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9일 친척 결혼식에 갑자기 참석하게 되어 군산에 번개를 타고 다녀오게 되었다. 결혼식 후 서울로 돌아오려니 이성당 생각이 떠 오른다. 년초, 우리회사 직원이 자칭 팥빵 메니어라는데 자기가 팥빵을 찾으면 요즘 젊은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며 쑥덕거린다고… 한참 자랑을 하기에 이성당을 아냐고 물었더니 금시초문이란다. 그래서 이성당을 모르고 무슨 팥빵이니 앙꼬빵을 논 할 수 있느냐고 핀잔을 주며 다음에 군산가면 사 올 테니 한번 먹어나 보고 말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 구정휴일 때 군산에 갔으나 설날은 문을 닫고 있었다. 또, 상가 조문 차 내려갔으나 새벽에 올라오는 바람에 실패. 5월9일 오후 3시에 결혼식장에서 이성당으로 차를 몰았고 마침내 팥빵고지 진입(?)에 성공하였다.
오랜만에 가 보니 매장 배치가 변한 것 같고 엄청난(?) 종류의 제과 중에서 종업원에게 물어서야 팥빵의 위치를 발견하였다. 그 아주머니 “팥빵이 그 옛날 앙꼬빵이에요” 그러나 “앙금빵”이라고 명명되어 있었다.
들뜬 마음으로 앙금빵 몇 봉지 사고 휴대폰으로 매장의 사진을 찍으려하니 사람들이 많고 선그라스 낀 젊은 사람이 자꾸 쳐다보는 것 같아 남 모르게 탐스러운 앙금빵만 찍고 나왔다.
이성당 앙금빵은 여느 제과점의 그것과는 달리 무게가 제법 나가고 달지않은 풍부한 앙금이 입을 즐겁게 한다. 다다음날 출근하여 이를 직원에게 전하니 매우 고마워하였다. 그러나 그 다음날 표정이 어제의 그 정도가 아니다. 얼굴에 감탄과 환희(?)가 가득하였다. “진짜 맛 있던데요” 휴대폰으로 찍은 빵과 이성당 전경을 보여주고 잠시 역사 강의를 하였다.
이성당이 위치한 중앙로통은 대체로 한산한 편인 것 같은데 그 안은 많이 북적인다. 그 많은 메뉴를 어떻게 취급하는지도 의아스럽다. 매장을 보니 셀러드, 샌드위치 등 간단한 음식도 다양하다. 찍은 사진을 보니 명조체의 “이성당” 왼쪽에는 불어로 “Patisserie Boulangerie”, 오른쪽엔 “Salad Sandwich”라고 쓰여있다. 우리야 가운데의 이성당 오리지널 메뉴가 가장 좋으나 젊은 고객들이 즐기는 서구식 메뉴를 추가하여 전통과 진화를 함께 추구하는 것이라고 나름대로 해석하였다. 간판의 가장 오른쪽에 “신경내과”라는 이층 병원의 간판이 구분없이 걸려있는데 이는 이성당에서 많이 먹고 탈나도 걱정 말라는 철저한 고객서비스정신의 발로가 아닌지 모르겠다..
언젠가 군산에 들렸을 때 군산초등교 옆에 맥도널드 간판이 오르는 것을 보고 조성룡사장에게 물은 적이 있다. 많은 아이들이 선호하는 맥도널드가 건너편에 들어오는데 무슨 대책이 있느냐고, 그런데 아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답이었다. 오히려 맥도널드가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다.
역시 맥도널드는 곧 철수하고 말았다. 변함없는 메뉴로 경쟁하는 것과 고객의 취향에 맞추고 또 다시 고객을 리드해가는 이성당과의 경쟁은 애초부터 무리였었던 것 같다.
그는 고객들을 계속 사로잡기 위해 1년에 한번씩은 내부의 구조나 인테리어에 변화를 주는 투자를 게을리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대두식품의 경영만으로도 바쁜 그가 보이지 않는 근성으로 군산의 이성당을 우리나라 명소로 만들었다는 것을 오늘 밤 인터넷을 검색해 보고 알게 되었음은 내가 너무 무감각한 것일까?
구글에서 혹시나하고 이성당을 검색해보았는데 많은 방문객들의 찬사가 등록되어 있고 방문기사도 제법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이다. 야채빵이 엄청 맛있다. 가격이 착하다. P제과점(아마 파리크로아상?)이 군산에 못 들어온다. 등등…
우리 집 부모, 형제식구들은 명절이나 집안행사 시 군산에 모여 외식을 할 때면 누가 주장할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이성당행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내 큰 형은 가끔 앙꼬빵을 주문하여 친구들을 꼬드기는데 이성당빵이 있다면 부천이고 성남이고 원거리의 친구들도 냉큼 달려온다는데 나보고도 써 먹으라고(?) 알려주신다.
언젠가 큰 형은 소 시절에 이성당 알사탕을 가끔 슬쩍하여 먹었다는 것을 실토한 적이 있다. 그 것도 조사장 앞에서…, 그 당시는 정전이 자주되던 시절이어서 시청 앞 화단뒤에 엎드려있다가 정전이 되면 쏜살같이 건너가 사탕을 쥐고 시민병원쪽으로 도망가곤 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 같으면 손도 작아서 한 두개가 고작이었을 것이나 그 덕분으로 달리기 잘하고 만능 스포츠맨이 되지 않았나 싶다.
이성당은 친구들의 모임이나 특히 학창시절 남녀간 첫 만남의 장소로도 자주 이용되던 곳이다. 꿀단지의 달큰함으로 긴장을 풀려하면 꼭 한두명 얼굴아는 친구들이 들어와 들키고 마는, 그래서 또 화제를 이어가는 추억이 있는 곳이다.
이성당하면 군산사람들은 조화당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매장에 생기가 없어지더니 근래(한 십년 되나?)에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다. 이성당이 진한 맛이라면 조화당은 산뜻한 맛이고, 이성당이 동양적이라면 조화당은 서구적 맛을 특징으로 한 것으로 기억된다.
이성당의 아이스케끼가 단팥이 주재료였다면 조화당은 밀크케이끼고, 진한 맛의 꿀단지며 팥고물이 그득한 팥빙수가 이성당이면 소프트 아이스크림이나 쥬스 같은 것이 조화당의 분위기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초등학교 당시 여름방학 때면 가끔 아이스케끼통을 메고 나타나는 선수들이 있는데 황금당, 이성당, 조화당, 평화당 등에서 뭐니 해도 이성당통을 메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었다. 한번은 작은형이 이성당 케끼통을 메고 와서 우리끼리 실컷 먹고 얼얼한 입을 벌리고 누워 한없는 행복에 젖었던 적이 있었다. 당연히 돈은 왕창 까먹었지만 그렇게 싼값으로 먹었다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많이 사려면 역시 도매값으로 흥정해야 한다라는 경제 개념도 가르쳤으니 이성당은 우리 형제만이 아니라 군산의 어린이들에게 맛의 즐거움과 경제이론까지 제공한 셈이다.
작년에 작은 형수가 카자흐스탄에 있는 형에게 간다고 이성당빵을 10여만원 어치 택배주문하여 - 서울 토박이가 어떻게 그런발상을 했는지는 모르나 군산 시댁식구들 영향은 많이 받은 것 같다. 빵은 형회사 직원들을 위해 샀다한다. - 비행기에 올랐는데 공항세관에서 통관이 어려워 애를 먹었다고 한다. 결국, 빵 꾸러미를 회사에서 힘있는 사람에게 청탁을 하여 통관시켰다니 아마도 세관 부정사건 중 빵은 처음이 아닐까 싶다. 이성당빵의 귀중함을 국제적으로 알린 셈이다.
이렇듯 고향 군산은 우리에게 소중한 어린 시절을 주었고 이성당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맛과 행복과 추억을 주고 있다. 자랑스러운 군산의 명품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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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북한 앙금빵. 단일 품목이 이렇게 수북한 곳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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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당 전경 - 나와서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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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1.daumcdn.net/cfile/cafe/203B0C0E4A12EC9403)
차안에서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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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편 빨간 옛 시청건물은 무슨 고객서비스센터로 변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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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자리에 놓인 빵봉지들
![](https://t1.daumcdn.net/cfile/cafe/1552550F4A12EDA609)
집에서 다시 확실하게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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