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19일 MBC 아침정보쇼 <피자의 아침>을 통해 방영된 ‘에이즈 소문과 진실’의 파장은 의외로 컸다. 당초 취재의 목적인 연예인 에이즈 괴담의 실체를 밝히는데는 실패했으나 대신 국내 최초로 직군별 에이즈 감염자와 환자의 수를 알리는데는 성공했기 때문이다.
<피자의 아침>이 입수한 국립보건원의 대외비 문건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에이즈에 걸린 것으로 보고된 감염자와 환자는 총 1천1백22명. 일반적으로 에이즈에 걸린 사람은 유흥업에 종사하는 여성이나 선원 등으로 추측되었지만 이번 문건에 따르면 유흥업에 종사하는 여성 2백여명, 선원 1백76명에 이어 사무직 1백46명, 생산직 83명, 주부 64명, 학생 33명, 군인 27명, 연예인 14명에 종교인도 10명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청자들을 가장 경악시킨 것은 에이즈에 걸린 주부가 무려 64명이나 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남편을 통해 감염된 경우로,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난잡한 성생활을 통해 감염된 것이 아니었다. <피자의 아침>팀이 만난 주부 에이즈 환자 가운데 남편에게 감염된 사실을 모르고 아이를 낳는 바람에 일가족 전원이 에이즈에 걸린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종교인 10명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도 충격적이다. 대외비 문건을 통해 이 사실을 확인한 <피자의 아침>팀은 그 가운데 ‘신부가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했지만 국립보건원측에서는 ‘신부는 없다’고 단언했다고 한다. 국립보건원측에서는 종교인의 범위에 탁발승까지 포함된다고 밝히고 있으나 <피자의 아침>팀은 10명 모두 탁발승은 아닐 것으로 보고 있다.
특정인의 이름까지 거론되며 떠돈
연예인 에이즈 괴담
하지만 이 가운데 가장 큰 파장을 몰고 온 것은 역시 연예인 14명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연초부터 연예가를 중심으로 꾸준하게 떠돌고 있던 연예인 에이즈 괴담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최근까지도 수그러들 줄 모르고 떠돌고 있는 연예인 에이즈 괴담은 연예계 실력자인 A씨로부터 시작된다. 난잡한 성관계를 맺어온 A씨가 에이즈에 걸렸고 이는 동성애 파트너였던 남자 연기자 B씨에게 전염됐다. 이어 B씨와 성관계를 가진 여자 탤런트 C씨가 역시 에이즈에 걸렸고 다시 그의 남자 친구인 영화배우 D씨에게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이 에이즈 괴담 선상에 있는 연예인은 모두 6명. 그리고 이들은 모두 대단한 성적 편력을 해온 인물이라 각각 최소한 10여 명의 남녀와 성관계를 가졌다는 것이다.
이 에이즈 괴담은 A씨가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포에 사로잡힌 B씨를 비롯한 30여명의 남녀가 지난 겨울 비밀리에 해외로 나가 집단으로 에이즈 검사를 받았다는 것으로 끝이 난다.
얼마 전부터는 이 괴담에 여자 탤런트 E와 남자 탤런트 F가 국내 모 병원에서 에이즈 검사를 받았다는 소문이 추가되었다. E의 경우는 몸이 아파서 병원에서 검사를 받다가 에이즈 양성반응이 나타났고 이런 사실이 병원 직원들의 입을 통해 일반에 전해졌다는 제법 그럴싸한 말까지 나돌았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이 마지막 소문만은 확실하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만약 이들이 국내에서 검사를 받고 에이즈 감염자로 밝혀졌다면 당연히 국립보건원에 보고가 되어야 하는데 국립보건원 방역과의 유병희 사무관은 <피자의 아침>과의 인터뷰에서 “14명 가운데 현재 활동중인 연예인은 없다”고 했다. 이 사실은 국립보건원 방역과장인 이종구 박사도 확인해줬다.
게다가 국립보건원에서 내린 연예인의 정의가 연예인 에이즈 괴담의 실체를 무색하게 했다. 보건원측의 분류법에 따르면 예술연예인은 ‘대중을 상대로 공연이나 예술 분야에서 종사하는 사람’이라는 것. 그러므로 여기에는 밤무대 가수에서부터 일반인들에게 잘 안 알려진 자칭 예술인까지 총망라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럼 괴담은 한낱 괴담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렇게 넘기기에는 유병희 사무관의 한마디가 여운을 남겼다. 그는 ‘백퍼센트 장담은 못한다. 연예인이 가명을 사용한 경우도 있을 수 있고 실제로 감염자로 확인되는 경우 비밀관리하지만 이름이나 주민등록번호가 실명인지는 확인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또한 대한에이즈 예방협회 이창우 사무국장 역시 ‘돈이 좀 많은 사람은 미국으로 가고 조금 덜 많은 사람은 일본으로 간다. 그리고 돈 없는 사람이 한국에서 한다’며 유명인들은 외국에 나가 검사받을 가능성이 있음을 알려줬다.
게다가 전문가들이 예상하는 에이즈 환자는 국립보건원에 보고된 인원의 10배수. 에이즈는 감염된 이후에도 10년 이상 아무런 징후가 나타나지 않은 경우가 보통인데다 병원에서 혈액 검사를 하지 않은 사람들, 비밀을 고려해 외국 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사람까지 포함시키면 그 정도의 인원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연예인 감염자는 1백40여명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피자의 아침>은 이번 보도로 얼마전 SBS <뉴스추적>을 통해 보도된 ‘연예인 매춘’처럼 알맹이 없이 의혹만을 제기하는 데 그쳤다는 비난을 받았다. 결국 어떤 연예인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도 밝히지 못한 채 연예계에 1백40명 가량의 에이즈 감염자와 환자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새로운 괴담만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취재를 주도한 이상호 기자는 “14명 안에는 괴담에서 거론되었던 유명 연예인이 없다고 해도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몇몇 연예인이 일본에서 치료를 받은 사실은 확인했다”고 밝혔다. 우리에게 얼굴이 알려진 연예인 가운데 에이즈 환자가 있음을 확신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보도로 인한 사회적인 파장이 너무 커서 당초 3일분으로 예정되었던 방영 횟수가 이틀로 줄면서 그 부분이 삭제되어 뉴스의 신뢰성이 줄어든 것을 아쉬워했다.
14명안에 스타급 연예인은 없지만
그렇다고 아니라는 증거도 없다?
그에게 에이즈에 걸린 연예인이 있음을 확인시켜준 사람은 일본의 에이즈 센터에서 한국인 환자들을 위해 통역을 담당했던 사람이다. 3개월 전부터 본격적으로 취재에 나섰던 그는 취재 과정에서 일본 통역자를 소개받았다. 그는 2년 동안 그곳에서 한국인 환자 15∼17명의 통역을 도왔는데 그 가운데 연예인 3명이 있었다는 것. 환자중에 유난히 자기들끼리 어울려 다니는 3명이 있었는데 다른 한국 환자들이 ‘너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들은 한국에서는 얼굴이 알려진 연예인’이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이번 취재를 위해 관리기관을 통해 에이즈 감염자를 직접 만나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연예계통의 일을 하는 사람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고백을 들었다는 것이다. 비록 방송에서는 신뢰도 여부를 문제 삼아 빼버렸지만 그 자신은 에이즈 감염자의 말을 어느 정도 믿는다고 했다.
<피자의 아침>팀은 연예계 실력자로 알려진 A씨를 찾아가 소문의 사실 여부를 확인했으나 A씨는 강하게 부인했다고 한다. 사실 국내법상으로는 특정인의 에이즈 감염 여부를 알아도 본인이 스스로 밝히기 전에 그 감염사실을 공개하면 에이즈 예방법 7조에 따라 징역 3년 이하의 실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감염자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감염사실을 알아도 이야기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결국 <피자의 아침>은 연예인 에이즈 괴담은 사실이 아니었음을 입증한 셈이 됐다. 하지만 외국에서 검사를 받았을 경우 국내에 보고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밝혀냄으로써 여전히 그 괴담이 사실일 가능성도 남겨놓았다. 게다가 소문에서 떠돌고 있는 연예인 외에 또다른 연예인들까지 에이즈에 걸렸을 가능성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이상호 기자는 이번 방송을 통해 선정성을 의도했던 것은 아니라고 했다. 만약 우리나라에도 에이즈에 걸린 유명인이 있다면 미국의 농구스타 매직 존슨처럼 당당히 나서서 에이즈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고쳐주고 예방에 힘써주기를 바랐다고 한다. 하지만 <피자의 아침>은 그가 의도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여론을 몰고 왔고, 앞으로 이 여파가 어디로 미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게 됐다.
MBC <피자의 아침>의 이상호 기자
"에이즈에 관련된 취재를 계속할 생각"
6월19일 이상호 기자와 통화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날 첫방송된 ‘에이즈 소문과 진실’을 놓고 방송국 안팎에서 집중 성토를 받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변죽만 울린 채 보여준 게 없다는 것이었다. 에이즈 괴담에 얽힌 연예인의 존재를 공개할 것처럼 하고는 막상 첫방송에서는 수박겉핥기식의 방송만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은 이틀째인 6월20일에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애초 방영한다고 보도했던 일본 에이즈 치료센터에서 통역을 담당했던 사람과의 인터뷰, 연예계통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에이즈 감염자와의 인터뷰가 빠짐으로써 정작 말하고 싶은 내용이 무엇일까 싶을 만큼 ‘초라한’ 방송이 되었다.
<피자의 아침>에 출연하면서 연예기자라는 타이틀을 달게 된 이상호 기자는 보도국 기자 출신. 그를 MBC 6층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 미리 신문지상을 통해 보도된 것에 비해 내용이 없었다.
“교양 프로그램은 홍보 차원에서 미리 기사가 나간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기사를 쓰다가 홍보 기사가 이미 각 언론사에 배포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뒤늦게 봤다. 그게 이렇게 크게 다뤄질 줄 몰랐다. 그 기사를 보고 충격적인 내용이 다뤄질 것으로 기대했다면 실망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 처음 기사를 보았을 때는 연예인 14명의 명단을 갖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 명단은 없다. 하지만 에이즈에 걸린 사람들을 직군별로 분류한 리스트를 소개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라고 알고 있다.”
─ 취재를 시작한 것은 언제인가.
“3개월 전이다. 요즘은 웬만한 사람들도 소문속에 떠도는 연예인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그 사람들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 알려진 두 남녀 연예인의 경우에는 검사를 받았다는 병원의 명단까지 나오고 있다. 정말 그것이 사실인지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취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이것과 관련한 취재를 계속할 생각이다.”
─ 연예인 노조나 국립보건원으로부터 전화는 받지 않았는지.
“어제 연예인 노조에서 전화가 왔다. 방송을 보지 못했는데 여러 언론매체에서 멘트를 따기 위해 전화를 걸어온다며 방송 내용을 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내일 본편이 나가니 그 다음에 다시 전화하라고 했는데 아직까지 전화가 없다. 국립보건원으로부터는 에이즈 예방에 대한 홍보와 여론을 환기시켜줘서 고맙다는 전화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