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0일 오늘의 역사
2021년 문재인 대통령 역대 대통령 최초로 전투기 탑승해 영공 비행
문재인 대통령이 수원서 이륙해 천안·용산 거쳐 경기도 성남시 서울공항 활주로에서 개최된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서울 ADEX 2021)에서 최초의 국산 전투기 FA-50 1호기를 타고 이동했다
문 대통령이 탄 FA-50은 초음속 고등훈련기인 T-50 플랫폼을 기반으로 개발된 최초의 국산 전투기로 허리 날개 상단에는 '001'이란 '테일 넘버'가 표시돼 있다.
FA-50이 활주로에 착륙하자 사회자는 "(문 대통령이) 비행 유의사항에 대한 교육을 이미 이수하셨고 경호계획 등을 모두 수립했다"며 "독립기념관, 서울현충원, 전쟁기념관 상공을 비행하고 들어오고 있다"고 소개했다.
문 대통령은 FA-50에 하기해 공군 조종복과 가죽 재킷, 야구모자, 선글라스, 마스크를 착용한 모습으로 곧장 행사장 무대로 이동했다.
2021년 시리아 대형산불로 테러 일으킨 24명 처형, 20명 징역형
2018년 트럼프 미대통령 중거리핵전력(INF) 조약 파기선언
2016년 에베레스트 오른 첫 여성 다베이 준코(일본 77세) 세상 떠남
2015년 이근화선 ‘북청사자놀음’ 명예보유자 별세
중요무형문화재 제15호 ‘북청사자놀음’ 이근화선(李根花善·91) 명예보유자가 20일 별세했다.
함남 북청에서 태어나 4세부터 무동춤을 추면서 사자놀음에 참여했고 6·25전쟁 후 월남해 북청사자놀음 복원에 매진했다. 1969년 북청사자놀음 보존회에 입회한 뒤 이듬해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인정됐다.
북청사자놀음은 북청 지역에서 정월대보름 무렵 잡귀를 몰아내고 복을 기원하기 위해 행하던 민속놀이다.
2015년 피아니스트 조성진(21세) 제17회 국제 쇼팽 피아노콩쿠르(폴란드 바르샤바) 우승
2014년 남북이산가족 상봉(-10.25까지)
2014년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 취임, 첫 직선제 정권교체,
2011년 리비아 독재자 카다피 고향 시르테에서 살해당해 시장의 고기 냉동창고에 전시됨
2010년 ‘3무(無)경영’ 실천한 ‘뚝심의 경영인’ 설원봉 대한제당 회장 별세
핸드볼 중흥을 이끈 ‘인화(人和)’의 경영인 설원봉(薛元鳳·62) 대한제당 회장이 2010년 10월 20일 폐암으로 별세했다.
고(故) 설경동(薛卿東) 대한전선 창업주의 4남인 고인은 연세대 법학과와 미국 브루클린공대 경영대학원을 마치고 1983년부터 대한제당을 경영해 왔다.
‘핸드볼’에 대한 열정만큼은 남달랐다. IMF 외환위기로 힘들었던 지난 1998년 18대 대한핸드볼협회장에 취임했다. 한때 올림픽 최고 효자종목이었던 핸드볼이 파벌싸움과 IMF 외환위기에 따른 실업팀 해체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습을 가만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경기장을 찾아다니며 선수들을 독려하고 협회 차원의 각종 지원을 통해 실업팀을 재개할 수 있도록 도왔다. 회사 경영 등의 이유로 2년 만에 회장직을 떠난 뒤에도 몇 년간 ‘고문’을 자임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한순간에 ‘비인기 종목’으로 외면당할 뻔한 그 당시에 설 회장의 뒷받침이 없었다면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같은 명장면은 나오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와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경영 환경이 악화됐을 때도 감원·임금삭감·노사분규 없이 위기를 극복, ‘무감원·무감봉·무분규’의 ‘3무(無) 경영’을 실천했다. 2003년에는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한국무역협회와 한일경제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고 학교법인 연세대학교 이사를 맡았다.
2006호 4500톤급 한국형구축함 최영함 진수
2004년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인도네시아 대통령에 취임
2000년 제3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서울서 개막
‘새 천년의 번영과 안보협력’을 주제로 한 제3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가 의장국인 우리나라를 비롯해 26개국의 정상 또는 정상급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2000년 10월 20일 서울 COEX 컨벤션센터에서 개막됐다.
이틀 일정으로 열린 이번 회의에서 정상들은 두 대륙간 정치-안보-경제-정보통신 분야의 협력 강화방안을 모색했다. 회의는 ‘한반도 평화에 관한 서울선언’을 비롯, ‘2000 아시아-유럽 협력체제(AECF 2000)’ ‘의장 성명서’ 등 3개 문건을 채택했다. 아셈 기간동안 사회, 시민단체, 학생과 ‘아셈 민간포럼’ 참가자 1만5000여명은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기도 했다.
이번 회의는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국제적 제어장치’를 한층 더 강화했다는 점과 유라시아 초고속 통신망 사업을 비롯해 모두 23개 사업을 채택하는 등 구체적 성과를 거두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한편, 화려한 외양과는 달리 내실이 미흡해 각국 정상들간의 ‘고급 사료장’이라는 지적과 북한의 인권과 대량 살상무기에 대해서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다는 점 등이 문제점으로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이번 회의가 한국정부 수립 후 최초의 다자간 정상회의였고, 최대 규모의 외교행사였다는 점에서 한국 외교역량이 한단계 성숙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1999년 압두라흐만 와히드, 인도네시아 대통령에 당선
이슬람 지도자 압두라흐만 와히드(59) 국민계몽당 당수가 인도네시아 건국이후 4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와히드 후보는 1999년 10월20일 오전 11시 국민협의회에서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당초 예상을 뒤엎고 인도네시아 투쟁민주당의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후보를 누르고 임기 5년의 새 대통령에 선출됐다.
와히드는 691명의 의원들이 참가한 투표에서 373대 313표에 기권 5표로 당선돼 54년 만에 처음으로 선거에 의한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룩하게 됐다. 와히드 당선자는 이날 오후 7시30분 취임선서를 했다. 대통령 수락연설을 통해 `우리의 감정과 존엄을 때때로 깔보는 외국에 맞서 인도네시아의 영토를 온전하게 방위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메가와티는 수카르노 초대 대통령의 장녀란 배경에도 불구하고 여성을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는 이슬람 특유의 문화와 군부 반감, 지도력에 대한 불신 등 장벽을 극복하지 못했다. 와히드 당선이 확정되자 메가와티의 지지자 수천명은 자카르타 등지에서 격렬한 항의 시위를 벌였다.
1999년 정부, 초저가 ‘국민PC’ 판매 개시
정보통신부가 품질을 보증하는 100만원대의 인터넷PC(국민PC)가 20일부터 판매를 시작했다.
인터넷PC는 12개 공급업체의 대리점이나 전국 2800여 우체국, 또는 각 업체의 인터넷 상점이나 우체국 쇼핑몰(www.epost.go.kr)에서 구입할 수 있었다.
9월 20일부터 시판된 ‘국민컴퓨터적금’에 가입한 경우 월 불입액을 2회 이상 납부한 뒤 신청하면 5일 이내에 PC를 설치해준다.
한국통신은 19일부터 12월말까지 인터넷PC협의회와 공동으로 서울 용산 전자단지 터미널상가 1층에서 ‘인터넷PC 전시회’를 개최, 정통부가 추진하는 인터넷PC(국민PC) 공급사업체로 선정된 12개 회사들의 컴퓨터가 5대씩 총 60대가 전시됐다.
1998년 일본 대중문화 1차 개방 발표
정부의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일본문화 개방정책에 따른 일본 대중문화 1차 개방이 1998년 10월 20일 발표됐다. 신낙균 문화관광부 장관은 "일본 대중문화를 즉시 개방부문과 즉시 개방이후부문으로 나눠 우선 영화 및 비디오, 만화 부문을 개방한다" 밝혔다.
일본 영화가 국내 극장에서 상영되는 것은 광복 이후 53년 만이었다. 1차 개방에서 영화와 관련된 내용은 세계 4대 영화제(칸느ㆍ베니스ㆍ베를린ㆍ아카데미)에서 수상한 적이 있는 일본영화 및 한일 공동제작영화 상영 허용, 일본 배우의 한국영화 출연 허용 등이었다. 이에따라 1998년에는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 `하나비`가 최초로 상영됐으며, 이어 칸느 그랑프리를 수상한 `카케무샤`가 개봉됐다. 1999년에는 역시 칸느 그랑프리 수상작인 `우나기`가 개봉되었으나 이렇다 할 흥행성적은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1999년 9월 2차 개방으로 개방 폭이 확대되면서 개봉된 `러브레터`는 전국에서 120만 관객 동원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비디오 개방은 국내에서 상영된 영화에 한했으며 만화개방은 일본어로 된 만화책과 만화잡지였다.
1991년 인도 북부에 진도 6.1 지진 사망 5백여 명 부상 8천여 명
1990년 한중무역사무소 개설 합의
1990년 평양 방문으로 국보법 위반해 옥살이하던 문익환 목사 석방
1986년 카드식 공중전화기 첫 설치
국내에 공중전화기가 최초로 설치된 1954년에는 결재수단이 동전 뿐 이였다
이후 공중전화를 보다 자유롭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변화가 일었다
1986년 10월20일 동전 대신 카드를 전화기에 투입해 통화하는 방식의 카드식 공중전화가 도입되었다
통화한 만큼 카드요금이 자동 소거되는 구조로 통화가 끝날 때 즈음이면 동전을 다시 넣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사라졌다
1984년 중국공산당 제12기 중앙위 3차 전체회의. 자본주의경제개혁안 채택
1983년 비숍 그레나다 수상 피살
1982년 중국, 국경무역사무소 개설 보도
1982년 에콰도르정부, 에콰도르전역에 비상사태 선포. 헌법기능 정지
1982년 환경청, 진해 부산 광양만 등 4개 해역에 `연안오염특별관리해역` 선포
1980년 부산 지하철 1호선 기공
1980년 북한, 김정일을 김일성의 후계자로 공식발표
1980년 남북대화사무국 개국
1979년 마산 창원에 위수령 선포
1977년 태국 군부쿠데타 싱기드 제독 집권
1973년 문화의날 선포
1968년 주간조선 창간
1964년 미국의 제31대 대통령(1929~33 재임) 후버 사망
1963년 거물 간첩 황태성 검거
황태성은 경북 상주에서 출생, 1923년 9월 8일 서울 제1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중에 동맹휴학사건에 관련되어 퇴학당하였다.
그 뒤 1924년 연희전문학교 상과에 입학했다가 중퇴하고 공산주의운동에 가담하였고, 광복 후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여 경북당 조직부장으로 활동하고 1946년 10월1일 ‘대구폭동’을 주동하다가 월북하였다.
월북한 뒤 1948년 8월28일 이른바 제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6·25전쟁 때는 군에 편입되어 남하한 뒤 서울에서 의용군 모집에 적극 활약하여 북한노동당으로부터 신임을 받았다.
그 뒤 평양으로 돌아가서 상업성 지방관리국장을 거쳐 상업성 부상까지 되었고, 1961년 6월 25일 황태성은 당시 대남공작 총책 이효순(李孝淳)의 소환을 받고 다음과 같은 지령을 띠고 남파되었다.
① 남한의 고위 지도층 가족을 포섭하여 고위 지도층과 직접 접촉할 것.
② 앞의 사명을 수행하기 어려우면 경상북도에 가서 대구시를 중심로 당의 기반을 구축하고 신분을 합법화할 것.
③ 남한의 정치적·사회적 혼란을 조성하여 4·19혁명 재판과 같은 혁명의 계기를 만들 것.
④ 평화통일 선동 및 미군 축출을 위한 반미사상을 고취시킬 것.
1961년 8월 29일 평양을 출발하여 9월 1일서울에 잠입, 친척 되는 모 대학강사 김민하(金旼河)와 접촉, 북한에 있는 그의 아버지와 형제들의 소식을 전하면서 포섭에 성공하고. 포섭된 김민하를 통하여 조카딸 임미정(林美亭)과 그녀의 남편 권상릉(權相陵)을 포섭하고, 그 뒤 10월 9일 황태성은 자신의 중매로 박상희
(박정희의 형)와 혼인한 조기분 여인을 통해 국가재건최고회의 박정희(朴正熙) 의장 및 그녀의 사위인 김종필(金鍾泌)과 접촉하자 권상릉·임미정에게 편지를 휴대시켜 방문하도록 하였으나, 조모 여인은 접촉을 거부하고 곧 수사당국에 신고하였다.
이에 서울시 경찰국 수사진은 10월 20일 황태성을 검거하고 공작금 120만 환, 라디오 1대, 암호 문건 1조 등을 압수하는 한편, 임미정과 권상릉도 체포되었다.
그 뒤 황태성은 대법원의 상고 기각으로 사형이 확정되어 1963년 12월 14일 처형되었다.
이 사건은 광복 후 처음으로 현고위 지도층의 가족을 통하여 고위 지도층과 직접 접촉하기 위해 부상까지 지낸 거물급 인사를 남파했다는 점에서 정부 고위층과의 관련설로 인하여 한때 정계는 물론, 세인의 의혹과 물의를 일으켰다
1962년 중국- 인도, 국경서 전면 충돌
히말라야 산맥을 따라 뻗어있는 국경을 둘러싸고 3년을 끌었던 인도와 중국간의 분쟁이 1962년 10월 20일 다시 격화됐다.
이날 분쟁에 대해 중국은 인도군이 동부 및 서부의 분규중인 국경지방에서 중국국경경비병에 전면공격을 해왔다고 주장했고, 인도는 중국군이 수천명을 이끌고 히말라야 국경지대의 동부 및 서부에서 동시에 공격을 개시했다고 주장했다. 양측이 전투발발의 책임을 놓고 서로 비난만 했다.
최초로 인도군은 인도의 아셈주와 중국이 점령하고 있는 티벳 사이의 동북부 국경에 배치된 중국군 부대를 퇴각시켰다. 전투는 신강과 캐시미르와 라다크 지역의 국경에서도 있었다. 그러나 전투가 계속되면서 중국군의 공세로 인도군은 국경 부군에 위치한 돌라와 킨제만 지역의 주요 거점을 대규모 중국군에 내주었다. 중국군은 동북부 국경 지역의 행정중심지인 봄딜라를 위협했으며 아셈주 북부지역의 타즈푸프에 대한 공격을 준비했다. 이에 인도는 10월 26일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후 주은래가 인도가 중국의 주장선을 인정한다면 국경선에서 중국군을 철수시키겠다고 통고하면서 11월 22일 인도-중국 국경분쟁은 휴전에 들어갔다
1961년 거물간첩 황태성 사건
1958년 태국, 무혈쿠데타 발생. 사리트 원수 정권장악
1958년 공군 제31 전술통제비행전대 창설
1951년 동경서 제1차 한일회담 개최
1947년 브라질, 대소련 단교
1946년 영국, 버마의 독립허용을 설명
1944년 레이테섬 상륙작전
1943년 일제, 우리나라에 학병지원제 실시
1940년 독립운동가 이범윤 사망
일제침략에 대항해 연해주의 민족지도자로 활약한 독립운동가 이범윤 선생이 노환으로 1940년 10월 20일 사망했다.
1856년 경기도 고양군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나 전통 유학을 배운 선생은 47세인 1903년 간도 관리사로 임명돼 충의대를 조직, 한인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했으며 1904년 2월 러일전쟁이 터지자 충의대를 거느리고 러시아와 합세해 일본군과 교전을 벌였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 이후 선생은 3000~4000명에 달하는 이범윤 의병부대(연추의병부대)를 조직, 1908년 7월부터 9월까지 두만강 하류의 경원, 경성, 회령 등지에서 여러차례 국내지역 진공작전을 벌여 일본군에 타격을 줬다. 3·1운동이 일어나자 선생은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무장 독립운동단체인 ‘의군부’ 총재 등을 맡았으며 대한독립군단 총재, 신민부 참의원장, 성동사관학교 고문 등에 추대되어 항일운동을 벌이다 이날 사망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으며 ‘2000년 10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
1935년 홍군(紅軍)의 대장정 1년 만에 끝나
장제스가 2년간에 걸친 4차례의 포위섬멸작전으로 1931년에 마오쩌둥이 장시성(江西省) 루이진(瑞金)에 세운 소비에트공화국 임시정부를 뿌리 뽑으려 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1933년 10월, 장제스는 70만명의 대군을 동원해 물샐틈없는 포위망을 펼치며 5번째 공격에 나섰다. 결국 홍군은 수적으로 월등한 장제스군에 대패하고 생필품과 의약품까지 동나자 탈출을 결심한다.
1934년 10월 15일, 부녀자·병자를 포함한 2만8000명을 남겨둔 채 홍군 9만명의 대탈주극이 시작됐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대장정(大長征)’이었다. 홍군은 집요한 장제스군의 추격과 지역 군벌의 방해를 피해 24개의 강을 건넜고 18개의 산맥을 넘었으며 11개의 성을 지났다.
그러나 그들은 도망가는 데만 급급하지 않았다. 이동 중 무려 2억이 넘는 사람들을 만나 공산주의 이념을 전파하며 중국 대륙을 붉게 물들여 나갔다. 출발 당시 불안했던 마오쩌둥의 위치도 어느덧 확고하게 자리를 잡아 본격적인 마오(毛) 시대를 열었다. 밤낮으로 1만2500km를 행군하기를 1년여.
1935년 10월 20일, 마침내 산시성(陝西省) 옌안(延安)에 도착함으로써 대장정도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병력은 출발 때에 비해 10분의 1로 줄어있었지만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승리였다.
1920년 청산리(靑山里) 전투
우리 나라 독립군이 만주에서 활약을 하자 일본은 20사단과 19사단을 동원, 독립군을 소탕하려 했다.
이 일본군을 맞은 우리 나라 독립군은 김좌진과 나중소 및 이범석 장군의 지휘아래 일본군을 청산리에서 무찔렀다.
이날 벌어진 싸움에서 일본은 3,300여명의 군인을 잃었다.
1907년 베를린에서 제2회 독일노동자회의 열림
1904년 볼리비아와 칠레가 강화조약에 조인
1903년 미국-캐나다, 알래스카 국경확정
1902년 해인사 주지·조계종 2대 종정 이청담 스님 태어남
1891년 영국의 물리학자 채드윅 출생. 중성자 발견으로 1935년 노벨물리학상 수상
1889년 허블 망원경 만든 허블 태어남
1859년 진보주의교육과 실용주의 창시한 미국철학자 존 듀이 출생
1854년 프랑스의 상징파 시인 랭보 출생
1740년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카를6세 사망
1437년 경원성(慶源城, 둘레 1,755척)과 경흥성(慶興城, 2,186척) 완공
1361년 고려, 홍건적 10만군 삭주(朔州)·이성(泥城)에 침입
1107(고려 예종 2) 윤관 장군 여진족 정벌 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