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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2월12일 오후, 대구 계산동 천주교회. 신랑 박정희와 신부 육영수의 마음은 얼굴빛이 대신해 주었다. 박정희는 신부대기실에 잠깐 들렀다 나온 뒤 인상이 더 굳어졌다. "아버지는 기어이 아니 오신대요." 육영수는 퉁퉁 부은 얼굴로 박정희에게 장인, 육종관의 결혼식 불참소식을 알려주었다. 박정희는 성당 뒤쪽으로 가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 어른 참……." 박정희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며칠 전 기억을 떠올렸다. "아버님, 잘 살겠습니다." "글쎄, 난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군인한테는 내 딸을 못 준데도." "장인어른, 제가 죽기는 왜 죽습니까." "어허, 내가 왜 자네 장인인가." "그러지 마시고, 허락해 주십시오." 육종관은 더 이상 말을 않겠다는 듯 등을 돌리고 앉았다. 박정희도 이번에는 그냥 돌아갈 심산이 아니었다. 박정희는 당돌한 행동을 취했다. 등을 벽에 기댄 채 오른쪽 무릎을 반쯤 세우고는 그 위에 오른팔을 걸쳐놓았다. 박정희는 육종관이 보라는 듯, 지포라이터를 꺼내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했다. 육종관은 딸까닥대는 소리에 뒤돌아보았다. "아니, 자네 그 태도가 뭔가!" 보다 못한 육영수가 박정희의 팔을 이끌었다. "걱정하지 말고 대구로 내려가 계세요. 제가 아버지를 설득해 볼게요." 육종관은 요지부동이었다. 그 사이 결혼식은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이 전쟁통에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군인에게 네 언니를 시집보내고 싶은 게냐. 너나 네 에미나 정신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 너네들 마음대로 해!" 육종관은 자신을 설득하러 온 막내딸 예수를 호통쳤다. 육종관은 그 길로 집을 나가버렸다. 영수는 얼굴빛이 창백해졌다. "인사라도 드리고 가야할 텐데……." 어머니 이경령이 나섰다. "됐다. 네 아버지가 언제 네 결혼 걱정하는 것 보았니. 어서 너희들이나 먼저 가라. 나는 내일 아버지 모시고 갈 테니." 하지만, 이튿날 이경령은 혼자서 대구로 내려왔다. 이경령은 박정희와 육영수를 앞에 앉혀 놓고 입을 뗐다. "자네도 우리집 양반 행실을 잘 알 걸세. 내 이번에 영수를 자네한테 시집보내면서 큰 결심을 했네. 소실 다섯을 들여 한평생 기고만장하게 산 그 양반이 이젠 치가 떨리네. 그만 갈라서기로 했네. 자네가 예수와 나까지 거두시게." "네, 알겠습니다." 박정희는 장모의 손을 꼭 잡고 더 이상 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결혼식 날을 맞이했다. 육영수는 내심 아버지가 결혼식에 참석할 것이란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그래서 결혼식 시간을 오후로 잡은 것이었다. 그런데 막 옥천 고향에서 육종관은 참석하지 않는다는 최후 기별이 도착했다. 결국 결혼식에는 어머니 이경령과 막내 동생 예수만 참석했다. 박정희는 담배꽁초를 발바닥으로 비벼 끄고, 성당으로 들어갔다. 곧 결혼식이 진행됐다. 주례는 허억 대구시장이 맡았다. 결혼식을 전쟁통에 하는데다, 장인과 실랑이를 벌이느라 정작 주례를 만나보지 못했다. 허억 시장이 주례석에 오르자 모닝코트를 입은 박정희가 입장했다. 육영수는 꽃바구니를 든 두 소녀를 앞세우고 박정희의 사범학교 은사 김영기 선생의 손에 이끌려 들어왔다. 허억 시장이 주례사를 시작했다. "신랑 육영수군과 신부 박정희양은……." 졸지에 신랑 신부를 바꿔 버린 것이다. 곧 장내는 한바탕 웃음바다가 됐다. 이 바람에 박정희도, 육영수도 피식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결혼식은 일사천리로 끝났다. 전쟁 중이라 하객은 곧 뿔뿔이 흩어졌다. 박정희는 결혼식 다음날 사단사령부로 출근했다. 신혼살림은 옛 동인호텔 입구에 있던 이정우씨 소유의 사랑채에 차렸다. 방이 세 개였는데, 큰 방은 박정희, 두 번째 방은 이경령과 육영수, 예수 그리고 세 번째 방은 운전병과 부관이 썼다. 육영수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매일아침 따뜻하게 데운 세숫물을 대야에 받쳐 들고 마루에 서 있었다. 박정희는 처음으로 달콤한 가정생활을 맛보게 되었다. |
첫댓글 참 잘 읽었습니다. 근데 저때 결혼당시 박정희의 계급이 무었이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