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피곤 앨범을 내기까지....
내가 그레이형이랑 친하게 된건 타밴 모임에서였다.
사실 그 전까진 그냥저냥 서로 누구님 누구님 그러면서 데면데면한 사이였는데,
술 마시고 색드립, 음담패설 하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그 과정에서 내가 그레이형에게 <형님 말 놓으세요> 그러면서 격의 없이 친하게
되었다.
머 맨 첨엔 색드립 치다가 자연스럽게 음악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레이형은 내가 활동하고있는 독 타이어드라는 그룹에 대해서 자세하게 물어보았고, 나는 아는대로 소상하게 털어놓았다.
그 시절 개피곤은 다른 팀과 외교적인 문제로 여타 클럽에서 공연을 못하고 있는 사면초가의 상황이었다.
매주 합주만 하고, 공연은 할 수 없는 뭐 그런 시추에이션이었는데,
그레이형이 갑자기 미션을 주었다.
<야 너 다겸이네 가게에서 공연 함 해봐라>
헐~
이건 진짜 미션 임포시발이었다.
다겸 카페는 말 그대로 그냥 카페다.
먼 락 공연은 꿈도 꿀 수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난 그때 운명의 종소리가 크게 울리는걸 느꼈다.
아 이 공연은 무조건 해야 한다는걸....
카페에서 제대로 된 밴드 공연은 불가능했고, 내 주위에 있는 뮤지션들 또한 거기
서 공연 하는건 홍대 클럽에서 꽹가리 치는거랑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다 뜯어 말렸다.
하지만,
난 그레이형의 제안을 거부할 수 없었고, 이 공연을 꼭 성사시켜야만 했다.
원래는 개피곤으로 하려고 했는데, 사운드 시스템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록 공연은 할 수 없다고 일언지하에 거절 당했다.
결국,
나는 다른 밴드와 함께 이 공연을 성사시켜야만 했다.
그러다가 문득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80년대에 TV 출연해서 핑거싱크로 공연했던 수많은 선배들이 생각났다.
요즘에야 락 밴드들이 방송에서 립 싱크 하면 저게 무슨 락커냐구 다 욕했지만,
그 시절에는 레드 제플린, 딥 퍼플, 아이언 메이든, 주다스 프리스트 심지어 베놈
같은 팀들도 다 립씽크했다.
물론 싱어는 노래를 했지만서리~
암튼,
나는 주위에 있는 수많은 동료 후배들에게 아이디어를 제안했고,
눈 딱 감고 한번만 이 공연을 하자고 했는데,
다들 나를 겁나 개무시했고 개조롱했다.
늙어서 미쳤나고? 그런 개같은 삽질을 왜 하냐고? 돌은거 아냐?
모 이런 개같은 반응이 대세였다.
하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결국,
마지막으로 연락한 사람이 <공공의 적>의 예전 멤버들....
내가 사실 개피곤 들어오기 전까지 6개월 이상 한 팀이 거의 없었는데,
공공의 적은 무려 10년 가까이 했다.
역시나,
공공의 적은 의리가 있었다.
뭐 좀 나의 의견(립싱크질)을 엉뚱하고 괴의하겐 생각했지만,
그래도 형님을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와!!
진짜 그때 너무 고마워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
드디어 공연 당일날....
예전 주혹새에서 쓰던 피에이 스피커를 오랫만에 꺼내 다겸 카페까지 운반했고,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립싱크쇼를 했다.
사실 그 날 컨디션이 별루 좋치 않아 보컬도 걍 립싱크로 해버릴까 생각두 했는데,
아 그건 너무 개사기인것 같아 걍 노래는 불렀다.
개피곤 곡들과는 달리 고음 팡팡 터지는 80년대 정통 메탈 곡들이기에 목 아파 뒈지는줄 알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지만 그 날 난 무지 성심성의껏 불렀다.
먼 오디션 보는 기분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행히 사람들도 많이 왔구, 호응도 좋구, 재밌었다.
무엇보다 공연을 주최하신 그레이 형님이 만족하시는것 같길래,
아주 기분이 좋았다.
공연 끝나고 회식 자리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레이 형이 내게 말했다.
"야 오늘 공연 재밌었다.
다음엔 리얼 밴드가 공연 하는걸 보고 싶다."
아....
진짜
그때 감동이었다.
마치 수렁에 빠져 있다가 어느 누군가 건네는 손을 잡는 그런 기분이었다.
그로부터 2개월후 미아리에서 현그룹인 개피곤으로 공연을 했다.
머 그때두 겁나 열심히 했지.
3월 노크 공연 이후 거의 1년 만에 하는 거였는데, 신곡 두 곡까지 더 해서 아주 기분 째졌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생각해보면 내가 개피곤 가입후 그 날처럼 미친듯이 부른 적은 없었다.
공연 끝나구 뒷풀이 자리에서...
그레이 형님과 제법 시리어스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레이형은 그 날 개피곤의 공연이 사뭇 맘에 들으셨는지 이런 말씀을 하셨다.
"만약 너희들의 음악을 음반화 하려면 돈이 어느 정도 드나?"
헐~~~~~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르지 않아 그레이형은 흔쾌히 독 타이어드의 이피 앨범을
지원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아~~~~~
살다보니 이런 일도 다 있구나....
그때 내가 타밴 모임에 나가지 않아서 ,
그레이 형님이랑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지 못했다면,
그리고,
공공의 적과 재회하지 못해 다겸 카페 공연을 실패했다면,
내 인생은 어찌 되었을까?
아마,
지금까지 앨범은 커녕 공연 1도 못하고 매주 합주나 하고 있었겠지....
그때 사람들은 나보구 다 미쳤다고 꽹가리 운운하면서 조롱했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느낄수 있었다.
이 공연은 무조건 성사시켜야만 하는 미션이었다는 것을....
공공의 적, 그레이형 그리고
개피곤의 영광을 위해 미친듯이 달렸던 나님께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첫댓글 공공의 적 멤버들이 진짜 감동적이네요~!!
결코 하기 힘든 일이었을텐데 말입니다.
ㅠㅠㅠㅠㅠㅠ 정말 멋진 Guy 들이죠
형님이 진짜 멋지시네요
정말 멋진 형님이시죠....
두 분 다 멋지시다요!!! ^^
^^
이 한 장의 앨범을 내기까지 정말 갖은 고초와 역경을 겪으셨군요.
훌륭하십니다.
네~ 저의 50대 초반은 수난의 리즈 시절이었네요....
고생 많으셨어요~ 다들 멋지고 대단하세요~~~*^^
감동적이에요!!!
개피곤 만세!!!
세상의 모든 락 관계자들이 다 외면하는 독타 밴드를 그 한분이 구해주신거네요.
정말 멋지십니다~!! -_^
그 형님은 정말 멋지시죠
락 클럽과 락 관계자들, 그리고 다른 락 밴드들이 다 배척을 하는데도 혼자서 꿋꿋이 살아남아 꿈을 실현시키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근데 막상 꿈 실현했는데 달라진거 1도 없고, 그저 그렇네요....
시디는 파는거 같던데 음원은 아직 안나온거죠?
네 맞아요~ 유통 회사랑 체결 중인데.... 이제 막바지 작업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