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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계곡 삼화사
두타산 삼화사(三和寺)의 건립에 대해 3가지 설이 있는데, 그 중에 가장 오래된 하나가 신라 선덕여왕 11년(642년)에 자장율사가 건립하였고 후일 범일국사가 재건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 불타고 약사전만 남았는데 조선조 현종때 중건, 순종*고종때 두차례 재건축 했다. 삼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월정사의 말사로 보물 제122호 철조노사나좌불과 제1277호 삼층석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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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화사의 종무소가 있는 건물 무향각(無없을무,香향기향,閣누각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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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지신
십이신장(十二神將) 또는 십이신왕(十二神王)이라고도 한다.『약사경(藥師經)』을 외우는 불교인을 지키는 신장(神將)이다. 이들은 열두 방위(方位)에 맞추어서 호랑이·토끼·용·뱀·말·양·원숭이·닭·개·돼지·쥐·소 등의 얼굴 모습을 가지며 몸은 사람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도교(道敎)의 방위신앙에서 강한 영향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십이지신앙은 약사신앙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 선덕여왕 때 이미 밀본법사(密本法師)가 『약사경』을 읽어 병을 고쳤다는 기록이 나온다. 김유신(金庾信) 장군도 『약사경』을 호지(護持)하는 이인(異人)과 교분을 나누었다.
이 십이지신앙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전까지는 밀교의 영향으로 호국적 성격을 지녔으나, 삼국통일 이후는 단순한 방위신으로서 그 신격이 변모해 갔다. 즉, 탑을 만들 때 그 기단부에 십이지신상을 조각하였는데, 경주 원원사지(遠願寺址)에 있는 삼층석탑은 그 효시가 되고 있다. 조형예술로서 십이지신상이 나타나는 것은 이 원사탑이 건립된 8세기 중반 경덕왕 때의 일이다. 이것은 탑이 불교 건축에서 구심점으로 인식된 삼국통일 후의 일반적 경향에 따른 창출 물 이었다.
삼국통일 전에는 단순히 탑의 옥개(屋蓋)에 변화를 주는 것에 불과했지만, 경덕왕 이후에는 탑에 사천왕(四天王)·십이지신상 등을 부조(浮彫)하는 기법이 성행하였다.
이것은 능묘(陵墓)의 호석(護石)에도 영향을 주어 구릉형(丘陵形)의 무덤 밑부분을 원형으로 돌리고 각각 십이지신상을 안치한다. 대표적인 곳으로는 전김유신묘(傳金庾信墓)·전진덕여왕릉(傳眞德女王陵)·경덕왕릉·방형분(方形墳)·헌강왕릉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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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화사 앞의 무릉계곡을 건너는 반석교(盤소반반,石돌석,橋다리교)를 건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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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타산 삼화사 일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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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계곡
동해 무릉계곡(東海 武陵溪谷)는 강원도 동해시 두타산과 청옥산을 배경으로 호암소로 부터 시작하여 용추폭포가 있는 곳까지의 약 4km에 달하는 계곡이다. 2008년 2월 5일 대한민국의 명승 제37호로 지정되었다. 무릉계곡은 두타산과 청옥산을 배경으로 형성된 계곡으로 무릉반석에서부터 호암소, 선녀탕,
장군바위, 쌍폭포, 용추폭포 등 다양한 화강암 계곡의 하천지형이 스펙트럼처럼 펼쳐져 '동해안 제일의 산수'라 할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경관의 백미를 보여준다.
고려시대 동안거사 이승휴가 살면서 《제욍운기》를 저술하였고, 조선 전기 4대 명필가 중 하나인 봉래 양사언의 석각과 매월당 김시습을 비롯한 수많은 시인묵객들의 시가 1,500여평의 무릉반석에 새겨져 있는 등 역사적 가치가 큰 명소이다. 삼화사 입구의 금란정(金蘭亭)이라는 정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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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란정(金蘭亭)
대한제국 광무7년(1903) 당대 삼척지방 유림재생들은 향교 명륜당에 모여 현학을 강마(講磨)하고 동양 예의를 존숭(尊崇)하며 봄과 가을의 음상(吟觴)을 즐겨왔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향교가 폐강되었고 이를 분개한 유생들이 울분을 달래기 위해 금란계 라는 모임을 만들고 그 뜻을 기념하기 위해 정각을 건립하고자 하였으나 일본의 방해로 중단되었다. 그 후 당시 계원들은 선배 계원들의 뜻을 받들어 다시 정자를 건립하기로 하고 1947년 북평동 단봉 석경 등에 금란정을 건립하였다. 현재 금란정은 1958년 무릉계곡으로 이전하여 오늘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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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반석 암각서
무릉계곡 초입에 있는 무릉반석에 가로로 쓴 살아 움직이는 듯 힘이 있고 웅장한 글씨이다. 무릉선원(武陵仙源) 중대천석(中臺泉石) 두타동천(頭陀洞天) 이라는 암각서로, 그 아래에 옥호거사서신미(玉壺居士書辛未)라는 각서가 있는데, 신미년에 옥호거사가 썼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릉선원은 도교(신선)사상을, 중대천석은 불교 또는 유교사상을, 두타동천은 불교사상을 나타낸다고 한다. 이 글씨는 봉래 양사언이 강릉부사 재직(1571~1576)기간에 전임 정두형 부사의 부친상 관계로 신미년(1571)에 광천 [비천] 을 방문했을때 무릉계곡을 방문하여 썼다는 설이 있고 또 하나는 옥호자 정하언이 삼척부사 재직(1750~1752)기간 중인 신미년91751)에 무릉계곡을 방문해서 썼다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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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반석 암각서 모형
무릉반석의 암각서 중 백미라 하는 1571년에 옥호거사가 썼다는 초서체인 ‘무릉선원 중대천석 두타동천’이라는 암각서가 오랜 세파에 글자가 희미해져가고 있어 동해시에서 모형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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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계곡 상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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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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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또 한번 산행하고 갑니다.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산행흔적을 기록으로 남겨주시는 별하나님 존경합니다 ~ 오래오래 건강하게 즐거운 산행하세요~ 별하나님 최고의 산꾼 입니다~~
감사합니다. 건행하세요.
너무나 좋은산행 흔적
두타산 산행후기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