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암관광호텔
[약암홍염천관광호텔은 김포반도에서는 유일한 71개의 객실과 각종 부대시설을 갖춘 1급 호텔로서 1천여명을 동시 수용할 수 있는 맘모스탕이 있다. 또한 강화 - 대명리간 초지대교를 눈 앞에 두고 있어 강화도 나들이와 함께 서울과 인천지역 주말나들이를 겸한 홈염천 입욕으로 각광을 받는 곳이다. 홈염천의 특징은 조선시대 강화도령이었던 철종대왕께서 고향인 강화도로 행차 중 눈병이 나서 이 물로 눈을 씻어 눈병이 나았기 때문에 지명을 약암으로 하명하였다고 전해진다. 지하 암반 460M에서 숙성 용출돼 대기중에서 오염이 되지 않은 순수한 광염천수로써 염분이 바닷물 농도의 10분의 1정도며, 철분과 무기질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 용출 후 10분정도 경과되면 붉은색으로 변하는 것이 신비한 세계유일의 물이다.
성인의 약암홍염천 이용요금은 1만원이다.]
[약암관광호텔~승마산 전망대] 구간
산행로 도중의
광은사
조계종 사찰인
광은사에 관한
안내문
승마산 전망대
승마산 전망대
승마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조망 경관 안내도
승마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좌로부터) 승마산 정상, 수안산, 학운산
[ 위 사진부터 이어지는 7장의 사진은
승마산 전망대에서
시계바늘 방향으로
360도 파노라마 조망하면서
촬영한 사진들이다.]
승마산 전망대에서
사진 중앙에 멀리 보이는
인천의 최고봉인 계양산
승마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좌로부터) 영종대교, 영종도, 동검도
승마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좌로부터) 동검도, 길상산, 마니산, 정족산, 진강산, 덕정산
승마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좌로부터) 마니산, 정족산, 진강산, 덕정산, 혈구산, 고려산, 김포의 문수산
승마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김포의 문수산(좌)과 승마산 정상(우)
승마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좌로부터) 승마산 정상, 수안산, 학운산
[ 이상으로 파노라마 조망 끝 ! ]
[승마산 전망대~승마산 정상] 구간
산행로 도중의
말 조형물
승마산(130m) 정상에 있는
승마정
[승마산 또는 약산(藥山)은 경기도 김포시에 있는 산이다. 승마산은 정상이 말의 안장과 같이 생겨 말을 타고 달리는 형태와 유사한 것이 특징이다. 행정주소는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약암리 산108-2번지이다. 현재 공식 명칭은 승마산으로 불리며 약산은 조선시대 대동여지도등에 표기된 전래 명칭이다.
승마산 정상에는 현재 육각형 모양의 사방을 관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승마산에는 조선시대 봉수대가 설치된 곳으로 산 중턱에는 조계종 광은사가 자리잡고 있다. 한편 약산(승마산)의 약산봉수는 수안산(守安山)으로 옮겨진 바가 세종실록 지리지와 대동여지도에 언급된다.]
승마산(130m) 정상석에 걸쳐 있는
이성수 등산 배낭
승마산(130m) 정상에 있는
이정표
승마산 정상에 있는
승마정에서 바라본
(좌로부터) 길상산, 마니산, 정족산, 진강산, 덕정산, 혈구산, 고려산
승마정에서
줌으로 확대촬영한
(좌로부터) 동검도, 길상산, 마니산, 정족산
승마정에서
줌으로 확대촬영한
(좌로부터) 마니산, 정족산, 진강산, 덕정산, 혈구산, 고려산
다시 돌아온
약암관광호텔
2024년03월08일(금요일) 김포시 [대명포구&김포함상공원&덕포진 사적지&손돌 묘&덕포진 한옥마을&약암홍염천관광호텔&승마산] 탐방기
탐방지 : 김포시 [대명포구&김포함상공원&덕포진 사적지&손돌 묘&덕포진 한옥마을&약암홍염천관광호텔&승마산]
탐방코스: [대명항 버스 정류장~(0.4km)~대명항 대명포구~(0.5km)~김포함상공원~(1.6km)~덕포진사적지~(0.9km)~손돌 묘~(1.7km)~덕포진 한옥마을~(2.2km)~약암교~(0.7km)~약암홍염천관광호텔~(1.4km)~광은사~(1.2km)~전망대~(0.2km)~승마산~(2.7km)~약암호텔 버스 정류장] (거리 13.5km)
탐방일 : 2024년03월08일(금요일)
날씨 : 청명한 날씨 [김포시 대곶면 최저기온 영하 2도C, 최고기온 7도C]
탐방코스 및 탐방 구간별 탐방 소요시간 (총 탐방시간 3시간40분 소요)
09:40~10:43 구산역에서 6호선 지하철을 타고 디지털미디어시티역으로 가서 공항철도로 1차 환승하여 김포공항역으로 간 후 김포골드라인으로 2차 환승하여 구래역으로 이동한 후 구래역 3번 출구로 나옴 [1시간3분 소요]
10:43~10:45 구래역 정류장까지 도보로 이동 [2분 소요]
10:45~11:14 구래역 정류장에서 대명항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60-3번 버스 승차 대기
11:14~11:42 60-3번 버스를 타고 구래역 정류장에서 대명항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 [28분, 18개 정류장 이동]
11:42~11:48 경기 김포시 대곶면 대명리에 있는 대명항 버스 정류장에서 탐방출발하여 대명항 대명포구까지 도보로 이동
[대명포구는 강화해협을 사이로 강화도와 마주보는 곳에 있으며, 김포시에서는 하나밖에 없는 포구이다. 규모는 작지만 어시장과 어판장에서 꽃게·대하·망둥어·주꾸미·농어·숭어를 비롯해 김장용 새우젓·멸치젓 등을 살 수 있고, 즐비한 횟집에서는 횟감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서울에서 가깝고 인근에 역사의 현장인 덕포진과 덕포진 교육박물관, 천연 미네랄 라듐천인 약암온천 등이 있어 주말에는 크게 붐빈다.
서울~강화를 잇는 김포가도인 48번 국도를 타고 누산 삼거리에서 양촌면과 대곶면 소재지를 지나 석정 삼거리에서 직진하면 포구가 나오고, 우회전하면 덕포진과 덕포진교육박물관으로 갈 수 있다.]
11:48~11:52 경기 김포시 대곶면 대명항1로 110-36 번지에 있는 김포함상공원으로 이동
[김포함상공원(金浦艦上公園)
경기도 김포시에 있는 함상공원으로, 퇴역한 초계 군함 LST-671운봉함을 전시관으로 개조하여 정박하고 있는 공원이다.
소재지 :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대명항 1로 110-36 (대명리 551-1)
명물 : LST-671운봉함
경기도 김포시에 있는 함상공원으로 2010년 9월 10일 개장하였다. 일반인이 해군 군함 내부를 체험할 수 있는 전시장으로 개조되었으며 수도권에서 개장하는 첫 함상공원이다. 공원 입구 정면 바다 위에 정박해 있는 LST-671운봉함은 1944년 미국의 메사추세츠주 퀸시에서 전차상륙함(LST-1010)으로 건조된 후 여러 전쟁에 참전의 전적을 마치고 2006년 해군에서 공식 퇴역한 군함으로, 전시관으로 개조한 후 대명항 부두에 정박하여 일반인들에게 안보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전시관으로 개조된 함정의 내부 연면적은 1,380㎡ 이며, 함정은 500명의 관람객을 수용할 수 있다.
공원대지 면적은 11,821㎡이며 공원 외부에는 개조된 운봉함, 해상초계기 S-2(TRACKER), 단정(LCVP), 수륙 양용차와 메모리얼가든, 야외분수, 야외무대 등이 배치되어 있으며 함정내부에는 전시관, 영상관, 홍보관, 체험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운봉함은 대한민국 해군 초계함으로 활동했던 군함으로 해군본부에서 김포시에 기증하였으며 현재는 김포시가 관리한다. 성인 기준 3천원의 입장료를 받고 있으며, 이용시간은 3월~10월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11월~2월에는 오후 6시까지 가능하다. 매일 3회씩 문화관광해설사의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인근에는 덕포진, 덕포진교육박물관, 강화초지대교가 위치하고 있으며, 김포시 대곶면 대명항 1로 110-36 (대명리 551-1) 에 소재한다.]
11:52~12:12 김포함상공원을 관람
12:12~12:32 경기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 224-4 일원에 있는 덕포진사적지로 이동
[덕포진
위치 :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 산 105
손돌의 전설을 담은 땅
한강과 연결되는 강화해협은 조선시대 외세침입의 마지막 방어선이었다. 촘촘하게 늘어선 진, 보, 돈대는 김포와 강화 해안선을 따라 위치한다. 조선시대 군사 방어시설의 제 모습을 관찰하고 싶다면 덕포진을 찾아보자. 강화해협 중에서도 가장 좁은 폭을 사이에 두고 김포의 용두돈대와 마주하는 이곳은 진지를 따라 이어지는 1.5㎞의 산책로가 마치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소용돌이 치는 물살을 앞으로 두고 있는 진지는 구한말, 프랑스와 미국의 서양 군함을 맞아 병인양요(1866년)와 신미양요(1871년)의 격렬한 전투를 치룬 역사의 현장이다. 불과 140여 년 전, 수많은 병사의 목숨을 앗아간 아픔의 장소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평화로운 모습이지만 당시 지휘소였던 파수장터를 중심으로 수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어 당시의 상황을 후세에 알려주고 있다.
돌아나가듯 굽이도는 강화해협의 물살은 ‘손돌목’이라 불린다. 원나라의 공격으로 강화도로 임시 수도를 정한 고려의 국왕 고종이 손돌이라는 뱃사공의 나룻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려 하다 거꾸로 흘러가는 배의 방향을 보고 적의 첩자로 오인하여 그를 참수하였다. 손돌은 마지막 순간 흐르는 물살에 바가지를 띄워 이것을 따라가라 유언하였고 흐르는 물살을 따라 거꾸로 향하던 바가지는 강화도의 해안으로 안전하게 나룻배를 인도하였다.
손돌의 억울한 죽음은 덕포진의 끝자락에 자리 잡은 작은 비석으로 전해진다. 지금까지도 손돌의 생일인 음력 10월 20일 무렵 불어오는 매서운 강화해협의 바람은 억울한 죽음을 당한 손돌의 영혼이 실린 ‘손돌바람’이라 불린다. 덕포진의 호젓한 산책은 인근 대명항과 포구를 함께 하기에 좋다. 서해 바다의 먹거리로 가득한 포구는 못생긴 고기로 유명한 ‘삼식이’ 회 맛을 보는 곳으로 유명하다.]
12:32~12:45 경기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 산 106 번지에 있는 손돌 묘로 이동
[음력 10월 말 몰아치는 강화 바다 '손돌 추위'
연합뉴스 기사 입력일 : 2017. 11. 11.
뱃사공 손돌 원혼 서린 강추위 전설.."기압 차로 냉기류 확장"
신미양요 당시 몰살 조선군 350여명 원혼 삼킨 '손돌목' 바다
(인천=연합뉴스) 최은지 기자 = 통상 음력 10월 말이면 뼛속까지 시린 추위가 몰아닥치기 시작한다. 절기로는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 즈음이다.
뱃사람들은 이때 불어오는 추위를 '손돌 추위'나 '손돌 바람'이라 부르며 배 타기를 꺼렸다.
이런 내용은 조선시대 정조·순조 연간에 활약한 학자 홍석모(洪錫謨)가 음력 정월부터 12월까지 당시 풍속을 월별로 정리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1849년) 중 '기타 10월 행사'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이달 20일에는 해마다 큰바람이 불고 추운데, 그것을 손돌바람[孫石風]이라 한다. 고려 왕이 바닷길로 강화도에 갈 때 뱃사공 손돌이 배를 저어 가다가 어떤 험한 구석으로 몰고 가자 왕이 그의 행위를 의심하여 노해서 명령을 내려 그의 목을 베어 죽여 잠시 후에 위험에서 벗어난 일이 있었다. 지금도 그곳을 손돌목[孫石項]이라 한다. 손돌이 죽임을 당한 날이 바로 이날이므로 그의 원한에 찬 기운이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비슷한 내용은 홍석모와 동시대를 살다간 학자 김매순이 열양(洌陽), 곧 지금의 서울 일대 세시기로 정리한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중 10월 20일 대목에도 있다.
"강화 바다에 험난한 암초가 있어 손돌목이라 한다. 방언에 산과 물이 험난한 곳을 목[項]이라 한다. 일찍이 뱃사공 손돌이라는 사람이 있어 10월 20일에 이곳에서 억울하게 죽으니 마침내 그 이름을 따서 지명을 지었다. 지금도 이날이 되면 바람이 많이 불고 매섭게 추워 뱃사람들은 조심하고 삼가며 집에 있는 사람도 털옷을 준비하고 근신한다."
이 고장 사람들 사이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내용 역시 이와 비슷하지만, 훨씬 구체적이다.
고려 23대 고종이 몽골 침략을 피해 강화도로 피신하던 때였다. 강화 해협을 지키는 요새인 광성보를 지나자마자 뱃길이 막혔다.
초조해진 왕이 행차를 재촉했지만 뱃사공인 손돌은 침착했다. 그저 "지형이 막힌 듯해 보이지만 조금만 가면 뱃길이 트인다"고 아뢰었다.
고종은 자신을 붙잡아두려는 사공의 흉한 계략이라 여겨 손돌을 참수하라 명했다. 손돌은 죽음 앞에서도 조용히 뱃길 앞에 바가지를 띄우고는 바가지가 떠가는 데로만 가면 뱃길이 트일 것이라 일렀다.
결국 왕이 손돌이 가르쳐준 대로 바가지를 띄워 무사히 강화에 발을 내딛자 어디선가 거센 회오리바람이 불어닥쳤다.
비로소 잘못을 깨달은 왕이 크게 뉘우치고 말 머리를 베어 손돌 넋을 제사 지내니 그제야 풍랑이 그쳤다고 한다.
후대 사람들은 이 뱃길 목을 손돌의 목을 벤 곳이라 해 '손돌목'이라 부르고, 그의 기일인 음력 10월 20일이면 손돌의 원혼이 바람을 일으킨다 했다. 이곳은 김포와 강화도 사이의 가장 좁은 해협이다.
손돌목은 강화해협 중간쯤에 있다. 강화도가 남북으로 길게 늘어선 까닭에 이 해협은 어쩌면 바다라기보다는 큰 강처럼 보인다.
한데 하필 이 손돌목 지점에서 강화도와 맞은편 김포는 지그재그 형태로 땅이 어긋나게 돌출했다. 이런 곳에는 거의 필연적으로 수로를 보호하며, 이를 통한 적군의 침투를 막기 위한 군사시설이 들어서기 마련이다. 손돌목 북쪽 강화해협의 더 좁은 지점 중 김포 쪽에 그 유명한 문수산성이 위치한 것도 이 때문이다.
손돌목에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김포 방면에는 덕포진이 있고, 맞은편 강화도에는 손돌목돈대가 있다. 손돌목돈대 바로 북쪽에는 광성보라는 별도 보루 시설이 하나 더 있다. 이는 그만큼 군사적인 관점에서 손돌목 일대가 중요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지역을 무대로 하는 근대의 가장 비극적인 사건은 일방적으로 통상을 요구하다 불에 타 몰살한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빌미로 미국이 침범한 신미양요(1871년)다. 격렬하게 저항하던 조선군은 전선이 불리해지자 물에 뛰어들고 스스로 목을 찔렀다. 이에 미군은 승리했지만 철수했다. 당시 손돌목은 조선군 350여 명을 삼킨 원혼의 바다였다. 그들은 또 다른 손돌이었다.
손돌 추위가 냉기를 몰고 오는 시기는 기상학적으로 봐도 한반도 내륙에 강풍이 불어 드는 때다.
음력 10월 말 즈음이면 시베리아 고기압이 한반도로 세력을 넓히고, 적도 위쪽 북반구의 냉각된 기류가 내려오는 시기라고 한다.
김승배 한국기상산업협회 기상본부장은 "대륙 쪽에서 우리나라로 계절풍이 불어오는 음력 10월이면 말 그대로 을씨년스러운 추위가 시작된다"며 "기압이 서고동저 형태로 배치되고 두 지역 간 기압 차가 커지면서 찬 바람이 불어오게 된다"고 설명했다.
뱃사람들이 꺼리는 손돌 바람도 이 같은 현상으로 충분히 설명된다.
대륙 쪽 고기압 영향으로 강풍이 불어오기 때문에 파도가 높게 일뿐더러 풍랑주의보도 자주 내려질 수밖에 없는 때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후대 사람이 매서운 추위와 강풍을 이겨내며 전설을 지어냈는지도 모른다.
강화 해협과 손돌목이 바라다보이는 덕포진에는 손돌묘가 남아 있다.
백성들은 충정을 지킨 그를 손돌공(公)이라 부르며 조선조 말까지 계속 제사를 지냈다. 1977년에는 인근 주민들이 묘비를 세우고 치산(治山)해 묘를 재단장했다.
그렇다면 손돌 전설은 어떻게 해서 생겨났을까.
국어학자 이기문 서울대 명예교수는 전설의 뿌리를 파헤쳤다. 그에 의하면 손돌이라는 사람에게서 손돌목이라는 지명이 생겨난 것이 아니라, 외려 이 이야기는 지명에서 발전했다고 말한다. 원래 이곳 지명이 손돌이었고, 그에 착안해 사람들이 이런 전설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고려사 이승휴(李承休) 열전의 한 대목을 든다. 당시 몽골 침략을 받고 대책에 부심하던 고려 조정에 이승휴는 다음과 같은 방책을 제시한다.
"적이 착량(窄梁)을 통과하는 것을 기다렸다가 반쯤 지나가면 정예병을 보내 적 선단을 가로 끊어버린 후 강도(江都·강화도)를 굳게 지켜야 합니다. 그러면 앞서 나간 적은 고립될 것이고, 뒤처진 적은 거점을 상실해 서로 호응하지 못할 터이니 적은 격파될 것입니다."
이 교수는 여기에 나오는 '착량'이 바로 '손돌'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라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용비어천가에서 왜적이 강화 쪽으로 침입해 강화부(江華府)와 착량의 전함을 불지르며 크게 기세를 올린 일을 거론하면서 이 착량을 손돌이라 읽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용비어천가는 착량이 "지금 강화부에서 남쪽으로 30리가량 되는 곳"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미 이승휴 시대 고려 중기에 지금의 손돌목은 손돌로 일컬었으며, 바로 이런 지명에서 손돌이라는 가공의 원혼 많은 인물을 백성들이 만들어냈다고 했다. 손돌목에서는 억울한 죽음을 당한 손돌의 넋을 기리고자 음력 10월 20일마다 '손돌공 진혼제'를 연다. 김포시는 올해로 47년째를 맞는 이 진혼제를 다음 달 지낼 예정이다.]
12:45~12:53 사진촬영 후 휴식
12:53~13:28 경기 김포시 대곶면 대곶로119번길 252-21 번지에 있는 덕포진 한옥마을로 이동
[새롭게 열리는 땅, 덕포진(德浦鎭)과 힐링 숲길
김포의 둘레길 열두번째
김포미래신문 기사 승인일 : 2022.06.14.
글 :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평화누리길 - 덕포진 - 한옥마을 - 숲길 순환코스
대명항을 중심으로 덕포진과 한옥(韓屋)마을을 잇는 둘레길은 오감이 만족하는 백점 만점의 길이다. 평화누리길 - 염하강철책길 순환코스를 선택해도 좋다. 대명항을 기점으로 4.8km 다른 방향으로 1.7km를 갈 수 있다고 이정표가 일러준다. 덕포진 - 한옥마을을 잇는 덕포진로는 아직도 군사도로로서 조상들이 피와 땀으로 지켜낸 그 길이 오늘 우리에게 "평화를 누리는 길"이 되고 있다.
“만보걷기”에 좋은 이 길에 서면 걷기의 세계에서 만나는 경이로움이 있다. 찬사가 터져 나오는 역사문화 순환코스이며 천혜의 숲길인 이 코스는 걷기에도 좋고, 쉼도 있는 시원하기 그지 없는 숲 길이다.
"바다, 문화재, 숲속의 한옥 등이 가지런히 자리 잡은 게 친근감과 익숙함에 가슴이 따뜻해지네요. 일상의 행복을 느끼기에 정말 멋진 곳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하는 정성현 공원녹지과장과 이정호 산림휴양팀장, 정승수 차석, 백유진 주무관이 함께 이곳을 찾았다.
2km 정도 걸으면, 신안리 한옥마을 스물 한 채가 그림같이 펼쳐져 눈길을 사로잡는다. 바다가 있고, 숲이 있고 덕포진이 있는 길, 멀리 문수산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가장 멋지고 보배로운 길이다. 이제는 맛보기 힘든 산딸기의 맛, 뽕나무의 오디 열매맛은 덤이다. “한끼 줍쇼” 프로그램으로 중앙 언론에 소개된 유명한 그 숲길을, 주인공이 되어 걸어보는 특별한 즐거움이 있다. 대곶 한옥(韓屋)마을은 유명하다. 지금도 덕포진 인근에 계속적으로 한옥이 늘어가고 있다.
10여년전 형성된 덕포진 한옥마을은 이미 자리를 잡아 아름답기 그지없다. 10년을 이어 더 많은 한옥이 자리를 잡아가는 중인데, 넉넉한 한옥의 아름다움과 문화의 길이 덕포진을 중심으로 새롭게 열리고 있다. 덕포진과 한옥마을, 염하강, 평화누리길이 어우러지며 꼭 가보고 싶은 명소가 될 것이다.
역사를 넘어 새로운 후손들이 걷고 사는 길
덕포진과 평화누리길을 잇는 길에는 "한옥까페"와 "한옥스테이촌"까지 산뜻하고 새롭게 자리를 잡고 들어서 있다. 멀리서도 찾는 덕포진 명물들을 오히려 가까이 사는 이들이 모른다. "덕포진 생활사박물관", "덕포진 교육박물관"도 귀한 역사적인 명소로 자리 잡았다. 먼 곳에서 먼저 알고 찾는 곳, 덕포진을 중심으로 한 역사와 문화가 현재와 어우러지고 만나는 새로운 역사문화의 장이 되고 있다.
걷기의 세계가 일상이 되면 행복한 공부의 숲이 될 수 있다. ‘나’의 세계에서 잠시 벗어나 숲길에서 마음의 연결고리를 다시 찾아 ‘새로운 나’로 거듭나는 방법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 길을 걷다가 한옥장인들의 대패질을 할 때마다 풍기는 솔향기을 만나고 걷는 것도 선물이다. 나무들을 깎는 장인들의 수수한 인심과 순수함은 나무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후손들이 살 집을 무던히도 많이 짓고 있는데 앞으로 100채 그 이상을 바라보고 한옥을 짓는단다. 소나무 향 풍기는 흙길을 걸으며, 숲의 오름길에 잠시 가뿐 숨을 몰아 쉬어 보는 것도 즐거움이다.
선사시대, 한반도 최초의 벼 재배지인 그 길의 거목(巨木)들에게 인사하다
덕포진을 중심으로 걷는 길은 어디로부터 시작해서 어디에서 끝나도 다 좋은 둘레길이다. 그토록 걷기의 세계가 탁월한 곳이다. 숲을 지나 마을 길로 들어서면 수령이 좋은 거목들이 줄지어 있어 든든하다. 대명항으로 가는 길목의 보호수들은 김포의 오랜 세월을 함께 해 온 거목(巨木)들이다.
또한 “덕포진은 사적 292호이다. 서해로부터 염하강을 거쳐 서울로 진입하는 길목(손돌목 등)의 험난한 지세를 이용하여 외세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조선 선조때 축조된 포대로 추정된다. 김포의 역사는 선사시대로부터 시작된다. 한반도 최초의 벼 재배지인 통진읍 가현리 나탄층에서 발견된 볍씨는 BC2010-25년경으로 측정되고 있으며 BC200년경에는 마한의 영역이었으며 삼국시대 초기에는 백제영역, 고구려(장수왕), 신라(진흥왕14년) 영역으로, 고려시대는 5개현, 조선시대에는 3개현이었다가 인조 5년(1627) 김포군으로 승격되어 8개면을 관할하게 되었다. 숙종 20년에 문수산성이 축조된다.(1694) 근대에 들어 문수산성전투(1866), 덕포진전투(1871,신미양요) 1876년(고종13년) 덕포진에 포대 15기가 설치된다." (덕포진 전시관)
그 강렬했던 오랜 역사의 땅과 만나고 걸어보는 길은 "새로움에로의 초대"이다. 과거의 오랜 역사와 세상을 있는 대로 보고 더 나은 세상과 삶을 향해 대화를 하고 걷는 길이다. 옛날도 있고, 오늘의 세상도 있고, 나도 함께 있음을 느끼게 된다. 걸을 때마다 느낌과 리듬이 있다.
특히, 서해바다 김포시 서쪽 끝 강화해협에 위치한 무인섬 부래도의 관광자원화가 김포 북부권 내륙을 잇는 교량이 건설되고 공원이 계획대로 조성되면 내륙과 섬이 하나가 되는 환상적인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다.
자신에게 선물하는 가장 좋은 여행은 당장 일어나 하늘을 배경으로 마을길과 이어지는 숲길을 걸어보는 일이다. 꽃과 이야기 하고 오랜 역사와 만나고 돌아오면, 단지 단순하게 걸었을 뿐인데 다시 새로워진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터벅터벅, 유유히, 성큼성큼, 움직임의 미학으로 함께 걸어 환한 세상을 만나볼 일이다.]
13:28~13:33 덕포진 한옥마을을 탐방
13:33~14:03 약암교를 거쳐서 경기 김포시 대곶면 약암로 965-7 번지에 있는 약암홍염천관광호텔로 이동
[약암홍염천관광호텔은 김포반도에서는 유일한 71개의 객실과 각종 부대시설을 갖춘 1급 호텔로서 1천여명을 동시 수용할 수 있는 맘모스탕이 있다. 또한 강화 - 대명리간 대교를 눈 앞에 두고 있어 강화도 나들이와 함께 서울과 인천지역 주말나들이를 겸한 홈염천 입욕으로 각광을 받는 곳이다. 홈염천의 특징은 조선시대 강화도령이었던 철종대왕께서 고향인 강화도로 행차 중 눈병이 나서 이 물로 눈을 씻어 눈병이 나았기 때문에 지명을 약암으로 하명하였다고 전해진다. 지하 암반 460M에서 숙성 용출돼 대기중에서 오염이 되지 않은 순수한 광염천수로써 염분이 바닷물 농도의 10분의 1정도며, 철분과 무기질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 용출 후 10분정도 경과되면 붉은색으로 변하는 것이 신비한 세계유일의 물이다.
성인의 약암홍염천 이용요금은 1만원이다.]
14:03~14:19 경기 김포시 대곶면 약암로 872-80 번지에 있는 광은사로 이동
14:19~14:40 전망대로 이동
14:40~14:44 사진촬영
14:44~14:48 경기 김포시 대곶면 약암리 산 108-2 번지에 있는 승마산(139.2m) 정상으로 이동
[승마산 또는 약산(藥山)은 경기도 김포시에 있는 산이다. 승마산은 정상이 말의 안장과 같이 생겨 말을 타고 달리는 형태와 유사한 것이 특징이다. 행정주소는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약암리 산108-2번지이다. 현재 공식 명칭은 승마산으로 불리며 약산은 조선시대 대동여지도등에 표기된 전래 명칭이다.
승마산 정상에는 현재 육각형 모양의 사방을 관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승마산에는 조선시대 봉수대가 설치된 곳으로 산 중턱에는 조계종 광은사가 자리잡고 있다. 한편 약산(승마산)의 약산봉수는 수안산(守安山)으로 옮겨진 바가 세종실록 지리지와 대동여지도에 언급된다.]
14:48~14:52 사진촬영
14:52~15:22 경기 김포시 대곶면 약암리에 있는 약암호텔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하여 탐방 완료
15:22~15:23 약암호텔 버스 정류장에서 운양역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60-5 버스 승차 대기
15:23~16:07 60-5번 버스를 타고 약암호텔 버스 정류장에서 운양역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 [44분 소요]
16:07~16:13 운양역에서 김포공항역으로 가는 김포골드라인 전철 승차 대기
16:13~17:05 운양역에서 김포골드라인 전철을 타고 김포공항역으로 가서 공항철도로 1차 환승하여 디지털미디어시티역으로 간 후 6호선으로 2차 환승하여 역촌역으로 이동 [52분 소요]
덕포진 둘레길 안내도
덕포진 한옥마을 위치도
김포 승마산 산행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