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해설
서정적 자아 인식과 성찰의 진실
--박영곤 시집 『』
김 송 배
(시인.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
1. 삶의 순응에서 성찰하는 자아 인식
현대시의 창작에서 소재나 주제로 발현(發現)하는 대상이나 의미는 대체로 시인의 주변에서 생성하는 외적 사물들이 그들의 정서와 사유(思惟)의 지향에서 다양하게 표출되는 경향을 살필 수가 있는데 이는 시인들이 살아가면서 직간접적으로 체험한 기억들이 상상력을 통해서 재생하는 시점(時點)에서 창출된 이미지들이 작품으로 형상화하는 점을 많이 대하게 된다.
이러한 시법(詩法)들은 모든 시인 누구에게서나 쉽게 관찰할 수 있겠지만 특이한 점은 지나온 삶과 현재의 여건들과의 연관에 순응하면서 자아를 인식하게 되고 시인들은 성찰의 관념적인 심정의 진솔한 진실이 작품 속에 융합하면서 현실적인 갈등이나 불합리들을 화해하는 시적인 정신을 이해하게 된다.
여기 박영곤 시인이 상재하는 첫 시집 『』의 작품들을 일별해보면 이와 같은 삶의 인식에서 탐구하는 자성(自省)의 어조로 잔잔한 들려주기(telling)의 음율을 들을 수 있어서 우선 그가 추구하려는 내면에 침잠한 인생론을 접근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는 먼저 “누구에게도 너는 누구냐고/ 물어 볼 자신이 없어/ 나는 나에게 너는 누구냐고/ 물음표를 던졌다// 한참 동안 대답이 없다가/ 이윽고 돌아온 마침표는/ 너는 너이니 너답게 살라 하네.”라고 작품 「물음표와 마침표」 전문에서 자신에게 자문(自問)하고 자답(自答)하는 형상으로 자아를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박영곤 시인은 이처럼 자신이 걸어온 삶의 행로에서 감득(感得)한 다채로운 희노애락(喜怒哀樂)의 여정(旅情)이 “아~ 사랑의 깃발에 새겨진 내 젊은 날의 초상이/ 석양(夕陽)까지 그대로라면/ 얼마나 좋을까,(「희(噫)- 라」 중에서)”라고 의문형으로 “희(噫)- 라.”는 탄식의 절규를 분사(噴射)하고 있어서 그의 삶에는 아직도 명민(明敏)하게 인식하지 못한 인생론이 잠재해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구름처럼 잠시 잠깐 머물다
총알처럼 스쳐 가는 우리들 운명이라면
사랑하며 존경하며 칭찬하며 살자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은
길지도 짧지도 않은 우리네 삶
미움은 영혼을 삼키고 욕심은 망신(亡身)
어차피 세월에 속고 자신에 속고 살았지 않느냐
편한 길 꽃길만 찾다가
아까운 삶 길거리에 던질라
공경하며 감사하며 축원해 주는
사랑의 원자탄이 지축(地軸)을 흔들면
기쁘고 즐거운 삶의 길이리라.
--「삶의 길」 전문
박영곤 시인이 구현하려는 “기쁘고 즐거운 삶의 길”은 무엇인가. 그는 “어차피 세월에 속고 자신에 속고 살았지 않느냐”라는 어쩌면 허망적인 행보(行步)에서 그가 적시하는 삶의 길은 상황 설정에서 제시한 “구름처럼 잠시 잠깐 머물다/ 총알처럼 스쳐 가는 우리들 운명이라면/ 사랑하며 존경하며 칭찬하며 살자”라는 명징(明澄)한 가치관을 정립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항상 “길지도 짧지도 않은 우리네 삶”의 운명적인 철칙(鐵則)을 상기하면서 미움이나 욕심은 영혼에게 망신일 뿐만 아니라, 아까운 삶을 길거리에 던져지는 불행도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생(生)에 대한 애착이 함축되어 있어서 공감을 유로(流露)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그는 “삶의 아름다움이란/ 거역없는 자연의 순리를 따라/ 모자란 사람끼리 살 부비며/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요, 축복이어라.(「모자람의 미학Ⅱ」 중에서)”라는 어조와 같이 삶의 미학(美學)은 소박하고 순정적인 “모자람”(부족함)에서 탐구하는 그의 진실을 이해하게 한다.
미친 듯 끌어안고
솟구치는 삶의 의미를 퍼붓고 싶었다
하루, 하루 또 한 해가 저문다
구름비를 몰고 오듯
바람 일어 씨를 날리는
생명 존엄이 자리하는
세상 언저리에서
신(神)은 나에게 세월을 빼앗는다
저무는 태양이
황혼의 신비되어
나에게 묻는다
유한한 네 삶에
남김은 무엇이며
남기려 한들 무슨 소용인가?
순응의 진리 앞에
감사로 무릎 꿇고
더도 덜도 아닌 현재에 만족하며
지금 이대로 살다 가라 답한다.
--「저무는 날의 응답」 전문
박영곤 시인의 인식에서 다시 “저무는 태양이/ 황혼의 신비되어/ 나에게 묻는다/ 유한한 네 삶에/ 남김은 무엇이며/ 남기려 한들 무슨 소용인가?”라는 자문을 하면서 삶의 의미에 대한 진정한 해법을 찾고 있다. 그는 황혼이나 저무는 날이 적시하는 이미지는 바로 덧없는 세월과 동행한 인생에서 생명의 존엄이나 순응의 진리 앞에서 무엇을 구가(謳歌)해야 하는지에 대한 응답을 탐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처럼 “이제까지 살아온 나는/ 풀잎 한 포기 꽃 한 송이도 피우지 못했네” 그리고 “멸시와 조롱으로 자존감 높이며/ 교만과 자만으로/ 타인을 울리고 분노케 한 엿 같은 삶(이상 「신이시여, 은총을」 중에서)”이라는 자조(自嘲)의 어조와 같이 자신을 폄하(貶下)하고 멸시하는 내면에는 그가 지향하는 삶의 의미에 대한 인식이 바로 “순응의 진리 앞에/ 감사로 무릎 꿇고/ 더도 덜도 아닌 현재에 만족하며/ 지금 이대로 살다 가라”하고 응답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다시 “삶의 무게 등에 지고/ 살아야 한다기에/ 운명의 길이라 생각하고/ 뚜벅뚜벅 걷고 또 걸었는데/ 꺼져 버린 주마등에/ 발자국도 사라졌네-중략-이제 땅거미 내려와/ 고요히 잠들 때/ 형체 없이 사라질 흔적이라도/ 지나온 삶을 사랑하리라.(「흔적은 사라지고」 중에서)”는 지순(至純)한 대오(大悟)의 성찰의 자아를 실현하고자 시적으로 천명(闡明)하고 있어서 우리들의 공감 영역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2. 황혼 들녘의 언어와 세월의 융합
박영곤 시인은 자신의 삶에서 체득한 다양한 여운(餘韻)들이 황혼의 들녘에서 회상하는 언어들은 그의 심정을 애련하게, 혹은 애절하게 현현하고 있다. 이러한 의식의 흐름은 자아 인식에서 존재의 의미를 더욱 충만시키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세월(혹은 시간)과 융합하면서 “빛살 받고 정오(正午)를 보낸/ 시간의 옷자락에/ 못다 한 꿈 접어놓고// 산천(山川)에 밤 이슬 내리기 전/ 잠시 후 도착할 황혼 열차를/ 조용히 웃으며 타려므나.(「황혼열차를 타라」 중에서)”라는 황혼행 열차의 이미지가 범상치 않음을 간과(看過)하지 못한다.
그는 노년이라는 인생 황혼기에 던지는 메시지가 인생의 결론에서 조감(照鑑)하는 시적인 진실임에 찬사를 보내지만 그가 구사하는 시담(詩談)은 ‘들려주기(話者)’와 ‘보여주기(showing)'의 시법을 병용하면서 전개하는 그의 시간성 탐색이 우리의 시각을 흡인시키는 효과를 가진다.
세월이란 장작불에
몸뚱이 활활 타오르는데
마음은 청춘의 길목에서
별과의 속삭임에 취해
푸른 강변에서
낮달을 노래한다
노도광풍(怒濤狂風)에도
태양을 집어삼킬 기세(氣勢)는
고지(高地)가 바로 눈앞이었는데
벌써 늦여름 매미의 슬픈 노래에
마음은 황혼(黃昏)의 들녘에 서 있구나.
--「회상」 전문
박영곤 시인의 뇌리(腦裏)에는 육신보다는 심혼(心魂)이 이미 황혼의 들녘에 서 있음을 자각하고 세월의 장작불과 육체의 교감이 청춘과 노년의 “고지(高地)가 바로 눈앞이었는데/ 벌써 늦여름 매미의 슬픈 노래”가 들리는 형국으로 적시되고 있어서 황혼의 언어는 애절하게 현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의 회상에는 청춘의 길목에서 감지(感知)하는 무정세월 약류파(無情歲月若流波)의 고사(古事)를 상기하면서 지금도 “노도광풍(怒濤狂風)에도/ 태양을 집어삼킬 기세(氣勢)” 등등한 불변의 심중(心中) 언어를 현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다시 “언제 새벽 여는 소리 들렸길래/ 황혼의 낙조(落照)를 아픔이라 하는가/ 청천(靑天)하늘에 날벼락이 쳐도/ 창공(蒼空)의 독수리 높이 날지 않더냐(「새벽을 열어라」 중에서)”라는 자정(自淨)의 어조로 자신의 신망애(信望愛)를 시정신에 도입함으로써 세월과의 융합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유한(有限)의 종점(終點)은 가까워 오는데
세월(歲月)은 노객(老客)의 발걸음
저리도 재촉하는가
폭풍우 지나간 자리에
인간의 한계(限界)가 너부러지듯이
황혼(黃昏)의 언저리로 처절(悽絶)한
허망(虛妄)함이 땅거미를 들이친다
살만큼 살았는데
무슨 미련(未練) 그리 남아
아직도 지는 해 붙들고 싶다.
--「내려놓아야지」 전문
그는 이러한 세월과 동행하는 인생을 어떻게 사는 것이 현명한 생존인가에 대해서 환혼의 언어는 계속된다. 이제 “내려놓아야지”라는 제하(題下)에서 세월과 노객(老客)의 유한 종점에 당도하는 시점에서 그는 인간의 한계와 “황혼(黃昏)의 언저리로 처절(悽絶)한/ 허망(虛妄)함이 땅거미를 들이”치는 절박한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결론적으로 “살만큼 살았는데/ 무슨 미련(未練) 그리 남아/ 아직도 지는 해 붙들고 싶다.”는 일말의 종결적인 기원의 의지를 여망하고 있어서 신노심불노 (身老心不老)라는 고사를 짐작케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대 정녕 노년의 아름다움을 꿈꾸려거든/ 불꽃 같은 청춘으로 황금마차에 올라(「철새에게 배운다」 중에서)”, “희망과 용기의 색실로/ 곱게 수(繡)를 놓고/ 소리쳐 불러보는 천상(天上)의 노래로/ 쪽빛 하늘을 열면/ 어느 새 노년은 한참을 비껴 가리. (「노년을 손질하라」 중에서)”라는 등의 어조로 노년과 세월의 상관성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작품 「석양에 흘리는 눈물」 「시간 속의 세월」 「침묵의 사랑」 「너의 소리에 내가 살았다」 「밤의 찬가」 「명태의 엘레지」 등에서 세월이 분사하는 메시지들이 인생 노년 즉 황혼의 이미지와 밀접한 관계로 인생론을 융합시키고 있는 것이다.
3. “삶과 영혼의 고향”의 영원한 사모곡
우리 시인들은 “어머니”에 대한 모정(母情)이나 사모곡(思母曲)을 테마로 작품을 몇 편씩 써보지 않은 시인은 없을 것이다. 어머니는 내 생명의 모태(母胎)로서 정감적인 애환(哀歡)이 가슴 깊이 요동치는 삶과 영혼의 보고(寶庫)이다.
우리의 원로 김남조 시인은 “어머니! 이렇게 부르면 지체 없이 격렬한 전류가 온다. 아픈 전기이다. 아프고 뜨겁고 견딜 수 없는 전기이다.”라고 어느 글에서 어머니를 말한 것과 같이 불망(不忘)의 모정은 영원한 사모곡으로 피아니시모(pianissimo)로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이다.
내 밥상에
아삭한 김치와
질리지 않는 된장국
추자도 멸젖을 올려 주오
내 몸의 뼈와 살을
북돋아 주었나니
정성 가득한 숨결로 버무려진
어머니의 애끓음은
내 삶과 영혼의 고향이기에
오늘도 생각나는 밥상머리
보고픈 어머니를 꿈꾸며
하얀 꽃을 피우리라.
--「그리운 밥상」 전문
박영곤 시인은 위대한 어머니의 이름을 먼저 “그리운 밥상”에서 애타게 부르고 있다. 그는 “내 몸의 뼈와 살을/ 북돋아 주었나니/ 정성 가득한 숨결로 버무려진/ 어머니의 애끓음은/ 내 삶과 영혼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보고픈 어머니를 꿈꾸”면서 “다섯 남매 정성 기도 반 토막 날까 봐/ 쓸고 닦아 윤(潤)이 나던 장독대/ 아주까리 동백기름 번갈아 머리 감고 / 한밤중 정화수 떠 놓고 숨어 우는 기도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다.
박영곤 시인의 자당(慈堂)께서는 자식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게 현현되고 있다. “아들, 며느리 손 붙들고 애원하듯 하는 말씀/ 어미야! 장독에 간・된장 맛있게 익었을 게다/ 아비의 급한 성미 네가 이해하고 / 너는 어미 속썩이는 졸장부 되지 말라 하셨네 (이상 「숨어 우는 기도 소리」 중에서)”라는 자식들 사랑을 한평생에 교훈을 남기셨다.
그는 다시 “혹여 들고 난 흔적 있나/ 창문을 열자/ 파릇한 감잎 사이로 스며드는 봄바람/ 반기는 어머니의 목소리 같다// 볏단처럼 묶지 못한 세월/ 사라진 라일락 향으로 다가온다/ 다시 찾고 싶고/ 한 번만이라도 부르고 싶은 어머니/ 오늘 점심은 당신의 숟가락으로 먹고/ 오늘 밤은 당신 방에서 잠들렵니다.(「봄날의 귀향」 중에서)”라는 어조로 사모곡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개인날 한 번 없이 길길이 살다 떠나시던 날
예보에 없던 눈보라 밤하늘 수놓아
축복이라도 하는 듯 하얀 상여 꽃길 열어 주었네요
뻐꾸기 둥지에 숨겨 둔 웃음
한 번도 찾아 쓰지 못한 채
서러운 눈물의 삶 마치시는 날
생전에 못 한 예쁜 화장하고 천국을 향했네
부는 바람마저 살아생전 한숨이었으니
쏟아 붓는 저 눈발은
골육을 쥐어 짠 당신의 살점인가요
흰 옷에 흰 고무신, 흰 모자
아~ 백목련으로 꽃 피운 당신의 마음 빛깔
고결한 유품으로 남기시고
누구의 명이기에 이 자식 버리고
3층 꽃상여 소리꾼도 없는데
멀고도 먼 길 어이 떠나셨나요.
--「어이 떠나셨나요」 전문
지금 어머니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어머니가 “서러운 눈물의 삶 마치시는 날” 더욱 슬픔에 복받치면서 “멀고도 먼 길 어이 떠나셨나요.” 오열하고 있다. 그의 어머니는 한 번도 개인날 없이 살아왔으며 흰 옷과 흰 고무신, 흰 모자를 유품으로 남기고 떠난 고결한 분이었다는 어조는 더욱 사모곡의 운율을 애절하게 흡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작품 「어머니의 일생」 에서도 “자식들 잘 된다면/ 도둑질 화냥짓만 않고/ 손발이 갈라지고 온몸이 부서져도// 주저 없이 가림 없이 무엇이든 하겠다는 / 완벽한 헌신으로 살다 가신 / 어머니의 일생이어라.”라는 어조로 모성애를 회상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한 밤 개구리 울음소리가/ 어머니 생각을 뭉클케 한다// 생전의 불효가 가슴을 쥐어짜니/ 통곡의 시간 끝이 없구나 (「어찌 잊으리까」 중에서)”라는 회한(悔恨)으로 오늘도 “꿈속의 어머니를 찾”는 효심(孝心)에 잠겨 있는 것이다.
이러하듯이 박영곤 시인은 그의 삶과 영혼에 대한 영원한 불망의 고향인 어머니의 존재가 그의 생존에 불멸의 혼불을 지금도 피워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생전에 불효를 다소나마 화해하는 해법으로 모정의 원류를 탐색하고 있어서 눈물겨운 시법이 공감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4. 친자연에서 교감하는 서정 시학
박영곤 시인은 순수 서정을 지향하는 시인이다. 그는 서정적 주제를 친자연에서 탐구하고 있다. 자연의 변화에 다라서 생성하는 섭리의 진실, 그들과 화해하는 순정적인 시심에 감동하고 있다. 만유(萬有)의 자연이 계절따라 변모하는 그 형상에서 그가 심취(深醉)하면서 감응(感應)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일찍이 프랑스의 사상가 몽테뉴는 그의 저서 『수상록』에서 “진실로 모즌 일에 있어서 자연이 좀 거들어 주지 않는다면 인간이 영위하는 기술이나 기교는 조금도 발전을 보지 못하리라”는 명언으로 우리 인간들을 설득하고 있어서 자연과 인간의 상관성은 공존의 위대한 섭리의 순리에 따른 생멸(生滅)의 존재성을 교착(膠着)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낙엽 따라 쓰러진 가을은
찬 서리 눈보라로 눈물을 삼키고
숨죽여 찾아오는 님의 발자국은
뛰는 가슴 짓눌렀네
빛 잃은 태양이 대지를 묶어 놓고
백야의 달빛은 언 땅에 뿌리박아
언제쯤이려나 손 모아 기다리니
심장의 더운 피 꽃이 되어 피었네
아~ 소설 같은 시간이
바람으로 스치니
붉은 자태(姿態)는 아픔으로 추억되고
열매는 푸르러 애절함을 더하누나.
--「홍매화의 추억」 전문
박영곤 시인은 자연 생태계에서도 계절의 시간적인 변화에 따라서 그 모습을 달리하는 현상, 즉 그가 착목(着目)하는 현장에서 감지하거나 감응된 현상은 화훼류(花卉類)에 우선적으로 시선을 멈추고 있다. 꽃이라는 사물은 누군가가 말했듯이 꽃의 매력은 그에게만 있는 아름다운 침묵이다.
그는 이러한 꽃들 중에서도 홍매화에 관한 추억이 새롭게 재생되고 있다. 여기에서 그는 낙엽(가을)과 찬서리 눈보라(겨울)의 계절을 지나서 새봄을 붉게 장식하는 홍매화의 매력에 흠뻑 취해 있다. 그의 서정성은 바로 결론으로 적시한 “아~ 소설 같은 시간이/ 바람으로 스치니/ 붉은 자태(姿態)는 아픔으로 추억되고/ 열매는 푸르러 애절함을 더하누나.”라는 약간 감상적인 시학이 잠재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서정적인 심연(深淵)에는 그의 안온하고 정적인 심리적인 발현이겠으나 “백야의 달빛은 언 땅에 뿌리박아/ 언제쯤이려나 손 모아 기다리니/ 심장의 더운 피 꽃이 되어 피었”다는 기다림의 미학으로 그의 자연관은 숙성되고 있는 것이다.
세찬 눈보라에 깃발은 소리 없이 울부짖으며
고독(孤獨)한 그리움의 길목을
차디찬 내 발목이 묶는다
으스러지도록 안고 싶은 뜨거운 목젖을
하얗게 소복한 여인의 숨결이
애달픈 내 영혼을 녹여 주는구나
그대 하얀 피부(皮膚)의 탄력(彈力)이
유난히 뽀드득이는 걸음마다에
그리움의 눈물 호수에 넘치나니
얼어붙어 작아진 심장(心臟)의 파열음(破裂音)으로
소리 없는 깃발 되어 나지막이 불러 본다
오~ 그리움이여~~~.
--「겨울 연가(戀歌)」 전문
박영곤 시인의 사유에는 봄과 겨울에 대한 이미지의 창출이 돋보이는데 이 “겨울 연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세찬 눈보라와 “고독(孤獨)한 그리움의 길목”이 서로 대칭적으로 발현함으로써 그가 여망하던 “애달픈 영혼을 녹여 주”고 있어서 ‘그리움의 눈물 호수에 넘치’는 정경(情景)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서의 겨울 연가는 “하얗게 소복한 여인의 숨결이” 있으며 “그대 하얀 피부의 탄력”과 “유난히 뽀드득이는 걸음”이 그의 내면에서 “얼어붙어 작아진 심장의 파열음”과 “소리 없는 깃발”로 남아 있어서 지금 그 그리움의 상념(想念)은 지울 수가 없는 추억으로 상기되고 있는 것이다.
박영곤 시인은 특히 겨울에 대한 이미지들을 다수 작품에 투영하고 있는데 작품 「눈 오는 날의 연가」 중에서도 “절절한 그리움이/ 잿빛 하늘 울렸는지/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당신의 창문을 두드립니다”는 등의 어조로 겨울과 그리움의 이미지 융합은 그가 사유하는 시적 발상과 겨울 추억이 서로 합일하는 심적인 현상이라 보아진다.
이 밖에도 그의 서정 시학은 작품 「가을 사랑」 「축배의 잔을 들자」 「가을 흰구름이 내 본향이로다」 「봄의 눈물」 「세월의 울음소리」 등등에서 그가 구사하는 자연과 계절의 이미지를 감동적으로 읽을 수 있게 한다.
5. “시인의 꿈”을 위한 파노라마
박영곤 시인은 지금까지 이 시집에 명시한 이미지는 대체로 삶에서 재생한 자아의 인식에서부터 이제 황혼의 성숙기의 인생이 세월과 융합하는 언어들의 탐색 그리고 삶과 영혼의 고향인 사모곡 그리고 생존시에 친화로 교감해야 할 자연 섭리에 순응하는 시법을 작품으로 구현하면서 그의 주제는 인본주의(humanism)에 근원을 두는 서정 시학을 구가하여 왔다.
그러나 그가 심도(深度)있게 구상하는 궁극적인 인생관은 완전한 시인이 되고 싶은 꿈을 지금도 꾸고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일찍이 영국의 대시인 엘리엇은 “시인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새로운 감정을 찾는데 있지 않고 보통 감정을 이용하여 이것을 시가 되게 하며 그가 경험한 일이 없어도 풍부한 감정과 함께 이를 표현하는데 있다.”는 말로 시인의 꿈에 대한 조언을 하고 있다.
나도 시인이 되고 싶다
우주 같은 마음밭에
이랑 치고 물 주며
끝없이 노래하고 싶다
조막손으로 달걀 훔치려 드는 걸까!
퍼올리는 두레박 힘들고 버거워도
일렁이는 마음 쓸어 모아
진홍빛 무지개로 꽃 피우고 싶다
까맣게 타 버린 어머니의 더운 심장
이 가슴에 박혀 있듯
시를 향한 나의 노스탈자는
병풍바위 적벽천의 영원한 고향 집이어라
누군가가 황혼의 주책이라 해도
진솔한 삶과
자연의 숨결과 넋을 파고드는
오늘도 그런 시인을 꿈꾼다.
박영곤 시인은 작품 「시심(詩心)」 전문에서 그가 꿈꾸는 내심(內心)을 이해할 수 있듯이 그가 “나도 시인이 되고 싶다/ 우주 같은 마음밭에/ 이랑 치고 물 주며/ 끝없이 노래하고 싶다”는 상황 설정에서부터 의미심장한 그의 의식의 흐름을 이해하게 된다. 그의 순박한 정서와 강인한 의지가 합일하여 그가 간구(懇求)하는 시인의 길을 성취하려는 욕구가 활화산으로 타오르고 있음을 이해하게 한다.
이러한 그의 꿈은 “누군가가 황혼의 주책이라 해도/ 진솔한 삶과/ 자연의 숨결과 넋을 파고드는” 시인으로서 시의 위의(威儀)가 훼손되지 않는 시정신(poetry)의 고양(高揚)에 각고(刻苦)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시는 영혼의 음악이라고 프랑수 시인 볼테르는 말했다. 또한 기쁨이든 슬픔이든 항상 그 자체 속에 이상(理想)을 좇는 신과 같은 성격을 시가 갖고 있기 때문에 시인의 존재는 항상 순수와 순정과 충만한 시심 속에서 형이상적(形而上的)인 사유의 범주(範疇) 확대에 심혈을 쏟아 부어야 좋은 시인의 길에서 깃발을 높이 세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는 작품 「정지된 뜬 구름」 중에서 사물을 응시하면서 발상하는 이미지처럼 “눈부신 한 폭의 풍경화가/ 그 속을 알려나/ 잠시겠지만 시간을 붙든 뜬 구름의 저 모습/ 몇 번을 더 보고 아름다운 삶 마감하려나/ 열 번 스무 번 아니면 더이더냐 덜이더냐?/ 어이없는 샘으로 삶을 갈무리해 본다.”는 그의 시각적인 사물(뜬 구름)에서 자신의 진솔한 인생관(삶을 갈무리)을 정리하는 시법은 또 다른 창작에서도 적극 원용(援用)하면 좋을 것으로 확신하게 된다.
시집 출간을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