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남의 「분홍색은 아프다」감상 / 장석주
분홍색은 아프다
박정남(1951~ )
작은 분홍색 알약을 먹는 가을 아침에
분홍색은 아프다
분홍색 하늘을 나는 나비들이 하나둘
자개처럼 쪼개지며 날개를
파닥이고 있다
아득히 하늘에 떠 있다
가을에 분홍색은 구석으로 구석으로
몰리고 있다
대빗자루로 쓸어간 가을의
그 넓은 뜰에는 분홍 꽃잎 한 장
떨어져 있지 않다
쇠약해진 분홍색들이
병원에 가니 푸른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누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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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색 알약을 먹는 사람에게는 분홍색 알약을 먹는 기분이 있을 테다. 심상한 기분으로 가을 아침을 맞는 건강한 사람과는 사뭇 다른 기분이겠지. 하늘은 높고 청량한데, 그 하늘 아래서 나비들이 “자개처럼 쪼개지며” 날개를 파닥인다. 찰나 속에서 날개를 파닥이는 일이 곧 나비의 삶이다. 아프면 아픈 대로, 의욕이 없으면 없는 대로 우리는 파닥이며 살아간다. 천지간에 청량함이 물들며 번지는 이런 가을날 아침, 몸이 아파 분홍색 알약을 삼키는 사람의 슬픔을 가만히 짚어본다.
장석주(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