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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스크랩 내 인생을 바꾼 한 분 !!
연꽃 (조수현) 추천 0 조회 20 11.12.07 09:51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얘기에 시작은 지금 부터다.
어려서 작은 시골에서 태어나 초등 2년을 마치고 
나의 어머니는 자식의 교육 문제를 두고 서울로 이사를 왔다.
우리 가족은 부모님과 삼남매 다섯식구였고 강동구로 이사를 왔다.    3학년에 들어가는 해
남동생은 초등1학년 막 입학했을 시점 이였다.
 우리 남매는 마루치 아루치 만화 영화를 보기 위해 동서울 극장을 가겠다고 어머니께 떼를 썼다.
둘이 손 꼭 잡고 갔다온다고 , 당시 어머니는 극장 길건너에서 떡볶이와 튀김등을 팔고 계셨었다.
그렇게 허락 받고 우리 남매는 손을 꼭 잡고 횡단보도에 서서 차가 오는지 보고 길을 건너고 ....
그러던 중 ! 공이 하나 날라같다.
당시에도 지금에도 나는 그 표현 밖에 쓰지 못한다
내 나이 9살! 동생은 없었고 , .. 저 위에 떨어진 동생 !
그리고 신발!
사실 당시엔 동생은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은 생생히 떠올릴 수 있으나 당시엔 횡단보도 끝에 떨어진 남동생의 신발하나만 보았을 뿐 ..
아무것도 기억해 내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당시 우리 큰 이모부가 그 옆에서 과일을 팔고 계셨고 ,
신고하시고 그 뺑소니 오토바이를 추적하시면서 신고하시고 , 그렇게 잡았단 소리를 들었다.
그 후 동생은 한양대 병원에서 뇌 수술 3번하는 대수술을 거쳐야 했고 의식불명 !!
한쪽 뇌와 뼈가 없어 인공뼈 이식 !!!
아직도 끔찍한 그 사건 !
난 그 때 아마 어떤 정신적 병을 얻었던 것 같았다.
문젠 그 가해자는 검찰과 경찰 등 큰 사업가였기에 로비관게가 많았던 모양이였다.
우리 남매를 무단으로 자기 오토바이를 보지 않고 그냥 건너갔다고 진술하였고
돈을 얼마나 뿌렸는지 그 사람은 참 ...!!
당시 나의 인생을 바꿔 버렸던 분 이상수변호사님 !!
결국 ! 난 9살의 나이로 재판장에 나가 진술을 하였다.
당시 나의 진술을 난 똑바로 기억한다. 나는 그랬다.
' 학교에서 시키는대로 횡단보도로 건넜습니다.손을 번쩍들고 건넜어요' 그랬는데 ...
그 가해자는 이런다.
'아닙니다. 아이들은 횡단보도 에서 떨어진 곳에서 치인 아이는보지도 않고 뛰어 갔습니다.'
나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 그랬다
'아닌데 .. ㅇㅇ손 꼭 잡고 갔는데 공이하나 날라갔는데..' 하면서 나는 울었다.
그 법정안에서 '엄마 왜 저 아저씨는 거짓말해' 하면서 울었다.
근데 바로 앞에서 누군가의 큰 목소리가 들렸다.
'ㅇㅇㅇ씨 당신 인간이야! 양심이나 붙어 있어! 저 어린 아이들한테 세상이 거짓말하는 거 나쁜것만 보여줄거야! 똑바로 말 못해저 아이 눈 똑바로 보고 다시 말해보세요 ! 당신 인간맞아!'
 그러면서 반말을 하신 ~저 분 !이상수변호사님 이였다.
그 분의 마지막 말씀 기억난다.
'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 어린 여자아이에게 세상에 정의가 없음을 보여 주실겁니까? 부디 세상에는 법과 정의가 살아 있음을 가르쳐 주십시요 그리고 ㅇㅇㅇ씨 당신의 양심과 당신 자식들에게 지금 이 상황을 당신 유리한대로 이글어 재판에 이긴다 하여도 당신 자식에게 무엇을 올바르게 가르치실건지 !당신의 양심에 기회를 주어 바르게 말하길 바랍니다.'라는 말씀
아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 때 그 가해자의 양심선언으로 사건은 잘 마무리 되었고, 나는 그 일로 인해 세상에서 내가 할 일은 억울한 사람들의 일을 해결해 주는 휼륭한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했었다.
그 때 나의 인생이 송두리재 바껴 버렸다.
그리하여 휼륭한 변호사는 못 되었지만 돈이 없어 법무사나 변호사 사무실 그리고 법을 몰라 억울한 일을 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알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무료로 돕게 되었다.
지금도 그 때 일을 떠오르면 공포와 동생에 대한 죄책감도 함께 밀려온다.
차라리 내가 다쳤으면 .. 하고
어머니 한테도 죄송스러운 일이였다.
우리 남매가 그 마루치 아라치 만화영화 보겠다고 떼만 안썼으면 ... 하고
하지만 그 일도 내겐 세상과의 인연이였던 모양이다.
앞으로도 나는 끊임없이 내가 할 수있는 만큼의 능력으로 계속해서 봉사할 것이다.
그것이 이상수변호사님이 내게 가르쳐 준 세상의 정의였다.

일기처럼 쓰게 된 제 글 끝까지 읽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모든분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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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2.01.01 21:58

    첫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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