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은 바람을 만나면 소리가 난다
이운룡
고요한 무욕의 밤이 밝고 참 맑다
이 세상 비워낸 바람 한 점
풍경 속으로 가볍게 몸 밀어 넣자
어깨를 툭 부딪치곤
슬픈 청상의 절개가 흔들리더니
무심을 깨우려는 듯 쨍그렁 쨍그렁......
저 눈부신 해탈의 풍경 소리가
산의 뿌리까지 흔들어 씻어 낸다
바람을 만나니 산이 마음이
소리만 남아서 흔들린다
절정의 손을 풀자
뜨끔, 어둠이 깨지는 수줍은 농월
이 산사
풍경도 소리를 만나면 소리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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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는 이운용 선생님이라고 했었는데 나중에 이운룡 선생님으로 바꾸어 쓰셨습니다. 이운룡 선생님의 시비 제막식이 3월 29일 3시에 마이산탑사에서 거행된다는 소식이 왔습니다. 가겠다고 답신을 올렸습니다. 이운룡 선생님은 열정적이고 불가능이란 없을 것으로 여겨질 만큼 열심히 살아오신 분입니다. 나와는 같은 교무실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이고 같은 국어과, 시를 쓰는 사람,같은 현대문학의 추천 등 공통점이 많습니다.
국어과 교사들은 한 달에 한 번씩 돌려가면서 집에서 저녁 식사를 했었습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이운룡 선생님 댁으로 갔을 때 부인은 키가 크고 날씬했는데 남원 사람으로 음식 솜씨가 매우 훌륭했습니다. 여교사들은 장난삼아 이 선생님의 도시락 반찬을 빼앗아 먹기도 했습니다. 이 선생님이,
“그분이 직접 만드신 것이어요.”라고 말해서 놀리기도 했습니다. 언젠가는 진안의 어머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고향으로 내려갔다가 이틀만에 돌아오셨습니다. 가보니 돌아가지 않으셨는데 이상하게 연락이 잘못 됐다면서 진안에서 만든 떡을 교무실 책상마다 돌리셨습니다. 나와는 특히 가까웠습니다. 부인이 심장병으로 앓으실 때 미국에서까지 의료 장비와 약을 공수하여 살리려고 했지만 되지 않았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 재혼한 후에 만나 식사하면서 이운룡 선생님이 말씀하셨지요.
“재혼한 사람 중에 불행한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매우 잘했나 봐요. 죽은 아내와 생년월일도 같고...무엇보다도 애들이 잘못하면, 진심으로 엄격하게 나무라줘서 고마워요.”
재혼한 부인은 한번 결혼에 실패한 사람인데 아이를 낳지 못해서 갈라셨다면서 그래서 더 끌렸다고 했습니다.
그는 김현승 시인의 추천을 받았습니다. 전주에서 많은 문학지망생들을 모아 문학강의를 하였고 제자로 육성했습니다. 이번 시비 제막식도 그들이 앞장서서 주선하고 있다니 얼마나 보기 좋은지...
그는 후에 문학평론가로 등단하여 평론을 많이 쓰기 시작했습니다. 내 생각으로는 평론 이전의 시가 훨씬 나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평론가 이후의 시는 그의 감각성이 무디어졌다는 평을 받습니다.
“이 선생님, 평론을 쓰니까 참 편해요. 누가 잘못 썼다고 트집을 잡을까 어쩔까, 아주 편해서 좋아요.”하면서 웃었습니다.
<풍경은 바람을 만나면 소리가 난다>에서 풍경에는 風景과 風磬이 있습니다. 풍경(風景)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경치, 한가로운 전원의 모습입니다. 풍경이 아름답다고 할 때의 풍경이지요. 풍경(風磬)은 처마 끝에 매달아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어 소리가 나게 한 작은 종 모양의 경쇠이며 사찰에서 볼수 있습니다. 풍령(風鈴)이라고도 합니다. 여기서는 경치가 아니라 풍경(風磬), 즉 소리를 내는 종인데 얼른 접근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성불사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소리”의 그 풍경입니다.
“저 눈부신 해탈의 풍경 소리가/산의 뿌리까지 흔들어 씻어 낸다” 산사의 고요를 지키는 풍경은 바람을 만나면 이따금 소리를 내서 어둠을 깨고 산의 뿌리까지 흔들어 잡스러운 생각까지도 씻어내는 풍경소리. 아래 아이리스님의 짧은 감상문을 읽으면 매우 적절하한 이해의 감상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운룡 시인이 자신의 호를 따서 <중산문학상>을 제정하고 거기 자식들도 협력하여 오랫동안 상을 주고 있는데, 2016년에는 내게 그 상을 주겠다고 연락이 와서 2016년 9월 30일까지 지중해 크로아티아 크루즈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자마자 급히 10월 1일 전주로 가서 받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때 사진을 보았더니 아이리스님이 바로 곁에 계시네요.
첫댓글 선생님! 저는 예전부터 익히 들어서 선생님을 잘 알고 있었지만 중산문학상 수상하시는 날 처음 뵌 것 같습니다.
일부러 곁에 다가가 추근덕거리며 사진이라도 한 장 찍을까~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후 기픈시 동인으로 배환봉선생님이랑 군산 분들과 친하시다하여 무주로 모셨고요. 감사합니다.
저도 이운룡 선생님의 시비 세우는 그날 마이산에 기념식장에 갈 것입니다. 연락 드라겠습니다.
논평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