
수필문예회, 대구수필과비평작가회의 회원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장려상(2019, 2021)
대구수필문예대학 22기 수료.
E-mail : cosmos387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