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기간 : 2002년 11월 14일 ∼2002년 11월 17일 (3박 4일간)
☆여행지 :일본 오사카
-1일 : 간사이공항 - 오사카성 - 대정 동 중학교 - 홈스테이
-2일 : 대정 동 중학교 - 홈스테이
-3일 : 유니버설 스튜디오 오브 제팬
"드디어 일본이다..!!" 나는 여기 저기서 들려오는 낯선 이국 말과 안내판들을 보며 한없이 들뜬 기분을 만끽했다. 일본.....가까이 있지만 잘 알지 못하는 이웃나라. 그리고, 역사적으로 우리 나라와 우호관계가 좋지 못한 나라, 2002 월드컵을 공동 개최한 나라..그것이 내가 아는 일본이었다.
찌르르릉......오늘도 변함없이 내방 자명종이 울렸지만, 오늘만큼은 무력했다. 나는 이미 일본에 간다는 기대에 부풀어 아침 일찍 일어나 있었던 것이駭? 나는 어서 빨리 8시가 되기만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던 터였다. "엄마 빨리요 늦어요 8시라고요" 아침에 원정이 집에서 만나 같이 가기로 했던 나는 일찍부터 엄마를 부추 겼다. 그리고 원정이네 차에 올라타서 어머니께 잘 다녀오겠다고 손을 흔들 때, 나의 한없이 부푼 마음은 하늘을 날아 벌써 일본 땅에 있었다.
우리는 공항에서 9시 30분에 집결했다. 비행기가 뜰 시간까지는 아직도 까마득했다. 너무 기대에 부푼 터라 기다리는 일이 초조하기까지 했다. 드디어 비행기에 탑승~!! 비행기는 어서 가고픈 내 맘을 아는지 벌써 하늘을 향해 몸을 던지고 있었다. 와~.~!! 육지가, 내가 사는 이 부산이 내 시야에서 점점 멀어져 가며 푸른 망망대해가 펼쳐 질 때 나는 비로소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일본이다∼!!"
비행기에서 내 눈앞에서 난무하는 한자들과 내 귀 안에서 맴도는 알지 못하는 이국 어가 아직 얼떨떨해 하는 나를 바로 깨닫게 했다. "환영합니다 온천중학교" 공항을 나온 우리를 맞은 것은 바로 이 플레인 카드, 그리고 타이쇼 히가시 중학교의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들과 내가 홈스테이를 하게된 집의 아버지였다. "안녕하세요"어색하지만 일본사람에게서 처음으로 듣는 한국어. 어찌나 기쁘던지..비행기 탑승 때부터 일본어에 시달리던 우리들에게는 무척 반가운 소리 이었다. 그리고 서로의 소개가 오고갔고 우리는 선생님 두 분과 함께 오사카 성을 관람하기 위해 기차를 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우리가 비행기를 내리고 탔던 이 간사이공항은 섬도 아닌 망망대해에 흙을 쌓아 바다 한가운데에 공항을 만든 것이었다. 원래 오사카공항이 있었는데 도시 안에 있어서 소음 등의 문제로 인해 이 간사이공항을 다시 만들었던 것이다. 이 간사이공항과 육지를 연결한 다리가 있었는데 꼭 부산의 영도다리 5∼6배 정도로 보였다.
일본에는 우리 나라와는 달리 기차가 발달되어 있었다. 그 기차 노선도를 보고 있노라니 내가 서울 종로에 와서 지하철 노선도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그만큼 기차가 도시의 구석구석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일본에는 지하철과 함께 기차가 대중교통문화에 큰 공헌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우리는 30분 정도를 기차를 타고 이동했다. 그리고는 오사카성에 도착했다. 5분 정도 걸으니 저기서 오사카 성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오사카 성...일본의 3대성 중의 하나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세운 성으로 전란과 벼락으로 소실되었으나 도쿠가와 가문에서 재건했다고 한다. 오사카성의 중심건물인 덴슈카쿠는 5층 8단의 철근 건물로 높이가 46m라고 한다. 오사카 성을 보는 순간..우리 나라와 비슷하면서도 무언가 다른 아름다움이 보였다. 우리 나라는 오색 영롱한 색으로 알록달록 무늬를 넣어 단층을 칠하는 반면, 일본의 오사카성은 검은색과 흰색으로만 칠해져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무언가 천박한 기색이 없고 단아하면서도 깔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건물에 금으로 장식이 들어가 있었는데,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우리는 일단 요기를 하기로 하고 오사카성안의 음식점에 들어갔다. 모두들 우동을 먹었는데, 한국과 맛이 똑같았다. 그런데 주로 우리 나라에서는 물을 주는데 거기서는 마실 것으로 차밖에 주지 않았다. 대부분 녹차나 우롱 차였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우리 나라 음식점에서는 무언가를 시키면 반찬이 정말 많이 나오는데 일본에는 단무지 한쪽 주지 않았다. 따로 돈을 내고 사 먹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 것을 몰랐던 우리는 단무지를 안 준다고 난리를 쳤던 것이었다. 정말이지 당황스러웠다. 우리 나라에서는 당연했던 일이었는데.....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드디어 오사카 성에 들어가게 되었다. 우리는 학생이라 그런지 공짜로 들어 갈 수 있었다. 그런데 또 당황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돈을 내라니......우리로서는 정말 당황스러웠다. 어쨌든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5단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계단으로 한층 더 올라가니 전망대가 펼쳐졌다. 아.....오사카시가지가 한눈에 들어 왔다. 우리 나라로 치면 63빌딩에 올라 서울 시가지를 내려다본다거나, 용두산 공원에서 내려다보는 부산의 광경처럼 내눈앞에 펼쳐진 오사카 시가지에 나는 처음 눈을 떠 모든 것이 신기한 어린아이처럼 하나라도 놓칠 세랴 이곳 저곳을 둘러보았다. 일본에는 외양이 정말 아름답게 지은 건물이 많았고 우리 나라처럼 아파트가 많지 않았다. 거이다 주택이었다. 그리고 높은 건물은 대부분 정부청사같은 것이나 빌딩들이었고 실제로 사람이 사는 집은 높아 봤자 10층 내외 인 것 같았다. 훤히 내려다보이는 시가지를 보고 있자니 내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되어 천하를 호령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한 층씩 계단을 내려오면서 관람을 시작했다. 그곳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집안과 오사카와 관련된 미술품, 문서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우리 나라처럼 입체 영상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대기를 보여 주고 있었다. 안쪽에 진열된 사무라이의 갑옷과 투구가 참 예뻤고 특히 투구는 우리 나라와 달랐다. 우리 나라는 안쪽으로 몰려 있는 반면에 일본 것은 밖으로 벌어져 있었다. 마지막 전시실..그곳에는 일본 관광지 어디를 가도 볼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바로 스탬프 였다. 일본에서는 스템프를 관광지마다 배치해 두고 있어 관광객으로서는 둘도 없는 멋진 기념품이 였다. 나는 3개의 스탬프가 너무 예뻐서 모두 다 찍어 왔다. 우리 나라에서도 빨리 관광지마다 이런 스탬프를 배치해서 사람들이 관광 후에도 어디서든지 이것을 보면 아 한국 어디 어디에 있는 무엇이다, 라고 알 수 있도록 했으면 한다.
오사카 성 구경을 마치고 우리는 다시 똑같은 기차를 타고 타이쇼 히가시 중학교로 향했다. 기차에서 내려 10분 정도 걸으니 학교가 보였다. 학교 앞에는 태극기와 일장기가 나란히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그 광경은 나로 하여금 다시 한번 월드컵을 상기시키게 하며 나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곧이어 다른 선생님들이 나오시며 모두 "안녕하세요"라고 우리를 맞아 주셨다. "!" 우리는 "안녕하세요"라고 대뜸 인사를 해 버렸다. 막상 인사를 하려니 일본어가 나오질 않고 목구멍에서 뱅뱅 맴돌았던 것이다. 다목적 실로 올라가는 동안 우리는 복도구석구석에 붙여진 "환영합니다 온천중학교"라는 글자를 볼 수 있었다. 컴퓨터로 반 듯 하게 뽑아놓은 글씨도 있었지만 왠지 어색하지만, 삐뚤삐뚤 초등학교 1학년이 받아쓰기하듯 손으로 적어놓은 글자에 더 호감이 갔다. 그곳에서는 이미 홈스테이 할 가족들이 벌써부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바로 환영회 행사를 시작했다. 내가 배정 받은 일본 아이는 松井虹夏(마츠이 코나츠)였다. 나는 곧장 내짐을 가지고 따라 나섰다. 그 집에는 아빠, 엄마, 할머니, 언니, 코나츠, 남동생 이렇게 5식구가 살고 있었다. 내짐을 코나츠의 남동생이 들어다 주었다. 우리는 집으로 가지 않고 코나츠네 가게로 갔다. 가게는 바로 학교 앞에 있었다. まつい(마츠이)라는 이불 가게 였다. 코나츠네 어머니께서 나에게 시장에 가자고 하셨다. 나와 마츠이, 그리고 아이카(마츠이의 언니)는 건너편의 슈퍼로 향했다. 일본 슈퍼마켓도 한국하고 똑같았다. 물건이 진열되어 있는 것이며 생선가게의 풍경 하얀 연기가 솔솔 나오는 채소 진열대..... 그리고 과자까지 우리 나라의 고래 밥이며 빼빼로, 칸쵸, 쿠우, 허니레몬등 모두 일본에 다 있었다. 그런 것들을 신기한 듯 보는 나에게 마츠이 어머니께서 하나하나 설명해 주셨다. 드디어 계산대∼! 일본에도 우리 나라처럼 할인 쿠폰이 있었다. 마츠이 어머니께서는 그것을 바구니에 담으셨다. 일본에서는 계산대에 바구니에 계산할 금액을 바구니에 담는 다는 것도 우리와 달랐을 뿐더러 봉투에도 돈을 매기지 않았다. 우리 나라에서는 이제 50원에 봉투 하나를 사는데...... 우리는 야시장으로 향했다. 나는 일본 야시장이 무척 가보고 싶었었는데 정말 기뻤다. 야시장으로 가는 길은 한국의 골목과 꼭 같았다. 선거 포스터가 붙어 있다거나 길 안내 표지판 도 같았다. 하지만 다른 점이라면 한국에는 자동차가 도로에 주욱 주차되어 있는 것에 반해 일본에는 자동차 대신에 자전거들이 많이 있었다. 아마도 내가 일본에서 가장 많이 본 교통수단은 자전거이었으리라. 기차역에 가도 자전거가 수천 대는 있었고 거리 구석구석에 자전거를 주차시킬 공간을 만들어 놓는다거나 자전거 도로가 항상 있었고 지나다니는 사람의 거의 ⅓정도는 다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어쨌든 우리는 야시장에 도착했다. 일본의 야시장은 꼭 서면 지하상가를 보는 듯 한 풍경이랄까 우리 나라의 시장처럼 거리에 주욱 늘어놓고 팔지 않고 모두 똑같이 생긴 가게와 간판을 내걸고 여러 가지를 파는 가게들이 모여 있었다. 아주머니께서 고기를 산다고 식육점으로 가자고 하셨다. 거기에는 한국과 똑같은 그림이 있었다. 소 그림에 이렇게 선이 그여서 등심, 안심 등등 명칭을 써놓은 그림..아마 모두들 한 두 번쯤은 다들 보았을 그 그림이 일본에도 똑같이 있었다. 정말 소까지 똑같이 생겼었다. 글자만 달랐지 글자만 아니었으면 "이거 우리나라껀데" 라고 한 만큼 똑같았다.
"멍멍" 코하츠네집 문을 열자 개가 나와서 반겨 주었다. 이름이 메이인 이 개는 진돗개와 비슷하게 생겨서 일본이 가까운 나라임을 실감나게 해주었다. 계단을 올라가 2층의 거실로 갔다. 코나츠는 내가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고 만화를 계속 보여 주었다. 저녁으로 일본 파전을 먹었는데 우리 나라는 정구지를 쓰는데 그곳에서는 양배추를 사용했다. 일본식 파전은 두께가 상당히 두꺼웠다. 한 3cm정도? 코나츠에게 한국식은 얇다고 가르쳐 주니 신기해했다. 그 파전 속에 떡과 피자치즈를 넣어 만들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맨 처음에 내가 일본식 떡이 뭔지 몰라서 물었더니 한자로 써주었다. 내가 알아보지 못하자 송편 그림을 들고 와서 나에게 이것이라며 가르쳐 주어 알게 되었는데 일본식 떡은 꼭 무 같은 색깔에 네모 반듯하고 두껍고 딱딱했다.
식사를 마치고 코나츠의 가족들은 내가 준 선물을 개봉했다. 나는 김과 한국 탈을 선물했었는데 아저씨께서 나에게 일본 김을 주시며 한국 김과 비교해 주셨다. 나는 이것저것 가리키며 한국어를 가르쳐 주었고 코나츠는 일본어를 가르쳐 주었다. "밀캄"누군가 이렇게 말한다면 바로 우리는 밀감 즉 귤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바로 일본어로 밀감을 말한 것인데 우리 나라와 발음이 비슷한 것이 참 많았다. 그리고 신문에서 온천광고가 나오자 우리 학교이름하고 같다며 웃기도 했다. 잘 시간이 되어 나는 씻으러 갔다. 한국에는 화장실과 욕실이 같이 있는 반면에 일본에는 화장실과 욕실이 따로 분리가 되어있었다. "!"욕실에 들어서가 가장 눈에 띈 것은 욕실의 반을 차지하는 욕조였다. 우리 나라의 것보다 짧지만 더 깊었다. 그리고 온도계와 물을 덮이는 기계가 있었다. 일본사람들은 그물을 한번 받으면 며칠동안 쓰다가 나중에는 세탁기에 옮겨 빨래를 하는데 쓴다고 한다. 그만큼 절약정신이 강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코와츠와 함께 2층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첫날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이국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지만 내일을 기약하면서 나는 잠이 들었다. "오야스 미나사이......!!"
"음..."항상 누군가 깨워줘야 일어나는 내가 일본에서는 자발적으로 일찍 일어났다 나도 모르게 일찍 눈이 떠진 것이었다. '학교 가야지~!!'그렇게 가기 싫었던 학교가 이만큼 가고 싶었던 날은 오늘이 처음일 것이다. 나는 서둘러 교복으로 갈아입고 2층으로 내려갔다. 코하츠의 교복을 보니 우리학교가 여중일 때의 동복을 생각나게끔 했다. 하복과 같은 세라복에 소매가 더 길고 짙은 남색(우리 학교 동복의 넥타이색과 비슷하다.)에 자주색의 선이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남동생의 교복은 차이나식 교복이었는데 일본 남자학생들은 거이다 이런 차이나식 교복이었다. 고2인 아이카언니는 벌써부터 일어나 자신의 도시락을 싸고 있었다. 코나츠와 나, 남동생의 도시락은 어머니께서 싸주셨는데 아직 일본에서는 급식을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셋이서 학교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등굣길에는 초등학생, 유치원생, 중학생등 가지각색이었다. 일본에도 역시 고등학생들은 일찍 학교를 가고 없었다. 학교 가는 길에 코나츠의 친구들을 만났다. 코나츠의 친구들은 모두 다 나를 보며 신기해했다. 뭔가 비슷하지만 이국적인 느낌이 들어서 일까? 그들을 자세히 보니 가방이 똑 같았다. 어머니 모교에는 이렇게 학교가방이 정해져 있었다고 들은 것이 생각이 났다. 아이들이 다 똑같은 옷에 똑같은 가방을 들고 학교 가는 모습을 보니 꼭 한 형제들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리 나라의 제각기 다른 알록달록한 가방을 보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학교에 도착하면 우리학교는 운동장이 바로 앞에 있고 한쪽 편에 등교길이 따로 있는 것에 반해 타이쇼 히가시 중학교는 바로 학교 건물이 있고 그 안에 운동장이 있었다. 코나츠는 바로 교실로 가고 나는 모이기로 했던 다목적 실로 갔다. 이미 다목적 실에서는 몇 몇 아이들이 미리 와 있었다. 그 안에서 듬성듬성 들리는 한국어란.........어찌나 기쁘던지. 아마도 어제 저녁부터 아침까지 알 수 없는 일본어만 계속 들었기 때문이었을까. 태어나서 한국어란 것이 이렇게 반가울 적이 없었다. 나의 모국어에 또 다른 애틋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모두 도착한 후 우리는 체육관으로 향했다. 타이쇼 히가시 중학교의 모든 학생들이 체육관에 모여 있었고 우리는 그 학생들 사이로 지나가야 했다. 우리가 도착하자 모세가 바닷물을 가르듯 아이들이 중앙을 비우며 가족으로 움직였다. 우리는 그 뚫린 바닷길을 지나 무대 앞의 의자에 않아 환영 식을 받았다. 모든 학생들이 질서 정열하고 조용한 가운데 식이 진행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서서 운동장 조례를 하고 모두 자기들 이야기에 바쁜데 이곳 학생들은 그렇지 않았다. 일본에는 애국가나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할 때 빼고는 다 앉아있었고 모두들 잡담하지 않고 조용했다. 환영 식이 끝나고 우리는 각자 배정 받은 교실로 이동했다. 내가 배정 받은 코나츠와 같은 반인 3학년 2반이었다. 내가 교실로 들어서자 담임선생님께서 오셔서 나를 반 아이들에게 소개시켜 주셨다. 그리고 코나츠의 앞이 내자리라고 하셨고 이미 빈 책걸상이 놓여 있었다. 내가 처음 일본에서 수업한 것은 다행히도 영어였다. 처음에 내가 일본에서 수업을 들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난감했었다. 일본어도 잘 안 되는데 수업을 들으라니......다행히 안도감이 들었다. 영어수업시간, 선생님께서 들어오셔서 나에게 선생님 책을 빌려주시고는 아이들에게 본문을 적으라고 하셨다. 나도 내 개인 수첩을 꺼내어 따라 적었다. 일단 찬찬히 책을 구경해 보았는데 일본에는 이미 모든 교과서가 컬러로 되어있었다. 그리고 영어 책의 한과가 우리보다 얇았고 우리교과서처럼 여러 가지가 복잡하지 않았고 본문과 핵심구문, 그리고 연습문제가 다였다. 교과서 또한 정말 얇았는데 기술책 정도 두께에 크기는 우리 영어 책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예를 들어 똑같이 본문 진도를 나간다고 했을 때 진도는 일본은 반 바닥정도 나간다고 하면 한국은 두 바닥은 기본이고 본문 전체를 나가는 일도 있다. 그렇지만 교과서 수준은 한국이 좀더 높은 것 같았다. 여기에 내가 적은 본문을 조금 실어 보았다.
『 A Vulture and a child
The Sudan is a large country in northeast Africa. It is a country with great promise. But it also has great problem. Its people have suffered from war and hunger. In 1993 Kevin Carter went there to work as a photographer. He wanted the world to know the facts. One day he saw a child. She was lying on the ground. He knew why she was there hunger. Suddenly a vulture appeared. He pressed the shutter. 』
다음 시간은 컴퓨터 시간이었다. 코나츠와 나, 그리고 일본 친구들은 컴퓨터 실로 이동했다. 가는 길에 복도에서 만난 일본아이들이 나를 보며 신기한 듯 모두 "안녕하세요"를 하며 즐거워했다. 드디어 컴퓨터실에 도착~!! 와~~컴퓨터가 모두 LCD였고 본체도 정말 얇았다. 수업도 우리학교와 달랐다. 우리 학교는 앞에 선생님 컴퓨터를 크게 보여 주고 우리가 그것을 보며 따라하는 반면 일본에는 컴퓨터와 컴퓨터 사이에 선생님의 본체와 연결된 모니터가 있어 학생들이 바로 옆의 모니터를 보면서 개인수업 하듯이 수업을 했다. 일본에도 우리와 같은 프로그램을 쓰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문서 편집을 배우고 있었는데, 나는 그만 기겁을 할 정도의 놀라움에 휩싸이고 말았다. 순간 나는 일본아이들이 다 컴맹인줄 알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떻게...한 두명도 아니고 전원이 다 한 명도 남김없이 소위 말하는 독수리 타법으로 타자를 치고 있었다. 전원이..... 더욱 놀란 것은 우리 나라에서는 초등학교 1학년도 하는 오른쪽정렬, 왼쪽정렬, 가운데 정렬을 못한다는 것이었다. 내 양쪽에 있던 아이들 다 못하기에 내가 해주었더니 모두들 박수를 치며 놀라하는 모습에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솔직히 한국에서 일본 애들은 컴퓨터를 잘 안 쓰고 모두 핸드폰으로 해결한다는 것을 들은 적은 있지만 솔직히 이만큼 일 줄은 상상조차 못한 일이었다. 어쨌든 일본 프로그램도 글자가 다른 것을 제외하면 우리 나라와 똑 같았다. 그러나 추가된 프로그램이 있었다. 일본에는 한자를 많이 쓰다 보니 우리처럼 한자를 찾기가 어려워 생긴 것 인 것 같았다. 말로는 설명하기가 좀 어렵지만 예를 들어보면, 天(하늘천)자를 우리 나라 컴퓨터로 찾아보자. 일단 "천"이라고 쓴 다음 "한자"키를 누르고 나오는 글자 중에 天을선택을 할 것이다. 일본에서도 이렇게 찾는 방법이 있지만 우리와 다른 방법을 보면, "입력(한국어로 했을 때)"에서 프로그램을 찾아 실행시키면 우리 나라의 그림판 같은 것이 뜬다. 그 그림판에 마우스를 이용해서 "천"자를 쓴다.(삐뚤삐뚤하게 써도 컴퓨터라는 것이 용케도 알아내어 찾아준다.) 그러면 그 옆에 칸에 그 획의 생김과 같은 획이 들어간 한자가 뜬다. 그러면 그 중에서 찾아내는 것이다. 물론 완전히 그 한자를 다 쓰면 그 한자 한 개만 뜨지만 쓰다가 말면 그 획이 들어가는 한자가 모두 뜨게 된다. 코나츠가 그것을 이용하여 한자를 찾아내는데 너무 신기해서 나도 해보았다. 정말이지 인간이란 만물이 영장이었다. 이렇게 훌륭하고 신기한 것도 만들어 내고,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해 냈을지......
그 다음 시간은 체육시간 이었다, 내가 체육복이 없는 것을 아신 담임 선생님께서 나에게 선생님 체육복을 빌려 주셨다. 나는 그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체육관으로 갔다. 일본에서는 운동장을 쓰지 않고 체육관에서 다 해결하고, 운동장에서는 테니스 부가 클럽 활동을 하는 곳으로 밖에는 쓰이지 않는 듯 했다. 체육관에 대해 말을 하지 않았는데 정말이지 영화에서만 보던 바로 그 체육관이었다. 바닥에는 특수 바닥재가 깔려 있고 앞에는 무대가 그리고 2층에는 응원석이 있는...아마 "슬램덩크"라는 만화책을 연상하면 빨리 이해가 갈 것이다. 특이한 것은 우리 나라에서는 남녀가 같이 체육수업을 받는 반면에 그 곳에서는 남녀가 따로 체육 수업을 받았다. 남학생은 유도, 여학생은 구기 운동을 하는 듯 했다. 거의 남학생은 3년 내내 유도만 하다 졸업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학교에 가면 실내화를 신고 활동하는 반면 그 곳에서는 체육관을 이용할 때만 실내화를 신었다. 알고 보니 실내화까지도 맞춰서 신는 것이었다. 실내화가 없던 나는 체육선생님께서 빌려 주셨다. 체육관을 한바퀴 돌고 나서 준비운동을 했다. 우리 나라에서는 국민체조니 청소년 체조니 하며 정해놓고 하는 반면 그곳에서는 스트레칭을 했다. 피구 시합을 했는데 우리 나라와 룰이 달랐다. 우리 나라는 공격과 수비를 정해놓고 하는 반면에 그곳에서는 그게 없었다. 모두 공격이고 공을 맞아서 나가면 수비를 서는 것이다. 그리고 수비를 서다가 상대편 사람을 맞추게 되면 다시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정말 재미있었다.
점심 시간이 되어 점심을 먹는데 나도 1,2학년 때는 도시락을 싸다녀서 알지만 친한 아이들끼리 모여 먹는다고 반 이동을 하는데 일본에는 장난이 아니었다. 3학년이 1학년 교실로, 2학년이 3학년 교실로...정말 밥 먹는데 이렇게 이동을 많이 하는 건 처음 보았다. 점심을 먹고 나서 우리는 다시 체육관에 모였다. 역시나 이미 일본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우리는 또 그 옆으로 갈려진 바다를 지나 앞쪽의 의자에 앉았다. 거기서 가위 바위 보게임과 일본학생들이 우리들에게 질문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일본아이들은 우리 학교에서 공부하는 과목과 특별활동, 우리가 아는 일본가수가 있는지, 일본노래를 무엇을 아는지, 일본에는 와 본적이 있는지 등을 궁금해했다.
일본에 온 이후 우리는 또 새로운 경험을 할 기회를 맞았다. 키모노를 입고 일본 다도를 배우는 것이었다. 오래 전부터 키모노를 한번쯤 꼭 입어보고 싶었는데 그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내가 입은 키모노는 참 예뻤다. 그리고 한복과 입는 법이 너무나도 달라서 혼자서는 도저히 입을 수가 없었고, 옷 입는 과정도 정말 복잡했다. 무슨 옷이 그렇게 복잡한지 그래도 입고 나니 너무 예뻤다. 소매도 한복과 너무 달랐다. 한복은 유선형으로 이어진 반면 키모노는 끊어져 있었다. 우리는 키모노를 입고 다도를 배우기 위해 作法室(작법실)로 향했다. 우리 나라 같으면 예절실과 같은 곳이었다. 올 때는 가깝던 거리가 키모노를 입고 나기 왜 그리 멀게만 느껴지는 것인지..... 정말이지 키모노를 입고는 자유롭게 걸을 수가 없고 종종걸음을 쳐야 해서 똑같은 거리를 가도 시간이 더 많이 걸렸다. 우리 나라 한복이 훨~씬 편했고 전통 옷을 입고 달리기 시합을 하면 우리 나라가 우승을 따놓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작법 실에서 다도를 배우기 위해 꿇어앉았다.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갈수록 다리가 너무 아프고 벌서는 것 같았다. 솔직히 한국에서는 혼나고 벌설 때말고는 이렇게 앉지 않는 것이다. 일본차도 마셔가며 일본예절을 배웠다. 차를 마시는 예절을 우리 나라와 비슷했다. 나중에 마치고 나서 일어서는데 다리가 너무 아파서 모두들 일어나지를 못했는데 코나츠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했다. 다들 신기해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않아서 그런 것 같았다. 이런 게 문화 차이인가?
다도를 배운 후 우리는 다시 특별활동을 했는데 우리가 신청한 농구를 하기 위해 다시 체육관으로 갔다. 이미 많은 일본 학생들이 클럽활동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들어서자 신기한 듯 동작을 멈추고 처다 보았지만 우리와 섞여 같이 농구를 했다. 남자애들은 일본 남학생들과 함께 농구 연습을 하고 여자아이들은 개인적으로 자유투 연습을 했다. 나중에는 체육관 한쪽에서 서로의 주소와 메일을 주고받으며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곧 친해졌다. 역시 우정이라는 것은 국경을 넘고 언어를 초월하여 통하는 것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코나츠의 언니인 아이카와 언니의 친구인 사야카와 함께 일본 오락실로 향했다. 일본 오락실을 한국과 사뭇 달랐다. 한국과 같이 시끄러움 광경을 예상하고 갔던 나는 깜짝 놀랐다. 너무 조용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 나라에 많이 있는 펌프라든지 하는 것은 없었고 인형 뽑기가 가장 많이 보였다. 그리고 스티커 사진 찍는 곳도 많이 있었다. 나와 사야카언니 아이카언니 모두 스티커 사진을 찍었다. 한국의 스티커 사진기완 좀 달랐다. 한국에서는 배경이 모니터에 뜨는 반면 일본 것은 뒤에 천막처럼 있는 것을 넘겨 가며 골라야 했고 글씨도 원하는 색과 모양으로 써넣을 수 있었으며 많은 그림들을 넣을 수 있었다. 꼭 "신기한 한글나라" 같은 것을 보면 책에 그림을 컴퓨터와 연결된 펜으로 클릭 하면 그것이 화면에 뜨면서 읽어 주듯이 펜으로 책을 클릭 하면 그 모양이 화면에 떴다. 그리고 여러 가지 효과도 줄 수 있었다. 우리가 흔히 이미지 사진을 찍을 때 쓰는 하얗게 보이는 효과라든지 하는 것 말이다. 다음으로 일본서점으로 이동했다. 일본서점도 우리 나라와 꼭 같았다. 다만 만화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고나 할까. 일본사람들은 애니메이션 강국답게 만화책을 많이 보는 것 같았다. 집에도 만화책이 가득가득 쌓여 있고.....우리 나라 서점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었다. 그 날 저녁에는 모두 학교에 모여서 파티를 열었다. 학교에서는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을 많이 시켜 주셨고 우리는 간단한 자기소개와 사진을 찍고는 일본음식을 먹었다. 일본사람들은 차를 물 마시듯 마셨다. 아니 우리 나라 사람이 물을 마시듯 그 나라 사람들은 차를 마셨고 우리 나라에서 생수를 팔 듯이 그 나라에서는 차를 병에 넣어 팔았다. 역시나 식탁 위에서 차가 1.5L병에 든 채 놓여 있었다. 모두가 배가 부르게 먹고 나자 갑자기 노래방에 갈 것을 제안했고 우리는 즐거워하며 가기로 했다. 모두들 가라오케(일본 노래방)로 향하고 나는 옷을 갈아입으러(나는 학교 마치자마자 바로 언니들과 오락실에 갔으므로 교복을 입고 있었다.)집으로 갔다. 얼른 옷을 갈아입고는 코나츠와 아저씨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가라오케로 향했다. 그 곳이 좀 먼 듯 했지만 자전거를 타고 가니 금방 이었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타보는 자전거여서 그런지 더욱 신이 났다. 일본 가라오케는 한국과는 달리 밝았다. 한국에는 어두컴컴한 곳에서 오색조명이 돌아가고 밀폐된 지하가 대부분인데 비해서 일본은 높은 건물하나가 다 노래방이었고 밝으며 방이 컸다. 그리고 일본에는 시간에 따라 액수가 배로 늘고 늘어감에 따라 음료가 따로 나왔다. 한국에는 몇 시간을 부르든지 말든지 한시간에 얼마라고 정해 놓고 음료수도 따로 사먹어야 하는데 이런 것이 달랐다. 아..그리고 일본 노래방에는 레스토랑처럼 식사도 주문할 수가 있었고 종류도 많았다. 아이스크림이며 돈까스며 하이라이스등등.....정말 레스토랑 주문 표를 보는 듯 없는 게 없었다. 우리들은 오직 한국노래만 찾았는데 신곡은 없고 다 지나간 노래 였지만 정말 재미있게 놀았다. 그렇게 일본에서의 두 번째 밤이 지나갔다.
일본에서의 3일째 날 아침. 햇빛이 여전히 일찍부터 창을 비추는 것이 한국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었다. 오늘은 유니버설 스튜디오 오브 제팬(이하USJ)에 가기로 한날. 나는 정말 들떠 있었다. 일어나 보니 어제만 해도 도시락을 쌌던 아이카언니가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일본은 5일제 수업을 하고 있었고 정말 부러웠다. 우리 나라도 언제쯤이면 5일제 수업을 하게 될지..... 얼른 아침을 먹고 또다시 자전거를 이용해서 학교로 갔다. 학교에 가니 "아사히신문"을 주었는데 들여다보니 그 신문에 우리가 나와 있었다. 일본에서는 한일교류학생이라고 신문에 실려 있었는데 너무 기분이 좋았다. 한국신문에 나와 보지도 못했던 내가 유명한 일본 신문에 나오다니 너무 너무 기뻤다. 우리는 USJ에 가기 위해 기차를 타고 이동했다. USJ로 가는 전용기차가 따로 있었고 전용기차에는 캐릭터가 예쁘게 그려져 있었다. USJ에 도착하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크리스마스 장식이었다. 은은히 울려오는 캐럴과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며 아직은 이른 크리스마스가 당장 내일이라도 되는 듯 느껴졌다. USJ은 테마 파크로 놀이동산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스필버그 감독이 직접 와서 지도했다고 한다. 정말이지 도쿄 디즈니 랜드나 하우스텐보스도 마찬가지로 다른 나라의 것을 일본은 그대로 고스란히 자신들의 땅위에 옮겨 놓는 것에 감탄해 마지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꼭 놀이동산에 처음 놀러와 보는 아이 마냥 모든 것을 신기하게 쳐다보다. 내가 제일먼저 관람한 것은 "백 드래프트" 였다. 영화 속의 화재장면을 재현하는데 정말 뜨거워서 내가 실제로 화재 현장에 나와 있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그 다음으로는 "쥬라기공원 더 라이드"를 탔는데 기다리는데 정말로 사람이 많이 있었지만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우리 나라와는 달리 길을 구불구불 하게 만들어 중간에 음수 대라든지 이런 시설도 있었고 TV에서 그 놀이기구가 나오게된 영화(쥬라기공원에서는 쥬라기공원영화장면이나 공룡에 대해서 계속 보여 줬다.)를 보여 주었다. 이것은 에버랜드의 후름라이드와 비슷했다. 배를 타고 들어가면 영화에서 보던 쥬라기시대가 거의 완벽하게 재현되어 있었고 공룡도 움직이는데 진짜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에머티 랜딩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원정이와 승미도 만났다. 이 음식점은 뉴잉글랜드 지방을 재현한 곳이었다. 우리는 간 한하게 치킨세트를 먹고 죠스를 타러 이동했다. 죠스를 타는 곳 앞에는 커다란(거의 3m은 족히 넘어 보이는) 상어가 거꾸로 매달려 있었고 그 앞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해 놓은 것이었다. 상어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뒤 죠스를 타러간 나는 또 한번 놀랬다. 이번에는 사람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기다리는 곳을 박물관처럼 꾸며 놓은 것이었다. 우리 나라의 마냥 기다리는 것과는 정말 많은 차이가 났다. 일본에서는 이런 세세한 것까지도 신경을 써가며 만들고 있었던 것이었다. 죠스를 타는 동안에도 나는 너무나 똑같은 시설과 리얼한 동작에 감탄했다. 정말이지 말로 형언 할 수가 없었다. 우리 나라의 시시콜콜한 놀이기구와는 다른 타는 사람을 최대한 배려하고 생각하며 참여 할 수 있게 만든 나라가 바로 일본이었다. 거리로 나아가니 퍼레이드가 시작되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인도에 모여서 퍼레이드를 감상했다. 미이라, 슈렉, 베티, 스누피등등,,,내가 아는 많은 영화 주인공의 퍼레이드가 나와서 더욱 재미있었다. 마지막으로 "백 투더 퓨쳐"를 탔다. 백투더 퓨쳐는 우리가 오자마자 예약을 해 두어서 빨리 탈수 있었다. 일본은 무작정 기다리는 우리와 다르게 예약 제를 하고 있었다. 예약을 해두면 원하는 시간부터 1시간을 주는데 그사이에 오면 예약 전용 줄로 빠르게 들어 갈 수 있었다. 백 투더 퓨쳐는 우리 나라에도 있는 놀이기구 였다. 큰 화면을 보면서 의자가 움직이고 우리는 실제로 우리가 화면에 나오는 것처럼 떨어지기도 하고 빨리 달리기도 하는 느낌을 받는 놀이기구 말이다. 가까운 통도환타지아에도 있는....... 한때 그걸 무척 좋아해서 몇 번씩 타곤 했는데 일본에서 타니 또 느낌일 달랐다. 백 투더 퓨쳐를 타고나니 20분 정도가 남아서 거리 구경을 했다. 일본에는 구석구석에 놀이기구에 따른 인원수와 대기 시간, 현 위치부터의 거리를 보여주어 참 편리했고 쓰레기도 없어 깨끗했다. 그리고 정말이지 내가 옛날 미국거리를 돌아다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로 그 묘사가 철저했다. 4시에 모두 입구에서 모여 쇼핑을 할 팀과 퍼레이드를 볼 팀으로 나누었다. 나는 원정이와 승미, 두식이와 쇼핑을 갔다. 아저씨께서 일본 100엔 마트에 데려가 주셔서 한국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샀다. 일본이 우리 나라보다 환율이 높긴 해도 일본 것이 한국보다 싼 물건도 있었다. 선물을 사고 나서 우리는 일본 백화점과 번화가를 둘러보았다. 일본에는 거의 다 천장이 있어 비오는 날에도 편하게 쇼핑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져 있었다. 어디까지나 소비자들을 먼저 생각한 설계일 것이다. 우리는 오사카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사람의 인형 앞에서 사진도 찍었는데 이 인형을 일본잡지에서 본적도 있었고 나중에 보니 과자면 과자 액세서리면 액세서리에 이 아저씨인형이 없는데 가없었다. 쇼핑을 마치고 우리는 모두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다. 우리 나라와는 다르게 일본에는 일반버스도 시간제 운영이었다, 그래서 우리 나라처럼 무작정 기다리는 게 아니라 시간을 보고 버스가 그 정거장에 올 시간에(정거장마다 그 버스가 오는 시간이 적혀 있다.)맞춰서 나오면 되는 것이었다. 정말 편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나라도 어서 이런 방법을 도입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버스를 탈 때도 우리 나라는 타면서 돈을 내는 반면 일본에는 내리면서 돈을 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는 1정거장을 가는 종점까지 가든 아니면 버스를 타고 몇 바퀴를 돌든 간에 무조건 정해진 요금(초등학생은 170원 학생은400원등)만 내면 되는데 일본에서는 자기가 간만큼 돈을 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는 몇엔 그 다음부터 저기까지는 몇엔 이런 식으로 많이 갈수록 비쌌고 우리는 200엔을 내야 했다.
피곤했지만 정말 재미있는 하루였다. 집에 가자 아주머니께서 튀김을 해 주셨는데 우리 나라와 똑같았고 정말 맛있었다. 튀김도 없는 게 없을 만큼 종류가 다양했었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모두 종이 접기를 했다. 코나츠의 동생은 나에게 표창 접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나는 모두에게 장미 접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게임도 하면서 나의 마지막 일본에서의 밤은 지나갔다,
일요일 아침, 일본에 있던 날 중 가장 눈이 떠지지 않는 날이었다. 어제 일로 피곤하기도 했지만 오늘이 일본에서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계속 눈을 감고 있으면 그대로 일본에 내가 있는 듯 했고 눈을 뜨는 순간 나는 멀리 바다를 건너 한국으로 튕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일어나지지 않는 몸을 추스르며 거실로 가니 모두 어딜 가자고 했다. 알고 보니 아저씨는 매일 일요일 아침 봉사활동을 하고 계셨다. 나는 거기서 원정이와 승미를 만났고 모두 같이 아침을 먹었다. 그곳은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의 무료 급식소 같은 곳인 듯 했고 아저씨께서는 일을 도우셨다. 물론 우리는 돈을 내야 했지만 그 돈으로 다른 분들의 아침을 마련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뿌듯하고 좋았다. 간단한 토스트 빵과 차였지만 정말 맛있었고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았다. 집으로 와서 짐을 들고 다시 학교로 향하는 도중 폐품수거 차량을 봤다. 우리 나라의 주택단지와 같이 문 앞에 폐품을 내어놓으면 트럭이 지나가면서 하나하나 수거해 갔다. 학교에 도착한 우리는 송별회를 간단히 하고는 공항으로 향했다. 송별회를 하는 동안 두식이가 많이 섭섭했는지 눈물을 그칠 줄 모르더니 공항으로 가는 길에 아이들이 하나 둘 눈물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도 너무 아쉽고 섭섭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공항에서 헤어지는 동안까지 아주머니와 아저씨께서는 너무나 잘 해주셨고 내 짐도 다 들어 주셨다. 그리고 선물을 너무 많이 주셔서 일본에 갈 때 보다 집이 훨씬 많아져 버렸다. 정말 두 분께서는 내가 일본에 있는 동안 친 부모님이상으로 나에게 잘 해주셨고 내가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고 비싼 DVD도 대뜸 사주셨다. 특히 아저씨께서는 강경화 선생님이 "가장 열심히 한국어를 배우신분"이라고 하신 만큼 정말 한국어를 잘 하셨고 나에게 한국어를 가장 많이 배우시기도 했다. 또 내가 간다고 말이 통하지 않을 까봐 한국어로 된 책을 8권이나 사시고 또 선생님 책을 프린터 해서 보실 만큼 친절한 분이셨다. 정말 그분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아저씨 정말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을 다녀오면서 느낀 점도 참 많이 있다. 먼저 일본사람들의 검소한 생활태도와 공공질서, 높은 공공도덕 수준이다. 욕조에 받아놓은 물을 갈 때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물을 세탁기에 연결시켜 빨래에 이용한다거나 쓰레기 하나 없는 거리 그리고 공공장소에서는 조용한 사람들..... 그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습관이다. 일본에서는 건물을 하나 지어도 사용자를 생각해 가며 배려해서 짓는다는 점,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은 어떤 피해를 보지 않을까를 생각한다는 점을 배웠다. 그리고 일본 사람들의 "아리가또", "스미마셍"의 정신을 배웠다. 남의 발을 밟아도 서로 미안하다고 하는 마음, 조그마한 것에도 서로 고마워할 줄 아는 마음이다. 마지막으로 나의 시야가 많이 넓어 졌다는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 모든 것을 느낀 대로 나는 글로 쓰지마는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의 사고 과 나의 사고의 폭은 현저하게 다른 것임이 틀림없다. 가까이 있지마는 잘 알지 못하는 나라 일본, 나는 이 한일 교류를 계기로 이웃나라 일본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고 깨닫게 되었다. 앞으로도 많은 교류가 오고가서 많은 학생들이 시야를 넓히고 이웃나라에 대하 많은 것을 알고 좋은 것은 받아들였으면 하는 바람으로 펜을 놓는다.
첫댓글 길다...
넘흐 기러서 못읽어보겠다능.......아빡감~~~
허...............
=_= 길어도, 저는 다 읽었다는,, =_= 그만큼 기대가 커요 ㅠ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