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공 한 달이 넘도록 텅텅…자곡동 ‘엑슬루프라임’ 가보니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자곡동 지식산업센터 엑슬루프라임 전경. 입점지정기간이 지난달 말로 끝났지만 1층 상가는 부동산을 제외하고 모두 공실이었다. 심윤지 기자
MB 정부가 공급한 자족기능용지에 지어져 투자자들 관심 끌어
‘중도금 이자 지원’ 약속했던 시행사, 6차 지급일 앞두고 말 바꿔
분양자 “소유권보존등기 전 입주 강요”…시행사 “사실 아니다”
서울 강남의 마지막 ‘지식산업센터’로 큰 관심을 끌었던 자곡동 ‘엑슬루프라임’이 준공 한 달이 넘도록 입주 지연 사태를 겪고 있다.
지식산업센터 호황기에 시행사가 계약 조건으로 내걸었던 ‘중도금 이자 지원’을 두고 시행사와 분양자 간 갈등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엑슬루프라임의 입점지정기간(잔금 납부 및 입주 기간)은 구청 임시사용승인이 난 지난 4월28일부터 지난달 31일까지였다. 하지만 23일 현재, 건물에 입주해 열쇠까지 불출받은 입주사는 단 1곳뿐이다.
■ ‘강남의 마지막 지산’에서 무슨 일이
엑슬루프라임은 이명박 정부가 공급한 보금자리주택 ‘자족 기능 용지’에 지어진 강남에서 단 3개밖에 없는 지식산업센터 중 한 곳이다. 2020년 6월 지하 4층~지상 10층, 연면적 4만3115㎡ 규모로 총 249호실이 공급됐다. 3.3㎡당 분양가는 2000만~2500만원으로 높은 편이었지만, 준공업지역이 없는 강남의 ‘마지막 지식산업센터’로 투자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분양을 받은 A씨는 “2020년만 해도 구로구 지식산업센터의 평당 분양가가 2000만원대에 육박했을 정도로 ‘불장’이었다”며 “강남에서는 더이상 지산을 지을 만한 땅이 없고, 호텔식 마감을 통해 고급화하겠다는 분양대행사 측 설명을 듣고 투자를 결정했었다”고 말했다.
시행사는 분양 당시 7차에 걸친 ‘중도금 이자 지원’도 약속했다. 분양대행사가 분양자들에게 안내한 설명서에 따르면 ‘계약금 10%만 내면 입주시까지 분양자들이 부담해야 할 돈은 없다’고 명시돼 있다.
지식산업센터가 우후죽순 공급됐던 2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지산 시행사들은 ‘중도금 무이자’를 계약 조건으로 내걸었다. 당시 시중은행 대출금리는 2%대였다.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금리 상승과 원자재 가격 폭등으로 부동산 시장이 하락기에 접어들자 시행사의 태도가 달라졌다. 시행사는 당초 준공 예정일이었던 지난해 12월 “코로나19라는 ‘불가항력적 사유’로 인해 공사가 지연되고 있다”면서 분양자들에게 입점 지연에 따른 민·형사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합의서를 요구했다. 분양자들이 합의서를 작성하지 않을 경우 그동안 했던 중도금 이자 지원도 끊겠다고 했다.
김정민 엑슬루프라임 분양자 대표는 “합의서를 작성하지 않을 경우 시행사에서 중도금 무이자를 더이상 부담할 수 없다고 했다”며 “동의하지 않으면 신용불량자가 될 판이니 ‘울며 겨자 먹기’로 서명을 해줬다”고 했다.
분양계약서에 시행사가 찍어준 중도금 무이자 도장. 시행사 엔티산업은 7차에 걸친 중도금 이자 대납을 계약 조건으로 내걸었다. 분양자 제공
■ “보존등기 안 나와 잔금 못 치르는데…”
분양자들이 합의서를 써준 이후로도 갈등은 계속됐다. 시행사는 6차 중도금 이자 지급일을 앞둔 지난 4일 분양자들에게 “4월28일 임시사용승인 이후 발생하는 중도금 이자는 분양자들이 부담한다”고 통보했다. 그 근거로 “시행사가 중도금 이자를 대납한 경우 그 기간을 입점지정기간 개시일 전까지로 한다”는 계약 조항을 제시했다.
분양자들은 “시행사가 중도금 이자를 떠넘기기 위해 무리하게 입주를 강요했다”고 반발했다. 소유권보존등기도 되지 않은 지식산업센터에 임시사용승인만 받아놓고 ‘입점지정기간이 개시됐으니 이자 지원을 하지 않겠다’며 일방적으로 통보했다는 것이다. 소유권보존등기는 건물에는 일종의 ‘출생신고’로, 소유권보존등기가 돼야만 건물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보존등기 전까지는 건물을 담보로 잔금대출을 받을 수도, 세입자를 구할 수도 없다.
분양자 B씨는 “잔금 마련 방법이 모두 막혀버린 상태에서 잔금 지급과 실입주를 강요하는 것은 매우 부당하다”며 “통상적인 분양계약에서는 입주지정일이 끝나기 전에 보존등기가 나오거나, 보존등기가 나올 때까지 입주기간을 연장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이에 대해 시행사인 엔티산업 측은 “중도금 대출에 따른 이자는 차주인 본인이 부담하는 것이 당연하나, 입주 개시 전까지만 당사가 예외적으로 이자를 대납해 준 것”이라며 “분양계약 체결 후 금융비용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많게는 1회당 5억원이 넘는 중도금 이자를 30회 대납했다”고 했다.
중도금 이자 회피를 위해 입주 일정을 무리하게 앞당겼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시행사 측은 “코로나19로 인한 인력수급 차질, 화물연대 파업,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따른 원자재값 폭등으로 인한 공사가 지연되고 공사비가 30% 이상 증액되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며 “그럼에도 기존 사무실과의 계약이 만료됐으니 입주시기를 앞당겨달라는 분양자들의 요청이 있어 추가비용을 투입하면서까지 공사기간을 최대한 앞당겼다”고 했다.
■ 거품 꺼진 지식산업센터의 현주소
지난 2일 시행사가 소유권보존등기를 마치면서 현재는 대출 등을 통한 잔금 마련이 아예 불가능한 상태는 아니다. 다만 ‘중도금 무이자 지원’으로 시작한 갈등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입점지정기간 내 잔금을 납부하지 않은 분양자들은 잔금과 미상환 중도금에 대한 지연 이자를 내야 한다.
게다가 시행사는 준공과 입주 지연으로 증가한 선수관리비 납부에 동의한 입주자에게만 열쇠를 불출해줄 수 있다는 입장이다. 분양자들은 시행사가 관리비를 과다 책정했다고 반발하는 상황이라, 현재 시행사가 내건 관리규약에 동의해 열쇠까지 불출받은 입주사는 단 1곳뿐이다.
분양자들은 공사 지연, 중도금 이자 전가, 부당한 관리규약 강요에 대해 법적 대응을 시사했다. “임시사용승인 당시는 입주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며 중도금 이자 기산일을 정식사용승인일로, 입점지정기간을 보존등기 이후인 6월 말로 연장해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분양자들은 현장실사 없이 임시사용승인을 내준 강남구청 책임도 묻겠다고 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강남구청 관계자는 “장애인 출입구 관련 설비를 제외하면 입주가 가능한 수준이라는 감리 결과에 따라 적법하게 임시사용승인을 낸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갈등을 지식산업센터의 거품이 꺼지면서 촉발된 현상으로 해석했다. 지식산업센터는 2~3년 전만 해도 아파트 규제를 피할 수 있는 ‘대체투자처’로 반짝 인기를 끌었으나, 고금리와 부동산 경기침체, 아파트 규제완화 여파가 겹친 뒤로는 수익성이 급감했다.
최근 입주했거나 입주를 앞둔 수도권 지식산업센터는 계약금을 포기하는 수준의 ‘마이너스 피’ 매물도 속출하고 있다.
서울의 한 구청 건축과 관계자는 “지난해 초 이후 준공된 오피스텔이나 지식산업센터에서 하자나 공사비 관련 민원이 전반적으로 늘었다”며 “부동산 경기침체로 시세 차익은 기대하기 어려워졌는데, 이자 부담은 계약 때보다 급증하다보니 나오는 사회적 현상으로 보인다”고 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