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5. 1. 큐티
시편 109:21 ~ 31
구원하시는 여호와를 크게 감사 찬송
관찰 :
1) 연약한 나를 구원하소서
- 21절. “그러나 주 여호와여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를 선대하소서 주의 인자하심이 선하시오니 나를 건지소서” => 본 절은 “그러나 주 여호와여”(“וְאַתָּה׀יְהוִהאֲדֹנָי”, 웨앗타 예흐와 아도나이)로 시작합니다.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을 친근하게 부르고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의 종됨과 하나님이 자신의 주인 되심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다윗의 신앙 고백은 하나님의 선대하심을 요청하는 가운데 하나님과 다윗 간의 친밀한 관계를 상기하게 합니다. 다윗이 생각해 볼 때 자신을 하나님의 백성의 통치자로 삼으시고 자신에게 하나님이 이제껏 베풀어 주신 보호와 보존, 축복을 언약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살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다는 것을 하나님께 아뢰며 그러한 자신을 보호해 달라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성호를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런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나를 선대하소서”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주님의 이름을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권능 행함을 간구하는데, 그 이유가 자신의 안녕과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해서 간구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과거에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푸신 인자하심과 그 인자하심의 선하심을 생생하게 기억하며 그것이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과 미래의 삶 가운데서도 지속적으로 베풀어질 것을 믿는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 22절.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여 나의 중심이 상함이니이다” => 다윗은 하나님을 향하여 자신이 가난하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 “가난”은 물질적인 궁핍의 의미 외에도 ‘고난 받는’, ‘환난을 당하는’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경제적인 가난 보다는 고난당하는 상태를 염두에 둔 표현입니다. “궁핍하여”도 경제적인 어려움의 의미보다는 목숨을 연명하기 힘들 만큼 혹독한 고난의 상태에 빠져 있다는 의미를 전잘하고 있습니다.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가난하고 궁핍함으로 인하여 중심이 상한다고 다윗은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 자신의 처지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심각한 것인지를 나타내고자 하는 표현들입니다.
- 23절. “나는 석양 그림자 같이 지나가고 또 메뚜기 같이 불려 가오며” => 다윗의 처지가 이미 석양의 그림자처럼 가버렸고, 메뚜기 같이 불려가버렸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렇게 진행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캄캄한 밤을 앞에 둔 석양과 거센 바람으로 인해 균형을 잡지 못한 채 휩쓸려 가버리는 메뚜기의 이미지를 통해서 자신의 비참한 처지와 자신이 조정하지 못한 채 흘러가는 자신의 처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 24절. “금식하므로 내 무릎이 흔들리고 내 육체는 수척하오며” => 다윗은 이제 자신의 육체적인 연약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무릎이 약해졌다는 것은 단순히 신체적으로 나타나는 현상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으로 인한 다윗의 마음 상태를 포함하는 표현입니다. 다윗이 무릎이 약해진 원인은 금식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대적들의 박해에 직면하여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거나 어떤 결단을 내리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금식을 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금식이 길어졌기 때문에 다윗의 무릎이 약해졌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의 육신이 생명력이 갉아 먹히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 25절. “나는 또 그들의 비방 거리라 그들이 나를 보면 머리를 흔드나이다” => 다윗은 자신의 원수들이 다윗이 금식하여 생명력이 갉아먹히게 된 상황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를 하나님께 아뢰고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원수들의 비방 거리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여러 사람들에게 수치를 당하고 비난을 받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고대 근동에서 머리를 흔드는 것은 경멸이나 조롱의 뜻을 내포하는 몸짓이었습니다. 다윗의 대적자들이 다윗을 보고 노골적으로 경멸과 조롱의 표현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다윗의 대적들은 다윗이 육체적으로 극도로 쇠약해지고 그 힘을 잃게 되자 다윗에게 더 큰 고통과 수치를 안겨주기 위해서 노골적으로 그를 조롱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을 아뢰고 있는 것입니다.
- 26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시며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구원하소서” => “여호와”는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 더불어 언약을 맺은 하나님의 백성들, 하나님의 종들을 보호하시며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변모를 강조할 때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하나님이여”(אֱלֹהָי, 엘로하이)는 창조주로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강조할 때 사용되는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과 자신의 친밀한 관계를 강조하며 이러한 표현을 했습니다. 다윗은 너무나 쇠약해지고 극심한 고통 가운데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구원을 기도합니다. 자신을 짓밟고 조롱하고 비아냥거리는 원수들에 대한 승리를 간구했습니다.
2)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대적들이 알게 하소서
- 27절. “이것이 주의 손이 하신 일인 줄을 그들이 알게 하소서 주 여호와께서 이를 행하셨나이다” => 다윗은 신인동형론적 표현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 그리고 역사를 보다 선명하게 나타내고자 하고 있습니다. 성성경에서 “손”(יָדְךָ, 야데카)은 신체의 일부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상징적 의미로 사용되어 여호와의 ‘능력’, ‘섭리’, 기적‘, ’도우심‘, ’보호‘, ’정벌‘, ’백성을 찾으심‘ 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본 절에서는 ’하나님의 능력, 권세, 섭리‘를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렇기에 본문은 ’원수의 핍박에서 구원받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것임을 대적들에게 밝히 보여주시라는 뜻입니다.
- 28절. “그들은 내게 주저하여도 주는 내게 복을 주소서 그들은 일어날 때에 수치를 당할지라도 주의 종은 즐거워하리이다” => 다윗은 악인들이 자신에게 끊임없이 저주를 가하고 있다는 것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악인들의 저주는 다윗 자신에게 아무런 해를 끼칠 수 없다는 것을 다윗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주는 내게 복을 주소서”를 통해서 알게 되듯이 원수들의 저주는 주님의 복으로 상쇄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원수들이 자신을 저주하고 조롱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자신을 축복하실 것이라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과 이에 대한 확신은 이 말씀에 순종하고 따르는 다윗에게 있어 원수들의 모든 악독한 저주의 화살을 무력화 시킬 수 있는 강력한 방패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의 보호자가 되어 주시는 한 대적의 공격이 아무리 거세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구원을 믿으며 즐거워할 수 있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 29절. “나의 대적들이 욕을 옷 입듯 하게 하시며 자기 수치를 겉옷 같이 입게 하소서” => 다윗은 “욕을 옷 입듯 하게 하시며”, “수치를 겉옷 같이 입게 하소서”라는 같은 의미를 다른 표현으로 반복하는 것을 통해서 기도하는 자의 강한 소원을 드러내고 있으며, 그것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대적들은 반드시 욕을 먹게 되고, 반드시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강조해서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나를 구원하신 여호와께 크게 감사 찬송
- 30절. “내가 입으로 여호와께 크게 감사하며 많은 사람 중에서 찬송하리니” => 다윗은 이제 간구를 멈추고 여호와의 공의의 보응에 대한 확신을 아뢰며 여호와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입으로 여호와께 감사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감사와 찬양을 공개적으로 크게 나타내겠다고 담대히 의지를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행사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자랑하며 간증하겠다는 열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 31절. “그가 궁핍한 자의 오른쪽에 서사 그의 영혼을 심판하려 하는 자들에게 구원하실 것임이로다” => 접속사 “키”(כִּי)를 통하여 30절의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궁핍한 자를 도와 그 영혼을 판단하려 하는 자, 비판하며 정죄하려는 자로부터 구원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오른편에 서서 구원을 베푸실 것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편”은 ‘권능의 능력을 행하사는 곳’, ‘보호가 곧 베풀어지는 곳’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가르침 :
1) 다윗은 자신의 연약함을 가감없이 고백하고 드러내고 있습니다. 대적들이 있지만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기에 자신의 상태를 아뢰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적들을 저주하는 시의 내용에서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하고 있다는 것이 다윗이 얼마나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2)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을 구원하셨다는 것을 모든 이들이 알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양을 올리고 있습니다. 다윗은 진정 자신의 삶의 모든 내용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배하고자 하는 진정한 예배자였습니다.
3) 본 시편은 시편 전체 중에 세 편 나오는 저주시들(58, 109, 137편) 가운데 한 편입니다. 본 시편은 저주시 답게 원수들에 대한 고발로 시작해서 많은 분량을 원수들에 대한 철저한 저주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철저한 저주를 간구하는 것으로 볼 때 다윗이 극도의 인간적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라는 것과 육체적 한계와 심리적 허탈감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다윗이 사사로이 복수하고자 저주의 시편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윗이 자신을 배반하고 괴롭힌 원수들을 저주한 것은 사실이나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공의를 어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다윗은 하나님의 공의가 이 땅에 바로 실현되기를 바라는 심정에서 원수들에게 저주가 임하기를 간구했던 것입니다. 다윗의 기도의 정당성은 역사상 다윗의 원수들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으로 죽어간 것을 통해서 확인하게 됩니다.
적용 :
1) 개인적인 분노로 저주하지 않겠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나는 것을 위해서 악인의 심판을 간구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분이심을 언제나 잊지 않겠습니다.
2)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렇기에 원수를 사랑할 수 있기를 언제나 소망합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는 악인에게 그냥 용서하는 것은 그에게 면죄부를 주게 되어 다른 사람을 상하게 하는 결과에 동참하게 되는 일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원수의 회개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리고 회개하는 자를 용서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나게 될 것을 간구드립니다.
3) 이 모든 과정을 통하여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될 것을 간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