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부는 비밀의 숲-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바람불던 비밀의 숲에서의 어린 날의 하루를.
"하 팀장님! 서류에서 문제가 발생 했답니다!"
문제라는 말에 약간 코 부분은 둥그렇지만 뒤쪽으로 갈수록 약간 네모난 듯 한
보통사람은 절대로 어울리지 않을 듯한 특이한 자주색 안경을 쓴 단발의 여자는
날카롭게 반응했다.
"뭐? 문제? 어이고, 내가 이번 해 들어와서는 숨을 못 쉬겠네! 아니, 어떻게 된 놈들이
맨 날 서류를 어떻게 처리했으면 문제가 생겨?"
정말 짜증난다는 듯이 인상을 확 구긴 그녀를 보는 신입사원은 쩔쩔 맨다.
"팀장님, 일단 가보는게...."
"그래, 그러도록 하지."
제발 작은 일이기를 바라며 그녀는 구두를 돌려 정확한 걸음으로 걸어갔다.
문을 열자 그 안에서 우왕좌왕 수습하고, 변명거리를 만드느라 분주했던 그들의 움직임이
순간 멈춰졌다.
고운 미간을 확 구기며 묻는다.
"......이번에는 뭐야."
그 나지막한 목소리에 신입 중 재일 괜찮다는 소리를 듣는 놈이 주저주저 하며 말한다.
"저, 저기요 팀장니임....해진 쪽으로 가야하는.....서류가....민후 쪽으로 가서...."
그 말에 나는 안색이 창백해 졌다.
"뭐? 니들 다 한번 죽어볼래?"
얼굴이 울그락 붉그락 해서는 외치는 그녀를 모두 공포의 눈길로 쳐다봤다.
"너네들, 이일은 신용인 첫째요, 능력은 둘째라는 걸 내가 몇번이나 지껄였지?
니네들 한번 진짜 짤려 볼래? 진짜!! 해진 은 그렇다 치고, 민후 그룹 어떻게 할꺼야!!"
나중에는 거의 호통 수준이 되가는 내 말을 들은 그들의 안색이 그들의 실수의 무게를
보여주고 있었다.
"어이~ 태연아! 뭘 그런 일을 가지고 신입사원들을 잡아먹으려고 들어?"
'그런 일' 이라는 말에 눈에서 그냥 초강력 빔이 쏟아져 나오는 나를 보고 뒤에 서있던
일명 사장이자, 나의 초등학교 때부터 주욱 친해온 친구의 넥타이를 끌어당겨서 빔이 나오는
눈과 마주보게 했다.
"'그런 이일~' 너는 지금 그걸 말이라고 지껄인 거야?"
'일은 정확하게'가 신조인 나는 실수를 싫어해서 조그만 한 실수에도 날카로운 편인데
엄청난 일을 조그만 한 일로 바꿔버리는 현정이를 잡아먹을 듯한 표정으로 노려봤다.
"이, 이것 좀 놓고...."
"크크크크.....우하하하하하하하!!"
엄청난 웃음소리에 돌아보자 민주가 웃긴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태연 언니! 그거 현수가 보내기 전에 검토하다가 이상해서 민경 오빠한테 가서 물었더니
해진 그룹 쪽으로 갈거라 그래서 그거 지금 해진 쪽으로 갔어. 현정 오빠 넥타이나 놔라. "
그 말에 넥타이를 노려보며 안경(이 안경이 최지우가 천국의 계단에서 하고 나오는 안경하고 디자인이 똑같은데 색깔은 자주색에다가 테가 더 가늘어요.)을 벗었다.
"하이고~ 나 이런 상태로는 일 못해. 야 조현정! 나 휴가 줘."
내 목소리에 '완벽주의자가 어련하겠어...' 란 표정을 짓고 있던 현정은 놀란 표정으로 외쳤다.
"뭐? 안돼!"
그 목소리에 화악 노려보면서 말했다.
"난 분명히 작년하고, 올해 여름휴가까지 반납하는 대신, 내가 원할 때 한달 넘지만 않으면
얼마든지 쉴 수 있다는 거 였어. 사람 부려먹을 데로 부려먹어서 사람을 골병들고, 파김치로
만들어 놓고는 이제 와서 뭐? 너 죽을래?!"
다시 주먹 쥐고 달려드려는 나를 민주가 뜯어말리더니 화난 표정으로 현정을 노려본다.
"현정오빠, 태연 언니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
이리하여, 나는 기다리던 휴가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태연아! 태연아!"
호들갑을 떨며 들어오는 엄마를 뭐냐는 시선으로 돌아봤다.
"태연아! 너 그러니까...네가 15살 때 갔던 외삼촌 별장 생각나지?"
".......응."
"15살 때 그 때 갔던 그 별장에 가자!"
잠시 그 뜻을 생각하느라 멈칫 했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거기가 어딘데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거야?"
"후훗! 진우(삼촌이름)가 이번에 미국에 가는 동안 별장이 비는데 너를 거기에
데려다 놓고 오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서. 어때?"
잠시 눈을 커다랗게 뜨고 입술을 살짝 집어넣은 채로 생각하다 싱긋 웃었다.
"그래. 가지뭐~"
빙긋 웃는 내 머리카락을 살짝 부벼 주고 나가는 엄마.
살짝 웃으며 쓰고 있던 안경을 벗은 채로 중얼거렸다.
"아아..몇 년 만이지? 쿡.."
아직도 기억난다. 내가 15살 되던, 그 해에 여름방학을...
덜컹, 덜컹 칭그랑, 칭그랑.......
훽까닥!
몸이 한바탕 차안에서 한바퀴 굴러갔다.
"꺄아악- 엄마!! 어디까지 가야되에에~!!"
애써 뒤집어진 몸을 굴리는 백미러를 통해 나를 본 엄마가 식은땀을 흘리며
"부, 분명히 이 근처라고..."
비포장 도로라서 항상 포장된 도로 에서 운전하던 엄마는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고,
나는 나대로 그 운전 때문에 넓기만 디립다 넓은 차안에서 이리저리 굴려지고(?)있었던 것.
"어? 저기 보인다!"
엄마는 신나 하면서 포장 안된 도로를 신나게 달려갔고 난 귀에서 신나게 부딛 쳤다.
마치 이상한 나라에 엘리스에 나오는 것 같은 챙이 넓은 모자를 쓴 나는 힘겹게 비틀거리면서 들어갔다.
올해에 엄청난 더위가 몰려온다는 말에 일 때문에 나를 신경 써 줄 수 없는 엄마와 아빠가
합의보고 삼촌이 별장을 비운다는 말에 나를 여기에 데려다 놓기로 했던 것이다.
천천히 폭이 넓고 이리저리 천이 많은 치마? 원피스? 하여튼 치마를 입고 엉망이 된 긴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집은, 커다랗고, 예쁜, 마치 동화 속? 영화 속에서 나온 것 같은 집이 있었다. 나무와 시멘트
의 적절한 조화...랄까?
집안으로 들어가자 시원한 나무바닥 이였다. 그런데 워낙 촘촘하게 깔려 있어서 빈틈 따윈
찾아 볼 수 없었다. 집안에는 아직 일터로 떠나지 않은 외삼촌과 외숙모가 계셨다.
시원한 반 팔에 치마 차림을 하고 시원한 바닥에 붙어 있는 나를 보고 웃으시며,
조용히 말씀하신다.
"태연아, 여기 옆에 숲이 있는 거 보았지?"
엄청난 규모의 숲이 있었음을 생각하고 대답했다.
"네. 도착해서 봤죠."
"그 숲은, 몇 대부터가 가꾸기 시작한 건지도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오래 된 숲인데,
그 숲은, 이름이 있단다. '바람부는 비밀의 숲' 이라는 이름이. 왜냐하면 그 숲에서는
사철 바람이 불거든? 신기하지? 누기 마법을 부려 놓은 것처럼. 그리고 그 숲은
깊이 들어갈 수도 없단다. 어느 곳부터는 똑같은 곳만 뱅뱅 돌게 되기 때문이지.
그 곳에 깊이 들어가면 길을 잃을 수도 환상을 볼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웃으면서 말해 주셨던 이야기를 나는 믿지 않았다. 오히려 삼촌은 내가 아직도
그런 이야기나 믿는 어린애인 줄 아나봐. 라면서 심통을 부렸을 뿐.
몇칠 후, 삼촌과 숙모는 일 때문에 가셨고 엄마도 일 때문에 가셨다.
혼자 남은 나는 충분히 있는 음식들을 먹고 시원한 바닥에 다시 붙어 있다가,
어쩐지 정말 심심해서 숲에서 책이라도 볼 요량으로 천천히 일어나 엄청난 두껍기의,
재미있는 책을 들고서 천천히 숲 안으로 들어갔다.
바닥에 촘촘히 깔려 있는 잔디. 그러나 일정한 길이로 깔끔하게 짤려 있었다.
개미 같은 것들이 있을 줄 알았는데 개미는커녕 간혹,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를 듣고 의아해 졌다.
그러나 곳, 뭐 약이라도 뿌렸나...하면서 나무그늘로 걸어 들어가 나무에 등을 기대고 책을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나무 잎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 어디선가 살랑 살랑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눈을 내리깔고 조용히 책을 읽다가 어느 순간 책을 탁 덮었다.
"치이...심심해..."
조용히 읖조린 후 책을 나무그늘에 나두고 나무를 벗어나 철푸덕 하고 누었다.
누워서 올려다 본 하늘은, 서울의 하늘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푸르고, 푸르렀다.
마치 가을의 하늘처럼.
조용히 누워서 하늘은 보고 있다가 어느 순간, 눈을 감았고, 언제 눈을 떴는지는 모르겠다.
조용히 바람에 섞여서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자 내 허리, 등 쪽에 달려 있던 리본 끈이 자연스럽게 끌려 왔다.
천천히 맨발로 잔디를 밟으며 걸어갔다. 발바닥에 사박사박 밟히는 잔디.
열에 들뜬 표정으로 잔디를 밟으며 걸어가는 긴 머리 소녀.
점점 더 크게 들리는 음악 소리. 이게 무슨 소리지?
이제 앞을 가리기 시작한 나무 가지들을 헤치며, 이젠 꽤나 들쑥날쑥해진 잔디를 밟으며.
점점 더 크게 들리는 경쾌한 음.
마지막 가지를 헤치는 순간 보이는 커다란 나무들이 둥그렇게 감싸인 채로 그 중간에 있는
그랜드.....피아노, 그리고 거기에 앉아서 치는 진한 갈색의 머리카락을 지닌 작은 소녀와
피아노의 기대어 앉아 있는 푸른 머리카락의....남자...?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데 순간 그친 노래 소리와 감고 있던 눈을 뜨는 푸른머리의 남자.
새까만 눈을 보고 그들은 화들짝 놀란다. 그러더니 자기들끼리 속삭이는 게 아닌가?
여기까지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
잠깐 하얀 발을 내딛는 순간 살짝 돌아보는 푸른 머리카락의 남자. 그의 눈동자는
푸른색이 였다. 마치 가을의 하늘, 아니, 지금 머리위로 보이는 눈이 시리도록 파란 빛깔.
신기해서 눈을 커다랗게 뜨고 있는데 커다란 키의 남자는 빙긋이 웃더니 성큼성큼 다가왔다.
"귀여운 꼬마 아가씨, 무슨 일로 오신 거죠?"
나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얼굴을 붉힌 채로 버벅 거렸다.
사실 이 숲의 주인은 삼촌 이였지만 엄청난 미남 앞에서 어쩔 줄 모르면서 변명을 했다.
"저,저기 노랫소리가 들리 길래...노랫소리를 따라 걸어 오다보니...저기, 그게..실례가 되었나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힌 채로 말하는 나를 보고 갈색머리의 소녀와 푸른 머리카락의 남자는
웃음을 터트리 더니,
"하하.....그렇다면 귀여운 아가씨? 여기 까지 왔으면 노래 소리만 들으려고 온 건 아니겠죠?"
"저, 저기..."
뭐라고 말하려는 순간 갈색머리의 소녀는 입을 열었다.
"제가 피아노를 칠 테니 오빠와 춤을 춰주시는 건 어때요?"
그 뜬금 없는 말에 화들짝 놀라며 손을 훼훼 내저으며 얼굴을 빨갛게 붉힌채로 말했다.
"저, 저는 춤을 못 추는 데요?"
........거절의 말 치고는 이상했지만.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남자는 내 손을 잡더니 말한다.
"그건 걱정하지 마시구요."
빙긋이 웃자 그게 신호였는지 피아노에 앉아 있던 소녀가 빠르고 경쾌한 노래를 치기 시작했다.
이 이상한 전개에 당황하면서 거절의 말을 하려는 순간 어느새 한 쪽 손을 마주 잡고, 한쪽손은, 그의 어깨에, 그리고 그의 손은 내 허리에 와 있었다.
깜짝 놀라는 내게 웃어 보이며 천천히 스텝을 밟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내 발이 그의 발(맨발 커플....)을 밟기도 했지만, 점점 익숙해 졌고 천천히 빙글빙글
돌던 그의 발이 빠르고, 경쾌한 스텝을 밟기 시작하자 눈앞이 팽긍팽글 돌기 시작했다.
"어엇? 너무 빨라요! 너무...빠르다니 까요!!"
바람에 펄럭이던 치마 자락이고, 스텝을 밟던 발이고, 모두 멈춰 버렸다.
눈앞이 뱅글뱅글 돌았던 내가 주저앉아 버렸던 거다.
내 허리를 잡은 채로 어깨에 몸이 기대어 있는데 내가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춤....못 춘다고 그랬잖아요...."
"쿡......하하하하하하! 못 추는 건 아니 였다니까요!"
맑은 소리로 시원하게 웃은 그의 머리와 눈동자를 처다 봤다. 뭐야...눈 색깔이..
빙긋 웃은 그가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 본격적으로 춤을 배워 볼 까요?"
아연실색한 내 표정을 보고 빙글빙글 웃으며 나를 일으켰다.
"하나, 두울, 세엣, 네엣."
그의 말을 따라 스텝을 밟는 내 몸 주위로 시원한 바람이 불고 지나갔다.
"자아, 그럼 한번 더 춰 보죠?"
싱긋 웃는 그의 모습 뒤에 소녀가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자 그의 발과 내 발을
햇살과 사이로, 잔디 사이로, 경쾌하게 밟고 있었다.
그녀의 하얗고 작은 발은, 그의 발을 따라 잔디 사이에서 예쁘게 춤추고 있었다.
아아...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니. 푸른 머리카락과 푸른 눈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 다음날 찾아갔을 때에 그곳에는 커다란 그랜드 피아노만 덩그러니 있었지만,
나는 아직도, 이렇게 회사에 다니는 어른이 되어서도, 믿고 있다.
그들은 삼촌이 말한 환상 따위가 아니라고.
그것은, 아직도 그곳에서 검은빛으로 맑고 깨끗하게 빛나고 있는 그랜드 피아노가
내게 말해 주고 있으니까-
자아, 이제 슬슬 가볼까? 바람부는 비밀에 숲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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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유치, 썰렁하군요. 슬퍼요. 저는 이러다간 중간도 못 가고 끝나는 게 아닌가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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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신비로워서 재미있어요♡ 힘내세요!! ^-^!!
근데 왜 발끈 표정이신지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