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에 관한 시모음 13)
삼월, 장독 /전영애
꾹꾹 디뎌 밟아
누운 자리 밑에 감추어도
그리움
메줏덩이로 떠
곰팡이 슬고 냄새 피우고
그만 내다버릴까
내가 뛰쳐나갈까 싶더니
정·이월 차고 맑은 햇볕 다 받아
저 검정 숯덩이 매운 통고추와 함께
맑은 물에 몸풀고 우러나고 있고나
곰삭은 그리움
짱짱한 햇살 속에
말갛게 동동 뜨고 있구나
삼월 수채화 /김덕성
햇살이 쏟아지는 날
봄이 길을 세운다
흘낏 뒤를 돌아보며
누군가 보았더니 글쎄
봄이 빙그레 웃으며 자기를 보란다
거참 신통하네
눈뜬 새싹들
뛰기 연습하는 개구리들
모두 봄날의 수채화를 그리는
귀여운 놈들
그만 나도 환한 웃음으로
손을 흔들며
정감 있게 이루는 말
너무 고마워
3월 희야에게 /장수남
햇살 젖은 꿈
개나리 눈 비비면 들녘 아지랑이
이슬 단잠 깨우고
희야 하늘 손 짓하면
수평선 끝자락 흰 구름 내려앉아
황홀한 포옹
낯 달 추억 한 잎
유람선 타고 먼 남쪽바다 봄소식
희야 찾아 간다네.
삼월이면 /이향아
삼월이면 딸 하나 낳고 싶다
'삼월'이라 말할 때 공평하게 퍼지는 입모습처럼
삼월, 삼월 부를 때 향기롭게 울리는 닿소리처럼
봄소식 잔잔한 딸 하나 낳고 싶다
어림도 없는 소리, 꿈도 꾸지 마
열두 달 매달려도 대답하지 않을 거야
살구꽃빛깔인가, 저 보얀 살결 좀 봐
산등성이는 수런수런 마을로 내려오고
양지쪽 풀섶도 옷자락을 잡아끌어
얼음장 잦아드는 음악 소리에
축전처럼 수선화가 피어나는 저녁
삼월이면 뜬금없이 딸 하나 낳고 싶다
3월의 백야 /(宵火)고은영
기척도 없이 3월의 새벽을 뛰어넘는 눈발
하루의 피곤을 휘청이다 잠이든 사람들을 버리고
시간은 저 홀로 조용히 눈길을 걷고
자정쯤 귀가 길에 사람들은 간혹 눈구덩이에 빠져 기우뚱거리고
저너머 마지막 완행열차가 초라한 플랫폼을 거쳐 떠나갔고
나무들은 빈틈없이 흰 수의를 입고 싸늘하게 굳은 채
멍하니 시간을 바라보는 외로운 고독이다
새벽 2시 27분
구획을 가르는 몇 개의 휘어진 불빛을 가르며
끊임없이 쏟아지는 눈발은 오로지 일탈을 꿈꾸고 있다
어둠은 점점 깊은 심연으로 매몰되며 냉각돼 가고
인간의 흔적을 지우고 싶어 안달하는 폭설의 중심엔
지독하게 부황든 그리움에 종점이 더욱 선명하다
불 그 죽죽 삼십 촉 전구 따뜻한 연탄 단발머리 그리고 비쩍 마른 살갗에
앙상한 피 맛을 겁나게 즐기던 이와 서캐 나일론 점퍼 팔각 성냥
기울어지는 3월의 기둥이 위태롭다
새벽을 틈타 어느 몹쓸 흔적을 응시하던 나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사랑은 필요를 죽이지 않고
항상 여기 이 자리에서 기다림의 자세로
불멸에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심지를 켜는 일인데
그대는 어찌하여 존재의 미련을 들고 이 밤을 촉박하게 범하는 것이냐
발자국도 없이 그림자만 물구나무서는 백야
내리는 눈발에 성성한 얼굴로 그 시절 찢어진 가난이 투영돼고
지표도 없이 그리움의 부표들은 눈발과 함께 새벽을 떠돌고 있다
3월, 그러나 /임영준
봄결이 누리에 가득하여
웃음이 흐드러져야 하는데
선열의 열망으로 민족의 기상이
줄기차게 뻗어가야 하는데
곳곳에 널린 구렁이라니...
숙주야, 바닥이 다 드러났구나
역병으로 모순이 다 하였구나
이 봄이 가기 전에 부디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기를
싹 갈아 엎어 민초의 씨앗을 품고
삼월의 염원을 이룰 수 있기를
3월이 오기까지는 /초암 나상국
마음은 아직도 동토에 머물고
있는 것 같은데
옷깃에 여미는 바람은
귓속말로 속삭인다
주변을 돌아보라고
양지바른 강둑에
까치발로 발돋움하는 푸름을
숲 속의 키 작은 나무들
힘껏 봄을 빨아올리고 있다
3월이 오기까지는
먼 것 같더니만
2월도 벌써 다 갔네
3月 /홍경임
아직도 살을 저미는 시간의 여울 함께
살같이 흐르는 3月
내 찬 두 볼엔 야속한 눈물이 강을 이룬다
쇠잔해진 육체를 감쌌던
누더기를 벗어 던지고
난 청량한 봄내음을 몸으로 마시면서
급행열차처럼 쉼없이 질주하는
3月을 아쉬워한다
개나리 진달래 산수유꽃
활짝 웃으며 날 반기는데
아! 생각하면 너무도 처절한 계절
며칠을 버텨 너의 고운 얼굴을 심층에 새겨두리
변덕인가 성깔인가
시샘하는 추위는 꽃잎을 멍들게 하여
내 가슴을 저미는데
올해 3月도
영원 속으로 날아만 간다.
춘삼월 내 그대여 /은파 오애숙
내 그대여 우리 함께 꽃 피는 봄날
춘삼월 새 봄의 향기 마음속에 슬어
희망꽃 벅찬 설렘 수놓은 희망으로
온누리에 파아란 꿈의 날개 폅시다
내 그대여 우리 함께 꽃피는 봄날
행복의 꽃 휘날려 오는 길섶에서
꽃 물결 늘 설레임 안겨 주었는데
마스크 물결 근심으로 조여드네요
내 그대여 우리 함께 꽃 피는 봄날
춘삼월속에 희망의 꽃 피어나련만
가라지 심어주고 있기에 생명 잃은
봄처럼 날개 쭉지지만 날개 펴소서
내 그대여 우리 함께 꽃피는 봄날
코로나 속히지나가리니 근심 털고
해야 할 자신의 일 하나 씩 해 가며
지혜롭게 이 난국 잘 극복 해 갑시다
3월. 파란 꿈 /장수남
3월. 하늘은
꽃구름 갈대 숲 사이
긴 사다리 걸쳐놓고 봄비
파란꿈 타고 내린다.
냇가에 버들강아지
눈 비비고 아장아장
거름마야. 이리 온. 나.
시샘하는 꽃샘추위
이번 주말 내내
햇님아. 숨어라 숨바꼭질
돌다리 파랗게 걷는다.
3월 /장석주
얼음을 깨고 나아가는 쇄빙선 같이
치욕보다 더 생생한 슬픔이
내게로 온다
슬픔이 없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모자가 얹혀지지 않은 머리처럼
그것은 인생이 천진스럽지 못하다는 징표
영양분 가득한 지 3월 햇빛에서는
왜 비릿한 젖 냄새가 나는가
산수유나무는 햇빛을 정신없이 빨아들이고
검은 가지마다 온통 애기 젖꼭지만한 노란 꽃눈을 틔운다
3월의 햇빛 속에서
누군가 뼈만 앙상한 제 다리의 깊어진 궤양을 바라보며
살아봐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는다
3월에 슬퍼할 겨를조차 없는 이들은
부끄러워하자
그 부끄러움을 뭉쳐
제 슬픔 하나라도 집어낼 일이다
춘삼월의 연가 /은파 오애숙
기나긴
동지섣달
한 깊의 침묵으로
베개 삼아 발자국 숨 죽여
살아왔던 나날들이여
삼월이란 이름 앞에
작별 고하노니
그대가
이 아침 날개 쳐
춘삼월이란 이름으로
내작은 소망의 불길 가슴속
불 붙이려고 오시었기에
내 안 가득 차오르는
사랑의 향기
노래하며
연초록
환희 날개
활짝 핀 그대의 향기
심연에 사랑으로 꿈틀거리니
그대 사랑에 새 둥지 틀어
그대가 꿈꾸는 들판
파라란히 희망참에
노래불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