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섬기는 교회는 서울의 한 위성도시에 소재하며 지난 2008년도에 설립 30년이 되었고 등록 청, 장년 약 300 몇십명 정도에 주일 평균출석은 청, 장년 약 200~250명 전후 규모이며 필자가 안수집사로서 만 53년의 삶과 47년간의 신앙생활 중 작금의 20년을 청년부장으로도, 재정부장으로도, 건축위원으로도, 주일마다 말뚝 안내원 등 여러 모습으로 섬겨온 교회임을 먼저 밝힙니다. 아울러 현 담임목사는 개척자였던 전임 목사의 후임으로 8년전에 청빙되어 부임, 현재에 이르고 이제 7월이 지나면 9년차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필자는 왜 이렇게 비통함과 참담한 심정으로 교회실명을 거명치는 않지만 고발성 기사로 소개를 하는 것인지 먼저 설명 드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결코 이를 통하여 사적인 유익이나 만족을 추구하고자 함도 아니요 오직 한 가지, 섬기는 교회가 진정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교회이자 신앙의 공동체가 되어 지길 바랄 뿐이며 특별히 날이 갈수록 성장과 부흥은커녕 세상으로부터 지탄과 멸시의 대상이 되고 위축되어져 가는 대한민국 기독교계에 희망이 되어 지고 본이 되어 질 수 있는 하나의 교회로서 거듭나기를 소망하는 간절한 마음의 발로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글에서는 종종 교계의 뉴스거리로 등장하는 금전적이거나 윤리적이지 못하고 향락적인 흔하디흔한(?) 단순 이슈가 아닌 교회의 모든 것을 장악하기 위한 오히려 매우 고차원 적이며 지능적이고도 교활하며, 성도들을 수준이하로 폄훼하고 소위 말씀중심과 교회중심이라는 명분하에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 선포하는 목사를 통한)말씀순종이라는 가장 타당성 있는 상품으로 포장, 교회와 성도들을 우매하게 몰아가는 차원 다른 새로운 목회방법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것처럼 한번 목사는 영원한 목사로 안착하기 위한.....
물론 목회의 원활성이나 교회운영상의 편리성들을 위한 그리고 교회법과 목회의 권위, 질서를 세우기 위함이라고 항변 하겠지만 일회성이나 일시성으로 끝나지 않고 끝없이 지속되어지는 그 명분이나 비유와는 너무도 동떨어진 위선적 이중 잣대와 목회자의 언행불일치는 교회나 목회자들이 금전적, 비윤리적, 향락적 등의 그저 동물적 육욕에 의한 단순 이슈로 세상사람 들로부터 외면 받고 손가락질 받는 것보다 하나님 앞에서는 더욱 치명적으로 부끄러운 모습이라 아니 할 수 없기에 비록 일개 성도에 지나지 않지만 코람데오의 정신으로 유사한 대한민국 각 개교회의 현실에 경종을 울려 보겠다는 마음의 발로에서 소개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목사 자신은 택시운전이나 주유원으로, 그 아내(사모)는 파출부 등으로 연명해가는 많은 미자립교회나 개척교회들을 돌아볼 때, 규모와 관계없이 자립도 있는 교회의 모든 목회자들에게 그 경종의 파급은 더욱 커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목회자가 예배인도를, 설교를 스스로 못하겠다고?
제가 섬기는 교회는 2007년 10월에 뉴스엔조이에 필자가 2회에 걸쳐 게재한 “교회건축 무리해도 되는건가?”와 “성경적인 교회건축은 무엇인가?”에 “어느 교회 건축위원의 가슴 아린 회고”라는 부제목으로 기고했듯이 직전 약 3년여의 준비 끝에 12개월에 걸쳐 교회를 건축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건축을 위한 시공업체와의 계약과정에서 건축위원회의 생각과 구상이 시공업체에 미리 누설된 일이 있었습니다.
즉, 2006년 10월의 어느 주일오후에 건축위원회 회의시 시공업체와의 건축계약 방법 사전누설 건을 놓고 담임목사가 저지른 (계약총액을 깍아 보고자 하는 차원이었다고 그때서야 해명했지만)사전누설 상황확인 대화중에 회의장을 박차고 나간 담임목사는 주일저녁예배에 30분이나 늦게 등단하고 등단하자말자 강단에서 ‘예배인도 못하겠다.’ ‘설교 못하겠다.’ ‘기도원에 기도나 다녀오겠다.’는 등의 발언만 하고는 뒤도 안돌아보고 사라진 일이 발생했었습니다. 그런 후 저희교회 성도들은 무척이나 놀랐고 그 주간 내내 새벽기도시간에는 성도들의 눈물과 간절한 기도가 이어졌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주일, 담임목사는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듯이 태연하게도 웃음 띤 얼굴로 성도들 앞에 나타났고 그 후로 현재에 이르는 3년이 다되어 가는 기간 중 단 한 번도 그 사안에 대하여, 아무리 순간적이라지만 교회를 버리고, 성도를 버리고 강단을 내려 가버린 사안에 대하여 사과는 커녕 유감의 표시나 해명 등 일언반구도 없습니다.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러한 목사의 모습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과연 목사 본인이 섬긴다는 교회와 성도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일까? 아니면 무시하거나 좌시하는 마음일까? 우리가, 교회와 성도들이, 수준이하 이어서일까? 지식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다른 여러 목사님들께 여쭤보았습니다. 그랬더니...떠날 것을, 옷 벗을 것을 의미한 것이라 고 이구동성으로 의견들을 주었습니다만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매사에 큰소리 쳐가며 오늘도 교회를 좌지우지 하고 있는 담임목사를 바라보면 아무튼 우매한 성도이자 한 마리 양으로서는 도저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임에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교회내 큰일들이 투명하지가 않습니다.
또 다른 대표적 사건으로 저희교회는 대다수 성도들이 중직자(장로, 안수집사, 권사)가 몇 안 되기에 올바르고 하나님께 진실한 청지기를 더 세우기를 무척이나 원하고 바라며 당회(목사 및 장로 2인)에 지난 수년간 요구 했지만 성도가 1만명씩 되는 교회도 장로가 1~2명인 곳도 있다는 둥, 역사가 오래이지만 성도수 몇십명인 교회의 상당수가 장로, 안수집사, 권사로 가분수라는 둥 차일피일 미루어 오다가 겨우 마지못해 2007년 7월에서야 2주에 걸쳐 정말 우여곡절의 희한한 선거를 통해 장로2명(협동장로 1명을 포함하여) 안수집사, 권사 각 2명씩 피택을 하였지만 2008년 12월 21일 임직식까지 18개월에 걸친 온갖 상황들의 반전과 반전 끝에 피택자 중 시무장로 1명과 안수집사 1명을 교회법(교회정관 및 교단헌법)을 적용 탈락 시키고야 말았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연찮게도 탈락된 2명은 평소 교회와 당회에 대하여 올바른 교회로 가기위한 쓴 소리를 종종 하는 성도들 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더욱 중요한 것은 앞 내용의 소용돌이 속에 임직자 명단이 임직식 날짜가 되어가도록 공식발표도 안되고 탈락 내용만 무성한 소문으로 퍼지니 악성이 되고 이와는 다른 사안으로 타 교회에서 이명 온 출석안수집사를 시무안수집사로 취임을 시킨다는데 이를 위해선 공동의회에서 2/3찬성을 거쳐야 하는 즉, 그들이 좋아하고 입버릇처럼 갖다 들이대는 교회법(정관)에 의하여야 함에도 공동의회 심의는커녕 역시 발표도 없이 몇몇 사람만 알고 행사에 포함, 취임을 시키는 것으로 진행하며 심지어 탈락자 2명은 아예 빼버리고 이명온 안수집사 2명은 포함시킨 행사초청장 인쇄까지 해놓고 교인들에게는 떳떳이 알리지 않는 사실이 들통 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80%, 90%의 찬성표로 피택한 임직자를 임직시키지 않고 결국에 탈락으로 몰고 간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리스도인임을 떠나서 일반 세상사적 입장에서 살펴보아도 법적용의 억지와 황당성과 직접영향을 미치는(그들은 아니라고 발뺌하지만) 담임목사의 당해 교회에서의 장로고시 관련 준비나 행정처리 내용들에 일체 나몰라라 하며 머나먼 남의나라 사람이나 일을 대하듯 하는 유치함 및 노회목사들의 피택자에 대한 관련 장로고시와 면접시의 치졸한 언행은 그들이 같은 생각이 아니면 행할 수 없으리라 여겨지는 것들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일시적으로 가져가는 금전적 이득이나 인간의 향락적 기쁨, 성취욕 등을 여느 목사들과는 다르게 시간을 보내며 중장기적으로 교회의 모든 것(특히 가장 중요한 인적자원)만 거머쥐면 자연스럽게 송두리째 취득되어지는 고차원적 교회운영방법으로 여겨져 유유상종격인 그들의 얼굴에 침을 뱉어주고 싶은 내용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교회와 양들을 섬기며 인도해야 할 목사와 그를 추종하는 불과 1~2명의 선임 장로들이 성도들을, 그들의 주인 되신 하나님의 자녀들인 성도들을, 얼마나 무시하며 일방적이고 전횡적인 자기 입맛대로의 목회를 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아주 비겁하고 졸렬한 처사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즉, 내 사람이, 내 편이 아니면, 사랑은커녕 절대 돌아보지 않고 무조건 배제함으로 상처를 안은채 공동체에서 외곽으로 떠돌게 하거나 떠날 수밖에 없게 하는 추악한 목회라는 것이지요.
교회 안에는 민주주의가 없다고?
제가 섬기는 교회에서는 담임목사의 이런 주장(?)도 있습니다.
정말 잊어버리고 싶은.....그러나 너무도 치명적이고 가슴 아픈 목사의 주장!
우리는 약 2년 6개월전인 지난 2006년 12월1일과 2일, 구태의연한 모습을 벗어나서 그렇게도 교회의 개혁적인 부흥발전을 소망하며 교회내 주요 성도님들 40여명 가까이가 순수하게 우리들만의 준비로 워크샵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워크샵에는 평소 무척이나 투명한 교회, 건강한 교회, 목적이 이끄는 교회, 언제든지 나에게 조언해 달라(그러나 정작 조언, 충언을 하면 ‘참고 하겠다’ 한마디 이후 전혀 무반응, 묵묵부답으로 사장시켜 버리는) 등을 주창하는 담임목사가 자발적으로 동참을 해 왔습니다.
특별히 진취적이고 깨어있는 그리고 그런 것을 KBS와 뉴스앤조이, 당당뉴스, 교회개혁실천연대로부터 인정받고 나름대로 검증 된 Y교회 J목사님을 강사로 초빙하여 올바른 교회와 성도로서의 방향에 대해 모두가 눈물을 흘리며 커다란 은혜 속에 말씀도 듣고 새벽 2시, 3시까지 밤잠을 설쳐가며 1박2일 동안 심도있는 토론시간을 거쳐 의견들을 모았고 그 취합된 의견들을 확정하고 마무리 하는 마지막 강평시간에 정작 담임목사는 단 한마디로 워크샵의 의미를 무력화 시켰고 참석자 모두의 가슴을 황폐화 시켜버렸습니다. 그 위력적인 한마디! "교회 안에 민주주의란 없다! 교회 내 모든 것에 대한 결정은 교회의 정점인 담임목사가 한다!"
독자여러분! 이 말이 정말인가요? 대한민국 교회들은 민주주의가 없이 목사들이 모든 걸 독단적으로 결정 하는 건가요? 성경에도 그리 기록되어진 건가요?
잠깐 돌아보며 정리해 봅니다.
교회를 건축하여 놓고 년중 목표로 표어까지 “내 집을 채우라” 라고 스스로 정했던 당회원들인 목회자나 장로들, 그러나 정작 어느 누구도 많은 성도들이 돌아가며 열심히 행하는 노방전도활동이든 가가호호 방문전도활동이든 1년내내는 커녕 지금까지의 시무기간 내내 단 한 번도 전도지나 전도용품을 손에 들고 함께 행해 보지도 않고 전도활동 교인들을 향한 격려나 기도한번 제대로 없는 가운데 오직 교인숫자만에 혈안이 된 모습의 말만 앞세우는 담임목사.....교회건축비용의 빚을, 이자를 감당키 위해서인지 모르겠지만 필요하다면 수단방법 가리지 말고 수평이동을 통해서라도 성도수를 늘려야 한다는.....안타깝고 하나님 앞에 부끄럽기만 할 뿐입니다.
새롭게 보기 좋은 모습으로 지어놓은 예배당인 교회 건물, 그 건물 안 예배처소 방마다 예루살렘성전이요, 베들레헴성전이요, 벧엘성전이요, 솔로몬성전이요 등의 성전 투성이로 이름 붙여 거룩함을 한껏 과시하며 ‘성전’이란 용어 자체에 대해서도 성도들을 바보로 우매하게 몰고 가는 목사의 모습에서 더더욱 한탄스럽고 어이없으며 비통하기만 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교회지도자, 목사에게서 과연 우리 성도들은 올바른 신앙관을 배우고 상하지 않은, 인간적 욕망이나 생각이 배어있지 않는 참되고 깨끗한 영의 양식인 말씀이라는 꼴을 받아먹을 수 있을지 심히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온갖 화려한 성경적 미사여구나 교과서 같은 설교화법과 바리새인 같은 기도와 설교모습으로 포장된 언행 불일치의 극치를 달리는 목사가 목회하는 제가 섬기는 교회에서의 모습에서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여느 성도들처럼, 많은 이들의 조언대로, 제가 섬기는 교회를 버리거나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설사 개인적으로 어떤 시련을 겪게 될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하나님 허락하신 히스기야 같은 보너스 인생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미천한 자녀로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과 큰 각오로 훗날 주님 앞에 섰을 때에 “너는 내 몸 된 교회가 이 지경이 되도록 그 모든 걸 알고 느끼면서도 구경꾼 노릇만 했단 말이냐? 내 너를 도저히 알지 못하느니라.” 라고 저를 어둡고 절망만이 가득한 문 밖에서 이를 갈며 울부짖도록 내치실 주님의 책망이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무섭고 두렵기 때문이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지극히 작고도 낮으며 천한 죄인인 저로 말미암아 진정으로 서로 사랑하며 섬기고 제 뼈를 묻고자하는 저희 교회가 참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기쁘고 아름다운 공동체로 거듭나는 동기부여가 되기를 소망하는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