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紅葉題詩= 홍엽제시(붉을 홍/잎 엽/적을 제/시 시) |
붉은 잎사귀에 시를 적다
당(唐)나라 말기 희종(僖宗) 때 우우(于祐)라는 선비가 있었다. 어느 날 궁궐 담장 밖을 지나가다 황실 궁궐 배수로 겸 개천인 어구(御溝)에서 붉은 낙엽이 하나 떠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 잎사귀에 얼룩 같은 것이 비쳐 집어보니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개울물은 무에 그리 급하게 흐르는가(流水何太急)/깊은 구중궁궐 종일 한가한 날(深宮盡日閑)/부지런한 붉은 잎사귀에 마음 띄우니(殷勤謝紅葉)/고이 흘러 좋은 이에게 도달하기를(好去到人間)"
이를 본 우우는 그 낙엽의 시구(詩句)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필시 궁중에서 아름다운 궁녀가 써서 띄워 보낸 것이 틀림없으리라 생각하고 시 한 편을 쓴 뒤 어구 상류에서 흘려 보냈다. 궁궐에서 붉은 낙엽에 시를 적어 보낸 이는 한씨(韓氏)라는 궁녀였다. 우우가 띄워 보낸 시 역시 한씨에게 들어갔다. 한씨는 이를 깊이 간직했다.
후에 황제가 궁녀 3000명을 내보내자 우우는 한씨를 만나 결혼했다. 혼인을 한 후 각자 붉은 잎사귀를 내보였다. 송(宋) 유부(劉斧)의 '청쇄고의' 유홍기(流紅記)에 나오는 이야기다. 여기에서 홍엽제시(紅葉題詩)라는 말이 나왔다. 오대(五代) 송(宋)나라 손광헌(孫光憲)의 '북언쇄언' 권9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전한다.
당 현종 때는 모든 총애가 양귀비(楊貴妃)에게 쏠리니 많은 궁인(宮人)들이 신세를 한탄하며 붉은 잎사귀에 글을 써서 흘려보내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고 한다. 노악(盧渥)이 과거에 응시하러 가서 어구를 지나다 우연히 시가 적힌 홍엽을 보았다. 이를 주워 상자 속에 깊이 간직했다. 당 선종(宣宗) 때 궁녀들을 집으로 돌려보내자 노악은 궁녀를 아내로 맞이했다. 신혼 밤에 궁녀가 상자 속에서 옛날에 시를 썼던 붉은 잎사귀를 발견했는데 원래 그녀가 궁에서 지은 시였다. 두 사람은 시를 지어 홍엽이 중매를 해준 것을 감사했다. 여기에서 홍엽연인(紅葉聯姻)이라는 말이 나왔다.당(唐) 범터(范攄)의 '운계우의'(雲溪友議)권10에 나온다. 이 역시 홍엽제시와 같은 말이다. 홍엽제시는 붉은 잎사귀에 시를 적다는 뜻으로 인연이 묘하게 맺어진 것, 하늘이 맺어준 연분, 천생연분을 뜻한다. 어구제엽(御溝題葉) 또는 어구유협(御溝流葉)이라고도 한다.
청년 남녀가 만나서 결혼에 성공하는 것을 보면 인연이란 참 묘한 것임을 알게 된다. 세상에 태어나서 부부로 맺어지는 것은 참으로 특별한 인연일 게다. 올 가을에 혼인하는 모든 이들은 이 인연을 소중히 여겨 해로(偕老)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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