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문가 대통령이 경제를 살린다는 환상과 착각에서 깨어나자.
-경제를 파탄 낸 자는 경영인 출신 대통령이었고,
경제를 살린 자는 민주적 리더십의 정치인 대통령이었다.-
취임 4주년 기자회견상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실물 경제 좀 안다고, 경제 공부 좀 했다고 경제 잘하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미국 31대 대통령 후버는 성공한 기업가로서 찬사와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광산업과 토목업을 아우르는 다국적기업을 창업한 그는 뛰어난 경영능력으로 30대 후반에 무일푼에서 억만장자 반열에 올라서 미국인들의 영웅이 되었고 한편으로는 살아있는 전설로서 모두의 우상이었다.
후버는 31대 미국 대통령(1929-1933)으로 대공황의 단초를 제공한 대통령이었다. 후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유는 딱 하나 성공한 기업인으로서 모두의 우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미국 경제는 하향곡선을 그릴 때였지만 거의 모든 산업에서 미국은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었다. 미국경제를 더 발전시키려면 실물 경제에 해박한 성공한 경제인만이 할 수 있다고 국민들의 머리에 환상을 심어주었던 결과였다.
해박한 실물경제지식을 자부하면서 경제대통령을 자처했던 후버는 끝까지 자기 도그마에 빠져서, 미국경제 펀더멘털이 건전 하다고 주장하면서 현실경제 하향곡선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후버댐 건설 등” 토목공사와 건설경기에 치중하였다. 경기가 나빠지자 증시가 폭락하였고 국내 산업을 보호하면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잘못된 판단으로 관세율을 올린 결과 유럽으로부터 보복관세를 당하여 국내 경기 침체로 이어져 주가는 더욱 폭락하게 되었다.
단지 실물경제를 잘 안다는 아집과 독선으로, 디플레이션을 막을 수 있는 경제정책 실시타이밍을 놓치게 되었고 그 결과 그 유명한 경제대공황을 맞게 된 것이다. 약 1,300만의 실업자를 양산함으로서 미국인의 3할을 빈민촌으로 내몰리게 하였다. 이들이 살던 빈민촌을 후버 대통령의 이름을 따 후버빌(Hooverville)이라고 불렀다. 박스나 판자 등으로 비나 추위를 견딜 정도의 판자촌이었다. 후버빌 거주자들은 구걸이나 쓰레기를 뒤져가며 살아가는 대공황의 참담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였던 것이다. 그나마 빈민촌에서도 살지 못하고 노숙자 신세가 된 사람들은 담요 대신 신문지를 이불삼아 지내는 일도 허다했고, 사람들은 이불을 대신한 신문지를 후버 담요(Hoover blanket)라고 부르기도 했다.
스텐포드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초라한 기숙사를 후버빌(Hooverville)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대학 출신인 후버 대통령을 기념하는 기념관은 웅장하게 잘 지어진 데 비해, 자신들이 거주하는 기숙사의 초라함을 비꼬는 말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후버는 1929년 대통령 취임사에서 "빈곤에 대한 최후의 승리가 왔다"고 선언하면서 대통령으로서 첫 일성을 외치게 되는데 이 후버의 말은 후에 후버 정치철학의 빈곤을 나타내는 대표적 문장으로 후세에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그러나 그 당시 미국인들은 후버의 이 말이 국민을 속이고 기만하는 포퓰리즘성 발언이 될 줄도 모르고, 매우 환호했고 그의 경제적 경영능력을 철석같이 맹신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당시 미국에서 후버라는 이름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신화적 경제 상징적 인물이었다.
지금 우리가 이명박에게서 경제신화 허상에 잡혀있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왜 경제 대통령이라 큰소리쳤던 후버가 미국 역사상 가장 무능한 대통령이란 오명을 남기고 국민을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뜨렸을까?
그 이유는 다음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고 본다.
첫째, 기업경영과 국가경영은 패러다임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기업가는 오랫동안 개인의 영리를 도모해온 결과 경영 마인드가 사적측면의 이기주의적 성격이 강하고 따라서 공익과 국민봉사를 행해야하는 국가경영과는 사뭇 틀리다. 오히려 그 사적측면이 강한 통치자의 마인드가 사익과 국가이익(공익)이란 두 가지 상반된 카오스의 혼돈에 빠져서 잘못된 정책을 양산할 위험요소가 다분히 있다고 본다.
후버역시 1929년에 증시가 폭락하자 국내 산업을 보호해야겠다는 혼돈의 잘못된 정책으로 관세를 52%나 올렸다. 그러자 타국들도 긴축재정을 펴면서 경쟁적으로 관세를 올리게 되었고, 그 결과 무역교역국끼리 수출입 물량이 급작스럽게 줄어들게 되면서 1933년에는 파산되는 회사가 속출하고 주가는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 혼돈의 잘못된 정책이 결과적으로 디플레이션을 유발할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이 모든 것이 후버의 사기업-국가경영 혼돈에서 온 오판 때문이라고 본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기업경영과 국가경영 패러다임은 확연히 틀리고 사적부문에서 해왔던 사기업 경영 마인드가 그 통치자의 이기적 사고 때문에 오히려 국가경영에는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역으로 증명해 주는 것이다.
두 번째로, 기업가는 국가 통치자로서 필히 갖추어야할 조화와 소통의 기술은 기본적으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 버려야할 황제적 마인드는 내면에 그대로 간직한 채 겉으로만 극복한척 한다. 교조적 리더십으로 전문가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것은 다반사고 자신의 의견만을 강조하면서 타인의 의견은 철저히 무시하는 독단의 우에 빠져들기 쉽다. 또한 상명하복의 철저한 논리에 젖어있어서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철저히 부하에게 군림한다. 이의를 제기하거나 반대하는 자에게는 용서가 없다.
태생적으로 결코 반대자를 수용할 수 없는 사고와 논리로 긴 세월을 살아온 관계로 주위엔 아첨자와 능력자(엄격히 말하면 불의를 저지르더라도 기업이익만 많이 올리면 된다는 수단에 능한 자)들로만 가득 채워져 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제 밥줄 지키기 위해서, 출세와 돈과 명예(?)에 눈이 먼 이들 군상들은 기업가를 황제로 떠받들어 왔기 때문에, 기업가의 정신적 세계와 사고는 황제적 마인드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기업가는 황제적 마인드에서 도저히 벗어날 없는 구조적 시스템 속에서 모든 사물을 판단하고 결정한다. 평생을 오직 돈벌이에만 일념해서, 부의 창출에만 모든 가치를 둠으로서 어쩔 수 없이 형성되는 부작용적 측면의 한 단면이다.
근래에 이명박에게 수식어처럼 따라붙는 "황제적 마인드"란 말이 우연히 붙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겠다.
실물경제 박사 후버 대통령 역시 그러했다. 그는 자기 도그마에 빠져서 경제 불황을 극복할 타이밍을 놓쳤다. 당시 미국의 핵심적 경제 펀더멘탈은 건전 하다고 절대적으로 굳게 믿고 있었으므로 모든 경제전문가들의 경제위기 처방 충고를 받아들이지를 않았다. 오히려 그 시대의 경제신화 인물들인 포드와 록펠러까지 동원해서 자신의 도그마를 믿게끔 국민들에게 오도함으로서 국민들을 파탄의 길로 몰고 갔다. 이러한 현상은 황제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기업가 출신에게 국가를 맡겼을 때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현실적인 문제들인 것이다.
자신의 의견과 상충되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용하는 데 학습되어 있지 않은 비민주적 관습에 길들여져 있는 황제적 마인드를 가진 자를 국가 최고지도자를 선출했을 때 초래되는 해 악의 표본으로서, 민부강국의 발전을 위해서 우리는 역사적 교훈을 배우고 깨달아야한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될까봐 생각만 해도 끔직하다. 현명하고 지혜로운 우리국민들은 결코 이러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신한다.
결론적으로 후버는 자신의 통치하에 살았던 미국인들에게 그가 큰소리 쳤던 "경제적 풍요" 대신에 크나큰 "빈곤의 죄악"을 선사했고 후버는 역사상 가장 무능한 대통령으로 오점을 남겼다.
경제전문가가 아닌 정치인 대통령인 루우즈벨트가 3선에 걸쳐 대통령에 당선 되면서 뉴딜정책이란 수정자본주의 정책으로 대공황을 수습하기는 하였지만 후버로 인한 경제실패로 미국인들의 궁핍한 상황은 상당히 오래 지속되었다. 우리도 한 사람의 잘못된 국가 최고지도자로 인하여 IMF를 겪었고 그 후유증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이로니하게도 성공한 기업가 출신 대통령인 후버는 한마디로 미국 경제를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역대 최악의 대통령으로 미국인들에게 자리매김하고 있는 반면, 대공황에서 미국경제를 살린 대통령은 “경제의 경”자도 모르는 “루즈벨트 “대통령이었고 지금까지도 추앙과 존경을 받고 있다.
12여 년 전 하버드대 경제학박사 출신의 멕시코 대통령 살리나스는 머릿속 가득한 해박한 경제지식으로 나라경제를 거덜 내고선 미국으로 쫓겨 갔다.
멕시코를IMF 관리체제에 들어가게 한 대통령으로서 아직도 해결의 실마리가 요원한 치아파스주 농민·원주민 무장봉기사건을 유발시켰고, 재임시절의 부정부패 혐의 등으로 퇴임 뒤 사법당국의 조사를 받았으나 아무 처벌은 받지 않았다. 95년 3월 `자의반 타의반'으로 미국으로 도망갔다. 어제 뉴스에서 본 것 같다. 멕시코로 쓸쓸히 돌아왔다는.......
미국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던 살리나스 대통령은 자유로운 시장경쟁은 더 많은 고용, 더 많은 부의 창출로 멕시코의 선진국 진입을 강조하며 미국과 자유무역 협정 NAFTA를 체결했다. 일부 자국 경제학자들과 국민들 또한 살리나스의 주장에 동조했다. 시민단체들의 우려 섞인 목소리는 ‘대안 없는 비판’으로 치부됐다. 마치 오늘의 우리나라를 보는 것 같다. 미국과 FTA 협상에서 말이다. 그런데 12년 후 멕시코는 살리나스의 장밋빛 전망과는 정 반대로 판이한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다.
노 대통령은 또 “경제를 살린 대통령으론 정치인 출신도 있고, 영화배우 출신도 있다.”고도 했다. 사실 그렇다. 성공한 사업가 후버가 쑥대밭을 만들었던 미국 경제를 중흥시킨 인물은 ‘경제학의 경자’도 잘 모르던 루스벨트 대통령이었다. 이류 배우 출신의 대통령 레이건은 전임자 카터 시절 어렵던 미국 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90년대 초반 미국경제는 계속 쇠퇴의 길로 나아가고 있었고 일본이 미국 경제를 추월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지적이 많았다. 이때 미국 경제를 살린 사람은 “경제의 경”자도 모른 2류 영화배우 출신 “레이건” 대통령이었다.
레이건의 성공 비결은 단순하였다. 말이라는 언어매체를 통해 국민과 마음을 함께 나누는 기술이었다. 대통령이 된 다음 그는 말을 통해 자신을 대통령에 당선시켰던 국민 숫자보다 더 많은 국민을 자신의 정치 목표를 지지하는 쪽으로 돌려놓았다. 연설 횟수가 늘면 지지자도 함께 늘어났다.
레이건의 말은 늘 쉽고 따뜻했다. 경제를 이야기할 때도 일반 국민이 일상생활에서 쓰는 물가나 세금이란 간단한 단어로 쉽게 말했지 골치 아픈 경제 용어는 사용하지 않았다. 언제나 누구나 이해하게 쉽게 말함으로서 모든 국민이 경제회복 운동에 동참하도록 국민들을 이끌었다. 이러한 연유로 레이건에게 ‘위대한 전달자(Great Communicator)’라는 영예스러운 호칭도 주어졌다.
정치는 전달과 소통(疏通)의 고리로서 조화의 기술이다. 레이건은 여기에 능통하였기에 대통령으로도 성공할 수 있었고, 미국 역사상 위대한 대통령 설문조사에서 “링컨대통령”과 1,2위를 다투는 대통령으로서 지금까지도 사랑과 추앙을 받고 있다.
-- 감세정책으로 인한 국가사회복지비의 축소로 미국사회를 양극화시키고 사회양극화경제인 신자유화라는 괴물을 전 세계로 침투시킨 원조대통령인 레이건을 훌륭한 대통령이라고 하는 데는 결코 찬성할 수 없다.--
레이건을 오래 보좌했던 한 측근은 레이건 8년을 이렇게 요약했다. “레이건은 자기보다 우수한 사람들로 자기를 둘러싸게 하였고, 그들에게 신뢰로서 일을 맡기고선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게끔 동력을 불어넣었다. 최종 결정은 자신이 내리고, 그 성패의 책임 역시 자신이 졌다.”
레이건은 경제에 대하여 문외한이었지만 자기를 낮추고, 본인의 통치철학과 맞는 경제전문가를 등용하고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힘을 실어주었다. 또한 단 한 번도 국민의 일부를 적으로 몰아세우지 않고 모든 국민을 자기편으로 만들어 화합의 정치를 폈다. 레이건의 이러한 리더십은 2000년 전 중국을 통일한 한고조 유방의 리더십과 같다.
오래되지 않은, 얼마 전의 일로서 이탈리아의 미디어와 부동산 재벌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실각과, 쿠데타로 쫓겨난 태국의 총리 탁신 치나왓도 재벌 총수로서 전문경영인이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재직 중 권력 남용과 부정부패와 뇌물수수, 회계부정, 세금 포탈 등의 혐의를 받았다. 이 모든 혐의들은 자신의 사업들과 연관된 것이었다. 사실상,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정계에 진출한 것은 자신의 미디어 제국을 구하기 위해서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이탈리아 최대 민간 방송국을 소유하고 있는 것 이외에도, 부동산과 보험, 출판 회사들의 대주주이고, 막대한 재산을 치부했다.
CEO 총리'로 탄탄대로를 걷던 탁신 치나왓의 몰락을 가져온 것은 그의 일가의 회사주식을 싱가포르 국영기업체에 19억 달러에 팔아 엄청난 이익을 챙기고서도 세금은 한 푼도 내지 않아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사임 위기에 내몰린 탁신은 조기총선 카드로 이를 돌파하려했지만 이미 돌아선 국민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는 '피플파워'에 굴복, 사임을 발표했다. 하지만 정작 사퇴는 하지 않고서 미그적미그적 거리면서 악화된 여론이 진정되기를 기다리다가 한 달 반 만에 총리직에 복귀했으나 빗발치는 여론의 악화는 군부쿠데타를 불러왔고 해외에서 떠도는 처지가 됐다.
경제인의 한계점은 모든 관점을 눈앞의 이익창출에만 최상의 목표점을 두다보니까 과정은 어떻든 간에 결과만 좋으면 된다. 다시 말하면 ‘이익창출은 선이요 이익불출은 악’이라는 이분법이 머리와 가슴에 고정관념으로 꽉 차 있다. 그 결과 부정부패와 권력의 남용이 필연적으로 동반하게 된다. 이러한 관계로 재벌 총수나 전문경제인이 국가 최고지도자로 성공한 예는 거의 볼 수 없다.
위에서 열거한 바처럼 경제를 잘 아는 “경제전문가”만이 대한민국의 경제를 살릴 것이라는 생각은 환상이요 엄청난 착각이다. 우리는 하루 빨리 이런 환상과 착각에서 깨어나야 한다.
어설프게 경제를 조금 안다고 경제를 살릴 수 있는 경제전문가라고 자기를 내세우는 최고 지도자는 오히려 독선과 아집으로 대한민국 경제를 망칠 수 있다. 오히려 항상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면서 자기의 통치철학과 맞는 최고의 경제전문가를 등용하여 이들이 일을 잘할 수 있게 만들어 줄 수 있고 보편적 가치로서 국민과 항상 소통하고 조화로서 국민을 화합시켜 경제를 살리겠다는 겸손한 생각과 자세를 가진 조절능력이 뛰어난 통합의 지도자만이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본다. 마치 경제의 경자도 모른 “루즈벨트나 레이건 대통령”이 미국 경제를 살린 것처럼 말이다.
[경제 장관]은 있어도
[경제 대통령]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세계 어느 나라에 경제 대통령이 있었던가??????
운하건설이 경제정책이냐?
산업 인프라 구축사업이지.
아니지 아니지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를 망치는 망치사업이지.
육로가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자원을 낭비하고
국토를 망치고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파괴사업이지.
청계천 복원사업은 거시 경제정책이 아니다.
단지 서울시가지를 아름답고 쾌적하게 꾸미는 도시 미화사업일 뿐이다.
2007.03.16 새벽에
첫댓글 우울혀;;
이명박이 가장 걱정스러운 것 중 하나가 한미 FTA에 찬성한다는게 걸립니다.(비록 대선에서 투표는 안했지만 총선만큼은 반드시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