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1 유석근 알이랑~ 샬롬!
동방박사들은 예수님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별의 인도를 받아 드디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별의 인도를 받아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을 찾은 곳은 베들레헴이었을까요? 아닙니다. 그때 예수님은 나사렛에 계셨습니다. 동방박사들은 나사렛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동방박사들은 헤롯의 말을 듣고 베들레헴으로 가다가 갑자기 별이 그들의 앞을 인도해서 그 별을 따라가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마 2:9). 이미 박사들은 베들레헴을 향해 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때에 예수님이 베들레헴에 계셨다면 동방에서 봤던 그 별이 갑자기 다시 나타나서 박사들을 인도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동방에서 보던 별은 예수님이 베들레헴에 계시지 않았기 때문에 박사들을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정확히 인도하기 위해 다시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박사들이 별의 인도를 받아 당도한 곳은 나사렛이었습니다.
만약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이 탄생하던 날에 '갓난아기'(블레포스)이신 예수님을 을 방 문했다면 그들이 방문한 장소가 베들레헴이 틀림없겠지만 예수님이 탄생하신 뒤 어느 정도 세월이 흘러 '어린아기'(파이디온)이신 예수님을 만났다면 그때 에수님은 베들레헴보다는 갈릴리 나사렛에 있었을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이 고향 갈릴리 나사렛을 떠나서 베들레헴에 간 이유는 베들레헴에 정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로마 황제 아구스도가 호적을 정리하라는 명령을 내렸기에 잠시 베들레헴을 방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눅 2:1~5).
그 호적 정리를 마치고 요셉은 규례대로 난지 8일만에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예수님에게 할례를 시행하고 갈릴리의 자기가 살던 마을 나사렛으로 돌아갔다는 사실(눅 2:39)을 볼 때 예수님은 태어난 후 최고 7일 동안만 베들레헴에 있었고 그 후에는 동방박사가 방문한 직후부터 헤롯이 죽을 때까지 잠시 얘굽에서 피신차 머물렀던 시기(마 2: 13~23)를 제외하고는 줄곧 나사렛에서 사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이 탄생하신 후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른 후에 예수님을 방문했다면 그때 예수님은 이미 베들레헴의 구유를 떠난 후였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예수님이 갈릴리 나사렛으로 돌아가 '집'에 있을 때 예수님을 방문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대략 두살쯤 되었을 때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갓난아기'(블레포스)가 아닌 '어린아기'(파이디온)이셨기 때문입니다.
질문에 감사합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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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신앙중심 스크랩 동방박사들의 고국과 마지막 세기의 동방박사들
상당구 추천 0 조회 46 08.12.22 10:13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동방박사들의 고국과 마지막 세기의 동방박사들
이 글은 앞서 올린 글 "복음의 마지막 주자 동방의 독수리" 에서 계속 이어지는 글입니다. 처음 방문하신 분은 "복음의 마지막 주자 동방의 독수리"를 먼저 읽으시기 바랍니다. 오래 전에도 올린 바 있으나 일부 수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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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 가니라”(마 2:12)

예수님께서는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라고 위임하시고 승천하셨으며,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면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셨다(행 1:8, 마 24:14). 복음 전도의 마지막 과제로서의 ‘땅끝’은 의문의 여지없이 예루살렘이다. 우리는 앞서 마지막 때에 그 예루살렘으로 “동방의 먼 나라”, 곧 욕단 계열 성민의 나라인 코리아에서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구원할 복음 전도자들이 달려갈 것이라는 구약성경 이사야의 예언의 말씀(사 52:7~10; 46;10~13; 41:25~27; 55:1~9)들을 상세히 살펴보았다.

그런데 사실상 그와 같은 일은 새로운 사건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미 2천년 전에도 한 동방의 먼 나라에서 예루살렘으로 ‘복음’을 전하러 찾아 간 위대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동방박사들이다.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 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2:1~2).

구세주가 탄생하셨다는 메시지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눅 2:10), 곧 ‘복음’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기 예수께서 이스라엘에 태어나셨을 때 정작 이 복음을 예루살렘까지 찾아가서 유대 백성들에게 전달하여 준 사람은 동방에서 찾아간 일단의 현자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도시 전체에 소동이 일어났다.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마 1:2)

이 사건은 대단히 기이한 일이다. 어떻게 이방인을 통해서 유대인들이 메시아가 탄생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야단법석을 떤다는 말인가? 참으로 주객이 전도 되도 한참 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때에 동방박사들은 여호와 하느님의 구체적인 ‘계획’ 가운데 복음을 들고 예루살렘까지 갔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마태복음 2장 9절 말씀이 입증해 준다.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 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섰는지라”(마 2:9)

동방에서 보았던 별이 앞서 가다가 문득 아기 있는 곳 위에 와서 멈추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애초에 박사들이 그들의 고국인 동방의 하늘에서 메시아의 별을 발견했던 일부터가 하느님의 특별 섭리 아래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은 동방박사들이 우연히 경험한 사건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하느님의 마음속에는 동방의 어느 나라에서 일단의 현자들을 먼 예루살렘으로 보내시어 그들로 하여금 유대인들에게 구세주가 태어났다는 사실을 전하게 하시려는 분명한 계획과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하느님은 1세기에 그렇게 놀라운 일을 행하셨다.

따라서 말세에 ‘동방의 먼 나라’ 한반도에서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구원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복음을 전할 자들이 달려갈 것이라는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은 결코 이해하기 어려운 계시가 아닌 것이다. 어디까지나 2천년 전에도 여호와 하느님은 그와 같은 일을 행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1세기에 동방의 현자들이 예루살렘으로 찾아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한 사건은 마지막 세기에 다시 한 번(once again) ‘동방’, 곧 ‘코리아’의 현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달려가 구원의 복음을 선포할 것에 대한 ‘예시적 ․ 예표적’ 사건이었다. 1세기의 사건이 마지막 세기에 재연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교회는 동방박사의 고국에 관한 기존의 이론을 원점에서 주체적으로 재해석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동방박사들의 고국도 역시 우리나라였을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서구 성경주석가들은 동방박사들의 고국이 페르시아일 것이라고 추측해 왔다. 그 이유는 B.C. 8세기에서 6세기에 이르는 동안 유대인들이 세계 곳곳으로 흩어질 때에 페르시아와 그 주변 나라들의 성읍으로 이주했는데(왕상 17:6, 에 1:9; 9:2), 그 나라에서 민수기 24장 17절에 기록된 예언에 따라 구세주가 탄생할 때에는 특별한 별이 나타날 것이라고 전파했을 것이고, 그 결과 메시아의 탄생을 알려주는 한 별이 몇몇 페르시아의 박사들에게 나타나자 그들이 새로 나신 유대인의 왕께 경배 드리기 위해 유대 땅을 향해 길을 떠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고전적인 동방박사 페르시아인 설은 성경을 자세히 상고해보면 수긍할 만한 이론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존의 페르시아인 설에 너무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아마 코페르니쿠스적 사고의 전환을 요구하는 혁신적 주장이 되겠지만, 동방박사들의 고국은 성경의 기록을 주의 깊게 살펴볼 때 유대 땅에서 “가장 먼 나라”인 ‘신라’일 것이라고 충분히 단정할 수 있다. 여기에서 그 타당한 근거를 살펴보자.

브레포스(βρέφος)와 파이디온(παιδίον)

동방박사들의 내방 사건은 마태복음 2장에 기록되어 있고, 목자들의 마구간 방문 사건은 누가복음 2장에 기록되어 있다. 보통 누가복음 2장의 ‘마구간’ 기사와 마태복음 2장의 ‘동방박사’ 기사를 동일한 시간상의 사건으로 생각한다. 많은 성탄 노래와 그림, 성탄 관련 성극들이 그것을 조장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두 사건 사이에는 적어도 1년 이상 2년 이하의 시간적 격차가 있다.

한글 개역성경은 동방박사들이 방문했던 아기와 목자들이 방문했던 아기를 똑같이 아기라고 번역했지만, 헬라어 성경에 기록된 아기라는 말의 원어는 전혀 다른 단어가 사용되었고, 그 의미 또한 같지 않다. 목자들이 방문하여 만났던 누가복음 2장의 아기는 헬라어 “브레포스”가 사용되었고(12절, 16절), 동방박사들이 방문하여 만났던 마태복음 2장의 아기는 헬라어 “파이다온”이 사용 되었다(8절, 9절, 11절, 13절, 14절, 20절).

헬라어 사전에 의하면 “브레포스”는 ‘갓난아기(baby)’를 뜻하는 말이고, “파이디온”은 ‘어린아이(young child)’를 뜻하는 말이다. 신약성경의 모든 용례를 살펴보면 이 두 단어는 나이의 개념을 분명히 할 때, 즉 “더 어리”고 “덜 어린” 아이를 묘사할 때 쓰인다. 영어성경은 원어의 뜻에 맡게 누가복음 2장의 아기는 ‘baby’로, 마태복음 2장의 아기는 ‘child’로 구분하여 잘 번역하였다.

아기라는 낱말에 대한 헬라 원어의 이와 같은 분명한 차이점으로 미루어 볼 때 누가복음 2장의 목자들 이야기와 마태복음 2장의 동방박사 이야기는 틀림없이 시간적 간격이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 2장의 아기가 누가복음 2장의 아기보다 얼마 더 자란 아기이기 때문이다.

두 살 이하의 아이들이 학살당함

그러면 누가복음 2장의 목자들 사건과 마태복음 2장의 동방박사들 사건은 어느 정도의 시간적 차이가 있을까? 최하 1년 이상 최고 2년 이하의 시간적 간격이 있다. 왜? 헤롯이 동방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베들레헴과 그 지경 안에 있는 모든 사내아이들을 죽일 때,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 본 그 때를 표준 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였기 때문이다(마 2:16).

그 때가 만약 예수님이 갓 태어난 갓난아이(baby)였다면, 헤롯은 결코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일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한 살부터 그 아래 혹은 생후 6개월부터 그 아래의 사내아이들만 다 죽여도 헤롯은 충분히 안심했을 것이다. 바로 이 사실은 동방박사들이 어린 예수를 만났을 때는 예수님이 탄생했을 때 이후로 꽤 시간이 흘렀고 대략 최고 2년이 지난 시점이었으며, 따라서 이 당시 예수님은 이미 2살은 조금 못됐겠지만 상당히 자란 아이였을 것이라는 증거가 된다.

이 같은 사실들로 미루어볼 때 누가복음 2장의 목자들 이야기와 마태복음 2장의 동방박사들 이야기는 약 2년의 시간적 격차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이것은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까지 약 2년에 걸쳐 여행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고하는 별이 아닌 알려주는 별

그러므로 동방박사들이 동방에서 본 그 별은 아기 예수님이 유대 땅에서 탄생하셨음을 알려주는 것이었지,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하는 별이 아니었다. 이것은 마태복음 2장 2절에 동방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찾았다고 했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실 이”를 찾는다고 하지 않았음을 볼 때 더욱 분명해진다.

그 별은 예수님이 베들레헴에 탄생하셨을 때 동방에 나타났음에 틀림이 없고, 아기(baby) 예수님이 탄생하신 그 밤에 베들레헴 근처의 목자들이 천사들이 가르쳐준 메시아 탄생 소식을 듣고 즉시 마구간에 갔으며, 먼 동방의 현자들은 바로 그때부터 출발하여 약 2년의 긴 기간 동안 여행을 해서 마침내 유대 땅에 이르러 “파이디온”(어린아이: child)이신 예수님께 황금, 유향, 몰약을 바치며 경배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직후 요셉의 가정은 헤롯의 학살을 피해 애굽으로 피신했으며(예물로 받은 황금은 요셉의 가정이 애굽으로 여행할 때 긴요한 자금이 되었을 것이다), 베들레헴과 그 지경 안에 있는 두 살 이하의 어린아이들은 떼죽음을 당했다. 그러니까 당시의 아기 예수님은 ‘갓난아기’(브레포스: baby)가 아닌 ‘어린아이’(파이디온: child)로서, 아기 예수님의 나이는 한 살이 지나 두 살이 조금 되지 않은 나이였던 것이다.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을 방문했을 때는 예수님이 탄생했을 때 이후로 꽤 시간이 흘렀고, 대략 최고 2년이 지난 시점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마구간과 집

따라서 목자들이 아기 예수를 찾아 방문한 곳과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찾아 방문한 장소는 다를 수밖에 없다. 누가복음 2장에서 목자들이 왔을 때 ‘아기’(브레포스: baby)는 마구간 ‘구유(manger)’에 누워 있었다.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보고”(눅 2:16~17). 그러나 동방박사들은 마구간이 아닌 ‘집(house)’에서 아기(파이디온: child)께 경배했고, 목자들이 방문했던 때와는 달리 요셉은 당시에 그곳에 없었다(아마 목수였던 요셉은 일하러 나갔을 것이다).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마 2:11)

이 구절에서 ‘집’이라는 단어에 주목해야 한다. 마구간도 아니고, 여관도 아니고 분명히 ‘집’이라고 되어있다. 동방박사들은 마구간이 아닌 집에서 갓난아기(baby)가 아닌 약 2살 쯤 된 어린아이(young child)이신 예수님을 만났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동방박사들은 예수님이 구유에 있을 때 예수님을 방문했다고 알고 있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약 2년이 소요되는 여행 거리, 페르시아인가? 극동인가?

별은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 나타났음에 틀림없고,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에 가서 헤롯을 만나기까지는 1년 이상이 더 걸렸음이 분명하다. 그들이 동방으로부터 유대나라에 도착하기까지는 2년 가까이 소요되었던 것이다. ‘동방(the east)’은 그 밤에 별을 보고 그 밤에 예루살렘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가 결코 아닌 것이다.

별은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 출현하였고, 그와 동시에 박사들이 그 별을 보고 인도되어 왔다면 시일이 상당히 걸린 후에 아기 예수님을 보았을 것이 아니겠는가? 바로 이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 사실은 동방박사들의 고국을 파악하는 데 아주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준다.

동방박사들이 약 2년에 걸쳐서 여행했다는 것을 고려해 볼 때, 지금까지 널리 알려진 서구 성경학자들의 동방박사 페르시아인 설은 결코 지지할 수 없는 이론이다. 페르시아는 유대 나라로부터 가까운 동방으로서 아무리 길게 잡아도 10일 이내에 갈 수 있는 거리이기 때문이다. 동방박사들이 유대 나라를 내방 하는데 약 2년 이라는 긴 시간을 여행 하였다면 그들의 고국은 유대 땅으로부터 상당히 먼 동방이었을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가장 먼 동방의 나라는 아시아 동쪽 땅끝에 자리잡고 있는 우리나라다. 따라서 동방박사들은 신라인이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B.C. 4년 신라인이 관측했던 특별한 별

이것은 우리나라의 고대 역사책에 의해서도 뒷받침 된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시조 박혁거세 편에 보면 “54년 봄 2월(음력)에 패성(혜성)이 하고(견우성)에 나타났다”(五十四年春二月己酉. 悖星于河鼓)는 문구가 있는데, 박혁거세 54년은 예수님이 탄생하신 년도인 B.C. 4년에 해당된다(예수님은 한겨울에 탄생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태어나셨을 때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양떼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팔레스틴에 사는 목자들은 한겨울에 들판에서 밤을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신라인에 의해 관측된 그 혜성은 동방박사들을 인도했던 메시아의 별일 가능성이 크다. 사실 예수님 탄생 당시 천문학이 가장 발달한 곳은 중근동 지역이 아닌 극동지역이었다는 것이 현대 천문학계의 정설이다. 신라는 천문학수준이 매우 높은 나라였다. 지금도 경주에 가면 신라인들이 별을 관측했던 세계 최고의 천문대인 첨성대가 우뚝 서 있다.

영국의 왕립천문학회(RAS)에서는 1977년 학회기관지 12월호에 메시아의 별이 나타났다는 2천년 전에는 세계에서 가장 천문학이 발달한 곳이 중동과 극동이었고 중동에서는 태양력을 주로 연구한 반면 극동에서는 별의 운행을 주로 연구했기 때문에 만약 메시아의 별이 나타났다면 그 기록은 반드시 극동 쪽에 있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한국의 문헌을 뒤져서 앞서 소개한 삼국사기의 기록을 발표한 적이 있다.

신라인은 메시아의 별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신라인은 어떻게 메시아의 별을 알아 볼 수 있었을까? 위고다르(G. Wigodar)는 솔로몬 사후인 B.C. 721년 앗시리아 침공에 의해 북이스라엘의 10지파가 포로가 되었으며, 세계의 곳곳에서 그들의 자손들이 발견된다고 한다(G. Wigodar, The Encyclopedia of Judaism, Jerusalem, 1989, pp.714, 715). 고대 이스라엘 역사 연구가인 요셉 아이델버그(Joseph Eidelberg)는 역설키를 B.C. 721년 북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했을 때 북왕국 10부족 중 일부가 천산산맥 →중앙아시아→지나(支那)→한국으로 이주하여 정착했다고 한다.

이것을 입증하는 고고학적 유물이 있다. 대동강변에서 제작 연대가 B.C. 1200년으로 추정되는 고대 히브리어 문양(紋樣)이 새겨진 와당(瓦當)이 발견된 것이다. 이 와당들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나온다. 먼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돼 있는 유물번호 215호의 경우는 “신의 나라에 단결하여 들어가자”라는 내용이 표기돼 있다.「조선와전도보」에 기록된 유물번호 186호의 와당에는 ‘도착했다’(תפש)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더불어 유물번호 226호에는 “성도가 모여 기도함으로 하느님 나라가 회복 된다” “잠언을 가르치는 사사가 통치한다”는 내용이 있다(「조선와전도보」에 소개된 와당은 일본의 고문화 연구소 이우찌 이사오 씨가 소장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신의 나라에 단결하여 들어가자”는 글이다. 벨렉계 선민이었던 그들은 백의민족이 살고 있는 우리나라가 욕단계 선민의 나라인 것을 알았던 것 같다. 고대 히브리어를 사용하던 그들은 신의 나라(천손민족의 나라)를 찾아 이동하다가 마침내 한반도에 이르러 신앙공동체를 이루며 살았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동짓날만 되면 팥죽을 만들어 각 방의 문설주를 비롯, 장독과 헛간 등에 뿌리던 우리 겨레의 풍습은 바로 그들, 곧 한반도까지 건너온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지파로부터 유래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붉는 색의 팥죽으로 양의 피를 대신한 유월절 행사였다(출 12:6; 23).

실제로 흩어진 북이스라엘의 10지파 중 일부가 수세기를 걸쳐 동쪽으로 이주하다가 최후로 한반도 남단까지 내려와서 가야 왕국이나 신라 왕국의 백성들이 되었다면 그들을 통하여 메시아의 별에 대한 지식이 신라인에게 전파되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뿐만 아니라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보면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 왕의 부인은 인도 중부 ‘아유타’ 국의 공주 허황옥이라고 했는데, 그 ‘아유타’ 국은 ‘유대인 공동체’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아유타’의 ‘아’는 히브리어 정관사 ‘하’(󰕘�)이고 ‘유타’는 ‘유다’란 말로서, ‘아유타’ 국은 바벨론 포로 이후 흩어진 남유다 왕국의 유민이 세운 나라였다는 것이다.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 왕의 부인이 그 ‘아유타’ 국의 공주 허황옥이라면, 가락국과 아유타국은 허 황후 이전부터 이미 교류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바로 그 때에 메시아의 별에 대한 지식이 우리나라 신라인들에게 전파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동방박사들의 고국은 어디인가? 그들은 동방의 어느 나라 사람인가? 성경의 기록을 자세히 고찰해 보면 그들은 유대 땅에서 ‘근거리’가 아닌 ‘아주 먼 동방의 나라’로부터 찾아 갔었다고 단정하게 된다. 그 나라는 예루살렘 정동쪽으로 가장 먼 땅인 신라에 해당된다. 따라서 동방박사들은 신라인이라고 얼마든지 추정할 수 있다. 이같은 이론은 상술한 바와 같이 한국의 고대 역사 기록에 의해서도 뒷받침이 되고 있는 것으로서 기존의 페르시아인 설보다도 더욱 설득력이 있다. 더군다나 천손민족(서쪽의 벨렉 계열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또 하나의 천손민족(동쪽의 욕단 계열 알이랑 민족)이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이치에 합당한 일이라고 할 때, 우리는 앞서 고찰한 모든 근거들을 바탕으로 동방박사들은 신라인이었다고 충분히 단언할 수 있다.

신라의 천문박사들이 메시아의 별을 보고 황금(신라의 금이 많은 나라임), 유향, 몰약을 예물로 가지고 약 2년에 걸쳐서 긴 여행을 하여 마침내 예수님이 계셨던 ‘집’에 도착해서 아기 예수께 경배했을 것이다. 바로 그들이 마태복음 2장에 기록된 동방의 현자들이었다.

그렇다면 여호와 하느님은 이미 2천년 전에도 아시아 동쪽의 욕단계 선민 한국인을 먼 예루살렘으로 보내시어 아시아 서쪽의 벨렉계 선민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말세에 ‘동방 의 먼 나라’, 곧 한반도에서 예루살렘으로 복음을 전할 자들이 찾아갈 것이라는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은 결코 난해한 계시가 아닌 것이다. 1세기에 행하셨던 일을 하느님은 마지막 세기에 다시 행하시고자 하신다. 이에 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전 1:9~10)

이제야 우리는 왜 구세주가 탄생했을 때 메시아의 별이 ‘동방’에 나타났는지 그 근본적 해답을 찾게 되었다. 거기에는 하느님의 ‘특별 섭리’가 있었던 것이다. 왜 2천년 전 첫 번째 성탄절 날 메시아의 별은 ‘남방’이나 ‘북방’이나 ‘서방’에 나타나지 않고 ‘동방’의 하늘에 나타났는가? 동방에는 하느님이 감추어 두신 선민, 곧 ‘욕단계 선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호와 하느님은 2천년 전에도 메시아 탄생의 기쁜 소식을 다른 민족이 아닌 욕단계 선민 ‘알이랑민족’을 사용하시어 벨렉계 선민 유대민족에게 전달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그렇다! 1세기든 말세든 천손민족에게는 천손민족이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신실하신 하느님의 섭리며 뜻이다.

Once again go to jerusalem!

마지막 때에 동방의 성민 한국인은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을 성취하기 위해 2천년 전의 동방박사들처럼 다시 한 번(once again) 알이랑(하느님과 함께) 고개를 넘어 예루살렘으로 복음 들고 힘차게 달려갈 것이다(사 41:25~27, 46:1~13, 52:7, 55:1~9; 계 7:1~8). 바로 그 때에 유대민족은 과거에는 결코 목도할 수 없었던 큰 규모로 회개하고 예수님 앞으로 돌아와 구원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유대민족이 구원받으면 예수님이 재림하신다. 이 얼마나 위대한 사명인가! 다시 오실 왕의 대로를 수축해야 할 구원사적 사명이 알이랑민족 한국인에게 부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에 합당한 구호는 “Once again go to jerusalem!”(예루살렘에 다시 가자!)이다. 우리 한국 교회는 “Back to jerusalem”이 아니라 “Once again go to jerusalem!”(예루살렘에 다시 가자!)이라는 모토 아래 아시아 서쪽으로 복음을 들고 진격해 가야 한다.

2천년 전에 이 땅에서 동방의 현자들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갖고 예루살렘에 찾아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큰 소동이 일어나게 했듯이(마 2:3), 장차 욕단계 선민 한국인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구원하기 위해 다시 복음을 들고 알이랑 고개를 넘어 예루살렘으로 달려가 또 한 번 성지(聖地)에서 거룩한 소동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실로 그들은 “마지막 세기의 동방박사들”이라고 할 것이다. 할렐루야!



유석근 목사(알이랑민족회복운동)
club.cyworld.com/alilang
www.알이랑.com
유석근 No. 54, Read: 426, Vote: 0, Date: 2006/11/25 18:09:28
김종영 잘 읽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가 놀랍군요...그리고 약간의 의문점을 풀었으면 합니다 동방박사들이 찾아간 곳은 베들레헴인가요 아니면 나사렛인가요? 부탁드립니다
12/21
유석근 알이랑~ 샬롬!
동방박사들은 예수님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별의 인도를 받아 드디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별의 인도를 받아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을 찾은 곳은 베들레헴이었을까요? 아닙니다. 그때 예수님은 나사렛에 계셨습니다. 동방박사들은 나사렛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동방박사들은 헤롯의 말을 듣고 베들레헴으로 가다가 갑자기 별이 그들의 앞을 인도해서 그 별을 따라가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마 2:9). 이미 박사들은 베들레헴을 향해 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때에 예수님이 베들레헴에 계셨다면 동방에서 봤던 그 별이 갑자기 다시 나타나서 박사들을 인도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동방에서 보던 별은 예수님이 베들레헴에 계시지 않았기 때문에 박사들을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정확히 인도하기 위해 다시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박사들이 별의 인도를 받아 당도한 곳은 나사렛이었습니다.
만약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이 탄생하던 날에 '갓난아기'(블레포스)이신 예수님을 을 방 문했다면 그들이 방문한 장소가 베들레헴이 틀림없겠지만 예수님이 탄생하신 뒤 어느 정도 세월이 흘러 '어린아기'(파이디온)이신 예수님을 만났다면 그때 에수님은 베들레헴보다는 갈릴리 나사렛에 있었을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이 고향 갈릴리 나사렛을 떠나서 베들레헴에 간 이유는 베들레헴에 정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로마 황제 아구스도가 호적을 정리하라는 명령을 내렸기에 잠시 베들레헴을 방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눅 2:1~5).
그 호적 정리를 마치고 요셉은 규례대로 난지 8일만에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예수님에게 할례를 시행하고 갈릴리의 자기가 살던 마을 나사렛으로 돌아갔다는 사실(눅 2:39)을 볼 때 예수님은 태어난 후 최고 7일 동안만 베들레헴에 있었고 그 후에는 동방박사가 방문한 직후부터 헤롯이 죽을 때까지 잠시 얘굽에서 피신차 머물렀던 시기(마 2: 13~23)를 제외하고는 줄곧 나사렛에서 사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이 탄생하신 후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른 후에 예수님을 방문했다면 그때 예수님은 이미 베들레헴의 구유를 떠난 후였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예수님이 갈릴리 나사렛으로 돌아가 '집'에 있을 때 예수님을 방문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대략 두살쯤 되었을 때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갓난아기'(블레포스)가 아닌 '어린아기'(파이디온)이셨기 때문입니다.
질문에 감사합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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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08.12.22 10:31

    첫댓글 http://club.cyworld.com/51453675154/59935334

  • 작성자 08.12.22 10:31

    http://club.cyworld.com/club/main/club_main.asp?club_id=51453675

  • 작성자 09.01.05 15:16

    http://historia.tistory.com/909 광개토대왕 비문

  • 작성자 09.01.05 16:33

    단테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약되어 있다."

  • 작성자 09.01.05 16:33

    '모닝'을 위탁생산(조립생산)하는 충남 서산의 (주)동희오토는 /대왕기업 위원장 유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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