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 한국학 교수 박노자
민족적 가치를 넘어 보편적 가치를 찾아야
살기가 참 어려워졌다. 아이엠이프 때보다 힘들다고 한다. 나이 드신 분들은 박정희를 그리워한다. 근대화의 이름으로 배고픔에서 벗어나게 해주지 않았는가. 정치에서도 박근혜 신드롬이 퍼지고 있다.
유신. 보리 고개를 이겨냈다는 이유 하나로 군사 쿠데타의 죄과를 용서 할 수 있을까? 박정희의 근대화는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의 발전을 꾀한 것일까. 박정희의 아득한 향수에 젖어, 아무 한 일도 없는 그의 딸이 야당의 대표로, 정치 지도자로 받아들이는 현상은 올바른 일일까. 우리는 우리 역사를 객관의 눈으로 보는 걸까.
박정희 향수
박노자. 그는 한국인이다. 파란 눈의 한국인. 박노자의 글이 파문을 일으키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우리 역사와 사회를 여느 한국인보다 객관의 눈으로 바라보는 까닭은 왜 일까?
‘춘향전’을 보고 한국에 깊이 빠진 러시아인. 블라드미르 티호로프라는 이름을 버리고 한국을 선택한 사람. “외국인의 눈으로 보는 ‘외부고발’이 아니라 진정 한국을 사랑한 귀화인의 ‘내부고발’자” 박노자. 오늘 경남도민일보 강당에서 ‘한국 식민지 유산의 특징과 과거사 청산’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는 귀화 한국인 박노자를 찾아 간다. 박노자는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에서 한국학을 강의한다.
한국인이면서 한 발 옆에서 한국을 바라볼 수 있는 ‘자유’를 가진 박노자 교수의 이야기를 좀 더 가까이에서 듣고 싶었다.
한국을 사랑한 귀화인의 ‘내부고발’
“식민지 시대의 부일에 대한 민족주의적 감정은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정서적 가치, 민족적 가치만으로는 이야기가 안 되죠. 보편적 합리적 가치를 찾아야지.”
박교수의 째지는 듯한 높은 목소리와 숨 쉴 틈 없이 쏟아내는 이야기는 듣는 사람을 자연히 집중을 시킨다. 처음엔 귀에 익숙하지 않던 그의 이야기가 점점 귀에 들어온다. 보수 세력은 식민지 친일세력이 근대화에 기여하지 않았는가를 예를 들며 과거사 청산 문제를 덮으려고 한다. 이에 맞서 박교수는 굳이 “‘민족적 대상’을 집어넣을 필요가 없지 않는가.”라고 한다.
“일제 말기 고문기술자인 친일경찰 노덕술이 독립운동가를 고문한 것과 노태우정권 때 민주인사를 성기 고문한 정형근”이 무엇이 다른가를 묻는다.
“노덕술은 이민족을 섬겼고, 정형근은 친민예속정권인 노태우 정권을 섬겼습니다. 하지만 (고문이라는) 가혹행위의 연장선상에서 볼 때 굳이 민족적 대상을 넣을 필요는 없다. 민족적 가치를 뛰어넘는 보편적 합리적 논리”를 찾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족적 가치를 넘어 보편적 가치로
개화기 친일파의 특징을, ‘동양의 황인종이 뭉쳐 백인과 대결’해야 한다는 인종주의와 일본 메이지 국가 흠모, 일본식의 근대화의 숭배로 든다. 신분제 철폐와 같은 근대화에 기여했지만, 친일의 죄과마저 지울 수는 없다.
개화기의 친일은 정치적 친일은 아니어도 사회문화에 친일 유산을 남겼다. 박영효의 '조선부국국강병'의 구상으로 일본을 끌어들인 점, 조선은 약자니까 강자인 일본을 따라야 한다는 '우승열패', '약육강식'의 이념은 개화기 친일이 남긴 유산으로 꼽았다.
개화기의 친일 세력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자 두 가지 길로 나뉘어진다. 유길준과 같이 일본으로 망명을 가는 길과 김홍직과 같이 조선에서 죽는 길이다. 일본에 영합하고, 친일은 하였지만 식민지는 받아 들일수 없다는 유교적 전통의 선비사상을 지킨 것이다.
식민지 시대에 이전과 이후의 친일은 구분한다. “‘친일’이라고 할 때는 일본과 동등한 입장일 때이고, 식민지 시대에 들어서는 일본에 부역한 것이니 정확한 표현은 ‘부일’이라고 해야죠. 나는 ‘식민지 예속 엘리트’라는 표현을 써요.”
“식민지 예속 엘리트가 일제시대 때 취득한 사회 문화 형태가 여태까지 내려왔지요. 내면화된 관습이 지금까지 우리를 괴롭히고 있잖아요.” 의식을 지배하는 “극단적 국가주의와 군사주의는 ‘힘’을 숭배하는 것이죠. 근대화는 인권, 민주, 민중도 아닌 ‘힘’이었습니다. ‘힘’을 가진 일본에 맞설게 아니라 복종해야 한다.” 일본에 복종하며 ‘힘’을 길러야 한다는 식민지 엘리트의 ‘힘’도 사실은 "식민지 엘리트 자신의 이익과 자본 축적"을 위한 개인의 욕심 이상은 아니었다.
박교수는 식민지 예속 엘리트의 특징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자료로 역사비평사에서 나온 ‘식민지 시대 윤치호 일기’를 소개한다. “최남선이 윤치호에게 삼일운동을 이야기하고 함께 하자고 할 때 윤치호는 ‘너희가 너무 순진하다, 미국이 하찮은 조선의 갈등을 이야기 한 것이 아니다, 닐슨 독트린은 유럽이야기지 동맹국 일본 이야기는 아니다, 약자가 독립 해 봐라, 무슨 득이 되느냐, 결국 다른 강자에게 잡히지, 조선은 독립할 자격도 없는 민족이다, 일본에 복종하고 동화되어야 한다, 지금은 우리가 약자니 강자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약자는 약자답게 굴 줄 알아야한다.’고 나옵니다. 독립운동무용론이지요.”
청산의 문제는 자연스럽게 식민지 시대에 부일을 했는가라는 민족의 문제를 넘어야 한다. 아직도 이어지는 "식민지 예속 엘리트가 남긴 ‘내면화된 관습’의 청산이 중요하다"고 하며, "민족의 가치로만 보지 말고 좀더 보편적 가치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식민지 예속 엘리트, ‘힘’의 허울을 청산해야
“독립운동도 힘들었죠. 하지만 독립운동만이 아니라 보편적인 민주화운동도 힘들었어요. 농민들은 소작쟁의가 있고, 노동자는 파업이 있죠. 소작쟁의 할 때 일본 지주와 조선인 지주의 차이가 없어요. 일본 자본가나 조선 자본가도 마찬가지고.” 박교수는 민족적 감정을 이해하면서도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 까닭을 이야기 한다.
식민지 유산의 청산은 “누가 어떻게 친일했는가”를 넘어서, 지금까지 내려온 “극단적 국가주의, 군사주의가 청산되어야” 한다. 민족의 가치만이 아닌 보편적인 가치에서 식민지 청산을 바라보아야, ‘친일파가 근대화에 기여하지 않았는가, 물질적 기여를 하지 않았는가.’라는 허무맹랑한 논리에 맞설 수 있다. 청산의 문제가 “민족정기를 세우는 문제”를 넘어 우리사회의 현재의 문제이자 미래를 위한 과제가 된다.
박교수는 “탈근대를 생각할 때”에 “완수되지 못한 근대”를 이야기 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친일 유산의 종합적 제고”를 부탁한다. 징병제, 호국불교, 현모양처, 학교 체벌, 학벌사회. 우리의 고전과 불교경전, 역사자료를 바탕으로 거침없이 비판한다.
“징병제를 옹호하며, 병역거부를 죄악시하는 끔찍한 발상”을 식민지 유산에서 찾는다. 징병제는 일제에 의해 전면적으로 도입됐다. 세계전쟁 말기인 1943년 발표하여 실시되었다. 이광수, 최남선과 같은 작가는 징병을, “연약한 조선인을 인간으로 만드는 길”, “군대는 인간으로 만든다.”고 하며, “조선인 개조의 길”이라고 했다. 어떻게 개조하는 것일까. “진짜 황민을 만드는 것이며, 천황의 경지에 자신을 녹일 수 있어야 하고, 조선인은 하방민으로 '나'라는 자신이 없는 존재로 만드는 길”이라고 한다.
청산은 현재이자 미래로 가는 과제
‘군을 같다 와야 사람 구실을 한다.’는 말이 의식 깊숙이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그 시작이 일제 전쟁 말기 총동원령의 유산이라 생각하니 끔찍해진다. 황국의 신민이 되어 군에 가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황국을 위해 총알받이가 되어 죽는 것이 아닌가.
이승만 정권에 의해 1949년 실시된 징병제는 박정희 정권에 와서 재정립된다. “일본군 장교 출신인 박정희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자 징병제가 일제 시대 총동원령과 유사해 지죠. 군에 가지 못하는 여성이나 장애인은 군에 다녀온 남자에 밀려 이등 국민이 되고. 기피자는 상상하기 힘든 범죄자가 되죠.”
우리나라는 OECD 국가 가운데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는 유일한 국가다. “당연시 되는 인권, 양심의 자유와 같은 권리가 침해당하는 것”이다. 여기서도 근대화가 나온다. 박정희가 근대화를 해서 보릿고개를 넘기지 않았는가. 근대화는 부일의 죄과도 쿠데타의 죄과도 덮을 수 있는 걸까. “박정희가 들어서지 않고 장면 정권이 계속 되었으면 근대화가 되지 않았을까요?” 근대화의 변명은 “인권차원에서 보면 끔찍한 발상”이다.
이민족(일제)에 봉사한 박정희가 체득한 사상은 무엇인가. ‘힘’의 사고, 군사주의이다.
“절에 가면 이해가 안 되는 게 있어요. 절방에 가끔 가는데 절방에 뭐가 있는 줄 알아요. 예비군 군복이 있어요. 살생을 죄악시하는 스님의 방에 군복이라니. 이걸 전혀 문제시 하지 않아요.”
군복 입은 스님
호국불교라는 말도 일제 말기에 나온다. “일본에서 메이지 시절에 나온 것인데, 친일 승려들이 군에 가야 한다고 설파를 하죠.” 문제는 스님이 총을 드는 문제를 전혀 문제로 여기지 않는 것, 병역 거부를 인권의 문제로 보지 않고 무조건 죄악시 하는 사회다. 누구도 관습화 되어 쉽게 말 하고 생각하지 못한 이야기를 박교수는 서슴없이 한다.
“현모양처라는 말도 한자에는 없어요. 일본 메이지 초기에 만들어진 말이죠. 우리나라에는 개화기부터 알려졌는데, 현모양처가 뭐예요. 여성는 아이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한다는 거잖아요. 아이를 어떻게 키우는 거냐면, 무솔리니나 히틀러처럼 키워야 한다고 했어요.”
“조선시대에도 체벌은 있었어요. 하지만 일제시대와는 달라요. 조선시대 처벌은 일벌백계가 목적인데, 일제는 목적이 기를 꺾는데 있어요. 기를 꺾는 것은 존엄성을 꺾고, 인격 모독과 통제에 목적이 있는 거예요. 무릎 꿇고 앉아있게 하는 것처럼.”
학벌사회, 그리고 우리가 평소에 쓰는 말과 용어에 이르기까지 일제의 유산은 삶 깊숙이 파고들어 있다. “근대가 완수되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탈근대를 생각해야 할 때” 과거 청산의 문제는 탈근대로 나가는 문이지 않을까? 청산은 ‘누가, 어떻게’를 넘어 집단주의, 국가주의, 힘 우월주의의 낡은 정신적 유산을 버리고, 보편적인 인권, 보편적인 가치를 찾는 일이지 않을까?
박교수의 마지막 말은 의미심장하다. “민권이라는 말도 일본에서 만들어 낸 것이죠. 인권이라는 말 대신에 민권이라고 쓰는데, 한겨레신문에서도 이 말을 써요. 민권은 메이지 시대 때 개인의 인권보다는 집단주의적 사고에서 만든 말이죠.”
탈근대를 이야기해야 하는데
강연은 한 시간을 훌쩍 넘겼지만 얼굴엔 웃음이 멈추지 않고 목소리는 전혀 지치지를 않는다. 물 한모금도 마시지 않고, 숨 한 번 들이키지 않고 말을 하는 그의 열정은 어디에서 나온 걸까. 그가 반해서 귀화한 한국을 사랑해서라고 단정 짓고 싶지 않다. 박노자 교수에겐 내가 극복해야 할 식민지 유산이 머리에 자리 잡지 않고 있다. 과거에 매달린 나, 근대를 넘어 보편적인 가치에 다가서는 박노자 교수. 그가 선택한 나라에 진정 하고픈 말은 쏙 빼놓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첫댓글 어쩐지 볼수록 박노자 교수가 찰리 채플린을 많이 닮은 것 같군요...ㅎㅎㅎ 손짓 하는 모습과 표정 그리고 특유의 콧수염을 보노라면...그리고 특이한 목소리도...ㅎㅎㅎ
편하게 읽어봤는데,내용이 그리 쉽지는 않네요.아무래도 녹음된 걸 한번 들어봐야 겠어요.아마도 긴 내용을 간추리느라 그렇겠죠? 암튼 정리하느라 힘들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