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 강한 분이시여! 저는 ‘산야사’와 ‘티야가’에 대한 진리를 배우기를 원합니다. 한 종류의 포기가 다른 종류의 포기와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여 주십시오. 오, 흐리쉬케사시여! 오, 악마 케신을 없애신 분이시여!
2. 이기적인 행위를 삼가는 것이 산야사라 불리는 포기이다. 모든 행위의 결과들을 포기하는 것이 티야가이다.
3. 어떤 사람들은 행위는 언제나 어느 정도의 악을 포함하고 있기에 모든 행위들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희생, 자선, 고행(자기 수련)은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4. 오, 바라타족의 최고인 자여! 이제 그대는 이 문제에 대한 진리를 듣게 될 것이다. 희생, 자선, 고행의 행위들은 포기해서는 안 된다.
5. 그것들의 수행은 반드시 필요하다. 왜냐하면 희생, 자선, 고행의 행위들은 사려 깊은 사람들을 정화시키기 때문에 포기되어서는 안 된다.
6. 그러나 그러한 행위들조차도 그것들의 보상들에 기대 없이 행해져야 한다. 이것은 아주 중요하다. 오, 프리타의 아들이여!
7. 자신의 의무의 행위들을 포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런 미혹된 포기는 타마스적이다.
8. 어렵거나 그것이 신체적 고통을 야기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행위를 포기한다면, 그 포기는 라자스적이다. 그런 포기에는 아무런 보상이 없다.
9. 오, 아르주나여! 애착과 그것이 주는 결과들을 포기한 채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것, 이것은 삿트와적 포기이다.
10. 삿트와를 타고난 사람들은 포기의 의미를 분명히 이해하고 흔들리지 않는다. 그들은 싫은 일에 겁을 먹지 않고, 유쾌한 일에 집착하지도 않는다.
11. 정말이지 육체를 가지고 있는 한, 행위들을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다. 그러나 행위자라는 생각과 행위의 결과들은 포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포기하는 사람이다. (모든 행위들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은 나를 깨달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몸을 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12. 자아와 자아의 욕망들을 아직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은 육체가 죽은 후 행위의 세 가지 유형의 결과들 즉 좋은 것, 나쁜 것, 둘이 섞인 것을 거두어들일 것이다. 그러나 자아와 자아의 욕망들을 포기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든 다음 세상에서든 카르마의 영역을 벗어난다.
13. 오, 힘이 센 자여! 무슨 행위들이든, 행위들을 끝내는 데는 다섯 요인들이 들어간다고 샹키야 요가는 가르친다. 이것들을 설명할 터이니 나로부터 배워라.
14. 육체(행위의 자리, 굴레와 해방이 일어나는 자리. 깨어있음, 꿈 등 의식의 세 상태들이 일어나는 자리), 행위자(자아, 의식의 그림자. 그는 우주적 의식인데 몸에 집착하여 몸에 따른 개인적인 의식이라 생각할 수도 있음.), (열 가지) 감각 기관(다섯 감각들과 다섯 행위 기관들)들, 여러 생명의 움직임들(공기의 기능들 즉 다섯 프라나들) 마지막으로 주재하는 데바(눈과 같은 기관들이 기능들을 행하도록 돕는 존재. 신성한 의지)들
15. 자신의 육체, 말과 마음으로 바른 혹은 그른 행위들을 할 때, 이것들이 그것의 원인이 되는 다섯 요인들이다.
16. 그러한데도, 아트만을 행위자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잘못 보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이해력이 (연마되어) 완전해지지 않았다(부족하다. 그래서 진리를 보지 못한다.)
17. 자아의 개념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 마음이 선과 악이라는 것에 오염되지 않은 사람은, 비록 그가 이 사람들을 죽인다 할지라도 그는 죽인 것이 아니다. 그는 그가 한 행위로 묶이지 않는다.
18. 지식(알고자 하는, 경험하고자 하는 목표), 아는 과정(경험하는 과정), 아는 사람(경험하는 사람)은 모든 행위들을 일어나게 하는 세 가지 힘이다(예를 들면 장미를 알고 싶다. 그래서 알고자 하는 대상인 장미에 다가가서 냄새를 맡아보는 등의 아는 과정을 거친다. 그 경험이 즉 아는 과정이 유쾌하면 반복할 것이며, 불쾌하면 경험하기를 피할 것이다. 물론 아는 사람에게는 카르마가 남을 것이다.) 행위에는 세 가지 요인들 즉 행위의 기관(행위자가 행위를 할 때 사용하는 것. 외적인 기관은 여러 감각 기관들 즉 피부, 귀, 눈, 혀와 코, 내적 기관은 마음, 지성과 자아), 행위(행위자가 보았을 때,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이 유쾌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면 그 행위를 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다.), 행위자(기관들을 움직이는 자)가 있다.
19. 지식(행위자가 가지고 있는), 행위(알아가는, 행위 하는 과정)와 행위자는 각각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구나에 따라 설명될 수 있다. 그것들의 차이점을 설명할 테니 잘 들어보아라.
20. 모든 존재들에서 하나의 불멸의 실재, 분리된 것들(나타나지 않는 존재로부터 무생물에 이르기까지)에서 분리되지 않는 하나를 지각하는 것은 삿트와로부터 나온 지식이다.
21. 라자스적 지식은 모든 존재들을 독립적이고 별개라고 본다. 모든 존재들은 서로 다르다. 그래서 이 세상은 다양한 존재들로 되어있다.
22. 사고의 균형감이 결여된 타마스적인 지식은 부분을 전체라고 착각한다. 이성이 없는 협소한 지식이다.
23.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애착이 없이, 결과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고, 좋아함이나 싫어함이 없이 하는 것은 삿트와적 행위이다.
24. 그러나 갈망의 채찍에서 나왔거나, 자아가 들어가 있거나, 많은 고단한 노역이 들어가 있는 행위는 라자스적이다.
25. 힘과 부를 낭비하는 비용은 고려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주는 해를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미혹으로 행해지는 행위는 타마스적이다.
26. 애착이 없고, 자아가 없고, 확고하고, 열정적이고, 성공과 실패에 영향을 받지 않는 행위자는 삿트와적 행위자이다.
27. 허영심에서 주어지는 상에 흥분하고, 잔인하고, 탐욕스럽고, 불순하고, 승리에 빨리 기뻐하고 실패에 낙담하는, 욕망이 있는 행위자. 그는 라자스적 행위자이다.
28. 가슴이 행위에 있지 않고, 저속하고, 완고하고, 속이고, 악의적이고, 미루는 것을 좋아하고, 쉽게 낙담하는 행위자는 타마스적 행위자이다.
29. 지성과 확고함은 우세한 구나들에 따라 세 종류가 있다. 내가 그것들을 하나씩 설명해 주겠으니 들어보아라. 오, 다난자야여!
30. 삿트와적 지성은 속박의 지식과 해방의 지식에 더하여, 언제 행위를 하고 언제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할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고 무엇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지를 아는 것이다. 오, 파르타여!
31. 하지만 옳고 그른 것을 잘못 구분하거나,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알 수 없을 때, 그것은 라자스적인 지성이다. 오, 파르타여!
32. 타마스적 지성은 무지에 뒤덮여, 모든 것을 왜곡되게 본다. 오, 파르타여!
33. 삿트와에 의해 영감을 받은 확고함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그것은 요가의 수행을 통해 강화된다. 이런 종류의 확고함을 가진 사람은 마음, 프라나(호흡), 감각들을 빠르게 제어하여 조화롭게 유지한다. 오, 파르타여!
34. 이기적 욕망에 조건화된 라자스적 확고함은 존경(다르마, 의무), 쾌락, 재산을 추구한다. 오, 파르타여!
35. 타마스적인 확고함은 무지, 나태, 두려움, 슬픔, 우울, 자만으로 자신을 나타낸다. 오, 파르타여!
36. 이제, 아르주나. 세 가지 종류의 즐거움들에 대해 말해주겠다. 오, 바라타족의 으뜸인 자여! 지속적인 노력으로 고통의 끝이 확실히 온다.
37. (순수한 지식에서 생겨난 행복이 삿트와적인 즐거움이다.) 엄격한 자기 교육 후에 그의 즐거움은 깊다. 처음에는 힘든 고역이지만, 슬픔의 끝인 마지막에는 얼마나 달콤한가.
38. 감각들은 감각 대상들과의 결합으로 행복을 갖는다. 처음에는 달콤하지만 마지막에는 얼마나 쓰라린가. 라자스에 담가진 즐거움은 독이다.
39. 타마스적인 사람들은 인사불성, 나태, 도취로부터 즐거움을 끌어낸다. 이 즐거움은 처음에도 마지막에도 망상이다.
40. 물질(프라크리티)로부터 생겨난 이 세 가지 구나들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는 땅 위에도 없고 하늘에 있는 데바들 사이에도 없다.
41. 오, 파란타파여! 브람민들, 전사들, 상인들과 봉사자들로 구분 짓는 사회계층에서 발견되는 여러 의무들은 자신의 성품에서 생긴 구나들에 그것들의 뿌리가 있다.
42. 브람민(브람마나)들의 의무(덕, 9개)는 고요하고(평화롭고), 마음을 통제하고(self control. 사마. 순수해지기 위해서는 감각 대상들에 대한 생각조차도 하지 않아야 한다. 마음을 통제하기 위하여 과거의 기억들 혹은 유혹들 안으로 들어가야 할 수도. 유혹들은 나 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강제적으로 벗어나게 할 수도 있다. 브람민들은 항상 자신의 마음을 통제하는 사람이다.), 고행하고, 흠이 없고(순수하고), 관대하고(용서하고), 올바르고, 지식(경전들의 가르침. 갸나)을 따르고, 아트만을 알고(비갸나), 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아스티캬)이다.
43. 전사들의 의무(7)는 용감하고, 굽히지 않고, 두려움이 없고, 섬세한 기술을 지니고, 너그럽고, 전투에서 물러나지 않고, 단호한 통솔력을 지니는 것이다.
44. 다른 이들에게 무엇인가를 제공하는 일(섬기는)을 위해 태어난 사람들(수드라. 육체 지향적인 사람들)이 있다. 상인, 농부, 가축을 키우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그것들이 그들에게 주어진 의무이다.
45. 자신의 성품(바사나)에서 나온 의무에 헌신함으로 사람들은 완성에 이를 수 있다. 어떻게 그러한지 알려주겠다.
46.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면서 모든 피조물 안에 있는 신을 숭배(카르마 박티)함으로써 그 사람은 완성(갸나, 지식)에 이를 수 있다.
47. 다른 사람의 의무를 잘 하는 것보다는 불완전하게라도 자신의 의무를 하는 것이 더 낫다. 자신의 성품에 따라 운명 지어진 의무를 행하면 그에게 결코 슬픔이 오지 않는다(죄를 지을 수 없다.).
48. 자신의 성품에 따라 운명 지어진 의무는 비록 결점이 있더라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불이 연기에 에워싸여져 있듯이, 모든 행위들은 결점(구나)들로 뒤덮여 있다. 오, 쿤티의 아들이여!
49. 지성이 대상들(아내, 자식, 몸과 재산 및 여러 대상들)에 대한 애착에서 자유롭고, 마음과 감각들(자신)을 정복하였고(할 수 있으며), 욕망(몸, 생명, 감각의 쾌락)이 달아난 사람(그는 초연과 식별로 가득 찬다. 그래서 존재와 지식과 희열의 성품인 나에 점차로 자리를 잡는다. 거기에는 행위의 중지가 있다.)은, 포기로 행위로부터 자유라는 지고한 상태를 얻는다(아트만이 행위 없는 브람만과 동일하다는 것을 알아, 모든 행위들이 그에게서 없어진다).
50. 어떻게 완벽해진(은총의 결과로 지식에 대한 헌신을 위해 준비된 몸과 감각들) 사람이 지식의 최고의 상태인 브람만에 이르는지를 이제 나에게서 배워라. 오, 쿤티의 아들이여!
51. 순수한 지성(깨끗한 거울. 순수한 지성은 브람만이다. 그것은 쉽게 브람만에 잠긴다. 순수한 지성이 브람만에 잠기면, 지바도 브람만에 잠긴다. 지바는 브람만과 동일하다.)을 지니고 있고, 몸과 감각들(자아, 감각들은 프리타야하라의 수행을 계속하여, 감각들을 나를 향하게 함으로 감각들이 통제된다.)을 확고하게 통제하며, 소리 등과 같은 감각의 대상들을 멀리하고(몸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로 만족하고, 불필요한 모든 사치품들을 멀리한), 좋아함과 싫어함으로부터 자유로운(과거의 삶들의 결과로서 기쁨과 고통을 만난다면 그는 그것이 일어나도록 하거나 후회하지 않는)
52. 그런 사람은 한적한 곳(나를 명상할 수 있는 조용하고 방해가 없는 곳. 그곳에서 강렬한 수행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명상이 저절로 올 것이다. 나를 깨달은 모든 현자들과 성자들은 몇 년 동안을 한적한 곳에 머물렀다.)에 머물며, 가볍게 식사를 하며(삿트와적인 식사. 너무 많은 식사를 하면 졸릴 것이다. 과도한 단식으로 몸을 벌하지 말고), 육체와 말과 마음을 통제(가벼운 몸과 빛, 쾌활하고 고요한 마음)하며, 항상 명상(나, 크리슈나, 라마, 쉬바, 예수, 붓다, 브람만)에 몰두하는 삶을 산다.
53. 자아(몸을 아트만과 잘못 동일시하는), 강함(신체적 강함이 아니라 열정, 욕망과 애착의 강함, 신체적 강함을 버리는 것은 불가능), 오만, 욕망, 화와 탐냄이 떠나고(버리고), ‘나의 것’이라는 개념으로부터 자유롭고, 평화로운 사람(아트만 지식에 헌신하는 위의 것들을 가진 구도자)은 브람만과 하나가 될 준비가 되었다(생각이 없는 사마디 상태 동안에 깨달음의 빛이 발산한다. 신성한 영적 교감이 온다. 이원성은 사라진다.).
54. 브람만과 하나 되어(자신을 마음으로 알고 있던 구도자가 마음 너머에 있는 찬란한 바탕을 발견하고 놀란다. 자신은 사라지고 그것에 잠긴다. 그것은 현현의 바탕이라는 것을 안다. 그것을 신이라고 칭하기도 하지만 다른 전통에 있는 다른 이름으로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아트만 안에서 고요해진 사람은 슬퍼하지도 욕망하지도 않는다(몸과 감각들과 마음과 너머에 있는 것을 발견했기에 그는 신비를 발견한 미스틱한 사람이 된다. 그것 이상의 얻음은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존재들을 동등하게 수용하게 된(여러 존재들이 같은 바탕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기에 다른 존재들의 기쁨과 슬픔이 자신의 것으로 다가온다.) 그들은 나에 대한 최고의 사랑에 이른다(신은 아트만으로서 모든 존재들 안에 있다. 모든 곳에 퍼져 있는 순수한 의식으로 있는 신, 비이원이고 태어남이 없고 부패가 없고 나누어지지 않고 변하지 않고 .... 세상은 그것의 현현이라는 앎에 이른다. 같은 신이 우리 모두 안에 있다. 우주적 사랑. 모든 존재가 그분이다. 이것이 마지막이 아니라 하나 더 있다.).
55. 나에 대한 사랑으로 그들은 내가 정말로 누구인지(푸루샤이고, 공간과 같고, 이원이 아니고, 의식이며, 순수하고, 단순하고, 생겨난 적이 없고, 쇠퇴하지 않고, 죽지 않고, 두려움이 없는)를 안다. 그때 그들은 나의 영광을 알며 지고한 나 안으로 들어온다(파라 박티, 즉 끊이지 않는 신에 잠김의 상태. 자연스러운 사마디의 상태에 있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즉 갸나 니슈타, 혹은 브람만 니슈타에 있도록. 이것에 늘 있는 사람을 갸니라고 한다.).
56. 그들이 하는 모든 행위들은 나에 대한 봉사로 내 앞에 바쳐진다. 온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잠기는 사람은 나의 은총에 의해 영원한 거처에 이른다.
57. 모든 행위들(좋은 행위들 및 금지된 행위들까지도)을 마음(신에게 바친다는 정신으로 사심 없는 일들을 함으로 가슴이 정화될 때 그 지식은 마침내 해방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식별적인 믿음)으로 나에게 바쳐라. 나를 그대의 가장 높은 목표라 여겨라. 나를 그대의 유일한 안식처로 알라. 항상 식별의 요가를 하면서 그대의 마음을 나에게 고정시켜라.
58. 그대의 마음을 나(신은 신체적 형상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제16장 1,2,3 수트라에 있는 26개의 속성 혹은 삿칫아난다)에게 고정시키면, 그대는 나의 은총으로 모든 어려움들을 극복할 것이다. 하지만 그대가 자만으로(자아로) 가득하여 나의 말을 듣기를 거부한다면, 그대는 파멸하게 될 것이다(소용이 없을 것이다.).
59. 만약 그대가 자아로 가득하여 “저는 싸우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해도, 그대의 결심은 헛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대의 성품(자연, 아르주나의 크샤트리야라는 내면의 성품. 바사나로 생긴 그의 라자스 구나)이 그대를 전투로 몰고 갈 것이다.
60. 왜냐하면 그대는 자신을 구속하는 카르마를 직접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대는 그 힘에 대해 무력하다. 그대의 의지에 반하여 그대는 전투를 하게 될 것이다(한쪽에는 바사나, 다른 쪽인 안에는 신성한 소리가 있다. 수행으로, 경전의 공부로, 구루의 가르침으로 신성한 소리를 강하게 할 수 있다. 26개의 자질들을 함양하면).
61. 신(주재자인 나라야나.)은 모든 존재들의 가슴(신체의 가슴이 아니라, 존재의 중심에 있는 정말로의 행위자)에 있다. 그는 모든 존재들을 자신의 놀라운 힘(프라크리티, 마야, 물질, 모든 존재의 충족되지 않는 욕망)으로 카르마에 따라(마치 바퀴 위에 있는, 회전목마를 타고 있는 인형인 듯) 회전시킨다. 오, 아르주나.
62. 오, 바라타의 후예여! 그대의 온 힘을 다하여 그분(제16장의 1,2,3 수트라의 덕목, 자아를 복종시켜야)에게 피난하면(안식처를 구하러 가면), 그분의 은총으로 깊은 평화는 그대의 것이 될 것이다(그대는 모든 변화들 너머에 있는 지고한 평화와 영원한 거처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63.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나는 비밀들 중의 비밀(해방을 얻기 위한 모든 길들. 즉 카르마, 박티, 갸나, 명상 등이 전해졌다. 마지막 지식은 칫, 즉 의식이다. 마지막 진리는 삿이다. 이것은 모든 고통의 끝인 아난다를 준다.)을 그대에게 가르쳤다. 그것 모두를 주의 깊게 생각해 보고, 그대가 좋아하는 대로 하라.
64. 나의 지고한 말을 다시 들어보아라. 이것은 모든 진리 중 가장 심오한 것이다. 그대는 내가 선택했다. 그러므로 그대의 영적 완성(유익)을 위하여 나는 말할 것이다.
65. 그대의 마음을 나에게 고정시켜라 (마음이 방황하면, 계속해서 명상의 대상에게로 계속해서 데려오라.). 그대의 모든 행위들을 나에게 바쳐라(그대의 입술로는 나의 이름을 말하라. 그대의 손들은 나를 위해서 일을 하라. 그대의 발들은 나에게로 움직여라). 나에게 존경을 표하라(나에게 절하라. 복종의 자세를 취하면 신 혹은 스승으로부터 최상의 것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대는 (나의 은총으로) 나를 발견할 것이다. 이것이 그대를 아주 사랑하는 나의 약속이다.
66. (제2장 7 수트라에 있는 아르주나의 물음에 대한 답) 모든 (하위의) 의무들(다르마를 의무로 번역. 다르마의 의미는 우주적 법칙. 인간은 여러 다르마를 해야 한다. 그러나 우주의 다르마는 궁극적으로 신이 하고 있다. 지바가 가지고 있는 세상의 모든 다르마 즉 의무. 그것들은 모두 자아에서 나온 의무들일 것이다. 경전들이 명하는 다르마, 즉 의식들조차도 포함하여. 구나들은 그대가 아니다. 모든 하위의 의무들을 버리지 않으면 신을 발견할 수 없다. 진정한 헌신자는 그렇게 한다. 그리고 기억하라. 나로부터 빌린 힘들이 없이는 그대는 어떤 의무조차도 행할 수 없다.)을 포기하고, 유일한 피난처(기억을 못하고 있는, 잃어버리고 있는 집, 그대의 영원한 피난처)인 나(최고의 다르마, 나를 얻는 이는 생명을 얻고, 잠언 8.35. 일원으로 있는, 모든 형상들의 바탕으로 있는 나, 모든 것의 아트만인 나, 의식 혹은 자각 밖에 없다. 나만을 기억하라. 나 속에서 그대의 아트만을 발견하라.)에게로 오너라. (만약 그대가 이것에 자리를 잡는다면) 나는 모든 죄(속박)들로부터 그대를 해방시킬(나는 빛으로 무지에서 생긴 어두움을 소멸시킨다.) 것이다. 슬퍼하지 말라.
67. 고행(자기 수련)과 헌신이 없거나(나를 사랑하지 않거나), 봉사하지 않거나, 들으려 하지 않거나, 나를 나쁘게 말하는 사람에게는 이 지혜를 나누지 말라(가르치지 말라.).
68. 하지만 나를 사랑하고 나에게 헌신하는 사람들에게 기타의 이 지고한 비밀(진리)을 가르치는 사람은 확실히 나에게로 올 것이다.
69. 누구도 나에게 이보다 더 큰 봉사를 할 수 없다. 나에게 그보다 더 소중한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70. 그리고 누구라도 우리의 이 신성한 대화를 명상한다면, 나는 그가 지식의 헌신(갸나 얏나)으로 나를 숭배했다고 여길 것이다.
71. 믿음으로 이 말들을 듣고 그것을 의심하지 않는다면, 그 역시 죄들로부터 해방되어 의로운 사람들이 사는 하늘에 닿을 것이다.
72. 오, 아르주나여! 그대는 나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는가? 이제 무지에서 생겨난 미혹들이 소멸되었는가?
73. 당신의 은총으로, 오, 신이시여, 저의 (진정한 성품에 대한) 기억을 되찾았습니다. 저의 의심(미혹)들이 사라졌고 확고합니다. 저는 당신의 말씀을 따를 것입니다.
74. 이와 같이 저는 신 크리슈나와 고귀한 영혼을 지닌 왕자 간의 이 놀라운 대화를 들었습니다.
75. 비야사의 은총으로 저는 이 지고하고 가장 비밀스러운 요가를 요가의 신이신 크리슈나로부터 그분의 말씀을 직접 들었습니다.
76. 오, 왕이시여! 케사바와 아르주나 간의 이 경이롭고 신성한 대화를 기억할 때마다 저는 거듭거듭 기쁩니다.
77. 그리고 오, 왕이시여! 크리슈나의 가장 놀라운 모습을 회상할 때마다 저는 말할 수 없는 경이로움을 느끼며 다시 또다시 기뻐합니다.
78. 요가의 신이신 크리슈나께서 계시는 곳마다, 궁수인 아르주나가 있는 곳마다, 그곳에는 번영, 평화, 승리와 영광이 있음을 저는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