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다는 것의 의미 / 존 버거 / 박범수 옮김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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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메티
자코메티가 세상을 떠난 지 1주일 뒤에, <파리 마치>지에는 그의 9개월 전 생시의 모습을 촬영한 주목할 만한 사진이 실렸다. 그 사진은 그가 혼자 비를 맞으면서 옹파르나스에 있는 그의 작업실 근처의 길을 건너고 있는 모습을 보여 준다. 비록 그의 두 팔이 소매 속에 들어 있긴 했지만, 그가 우의 대용으로 입고 있는 코트는 자신의 머리를 덮기 위해서 훌쩍 들어올려진 상태이다. 보이지 않지만, 그 우위 아래에서 그의 양쪽 어깨는 둥글게 구부러져 있다.
그 사진이 발표되었을 때, 그것이 주는 즉각적인 효과는 기묘할 정도로 자기 스스로의 안위에 대하여 무관심한 한 남자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는 것에 달려 있었다. 구겨진 바지에 낡은 구두, 우의도 제대고 갖추지 않은 남자의 모습을 말이다. 열중해 있는 문제로 인해 계절의 변화도 잊고 있는 남자의 모습을 말이다.
하지만 그 사진을 주목할 만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자코메티의 성격에 대한 것 이상의 것을 암시해 준다는 점이다. 그 코트는 마치 빌려 입은 것처럼 보인다. 그는 재난으로부터 구조된 사람과도 같은 태도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비극적인 의미에서 그러한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이러한 자세에 아주 익숙해져 있다. 나는 특히 그의 머리 위에 덮어쓴 코트가 두건을 암시하는 것이어서, '수도사와 같은'이라고 말하고 싶은 유혹을 느겼다. 하지만 이러한 비유는 만족스러울 정도로 정확한 것은 되지 못한다. 그는 자신의 상징적인 빈곤을 대부분 수도사들보다 훨신 자연스럽게 입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화가의 작품은 그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 변화를 겪게 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그가 생존해 있을 때는 그의 작품이 어떻게 생긴 것이었는지를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때로 우리는 그의 동시대인들이 그 작품에 대하여 무슨 말을 했었는지에 대하여 읽어보게 된다. 강조되는 부분과 해석상의 차이는 주로 역사가 어떤 식으로 전개되어 왔는지에 관한 문제이다. 하지만 그 화가의 죽음 또한 하나의 구분짓는 선이 된다.
이제 내게는 일찍이 화가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자코메티보다 작품에 더 많은 변화가 일어났던 화가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20년 후면, 아무도 이러한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의 작품은 (비록 사실은 그것이 다른 어떤 것임에도 불구하고) 정상으로 되돌아온 것처럼 보이게 될 것이다. 즉 그것이 지난 40년 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 나타나게 될 어떤 것에 대한 가능한 준비가 되는 대신에, 그것은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중거가 되어 있으리라는 것이다.
자코메티의 죽음이 그의 작품을 그토록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온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의 작품이 죽음에 대한 자각과 아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그의 죽음이 그의 작품을 확인해 주는 것과도 같은 것이며, 마치 이제 우리는 그의 작품을 그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한 줄로 배열할 수 있다는 것과도 같은 것인데, 그의 죽음은 그 줄을 중간에서 단절 또는 종결시키는 훨씬 넘어서는 어떤 것을 구성하는 것으로써, 그것은 반대로 그 줄을 따라 거꾸로 작품을 읽어나가는 것, 즉 그의 전생애에 걸쳐 생산된 작품을 감상하는 것의 출발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어째튼 그 누구도 자코메티의 생명이 영원히 계속되라라고 믿은 사람은 일찍이 아무도 없었던 것 아니냐고 당신은 주장할 수도 있다. 그가 죽으리라는 것은 언제나 추론해 낼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바로 그러한 사실이다. 그가 살아 있었던 동안에는 그의 외로움, 모든 사람은 불가지(不可知)의 존재라는 그의 확신과 같은 것이, 그가 몸담고 살아가던 사회에 대한 논평이 함축되어 있는 하나의 선택된 관점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 이제 그는 자신의 죽음으로 자신의 논지를 입증한 것이다. 아니(그것을 좀더 나은 방식으로 표현해 본다면, 왜냐하면 그는 논쟁 같은 것에 관심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았던 사람이었으므로) 이제는 그의 죽음이 그를 위하여 그의 논지를 입증해 준 것이다.
이것은 극단적인 것처럼 들릴 수도 있는 문제지만, 그가 실제로 사용했던 방식이 가지고 있었던 상대적인 전통주의에도 불구하고 자코메티는 가장 극단적인 화가였다. 그와 비교해 본다면 오늘날의 반(反)예술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화가들(neo - Dadaist)이나 소위 우상파괴자들 정도는 전통을 따르면서도 그 사실을 그럴 듯하게 숨기는 사람들이 되어 버릴 정도였다.
자코메티가 자신의 원숙한 작품 모두의 근거로 삼고 있는 그러한 극단적인 주장은, 그 어떤 실제(그리고 그는 실제에 대한 숙고 이외의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다)도 공유될 수 없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왜 그가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기고 있었는지에 대한 이유이다. 이것이 바로 왜 어느 작품이건 그 내용물은 묘사된 인물이나 두상의 특질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그의 응시가 가지는 불완전한 역사가 되는지에 대한 이유이다. 본다는 행위가 그에게는 일종의 기도와도 같은 것이어서, 그것은 절대적인 존재에 접근하는 한 방식은 되었지만 결코 그것을 움켜쥘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되지 못한다. 그가 존재와 진리 사이에서 끊임없이 떠돌고 있다는 것을 계속 자각하게 해줬던 것은 바로 이 본다는 행위였던 것이다.
만약 좀더 이른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자코메티는 종교화를 그리는 화가가 되어 있었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실상은 깊고 광범위한 소외의 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는 과거 속으로의 도피가 되었을 뻔한 종교를 통한 현실도피를 거부했다. 그는 그에게는 차라리 자신의 피부와도 같은 것으로 여겨졌을 것이 분명하며, 태어나면서 들어와 있게 된 자루와도 같은 것인 자신이 속한 시대에 고집스러울 정도로 충실했다. 그 자루 속에서 그는 더할 나위 없는 정직함으로도 그 자신이 언제나 그래왔고, 앞으로도 언제나 완전히 혼자일 것이라는 확신을 진정 극복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한 인생관을 갖는다는 것은 어떤 특정한 종류의 기질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러한 기질에 대하여 정확하게 정의한다는 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다. 그것은 자코메티의 얼굴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그러한 것이다. 노련함에 의해 경감된 일종의 인내라고나 할까. 만약 인간이 사회적 존재가 아닌, 순전히 동물적 특성만을 갖춘 존재라면 모든 노인들은 이러한 표정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사뮈엘 베케트의 표정에서도 비슷한 어떤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그것과 정반대가 되는 것은 우리가 르 코르뷔지에의 얼굴에서 볼 수 있었던 그러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기질이라는 문제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은 결코 아니어서, 그것은 주변 환경이 되는 사회적 현실이라는 문제에 한층 더 가까운 것이다. 자코메티의 생전에는 그 어떤 것도 그가 침잠해 있는 고독을 깨뜨리고 그의 내면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그가 좋아했거나 사랑했던 사람들은 그와 함께 일시적으로 그 고독을 공유하도록 그 안으로 초대되었던 것이다. 그가 처해 있는 근본적 상황 (그가 태어나서 들어와 있게 된 자루 속인) 변화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에 대한 전해 오는 이야기 중에서, 그가 40년 동안 살았던 그의 작업실은 거의 어떤 것도 변하거나 옮겨지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부분은 흥미를 끈다. 그리고 그의 생애 마지막에 해당하는 20년 동안 그는 똑같은 대여섯 가지의 주제에 대한 작업을 계속해서 다시 시작하곤 했던 것이다.) 하지만 본질적인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가지고 있는 특질은 (비록 그것이 언어와 학문, 문화가 존재한다는 바로 그 사실에 의해 객관적으로 증명되는 것이긴 하지만) 공통적인 행위의 결과로 나타나게 되는 변화의 힘을 경험하는 것을 통해서 주관적으로만 느껴볼 수 있는 것이다.
자코메티의 견해가 이전의 그 어떤 역사적 시기가 계속되는 동안에건 사람들이 품고 있었던 것일 수 없는 한, 우리는 그것이 사회의 분열 및 뒤에 나타나게 된 부르주와 지식 계급의 광적인 개인주의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는 더 이상 은거하고 있는 화가조차도 아니었다. 그는 사회라는 것을 부적절한 것으로 여기는 화가였던 것이다. 만약 그러한 견해가 그의 작품들을 계승했다면, 그것은 태만함에 의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것들이 언급되었음에도 그의 작품은 여전히 그대로이며, 잊혀질 수 없는 것이다. 그가 처한 상황이나 전망의 결과에 대한 그의 명료함과 전적인 솔직함은 그가 여전히 진리를 지키고 표현해 낼 수 있을 그러한 정도였던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관심을 자길 수 있는 최종적인 한계에 도달해 있는 엄숙한 진리였지만, 그것에 대한 그의 표현은 그것을 생겨나게 한 사회적 절망과 냉소주의를 초월하고 있다.
실재하는 것은 공유될 수 없는 것이라는 자코메티의 주장은 죽음 속에서 진정한 것이 된다. 그는 죽음이라는 과정에 대하여 병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가 언젠가는 죽을 운명이라는 사실에서, 그가 신뢰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시각을 제공받게 된 인간에 의해 관찰된 삶의 과정에 유일하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들 중 누구도, 비록 우리가 동시에 다른 시각을 계속 가지고 있어보려고 노력할 수는 있다할지라도, 이러한 시각을 부인할 만한 위치에 있지 않은 것이다.
나는 그의 작품이 그의 죽음에 의해 변화를 겪어왔다고 말했었다. 죽음으로 인해 그는 자기 작품의 내용을 강조하고, 명백한 것으로 만들어 놓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변화(어째든 당장에는 내게 그렇게 여겨지는 것인)는 그것보다 더 정확하고 구체적인 것이다.
당신과 마주하도록 놓여진 두상만 그려진 초상화들 중 하나를 당신이 서서 바라보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아니 나체라는 문제가 제기되지 않고, 나체상태에 대한 모든 논의가 부르주아 여성들이 결혼식에 어떤 옷을 입고 갈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한 이야기만큼이나 사소한 것이 되어 버리도록, 허리에 그녀의 두 손을 댄 채 자루 두 개(그녀의 것과 당신의 것인)의 두께를 통해서만 만질 수 있는 나체화들 중 한 점이 거기에 세워져 있다고 상상해 보라. 나체상태라는 것은 스쳐 지나가는 행사의 한 세부 묘사인 것이다.
조각 작품들 중 하나에 대하여 상상해 보라. 가늘고 더 이상 뜻하는 형태로 만들 수 없으며, 움직이지 않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구부릴 수도 있는 것이고,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해 버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면밀히 살피거나 응시하는 것만이 가능한 그러한 것이다. 당신이 응시하면 그 인물상도 되받아 응시한다. 이러한 점은 또한 대부분의 평범한 초상화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제 차이를 갖게 되는 것은 당신이 응시하는 시선과 그녀가 응시하는 시선이 가지고 있는 궤적을 당신이 어떻게 의식하게 되는가 하는 점이다. 즉 당신과 그 인물상 사이의 시선이 오가는 좁다란 회랑이 그것으로서, 어쩌면 이것은 만약 그러한 것이 볼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면 기도의 궤적과도 같은 것일 수도 있다. 그 회랑의 양쪽에서 중요하게 여겨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녀에게 도달하는 한 한 가지의 방법이 존재하는데, 곧 조용히 서서 응시하는 것이다. 그것이 왜 그녀가 그처럼 가느다랗게 되어 있는가 하는 이유가 된다. 다른 모든 가능성들과 기능들은 박탈되어 버려진 것이다. 그녀의 실재 전체는 보여진다는 사실로 축소되어 버린다.
자코메티가 살아 있었을 때는, 말하자면 당신이 그의 자리에 서 있었을 것이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그의 시선이 가지고 있는 궤적이 시작되는 부분에 놓았을 것이고, 그 인물상은 거울처럼 이 시선을 다시 당신에게 반사시켰을 것이다. 이제 그가 세상을 떠났으므로, 당신은 당신 스스로를 그 자리에 놓기보다는 그의 자리를 차지한다. 그렇게 하고 나면, 그 궤적을 따라 맨 처음 움직이는 것은 그 인물상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것이 응시하면, 당신은 그 응시하는 시선을 가로챈다. 그러나 당신이 아무리 멀리까지 그 좁은 통로를 따라 뒤로 물러난다 하더라도 그 시선은 당신을 거쳐 지나가게 된다.
이제는 자코메티가 생전에 이러한 인물상들을 만들었던 것은 자기 스스로를 위해서였으며, 그것들은 미래에 닥칠 자신의 부재, 자신의 죽음, 자신이 불가지한 존재로 되는 것에 대한 관찰자들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196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