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의 눈물로 지어진 빨간벽돌건물의 구 목포일본영사관의 모습
목포 유달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우리나라 국도 1호선과 2호선이 시작되는 지점을 알리는 도로표지석이 자리잡고 있다.
국도1호선은 목포에서 신의주로 이어지는 일번도로이고 국도2호선은 목포에서 부산으로 이어지는 남해안을 가로지르는
도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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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1.daumcdn.net/cfile/blog/1876B53F4FB51E8D2A)
국도1호선과 2호선은 일본인들의 장기적인 침략의도에 의해서 조성된 도로로 1호선은 1904년 공사를 시작하여 전구간에
걸쳐서 동시에 진행되어 3년만에 만들어져 전국에 거둬들인 쌀, 소금, 솜 등 전쟁 물자를 일제강점기 내내 송출해간
슬픈 역사를 지닌 도로이다.
이도로 원표를 내려다보는 위치인 유달산자락에 자리잡은 빨간벽돌로 지어진 2층 건물의 구 목포일본영사관(사적289호)
은 1900년 러시아 건축가에 의해 완공된 목포 최초의 서구식 건물이다. 또한 목포의 근대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되고 큰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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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10월 목포항이 개항되고, 1900년(조선 고종 37년) 에 지어진 일본영사관 건물로 이후 일제강점기 내내 우리민족을
수탈하는 첨병이 되었던 목포시민들이 한과 슬픔을 간직한 처연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건물로 해방 이후 1914년부터 목포
부청사, 1974년부터 목포시립도서관, 1990년부터 2009년까지 목포 문화원으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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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개항이 되어 일제강점기 한국수탈의 기점 역할을 했던 눈물의 도시인 목포는 이난영이 부른 목포의
눈물에 그 한과 슬픔이 그대로 전해오는데 일본영사관의 붉은 벽돌을 바라보면 잘 지어진 건물이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역사를 지닌 아픔까지도 전해지는 것 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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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의 문화재중 유일하게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일본영사관 건물을 들여다보면 건물의 중심부 상단에 일본국화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던 점과 양측 벽면의 상단에 일장기 모형의 벽돌배치, 건물 내부 벽난로에 새겨진 벚꽃문양 등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볼수 있다. 최근 목포문화원이 이전함에 따라 보수 후 역사문화관으로 단장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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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1.daumcdn.net/cfile/blog/120A33424FB51E920F)
비탈 위에 위압적인 자세로 서 있는 목포일본영사관 건물 뒤로 산 밑엔 일제강점기에 노적봉의 뒷자락을 뚫어서 조성한
방공호가 나오는데 일제가 40년대 초 미군 공습에 대비해 파놓은, 82m 길이의 방공호가 있다. 가운데 출입구 외에도 좌
우로 통로가 연결되어 있다. 항공기 공습과 결사항전을 목적으로 조성된 방공호는 독립운동하다 붙잡힌 사람들을 고문
하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와서 아련한 슬픔이 전해온다.
전라남도 목포여행지
구)목포일본영사관 국가사적 제289호
목포시 대의동 2가 1-5
첫댓글 정말 마음 아픈 우리의 과거역사입니다...에잇...쉬퀴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