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가 느껴야 할 감정은 ‘자부심’이라고 생각된다. 경기 시작 후 20분이 지나자 인도네시아 신문의 뉴스에디터가 내게 트윗을 보내왔다.
“와! 한국이 이 정도로 잘하는지는 몰랐네요!”
그리고 나는 생각했었다. 어떤 결과가 나오건 간에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들은 자부심을 느껴야만 한다고.
브라질이 가끔 아시아에서 경기를 한 적은 있었다. 거액을 받고 와서 대충 뛰는 평가전이 대부분이었다. 메이저 대회의 주요 경기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그렇게 멋진 출발을 보인 아시아 팀은 없었던 것 같다. 한국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우리는 너희가 두렵지 않아. 끝까지 가면 이길 수 있어’
실제로 그러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다. 심판이 조금 더 나은 사람이었고 운이 조금 더 따랐다면, 마무리 기술이 한 단계만 위에 있었다면 한국이 이 경기를 잡을 수도 있었다.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정성룡이 나왔고 주심이 두 상황에서 하나라도 PK를 주었다면 어땠을까? 김보경은 분명히 파울을 당했다. 주심이 왜 PK를 선언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0-3 패배가 전혀 멋지지는 않지만, 브라질과 만나면 그러한 일은 종종 일어난다. 전 세계 그 어떤 팀도 컨디션이 좋은 브라질과의 대결에서는 그런 스코어로 무너질 수 있다. 영국이 브라질을 만났으면 90분 내내 수비 연습만 하다 끝났을 것 같다.
브라질을 만나면 어떤 팀이라도 수비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지만, 영국은 뒤로 물러나서 전방에 공격수를 하나 박아두고 어떻게 해서라도 골이 나오게 해달라고 기도나 했을 듯하다. 사실 그래도 비난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브라질이 그만큼 훌륭한 팀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그러한 경기를 보여주지 않았다. 나는 이 부분에서 모두가 자부심을 느껴야 한다고 본다. 한국은 적극적인 태도로 브라질을 공략하려 했고, 브라질 수비수들을 괴롭게 하는 장면도 만들어냈다.
어제 경기와 같은 경험과 시간이 쌓여 이 정도로 자부심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언젠가는 브라질을 만나도 그렇게 공격으로 나가는 것이 대한민국의 자연스러운 플레이가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패배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축구에 자부심을 느낀다. 상대방에 대한 존경심은 있지만 두려워하지 않는 멋진 팀을 봤다. 상대의 플레이를 저지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스스로의 축구를 하기 위해 애썼던 팀이었다. 적극성과 운동량은 물론이고 기술과 테크닉도 바탕이 된 선수들이었다.
그렇다. 이게 바로 대한민국 스타일의 축구다. 언제나 도전을 하고 다음 단계를 바라보며 현재에 만족하지 않는다. 세계 최고와 정면으로 맞서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 과정을 통해 한 단계 또 성장해 간다. 대표팀은 국가의 정체성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 잉글랜드는 그렇게 하지 못했지만 한국은 그러한 모습을 보여줬다.
20분이 지나자 브라질은 흔들리고 있었다. 한국은 브라질 왼쪽 측면의 약점을 찾아가는 듯했고, 기성용도 상대를 위협하는 경기 운영을 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기성용은 정말 훌륭한 토너먼트를 치렀다고 생각한다. 대회 최고의 스타 중 하나였고 많은 프로팀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지동원은 PK를 얻었어야 했다. 후안의 발은 머리만큼 높이 올라왔다. 파울이었고 더군다나 페널티에어리어 안이었다 (한국은 이번 대회 내내 심판 운은 없었던 것 같다)
브라질은 이러한 경기 양상을 예상하지 못했기에 적잖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분위기가 조성되었을 때 골이 나와야 하는 법인데, 아쉽게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브라질 같은 강팀은 그런 위기에서 피해를 입지 않고 빠져나오면 곧바로 정상적인 모습으로 반격한다.
경기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국이 몰아칠 때의 분위기를 느꼈을 것이고, 그 시기가 지나면 브라질의 공세가 다가옴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현재로서는 한국과 브라질의 차이가 바로 저러한 점인지도 모른다. 한국은 상대를 몰아붙일 때도 상대 골문을 쉽게 열지 못했지만 (한국은 이번 대회에 상대를 압도하며 플레이한 시간이 꽤 많았다) 브라질은 그런 시기를 결코 놓치지 않았다. 한국 축구가 목표해야 할 다음 단계가 바로 이러한 부분인 것 같다.
그렇게 되는 날이 분명히 올 것이다. 나는 확신을 갖고 있다. 축구 역사는 단순히 ‘0-3 한국의 패배’를 기록할 것이고, 경기를 보지 않은 사람들은 ‘뭐 당연한 결과잖아~’라고 넘겨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게임을 본 전 세계의 축구팬들과 브라질 국민들은 한국이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자격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이제 시작이다. 한국은 어려운 도전에서도 한국다운 축구를 했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부심을 느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