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은 벨사살 왕에게
벽에 써진 글씨를 해석해 주면서
먼저 느부갓네살 왕의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교만하여
하나님께서 그를 낮추어 정신병이 들게 해서
7년 동안 동물과 같은 인생을 살았던 것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벨사살 왕이 이것을 알면서도 교만하게
하나님의 성전 기구들을 가지고 유흥을 즐기며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현재 하나님의 저울에 달리게 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벨사살 왕을
저울에 달았는데 미달된 인생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인생들을 저울에 달아보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과 믿음도 하나님의 저울에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나의 신앙도 하나님의 저울에 달려지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저울에 미달된 인생은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것입니다.
자만과 교만에 빠져 하나님을 무시하고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저울에서 미달되어 죽게 됩니다.
복음의 저울에 달렸을 때 미달되었다면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울에 달릴 때 하나님의 마음에 충족된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원어 베다인 민 코다모히 쉘리야아흐 파사 디 예다 우케타바 데나 레쉼
단 5:24 이러므로 그의 앞에서 이 손가락이 나와서 이 글을 기록하였나이다
다니엘은 벨사살 왕에게 설명해주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손가락이 나와 벽에 글씨를 기록했다고 말합니다.
‘나와서’라는 단어는 [셸라흐 7972]
ViPP(Q) 동사 페알 분사수동
보내다, 전하다, 답장하다, 통보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벨사살 왕을 지켜보고 있다가 때가 되어
하나님의 메시지를 보내어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메시지는 하나님의 통보이며
현재까지 벨사살 왕이 살아왔던 인생에 대해서 답장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벨사살 왕은 교만하게 하나님을 모독하고
성전의 기구들을 가지고 세상의 쾌락을 위해 사용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로 왕에게 답장해 주고 있습니다.
다니엘 일부는 아람어로 기록되었습니다.
히브리어와 아람어는 사촌 지간이므로 거의 같습니다.
그런데 동사의 문법은 더 아람어가 많습니다.
손가락으로 벽에 쓴 글씨는 하나님께서 직접 보낸 손가락의 글씨입니다.
하나님께서 벽에 직접 글씨를 쓰신 것입니다.
벽에 쓰인 글씨는 하나님이 쓰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쓸 수 없는 글씨이며
벨사살 왕이 연회를 베풀고 있을 때 하나님이 쓰셨으며
이 글씨를 쓰신 목적은 벨사살 왕을 심판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손가락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셔서 쓰셨습니다.
‘기록하였나이다’라는 단어는 [레샴 7560]
동사 페일 완료 남성 3인칭 단수
어인을 찍다, 기록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벽에 글씨를 쓰심으로
왕이 어인을 찍듯이 벨사살 왕을 심판하겠다는 것을 말합니다.
수동태를 사용하기 때문에
왕이 한 번 어인을 찍으면 그대로 행동에 옮겨지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기로 마음을 먹은 것입니다.
이 기록은 사람이 지우려고 해도 절대 지워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기록하셨기 때문에 지울 수 없고 이렇게 기록된 것은
하나님의 마음은 이미 왕을 심판하기로 계획하셨기 때문에 사람으로서는 풀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 나는 현재 하나님 앞에 어떤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믿음을 세우며 나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언젠가 나에게 편지를 보낼지 모릅니다.
더 이상 해결하지 못할 정도로 타락하여 있다면
마지막 진노의 최후통첩을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내시는 것입니다.
원어 우데나 카타바 디 레쉼 메네 메네 테켈 우파르신
단 5:25 기록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하나님께서 쓰신 글씨는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는 글자입니다.
‘메네’라는 단어는 [메네 4484] 세다, 조사하다, 지정하다, 라는 뜻입니다.
메네는 무게를 다는 단위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쓰신 글씨의 메네는
무게를 달듯이 이미 하나님께서 벨사살 왕의 모든 인생을 조사하고
잘못을 세어보고 난 후에 저울에 올려 정확하게 수치를 알아보도록 지정된 것입니다.
‘데겔’이라는 단어는 [테칼 8625] 저울로 달다, 측량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벨사살 왕의 잘못을 저울에 올려 무게를 달아본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의 저울에 정확하게 측량된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동자를 피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살아갈 때에 우리의 생활을 하나님은 정확하게 측량하고 있습니다.
타락한 인생을 살고 있는지 주님 안에서 의로운 생활을 하는지
하나님은 우리의 행동을 저울에 달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우바르신’이라는 단어는 [페라스 6537] 갈라지다, 나누다, 라는 뜻입니다.
벨사살 왕의 행동들이 하나님의 저울에 달렸는데 하나님의 기대치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벨사살 왕의 나라를 가르시고
자신이 누렸던 모든 부귀영화를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복을 빼앗아 버리는 것입니다.
원어 데나 페샤르 밀타 메네 메나 엘라하 말쿠타크 베하쉘르마흐
단 5:26 그 글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다니엘은 글씨를 벨사살 왕에게 해석해 주고 있습니다.
메네는 하나님이 보실 때에 이미 벨사살 왕의 나라를 세어보니 끝이 났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라는 단어는 [셸렘 8000]
동사 하펠 완료 남성 3인칭 단수
끝나다, 마치다, 완전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벨사살 왕의 나라는 저울에 달았을 때에 미달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왕국을 주시지 않고 끝마치게 하셔서
완전하게 바벨론 제국이 망하게 하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끝마침은 벨사살 왕이 싫다고 해서 연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하심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한 번 마음먹으신 하나님은 벨사살 왕의 바벨론 제국을
하나도 남김없이 무너지게 하셔서 나라의 근본을 뽑아버리게 하실 것입니다.
그 이유가 나라의 흥망성쇠는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원어 테켈 테킬르타 베모자네야 베히쉐트카하트 하시르
단 5:27 데겔은 왕을 저울에 달아 보니 부족함이 보였다 함이요
데겔은 하나님께서 벨사살 왕을 저울에 달아보니까 너무나 많이 부족함이 보였습니다.
저울은 숫자가 있기 때문에 정확한 것입니다.
물건을 눈으로만 보면 정확한 무게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울에 올라가면 너무나 정확하게 숫자를 보여주기 때문에 무게를 알 수 있게 됩니다.
벨사살 왕을 하나님의 저울에 인생을 올려놓았더니
너무나 정확하게 미달되어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떨까요?
마지막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저울에 올라가면 나의 모든 행실과 신앙이 나올 것입니다.
이때에 하나님의 저울에 올라가 미달된 신앙과 믿음이 된다면 하나님의 심판을 면제받기 힘들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육체적으로 즐거움과 기쁨으로 살아도 영원한 세계에서는 고통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저울이 나를 달고 있습니다.
복음의 저울에 올라가서 나의 믿음이 부족하다면 이 시간 나의 신앙이 복음의 말씀으로 돌아서야 합니다.
‘보였다 함이요’라는 단어는 [셰카흐 7912]
동사 히트페엘 완료 남성 2인칭 단수
명백하다, 알다, 발견하다, 라는 뜻입니다.
벨사살 왕의 행위가 하나님 앞에 명백하게 드러나기 시작했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기면서 모욕했던 일들을 하나님은 알고 계시며
성전 기구들을 가지고 술을 먹으면서 연회를 베풀고
육체의 쾌락을 즐긴 것을 발견하여 심판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벨사살 왕은 하나님께 무엇이 보였습니까?
육체의 욕심을 따라갔던 삶이 보였습니다.
왕으로 올바른 통치적인 일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이 세상의 쾌락에만 몰두하면서 살았던 것이 하나님의 눈에 발견된 것입니다.
노아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육체의 삶을 살아갈 때에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살았더니 하나님의 눈에 발견되어 구원의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벨사살은 우상을 섬기며 자신의 의지대로 살았더니
하나님으로부터 죽임을 당하고 나라를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만약에 주님을 향한 마음으로 살았다면
벨사살은 나라가 망하지 않고 자신도 목숨을 건지는 일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럼 나는 현재 노아와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벨사살과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까?
벨사살은 마지막 날에 고난당하고 죽은 자들을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노아는 구원받아 하나님과 영원히 사는 자의 표상입니다.
원어 페레스 페리사트 말쿠타크 비히바트 레마다이 우파라스
단 5:28 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 하니
베레스라고 쓰인 것은 왕의 나라가 나누어질 것을 말씀합니다.
바벨론 제국은 역사적으로 메대와 바사에 의해서 망하게 되었습니다.
고레스 왕에 의해서 벨사살은 죽고 나라는 메대와 바사에게 넘어갔습니다.
‘나뉘어서’라는 단어는 [페라스 6537]
동사 페일 완료 여성 3인칭 단수
두 개로 쪼개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벨사살의 나라를 두 개로 쪼개어 메대와 바사에게 주었습니다.
이 나라는 벨사살이 지키고 싶어도 절대 지킬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강제로 빼앗아 버렸기 때문입니다.
강대국인 바벨론이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빼앗겨 다른 나라로 넘어가게 된 것입니다.
바벨론 제국은 역사 속에서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은 찬란했던 나라입니다.
세계를 호령하고 의기양양하면서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했던 나라인데 하나님께서 나라를 멸망시키신 것입니다.
원어 베다인 아마르 벨샤차르 베할비쓔 레다니엘 아르게바나 베하모느카
다하바 알 차베레흐 베하케리주 알로히 디 레헤베 샬리트 탈타 베말쿠타
단 5:29 이에 벨사살이 명하여 그들이 다니엘에게 자주색 옷을 입히게 하며
금 사슬을 그의 목에 걸어 주고 그를 위하여 조서를 내려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으니라
벨사살은 다니엘이 글씨를 해석해준 말을 듣고 자신이 약속했던 것을 지키게 됩니다.
다니엘에게 자주색 옷을 입히고 금목걸이를 목에 걸어주었습니다.
또한 바벨론 제국의 세 번째 통치자로 삼고 있습니다.
이것을 볼 때 벨사살은 죽음이 코앞에 다가오고 있는데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메대와 바사의 군대가 이미 바벨론을 포위하고 왕을 죽이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자신이 왕이라고 위엄을 보이면서 체면을 지키기 위해 약속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 나라는 멸망할 것이 확실합니다. 그런데도 다니엘을 세 번째 통치자로 삼고 있습니다.
다니엘에게 자주색을 옷을 입힌 것은 왕의 권세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자주 옷감을 입는 것이 아무나 입지 못했습니다.
자주색 염색을 하기 위해서는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소라껍데기에서 염료를 발췌하여 만드는데 염료가 많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귀한 신분의 사람들만 이 옷을 입다 보니
자동적으로 자주색 옷을 권세, 명예, 힘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게 된 것입니다.
원어 베렐레야 케틸 벨샤차르 말카 카세다야
베도르야베 마다야 카벨 말쿠타
단 5:30-31 그 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는데 그 때에 다리오는 육십이 세였더라
벨사살 왕이 연회를 베풀고 하나님의 손가락이 벽에 글씨를 쓰던 날에
고레스의 연합군에 의해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벨사살은 죽음이 닥쳐오는데도 육체적인 쾌락에 빠져 멸망이 홀연히 오는 줄도 몰랐습니다.
왕이 타락하여 술에 취해 있을 때에
고레스의 연합군은 바벨론의 군대를 이기고 무혈입성하면서 바벨론 성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벨사살이 여유만만했던 것은
바벨론 성은 유브라데 강 위에 건설되었기 때문에 적이 쉽게 들어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벨사살은 안심하고 술에 취해 있었고
1000명이나 되는 나라의 귀족들을 불러 연회를 베풀었던 것입니다.
이때를 틈타 고레스의 연합군은 유브라데의 강을 변경시키기 위해 땅을 파고 있었습니다.
강을 넘어 바벨론 성을 함락하기 위해서는 강의 줄기를 바꿔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고레스의 군대가 강줄기를 바꾸고 있을 때
바벨론의 군대들은 성벽을 타고 넘어오기 위해 언덕을 쌓고 있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는데 사실은 물줄기를 바꿔 침투했던 것입니다.
바벨론이 멸망당한 가장 큰 이유는 그 날에 모든 사람들이 술에 취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날은 큰 종교 축제일로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술에 취해 육체적인 즐거움과 쾌락에 빠져
무방비 상태로 있었기 때문에 고레스의 군대가 침투하여 왕을 살해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육체의 탐욕에 빠지고 술에 취해 방탕한 삶을 살 때에
결국 이것 때문에 영혼을 지키는 데는 소홀하여 사탄에서 공격당해 죽고 말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먹이고 기름진 음식으로 유혹하여
영적인 일에는 절대 신경 쓰지 못하도록 하면서 때가 되어 공격해 죽일 것입니다.
이것이 이 시대에 활개를 치고 있는 사단의 종들인 이단들입니다.
벨사살 왕의 죽음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면서 영혼을 준비하지 않는 자들의 표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멸망은 준비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홀연히 오는 것입니다.
결국 벨사살은 멸망당할 것을 준비하지 못한 것입니다.
멸망의 날이 올 것을 준비하는 자는 절대 멸망당하지 않습니다.
이 멸망이 자기에게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자만하고 나태하여 준비를 하지 않기 때문에 멸망이 홀연히 오게 된 것입니다.
"베레스"는 "우바르신"의 단수 수동태 분사형입니다.
그러므로 베레스를 해석한 것은 복수형태인 우바르신의 의미를 설명한 것과 같습니다.
여기에서 "메네"는 '계수하다', '세다'란 뜻을 가진
'메나'의 수동태 분사형으로 '계수되어진다'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벨사살의 통치 햇수와 행위를 계수하셨고
그의 날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메네'란 말이 두 번 반복된 것은
벨사살의 죄로 인해 바벨론 제국의 종말이 다가왔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데겔"은 '저울로 무게를 달다'란 뜻을 가진 말로서 '메네'와 같은 수동태 분사형입니다.
이 말은 벨사살의 행동을 저울로 달아본 결과,
그의 행동이 공의롭지 못한 것으로 판정되어 심판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의 행동은 종교적, 윤리적으로 저급해서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페레스"는'우바르신'의 단수 수동태 분사형으로
'나뉘어지게 되다', '조각나게 되다'란 뜻을 가진 말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바벨론 제국의 기한이 찼으며(26절),
또한 벨사살 역시 왕이 되기에 그 자격이 미흡했기 때문에(27절),
바벨론이 메대와 바사인에 의해 나뉘어 점령될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나뉘어진다'는 말은 바벨론이 메대 지역과 바사 지역으로 분할된다는 의미라기 보다는,
먼저 메대가 잠시 바벨론을 통치하고(31절;6:1),
그 후에 다시 바사가 이 나라를 통치하게 된다는 의미(6:28)로 볼 수 있습니다.
메네(Mene) 데겔(Tekel) 우바르신(Upharsin)
제목이 무슨 주술문 같다고 생각되시나요?
그러나 이것은 아주 오랜 전
고대 바벨론(Babylon), 갈대아(Chaldean) 혹은 아람어(Aramaic)입니다.
자, 이 주술문 같은 제목에 대한 출처와 배경
그리고 그 의미를 찾아서 잠시 저와 함께 여행을 따나 보시겠습니다.
주전 539년, 바벨론 왕궁에서는
1천명 이상의 그 나라 귀빈들이 함께 모인 대연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벨사살(Belshazzar)왕이 베푼 연회였습니다(단 5:1).
먼저 잠시 이 벨사살이란 인물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 합니다.
다니엘서 본문에는 그의 부친을 느부갓네살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 문헌상에는
벨사살은 나보니두스(Nabonidus)의 아들로 되어 있습니다.
더 자세히 설명하면, 느부갓네살이 죽고(BC 563)
그의 아들 이빌-메로닥(Evil-Merodach)이 약 2,3년간 통치하다가
네리그리사(Neriglissar)가 그를 피살하고 4년을 통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어린 아들
라바시-마둑(Labashi-Marduk)에게 왕위를 이양하였으나
9개월 후 제사장들에 의해 폐위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등장한 인물이 벨사살의 아버지 나보니두스 장군입니다.
그리고 그가 주전 539년 바벨론이 멸망할 당시의 통치자로 기록되었습니다.
이것이 문헌에 의한 바벨론의 역사 기록입니다.
따라서 벨사살왕이란 인물에 대해서는 그 기록에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서 기록에는
나보니두스에 대한 언급 대신 벨사살을 왕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일부 비평가들은 다니엘서의 진실성 여부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나보니두스 장군은 느부갓네살의 딸인 공주와 결혼하였습니다.
그리고 벨사살은 그들의 아들입니다.
따라서 벨사살은 느부갓네살왕의 사위의 아들이 되며 외손주가 되는 셈입니다.
그리고 고대에는 손주를 자신의 후계자 아들로 표현하는 것이 상례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발견된 다른 문헌에 의하면 나보니두스는
후에 아라비아 지역을 다스리는 동안 벨사살에게 대신 바벨론 통치권을 맡김으로
결국 그들 둘은 공동통치권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바벨론이 멸망하던 날 왕궁에 남아있던 왕이 벨사살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은 바벨론의 역사를 압축하여 실제 현장 위주로 기록하여
가장 중요한 두 인물
곧 바벨론 창시자 느부갓네살과 마지막왕 벨사살의 이름 만을 기록한 것은
오히려 사건을 더욱 명료하게 해 주는 것이며 따라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벨사살의 불경한 연회-벨사살은 그의 부친 느부갓네살이
유대 성전에서 탈취해 온 성전의 금과 은잔들을 꺼내어 자
신의 후궁들에게 까지 그 잔으로 술을 마시며 자신들의 신 앞에 축배를 드리도록함으로
하나님을 모독하는 불경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술에 취해 흥이 고조되어 있을 때
갑짜기 사람의 손가락이 벽에 나타나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란 글자를 남겼습니다.
이에 놀란 벨사살은 자신의 두 무릅을 부들부들 떨면서
그 나라 술사들을 급히 불러 그 글을 해석하라 명했으나 아무도 능히 해독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 때 느부갓네살의 왕후는 다니엘을 해석자로 왕에게 천거했습니다.
그 자리에 불려 온 다니엘은 이를 이렇게 해석하였습니다.
*문자의 해석- “메네”는 수를 의미하여 “수를 세었다”(numbered)라는 뜻이며
강조를 위하여 두번 사용하였고,
“데겔”은 무게를 의미하며 “무게를 달아 보았다”(weighted)란 뜻이며,
우바르신의 첫글자 “우”(U)는 “그리고”(and)란 뜻이며
“바르신”은 분리란 의미로 “나누다”(to divide)로 해석하였습니다.
영어로 재 번역하면 “NUMBERED, NUMBERED, WEIGHTED, AND DIVISIONS”
(세어 보았다, 세어 보았다, 무게를 달아 보았다, 그리고 나누다)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베벨론이 끝나는 날까지를 다 세어 보셨고,
그리고 벨사살을 하나님의 저울에 달았더니 그 부족함이 들어났음으로
이제 바벨론을 메데와 바사의 손으로 나누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벨사살이 연회를 베풀던 날 밤,
바사(Persia)의 우그바루( Ugbaru) 장군이 이끄는 군사들은
성내로 진격하여 들어 와 벨사살을 살해하고 바벨론을 명망시켰습니다(BC 539).
그리고 바벨론은 메데와 바사로 나눠지게 되었습니다.
*교훈은?-하나님은 우리들 인생을 다 세어 보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 각자의 삶을 그의 저울에 그 무게를 달아보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저울에 의해 들어나는
모든 불의한 행위와 죄악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계 20:11-15).
그날은 천국과 지옥 두 곳으로 나뉘는 날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함 받은 자들은
이러한 형벌의 심판에서 이미 생명으로 옮긴 자들입니다(요 5:24).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보내 주신
그의 독생자를 믿는 자들은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 날이 될 것입니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을 잊지 말고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