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통일교 초밥-생선회 및 호텔 사업 현황 | ||||||||||||||||||||||||||||||||||||||||||||||||||||||||||||||||||
김정언 기자의 번역뉴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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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 계열사들이 미국 내 각종 사업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다. 해산물 공급회사인 츠루월드푸드(TWF: '참세계식품'이라는 뜻)는 방어 사시미 등 새 브랜드로 일본 음식 마케트 확장을 노리고 있다. 언더커런트뉴스에 따르면, 뉴저지주에 소재한 "북미주 최대의 사시미 참치 공급자"로 자처해온 이 회사는 미국 주류계 마케트로 더 폭넓게 진출한다는 목표 아래 특별히 레스토랑 브랜드인 '토탈 하마치'의 일부를 갖고 지난 3월 17일 보스턴에서 열린 시푸드엑스포노스아메리카(북미주해산물박람회)에서 선을 보였다.
TW는 연간 약 180톤 분량의 양식 방어를 처리하고 있단다. 태드 쿠마가이 TWF 대리의 주장에 따르면, 5억 달러의 재원을 가진 이 회사는 일본과 영국 등 여러 국가에 자매회사를 두고 있으나 기존 판매지역 한계를 넘어 새로운 고객 베이스를 구축하기를 원하고 있다. 즉 지금까지는 주로 미국내 일식집들을 상대로 기본거래를 하며 현상유지를 해왔지만 조만간 이탈리아식/미국식/프랑스식 요리 등 주류계 레스토랑으로도 공급과 진출을 노리고 있는 것. 쿠마가이는 "날생선을 편하게 다루는 조리사들이 점점 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초밥 업계의 선구자로 자처하는 TWF는 현재 국내에 23개 브랜치를 두고 있다. 쿠마가이에 따르면, 그는 약 30년전 겨울철에 뉴욕시 맨해튼 할렘에서 스시(초밥/sushi)를 팔기 시작했는데 당시 유일한 고객은 고양이들이었다고. 이젠 판도가 바뀌어가면서 츠루월드 재팬(TWJ)은 이미 일본내 방어 양식업계와 파트너를 이룬 가운데 다음으로 다랑어 양식장과 파트너를 맺는 것을 차기 목표로 하고 있다. 근래 자연산 참치 속엔 수은 함량이 높아져 양식 참치가 더욱 인기를 끌고 있다면서. TWF는 츠루월드그룹(TWG)의 자회사이다. TWG 계열사(www.trueworldgroup.com)로는 그밖에도 어선 제조/판매업체인 츠루월드마린, 츠루월드마케트, 츠루월드 레스토랑 등이 있다. TWG 계열 회사는 지난 1970년대에 고 문선명 통일교 교주(2012년 사망)가 설립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해 11월 18일호에서 '수수께끼의 스시 공급업체'라는 기사를 올렸다. 불과 5 문단의 기사를 세 기자가 공동취재해 썼는데, 내용인즉 고 문선명 씨에 연루된 뉴저지 일리저벳의 TWF가 생선배급산업을 장악하다시피하고 있는데 정작 그 내막은 깊이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뉴욕시의 한인 스시 전문 쉐프, 니크 김씨는 다른 많은 스시 전문조리사들처럼 TWF의 생선을 사들인다. 이유는 "그들은 우리가 뭘 찾는지 정확하게 안다"는 것. 타임은 츠루월드가 초밥용 날생선을 공급하는 최대급 공급업체의 하나인데도 "수수께끼 회사"라고 전제, 정확하게 얼마나 큰 규모인지도 알 수 없고, 직원들조차 대표자가 누군지를 모르며, 돌아가는 내사도 불분명하다고 연달아 의문부를 날린 뒤 문제의 회사가 바로 통일교에 연계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타임은 현재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FFWPU)이란 이름을 쓰는 통일교가 1954년 고 문선명씨에 의하여 설립됐고 대규모 합동결혼식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타임이 인터뷰를 청한 통일교측 인사는 익명을 고집하며 FFWPU가 "츠루월드를 보유하곤 있지 않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2011년도 관련 법정기록들을 보면, 문씨의 아들 '프레스턴'(문현진)은 이 회사(TWF)에 대하여 "부적절하게" 권리남용을 하고 있다고 기록해 놓고 있다. 타임이 뉴저지의 TWF사로 관련 조회를 하려 시도했으나 회사 전화기 자동녹음 장치는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고 녹음메시지에도 응답이 없었다. 타임 기사에 따르면, 2013년 현재 TW는 전국 23개 도시에 판매망 오피스를 두고 있다. TW 대변인에 따르면 매일 "7,500여" 레스토랑(수 년 전의 딴 기사에 인용된 숫자보다는 대폭 줄어든 규모이다)에 물고기 배달을 하고 있다고. 그래서 타임은 직접 전국의 70개 초밥 식당에 전화를 걸어 물은 결과 그중 절반을 넘는 48개가 TW의 공급을 받고 있다고 답했다. 타임은 또 지난 1970년대에 문 교주가 "대양(大洋)이 곧 통일교의 영적인 미래요 재정적 성공의 중요한 자원"이라고 정의했다면서 오늘날 미국의 열띤 초밥 붐을 볼 때 그가 얼마나 '선견지명'이 있었음을 자신조차 미처 감잡지 못했다"며 기사를 맺었다. 이쯤 되면 타임 기사의 진정한 의도가 뭔지도 좀 모호해진다.
그러나 타임의 해당 기사를 읽은 블로거 노버트 하우프트 씨는 "자신들의 종교의 현상유지 상태에 실망한 젊은 이상주의자들을 통일교가 먹이로 삼는다"며 "어떤 종교인이든 선의의 '희생자'일 수 있지만 통일교의 도그마는 특히 크리스천들을 가장 노린다고 비판했다.
통일교도들이 그렇게 하는 첫 단계는 대상자에게 먼저 접근하여 위로나 친근감이 담긴 말을 던진 뒤 '가족'의 참된 의미를 제시한단다. 따라서 그 어떤 깨어진 가정의 잃어버린 영혼, 그 어떤 가출자, 자기 종교와의 커넥션을 상실한 그 어떤 젊은이들도 통일교를 "드디어 찾아낸" 고향쯤으로 여기기 마련이란다. 통일교는 정치보수적 노선을 걸어왔기 때문에 그 교도들은 누구나 진정 행복해 보이고 낙천적이고 직선적이고 진솔하고 "깨끗"해 뵌단다. 그들 주변엔 마약이나 알코올도, 흡연도 없고 어떤 형태의 섹스도 없다. 여기에 혹한 '교도 후보자'가 그들의 가르침을 받아 결국은 거의 절정적인 계시로서 문선명은 '재림주'이고 통일교는 세상 재건과 하늘 왕국의 도래를 위한 '하나님의 도구'로 파악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우프트에 따르면 후보자들은 자기 재산과 경력, 친구와 가족을 훌훌 떠나서 통일교에 가담하여 수도원적인 삶을 시작한다. 텅빈 홀 같은 기숙사에서 수십 명이 한데 모여 엄격히 남녀가 구분된 채 지내며 침대 시트를 폈다가 말았다가 하곤 한단다. 모두가 공공 식당에서 자기 식사를 하고 취사 당번과 설겆이/청소 기타 잔일과 하루 업무도 죄다 골고루 나눠 맡아야 한단다. 식사 전에는 통일교 찬송가를 부른다. 또 큰 그룹을 지어 기도하기도 하며 "하나님과의 사적인 대화"도 곁에서 다 들린다. 그들은 사실상 그들의 경전인 통일교 원리강론의 "신적 섭리"를 공부하고, 이미 죽은 문이 '재림 예수'로서 그들 모두에게 궁극적인 권력을 행사한다. 그들은 지상에 하나님의 왕국을 재건하고 아담 하와가 엉망으로 만든 에덴동산을 재창조하는 데 필요한 무엇이든 할 것이란다.
하우프트는 무니들 가운데 공학자/과학자/예술인/건축가/심리학자/은행가/건설업자/회사사무원 등 어떤 직종도 다 있어 통일교는 TWF처럼 "합법적이고 실제적인 비지니스"를 경영한다면서 그 일꾼들은 주당 40-80시간을 일하며 때로는 여러 직종을 뛰기도 하나 통일교회 일은 돈의 대가를 받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대가는 '하늘'에서 받게 되며, 평균 수준 이하의 사적 비밀이 없는 방과 테이블을 위해 범상해 뵈는 회사에서 보통의 일을 하여 하나님을 위해 돈을 벌게 된단다. 하우프트는 이어서 그것이 바로 생선배급업체들이 시장을 장악할 수도 있게 된 길이라며 노동중심 업체인데도 노동의 대가가 없는 이 현실에 대해 자신이 어떻게 잘 알겠냐고 물은 뒤 "나도 스무살도 안 되던 한 때 세상의 어떤 변화를 기대하고 무니가 됐었다"고 회고했다.
그런가 하면 캐나다의 (필명)몰리뮤 블로거는 미국의 생선 마케트를 쥐어흔드는 '대부'(Godfather) 아닌 대구 아비(Codfather)가 누구냐고 묻고 다름 아닌 통일교 곧 "무니들"이라고 답한 뒤, '참세상식품'이라는 이름부터가 유머감각도 없고 헛기침을 자아낸다고 풍자했다. "날생선처럼 설익은 이런 폭로를 하다간 침상머리에 생선대가리가 보일라" 한 그는 "이 계시가 내 초밥 먹성을 망쳐놓아 한참을 가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데 타임의 이런 기사는 실상 같은 소재를 다룬 이미 여러 해 전의 다른 언론 기사보다 퍽 뒤진 느낌이 든다. 2006년에 크게 주목을 끈 시카고지역 언론인 시카고 트리뷴(CT)의 특집기사에 따르면, 1980년대에 다섯 명의 젊은이들이 엘스턴 애브뉴에 작은생선가게를 열었다. 흔히 '무니'라고 불리던 그들의 일본인/미국인 친구들은 가혹할 만큼 긴 시간을 일하고 공공아파트에서 지내며 중노동을 할 동안 이들을 통해 서서히 '상업제국'의 기초가 마련되고 있었다. 자칭 '메시아'였던 "문선명 목사"의 비전에 이끌려 고안해낸 글로벌 비지니스를 성취하기 위해 자기 몫을 다한 사람들이었다. 이런 얘기는 앞서 인용한 전 통일교도 노버트 하우프트와도 일맥상통한다. 약 70년전 인류를 구해 내라는 "예수의 명"을 받았다는 선언 아래 통일교를 창시한 문선명은 "보수적 정치학, 영리한 자본주의, 합동결혼식 같은 스펙터클을 매디슨스쾌어에서 치를 정도의 기민한 육감으로 자신의 제국을 건설했다"고 이 신문은 썼다.
아무튼 30년전 엘스턴 애브뉴에 진출한 선구자 '무니'들 5명 가운데 다케시 야스히로는 미국인들에게 생선을 공급하는 거대회사 TWF의 최고위급 중역이 됐다. 이들은 문선명의 메시지에 감화되어 서로 결속한 가운데 드높은 경쟁의 해산물업계에 탄탄히 발을 굳혔단다. 문 추종자들의 해물업은 바로 TWG에 의하여 일사천리로 움직였다.
트리뷴은 "자신이 문의 종교운동을 직접 지원하고 있다고 생각할 해물 애호가들은 적겠지만 버터가 발린 참치 한 조각을 먹거나 장어 한 쪽을 우둑우둑 씹고 있노라면 결국은 그렇게 하고들 있는 셈"이라며 CT가 직접 조사한 결과 시내 초밥 레스토랑 19중 17개가 TWF와 거래할 정도라고 밝혔다. CT는 과거 30여년간 문선명은 '추종자 세뇌'와 함께 "교회로부터 이득을 취한다"는 비난을 받았다며 "미국 언저리에서 주류계로 진출하는 있을 법 하지 않던 여로를 걸어간 점에서 그와 초밥은 서로 흡사하다"고 썼다. 이 신문은 또 "나란히 더불어 함께 가는 이 두 가지 길이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면서 미 해산물업계를 재활성화하고 장악하여 통일교 활동을 뒷받침하려던 문의 꿈을 반영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선명은 지난 1980년 '참치의 길'이라는 연설에서 "나는 어선 건조로부터 시작해 이 시스템 전체를 이루어 왔다"며 "어선을 만든 다음엔 물고기를 잡아서 처리하여 시장에 내고, 배급망을 형성한다. 이것은 단지 청사진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 놓고 있다"고 선언했다. 그는 또 이 연설에서 자신을 "바다(또는 대양)의 왕"이라고 선언했다. 시카고 트리뷴에 따르면 "그(문)의 예상이 적중(?)한 탓인지" 알래스카에서부터 매서추세츠 글로스터까지 미국 어업계를 거의 통일교가 석권하다시피하고 있다. 이 현상은 마치 과거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이 평정하기 전, 마피아들이 뉴욕 풀턴 해산물 시장을 장악하던 시절을 연상시킨다.
연전에 통일교의 한 대변인이었던 필립 섕커 목사는 "어물업이 통일교와 조직적/법적인 커넥션을 이룬 것은 아니다"며 "단지 통일교 신도들이 설립한 비지니스였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참고로, FFWPU 미국지부의 '가족축복사역부'(BFM)에서 지난 14년간 전국 디렉터를 맡고 있던 섕커 목사는 2013년 10월경 사임했다. 통일교 자체 자료에 따르면, 미시건주 디트로이트 출신인 섕커는 지난 1972년 18세의 나이로 통일교에 입문했다. 그는 개척자와 교육가적 자질을 발휘했고 아프리카와 동남아에서 포교사로 7년간 활약했다. 특히 미국에서 통일교 원리 강연의 명강사로 활약했고 당시 강연내용의 녹음은 지금도 활용되고 있다. 그는 1999-2003년 홍보담당관, 2004-2008년엔 교육담당관으로, 2009-2013년은 BFD의 디렉터로 일해 왔다. 섕커는 특히 합동결혼식 준비를 위해 젊은이들을 매칭(성혼/짝짓기) 과정으로 이끄는 교육방식을 개발했고 가족매칭핸드북(제2판) 공동필자이기도 했다. 그의 후임자로는 크리센셔 디고드씨가 선임됐다. 이들 말고도 통일교의 미국인 고위인사로는 FFWPU 미국지부의 신임회장 마이클 밸콤 박사, 문 교주가 죽기 전 직접 임명한 유일한 통일교 '대주교'인 김기훈 미대륙 총무, 세계평화여성연합의 안젤리카 셀 총재, 기업투자자산 오피스 디렉터인 마이클 젠킨스 목사 등이 있다.
섕커는 또 이런 '관계성'을 역사 속 성공의 '신화'를 이뤄내면서 몰몬교에 거액을 기부했던 몰몬교도 J. 윌러드 '빌' 매리오트(매리오트 호텔그룹 창업자)에 비견하기도 했다. "매리오트가 몰몬교를 지원했지만 아무도 매리오트호텔이 몰몬교와 거래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그는 "마찬가지로 문 목사님의 비전에서 영감을 받은 신도가 세운 모든 업체가 교회를 지원하는 위치에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섕커의 말과는 달리, 통일교와 해물업과의 '링크'는 문과 통일교 고위인사의 말은 물론 정부 기록이나 법정 기록 등에서 자주 불거져 나왔다. 문씨 자신이 미국 해산물업 장악 전략을 수립했고, 착수지원을 했으며, 초기 회사중 하나를 직접 맡아 디렉터로 활동했다.
통일교는 면세혜택을 받는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란 명칭 아래 조직화돼 있고 업체들은 별도의 비영리회사인 통일교국제재단(UCI)에 속해 있다. 1978년 문의 업체들에 대한 연방의회의 조사 결과는 "UCI가 다양한 문의 조직체와 프로젝트를 위한 정산소(clearinghouse) 역할 이외에 다른 독립기능을 갖는지 알 수 없다"였다.
때로는 보다 직접적인 링크도 드러난다. 조선업체 US마린 Corp.은 통일교와 본부 오피스를 나눴고 있으며 문서에 따르면 통일교를 주된 주주로 두고 있다. 야스히로에 의하면, TW의 이익금 일부는 상위 회사를 통해 통일교로 들어간다. "우리는 남을 섬기기 위해 산다"는 그는 "이것은 우리가 강한 기업체를 구축함으로써 섬기는 방식이다"라고 주장한다. 문선명은 일찍이 1974년에 해산물 산업이 통일교 미래 경제의 기초를 놓을 바탕 비지니스가 될 것을 "내다본" 것으로 평가된다. 사실 그의 기업체들은 워싱턴타임스 등 일부 통일교 기업들이 재정난에 처해 있을 때 막대한 돈을 쏟아 넣기도 했다.
해물업은 문이 세상을 뜬 후 통일교를 오래 지탱하는 데 꼭 필요한 이익창출의 인프라구조를 형성해 왔다. 그런데 TWF의 '성공의 뿌리'는 시카고에 있었다. 야스히로의 생선도매 배급업은 엘크그로브 빌리지의 컴플렉스에서 처리되고 있다. TWF와 거래하는 업체들은 질 좋은 스시를 배달받기 위해 때로는 울며 겨자 먹기식 '종교적 예약'을 하기도 한다. 시카고에서 '카스'를 경영하는 하루코 이마무라 씨는 "우리는 종교에 관해서는 생각지 않으려고 애쓴다"면서 "그들의 종교에 동의하지도 않지만 비지니스와 무관하다"고 잘라 말한다. 탈세혐의로 1980년대에 13개월형을 산 문교주 자신처럼 통일교 산하의 해산물 업체들도 때때로 미국법을 어기곤 했다. 2001년 6월 알래스카 카디액의 TW 어물처리공장은 보트당 1회 30만 파운드(1,359t)의 적재한도를 넘는 양의 대구를 받아 실었다가 유죄를 시인, 검찰과의 타협 끝에 15만 달러의 벌금형과 5년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1982년 뉴욕시 배심회의에 의해 '탈세음모' 혐의로 13개월형을 선고받고 커네티컷 댄베리의 연방교도소에 수감될 당시의 문선명 통일교 교주. 무니들은 '종교자유' 박해로 여겼다.
통일교계열 해산물업체의 문제점은 이뿐만 아니고 연방 식품의약청(FDA)에게 위생문제로 찍히기도 했다. 디트로이트 근교의 TW 공장은 FDA의 연이은 검사 끝에 "총체적 비위생환경"으로 "찍혀"버렸다. FDA 보고에 의하면 당시 공장 매니저들은 검사관이 제조공정에 진입하지 못하게 막거나 문서 제보를 거부하기도 했다. 공장 매니저는 검사관들에게 자기네 상사인 TW 감독이 "굉장한 사람이고 새 종교(통일교)의 일각"이라며 "우리가 그 분을 이용하려면 '하나님이 너희를 손 볼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당시 한 직원은 스키마스크를 쓰고 한 여검사관에게 다가와 손가락으로 총 모양을 만들어 가리키며 "제복을 벗게 될 것이다. 빵!"하고 총을 쏘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 FDA는 그렇게 회사측의 온갖 방해와 협박을 받아가며 검사에 저항하는 TW의 시설검사 명령을 이례적으로 확보했다. 공장은 나중에 폐쇄됐다. 1970년대 말기에 문선명은 소위 '대양섭리'의 일환으로 미 전국 50개주에 각각 해물업 기지를 구축하는 계획을 짰었다. 그러면서 그는 이 바다 추수의 꿈이 통일교 자금회전을 도울 뿐더러 "세계를 먹여살리고, 미국의 어업을 구해 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합동결혼식이 일본인 통일교도를 미국시민으로 만들어주니까 사업계획에 한 몫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제언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되면 외국인들에게 적용되는 어업금지조항을 피할 길도 열리는 셈이다.
문은 앞서 언급한 '참치의 길' 설교에서 "수년전 미국정부는 앞바다 조업을 하는 외국 어선에 대해서는 200마일 제한을 설정했다"며 "그러나 일본인들이 미국인과 혼인함으로써 우리는 외국인들이 아니다. 그러므로 일본인 형제들 특별히 미국인들과 짝지은 일본인들은...(통일교 업체의) 어업과 배급의 리더들이 될 것이다"라고 노골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거룩하신 참 부모"가 짝 지어주는 합동결혼식의 일부 속셈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싫든 좋든 한국이 낳은 역사적 인물의 하나인 문은 실로 미국인들의 입맛을 동양적으로 바꿔 놓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스시와 사시미의 인기는 1986년쯤에 이미 미국인들의 의식을 바꿔버렸다. 한 때 일본인들이 "동물처럼 날 생선이나 먹는다"고 흉을 보던 미국인들은 이제 "값비싼 초밥식당을 드나들며 돈을 물쓰듯 한다"고 지적한 문은 교도들에게 미국에 "1,000개의 식당을 열도록" 촉구하기도 했다.
문과 추종자들은 기업체들을 사슬처럼 줄줄이 엮어 태평양 및 대서양에서 각 레스토랑의 테이블에 이르기까지 스시/사시미를 향한 미국의 점증하는 식욕을 자본화할 수 있는 독특한 구조를 창출했다. 일부 업체의 착수자본은 통일교가 대줬다. 통일교 자금의 오용 의혹에 관한 1978년도 연방의회 보고서에 따르면, 1976년 10월부터 77년 5월까지 문선명은 약 100만 달러의 수표를 해산물 관련업체를 위해 발행해 주었다. 일례로, 통일교는 사양길이던 조선업체 '매스터 마린'을 거두어 들이면서 자기네 네트워크의 '차기 링크'에 눈길을 돌렸다. 자신의 소명을 어업으로 느낀 통일교도들은 매스터 마린사가 만든 보트에 힘을 받아 거침없이 푸른 바다를 향해 나아갔다. 문의 '대양교회'는 매년 여름 현재와 미래의 추종자들을 한데 모아 문이 그들을 위해 사다둔 80대에 나눠 타고 40일간 참치잡이 여행을 하곤 했다. 매서추세츠 글로스터 해변은 우연이 아니게도 통일교에 연루된 해산물 처리공장의 첫 '홈'이 되었다. 문은 '참치의 길' 설교에서 "글로스터는 이젠 거의 무니 타운입니다!"라고 자랑스레 선언했다. 그러나 그가 쓴 이 '무니'라는 호칭은 그 이후 모독적 언어로 "무늬 잡혀" 갔다.
때때로 문의 추종자들과 제휴업체들은 주요 어업 타운들의 큰 덩어리를 구입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동네 사람들의 분노와 짙은 의혹을 사곤 했다. 또 로마 천주교 수녀가 운영하던 한 요양원이 있는 저택을 사들였을 때도 큰 물의를 일으키자, 문의 인형이 인근 항구에 매달린 채 화형되기도 했다. 그러나 과연 세월이 약인지 그런 저항감은 점차 사라져 가고 비지니스는 비지니스대로 "굴러가는" 등 약발이 먹혀 들어갔다. 앨라배마주 바이유 라바터의 동네 지도자 러슬 스타이너 씨는 당초 새 정착자들과 부딪쳤다가 나중엔 현저히 누그러졌다. "그들은 동네에서 아주 능동적이고 아주 나이스한 사람들예요. 실상은 말입니다." 이곳의 새우잡이는 멕시코만 일대에서 최대 규모로, 인근의 한 조선업체는 300여대의 어선을 제작했을 뿐더러 미국 해안경비대와 해군의 선박수리까지 맡아 해왔다. 물론 새우잡이가 번창하고 있다. 회사 직원은 새우 도매업체인 TWF가 최근 한해 2억5000만 달러의 재원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TWF는 230여대의 냉동트럭으로 최소 7000여 군데의 초밥 식당과 고급 레스토랑에 생선을 공급해 왔다. 트럭들중 다수는 전국의 (최소) 20여 배급업체를 상대로 거래해 왔다.
TWF의 알래스카 공장은 자체주장에 따르면, 매년 최소 약 90만톤의 연어/대구류 등을 처리한다. 글로스터에 있는 바다가재 관련 업체인 IL는 동부연안 최대급인 거대한 냉동고에서 바다가재와 아귀를 전 세계로 실어나르고 있다. 츠루월드는 영국에 한 판매회사를, 한국/일본 등지에 오피스를 두고 있다. 전술한 대로 TWF의 현 대표중역인 타케시 야스히로는 1980년 시카고에 도착해 가장 초기의 스시업 전진기지 격인 레인보우피시하우스를 개점할 당시 일리노이주에는 스시 업체가 얼마 없었다가 현재는 일리노이주 전체에 수백 군데가 있다. 물론 야스히로 자신의 사업도 잘 되고 있다.
그는 본래 일본 성공회 사역자의 아들로 미국에 이민 온 뒤 샌프란시스코에서 학생이던 시절 통일교로 개종해 1982년 7월 1일 뉴욕시 매디슨 스쾌어가드에서 2,000여 쌍들과 함께 문의 집례로 합동결혼식을 올렸다. 그와 통일교 동료들이 시카고 북서쪽에 개점한 레인보우피시하우스는 시카고만 아니라 전국을 상대하는 주요 스시 공급업체이다. 이 업체가 훗날 TWF가 되어 전세계의 참치를 사들여 공급하고 있으며 시카고에서 대외구매와 최상등 가격 산정에만 매달려있는 직원들이 7명이다. 판매요원들은 한국어/일본어/중국어 등을 자유자재로 구사해 이민 1세대 거래상인들을 편하게 해 준다. 오리지널 레인보우 근처에 피시가이마케트를 약 30년째 경영해온 경영하는 빌 두건 씨는 "모든 마켓마다 거점을 두고 종교적 열성으로 뛰는 지구촌적인 회사와 경쟁한다는 것은 터프한 일"이라고 애로를 토로했다. 그러나 TWF의 참치 구매요원 에디 린 씨는 최근 '포천피시'사로 이전해 버렸다. TW가 과도히 종교적인 것은 아니나 비통일교도로서 진출 가도가 제한돼 있음을 그는 느꼈다고 밝혔다. "그들(회사측)이 신도와 비신도를 가려서 보는 태도에서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이에 대하여 야스히로는 "설립자가 바로 통일교 교주임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교회에 참여하고 안 하고에 큰 차이가 있다. 차별은 없지만, 우리의 문화는 분명히 신앙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명언했다.
통일교를 비판해온 시카고의 청소년 사역자 왕 김 씨는 지역의 한인 초밥 식당들 가운데 문의 이단성 때문에 분명히 통일교 계열사와 거래하지 않는 곳이 더러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가 자칭 메시아라고 한 점을 우리는 특히 혐오합니다." 그러나 김이 수소문해 본 결과 친구 식당들의 스시는 통일교 계열 업체 것이었으며 품질 때문에 고객을 위해 쓰지 않을 수 없다고 밝히더라며 씁쓸해 했다. 그러나 충실한 통일교 추종자들 가운데도 오랜 의문을 해소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야스히로의 경우 과거 30년간 자기 경력을 바쳐 가며 문의 드림 성취를 위해 뛰었는데 당시는 문의 비전 가운데 세계기아의 "해결" 사안도 포함돼 있었으나 아직도 성취되지 않고 있다. "과연 우리가 세계 기아를 해결할 것인가 하고 나는 맨날 기도합니다." 야스히로는 TWF가 궁극적으로 기아 종식을 도울 테지만, 그때까지는 자신의 역할이 비지니스를 키우고 돈을 버는 것이라 믿고 있다. 지난 2007년 여름, TWF는 고래고기를 미국인들의 식탁에 올릴 '꿈'도 꾼 적이 있다. IPS 뉴스의 스티븐 레히 기자는 2007년의 한 기사에서 통일교 비지니스와 일본 고래잡이의 미래 '연계성'에 관해 보도했다. "1930년 이래 교쿠요(즉 교쿠요/極洋 포경주식회사를 가리킴)는 약130,000마리 큰고래들의 죽음으로부터 이익을 취득해 왔다. 고래잡이는 1986년 이래 지구촌에서 금지돼 왔으나 일본은 매년 남극해에서 1,000여 마리의 고래를 잡으면서 '과학연구'를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일본의 주요 슈퍼마켓에서는 고래고기가 발견되며 아마도 교쿠요는 그 주된 배급업체일 것이다. (중략) 과연, "[조지 부시 등] "나라의 우두머리들을 (거의 취미삼아) 콜렉트"하는 자칭 '참 아버지' 및 '메시아'인 문이 성공적으로 고래잡이에 연계된 경제벤처를 성공적으로 론칭할 수 있을까?"
섬나라인 일본은 예로부터 고래잡이로 명성 아닌 악명을 떨쳐왔다. 일본인들은 다른 생선 회와 함께 고래고기도 유난히 즐긴다. 2011년 7-8월 일본 대중을 상대로 한 AP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2%가 고래사냥에 대해 지지, 35%가 중립, 13%가 반대를 표시했다. 일본어로 '호게이(捕鯨)'이라고 불리는 고래잡이 산업은 교도 호게이, 교쿠요(極洋) 호게이, 토요 호게이 등의 굵직한 고래잡이 회사들이 포진해 있을 만큼 흥왕해왔다. 아마도 근래의 자연/환경 보호운동이 없었더라면, 온 세계 고래의 씨를 말렸을지도 모를 만큼. 일본의 선사시대였던 '조몬(縄文)'기의 무덤에서 이미 고래고기를 먹은 흔적이 있었고, 아이누족의 민담에도 오랜 고래잡이 역사가 나타나고 손으로 작살을 던진 고래잡이에 관한 기록은 12세기부터이며 구체적/조직적인 해안포경업은 1570년대부터 시작돼 현대에 이르고 있다. 17세기의 고래잡이 어부 다이지 카쿠에몬 요리하라는 효율적인 포경 그물인 '아미토리시키'를 제작하기도 했다. 일본의 현대식 고래잡이는 메이지 시대인 19세기에 활약한 '일본 고래잡이의 아버지' 오카주로(岡十郎)에 의해 시작됐다. 메이지 정권이 현대형 고래잡이 기술을 연구하려고 미국과 유럽 등지에 보낸 일본 학생들의 한 명이었던 오카는 스칸디나비아 일대를 여행하면서 지식과 도구를 습득해 1898년 최초의 포경회사인 니혼엔요교교(日本遠洋漁業 훗날의 '토요호게이'사)를 설립, 대포가 달린 노르웨이 포경선 '모르텐 페더슨'호를 갖고 1900년 2월 4일 첫 고래를 잡았다. 오카는 1910년에 고래잡이 산업이 일본과 한국 근해를 비롯한 바다에서 "무진장의 가능성"이 있다고 굳게 확신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고래는 덩치가 큰 만큼 그 살륙 광경도 한 마디로 '피투성이'다. 최근엔 끝에 수류탄이 달린 작살을 날리기도 하며 그대로 죽지 않을 경우는 죽을 때까지 총을 쏜다. 위의 기자는 과연 '재림주'요 '참 아버지'라는 사람이 잔인한 고래잡이에도 뻔뻔하게 연루될 것인지를 묻고 있는 셈이었다. 뉴요커 호텔의 옛 영광 회복? 한편 뉴욕시 맨해튼에 소재한 또 다른 통일교 계열사인 '뉴요커 호텔'(NYH)은 지난 20년간 "2류급 호텔"의 명성(?)을 면치 못하다가 새로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에 들어간다. 때마침 2 블럭 밖 인근에서 퀸즈보로의 플러싱 한인사회를 연결하는 지하철 '7호선'의 확장 개보수를 비롯, 근경을 바꾸는 수백 억 달러 규모의 헛슨 야드 메가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어, NYH 보수공사도 덩달아 힘을 받을 전망이다.
아울러 그동안 긴축예산 중심의 라마다 호텔/모텔 체인에 속해 있다가 좀 더 업그레이드된 프랜차이즈로 차원을 높여 올해 3월부터 윈덤호텔 & 리조트 체인에 속한 '윈덤뉴요커호텔'(WNYH)로 개칭됐다. 이에 따라 윈덤 체인중에서는 최대 호텔이 됐다.
과거 1920-30년대에 유행한 '아르데코 형' 장식 디자인으로 명성을 떨쳤던 이 건물은 맨해튼 미드타운인 8애브뉴 및 34가 코너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1975년 통일교가 매입했다. '가먼트 센터'로 개발된 주변엔 펜실배니어 스테이션, 매디슨스쾌어가든, 타임스쾌어,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등 명소가 즐비하게 늘어서있다.
1994년 호텔로 재개된 뒤 약1억달러를 들여 대규모의 현대화 보수공사를 해 왔다. 로비와 볼룸 등에만 약 3,000만 달러를 투입했다. 이와 관련, 앤 피터슨 NYH 사장은 "위대한 올드 레이디(옛 건물의 명성)가 되돌아온다"며 "그녀의 광채와 영예를 회복하는 모습을 지켜봐 달라"고 주문했다. 1920년대에 맨해튼 가먼트센터 지역 개발의 일환으로 매크 캐너사가 건립하고 슈거맨 & 버거사가 설계한 이 호텔은 설계 당시보다 규모를 키워 당초의 38층에 800만 달러 규모로부터 43층에 2250만 달러로 대폭 확대 건립해, 다년간 뉴욕시 최대 규모를 자랑해 왔다. 총93,000 평방미터에 1083호실(건립 당시 2,500개)에 수위트룸 64개 규모로 1930년에 오픈, 전체 43개 층 가운데 현재 21개를 호텔로 사용하고 있고 숙박비가 중급 수준이다. 또한 당시 2200W 이상의 최대급 사설 직렬식 발전소를 두어 1965년 미국 동북부의 대정전 사태 때도 영향을 받지 않고 자가공급하기도 했다. 전성기 시절 이 호텔엔 한때 개인/그룹용 사석 살롱 10곳, 5개의 레스토랑이 있어 매스터쿡만 35명이 고용돼 일했었고, 42개 의자와 20명의 매니큐어사들을 둔 세계최대급 이발소, 92명의 텔레폰걸(교환양), 하루 35만 벌의 의상을 다루는 150명의 세탁요원 등을 두고 있었다.
1940, 50년대엔 베니 굿맨, 조 디마지오, 타미 도어시 등 '빅밴드'를 끌어들여 여흥을 북돋고 할리우드 황금시 대의 명우 스펜서 트레이시, 존 크로포드와 당시 쿠바 총리 피델 카스트로,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는" 무적의 권투왕이었다가 조 프레이서제 무참하게 깨져버린 무하마드 알리가 회복기를 거치는 등 수많은 명사들이 거쳐간 곳이다. 또한 현대적 전력 개발에 기여한 발명가/물리학자/미래학자, 니콜라 테슬라가 생애의 마지막 10년을 이 호텔 수위트룸 3327에서 비둘기들을 벗삼고 조용히 일부 명사들을 만나며 거의 두문불출하다시피 지내다 죽은 장소이다. 그러나 규모가 큰 데다 뉴욕 경제와 인구분포가 달라지고 국내 호텔들이 현대화 가도를 달리면서 한때 '사양길'을 걸으면서 주인이 여러 번 바뀌었다가 1972년 4월 마침내 문을 닫고 프렌치 폴리텍 인스티튜트(FPI)가 일시 구입하여 병원으로 용도를 바꾸려다 포기하고 비워둔 채로 1975년, 당시 560만 달러에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HSAUWC)에 팔았다. 통일교는 '뉴욕시 구원'을 위한 차원에서 이 건물을 '월드미션센터'로 개칭하고, 주로 통일교도 상대로 숙박 또는 행정용으로, '합동결혼식' 행사 등에 사용하기도 했다. 문선명은 1976년 6월 관중석이 절반 정도 채워진 양키스태디엄에서 제200차 '갇블레스 아메리카 연차대회'에서 설교하던 도중"세계는 미국에 대한 믿음을 잃었고 뉴욕은 부도덕과 부패의 정글이 되었다"며 "하나님은 나에게 의사의 역할, 소방관의 역할을 하도록 보내셨다"고 주장했다(그 얼마 후 문은 탈세혐의로 수감된다).
1994년 시설 일부를 다시 호텔로 재개했고 2,000만 달러를 들여 1999년 보수공사를 끝내기도 했다. 현재 이 호텔은 뉴욕시 B클래스 공간중 최대의 인접블럭을 상대로 마케팅을 해 모두 5층에 해당하는 287,000 평방피트에 보험회사와 바비존 모델링 스쿨 등이 입주해 있다. 2007년 9월에는 포댐 대학교 4학년생이 자신의 '기숙사' 방에 숨어든 침실 벌레들 때문에 온몸에 두드러기가 생겼다며 무니들과 라마다 호텔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2007년엔 두 번 째 주요 보수공사에 들어가 7,000만 달러를 들여 2009년 끝냈다. 오는 2017년 또는 2018년에 '패션위크'가 인근 헛슨야드로 이전됨에 따라 이벤트 참가자들을 유치할 계획도 세우고 있단다.
상업언론인 '뉴욕업저버(NYO)'의 회고기사에 따르면 지난 1982년 7월 1일 문선명 추종자들 약 4,000명이 뉴요커 호텔 2층 그랜드볼룸을 드나들었다. 그들은 문이 '피크'해 준 짝과 서로 만나 성혼에 들어갔다. 이들은 같은 날 모두 정장을 한 채 불과 한 블럭 떨어진 매디슨스쾌어가든(MSG) 에 들어가 모두들 남편과 아내로서 문의 '선언'과 '축복'을 받았다. NYO의 표현에 따르면, 통일교에 매입된 이래 뉴요커호텔은 "무니들의 그림자를 떨쳐 버리려 힘껏" 몸부림쳐 보기도 했단다. 그러나 표범의 점무늬처럼 떨치기가 어렵다가 최근 그보다는 사업의 무늬를 더 내고 있다. 결국 통일교는 애당초 언필칭 '신령'을 내세운 것과는 달리 돈벌이 사업을 위주로 하는 세속종교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종교를 빌미삼은 기업제국이든지. ⓒ 교회와신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