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5 장 ------ 血 戰
흑마전.
당금천하를 피의 폭풍이라는 검란 속에 휩쓸리게 만든 이곳.
지금 악마의 숨결처럼 사이한 기운이 감도는 마전에 포효가 터지
고 있었다.
"무엇이! 사령금갑대가 남궁초량에 의해......!"
"십대천마가 옥천군에게......!"
외침.
그것은 파천마종 율리극과 사천대제 위지태궁이 토해내는 포효였
다.
대주 단봉중옥으로부터 태상이라는 신분을 부여받은 그들 두 초
극강의 인물들.
그들은 오체복지를 한 채 보고를 한 혈포인을 향해 포효를 터뜨
린 것이다.
혈포인. 그는 태사의에 앉아있는 단봉중옥을 향한 채 그들 두 사
람의 전신에서 발산되는 극도의 분노에 짓눌린 듯 말을 더듬거렸다.
"예...... 이번 계략에는... 오히려 이쪽이 당하는 함정이 있었
다고... 모용춘추는 우리를 속인 것이라고... 군사께서 운명하시기
전에......"
"으------ 모용춘추!"
"그 놈을 당장에......!"
위지태궁과 율리극은 극도의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
떡 일어섰다.
그런 그들의 장포는 바람 한 점 없이 풍선처럼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그때였다.
"태주... 모용춘추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소."
경악에 은은히 떨리는 여인의 음성과 함께 섬세한 하나의 그림자
가 흑마전 안으로 뛰어 들었다.
천예미랑 사요빙, 바로 그녀였다.
"으... 놈은 완전히 우리를 희롱하였구나. 내가 그 시체를 조각
조각내 천하제일가로 보내겠다."
위지태궁은 분노를 참을 수 없는지 이를 갈았다.
하기사 그래도 염황부에서 나름대로 자신의 힘을 견지하고 세력
을 균등히 할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
지만 그들이 몰살당한 지금 분노가 터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리라.
그때다.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단봉중옥의 입술이 미미하게 움직
였다.
"두 태상."
"......!"
"준비해라. 모든 마도세력과 그대들의 남은 힘. 그리고 염황부의
힘을 총동원하여 천하제일가를 단숨에 쓸어버릴 총공세를......!"
"......!"
"살아있는 것은 단 하나도 남기지 말고 모조리 쓸어버려라. 살아
있는 것은 모조리...... 오호호호홋!"
웃음!
어찌 그것을 악마의 포효라고 하지 않으랴?
"존... 존명......!"
마도와 사도의 초절정고수이자 최고의 권좌를 지켜왔던 율리극과
위지태궁.
그들 두 사람도 그 웃음소리에서 발하는 전율스러운 악마의 기운
에 자신도 모르게 몸을 치떨며 고개를 숙였다.
운명은......?
마침내 피의 전주곡에 이어 악마의 본성을 폭발 시킴으로써 그
마지막을 향해 치잘리기 시작한 것이다.
* * *
천하제일가.
금릉의 교외에 위치한 대보산의 중턱에 자리 잡은 이 시대 아니
전 시대에서도 최강의 세력과 힘, 그리고 위명으로 천하를 지켜왔
던 곳.
정도의 세력은 모조리 천하제일가에 모였다.
정과 마가 모든 것을 걸고 벌이는 한판의 결전을 위해......
대치.
그것은 너무도 간단한 대치였다.
정도세력은 천하제일가의 중심으로 하여 원형을 이루듯 각 문파
나 각 문의 연합으로 첩첩히 둘러쌓고, 마도세력은 단지 세 갈래의
진형으로 서서히 천하제일가를 향해 좁혀가고 있었다.
사람의 물결.
아마도 인산인해를 두고 하는 말이 있다면 지금 대지 전체를 제
은 채 구름처럼 밀려드는 마도무리를 두고 하는 말일게다.
그 수는 자그마치 십오만.
가히 상상도 할수 없는 엄청난 인산인해가 아닐 수 없으니......!
제일선대.
마녀 단봉중옥을 선두로 하여 천하제일가를 정면으로 짓쳐 들어
갈 오만의 마도무리.
제이선대.
파천마종 율리극을 선두로 천하제일가의 우측을 공격할 마도는
오만.
제삼선대.
사천대제가 이끌고 좌측을 공격할 오만의 무리.
그들이 조수처럼 밀려가는 것만으로도 이미 풍운변색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결전은 막마의 포효가 터지며 시작되었다.
------ 오호호홋! 모조리 죽여라! 소위 정도라 지칭하는 무리들
은 단 하나도 남기지 말고 모조리 죽여라! 오호호홋!
요기.
독을 머금은 대신 화려한 채색으로 전신을 가꾼, 그래서 보는 것
만으로도 소름끼치도록 채색마비와도 같이 사이롭고 요기어린 교소
가 악마의 포효처럼 터졌다.
콰르르릉------ 꽝!
마치 대지가 무너지는 듯 지축마져 흔들리는 굉음.
그것은 정면으로 벼락처럼 짓쳐들어오는 단봉중옥의 공격을 육
문칠가 가운데 아홉 명의 지존들이 동시에 막아내기 위해 발한 굉열
한 폭음이었다.
"으......!"
담담한 신음을 토해내며 아홉 명의 지존들은 주르르 밀려났다.
밀려나는 그들의 얼굴에 떠오르는 것은 경악과 불신, 그리고 뒤
이어 공포의 빛이었다.
(이럴 수가... 우리들 육문칠가의 가주들 아홉 명이 한꺼번에 날린
장력을 막아내다니......!)
(이런... 으... 인간도 아니다. 악마... 악마가 아니고 어찌 이
런 강공할 힘이 있을 수 있으랴!)
그러했다.
설사 옥사황이라 한들 자신들의 합공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그러나......
"호호호! 그대들의 능력이 이 정도였다니 본좌는 실로 놀라울 정
도로 감탄하는 바이다!"
단봉중옥은 요사한 웃음을 터뜨리며 허공에서 한 바퀴 회전하고는
신형을 곧추세웠다.
수려한 자태와 화부용 같은 아름다운 얼굴에 떠올라 있는 것은 저
주스러운 마기!
허공에 떠있는 그녀는 그 한차례의 격돌에서 아무런 느낌조차 받
지 않은 양 태연했다.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그대들 또한 육문칠가... 옥사황, 그 잔
인한 자를 위해 죽음을 자초할 필요는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은 오
직 그의 목일 뿐이다."
"......!"
육문칠가의 아홉 지존들은 서로의 눈빛을 교환하였다.
챙------!
쩍------!
뒤이어 그들은 각기 자신들의 독문무기를 뽑아들었다.
이미 감당할 수 없는 악마의 힘 앞에 전력을 다하지 않고는 버텨
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그들 전부가 무기를 사용하기로 결심
한 것이다.
"호호호호! 어리석은 작자들! 원망하지마라. 스스로 자초한 것이
니......"
단봉중옥은 그들이 동귀어진마저 각오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곤
사이한 미소를 떠올렸다.
헌데 보라.
그녀의 미소가 짙어갈 수록 그녀의 미간에 떠올라 있는 천혈음맥
의 기운이 더더욱 푸르게 떠오르는 광경을!
더불어 그녀의 섬섬옥수가 혈색으로 변하면서 핏빛 안개가 서서
히 뿜어져 나와 전신을 가리기 시작했다.
핏빛의 구름덩어리.
순식간에 단봉중옥의 신형은 핏빛 안개 속으로 감추어졌고 피의
구름과 같이 느껴지는 혈무는 점점 확장하며 그 범위가 삼장까지
덮어갔다.
더 이상 기다리면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느낀 압홉명의 육문칠
가 가주들.
그들은 일제히 혈무덩어리를 향해 몸을 날렸다.
"팽가의 힘! 자모현환구도------!"
팽천위의 금도가 허공에 가득 도광을 폭발시켰고,
"적용일가 비전! 해월십이검!"
번쩍! 번쩍!
쐐애애액------!
해남의 적용가문의 가주인 작용휘세가 허공 가득히 검광을 뿌려
댔다.
육문칠가의 가주들이 펼쳐내는 저 가공할 검세를 보라!
우우우우------ 우우------!
고오오오------ 고오------!
도, 검, 극, 창, 편......
각기 각문의 독문병기들이 토해내는 소리.
그것은 아예 대지의 모든 소리를 함몰시키는 굉음이었다.
"호호호! 아느냐? 지황의 마력! 미리홍옥수------!"
혈무 속에서 요사한 웃음소리가 터진 것은 거의 동시.
콰우우우우------!
순간 갑자기 혈무가 두 배로 확장하며 수십 줄기의 혈광이 폭사되
어 쏟아져 나왔다.
콰콰콰콰------ 콰콰------!
쌍방의 공세가 격돌하는 순간, 다시금 천지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엄청난 굉음이 터졌다.
휘이이잉------!
모든 것을 쓸어 올리는 강기와 도검의 선풍이 휘몰아치며 시야를
가렸고,
"크......!"
"으음......!"
묵직하고도 담담한 신음소리가 아스라히 울려왔다.
무엇이 어찌 되었는지 시야가 가려있어 보이지 않으나 다만 시각
적으로 느끼는 것은 확장하던 혈무가 약간 세력이 줄었다는 것뿐.
버언쩍!
빛!
그것은 말 그대로 허공을 가르며 하늘에 떨어져 내리는 벼락과도
같았다.
"으아악------!"
그 빛의 여운처럼 뒤이은 것은 처절한 단말마.
쫘악------!
피보라가 선연하게 일어나는 가운데 무당의 한 인물이 짚단 무너
지듯 힘없이 쓰러졌다.
"호호! 무당말코 운진자라 했던가? 무당의 제일검수라는 자가 겨
우 이 정도에 불과하다면 나 율리극의 도가 너의 피를 묻혔다는 것
이 오히려 수치스러울 뿐이다."
율리극.
그는 아직도 피가 흐르는 시체 앞에 선 채 냉소를 날렸다.
운진자. 일찍기 검으로 도를 이루어 이미 삼십대에 무당제일검수
로 불리웠던 장로 가운데 하나.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단지 시체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를 죽인 율리극의 도.
서슬 푸른 예기를 발하는 기형의 도에는 일점의 피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극쾌.
그것은 그의 도가 미처 피가 묻을 사이도 없이 운진자를 처치했
다는 것을 말해줄 진데,
"흐흐! 지옥에 가서라도 기억해라. 나의 그 일도는 나 율리극이
무려 백여 년간 참담한 수련 끝에 완성한 벽력천도임을......!"
벽력천도------!
그 한마디를 내뱉고 율리극은 시선을 돌렸다.
"크아아악!"
번쩍!
"으아아아악!"
대혈전. 자신을 이끄는 제이대가 마치 해일처럼 천하제일가로 밀
려 들어가며 벌어진 대혈전이 그의 눈에 선명히 투영되었다.
구대문파와 무림의 정도문파가 총출동한 혈전.
제이대의 마도무리를 막고 있는 세력은 총 삼만에 이르는 숫자였
다.
전황은 아직 서전으로 그 결과를 가늠하기 어려운 백중지세.
율리극은 서서히 자신의 도에 죽음을 부를 인물을 향해 걸음을
떼어 놓았다.
"제기랄......! 모조리 죽인다! 와라, 이 마도무리들아......!"
철환염왕(鐵環閻王) 소야후!
십이봉공 가운데 일인인 그는 천생이 악을 철저히 미워하는 철혈
의 인물이었다.
그가 사용하는 무기는 지름이 약 이척에 달하는 둥근 철환.
언뜻 보기에는 단순히 시커먼 고리같이 보이는 무기이나 지금 그
무기가 파공음을 토해내며 펼치는 절예는 그야말로 환상에 가까운
것이었다.
휘우우웅------!
수십 개의 고리환영을 토해내며 허공을 가를 때마다 거기에 스치
는 마도인들은 살이 산산이 으깨져 버렸다.
이때,
"크아악!"
"컥!"
그의 주위에서 보조를 맞춰 밀려오는 마도무리들을 막아내던 그
의 수하들이 피를 뿜어내며 쓰러져 갔다.
"......!"
그 광경을 본 소야후의 눈에 불똥이 튀어 올랐다.
바로 그때,
"흐흐흐! 그대가 철환염왕 소야후라는 애송이 놈이냐?"
음사한 웃음소리와 함께 사천대제 위지태궁이 소야후의 앞을 가
로막 듯 나타났다.
"너는......?"
상대의 전신에서 발하는 엄청난 사기를 느낀 소야후는 자신도 모
르게 숨을 들이키며 눈살을 모았다.
"흐흐! 들어 보았을 것이다. 사천대제 위지태궁이라는 이름을!"
"사성의 성주......"
소야후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치켜 떠올렸다.
"가랏!"
그 순간 사천대제 위지태궁의 쌍수가 벼락처럼 뻗어졌고,
꽈르르릉------!
악마의 울부짖음과 같은 사이한 기운을 머금은 방울소리가 소야
후의 고막을 찢어 놓았다.
심혼마져 깨뜨려버릴 금령의 소리.
그것은 한순간에 소야후의 공력을 안개가 흩어지듯 무력하게 만
들며 섬광처럼 폭사했다.
퍼퍽!
섬뜩한 기음이 울리며 허공에 확 피어오르는 것은 혈무!
쫘르르릉!
핏빛의 쌍금령.
혈금상령은 이미 소야후의 가슴을 스쳐 어느 사이인가 위지태궁
의 손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소야후는 자신의 가슴을 부여안고 쓰러지며 흐릿한 욕설을 퍼부
었다.
그러나 죽음이란 그것조차 무의미하게 마드는 법.
사천대제 위지태궁은 거침없이 그의 시체를 밟고 지나갔다.
우지직!
차라리 귀를 막고 싶은 전율스러운 기음이 그 뒤를 이었고......
휘우우웅------!
도검과 핏빛 광채가 격돌하며 휘몰아친 강기의 선풍이 서서히 가
라앉으며 드러난 광경은......?
육문칠가의 주인들.
그들의 모습은 차라리 처절하기 보다는 형편없는 꼬락서니로 변
해 있었다.
장삼자락은 갈가리 헤져 허옇게 살을 드러내 놓았는가 하면 개중
에는 머리가 산발하여 멍하니 부서진 자신의 독문무기를 응시하는
사람도 있었다.
비록 상한 사람은 없다고 하지만 핏빛 안개가 약화되어 모습을
드러낸 단봉중옥의 변함없는 자태에 비교할 때 그 한 번의 격돌에서
그들이 밀려났음을 분명히 알려주고 있었다.
"호호호! 이제 자신들의 역량을 알겠느냐? 이제는 그대들이 물러
서려고 해도 때가 늦었다. 나 단봉중옥이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말, 그것은 행동보다 느렸다.
슈슉!
땅에 내려선 단봉중옥의 신형은 실로 전광을 방불케 하는 속도로
육문칠가의 주인들을 덮쳐갔다.
"마마칠절수!"
덮치는 속도만큼이나 빠른 그녀의 손이 순식간에 일곱 개의 환영
을 그려내며 한꺼번에 육문칠가의 주인들을 쓸어갔다.
"흑!"
"유성탄검(流星彈劍)!"
육문칠가의 주인들은 그녀의 빠른 공세에 안색을 굳히며 즉시 반
격을 가했다.
이미 마녀 단봉중옥의 무공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악마의 그것
이라는 것을 경험한 그들이었기에 그 반격은 목숨을 건 전력을 다
한 공세였다.
그러나 미리홍옥수의 음유로운 기운이 실린 채 왼손으로 펼치는
것은 지황의 월강수요, 오른손이 펼치는 것은 스치기만 해도 철판
도 힘없이 종잇장처럼 찢어져나갈 목류영강이다.
뿐이랴?
허리를 틀며 발걸음을 사뿐사뿐 옮길 때마다 쏟아지는 퇴법은 무
영유혼퇴라는 절기였으니......
콰쾅!
쿵!
일수일족에 하늘이 흔들리고 땅이 진동한다.
대체 한 인간의 몸에서 저처럼 동시다발적인 마종의 절예가 화려
하게 펼쳐지는 것을 본적이 있는가?
만일 그녀를 상대하는 인물들이 육문칠가의 지존들이 아니었고
합공이 아니었다면 이미 살아남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을 것이
다.
천지간 번복할 대격전!
아마도 지금 이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일게다.
"대단하군. 중옥의 무공이 저처럼 강해졌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
군."
천하제일가의 대문 앞에서 그 격전을 지켜보고 있던 금천풍호는
감탄이라기보다는 경악에 가까운 탄성을 토했다.
그리고는 시선을 돌렸다.
옆에 선 채 시종 안색하나 바꾸지 않고 있는 거인에게.....
무신 옥사황.
이 시대의 최강자요, 무림의 신적인 존재.
옥사황도 동시에 그를 돌아보았다.
금천풍호는 입가에 흐릿한 미소를 떠올렸다.
"후훗! 이제 슬슬 시작해야겠지요."
"더 이상의 피는 무의미한 것이니까."
옥사황이 고개를 담담히 끄덕이고는 몸을 돌렸다.
그가 향하고 있는 곳은 끊임없이 피를 갈구하며 살수를 펼치고
있는 파천마종 율리극.
금천풍호도 입가에 흐릿한 미소를 띄며 서서히 사천대제 위지태
궁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이 각기 하나씩 맡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던 것일까?
혈전은... 이제 그 절정으로 치달리고 있었다.
첫댓글 항상 고맙게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