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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다운 무속인들의 모임(신내림굿 신병 빙의 치료 천도 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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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스크랩 임정일/아내 그리고 여자 전편
마산덕구1 추천 1 조회 726 17.10.02 19:30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아내 그리고 여자





현실에서 달아나고 싶은 날
아내의 고무장갑은 푸른색이거나 초록색이었다.
그럴 때 나는, 아내가 머리모양을 달리 하거나
유난히 잘 어울리는 옷을 입었을 때처럼 불안하다.
쏴쏴쏴, 수돗물소리 거칠고 발자국 소리 쿵쾅거릴 때
술잔 기울이다 분위기에 휩쓸려 오입질하고 오던날
현관문을 여는 아내의 낡은 스웨터처럼 안쓰럽다.
구멍난 양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신고 TV 리모컨을
돌리는 아내에게서 나는 쉰 김치냄새에는 약수터를
오르며 스친 비구니의 웃음같은 향기가 뭍어있다.
메마른 가시 같은 여자
볼품없이 드러난 가슴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여자
그러나 품안에 안으면
군불 덥혀진 아랫목 같이 따뜻하고 아늑해서
금방이라도 평온한 잠속을 빠져들게 하는 여자
아내의 젖가슴이 비릿해질 무렵 잦아든 수돗물 소리 들린다.
실로 옭아맨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쌕쌕 숨소리 어깨 들먹이도록 집어 삼키는
주방 빨래 집게에서
파란 고무장갑 초록 고무장갑이 들숨 날숨으로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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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지처에게 선물하기




챙 넓은 모자를 쓰고
꼬리 살랑살랑 흔들며
입 모양은 최대한 섹시 하게

봄 여름 반바지에
가을 겨울은 추리닝
화장은 잔칫날 덕지덕지

그래, 맞소
머리는 짐승이요
가슴은 뜨끈하오

지갑 안쪽 넣어둔 비상금
"너 오늘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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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




큰맘먹고 화장품 사다 주던 날
숨겨 논 애인이 화장품 아가씨냐며
시큰둥 한 얼굴로
내 뜨신 마음 냉장고 속에 넣는 여자

돈 좀 많이 벌어 오라고
바가지 긁다가도
풀죽어 있는 내 모습 안쓰러워
콩나물국 뜨끈하게 끓여 아침상 차리는 여자

둘이 같이 걷다
마주 오는 젊은 여자 곁눈질에
매몰 차게 째려 보는 눈이
도다리 같아서
잘근 잘근 씹어 주고싶은 여자

누이 같아서
엄마 같아서
함부로 쏟아 놓은 말에
상처의 웅덩이 깊어도
언제나 두레박엔 거친 것 가라앉힌
맑은 샘물 퍼 올리는 순하디 순한 여자


여자 팔자
뒤웅박이라는 데
그 여자 지지리 복도 없다.

배필이라는 것이
태어나기 전 이미
하늘의 연으로 짝 지워진 것이라면
전생에 업보가 태산 같았을 여자

그 여자
이번 생 나 만나 하 고단하였으니
다음 생은 좋은 인연 만날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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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


구두끈을 묶는다 힘껏, 너덜 하게 풀어지는 내 삶의 모양새처럼 기어코 풀어지고야말 구두끈을 묶으며 코앞에 닥쳐온 처조카의 결혼을 생각한다 구로공단 건널목 모퉁이 S기업 부도난 정리물품 차량에서 허연 침밥 마르도록 떠들어대는 사내의 목청이 달콤하게 젖은 오수를 흔들어 깨운 때문만은 아니다 가쁜 호흡을 견디지 못하고 풀려버린 구두끈, 열려버린 항문으로 쉬임 없이 삐질 대는 묽은 변, 억척쇠골에도 가족만을 생각했다 사시사철 없이 슬리퍼 짝을 벗을 줄 모르는 아내와 유명상표 없이 구겨신은 아들의 운동화 뒤축 새까만 기름때, 절둑이는 하루 하루의 고단한 노고에도 좀체 내어 줄 수 없었던 휴식, 초겨울 햇볕이 초췌하게 얼굴을 디밀고 있는 길모퉁이에 낡은 점퍼 차림의 우악스런 손들이 유명메이커라는 상표를 찬찬히 살펴보고 있는 중이다. 눈물로 내놓았다는 s기업의 수출품들, 마누라 벙긋한 웃음 잡아줄 빨간 삐닥구두와 부유층 아이들이 즐겨 신는다는 운동화 이제는 편안히 그의 생을 보살펴줄 새 구두끈이 묶여 있는 검정구두, 앞가슴 살 같은 수표 뒷면에 이름을 적는다 착한 일 하는 어린애 마냥 가슴이 뛰고 있다 퇫퇫 두어 방울 침을 뱉어 점퍼 옷소매로 쓱쓱 문지른다 착한 아내는 검은 분가루 치덕 뿌려 아침마다 나의 구두를 반짝이게 해줄 것이다 처조카의 드레스가 스치지 않도록 조심스레 걷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겠다 다시 새구두끈 바짝 조여 매고 신나게 악세레다를 밟겠지 아니다 구두끈이 느슨하게 풀릴 때마다 내 마음의 통로도 그렇게 풀어 두어야겠다 내 삶의 곳곳 마른곳 질은곳 험하고 힘든곳을 동행해 주었던 낡고 헐은 구두, 자숫물 찌꺼기 질척한 쓰레기 봉투에 아내가 두 손 탁탁 털어 처박지 않도록 단단히 일러두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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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같은 하루






출근 없는 내일은 혀끝을 아리게 하는
값싼 담배의 쓴맛으로 냉골의 아랫목을 파고든다.
찢긴 이력서 위로
노오란 타액, 끝까지 피워진 담배꽁초들
개 같은 하루가 가고
개 같을 하루가 오고
쓴맛조차 날려버린 재탕 되는 하루 하루의 역사
다시 쓰마
이력서 위에 늘어놓는 글자의 배열이 흐트러진다.
이제는 이미 쓰지 않는 낡은 수법의 문자들
혀끝으로 말아 올리는 니코틴의 독성으로 파괴되는
차디찬 열정의 늪
혈맥을 통과하지 못하는 동맥경화의 날을 앓는다.
곤두선 삶의 자맥질을 서서히 멈추고
써 내려가지 않은 이력서에 구겨버린 개 같은 날의 하루
사냥에 서툰 짐승처럼 어슬렁거리는 도시의 쪽방
냉골 낀 아랫목에 들어앉은 아내의 분첩 만한 달빛에
그리운 살 냄새
아내의 입술처럼 짙게 빨아본 담배꽁초에 쿨럭 이는 밤
출근하지 않는 내일의 여명이 달빛을 지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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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시계




그것은 아버지의 심장이다
쩡쩡 강심을 울리며 숨 쉬고 있는
삐뚤어진 틀니에 박혀있는
소실한 자존심보다 자랑스러운 자화상이다

노동의 힘보다 풍류를 즐겼던 아버지에게
분칠한 계집을 기다렸을 중요한 도구였으리라
그것은
추종자를 은닉한 권모술수의 웃음
나누어 마신 술잔의 객기였으리라

아니 그것은
금장 벗겨진 아버지의 세월을 끌고 가고 있는
마지막 완력이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잠 든 머리맡
고요한 심장을 일깨우듯
철컥 이며 시간을 넘기는 소리
힘에 겨운 아침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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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반달




아픔도 없다.

칼날은 뭉뚝한 새끼손가락 끝을
사정없이 지나다 멈췄다.

원단 쪼가리로 싸맨 손가락은
쉼없이 쏟아져 나오는 붉은 피로
흥건하다.

발은 병원을 향해 걸어 가는데
나는 집으로 달려간다.

선물을 기다리며 생일상 미루고 있을
아들놈 얼굴이
반쯤 잘려나간 달빛에
어른거리다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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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다.






버스를 탄다.
천원짜리 한 장을 박스 안에 넣자
총알이 장전되는 소리를 내며 잔돈을 토해 낸다.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내려야할 곳을 알려주는 여자의
기계성 멘트가 흘러 나오면 벨을 누르고
세상 밖으로 통하는 출구에 서서
내릴 준비만 하면 되는 것이다.
길 양편에 늘어선 건물 수 만큼 부자들이 사는 천국
옆으로 달리는 고급 승용차의 번호를 합쳐
짓고땡을 한다.
지금은 힘들게 달려온 다리에게 쉬는 시간과
미안한 마음이면 충분하다.
아직 목적지는 멀고 잠이 온다.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이 풀리는데
힘든 하루를 잠시 내려 놓고 앉아있는 사람들의 표정엔
미동도 없다.
네온이 열사 하는 도심의 불빛을 질주하며
토해내는 거칠은 함성이
내 눌린 심장의 포효처럼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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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친 날




마수라도 하고 나서
국시 한 그릇을 먹으려고 했다.
야무진 꿈 무너지고
뱃속엔 허기진 물소리만 고였다.
양떼구름은 어디로 가는 걸까
하릴없이 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넘어가지 않는 자판기 커피
붓듯이 넘기며 들여다 본
시집의 글자가 회충처럼 꾸물 거린다.
양떼구름 서녘 하늘을 물들이고
뛰어든 바다에 노을이 붉다.
집에는 가야 하는데
집에는 가야 하는데
노을보다 붉은 마누라 웃음에
천둥 한번 되게 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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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옆 인형가게




느릿한 걸음으로
골 깊은 주름살의 여자가
백화점 옆 골목길을 들어선다.

아직은 달이 부끄러워
숨어 있는 초저녁
고향집으로 못가는 인형들이
진열장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

은밀한 수작은
골 깊은 주름살의 여자로부터 시작되고
인형들의 춤은
굽 높은 신발이 아슬하다.

외눈박이 가로등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졸다가
후드둑 떨어지는 빗방울에
불빛을 씻는다.

유리문 너머 포장 마차
화덕 위 꼼장어는 익어 가는데
아직 팔리지 않은 인형들은
밤이 더 깊어가야 팔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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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환영





흰 쌀 알갱이같은 눈이
백지수표같은 눈이
징 하게 내리는 밤
산들은 모두 눈을 가렸다.

솥 단지에 물을 부어
수셋물을 준비하고
참나무 장작 쑤셔 넣어 여물을 쑤어낸다.
대문이 열리기 전
광에서 꺼내온 여문 싸리 빗자루로
쌀 알갱이를 쓸어
죽은 듯 엎디어 있는 백지수표를
쓸어 포대 자루에 담는다.
아무 일도 없던 듯이
아무도 못 본 듯이
송아지 문우 드리는 아침

문득
세수 대야에 넣은 하늘이 온통 하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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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패



내리 삼 년 병치레에
늘그막 자존심 파시던 날
대문 옆 걸린 문패
도려낸 가슴에 품으시며

너 못 줘 미안하다

아들 첫 집 장만에
도움 못 줘 쓰려 하시더니
신문지에 돌돌 말아
불쑥 내미신 문패 하나

아비는 집도 없다.

그 날
내 이름 석 자 위로
밤새 비가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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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듬을 털면서






1.

펼쳐논 신문지 위에
눈이 소복 쌓인다.
덕지 앉은 머릿속을
손톱으로 긁어내면
허옇게 가루가 되어
내려 앉는 너
털고 또 털어 가볍자 하나
이밤 지나면 새롭게 돋아 올라
또 다른 무게로
짓누를 너


2.

나무는 잎새를 떨구고
나는 비듬을 턴다.
내 삶의 하루가 입자로 부서져
신문지위에 쌓이고
내 생의 날들이
날마다 죽어 가고 있다.

3.

하수구에
소복한 너를 버리고 긴 잠에 든다.
멈춰진 시간에도
새롭게 돋아 올라 있을 너,
무겁게 살기 두려워
오늘도 나는
삶의 가장자리에서 서성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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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한낱 고양이의 밥이 될까
파헤쳐진 심장의 갈퀴
너절한 내장에 기생하는
수많은 목숨의 파리떼 같이
도심의 깨어진 보도블럭사이
축축이 기어드는 육신의 찌거기

까마귀도 울지 않는밤
꽃상여가 온다
꽃상여가 온다
퀭한 살쾡이 눈빛 어슬렁 거리는
회색 도심의 깊은 골짜기를
곡도 없이
영혼이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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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눕지마라
하나 되는 시간

정오의 태양이
초라하게
나를 누른다.

복종하듯
낮게 엎디어
무릎 꿇는 너는

해체할수 없는
또하나의 나

네가 땅에 자복하고 누울때
그러나 나는

세상을 한번
이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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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설






허기를 면하려
천원에 6개 하는 만두를 먹은 날
변기통 깔고 앉아 밤을 보냈다
토막토막 잘려나가는 창자를 끌어안은
밤의 고통은 길고
여의도를 건너는 원효대교 다리 위
휘황한 불빛들이 강물에 젖었다

어둠을 수뢰한 도시의 침묵
불면한 대지의 열기가 하루를 토해 놓는 시간
둥지를 뛰쳐나온 어린 새들이
굉음을 울리며 아스팔트에 곤두박질치고 있을 때
비대한 창자의 검은 탯줄을 가르는 백정들의 빠른 손놀림에
아침이 오기전 강물 위로 안개가 피어 올랐다

먹성 좋은 불가살이의 밥통은
흔적없이 모든 것들을 소화하고 비대해져 가는데
만두 6개가 전부인 가난한 밥통은
침묵하기를 강요하는 도시의 빈 둥지에서
먹이를 주우러 휑한 몰골의 아침이 일어선다.


ㅡ 2003년 겨울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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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그리고 혼돈






마른뼈 앙상하게 드러내는 십일월의 숲
비와 바람이 아귀다툼으로 마흔의 늪을 건너온다.
구두 뒷축을 갉아 먹는
거대한 도시의 회충들
삶이 드나드는 문턱에 내려진
셔터에 굳게 채워진 자물쇠
30촉전구 헐렁하게 풀어져
흐릿한 문지방을 타고
철커덕 거리며 어머니는 재봉침을 돌리신다.

구겨진 양복 안단에 말아 넣은
노비문서에 갈구 하지 않았던 자유
신이 허락지 않은 날개짓이
마감 뉴스를 통해 추락하던날
도시의 불빛이 하나 둘 태어나고 죽어갔다.

경비구역 안 1423동
쇠창살 틈을 헤집고 쿨럭이는
일흔 노파의 늦은밤의 기도가 혼돈을 관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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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침묵




거드름을 피우며
달이 구름을 밟고 올라서면
도시는 참았던 봇물을 쏟아낸다.

도시를 씻겨낸 오물이
강으로 흘러가고
다시 태어난 사람들은
잔 속에 술을 채우고
조명에 몸을 흔들며
참아온 한낮의 헐떡임을
달을 향해 내 던진다.

뒤섞여 흐르는 강은 말이 없는데
혼탁한 물 위로 반쪽 된 달 하나 빠져
허우적거리다, 이내 잠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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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물을 채운다.
욕조는 깊이 벌건 몸뚱어리를 담근다.
코끝에 풀리는 달콤한 비누 향
안개처럼 부드럽게 적시는 따스함에 발을 디민다.
커지는 떨림
미끄러지듯 욕조에 몸을 담으면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오르다
이내, 숨고르기를 한다.
아 따스하다.
눈을 감는다.
귀를 간질이는 달콤한 밀어
물장구질로 희롱하며 장마 끝난 후
찾아오는 열대야 라 생각했다.
스멀스멀 기생충 같은 땀이 기어 나온다.
허연 두개골을 감싼 이마로부터
얼굴 온몸 전체를 소름 돋아 세우며
울컥거리는 현기증에 눈을 감는다.
그들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적나라한 나의 분신들
욕망의 불덩이가 몰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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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풍경





아직은 별들이 떠나기전
새벽으로 가는 길이 열려 있다.

허연 입김 두 손에 담아 든 사람들
하나, 둘씩 모여 드는 시장통 네거리
저마다 짊어 지고 온 사연들로
지피는 불길 속에
두런두런 타 들어 가는 이야기

땀 절은 작업복 만지작거리며
빛 밝은 달이
둘러멘 가방 속으로 들어 와 있다.

하나, 둘 사람들 제 이름자에
희어지는 웃음으로 떠나고 나면
사연은 과한 것일수록 좋아
타닥타닥 모닥불 사그라져 가는 모퉁이
아픈 가슴은 아무리 쓸어도 한숨으로 시린데
빈 담뱃갑 철렁거리는 동전 몇 닢의
가난한 아침이 찾아든다.


[아내 그리고 여자] 중.......그 남자 이야기 편

 

 

 

 

기억의 단상(斷想)




지금도
그 삼거리의 가판 대 아줌마는
햇살 빤히 받고 졸고 앉아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몇몇뿐
건물이라야 가판 대 건너
주차장 넓은 걸쭉한 순댓국 집 한 채
버스가 서서 두어 명의 손님을 토해 내고 떠나면
힁허케 먼지를 쓸어 가는 바람만 이리 저리 맴돌던
그 삼거리 웃음 쭈삣한 가판 대 아줌마는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

헛기침소리에 놀라
두 눈 멀뚱이 떠
물끄러미 건네 주던 햇볕 뜨신 신문 한 부
단잠 아쉬운 입맛 다셔가며
이내 실눈 가늘게 떠 내리던
그 삼거리 가판 대 아줌마는
얼룩무늬 군복 담배 한 개피 값에
파르르 떨리던 손 기억이나 하는지

지금은 모두 떠나고
삼거리 가판 대 주위를
서성거릴 이유야 없지만
가을햇볕 유난히 맑게 떨어져
낙엽 위를 뒹굴 때
단잠에 못이긴 한숨 손바닥에 괴고 앉아
새초롬이 졸고 있는 아줌마가 떠오른다

" 그녀도 가판 대 아줌마만큼 주름진 웃음 웃고 있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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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안 풍경




1.

미화원을 기다리는
쓰레기 봉투들이
초행길 떠날 채비를 마치고
망부석처럼 서있다.
그 옆으로
한 그릇의 밥이 되어줄
신문 뭉치와 종이 상자들이
재기의 날을 꿈꾸며
절버덕 주저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2.

줄 맞춰 보도블록은
골목 안을 가득 늘어서 있고
하루에도 몇 번이고
보도블록을 밟으며
양편에 사는 사람들과
이유 있어 지나는 사람들이
정확히 몇 번인지는 모르지만
밟고 지나간 사이 사이로
이름 알리 없는 잡초와
정자나무로 자랄 어린 느티나무가
발길을 피해 용케도
보도블록보다는 조금 높게 솟구쳐
기지개를 펴고 있는

여기는 골목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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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강




살얼음 핀 저녁 강에 나서면
까치발 딛고선 그리움이
물살보다 빠르게 달려온다.

어릴 적 잃어버린 누이의 웃음
외조부 지엄 같은 불호령이 숲을 둘러치고
뜨겁게 피를 쏟아 놓으며
붉게 흐르는 강

강이 흐르고 있다.

부서진 그리움의 결을 따라
어머니 순결한 처녀막을 터트리고
나를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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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지칠 법도 하건만
멈춰야할 이유도 없다.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바람을 만든다.

온 하늘 산천을 달려 가려하나
잔 속의 폭풍
바람은 창살을 뚫지 못한다.

거푸 돌아 지구의 반
역류하지 않는 시각의 초침

타이머의 축을 거 머 쥐고
바람이 죽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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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꿈




외로운 별 하나
눈물 꽃으로 피어나면
길 떠날 채비 서두른 나는 간다.

한때는 별이 되고 싶어 눈물이 되고
한때는 별이 되어 나는 울었다.

제 목숨처럼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한
가여운 영혼이
오늘도 사막 한가운데 기도로 피어 오르고
태양도 빛을 사윈 하얀 밤
별들은 소리없이 죽어 갔다.

바다를 낚으러 지구 끝을 걸어간
한 사내의 염원이 하늘 끝에 이르러
다시 별이 되는 날

사윈 태양을 집어 삼킨 어둠이
천천히 바다위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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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기다리며




아이들은
별을 주우러 개천을 달린다.

와르르 쏟아지는 별빛에
허기를 채우고
가난한 영혼을 구제한다는
신을 기다렸다.

거뭇한 산 그림자 호령하며 달려든다.

하얗게 떼지어 달려드는 별빛
땟국물 누더기진 낡은 옷소매에
한아름 별을 안고 달음질을 친다.

머리 위로
사뿐히 이고온 푸른 달빛이
잠 든 머리맡을 비추면
가난한 굴뚝 낡은 지붕에
한옹큼 별이 솟아올랐다.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기다리는 신은 오지 않고

오늘도, 가난을 채우러
밤하늘 가득 별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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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옥상




잠자리 한 마리 날아 왔다.

빨랫줄에 널린
봉선화 꽃물 땡땡이 원피스
마누라의 악다구니가 그네놀음 저편으로
외롭게 밀려 간다.

구멍가게 김씨는 인심도 박하다고
삼립빵 빈 박스에 상추를 심으며
쫑알대던 마누라의 입심처럼
상추 뽑아낸 터에
잡초만 무성히 자라났다.

비릿한 생선 내 쾌쾌이 스며있는
아이스 박스 안 넉넉히 채워진 흙 밭에는
게으른 주인 한껏 조롱하는
베어내지 못한 부추 긴 꽃대 야무지게 올리고
보기 좋게 꽃망울이라도 터트릴 참이다.

게슴츠레 한눈 치켜뜨고 한참을 살펴보니
한낮의 어질 한 아지랑이 시들하게 피어나
벌러덩
앉아 있던 평상 위에 큰 대자를 긋는다.

구름 노니는 하늘 한복판
내 마음도 솜털 되어
이리 저리 구름 함께 장난을 치다
하늘 때문인지
바람 때문인지
어느새, 나는
단잠에 빠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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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 (回想)





할머니가 오물오물 밤을 구우시지
화로 막대기 휘휘 저을 때
돋보기 안경 너머
손주놈 보다 더 개구진 눈
탁~
쩍 벌어지며 밤 익는 소리
타닥 불꽃이 튀고
꼬물꼬물
누빈 포대기 속엔 지린내 나는 발가락들
그깟 달걀귀신쯤은 문제없어
달빛 휘영청
동구 밖 느티나무엔 호랑이 구신이 씌었단다.
할머니 열어놓은 곶감 주머니에
질화로 속 재구덩이에서 밤이 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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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아이





저 구부린 용과 같은 바다의 후예
해를 먹는다.

뜨겁게 용솟음 치는 푸른 혈맥
해일로 일어서 굽이치고

소년은 꿈을 꾼다.
깊고 푸른 바다의 꿈
죽어
바다의 장수가 되리.

소년의 꿈이 자라는 섬마을

바다가 바위에 다투는 소리로 해가지고
뭍으로 흐르는 별들이 내려와
지껄이며 노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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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행





1.

굴뚝 연기도 잠든
밤 찾아 들면
승냥이도 무서워 울음 우는
산 마을

마실 갔다 돌아온 어미
늘어 놓는 푸념 소리
"서울 가면 잘 살수 있다는데...."
아비가 듣고, 아이도 잠든 꿈결에 들었다

파리한 달 하나
문틈으로 숨어 듣다
개 짖는 소리에 놀라
구름 속으로 달음 질 친다.

승냥이도 무서워 울음 우는, 산마을
밤은 깊은 잠에 빠졌다



2.

보리 꽃 피기는 이른
아직은 우수(雨 水)

뒤 곁 대밭
잔 바람에 이파리 울음 운다.

쌀독 긁는 바가지 소리
산허리 휘감아 되돌아 올 제

"그래 가자, 이래 사는 거나..."

초승달 같은
다랑이 잔 서리 내리던 날
빈 지게에 걸린 달 무거워
허리 곧추 세워도 일어서지 못했다.

3.

흰눈 소복한 논뚝 길을
달빛 손전등 삼아 길을 내며 가고 있다.

어미 손 꼭 잡은 사내 아이
선잠깬 걸음은 구름을 걷는다.

힘겨운 그림자 쉬어 가자 조르고
별들은 길 서두르는, 아직도 까만밤

눈 젖어 무거워진 발걸음 내딛는
아비의 등짐이 달빛에 황소만 하다.

고불 고불 길 돌아 기차역
동이 트려는지 먼 산에 붉은 기운이 돈다.


ㅡ 1968 년 ㅡ


*다랑이: (비탈진 산골짜기 같은 곳에 층 층으로 된) 좁고 작은 논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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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시계바늘은 잔업의 끝을 지나
한참을 간후에 멈췄다.

완장을 찬 비둘기와
둥지가 있는 비들기들이 숲으로 날아가고
광장에는 그들만이 남겨졌다.

현광등 불빛 잠시 흔들렸을까
몇몇은 공중전화부스로 향했고
또, 몇은 씻기를 포기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광장을 비추던 불빛이 잠에 든다.

ㅡ그날 오전 ㅡ

비명도 없다.

미싱바늘은 솝톱을 뚫고
심장까지 뚫고 나서야 멈췄다.

총기를 잃은 눈속에는 바늘이 없다.
미싱기름 한방울과 대일밴드 하나

미싱바늘은 손가락을 향해 다시 달려 왔다.
잠시 날개를 접었던 비둘기들의 날개짓이 분주 하다.

넓은 광장에는
쓰레기 하나 없다.


ㅡ 1980년 여름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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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






한쪽 손잡이를 잃어 버린 양은냄비는
벌써 몇밤을 말라 들러붙은 라면 건더기를 껴 안은 채
연탄가스 마저 죽은지 오래인
새마을 보일러 밑에서 잠을 잔다.

이쁜이 비누거품과 철수세미질 한번이면
은빛 광채를 자랑하며
맑은 세상으로 다시 태어날수 있을까

철지난 옷들이 점령해 버린
비키니 옷장속에는
곰팡이들의 음모는 시작 되었다.

벌건 핏물을 머금고 열림을 멈춘 자크이빨은
옷장속 음모를 몰랐을까

꿀따러 나간 일벌은
꽃향기에 취해 산속으로 들었는지
땡벌에 습격을 받았는지
가리봉 오거리 벌집에는 꿀통이 비어 있었다.

ㅡ 1980년 여름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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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그루 나무가 되어





한 그루 나무이고 싶다.

절반쯤 푸른 잎 털어 내고
절반은 노랑 잎이라도 좋다.

새벽녘 허연 찬서리
온몸에 내려앉아
하나도 남김없이 발가벗겨져도 좋다.

어디 바람 많은 강가에
잎도 없이 빈가지로 서 있어도 좋다.

이 한 몸 아낌없이 내어 줄 수 있음에 감사하며
겸허히 맞이하는 날들

안으로 안으로 굽어 드는 침묵에
수많은 이야기가 아름드리로 자라는
나는 한 그루 나무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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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바다에서



잔은 비워지고
조개가 익는다.
머언먼 바다의 꿈
비명으로 토해 놓고
고즈넉이 사위는 비애,
물빛 채워지는 잔 속에 달이 어린다.

별 하나
수억 광년을 달려
검은 바다로 떨어져
순간과 영원히 하얗게 부서지며
바다의 이야기가 된다.

날물을 따라 별이 흔들리고
날물을 따라 별은 부서지고
사람들의 소망이
종이 대포의 불꽃으로 피어오르는 밤

바다가 취하고
사람도 취하고
흔들거리며 올라가는 짧은 탄성이
술 취한 바다를 끌어안고 쏟아져 내렸다.

이 밤, 기울이는 한잔 술에
삼켜버린 달빛 안주 삼아
철망 위 익어 가는 조개에게도 꿈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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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선도로




싫증나 버린 털모자인줄 알았다.
널브러져 있는 주검
너른들 달리다, 이젠
전설이 되어 버린 슬픈 기억들
도로 위 질주하는 커다란 불빛, 이어
몸 위를 지나는 기계덩어리
줄지어 한참을 지난다.
목을 죄고 있던 방울 떨어져 구른다.
그리고 오랫동안
털 빠진 모자는 도로 위에 버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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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을 마셔라




빨간 주둥이로 연방
용암이 흘러내리듯
아침해가 녹아 나오면
파란 꼭지를 돌려야 한다.
뒤엉켜 한 몸 되어
도시로 가는 대로변에 납작 엎드려
일어서기를 멈춘
키 작은 그림자 와
때 자국으로 얼룩진
그들만의 성벽(城壁)을 허물어
낯짝을 씻겨라.
그래서, 그들이 남기고 간
정자나무 그늘 같은 어둠을 마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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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한번의 삽질로 숨통을 끊어 그들의 심장을 헤집고 허리를 잘라 살점과 뼈를 도려냈다. 드러난 허연 속살과 파헤쳐진 붉은 살점을 실은 영구차는 검은 피로 얼룩진 아스팔트를 움켜쥐며 끝 보이지 않는 검은 길을 달린다. 그들의 죽음을 모르는 행인과
흰 지팡이로 더듬거리며 길가는 장님은 여섯 개의 다리마다 검은 피를 묻힌 채 힘차게 달리며 만든 바람을 타고 붉은 살점들이 흘리는 눈물을 그저, 먼지 인 줄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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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을 태우는 일




가을을 태운다.

생솔가지 푸른 가을들판으로
허수아비 베어진 허물 너울대어
경운기 바퀴에 깔리는 황혼빛 짙고
살아온 날들이 부끄러워
지는 풍경소리에 씻어내는 윤회
태워도 태워도 사그러지지 않는
욕심의 부피에 불을 당긴다.

허허로이 벗어 던진 육신의 조각들
하늘 향했던 빈손짓 대지에 내리며
가을 걷이 끝낸 빈들에 홀로서서

가을은
낙엽을 태우며 다시 태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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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한 산





산이 내려 왔다.

누룩 노릇이 익어 단내 나는 마을
막걸리 한잔 바람 함께 걸치고
산이 취한다.

취한 산이 불타 올라
어느새 술도가에 가을 익는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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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지 마라 이른 날 초저녁잠이 달았다.
큰말 작은말 불빛 잠들기를 기다려
엄마는 암탉을 잡으셨다.
꼭꼭 닫아 걸은 부엌 문틈으로
가마솥 끓는 훈김 뜨겁고
달빛 쫓아 내려온 산 울음
장지문 흔들 때면
엄마는 풀어진 옷고름 바짝 조여 매고
가마솥을 열어
아이들의 잠 든 밤을 깨웠다.
아버지 헛기침에 닭 모가지 담은
국물 한 사발 물리고
달빛 피해 뒤꼍에 구덩이를 파시면
아이들 뉘인 앞이마 쓰다듬는
뜨겁던 엄마 손에 찬바람 스며와
찬찬히 옷깃 여미고 앉아 숨 고르는 소리 들렸다.



시집 [ 아내 그리고 여자] 중....... 기억의 단상(斷想) 편에서......

 

 

 

 

할미꽃




날 보러 오시던 길
기운 다해 못 오시고
지난 약속 지키시려
이제야 오셨나요

설날보고 못 본 엄마 얼굴
그리다 울음 울 제
토닥토닥 등 두드리며
"울지 마라 내 새끼야"

산 밤 무서울까
도란도란 수수께끼

빈 젖 물리며
자장자장 자장가

슬픈 기억
바람에 쓸려, 비에 씻겨
저녁 노을 그림자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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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으로 가는 길




고향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한다.
급하게 앞지르며 달리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바람이
어깨를 툭 치며 사라졌다.
어지러운 발자국들과 놓칠세라 꽉 잡은 손과 손
문득 나만 혼자인 것 같아 씁쓸하다가도
고향으로 가는 마음에 기분은 좋다.
푸석 푸석 씁쓸하게 안개 피어오르는 개찰구를
지친 어깨로 밀며 빠져나와 기차에 오르면
뚜걱 뚜걱 저녁 이끼 어슴푸레한 흐린 불빛 아래
고향으로 가는 길은 혼자라도 좋다.
그물 망 속에 담긴 사과 빛이 고갯마루 잘 익은 노을처럼 붉고,
삶은 계란 고소하게 허물 벗는 고향이야기는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는
홍익회 직원이 끌고 가는 수레바퀴에도 흥이 돋는다.
몇은 졸고
수런수런 어깨를 맞댄 연인들은 무엇이 좋은지 연방 웃음이다.
어둠이 차창에 기대와
그 옛날의 계란장사와 그물 망 속에 담긴
사과 파는 장사치가 그리워지는 밤
시원한 맥주 캔 하나와 씁쓰레한 오징어 다리를 씹으며
고향집 폐교의 낡은 칠판 같은 히뿌연 차창에
그리운 이름들을 그리다 지운다.
한숨 자고 나면 고향 역에 닿을 것이다.
셀 수 없는 살들을 품었을 의자에, 나도
몸을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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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고향 가는 기차에 몸을 싣는다.
으르렁거리는 도시의 철도를 도망하는
숨어든 낮달 품에 안고
어머니 고쟁이 속 고추밭 도둑 맞던 날
동승한 새벽 어둠을 뒤따라
고단한 서울 살이 처마 밑을 기어들던 기차칸
스물너댓 해 겹겹이 껴안은 그리움의 여장을 푼다.

닮은 사람들이 눈으로 눈으로 나누는 인사
가까이 가까이로 개울물 소리 흘러 들고
저무는 보랏빛 강을 건너
뒤꼍 대나무 밭을 흔드는 바람소리
어머니는 노을 등에 지고 고추밭 길을 걸으신다.

" 어머니 내가 왔수 "
" 어머니 내가 왔수 "

역마다 기차는 보따리를 내린다.
귀에 익은 목소리 가까워질수록
고향 길을 더듬는 기적소리
철길 뜨겁게 달구며 달려들면
어머니 무명저고리 고름 서걱서걱
언 손 부비며 나와 섯는 동구엔
가슴 살 에이고 나선 달이 먼저 중천에 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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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락눈




푸실 푸실 싸락눈 내려와
마당에 쌓이고
나는, 빈 아궁이에 먹이를 넣는다.

솔가지 흔드는 어머님의 잔기침 소리
바람기 없는 싸락눈 내려 앉고
타락 타락 잔솔가지에 엉겨 드는 불길
닷새장 주막거리 화선이가 저고리 고름을 푼다.

사립문 밖
어둠 뒤엉켜 신음하는 소리, 아궁이에 쑤셔 넣고
문풍지 사각사각 숨 고르고 마주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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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었나 보다




누르던 이파리
힘겹게 붙잡은 어미 손
제풀에 손놓던 날
봉당으로 장독대로
여윈 햇빛 가로막은
낮은 돌담을 휘돌아 바람은 왔다.

빛 바랜 이파리
바람 따라 쿨럭 이다, 병든 오후
햇살은 담 장 밑에 가만히
드러누웠다.

꽃이었나 보다
알록달록
가을중턱 물들이며 피어나던 나는
온몸이 부서져라 산을 오르며
꽃이 되고, 나무가 되고
바위가 되고, 내가 되고
삼천 겁 악연의 바람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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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





강풀섶에 마른 갈대는 울고 있다.

승냥이 울음 먼 발치로
짐벙짐벙 뛰어가는 밤

거친 손등 터지도록 비벼가며
강물 우에 기대어 사무치도록
너는 운다.

어머니 어서 저 강을 건너 오셔요.

달빛 기울여 강물에 띄워 놓고
목이 쇠도록 하얗게
갈대가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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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끝나는 곳






길이 끝나는 곳
거센 물살을 실은 바다 위
아득히 섬들이 흩어 지고 있다.

인생의 한때
너는 바다였으리라
내 그리움의 물살이 파도를 이루어
섬들을 불러 들이던 곳

그 흰 모래사장에
성을 쌓으며 부르던 노래 아주 없고
바다는 더 이상 꿈꾸지 않았다.

파도가 섬들을 어둠에 누이고 정사하는 시간
아픈 것들이 모두 되살아나
바다에 놓인다.

누더기 되어 끌고온 내 인생 한때의 너
이 깊은 어둠 나누어 마시고
너는 자결 하라

길이 끝나는 곳
그 바다에
너의 주검 내려 놓은 내 발자국 지우고
아침은 순결한 섬 위에 다시 잉태를 꿈꾸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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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





가슴 닿는 사람 어디 있으랴
날마다 돌아누워도 너뿐

술렁술렁 어둠 지치도록
속삭인 이도 너뿐

우수수 풀잎소리 고여 베고
수런수런 이야기로 깊어 가는 밤

잔잔히 흘러가는 강물 따라
달빛 여물어 노젓는 소리

밤마다 단풍 닢 타 들어도
귀 기울여 듣는이 너뿐

꼭꼭숨겨 감추어둔 이야기들
숨죽이며 지켜 주는 이도 너뿐

바람이 나뭇잎에 이별하는 소리를
새암이 먼저 알아 듣고 눈물짓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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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이야기






어디서 매미 한 마리 옷을 벗겠다.
할머니는 솥단지 가득 강냉이를 익혀 내고
모깃불에 그을린 계집아이 눈물이
그렁하게 달린 밤이 까맣게 익을 무렵
반딧불이 총총히 별 되어 떠올랐다.
머슴아들 기름불 말아 뱀장어 따라 돌고
할아배 등짝에 초롬이 엎드려 귀신 얘기 듣던 밤
무당거미 베틀 올려 실 잣는 소리
낭낭히 성황당 고갯 마루 넘을 때
바람이 달빛 한자락 끌어 덮고
계집아이 배시시한 잠결에 살며시 누우면
어느 집 감나무 나뭇가지엔
쓰름매미 한 마리 허물 벗어 걸어 두고
백설같은 날개 아련히 하늘 접어
고요히 새벽을 기다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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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고향집 뚝배기에 토장국이 끓고
채 썬 무우밥에 김이 오른다.

초롱한 눈빛 고만고만
아궁이 불씨 아직 묻혀 있고
젖 보채던 순둥이는 잠이 들었다.

정재에 콩기름 등잔불
어머니는 가마솥 휘휘 저어
숭늉을 내신다.

그리움 비켜둔 문틈
저만치 세월이 재 너머 흘러가고

주름 깊은 어머니의 덫개진 손에
뜨끈하게 끓여낸 숭늉 한 사발

잠들지 못하는 밤
오누이 그림자 다정히
어른거리고 있다.


정재(부엌) : 전라도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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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이



눈물도 곱다.

누이는 삼칠일
홍시 되어 붉더니
고운 꽃이 돼 버렸다.

어메는 불은 젖가슴 칭칭 동여매고
멍석에 고추를 너시며
"고놈 고추 맵기도 허다"

어메의 고추눈물은 몇 일째 붉고
삼밭 가는 새벽길에

아버지는 바짓가랑이 젖도록
지게막대기 부여잡고 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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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밤에 낙서





잠을 자야 아침이 온다 했다.

내일이 부메랑처럼
창틀에 걸려
그대 오지 않는
서글픔을 비춘다.

사는 것이
어디 마음대로 되는 일이던가

벗어 던진 잠바데기가
우화를 끝낸 허물처럼
방바닥에 엎드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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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임정일


깨어나고 싶지 않은 잠을 허무는
자동차 경적소리 들려온다.
어둠을 동침한 밤
가까스로 미명에 낯빛을 씻고
짊어지고 앉는 새벽
오토바이 페달을 밟는 건장한 사내의
고르지 않은 숨소리 묻어 있는 신문을 편다.
흙빛 잉크를 입고 죽어 있는 글자들의 나열
죽음에 애도하는 한 송이 꺾여진
들꽃의 향기가 진동한다.
희망은 또다시 수채로 흘러들고
포르말린 듬뿍 얹은 아침 수저를 든다.
누가 나를 박제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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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나무







가을은 투명한 햇살 동반해 온다.

창문가 짓궂던 바람도 달아나고
아침해 길잡이 삼아
푸른 옷 자랑 나선 높은 하늘

세수를 하다가
까칠하게 돋아난 수염을 깎는다.

오늘 하루가
햇살처럼 투명하고
하늘처럼 푸르기를
턱수염을 깎아내는
거울 속 사내같이
날마다 단정하고 새롭기를

스스럼 없이 옷을 벗는
가을 나무 앞에 마주서서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 줄줄 아는
세상을 향한 배품의 美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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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강





강둑을 거슬러 오르다 보면
거기 노을이 붉게 타오르고
강물에 들어앉은 산 빛도 물줄기를 따라
천천히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 적 이야기가
수천 년 침묵으로 흘러가고
내 어린 날의 나룻배가 수풀 속에
요람처럼 삐그덕 거리며 매어 있었다.
그 강물 위에, 한 사내의 부끄러운 삶의 흔적이
부표처럼 떠밀려 수면의 강을 가로질러
질주해 가는 것을 바라본다.
흔들리지 않는 수심의 깊이로
수없이 낙하하는 덧없는 인생의 나날들
강을 타고 웃음 웃는 시절 없는 바람에도
하늘은 붉게 물들고
나는 맨발을 하고 강둑에 서서
내 어린 날의 나룻배에 훌쩍 몸을 싣고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숨결 서린
그 침묵의 강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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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당신이 침묵하시는 동안
볍씨가 마르고
에덴동산의 실과가 죽어 갑니다.
벌거 벗겨져 유린당한
내 양심의 선명한 핏자국을 당신께 드립니다.
신이시여
내게는
술주정뱅이 노름꾼인 의붓 아버지가 있을 뿐입니다.
가난이
당신을 외면한 죄라 하시면
통째로 갈라내도 보일 수 없는
터럭 같은 양심의 한없는 절망을
한 번만
단 한 번만
뒤돌아 보아 주십시요.
오직 진실만이 승리할 수 있다는 진리를
지상에 있는 당신의 모든 자녀들에게
선포하여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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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의 밤




예수님이 태어나셨다는 성탄절은
늙은 악사의 바이올린 소리 애절하게
성탄트리 화려한 네거리에 다다랐다
구세군이 흔드는 종소리에 적선 못한
마네킨의 부끄러운 손
술에 취한 노숙자의 캐롤이 명동성당의
담을 넘고 있다.

오, 거룩한밤

성탄케익을 꿈꾸는 천사들의 선한 눈빛과
아내의 머리핀을 사려고 상점에 들른 가난한 주머니와
그 모두의 기쁨을 제 것으로 여기는 어여쁜 여인의 소망
등이 들어오지지 않는 가파르게 난 언덕길 위
사람들 모두 이른 잠자리에 들어 뒤척이는
헐은 지붕들 쓰러질 듯 의지하고 있는 그곳에
하나쯤 성탄트리 있어도 좋겠다.

작은 소망의 등잔에 기름을 붇는 가난한 손길들
온 몸 부스럼, 굽은 다리의 중한 죄지음도
깨끗하게 되는 기적의 밤
화려한 네온 장식 지옥의 문이 아가리를 쳐들고
늙은 악사의 바이올린 소리를 집어 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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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그대를 기다리는 시간
햇볕 속에 고슬한 바람을 날리고 있는
오후의 적막이
불빛 없는 가로등 아래로 추락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매어논 자전거가
육교 아래 오즘을 깔기듯 즐비하게 서서
미니스커트를 한 여자의 정강이를
힐끔거리며 고개를 쳐드는 순간
핸드폰 단말기의 낯선 숫자를 익히려
바람난 사내의 목젖은 가라 앉고
아스팔트에 버려지는 존재없는 가래침들

사람들 저마다 주머니의 동전 몇 닢쯤 주물거리다
이제는 까마득히 잊어 버렸을 공중전화부스에
영영 돌아오지 못할 수많은 이름들을 떠나 보내고

가을은
육교계단을 내려오는 늙은이의 허리춤 마냥 구부정히
구로공단역 플랫트홈에 도사리고 있다.



[아내 그리고 여자] 중.........그리운것은 멀다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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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0.01.23 09:37

    첫댓글 시인 임정일.

  • 20.01.23 09:38

    임정일 시인 책나무출판사 대표로 출판인이자 시인이다.
    시집으로 "아내 그리고 여자", "아내의 노래"가 있으며,
    그 외 "삶을 즐겁게하는 100가지 유머", "삶을 바꾸는 200가지 명언",
    "직장인에게 주는 50가지 특별한 이야기", "위로가 필요할 때 읽는 33가지 유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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