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3일 (수) 촬영.
북촌문화센터입니다.
방형이지만 아름답게 만든 물확.
경복궁 민속박물관 가는 길에 있는 송원아트센터.
서울교육박물관 앞의 이 공간은 2016년에 박물관 앞에 있던 옹벽을 헐고, 돌계단과 의자를 만들어 시민들의 쉼터로 만들었습니다.
정독도서관 안에 있는 서울교육박물관. 서울교육박물관 건물은 1906년에 세워진 경성보통학교(경기고등학교의 전신) 건물이었습니다.
홍현(붉은 언덕)이라던 이곳에 관광 편의 시설을 만들었습니다. 2016 봄,
삼청동으로 가는 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도 이 길에 있습니다.
미술관 건물도 작품입니다.
조선 왕실 종친부 건물인 경근당과 옥첩부.
경복궁 쪽으로 나가는 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길 건너편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 입구에 있는 조형물입니다.
민속박물관에 있는 물레방앗간
물레방앗간 / 20세기, 재현품.
정미나 제분을 하는 도구인 물레 방아를 설치한 너와 지붕 형태의 방앗간이다.
물레 방아는 자연적으로 흐르는 물의 힘으로 바퀴가 돌아가면서 방앗공이를 들어 올렸다 내리찧는 원리로 작동한다.
방앗공이는 두 개가 있는데, 물레가 한 바퀴 도는 동안 번갈아 한 번씩 움직인다.
이 물레방앗간은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신리의 사례를 참고하여 만든 것으로,
너와 지붕과 건물 내부의 외양간, 항아리, 지붕 등은 강원도 지역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국립민속박물관 입구에는 추억의 거리를 재현해 놓았습니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한국인들의 일상이 담겨 있는 공간을 재현한 것이다.
구멍가게, 국밥집, 이발소, 다방, 만화가게, 전파사(전자기기를 파는 가게), 사진관, 교실 등으로 거리가 조성되어 있으며,
건물의 안과 밖 구석구석에 당시를 추억할 수 있는 소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지하수를 퍼 올려 사용했던 수동 펌프, 음악을 감상하던 다방, 가족사진과 증명사진을 찍던 사진관 등을 체험할 수 있다.
사진관입니다. 내부도 들어가 볼 수 있으며, 이곳에 비치된 교복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도 있습니다.
무료 즉석 사진도 찍을 수 있는데 화질이 너무 안 좋아요.
근대화 연쇄점.
인기 많았던 일일 달력.
화개 이발관.
고향 국밥집.
약속 다방입니다.
다방에는 시원하게 에어컨이 작동되고 있으며, 무료로 커피를 마시고, 음악도 즐길 수 있습니다.
특히 내부의 소품들이 1970년 대의 물건들로 채워져 있어 향수를 느끼게 합니다. 원하면 신청곡도 들려줍니다.
조개껍질로 만든 공예품입니다. 예전엔 이런 장식품들이 많았었습니다. 빨간 전구를 달아서 불도 들어오게 했는데, 지금은 조잡해
보이지만, 그때는 멋있게 보였습니다. 소라껍데기 안에 들어가 있는 전구들이 배보다 더 큰 배꼽 같습니다. ㅎㅎㅎ
무료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귀에 익은 노래가 들려옵니다.
친구가 생각나고 고향이 그리울때
나는 너를 본단다 높은 하늘아
세상을 한눈으로 내려다보는 너도
혼자 있는 외로운 쓸쓸함보다
아~ 하늘 외로워~
아~ 하늘 외로워 외로워
친구가 생각나고 고향이 그리울때
나는 너를 본단다 높은 하늘아
알고 있는 노래인가요. 수연의 '높은 하늘아'입니다.
옛날이 생각나는 시도 걸려 있습니다.
벗은 설움에서 반갑고
님은 사랑에서 좋아라
딸기꽃 피어서
향기(香氣)로운 때를
고초(苦草)의 붉은 열매
익어가는 밤을
그대여 부르라!
나는 마시리.
김소월(金素月, 1902~1934) 님의 시 '님과 벗'입니다.
행여 그리운 얼굴이 보일까, 문밖을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약속한 일도 없는데 말입니다.
혹 당신도 옛일을 회상해 보고 싶다면 약속 다방에 한번 가 보시기를 강력 추천합니다. 전철만큼 시원하고 원하는 음악도 들려주고
차도 무료로 마실 수 있는 데다가, 눈치 주는 마담도 없습니다.
10월 말까지 행사합니다. 이후에는 이 거리는 폐쇄됩니다. 재단장을 한다나 봐요.
만화방에서 만화를 봐도 돼요.
물론 장기나 오목도 둘 수 있습니다.
지금은 볼 수 없는 간판, 간판만 봐도, 국민학교 출신들은 울컥할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출신들은 물론 이런 감성이 없겠죠.
촌스러워 보이지만 지금 이런 옷을 입어도, 멋질것 같네요.
초등학교 출신은 이해가 안 되겠지만 국민학교 출신은 공감이 되는 교실도 있습니다.
교단에 풍금이 있는 것으로 보아 북촌 국민학교는 부자동네 학교인가 봅니다.
웬만한 학교는 풍금이 몇 대 없어서 음악 시간이면 풍금을 옮겨가며 수업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도 제가 국민학교 출신입니다. ㅋㅋㅋ
점심시간에 더운물을 먹을 수 있다는 것에도 행복을 느꼈던 가난했던 그 시절이 왜 그리운 걸까요.
연자방아
평평한 원형의 돌판 위에 둥근 돌을 얹어 이것을 소나 말로 돌려 곡식을 찧는 기구로 "연자매", "돌방아", "돌방아"라고도 한다.
손으로 윗돌을 돌려 곡식을 가는 맷돌과는 달리, 연자방아는 가축의 힘에 의해 윗돌과 아랫돌이 수직을 이뤄 돌아가기 때문에,
맷돌에 비해 일의 능률이 훨씬 높다. 곡식을 빻을 때는 한 사람이 소나 말의 고삐를 잡고 앞에서 몰아 윗돌을 돌리고,
다른 한 사람이 뒤를 따르며 넓적한 나무 판에 긴 자루를 단 도구인 넉가래로 곡식을 밀고 뒤집어 준다.
연자방아를 만들려면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장만해 함께 사용했는데, 기계식 방앗간이 들어오면서 거의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문석인.
남오성(南五星) 장군묘 묘비와 석물 / 18세기, 남오성 후손 기증.
2002년 충남 태안군 태안읍 석산리에서 발견된 남오성 장군 무덤의 묘비, 문인석 1쌍, 상석, 향로석 등의 석물이다.
남오성(1643~1712) 장군은 1643년에 출생한 무관으로, 1676년에 무과에 급제한 뒤 삼남(충청, 전라, 경상) 지방의 수군 총사령관인
삼도통제사 등을 역임했고, 1712년에 사망했다. 묘비의 앞면에는 남오성 장군과 부인 창녕 성씨의 합장묘임을 밝혀주는 내용이,
뒷면에는 장군의 외손인 임박이 남오성 장군의 일생을 기록한 비문이 새겨져 있다.
남오성 장군의 비와 상석과 향로석.
문인석 / 조선시대 (1392~1910)
문관의 형상으로 만든 무덤을 지키는 석물로, 문관의 차림새에 홀(笏, 조선시대 관리들이 임금을 만날 때 손에 쥐던 물건)을 쥐고 있다.
이 밖에도 무덤에는 다양한 석물이 조성되어 있는데,
갑옷 차림으로 무기를 들고 있는 무관 형상의 무인석을 비롯한 비석, 망주석, 상석, 향로석 등이 있다.
남,녀근석과 장승도 있네요.
으아리 꽃
8월 6일 재개장을 앞둔 광화문 광장.
경복궁에서 광화문 광장을 바라볼 때 우측에 있던 도로를 없애고 광장을 넓혔습니다.
세종문화회관 옆의 도로도 당연히 없어졌죠. 차도는 없어졌는데, 공사 중이라서 그런가, 차량들은 주차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