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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한다는 사실 뿐이다.” 이는 고대 중국 철학 중 ‘역易’의 철학 사상의 기본 전제들이다. ‘역’이란 말이 곧 ‘변화’의 뜻이다. 그 ‘역’의 사상을 말하는 고대 중국의 대표 문헌이면서 그중 현존하는 문헌이 『주역周易』이다.
『주역』에서 말하는 변화는 당연히 현상계의 변화이며, 이 변화는 아무렇게나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현상계 변화 이면의 어떤 원리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본다. 그 원리는 아주 소박하고 간단한 것이다. 그것은 ‘짝[대對]’을 이루며 겨루는, 즉 대립對立되는 두 힘의 상호 작용, 상호 투쟁, 상호 조화에 의해 이루어진다. 『주역』의 사상에서는 이 두 힘을 ‘음陰’과 ‘양陽’으로 개념화한다. 그래서 이 음양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작용, 투쟁, 조화에서 변화가 생기며, 이것은 서양철학 중 변증법에서 말하는 ‘정正’과 ‘반反’의 두 힘을 지양止揚하여 이루는 ‘합合’의 작용에 비교되기도 한다.
『주역』을 비롯한 ‘역’을 말한 고대 사상가들은 경험적 현상세계에서 이에 관한 이치를 얻었다. 그것은 ‘빛’과 ‘어둠(그늘)’의 두 현상에서 출발한다. ‘양陽’과 ‘음陰’의 두 글자가 곧 ‘부阜=부阝’ 즉 ‘언덕’, ‘산’의 밝은 쪽과 어두운 쪽(즉 그늘)에서 유래한 것이다. ‘역’의 사상은, 세상의 변화란 ‘빛’과 ‘어둠’의 두 세력이 서로 밀어내면서 투쟁하기도 조화하기도 하면서 이루어진다고 본다.
『주역』 문헌에 관한 최초의 철학적 해설서 중 하나인 「계사전繫辭傳」에서는 “낮과 밤이 서로 밀어내면서 하루가 생기고, 추위와 더위가 서로 밀어내면서 한 해가 생긴다.”고 하면서, 변화를 이루는 두 힘의 예를 경험적 자연 현상으로써 소박하게 말하였다. 이러한 낮과 밤, 더위와 추위가 양과 음의 예이며, 현상계의 일체 현상이 이처럼 양과 음의 ‘짝’으로 변화를 이루는 것이다.
짝을 이룬 현상을 더 세분해 보면, 한 해의 더위와 추위를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예처럼 넷으로 나누어 볼 수 있고, 더 세분해 여덟으로 볼 때 그러한 범주를 8괘卦, 다시 더 세분을 거듭해 64괘卦에 이른다. 이것이 곧 『주역』이 현상계의 짝을 이룬 각 현상을 64가지 변화 국면으로 설명하는 바의 범주이다. 『주역』이라는 문헌은 이 64괘로 묘사되는 64가지 변화 패턴을 기호화하고 그것을 언어로 설명한 것이다. 이것은 자연 현상의 변화, 나아가 인간 세상 현상의 변화를 설명하는 수단이다.
오늘날에는 이견이 있게 되었지만, 만일 전통적 견해에 따를 경우 『주역』의 저자로 알려진 주周 문왕文王은 자신이 주周라는 지방 정부의 제후인 상황에서 중앙 정부의 임금인 상商(은殷)의 주왕紂王의 탄압으로 유리羑里라는 지역에 유폐되어 있으면서, 자연 현상 변화의 설명 원리를 인간 세상의 변화, 특히 정치 현상에 적용하였다. 다만 직설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비유와 상징의 언어에 감추어 두었다. 이 『주역』의 저자는 64괘를 의도된 스토리에 따라 배열하여, 그 속에 자연의 변화 원리를 응용하여 연역한 세상의 변화 원리를 함축해 넣었다.
먼저 ‘건괘乾卦䷀’와 ‘곤괘坤卦䷁’로 상징되는 변화의 기본틀이 성립되고, 그로부터 ‘준괘屯卦䷂’, ‘몽괘蒙卦䷃’, ‘수괘需卦䷄’, ‘송괘訟卦䷅’, ‘사괘師卦䷆’로 이어지는데, 이는 ‘건괘’와 ‘곤괘’의 양과 음의 기운이 상호 작용하면서 전개되는 변화 과정으로서, 『주역』의 저자는 그 과정을 연속되는 긴 이야기로 엮어 갔다. 그리고는 그 과정 말미를 이러한 변화 과정이 모두 종결되는 ‘기제괘旣濟卦䷾’로 끝맺는 듯하다가, 변화란 끝없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며 ‘미제괘未濟卦䷿’로 마무리하여, 현상세계의 영원무궁의 변화과정을 말한다. 필자는 이러한 『주역』 텍스트의 괘 순서에 따른 스토리를 세상사에 빗대어 해석하여, 『주역 속 세상, 세상 속 주역』(교학도서, 2021)이라는 책을 낸 바 있다.
이 모든 것이 음양의 기운이 상호 교차되면서 벌어지는 것인데, 그 안에 그 변화의 기본축이 있음을 말하는 사상이 역易에 관한 학문인 역학易學에 있다. 그것은 64괘 중 중심이 되는 주요 괘들이 있다는 것인데, 앞서 말한 바, 추위와 더위가 구성하는 일년을 더 세분하면 사계절이 되고, 이를 더 세분하면 12개월이 된다는 데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이것에 상응하는 12개의 괘를 말하는데, 곧 역학易學에서 말하는 ‘12벽괘辟卦’이고(여기서 ‘벽辟’은 ‘임금 君’의 뜻이다.), 정약용丁若鏞이 말한 ‘사시지괘四時之卦’이다.
이를 구체적으로 말하면, ‘복괘復卦䷗’, ‘림괘臨卦䷒’, ‘태괘泰卦䷊’, ‘대장괘大壯卦䷡’, ‘쾌괘夬卦䷪’, ‘건괘乾卦䷀’, ‘구괘姤卦䷫’, ‘둔괘遯卦䷠’, ‘비괘否卦䷋’, ‘관괘觀卦䷓’, ‘박괘剝卦䷖’, ‘곤괘坤卦䷁’이다.(기호 중 양−과 음‐‐이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추이 과정에 주목할 것) 이들 괘의 양상은, ‘곤괘坤卦䷁’의 순음純陰의 상태에서 ‘복괘復卦䷗’가 되면, 맨 아래에서 하나의 양이 회복되어 생겨나서 음을 처음으로 밀어내기 시작하여, 그 다음 ‘림괘臨卦䷒’로 이행되어 양의 세력이 더 커져 음을 더 밀어내는 것이다.
이렇게 점차로 음을 밀어내어, 마침내 ‘쾌괘夬卦䷪’에서 마지막으로 하나 남은 음의 잔존세력이 마저 밀려나면, 모두 양인 순양純陽 상태의 ‘건괘乾卦䷀’가 된다.
그러나 ‘물극필반物極必反’, 즉 ‘만물은 그 궁극 상황에 이르면 반드시 반전한다’는 이치에 따라, 밀려난 음이 완전히 소멸되지 않고 다시 맨 아래에서부터 그 세력을 회복하여 ‘구괘姤卦䷫’가 되었다가, 다시 더 세력이 커져 맨 아래에 음이 두 개인 ‘둔괘遯卦䷠’가 되고, 점차로 그 세력을 늘려 마침내 ‘박괘剝卦䷖’에서는 마지막으로 하나 남은 양의 세력이 밀려나면서, 다시 모두 음인 순음의 ‘곤괘坤卦䷁’가 된다.
이러한 과정은 음의 세력과 양의 세력이 서로 밀어내는 투쟁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하루를 두고 빛과 어둠이, 한 해를 두고 추위와 더위가 서로 밀어내는 것이 이러한 것인데, 대표적으로 한 해의 과정에 빗대 말하지만, 우주 천체 현상의 거시적 존재든 원자 미립자의 미시적 존재든 인체의 생리학적 현상이든 일체 현상적 존재가 모두 이러하다고 본다. 그래서 상관 관계에 있으면서도 대립하는 모든 것이 이처럼 대립하면서도 상호 생성과 소멸, 팽창과 수축을 반복한다.
『주역』은 이러한 자연의 원리를 인간 세상에도 적용한다. 인간 세상의 양과 음의 두 세력의 대표적 예는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이다. 『주역』의 관점에서는 인간의 역사는 양과 음의 세력, 즉 군자와 소인의 세력이 서로 힘을 겨루는, 군자와 소인의 투쟁의 과정이다. 군자가 주도권을 잡은 시대는 치세治世요, 소인이 주도권을 잡은 시대는 난세亂世이다. 이것은 유가儒家 철학의 기본 관념인데, 유가 문헌으로서의 『주역』도 이러한 관점에 서 있다.
유가 철학의 창시자인 공자孔子는 현실적 인간의 유형을 도덕 기준에 따라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으로 나눈다. 공자의 사상에서, 군자는 이상理想을 지향하며 올바르고 모범적인 삶을 살아가려 하는 인간 유형으로서, 『논어論語』에서 거론되는 도덕 실천자로서의 주인공이다. 사실상 공자 사상의 기본은 어떠한 것이 올바른 삶인가 하는 것인데, 이는 곧 군자의 삶의 원칙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군자는 매 상황에서 의로움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존재이다. 이러한 군자의 삶과 대비되는 인간 유형이 곧 ‘소인’으로서, ‘소인’의 삶은 군자의 삶에 반하는 것이다. 소인은 이기적 욕망에 사로잡혀 그 행동기준을 ‘이익리利’에 둔다.
그래서 공자는 ‘군자’와 ‘소인’의 기본적 대비점을 말하면서, “군자는 의를 밝히고, 소인은 이利를 밝힌다(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논어』「이인里仁」)라고 한다. 군자는 행동함에 그 기준를 ‘의’에 두어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의로운가를 생각하지만, 소인은 행동 기준을 ‘이利’에 두어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이익이 되는가를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군자와 소인의 행동 양태의 차이는 “군자는 조화를 지향하고 같음을 지향하지는 않지만, 소인은 같음을 지향하고 조화를 지향하지는 않는다(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논어』「자로子路」)라는 데서 드러나며, 또 “군자는 두루 소통하면서 편당을 짓지 아니하고, 소인은 편당을 지을 뿐 두루 소통하지 않는다(君子周而不比, 小人比而不周).”(『논어』「위정爲政」)는 양태의 차이를 보이는데, 이러한 것은 모두 ‘의’를 지향하는가, ‘이’를 지향하는가 하는 동기에서 파생되는 것이다.
군자의 삶은 어떤 가식이나 위선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말보다 행동이 앞서야 하므로, “군자는 그 말이 그 행동보다 앞서 감을 부끄러워한다(君子恥其言而過其行).”(『논어』「헌문憲問」), “군자는, 말은 더듬듯 신중하고 행동에는 민첩하려 한다(君子欲訥於言而敏於行).”(『논어』「이인」)고 한다. 이에 반해, 소인은 “말을 교묘하게 하고 낯빛을 꾸미듯 하여(巧言令色)”, 다른 사람을 현혹하고 아첨하며 영합하므로 “인이 적다(鮮矣仁).”(『논어』「학이學而」) 이런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여러 사람들에게 두루 호감을 주며 원만한 인격자처럼 보여 군자로 오인되지만, 공자는 이런 사람을 위선자로서의 ‘향원鄕原’이라 하며 “덕을 해치는 자(德之賊)”(『논어』「양화陽貨」)라고 하였다.
『대학大學』에서는, “소인은 한가히 있을 때 착하지 않은 일을 함을 이르지 않음이 없을 정도로 하다가, 군자를 보고 나면 슬그머니 그 착하지 않음을 감추고 그 착한 척 하는 모습을 드러낸다”고 묘사하였듯이, 난세를 가져오는 간악하고 파렴치한 소인배의 위선僞善을 간파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악랄하고 양심이 없는 소인은 군자를 항상 모함하려 한다. 그래서 없는 사실도 날조, 조작해서 대중들로 하여금 군자와 소인을 반대로 판단하게 함으로써 세상을 속여 혼란에 빠트린다. 그래서 평화로운 시대는 자칫 방심하면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하는 ‘그레샴의 법칙(Gresham's law)’처럼 악인들이 선인들을 몰아내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사실상 현실 속에서 군자와 소인이 투쟁할 때 군자가 소인을 이기기는 참으로 어렵다. 왜냐하면 군자는 차마하지 못하는 것이 있고, 소인은 하지 못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차마하지 못하는 것이 있는 존재와 하지 못하는 것이 없는 존재가 싸우면 후자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 군자는 옳지 않은 수단, 방법은 사용하지 않지만, 소인은 목적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악하고 잔학한 방법도 불사하므로, 싸움의 무기는 소인이 훨씬 많은 것이다.
군자는 소인이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에는 덕 있는 사람으로서 그들에게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도덕적 강박으로 그들을 용서하지만, 소인은 우선은 모면하기 위해 용서를 구하나 이후 배신하고 군자를 공격한다. 군자는 자신이 잘못했을 때는 도덕적 결벽으로 반성하고 괴로워하며 세상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사과하지만, 소인은 군자가 조금만 잘못해도 하이에나 떼처럼 달려들어 집요하게 끝없이 진정성 있게 사과할 것을 요구하다가, 군자가 일단 사과하면 그것을 핑계로 군자를 끌어내린다. 이로 인해 군자는 소인으로 소인은 군자로 평가가 뒤바뀔 수도 있고, 나아가 왜곡, 조작과 날조에 능한 소인에 의해 역사에서 그렇게 기록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세상은 치세로 가기보다 난세로 가기가 더 쉬운 것이다.
『주역』의 주인공은 군자로서, 그들은 이 풍진 세상, 험악한 세상, 즉 후안무치厚顔無恥하여 뻔뻔하고 무도한 소인이 횡행하는 세상에서 소인과 투쟁하며 좋은 세상을 이루려 노력하고, 소인에 의한 세상의 파괴를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을 것인가를 고심한다. 소인의 세력은 공적 정의보다는 사적 이익을 추구하면서도, 겉으로는 오히려 정의로운 척하면서 세상을 속이므로 대중들이 간파하기도 어렵다. 그들은 군자 코스프레하여 군자인 척 가장하며 대중을 위하는 척, 그들에게 베풀어주는 척하면서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포퓰리즘으로 대중을 현혹하고 기만하며, 세상의 시스템이 점점 무너지는 방향으로 가게 만든다.
그래서 군자는 지금 그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 치세라 하더라도, 언제 소인의 세력이 나타나서 그 세력을 키우려 하는 지를 경계해야 한다. 『주역』에서 그 점을 말하는 대표적인 부분이 바로 ‘곤괘坤卦’ ‘초육初六’의 효사爻辭이다.
‘곤괘’의 첫 번째 단계인 그 ‘초육’은 『주역』 전체의 핵심 사상이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곤괘’ ‘초육’은 우리가 『주역』을 보면서 세상의 변화에 대해 가져야 할 근본적인 태도를 함축한다. 그 효사인 “서리를 밟으면 굳은 얼음이 이를 것이다(履霜堅氷至).”고 하는 말은 ‘역易’에서 매우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여진다. ‘서리’는 머지않아 이르게 될 ‘굳은 얼음’의 전조前兆이다. ‘곤괘’의 ‘초육’은 음이 처음 생기는 것으로서, 나중에 온통 음으로 되는 전조라는 것이다. 세상만사의 변화는 미리 그 조짐을 보인다. 지혜로운 이는 개미구멍을 보고 그것이 언젠가 둑을 무너뜨릴 원인이 되리라 여기고 사전에 방비하지만, 어리석은 자는 그 조치를 보고 비웃을 것이다.
『주역』 원래의 텍스트 중 ‘곤괘’의 이 부분을 해석한 그 「문언전文言傳」에는, 이에 대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말을 한다. “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남은 경사가 있고, 불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남은 재앙이 있다(積善之家, 必有餘慶, 積不善之家, 必有餘殃).”라는 말이다. 이어 말하기를, “신하가 그 임금을 죽이고, 아들이 그 아버지를 죽이는 일은 하루아침 하루저녁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그 말미암은 원인은 ‘점차적인’ 것이다(臣弑其君, 子弑其父, 非一朝一夕之故. 其所由來者漸矣).”라고 한다. 무엇 때문인가? “분별해야 할 것을 미리 분별하지 않은 때문이다(由辨之不早辨也).”
‘건괘乾卦䷀’가 모두 양陽으로 이루어진 괘임에 대해, ‘곤괘坤卦䷁’는 모두 음陰으로 이루어진 괘이다. 음의 지극함인 것이다. 여기서는 물의 이미지로 ‘곤괘’의 상황을 설명한다. 물[水]은 불[火]에 대해 음이다. 물의 음의 상태가 가장 지극하게 된 것이 ‘얼음’이다. 그 지극하게 되어 얼음으로 된 상태가 모두 음인 ‘곤괘’이다. 그런데 그 첫 단계가 ‘서리’이다. ‘초육’은, 얼음으로 가는 초기 단계 즉 그 전조를 서리의 이미지로 말한다. 서리가 내리는 가을이 되면, 얼마 있지 않아 얼음이 어는 추운 겨울이 될 터이니, 겨울나기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눈보라 몰아치고 얼음이 꽁꽁 어는 추운 겨울이 되어서야 월동 준비를 해서는 때가 늦은 대처가 되는 것이다. 얼음의 조짐인 서리를 밟을 때가 될 때, 곧 굳은 얼음이 어는 겨울이 될 것을 알고 그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주역』에서는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의 관계를 양과 음의 관계로 이야기한다. ‘건괘’는 모두 양으로서 군자가 가득 찬 세상이다. 그런데 소인은 언제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군자를 음해하며 위해를 끼쳐, 궁극적으로는 군자를 밀어내어 소인의 세상으로 만들려 한다. 선과 정의의 세상을 악과 불의의 세상으로 바꾸려 한다. ‘곤괘’의 ‘초육’은 모두 음인 ‘곤괘’로 가는 첫 번째 단계로서 하나의 음이 시작되는 것이다. 곧 하나의 소인이 군자를 밀어내어 세상에 잠입한 상태이다.
소인은 선과 정의를 가장하는 위선의 인간이므로, 세상은 그가 소인인지도 알기 어렵다. 이때 하나의 소인을 간파하는 것이 중요함을 ‘곤괘’의 ‘초육’은 말한다. 동시에 이를 알았다 하더라도, 그 세력이 미약하니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고 과소평가하여 방심하면, 언젠가는 군자가 모두 밀려나고 세상이 온통 소인 천지가 될 수도 있으니, 그때 땅을 치고 후회해도 때는 늦음을 경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소인은 흔히 그들의 이익을 위해 무리를 지으므로, 하나의 소인이 작은 세력을 얻게 되면, 차츰 차츰 동류의 소인을 끌어들여서 세력을 확대하여, 언젠가는 군자를 모두 몰아내려 한다. 그래서 ‘곤괘’의 ‘초육’은 하나의 소인이라도 들어오면, 나중에 온통 소인 천지가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지고, 그 소인의 세력 확대를 미연에 방지해야 함을, 서리와 얼음의 비유로 말하는 것이다. 이 점은, 한 국가이든 작은 지역이든, 큰 회사든 소규모 단체이든, 어떤 조직 공동체라도 다 마찬가지이다.
앞서 말한 『주역』의 12개 중심괘는 ‘건괘䷀’와 ‘곤괘䷁’를 두 축으로 하여 음과 양이 자라고 사라지는 순환 과정으로 묘사된다. 먼저 모두 음이던 그 전 단계 ‘곤괘’에서, 새로 맨 아래 하나의 양이 생긴 상황인 ‘복괘復卦䷗’로부터 ‘건괘’까지는 양이 자라나고 음이 사라지는 과정으로서의 공동체 성장발전의 과정이다. ‘건괘’는 그러한 것이 정점에 달한 것이다. 이후 다시 맨 아래 음이 생기기 시작하는 ‘구괘姤卦䷫’에서 ‘곤괘’까지의 과정은 그 성장발전이 무너지는 과정이며, ‘곤괘’는 그 공동체의 완전한 몰락과 붕괴를 말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이 과정은 도덕문명의 성장과 붕괴의 과정으로 해석되었다. 그런데 도덕이 원인이 되는 이 과정은 현상적으로는 정치와 경제 시스템의 성장과 붕괴 과정으로 나타난다.
이 일련의 과정 전반부인 ‘복괘復卦䷗’, ‘림괘臨卦䷒’, ‘태괘泰卦䷊’, ‘대장괘大壯卦䷡’, ‘쾌괘夬卦䷪’, ‘건괘乾卦䷀’의 과정은 가난하던 한 후진 국가가 국가의 기초를 닦고 국민을 계몽하며 잘살아보려는 의지를 북돋워, 경제를 발전시켜 선진국으로 발돋음하는 과정이다. ‘건괘’는 그 목표인 선진국에 도달한 것을 말한다. 이는, 국가를 발전시키려는 세력인 양이 그 발전을 방해하고 발목잡는 음의 세력을 밀어내면서 이루어가는 과정을 통해 달성된 것이다.
그러나 발전의 정점에서 축하의 샴페인을 터트릴 때, 밀려났던 국가 전복 세력이 다시 맨 아래에서 그 세력을 회복할 수가 있는데, 그 첫 단계가 ‘구괘姤卦䷫’로서 맨 아래 음이 하나 생긴 것이다. 이후 이 세력은 같은 편을 계속 끌어들여 그 세력을 확장시켜 성장 세력을 밀어내게 되는데, ‘구괘’ 이후 ‘둔괘遯卦䷠’, ‘비괘否卦䷋’, ‘관괘觀卦䷓’, ‘박괘剝卦䷖’, ‘곤괘坤卦䷁’의 과정이 그것이다. 이것은 선진국에 도달했던 국가가 다시 쇠락해 가는 과정을 말하며, ‘곤괘’는 그 몰락의 끝에서 멸망한 것을 말한다.
후반부의 이 과정은 국가의 기존 체제를 파괴, 전복하려는 세력이 대중을 선동, 세뇌하여 기존 체제를 부정하며, 성장한 경제의 과실을 초과하는 포퓰리즘적인 분배를 통해 재투자할 자본마저 까먹는 정치, 이듬해 파종할 씨앗까지 나눠먹는 정치를 행하여, 결국은 경쟁 정파까지도 포함한 대부분의 정파가 포퓰리즘에 몰두하는 분위기에 휩싸여 국가 부도 상태에 이르고, 종국에는 멸망에 이르는 과정을 묘사하는 것이다. 즉 ‘서리’ 이후 결국 ‘얼음’에 이른 ‘빙하기’가 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현상적으로는 정치와 경제의 시스템이 붕괴되는 과정이지만, 그 본질은 도덕의 붕괴 과정이다. 난세는 세상이 아노미 상태에 빠진 도덕의 타락을 의미한다.
‘곤괘’의 ‘초육’은, 이러한 몰락의 시초를 말하면서 그것을 서리에 비유하고, 나중에 굳은 얼음의 단계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하는 것인데, 그 굳은 얼음의 단계가 모두 음인 ‘곤괘’이며, 그 직전 단계가 ‘곤괘’의 맨 위인 ‘상육上六’으로서, 이를 전문적인 주역 이론에서 말할 때는 양이 하나 남은 상태에서 아래 다섯 음이 공격하는 ‘박괘剝卦䷖’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때가 되면 밀려나는 군자의 세력과 대세를 이룬 소인의 세력이 마지막 일전을 벌이지만, 이미 국가의 정치 시스템은 거의 붕괴되고 경제도 몰락하여, 이러한 위기를 미리 감지, 간파한 국외 자본은 너도나도 보따리를 싸고 난파선 타이타닉호에서 탈출하듯이 빠져나간다. 어떤 기적적 반전의 계기가 없는 한 이미 세상은 종말을 향해 치닫게 된다.
그래서 ‘곤괘’ ‘상육上六’에서는 이렇게 음이 극성하여 양과 치열하게 다툼이 마치 “용들이 들판에서 싸우는 듯하다(龍戰于野).”고 보는데, 이는 곧 군자와 소인이, 선과 악이, 정의와 불의가 크게 싸우는 모습을 형용한 것으로서, 이러한 용들의 싸움에서 그 피가 ‘검고 누르다(其血玄黃)’고 묘사한다. 이는 곧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天玄而地黃)’는 것으로서, 양의 상징인 하늘과 음의 상징인 땅이 싸워 그 피가 검고 누르다는 것이다. ‘초육’에서 서리를 밟고서도 이 상황이 굳은 얼음이 될 수 있음을 간과하고 방치한 결과다. 지도자 그룹에서는 군자가 소인에 대해서 방심하고, 동시에 세상의 대중 가운데서도 소인 무리들이 발호하며 지도자 그룹 중 소인들에 선동되어 그들을 지지하여, 대중 속 소인의 세력 역시 군자의 세력보다 훨씬 커진 결과다. 지금의 세상은 이러한 12 단계의 과정 중 어디쯤 가고 있을까.
정해왕(丁海王) 부산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1992년~2023년 부산대학교 인문대학 철학과 교수. 중국 동방국제역학연구원·절강대학·북경이공대학 법학원·북경대학 방문학자 역임. 저서로 『주역周易과 한국역학韓國易學』(공저), 『한국지성과의 만남』(공저), 『「대학」읽기』, 『「중용」읽기』, 『周易 속 世上, 세상 속 주역』, 『북송대北宋代 성리학性理學-북송대 다섯 철학자들의 삶과 철학』, 『중국철학사』, 역주서로 『완역 정몽正蒙』(장재張載 저)가 있으며, <국제신문>에 “정해왕의 『주역周易』으로 보는 세상”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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