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5월 이달의 작품 심사평 및 심사결과, 당선 소감 필사했습니다.
강순덕 작가의 수필 ‘어떤 물음은 누군가의 삶을 바꾼다.’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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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문봄 글밭을 훑어보다가 새로운 사실 하나를 보았다. 상당한 내공을 지녔음에도
뜻밖으로 오랫동안 ‘나르시시즘(Narcissism)’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안타까운 작가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에 놀랐다. 예술은 형식이든 내용이든 새로움을 추구할 때 비로소 가치가 폭발한다. 틀을 지어놓고 그 틀에다가 맞추어 지지난해나 지난해나 올해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 결과물을 지어내는 것은 예술가가 할 일이 아니다. 그 한계를 극복해내기 위해서 작가는 늘 번뇌하고, 방황하고 고통스러워해야 한다. 우리 작가들이 조금은 더 치열해지지기를 소망한다.
지난달 글밭에서 다시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작품은 산문 부분에서 강순덕 작가의 수필 ‘어떤 물음은 누군가의 삶을 바꾼다.’와 ‘두 어머니의 혼잣말’, 그리고 운문 부문에서는 박찬희 시인의 ‘잎’ 이렇게 3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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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순덕 작가의 수필 ‘어떤 물음은 누군가의 삶을 바꾼다.’는 고뇌 어린 젊은 날 공무원이 되어 살아오면서 자신의 내적 성장을 이끌어준 어떤 만남과 그로 인해서 얻게 된 깨달음을 요약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30여 명의 구청 여직원모임 두루미회 회장이었던 홍 언니로부터 들은 충고 한마디로 인해 우물 안 개구리처럼 협애하던 자신의 정신세계를 다른 차원으로 끌어 올리는 계기가 되었음을 담담히 밝히고 있다. 사회 이슈에 대한 편견을 깨고, 방송대에서 부족한 지적 욕구를 어렵사리 채워간 추억도 하나씩 소환한다. 스물 살 한창 때의 실패로 고통스러워 할 때 들었다는 수선화의 ‘실패했으면 어때? 지금까지 꿈꿔온 것처럼 다시 꿈을 꾸면 되잖아.’ 라는 말은 작가의 일생을 지배하는 자문자답(自問自答)임을 알게 한다. 홍 언니의 근황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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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물음은 누군가의 삶을 바꾼다.
윤슬 강순덕
스무 살이 되던 해, 내 삶의 나침반이 사라졌다. 어린 날부터 오롯이 꿈을 향해 이끌고 가던 북극성은 사위어 더 이상 빛을 발하지 않았다. 나는 쓰디쓴 실패의 잔을 마시고, 하릴없이 내 고향 성산포로 내려갔다.
밤이면 헛잠을 뒤척이고 낮에는 진종일 겨울바다를 서성거렸다. 파도에 휩쓸려 망망대해로 흘러가는 꿈의 조각들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바다는 더 이상 아름답지 않았다. 일출봉에 떠오르는 햇귀도 찬란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바다를 헤매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수선화 한 송이를 만났다. 휘몰아치는 겨울바닷가에 작고 노란 수선화가 피어있었다. 황량한 겨울바다에 어떻게 피었을까.
왠지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 희미한 웃음을 머금은 수선화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몸도 가누지 못할 정도로 거센 바람 앞에서 꺾이지 않고 핀 여린 꽃잎 앞에 무릎을 꿇고 귀를 기울였다. 수선화는 내게 묻고 있는 것 같았다.
‘실패했으면 어때? 지금까지 꿈꿔온 것처럼 다시 꿈을 꾸면 되잖아.’
그런 건 아무런 문제도 아니라는 듯 웃고 있는 수선화 곁에 한참을 앉아 꽃의 말을 들었다. 수선화는 내 말을 들어주고, 바람은 내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내 속에 들어앉아 내 실패를 비웃고, 내 신념을 짓밟던 것들은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이란 걸 깨달았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마음을 짓누르던 무거운 돌덩이가 모래알처럼 스르르 빠져나갔다.
중략
“강 양, 강 양이 대학에 못 간 이유 내가 알잖아. 대학 가서 책 읽고 글 쓰고 언젠가는 좋은 책도 쓰고 싶었을 텐데. 지금 공부하지 못해서 얼마나 속상한지 알아. 공부하고 싶으면 야간대학이나 방송대라도 가. 근데 자신의 열등감을 아무렇게나 내뱉는 건 글 쓰는 사람의 자세가 아니야. 무엇을 볼 때는 거죽만 볼 게 아니라 왜 그런 건지 속을 들여다봐야지. 보이는 대로 믿고 보이는 대로 쓰는 건 글이 아니야. 그렇게 비판 없이 쓰는 건 문학도 아니야. 앞이 아닌 뒤, 가려진 모습을 보려고 노력해야지.”
중략
문학이 단지 펜을 드는 것만이 아니듯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를 형성하게 된 근거를 끄집어내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은 단순한 이웃의 나라가 아니다.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존재할 것이다. 가장 비슷하면서도 너무나 다른 가깝고도 먼 이웃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공부했다. 당시 공부한 것들이 직장에서 삶에서 두고두고 쓰임이 되었다.
흔히 직장에 다니면서 4년 동안 방송대를 졸업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한다. 나 역시 중도 포기를 하고 싶을 정도로 절망할 때도 있었고, 어찌해보지 못할 시련도 있었다. 일과 육아와 가사에 공부를 더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배움이었기에 이번은 실패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공부했다. 주위에서는 그런 나를 한마디로 지독하다고 평가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마지막까지 휴학하지 않고 졸업할 수 있었던 건 홍 언니의 진심이 담긴 물음 덕분이었다. 홍 언니는 대학생들의 시위에 대한 불평을 들으면서 나의 잘못된 시선을 잡아주었다. 늘 큰 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주던 홍 언니는 그날만큼은 엄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왜 그들이 교실이 아닌 거리에서 시위를 하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스스로 내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도록 아프게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에 나는 진지하게 생각하고 답을 얻었다.
홍 언니의 물음 이전까지 나는 글 쓰는 사람의 자세와 문학이란 무엇인지를 고민한 적이 없었다.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는 것처럼 글을 쓰는 것도 하나의 재능이라고 생각했다. 이후로 나는 글을 쓰면서 왜 써야 하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먼저 나에게 물을 수 있어야 하고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다음 세상을 향해 던지는 물음이 문학이고 삶의 자세라는 걸 깨달았다.
어떤 물음은 누군가의 삶을 바꾼다. 아니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놓는다. 그날 홍 언니의 물음이 없었다면 나는 내 안에 열등감을 애써 외면하면서 살았을 거다. 나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않고, 타임을 향한 불평과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문제를 돌려놓으려 했을 거다. 그날 수선화가 차가운 바람 속에서 꽃망울을 터뜨린 것을 보면서 나의 길을 찾았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이유가 있듯이 꽃 한 송이도 허투루 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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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소감
윤슬 강순덕
아침부터 거사가 일어날 조짐에 흥분된 마음으로 티브이 앞을 서성거리다가
마음을 진정시킬 겸 작가회 카페 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이달의 작품으로 저의 작품이 선정되었다는 글이 올라와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5월 사랑과 감사의 꽃밭 위에 수놓았던 작가님들의 수많은 작품 속에서 선정된 작품은
저의 부끄러운 과거를 고백한 글, <어떤 물음은 누군가의 삶을 바꾼다>였습니다.
스물의 어린 저에게 어떤 물음을 던졌던 한 송이의 수선화와 홍 언니를 통해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갔을 저의 삶은 새로운 물음표를 안고 성장해 왔습니다.
늘 고단했고, 무언가를 꿈꾸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현실이었지만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이루어갔습니다.
34년이란 시간이 흘렀네요.
나의 수선화는 지금도 성산포 겨울 바닷가에 피어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래 전에 퇴직한 홍 언니는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알지를 못합니다.
문학을 사랑했던 홍 언니는 아직도 시를 쓰고 있겠지요.
찾아보겠습니다.
이렇게 성장한 강 양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홍 언니가 내게 던진 물음처럼
저도 누군가에게 물음을 던지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하겠습니다.
문학의 봄이 저에게는 또 하나의 물음입니다.
2012년 11월 30일 신인상 응모 작품으로 이메일을 보냈던 그 순간이 없었다면
저의 삶과 문학은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 테지요?
그날 저를 이끌어준 문학의봄을 잊지 않겠습니다.
늘 깨어있어 물음을 던지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언제나 수고가 많으신 심사위원님께 많은 걸 배웁니다. 감사드리며,
문학의봄작가회의 모든 작가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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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순덕 작가의 수필 ‘두 어머니의 혼잣말’은 살아계신 친정어머니와 돌아가신 시어머니 이야기다. 두 어머니는 우리 시대 어른들이 대략 그렇듯이, 한 분(친정어머니)은 제주도에서 해녀로 평생을 보내신 억척이시고, 시어머니 역시 전라도 산골에서 태어나 농사지으며 칠십 년을 살고, 인천으로 올라오셔서 18년을 더 살아가면서 삶의 고통을 한 몸에 아로새긴 또 한 분 억척이시다. 두 어머니의 이야기를 직렬로 또는 병렬로 배치하거나 대비하면서 사연을 더듬어내는 형식이 흥미롭다. ‘인생의 안내서인 도서관 하나가 불타버렸다.’는 결구가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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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어머니의 혼잣말
윤슬 강순덕
친정엄마가 한숨 섞인 혼잣말을 하는 사연은 당신의 살아온 내력 때문이다. 엄마는 조금씩 최근의 일들을 잊고 옛날의 기억 속으로 돌아가곤 한다. 어제 먹었던 것도 처음 먹어본다고 말하고, 방금 말해준 것을 말끔히 잊고 다시 묻는다. 얼마 전에 모시고 갔던 식당 앞에서도 처음 와보는 곳이라고 딴청을 부리기도 한다.
얼굴을 마주 보고 있으면 엄마의 눈동자는 먼 옛날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애쓰며 살아왔던 날들 속에서 힘들었던 일들을 더듬으며 한숨을 내쉬거나 눈물을 흘린다. 엄마는 지금 열세 살 아이다. ‘어멍 죽으면 어떵 살꼬.’울먹이며 한숨을 짓는다. 아픈 엄마를 대신해서 먼우물까지 걸어가 물을 길으며 울고, 올레 길을 돌아오며 울고, 말똥으로 불을 때서 밥을 지으며 울고, 온평리 넓은 밭에 나가 검질을 매면서 운다. 엄마는 요즘 그렇게 열세 살의 어린 기억 속을 산다.
몇 해 전, 엄마에게 전화를 건 나는 엄마가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면 ‘아이들은 학교에 잘 다니지? 조 서방도 잘 있지?’에서부터 새로 이사 온 옆집 아이들, 이웃할머니니 얘기 등 말씀이 끝이 없어서 언제 전화를 끊을까 바쁜 나는 조바심을 낼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엄마는 말이 없어졌다. 내가 엄마에게 이것저것 물으면 엄마는 그저 ‘응......’만 할뿐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걱정이 된 나는 엄마의 손을 잡고 치매를 진단하러 병원에 갔다. 의사의 책상 위에는 체크리스트를 담은 질문지가 놓여있었다. 의사는 처음에 몇 가지 산수 문제를 내주었다. 엄마에게 약간은 어려울 듯했지만 그래도 애를 써서 가까스로 통과했다. 그리고 다음은 엄마의 신상에 관한 간단한 질문이 있었다.
“할머니, 할머니가 살고 계신 나라 아시지요? 나라이름이 뭐예요?”
나는 물을 필요도 없는 질문을 다한다고 생각하며 엄마를 보았다. 그런데 엄마는 떠오르지 않는 답을 찾는 아이처럼 조바심을 품은 모습이었다. 머뭇거리던 엄마는 ‘조서언?’이라고 물음 같은 대답을 했다. ‘조서언? 조선이라고?’나는 깜짝 놀라서 엄마를 보았다. 엄마는 답이 틀렸다는 걸 느꼈는지 실망한 표정으로 창밖을 보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전라도 산골에서 태어나 칠십 년을 사셨다. 그리고 인천으로 올라오셔서 18년을 더 사셨다. 어머니가 올라오실 무렵 큰 아이가 첫돌을 맞았고, 두 번의 이사 끝에 단칸방을 면한 참이었다. 은행돈을 빌리긴 했지만 우리 힘으로 집을 마련했다. 어머니가 오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둘째 딸을 낳았다.
아들 사형제를 키운 어머니는 아들을 최고로 여기는 아주 전형적인 시골 할머니였다. 큰 아이에 이어 작은 아이까지 딸을 낳고 몸조리를 하는 내게 미역국은커녕 손녀를 보려고 방문을 열어보지도 않았다.
어머니는 술을 좋아했다. 오랫동안 술을 드셔온 시어머니는 힘이 들면 더 많이 드셨다. 그런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하는 내게 남편은 말했다. 시골에서는 힘든 농사일을 하다보면 술에 의지하기 마련이라며 이해하라고 했다. 도시의 답답함과 아이를 키우는 일은 어머니에게 농사일보다 고된 일이었다. 한참을 뛰놀기 좋아하는 큰애와 강보에 싸인 갓난아이를 돌보며, 며느리 퇴근 시간만 기다렸을 어머니의 낙은 술이었다. 어떤 날은 내가 퇴근하기도 전에 취해 계셨다.
중략
생각해보니 친정엄마와 시어머니는 띠 동갑이었다. 친정어머니는 병자년 쥐띠인 1936년생이고, 시어머니는 갑자년 쥐띠인 1924년생이다. 두 어머니가 살아온 곳은 각각이었지만, 그 모습은 너무도 닮았다.
그 시대를 관통한 여인들이 그랬듯이 두 어머니는 한이 많았다. 손에 쥐고 있는 게 없어서 가족을 위해 남의 밭에서 허리 한번 못 펴고 일을 했다. 쥐처럼 부지런히 곡식을 모으고, 밤낮없이 일을 하며 살았다. 집 한 칸 마련하려고, 땅 한 평 가지려는 간절함으로, 자식들 배 안 곯게 하려는 발버둥으로, 자신이 못 배우고 산 게 억울해서 자식들만은 공부시키려는 일념으로 당신의 허리를 졸라매 배고픔을 참고 사셨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어느 날 큰 아이가 한밤중에 거실에서 비명을 질렀다.
“엄마. 쥐야. 쥐 좀 봐.”
깜짝 놀라서 방문을 열고 나온 나에게 큰 아이는 달려와서 쥐가 신발장 뒤로 들어갔다고 했다. 남편과 나는 아파트에 무슨 쥐가 있겠냐고 잘못 본 게 아니냐며 현관과 신발장 주변을 뒤졌다.
그때는 가을이면 시골에서 쌀이 올라왔었다. 우리가 농사를 못 짓는 논에 마을 사람들이 대신 농사를 짓고, 추수를 하고 나면 몇 가마니씩 인천으로 올려 보내주었다. 형제들끼리 서너 가마니씩 나누면 일 년은 족히 먹을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 집 거실 한편에는 늘 쌀가마니가 놓여있었다.
큰 아이가 쥐를 보았다는 사건이 있고 나서 쌀알들이 흐트러져 있는 걸 자주 보게 되었다. 그전엔 쌀을 퍼오다가 떨어진 쌀알이 흩어졌나 생각을 했는데, 점점 그 횟수가 늘어나는 게 이상했다. 쌀알들이 흩어진 집안 구석구석을 뒤져보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소파 뒤에 쌀알들이 무더기로 모여 있는 걸 발견한 것이다. 얼마 후 우리는 이사를 할 예정이었다. 남편이 내 얼굴을 보며 말했다.
“엄마가 우리 이사하는 걸 알고 다녀가셨나?”
두 어머니는 혼잣말을 하며 슬픔을 잊고 한을 풀었다. 어머니들에게도 즐겁고 기쁜 일들이 많았을 텐데, 슬펐던 기억을 왜 더 많이 떠올리는 걸까. 내가 어머니들만큼의 세월을 보내고 나면 알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만큼 살아보니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좋았던 일들은 세월의 강 속에 흘려보내지만 아팠던 일들은 차마 보낼 수 없어 가슴 속에 품고 살기 때문이다.
‘한 명의 노인이 사라지는 것은 하나의 도서관이 사라지는 것’이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어머니들이 살아 온 삶에는 도서관에서 얻는 만권의 책 보다 귀한 지혜가 들어 있다. 시어머니는 당신이 해 온 고생을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고 말하시곤 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 걸 자식이 몰라주니 저절로 한숨이 나오고, 들어주는 자식이 없으니 혼잣말이 되었다. 돌아가신 시어머니의 혼잣말은 이제 다시 들을 수가 없다.
내 인생의 안내서인 도서관 하나가 불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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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희 시인의 시 ‘잎’은 대다수의 민생이 겪어내는 무던한 인생과 화려하게 성공하거나 아예 귀족처럼 부유한 삶을 산 이들의 삶을 ‘입맞춤’이라는 은유적 기법으로 들여다본 것으로 읽힌다. 자신의 이야기이든 아니든 간에 대략의 우리는 ‘꽃’에 관심이 많지, ‘잎’에 대해서 마음을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세상은 한 번도 ‘입맞춤’의 기회조차 누리지 못한 잎들의 처지에 대해서 무관심하다. 기댈 곳도 없는데 자꾸만 기대려고 하고, 소소한 는개비에서 주눅이 드는 ‘잎’ 에 대한 시인의 따사로운 눈이 싱그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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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
박찬희
입술들이 파르르 떨며 식어간다
한 번도 입 맞춰보지 못했던 입술들이
할 말이 있다고 우르르 몰려
어떤 날은 사랑했었다고 애써 강변해도
어제와 오늘이 다른 말
꽃들의 증언이 없는 한 봄은 기각된다.
기댈 허공도 없는데 자꾸만 기대고
소란스럽지 않은 는개비에도 주눅이 들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파리한 것들이
에둘러 지나가는 바람의 바닥으로
내려가 맨몸으로 떤다.
꽃 한번 피워보지 못한 숙맥들이어서
발자국도 없이 자기를 지우며
한때는 물올랐던 입술을 오므려 닫는 잎
입 맞추지 못한 죄란 없는데
조서도 없이 유배되고
써놓았던 일기장에 굵은 사선을 그으며
다음엔 꼭 입 맞추겠다고 지장을 눌러 찍는다.
........................................................ (는개비: 안개비보다 조금 굵은 비, 맞나요?)
한 작가의 두 작품을 놓고 고민하는 초유의 일이 생겼다. 강순덕 작가의 수필 ‘어떤 물음은 누군가의 삶을 바꾼다.’와 ‘두 어머니의 혼잣말’은 나무랄 데 없는 좋은 수필작품이다. 자신의 내면에서 흐르는 감정과 회억의 편린들을 웬만하면 빠트리지 않고 적절히 쓸어 담아 채우고 줄 세우는 능력이 탁월하다. ‘수필 문학’에 대한 이해가 정확하고, 그 기법과 플롯 또한 수준에 닿고 있다. 두 편 다 선정 작으로 손색이 없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넘치지 않고 진솔하게 드러낸 강순덕 작가의 수필 ‘어떤 물음은 누군가의 삶을 바꾼다.’를 2019년 5월 이달의 작품으로 선정한다. 6월 문봄 글밭의 풍년을 기대한다.
2019.6.30. 문학의봄작가회 이달의작품 심사위원회
*. 필사 하다 보니 3개의 작품도 심사평도 허투루 쓴 낱말이 하나도 없네요. 잘 읽고 잘 필사했습니다.
첫댓글 수고했네요.
필사가 많은 공부가 되죠.
네ㆍ 맞습니다ㆍ중요합니다 ㆍ작가의 글쓰기 습관도 알게 됩니다
부지런한 신작가님, 글의 힘이겠죠?
별로 부지런하지 않습니다ㆍ힘이되어야할텐데요
기승전결이 잘 보입니다. 늘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