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방송 에세이(16)】
4월의 노래 / 김잠출
4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봄을 만끽하고 꽃들의 향기를 느낀다. 서양의 시인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지만 박목월 시인은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드는 빛나는 꿈의 계절”이고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이라고 노래했다. 또 4월은 목련꽃 그늘 아래서 편지를 읽거나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는 계절이고 멀리 떠나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거나 깊은 산골 나무 아래서 별을 보겠노라고도 했다.
4·3사건, 4·19혁명, 4·16 세월호 참사 등 유독 4월에 수많은 생명의 상실을 경험한 우리 현대사와 맞물려 엘리엇의 표현도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4월은 부활의 계절이고 생식의 달이며 욕망이 되살아나는 계절이다. 나뭇잎이 파릇해지고 나비도 새들도 노래하며 춤추는 달이다.
어릴 적 나의 봄은 언제나 버드나무 줄기와 함께 왔다. 고향 집 앞에 서 있는 버드나무 가지에 물이 올라 잎이 막 돋아나올 때, 가지를 꺾어 홀때기(호드기)를 만들어 불면 봄이 시작되었다. 지금도 나의 봄은 그때의 추억과 함께 찾아온다.
방송도 AI가 접수할까
최근 스마트폰에 새 애플리케이션을 추가했다. AI가 날씨를 말해주고 뉴스를 읽어주고 궁금한 질문에 거침없이 대답한다. 맛집을 찾아주고 여행지 추천이나 메뉴 선택, 상황에 맞는 음악까지 골라준다. 이러다 AI 아나운서나 AI 기자가 지역 뉴스와 지역문화를 방송하는 날이 곧 다가올지 모른다.
우리만 몰랐을 뿐, 이미 세상은 변하고 있다. 두려움일지 희망일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렸지만 지역방송은 또 다른 적을 만난 셈이다.
실제로 지난달 미국에선 AI로 작동하는 라디오 방송국 '라디오GPT' 서비스가 출시됐다. 라디오GPT는 방송에 필요한 정보 수집부터 교통정보나 일기예보 등을 AI가 웹에서 검색해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본을 작성하는데 AI에 탑재된 음성 기술이 이를 읽는 식으로 방송한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포함해 25만 개가 넘는 사이트에서 지역 뉴스, 교통정보, 날씨 등을 검색할 수 있다니 지금의 지역방송이 따라갈 수 있을까 걱정이다.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는 AI기술은 방송 분야에서도 무한 확장할 가능성이 크다.
AI가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 아직도“지금은 라디오 시대”라는 묵은 구호를 외치고 있는 지역방송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까? 실없는 기우杞憂에 그치기를...
羅城에 가면
라디오는 옛 추억을 선사해 주는 매력이 있다. 지난주, 나른한 점심을 끝내고 사무실로 복귀하면서 라디오를 들었다. 마침 새샘 트리오의‘나성羅城에 가면’이 나왔는데 리포터가 해설을 덧붙였다. 1978년 발표한 보사노바 스타일의 곡이라는 것과 羅城은 미국 LA(로스앤젤레스)를 음차한 것으로 원곡은‘LA에 가면’이었는데 당시 영어를 못 쓰게 하는 규정 때문에 가요심의에 걸려 고심 끝에 고쳤다고 한다.
‘羅城’을 듣고 보니 그 흔하던 가차假借 국명들이 어느새 우리 곁에서 사라졌음을 느꼈다. 구닥다리가 되어 언어로서의 기능도 힘도 잃어버린 가차 국명, 신문이나 방송에서도 자취를 감춘 지 오래인데 여전히 익숙하게 기억하고 연상이 이어지니 나는 꼰대임에 틀림없다.
생전에 어머니는 월남치마 단벌로 지내셨고 월남에 파병 간 형님들은 라디오나 전축 하나씩 갖고 귀국했다. 아직도 목욕할 때 이태리 타올을 사용하고 獨逸 濠洲 奥地利 歐羅巴에 西班牙 和蘭 星港 그리고 桑港과 香港은 친숙한 국명이다. 墨西哥나 墨軍 臺灣 英蘭 新蘭 氷蘭 露西亞 俄羅斯도 입에 붙었다. 아직도 이런 말을 사용하거나 제 흥에 겨워 운치를 느끼면 구태이거나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한다지만 별무상관이다. 라디오에서 옛 노래를 들으니 가사를 따라 옛 기억이 스멀스멀 나오는데 뭐 어쩔 것인가.
매운탕 재료가 된 Maggie
지금도 가끔 흥얼거리는 노래 중에 중학교 때 배운 노래가 있다. 미국 민요를 번안한 ‘메기의 추억’이다. 서울에서 온 음악 선생님은 미국 민요를 많이 가르쳤다. 깊어가는 가을밤에, 스와니강, 콜로라도의 달밤, 캔터키 옛집, 오 수재너 등을 한글 가사로 부르게 했는데 메기의 추억은 그때나 지금이나 '매기'가 아닌 '메기'로 적는다. 메기(a catfish)가 사람도 아닌데 무슨 추억이냐며 의아했는데 중학생의 의문이 맞았다. 알고 보니 메기가 아닌 매기(Maggie)였던 앵글로색슨 여성은 음악 선생님 때문에 매운탕 재료가 되어 버렸다. 'When You and I Were Young, Maggie'를 어떻게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메기, 같이 앉아서 놀던 곳’이라고 번역했을까? 지금도 궁금하다. 정말 그것이 알고 싶다.
말 나온 김에 고착된 숫자 발음 몇 가지를 읽어보자. 숫자 발음은 누구나 끊어 읽기에 어려움이 없지만 굳이 말하자면 어감이 중요하고 편의성과 줄임 효과를 고려해 읽어야 한다. 코로나19는 2019년 발견한 바이러스라 해서 ‘십꾸’라고 읽지 않고 ‘일구’로 읽는다. 3·1절 4·19혁명 5·16쿠테타, 5·18, 8·15광복절이나 10·26과 12·12사태를 읽을 때도 숫자 의미보다 기호화해 끊어 읽어야 한다. 콘서트 7080이나 2030세대, 10학번 등도 마찬가지다. 물론 지금은 방송인들이 어떤지 모르지만 혹시 하향 평준화처럼 대중에 영합하며 시류에 따라 읽지는 않는지 궁금하다.
586을 어찌할꼬
숫자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또 있다. 최근 비난의 대상이 집중되고 있는 ‘586’이다. 가끔 전후 베이비붐 세대를 만나 느낀 바는 거의 은퇴자가 되었는데도 ‘라떼’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에 든 일부는 아예 공개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어 씁쓸하기도 하다. 민주화 그리고 저항의 세대, 희생을 많이 한 주인공들인 586에 대한 비난의 이유는 간단하다. 모든 희생을 자신들만 했다는 강변에 희생의 무게보다 너무 많은 혜택을 이미 가져갔으면서도 더 많은 열매를 따 먹으려고 하니 과욕이라는 욕을 듣는다. 욕심을 버리지 못해 버티는 586이라니 듣기만 해도 아프다. 전부 그른 것은 아니다.
80년대 386이란 신조어가 등장했을 때 나는 이미 ‘375’였지만 시류에 따라 편입을 해버렸으니 586세대의 앞선 나이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
1977년, 지성과 야성의 그 대학에 떨어지고 4·19 도서관을 떠나며 모든 책을 버렸다. 걸어서 단성사에 가 '겨울 여자' 장미희를 만난 뒤 낙향을 하니 주변은 온통 낭만 대신 낙망만이 가득했다. 낙심 끝에 후기 대학을 가도 마찬가지. 여전히 학도호국단이 건재했고 교련 수업을 받으라고 했다. 선배들은 수시로 집합을 불러 빠따를 쥐었고 그때마다 씩씩거리며 저항했다. 간혹 잔디밭에서 담배를 피우다 눈을 돌리면 백골단이 우르르 떴고 바로 옆에서 등사로 민 유인물들이 바람에 휘날렸다. 창비 월부장사는 알고 보니 짭새거나 안기부 프락치들이었다. 어느 친구는 끌려가는데 그 뒤로 ROTC 제복들은 구호를 목청껏 외치면서 경례를 붙이고 줄지어 걸어갔다.
온 나라가 억압으로 숨이 막히던 시절, 타는 목마름으로 자유와 민주, 직선제를 갈망했고 자본론 등 불온서적을 몰래 탐독할수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황석영 선생의 외침에 호응하는 강도는 높아갔다. 그만큼 우리는 동토의 한복판에 서 있었고 군대와 전방에 불려가 병영 집체훈련을 잘도 받았다. 길을 걸어도 버스를 타도 불심검문을 받았고 통행금지를 지키느라 밤 문화 가 뭔지도 모르고 살았다. 그런 와중에도 해마다 망월동을 참배하고 거창하게 조국통일을 도모하고 있었던 586세대들. 누가 감히 함부로 재단하랴만은 세상은 변했다. 십시일반 국민주 신문을 위해 쾌척하던 친구들도 많았고 그들은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 않으면서 공동체와 연대의 가치를 높이 산다. 586세대들은 부모를 봉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처음으로 효를 없앤 세대로 그들만큼 청춘을 도둑맞은 세대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3저 호황에 취직은 잘 됐다지만 버는 쪽쪽 가족 건사에 부모 봉양, 자식 교육을 위해 다 써버렸다.
586! 우리가 아니면 이 땅의 민주화가 없었다는 둥 계속 끝까지 가겠다는 자들도 있지만 이제는 버리고 전향한 이들이 더 많을 터. 이미 다른 길을 걸어가거나 돌변한 친구들도 부지기수지만 그래도 괜찮다. 여전히 “독재 타도”니 “민주주주의여!”하면서 80년대 상태에 고착돼 화석이 된 ‘열혈 586’들만 변하면 된다. 글쎄, 그들은 일종의 확신범들인데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종이신문은 끝났는가?
지역신문에 시사 칼럼을 쓰는 변호사는 만날 때마다 이런 질문을 한다. 과연 종이신문의 시대는 끝났을까? 아니면 끝나가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부분 yes라고 답하겠지만 AI 방송을 반신반의하고 있는 나는 가끔 no라고 답하고도 싶다. 지역신문은 지역방송과 함께 살려둬야 할 소중한 지방의 자산이다. 나는 아직도 지역신문을 유료로 구독 중인데 울산 최초의 일간지를 창간 때부터 열독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종이신문의 시대가 저물고 있지 않은가. 시대에 뒤쳐진 사람인가. 옛날의 그 많던 열혈 독자들을 가졌던 황금기에 비하면 종이신문은 이미 종말을 고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기다 신문은 우후죽순, 질은 떨어지고 독자는 줄고 기자들은 못 떠나 안달이다. 문제는 사이비들인데 넘치고 넘치는 자칭 언론이라는 어중이떠중이들을 이대로 방치할 것인지 우리 사회의 큰 숙제다. 유튜브를 비롯한 수많은 SNS와 온/오프라인의 매체라 하는 것들과 비교하면 그래도 신문은 정통과 정론을 전하고 있어 다행이다. 언론자유가 잘못 전파되어 책임도 없고 수준 이하의 저질들이 모두 언필칭 언론이라 자처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법, 그래도 개중에서 제대로 된 정론지를 표방하는 정통 종이신문이 지역마다 한두개는 남아 있다. 그 정론지들은 품격부터 다르고 여론을 선도하는데 큰 가치가 있고 존재론적 현재적 의미가 있다. 기자는 기록자이고 시대의 증언자이니 사관史官과 다르지 않다. 역사의 기록자라는 면에서 신문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자산인데 종사자인 기자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지역신문 지역방송의 기자들이여 사명감을 드높이고 돈과 권력 앞에 절대 기죽지 마시라.
앞의 질문에 나의 답은 이렇다. 제대로 된 종이신문은 여전히 유효하며 미래에도 그 생명력이 유지될 것이다. 태어나면서 접하고 언제 어디서나 스마트폰에 눈 맞추고 온라인으로만 소통하는 MZ세대들 중에서도 종이신문을 알아주는 이들이 있고 그 매체에 청춘을 바치려는 이들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지난달 지역언론은 대기업 자동차 회사의 생산직 모집 기사를 경쟁적으로 쏟아냈다. 기사를 보다가 제목마다 신조어가 있어 무척 헷갈렸다.‘킹과 갓’의 남발이었는데 400명을 뽑는데 18만 명이 지원했다는 내용은 팩트이겠지만 요상한 유행어 제목은 나를 난독증 환자로 만들어버렸다. 킹 받는다, 어쩔티비, 할말하않 이란 기상천외한 말들은 들어봤지만 킹산직이나 킹차갓산직은 처음 접했다. 세상은 이미 그렇게 변해 있었다. 대졸 사무직이 생산직보다 우수하다는 지난날의 우월 의식은 전설 속으로 사라지고 블루칼라 전성시대가 왔다. 노동시장의 양극화와 함께. 그러니 이제 자녀들에게 공부에 너무 매달리지 말도록 하자. 기술 배워서 대기업 생산직에 취업하면 훨씬 더 잘 살 수 있다잖은가.
누군가 말했다. “다시 시작한다, 봄이니까.”
나는 이 봄이 가기 전에 가물가물 잊혀진 첫사랑이 보낸 편지 한 장이나 받았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4월이라서, 괜히 그런 기대를 해 보는 것이다.
첫댓글 586세대는 아닌데, 나성을 알고 메기라는 여자도 압니다. 그렇다고 MZ세대도 못됩니다. 종이 신문을 뜨겁게 사랑하여 두 개의 신문에 아침마다 밑줄을 긋고, 스크랩 한답시고 오려서 온 집에 종이 쪼가리가 너저분합니다. 링크 하나로 끝날 일을 그러고 있습니다. 세상의 속도가 어지럽습니다. 언젠가 챗GPT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때도 종이 신문을 끌어안고 종이 책을 품고 있을 겁니다. 오지도 않는 종이 편지를 기다릴 수도 있겠습니다. 저의 낭만입니다.^^
메기라는 여자도 아시고... 제 생각엔 홍샘은 낭만파 맞습니다
종이신문을 사랑하는 홍선생님이 좋습니다. 저도 아직 스크랩도 하고 "오지도 않는 종이 편지를 기다릴 때"도 있습니다. 지금은 봄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