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침한 역사의 그늘 속으로 걸어올라가는 계단은
시기쇼아라 역사지구 (Historic Centre of Sighisoara )이다.
중앙 루마니아의 고대 요새 도시이다.
흡혈귀 드라큘라가 태어난 곳이다. 그러니까 천 이백년전, 850년 이후 거의 사라져 버린 유럽문명의 실체를 증명 해 주는 유적으로, 마을 거의 전체가 UNESCO 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되어 있다. 원래 '중세 대장장이 들의 도시'라고 한다.
음침하면서도 오래된 역사 전통을 가진 루마니아 하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부조리극을 창시한 극작가 유진 이오네스코(Eugene Ionesco(1912-94)의 '대머리 여가수'와 작가 게오르규의 '25시' 소설 생각이 난다.
루마니아 Romania
루마니아(Romania)
마차들이, 빨리 달리는 차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그 차 안에서는 사람들이 핸드폰으로 돈얘기를 한다. 농부들은 중세풍 농가 뒷뜰에 있는 접시 모양 위성 안테나를 통해 배이와치(Baywatch)를 시청하며... 루마니아는 스스로를 깨고, 차우셰스쿠 시대(Ceausescu era)의 흔적에서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벗어나가고 있다.
그러한 변화과정이 쉽지는 않으며, 때로는 매우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아름다운 풍경이 있고 돈이면 뭐든 되고, 옷은 알마니(Armani)를 입는 성장 속으로 급격히 내닫고 있는 가운데, 아직도 나라의 일부는 뒤쳐져 있다. 그러나 1996년 신공산주의 정부가 국민투표로 밀려나고 순수한 개혁을 표방하는 당이 정권을 잡아, 나라는 희망을 잃지 않게 되었다.루마니아에는 웅장한 성, 중세풍 마을, 훌륭한 하이킹코스와 야생동식물, 그리고 드러나지 않았던, 이전 동구권 지역에서의 값싼 스키장이 많이 있다. 또한, 유럽에서 가장 가난하긴 하지만, 루마니아인들은 다른 관광지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여행객 상대의 사기에는 재주가 없는 사람들이다. 루마니아가 어떻게 다른지 몸소 체험하겠지만, 루마니아도 다른 서유럽국가와 같은 꿈을 쫓고 있음을 확실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부카레스트(Bucharest)
전설속 시조인 부커라는 목동의 이름을 딴 루마니아의 수도, 부카레스트는 카르파티아 기슭과 다뉴브 강 사이에 있는 왈라키아(Wallachia) 평원에 위치한다.1930년대에는 '동유럽의 파리'라고도 불려졌으나, 지진, 제2차 세계대전, 차우셰스쿠(Ceausescu)로 인해 전쟁전의 아름다움을 많이 잃었다. 1980년대 차우셰스쿠는 시 회관을 짓기 위해 역사적인 남부 부카레스트의 7000여개 집과 15개 교회들을 불도저로 밀어버렸다.
그 지역 사람들이 '차우시마'(Ceausima)라고 부르는 12층짜리 인문 궁전은 세계에서 가장 큰 빌딩을 지으려 시도한 것이었으나, 사실은 미국 팬타곤(Pentagon)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빌딩이었다. 이것이 완성될 즈음에 처형된 차우셰스쿠는 이곳에 대통령 집무실, 중앙 위원회, 그외 모든 정부부처를 만들려고 했었다. 일리에스쿠(Iliescu)정부는 이 거대한 건물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몰랐다. - 많은 사람들은 철거하기를 원했다- 그러다가 1994년 이곳을 의회와, 국제 회의장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가이드 투어가 있어, 내부 천 개의 방과, 멋진 외관을 감상할 수 있다. 옛 정취를 느끼고 싶다면, 아름답게 보존된 프레스코화가 있는 16세기 구법정(Old Court) 교회를 보러 부카레스트 시내로 가보자. 조지 에네스쿠(George Enescu) 박물관에는 음악가들의 작품과 개인 소장품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그곳에 가면 루마니아에서 정말 오래된 에스니 팔레스(Athenee Palace) 호텔이 있는데, 20세기 초 타락의 본거지이자, 발칸 3부작에 나오는, 올리비아 매닝(Olivia Manning)의 인물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5000만 달러의 수리를 거친 이 곳은, 루마니아에서 가장 고전적이며 가장 비싼 호텔이다.
부카레스트 서쪽으로는 차우셰스쿠가 잠들어 있는 겐시아(Ghencea) 시민 묘지가 있다.
니콜라이의 무덤은 꽃과 초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지만, 엘레나의 것은 그들의 폐위를 아직도 슬퍼하는 사람들로 인해 그러한 겉치레는 없다. 그들의 아들 니쿠(Nicu) 역시 옆에 잠들어 있다(트란실바니아의 보스, 술고래, 바람둥이이자, 한때는 체조선수 나디아 코마네치의 연인이었던...).
부카레스트에는 민박, 대학기숙사, 호스텔과 호텔등 다양한 종류의 숙박시설이 있다. 주로 시내중심이나 주요 기차역(북역(Gara de Nord))부근에 많이 있다. 부카레스트에는 세계적인 음식을 선보이는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비싼 음식점들이 순식간에 밀어닥쳤으나, 시내에서 전통음식을 맛보는 것 또한 어렵지 않다.나이트라이프도 빠질 수 없는 이 도시의 매력으로, 바, 나이트클럽, 연극, 영화 등 다양한 오락거리가 많이 있다.
브라소브(Brasov)
트란실바니아의 푸른 언덕으로 둘러싸인 중세의 섹슨족 마을, 브라소브는 루마니아 최고의 관광지 중 하나이다. 이곳은 차우셰스쿠 통치에 반대한 시민들의 봉기가 처음으로 발생한 곳이다. - 1987년 임금삭감, 긴 노동시간, 식량배급 등에 불만을 품은 수천명의 노동자들이 기본 식량의 확보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이에 차우셰스쿠는 군대를 동원하고(3명 사망), 배급을 더 많이 줄이는 것으로 대응했다. 브라소브 최고의 볼거리는, 1689년 화재로 검게 타버린 외관 때문에 이름지어진 '검은 교회(Black Church)'로, 비엔나와 이스탄불지역 내에 있는 것 중에서는 가장 큰 고딕교회로 알려져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근교를 여행하기 위해 브라소브로 온다. 가장 매력적인 장소는 '드라큘라 성'으로 알려진 브란성(Bran Castle)이며, 브라소브 남쪽, 30km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유명한 전설에도 불구하고 동화스러운 탑과 흰 벽을 가진 이 성은 블라드 테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 뿐더러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 사람들은 덜 붐비지만, 더 드라마틱한 라스노브(Rasnov Castle)성이 브라소브에서 브란 성으로 가는 길에 있다.포이아나 브라소브(Poiana Brasov)와 시나이아(Sinaia) 스키 리조트는 브라소브에서 버스나 기차로 쉽게 갈 수 있다.많은 국내, 국제 노선 버스들이 브라소브를 거친다.
부코비나의 수도원들은 세계 최초로, 외부를 프레스코화로 치장했다. 16세기에 만들어진 이 프레스코화들은 종교예술의 범주를 넘어, 종교적 메시지뿐 아니라, 정치적인 메시지까지 전한다. 유리와 나무에 그려진 전통적인 농민 예술품들은 17세기 이후 루마니아 전역에 퍼졌으며 오늘날에도 보편적인 예술의 형태이다.
루마니아 문학은 핍박받으며 살아온 식민국으로서의 치열한 역사와 함께 그 나라의 풍부한 전통 문화 유산을 표현했다. 15세기에 구전 서사시가 출현했으며, 루마니아어로 쓰여진 작품은 1420년경 나타나게 된다. 현대문학은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나타났다. 1947년 이후 문학은 공산주의의 도구가 되었다. 1990년 이래로 공산주의 시절의 공포를 증언하는 많은 작품들이 출판되었다. 민속 음악과 춤은 루마니아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아왔다. 둥그렇게, 반원으로, 혹은 한 줄로 추는 커플춤이 있다. 현대 집시음악이 이것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직업적인 집시 음악가들은 마을 관객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연주했다. 루마니아어는 라틴어에서 파생된 다른 어떤 언어보다도 정통 라틴어에 가까우며, 라틴어의 문법적 구성이나 기본 어족이 잘 유지되어 있다. 그러므로,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를 하는 사람들은 루마니아 구어는 잘 이해할 수 없지만, 문어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루마니아어는 음성학적이기 때문에 일단 몇가지 주요 규칙을 배우고 나면 발음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후네도아라주 성은 루마니아에서 가장 큰 고딕 스타일의 성이다. 루마니아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트란실비아의 이 성은 14 세기 중반 세워졌다. 브람 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Dracula)"의 첫 장 제목도 트란실비라로의 여행이라고 이 성에서 시작된다. 지금도 수많은 요괴(뱀파이어)들이 산다고 한다.
루마니아는, 로마 카톨릭교의 영향을 받지 않고 로망스어(라틴계통의 언어)를 가진 유일한 국가이다. 루마니아 인구의 86%는 로마 정교이고, 5%는 로마 카톨릭, 3.5%는 신교, 1%는 그리스카톨릭, 0.3%는 회교, 02%는 유대교이다. 교회가 앞장 서 정부에 대항했던 다른 과거 공산국과는 달리, 로마 정교는 정부를 추종했으며, 그 도구 역할을 했다. 오늘날 대사제가 이끄는 로마 정교는 계율을 잘 지키며 부유하다.
루마니아인들은 매우 친절하며, 집으로 초대하는 경우는 정성껏 대접하고 그 보답으로, 우정 외엔 아무 것도 바라는 것이 없다. 그러니 그런 경우 뿌리치지 말자! 먹는 낙으로 사는 사람이라면 루마니아는 좀 재미없는 곳이다. 음식점에서는 똑같은 음식만 내놓는데; 구운 돼지고기, 돼지 간, 구운 닭고기, 엉터리 수프에 느끼한 감자 등등등.....
루마니아에서 가장 훌륭한 요리는, 옥수수 가루로 딱딱하게 혹은 부드럽게 만든 음식인 마마그리가(mamagliga)로ㅡ, 끓이거나, 굽거나 튀겨져 나온다. 대부분의 루마니아 가정에서는 이것이 주 요리이다. 또 다른 루마니아의 주 요리로는 치오르바(ciorba)라는 스프가 있다. 단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전형적인 디저트인 플라친타 (파이), 클라리테(크레페), 사라일레(시럽을 묻힌 아몬드 케잌)등을 먹어보자. 루마니아의 와인은 싸고 맛도 좋다. 투이차 (자두 브랜디), 파린차(투이차와 같이 세 번 증류한)는 식사를 시작할 때 먹는, 자극적인 주류이다.노록(건배)! 어디서든 마실 수 있는 인스턴트 커피종류의 음료는 피하고, 찻잔 바닥에 커피 가루가 그대로 남아있는 터키식의 진짜 커피인, 까페 나투랄라(Naturala)에 설탕을 한스푼 듬뿍 타서 마셔보자!
루마니아 역사 박물관
챠우세스쿠는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에 대한 소련의 '개입'을 비난하였고, 이로 인해 서방세계로부터 칭송과 경제적 원조를 얻었다. 그는 외교술에 능한 반면 국내 정치에 있어서는 무능했다. 그의 거창한 대부분 사업들은(다뉴브-흑해간 '죽음'의 운하 건설, 부카레스트의 거대한 인민 궁전, 그리고 조직화등)비싼 대가를 치룬 실패작이었다. 그의 비밀 경찰들은 사람들을 감시했고, 거대한 밀고자망을 조직했다.
1980년대 후반, 미하일 고르바쵸프의 등장으로 미국은 더 이상 루마니아를 필요로 하지 않았고, '가장 친애하는 국가'로서의 위치를 철회했다. 차우셰스쿠는 불어나는 국가 채무를 갚아나가기 위해 루마니아의 식량을 수출하기로 결심했고, 차우셰스쿠와 그의 아내 앨레나(그의 제일 국무총리)가 호의호식하는 동안 국민들은 근근히 삶을 이어갔다. 빵, 계란, 밀가로, 기름, 소금, 설탕, 고기, 감자 등은 배급되었다. 1980년대 중반까지 고기는 구할 수 없는 음식이었다.
1987년 브라소브(Brasov)에서의 항의 폭동은 일단 진압되었다. 그러나, 1989년 12월 15일, 동유럽에서 공산주의 국가들이 하나하나 붕괴되면서, 라즐로 토케목사(Father Laszlo Tokes)는 그의 티미소아라(Timisoara)교회에서 차우셰스쿠에 반대하는 발언을 하였고, 그날 저녁 그의 집 앞에는, 토케목사의 지위를 박탈하려는 루마니아 개혁교회의 결정에 항의하는 군중들이 모여들었다. 시위자들과, 경찰, 군대의 충돌은 그후 4일간 계속되었다. 12월 19일 군대는 시위자들 편에 가담하였고, 12월 21일 부카레스트 노동자들은 대규모 집회에서 차우셰스쿠에 대한 야유를 퍼붓는 등, 군대와 경찰, 민중들간의 충돌이 수도에서도 시작되었다. 다음날 차우셰스쿠는 루마니아에서 도망치다 붙잡혀, 시민 재판에 회부되었고, 크리스마스 날, 사형집행부대에 의해 처형당했다.
차우셰스쿠가 처형된 후 루마니아 정부를 이어받은 구국전선은, 이전 몇 달간 체제 전복을 계획해 왔었으나 1989년 12월 데모로 그 계획이 앞당겨진 것으로 알려진다. 처음에 과도정부로 시작했던 정부는, 아이온 일리에스쿠(Ion Iliescu.) 지도하에 1990년 힘을 얻게 되었다. 과거 공산정권 지도자들에 대항하는 학생 시위대들은, 폭동 진압을 위해 쥬 탄광(Jiu Valley)에서 데려 온 20,000 광부들에 의해 진압되었다. 광부들은 1년 후, 개혁성향을 띤 페트로 로만(Petre Roman) 수상을 사임시키기 위해 다시 한번 부카레스트로 불려진다. 일리에스쿠와 구국전선은 1992년 재선되었으나, 치솟는 물가, 실업, 정부부패 등으로 인해 1996년 일리에스쿠가 물러나고, 대신 개혁 성향의 루마니아 민주 대표자회의(Democratic Convention of Romania) 지도자, 에밀 콘스탄티누스(Emil Constantinescu)가 선출되었다.
당선된 후 그는, 물가 안정, 사회복지 증진, 소수 민족들간의 불만 완화에 노력했고, 헝가리와의 관계 개선에도 힘을 쏟았다. 무엇보다도 그의 가장 중요한 성과는 루마니아인들에게 희망을 주었다는 것이다. 젊은 루마니아인들은 그들의 고향을 떠나기 보다, 약속된 미래로의 기회를 활용하는 쪽을 택했다.
흑해 연안(Black Sea Coast)
스페인에는 베니돔(Benidorm), 호주에는 골드 코스트(Gold Coast)가 있다면, 루마니아에는 태양, 바다, 백사장, 그리고 섹스가 있는 흑해 연안이 있다.루마니아의 가장 큰 항구이자, 두 번째로 큰 도시 콘스탄타(Constanta)는 흑해 연안으로 가는 교통의 요지이며 다른 리조트로 가는 관문이기도 하다. 축구팬이라면, 게오르기 하기(Gheorghe Hagi)의 고향인 이곳을 방문하고 싶어 할 것이다. 해변은 지저분하고 북적대지만 마을자체는 아름답고, 훌륭한 박물관도 있다.
콘스탄타에서 해변을 따라 8km 정도 가면 루마니아 야자수 해변인 마마이아(Mamaia)로 가는데, 이곳에는 27,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61개의 호텔이 있으며, 6월 중순부터 8월까지는 모두 꽉 찬다.쾅쾅거리는 음악을 들으며 인파의 물결인 해변에 누워있고 싶다면, 콘스탄타 남쪽에서 17km 떨어진 에포리 노드(Eforie Nord)로 가보자. 같은 분위기의 또 다른 해변리조트로는, 넵툰-올림프(Neptun-Olimp)와 콘스티네스티(Constinesti)가 있다. 음악이 듣기 싫다면 해변에 누워, 혁명 전까지는 하루의 일과였던, 확성기를 통해 울려 퍼지는 차우셰스쿠의 연설을 듣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술 깨는데는 전혀 도움이 안 되겠지만.여름엔 유럽의 전세기들이 콘스탄타로 많이 오며, 이스탄불에서는 페리로도 올 수 있다.버스는 콘스탄타와 다른 흑해지역 마을간을 운행하며, 콘스탄타에는 특히 버스와 기차편이 잘 되어 있다.
루마니아여행에서 가장 큰 경비는 숙박비일 것이다.
부카레스트(Bucharest)에는 저렴한 숙소가 흔치 않다. 시 중심가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대부분 호텔은, 더블룸, 공동화장실을 기준으로, 적어도 25달러는 지불해야 한다. 지방에서의 민박은 아침식사를 포함해 10달러 정도부터 구할 수 있다.외식 비용은 비싸지는 추세이다. - 루마니아인들은 외식할 형편이 되지 않아 대부분 식당들이 돈많은 외국인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부카레스트에서는 알콜 음료를 포함하지 않더라도 1인당 5달러 이하로 식사하기가 무척 힘들다. 수도지역 이외에서는 음식값이 조금 싼 편이고, 질 좋은 루마니아 와인 한 병은 1달러50정도면 살 수 있다. 영화나 연극관람은 1달러, 박물관 입장료는 20센트정도이다.
대중교통은 서유럽 국가에 비하면 싸다. 1.7달러 정도면 버스로 대략 100km 정도, 또는 편안한 고속 기차를 이용할 수 있다. 휘발유는 리터당 40센트 정도이다. 여행자 수표는 환전하기 쉽지만, 잃어버린 것을 재발급 받기는 쉽지 않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만이 부카레스트에 사무실을 두고 있어, 재발급이 가능하다. 비자/마스터 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현금 자동 지급기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호텔, 음식점, 상점등에서는 크레디트 카드를 사용할 수 있다. 차를 렌트할 때도 신용카드가 유용하다. 아니면 미리 돈을 다 지불해야 하므로. 낙서가 되 있거나, 찢어지거나, 너무 오래된 여행자수표는 환전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니 어떤 돈을 가지고 있건 잘 보관해 둘 것. 루마니아에서는 팁을 주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지만, 500레이 정도까지는 반올림하는 것이 좋다. 벼룩시장에서는 흔치는 않지만, 물물교환이 이루어진다. 택시 운전사들이 가끔 바가지를 씌우는 수도 있으니 항상 흥정하는 것을 잊지말자.
루마니아로가는 길
루마니아 국영 항공사인 타롬(TAROM)이 일주일에 적어도 네 편, 부카레스트와 다른 주요 도시들 간을 운항한다. 불행히도, 항공사는 이중 가격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 외국인에게는 더 비싸다. 편도는 보통 50달러 정도이고, 왕복은 편도의 딱 두 배이다.버스는 무척 싼 반면 무척 느리다. 200km 가는 데 약 2.5달러 정도이지만 자주 없고, 대부분 노선은 하루 1회 내지 2회 정도만 운행된다. 버스는 일반적으로 근교 마을이나 더 외진 시골에서만 이용된다.
그래서 기차가 루마니아를 여행하는데 가장 보편적인 수단이 되었다. 기차는 국내 대부분 지역을 자주 운행하고 있다.다섯가지 유형의 기차가 있는데; 페르소네(personae)는 아주 느리며 문을 열고 운행하므로 승객들은 기차가 움직이는 도중 뛰어 오르거나 내릴수 있다. 다음 엑셀러레(accelerat)는 좀 더 빠르지만 더 비싼 반면 덜 붐빈다. 다음 레피드 엔 익스프레(rapid and expres)는 꽤 빠르고 국내는 물론 국제 노선도 있다.; 그리고 인터 씨티(inter-city)는, 페르소네를 제외한 다른 기차들보다 빠르진 않다 그러나 다른 것에 비해 두 배는 비싸고, 두 배는 편안하다. 좌석 예약은 필수이며(페르소네 제외) 예약비는 요금에 포함되어 있다.
대부분 루마니아의 도로는 길들이 울퉁불퉁 아주 험하므로, 사륜구동이 적합하다.색다른 모험을 좋아한다면, 건초더미, 소와 돼지, 술주정뱅이, 뛰노는 아이들로 가득 차 있는마차를 타 보는 것이다. 또 다른 것으로는, 자전거 여행이 있는데, 극기훈련이나 산악자전거 못지 않은 울퉁불퉁, 굴곡이 심한 길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다뉴브 삼각주를 가려면 보트를 타야만 한다. 대부분의 루마니아 도시에는 시내 버스, 트램, 트롤리 버스가 있으며 지하철은 부카레스트에만 있다. 모든 지역에 택시가 있긴 하지만, 외국인에게는 더 비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