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말을 키우던 솔마장이 바뀐 성동구의 송정동(松亭洞)(1)
중랑천 하류의 남북으로 걸쳐있는 송정동(松亭洞)은 조선시대에 국가에서 숫말을 기르던 목장이 이 일대에 있었으므로 숫마장이 변음되어 솔마장(率馬場)벌⇒송정동으로 불리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 명칭은 전관평 일대가 말을 기르던 것과 깊은 관계가 있다. 이것은 송정동 동쪽의 멀지 않은 곳에 암말을 기르던 곳인 자마장(雌馬場)으로 호칭되던 동리가 자양동으로 불리게 된 것과 같다.
송정동은 조선시대 경기도 양주군의 고양주면으로 갑오개혁 때에는 한성부 남서 두모방(성외) 전관계라 칭하였고, 대한제국 때에는 전관계 장내능동이라고 하였다.
경술국치 후에 일제는 이곳을 1911년 4월 1일 경성부 두모면 장내능동이라 하다가 1914년 4월 1일 부제 실시에 따라 경기도 고양군 뚝도면 송정리라 하였다.
이곳은 광복 후 1949년 8월 15일, 서울에 편입되어 성동구 송정리가 되었으나 1950년 3월 15일 송정동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송정동에는 「내 박배」라고 불리는 마을 이름이 있다. 이 마을은 뚝섬과 장안평에서 기르는 국가의 말을 한 군데서 재우기 위하여 내성을 쌓고, 밤이면 말울 이 성의 문 안으로 몰아 들일 때 「박배안」은 곧 그 안 성의 대문이 있던 곳을 의미하였다.
그리고 송정동 인근의 「장안평」이란 이름도 국가의 말을 기르는 양마장의 안 쪽에 있는 벌이라는 의미에서 「마장 안 벌」로 부르던 것이 「장안벌」로 불리다가, 한자로 바뀌어 「장안평」으로 되었다는 것이다.
송정동의 남서쪽, 중랑천과 청계천이 합류하는 곳은 흔히 중량포라고 하고, 중랑포, 충량포라고도 표기해 왔다. 이는 두 갈래의 물이 내려와서 모이고 물가가 넓기 때문에 포구라는 뜻의 포(浦)자를 붙여 부르던 것으로 보여진다.
조선 초기에 세종은 낙천정(자양동에 위치)에 있는 상왕 태종을 뵈러 가는 길에 중랑포에서 쉬어가거나 주연을 베풀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