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스세미나] 『철학의 빈곤』 강독(1차시)
칼 맑스 『철학의 빈곤』(1847)
2024.01.11.(목)
발제자 명혜영
『철학의 빈곤』(Misère de la philosophie)(1847)은 칼 맑스(1818.05.05.-1883.03.14)가 벨기에 망명시절인 1847년에 쓴 책으로, 파리와 브뤼셀에서 초판을 간행했다. 프랑스의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 피에르 조세프 프루동(1809.1.15.-1865.1.19)의 저서 『경제적 모순의 체계 또는 빈곤의 철학』(1846)에 대한 비판인 맑스의 『철학의 빈곤』은 앞뒤로 발표된 『독일 이데올로기』나 『공산당 선언』에 비해 다소 화려함이 부족하고 일견 투박하게까지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경제학 비판』 '서문'에서 맑스는, "우리들 견해의 결정적인 논점들은 1847년에 간행된 프루동에 반대한 나의 저서 『철학의 빈곤』에서, 논쟁적인 형태이긴 했지만 처음으로 과학적으로 제시되었다.“고 언급한바 있다.
A. 맑스와 프루동의 연표
년도 | 맑스 (1818-1883) | 프루동 (1809-1865) |
1809 | 프루동 출생(프랑스 브장송) | |
1814년 빈 회의 | ||
1818 1828 | 맑스 출생(독일 트리어) | 할아버지 농장에서 일하다 인쇄소 교정공이 되다. 히브리어 습득 |
1830년 7월 혁명 | ||
1831 1840 1841 1843 1844 1845 1846 1847 | 헤겔 사망 빌헬름 4세 프로이센 왕 즉위 대학졸업 『유대인 문제로 말미암아』, 『헤겔 법철학 비판서설』 『독불연지独仏年誌』창간 『성가족聖家族』, 파리 추방 『독일 이데올로기』 공동 집필 『철학의 빈곤』 | 리옹 반란 『소유란 무엇인가?』 『블랑키에게 보내는 편지』 『인류 질서의 창조에 대하여』 맑스, 그린, 바쿠닌 등과 교류하다 『철도와 해운의 경쟁에 대해서』 『빈곤의 철학』 보들레르를 알게 되다 |
1848년 2월 혁명 | ||
1848 1849 1850 1851 1852 1853 1857 1858 1859 1861 1862 1863 1864 1865 1867 | 『공산당 선언』 『임노동과 자본』, 런던 망명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 『뉴욕 트리뷴』의 런던 통신원이 되다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57-58년 초고』 『경제학 비판』 제1분책 간행 『61-63년 초고』 『자본론』 제1부 집필 제일 인터내셔널 결성 『자본론』 제1권 | 국회의원으로 선출 나폴레옹 3세 모욕죄로 투옥(~52년) 『인민』 폐간으로 기자 폐업 『19세기 혁명의 일반적 이념』 『12월 2일 쿠데타로 증명된 사회혁명』 『진보의 철학』 『보바리 부인』과 『악의 꽃』 재판 『혁명과 교회에서의 정의』,브뤼셀 망명 이탈리아 통일 전쟁 『전쟁과 평화-국제공법의 원리와 구조』 파리로 돌아오다 『연합의 원리 및 혁명파 재건의 필요』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능력』을 준비 프루동 사망(파리) |
1870~71 보불(普佛)전쟁 파리코뮌 | ||
1883 | 맑스 사망(런던) |
B. 『철학의 빈곤』 발표 경위
『철학의 빈곤』 이전의 프루동 평가 |
맑스는 『성가족聖家族』(1845)에서, 바우어의 해석에 의한 <비판적 프루동>에 대해 <진정한 대중적 프루동>을 대치하면서 프루동에 대해 논했다. 『성가족』의 주제는 청년 헤겔파의 관념적 왜곡을 비판하는 데에 있었으며, 프루동은 말하자면 그 사례연구였다. <대중적 프루동>은 소유비판을 경제학비판으로 연결시킨다. 이에 따라 ‘경제학을 혁명하고 진정한 경제과학을 비로소 가능하게 했다’고 평가했다. 프루동의 경제학 비판은 <경제학의 전제에 얽매여 있다>는 점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이 시점에서의 맑스는 프루동을 매우 높게 평가하였다. 그리고 맑스는 경제학의 전제에 얽매이지 않는 경제학비판, 즉 경제학의 카테고리를 사적소유의 출현으로 보고, ‘소외된 노동’의 개념에 따라 비판하는 비판을 스스로의 과제로 삼았고, 프루동에게도 그것을 기대했던 것이다. 맑스는 1844년 10월부터 이듬해 2월에 걸쳐 파리에서 프루동을 만나 헤겔 변증법, 아마도 포이에르 바하 적으로 개작된 헤겔 변증법을 강의했다. 프루동이 이 강의에서 자극을 받았다는 점은 『경제적 모순체계』의 집필 노트에서 엿볼 수 있다.
『철학의 빈곤』의 프루동 평가 |
맑스는 『빈곤의 철학』이 출간된 후 책을 먼저 입수한 엥겔스로부터 발췌본을 받았다. 그리고 그해 12월 파벨 안넨코프(1813~1887)에게 보낸 편지에서 프루동을 철저히 비판한 바 있다. 그 비판을 바탕으로 1947년 7월에 『철학의 빈곤』이 출판되었다. 이 책은 프루동의 가치론을 비판하는 과학상의 한 발견이라는 장과, 그의 변증법을 비판하는 경제학의 형이상학의 2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장에서는 프루동의 가치론, 즉 새로운 소유관계 하에서 수급의 균형이 성립되면, 임금=생산비만으로 이루어진 ‘구성된 가치’가 성립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가치론은, 리카도의 가치론의 재탕이며 유토피아적 해석일 뿐이라며, 리카도가 부르주아 사회의 이론으로써 과학적으로 설파한 것을 미래의 혁명적 이론으로 간주하고 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공산당 선언』에서 프루동을 부르주아적 사회주의로 분류하는 것도 이 점에 근거한다. 나아가 맑스는 시장과 상품은 원하지만 화폐와 자본은 원하지 않는 프루동의 이론적 부실함을 공격한다. 2장은 프루동의 변증법이 헤겔 변증법을 재탕하고 그것도 오해로 가득 찬 개작에 불과하다고 매도한다. 프루동은 개념의 논리적 전개와 현실의 역사적 전개를 혼동하고 있으며, 사물을 '좋은 면'과 '나쁜 면'으로 나누어, 역사는 '좋은 면'에 의해 전진할 것이라 생각하여, 문제의 해결책으로써 '나쁜 면을 제거하고 좋은 면을 보존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는 변증법과는 무관한 것이며, 프루동은 끝내 변증법적 종합에 도달하지 못하고, 정립과 반정립 사이를 맴돌았을 뿐이라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다만, 『빈곤의 철학』에서 프루동은 '나쁜 면'의 적극적 역할을 인정하고 있으며, 이 두 면의 대립의 지속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프루동의 변증법은 모순의 견딜 수 없는 존재를 인정함으로써, 모순의 최종적 해결을 믿지 않는다는 데 가장 큰 특징이 있다.
『철학의 빈곤』 이후의 프루동 평가 |
프루동에 대한 맹렬한 공격으로 이후 두 사람의 교류도 완전히 끊겼다. 그러나 맑스가 프루동의 동향을 무시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또한 프루동의 가치론을 비판하기 위해 원용한 리카도의 이론에도 후년 비판을 더하여, 『자본론』으로 결실을 맺는다. 『자본론』의 프랑스어판이 출간될 때 맑스는 ‘프루동에 의해 이상화된 쁘띠 부르주아주의’에 빠진 프랑스인들이 해방되기를 바랐다.
c. 『철학의 빈곤』, 『빈곤의 철학』 목차 비교
<철학의 빈곤> | ||
제1장 과학상의 발견 제1절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대립 제2절 구성된 가치 또는 종합적 가치 제3절 가치균형 법칙의 적용 a) 화폐 b) 노동의 잉여 | 제2장 경제학의 형이상학 제1절 방법 제2절 분업과 기계 제3절 경쟁과 독점 제4절 토지소유 또는 지대 제5절 동맹파업과 노동자의 단결 |
<빈곤의 철학> | ||
제1장 경제과학에 대해서 제2장 가치에 대해서 제3장 경제발전의 제1단계 - 분업 제4장 제2단계 - 기계 제5장 제3단계 - 경쟁 제6장 제4단계 - 독점 제7장 제5단계 – 경찰 또는 세금 | 제8장 모순의 법칙 하에서의 인간의 책임과 신의 책임 – 신의 섭리 문제의 해결 제9장 제6단계 – 무역의 밸런스 제10장 제7단계 - 신용 제11장 제8단계 - 소유 제12장 제9단계 – 공유 제13장 제10단계 - 인구 제14장 계약과 결론 |
1. 과학상의 발견
1.1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대립
<요약> 맑스는, 우선 프루동이 '교환'에 대해 말할 때 전제가 되는, 분업에 기초한 생산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왜 교환이 이루어져 발전했는가 하는 문제가 미해결인 점을 지적한다. 다음으로 경제학자들이 가치의 이중성을 제시했는데, 그 모순적 성격을 밝혀오지 않았다는 프루동의 주장에 맑스는 시스몽디나 로더데일을 들어 반론한다. 프루동은 ‘사용=효용가치’와 ‘교환=소견가치’의 대립·모순에서 공급과 수요의 대립관계를 찾지만 현실 사회에서는 공급자가 수요자로, 수요자가 공급자가 되는 이상, 이 대립 관계는 ‘의례적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
가치의 이중성
프루동 |
실제로 가치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경제학자들이 '사용가치(lavaleur d'utilit´e)'라고 부르는 것으로, 이것은 그 자체의 가치이다. 또 하나는 '교환가치(lavaleur en´echange)‘로, 이는 사람의 견해에 따른 가치(lavaleur d'opinion 소견가치)이다. (95) 자연의 산물(les produits naturels)이건 생업의 산물(les produits industriels)이건 그 생산물이 인간의 삶에 도움이 될 때, 그러한 능력을 사용가치라 부른다. 생산물이 각각 별도의 생산물로 교환될 때, 그러한 능력을 교환가치라 부른다. 사실, 이 둘은 근본적으로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교환가치는 사용가치로 치환 가능하다는 관념을 덧붙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97-98)
맑스 |
프루동 씨의 가정에서의 이 산업 활동(l'industrie)이란 무엇인가? 그 기원은 어떤 것인가? 지극히 많은 것에 욕망(le besoin)을 느끼고 있는 사람도, 단 한 사람으로는, ‘그렇게 많은 것에 손을 댈 수 없다’. (62) 그런데 제군이 바로 생산에 힘쓰는 많은 일손을 전제한 순간, 제군은 이미, 분업(ladivision dutravail)에 근거한 생산 전체를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프루동 씨가 전제하고 있는 욕망은 그 자체로 분업 전체를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분업을 전제하는 이상 교환이 존재하게 되고, 따라서 또 교환가치가 존재하게 된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교환가치를 전제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63)
☞ 맑스의 분업에 대해
분업을 ‘분업 일반’으로 보는 프루동에 비해, 맑스는 『철학의 빈곤』에 앞서 사회적 분업의 역사적 전개를 밝힌 『독일 이데올로기』에서의 이해를 바탕으로, 분업을 ‘사회적 분업’과 ‘공장 내 분업’으로 이론적으로 구분한다. 그리고 ‘근대적 공장 내부에서는 기업인의 권위에 따라 분업이 촘촘하게 규정되어 있는 데 반해, 근대사회에서는 노동의 배분에 대해 자유경쟁 이외에는 아무런 규칙도 권위도 없다‘는 점을 밝힌다. 이 분업의 구별은 『자본론』제1부 제12장 「분업과 매뉴팩처」에서의 전개로 이어진다.
교환의 역사 3단계
프루동 |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의 대부분은 자연에 아주 조금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혹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내게 부족한 것이 생산되도록 스스로 힘을 보태야 한다. 그러나 이것저것 모두 힘을 보탤 수 없기 때문에 다양한 일을 하는 타인에게 협조를 부탁한다. 각각의 생산물의 일부분을 서로 내놓고 교환하자고 제안한다. 내가 가진 내 생산물은 내가 소비하는 것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그리고 상대방도 각자 자신이 소비하는 만큼의 것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암묵적 합의에 의해서 '교역(lacommerce)‘이 행해진다... 실제로 인간은 자연의 재화(lesbiens naturels)(원초적 공유재산이라고 불리는 것)를 둘러싸고 오랜 시간 싸움을 이어온 끝에, 자신들의 생업의 결과로 교환이라는 형태를 발생시킨 것이다. (97)
맑스 |
교환은 독특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교환은 다양한 국면을 경과해 지금에 다다랐다. 중세와 같이 여분의 것만이, 즉 소비에 대한 생산의 초과분만이 교환되던 시대가 있었다. 단순히 여분의 것만이 아니라 모든 생산물이, 모든 산업적 존재가, 거래되게 되어 있던 시절, 생산 전체가 교환에 의존하던 시절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양도할 수 없는 것과 사람들이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던 것들이 모두 교환의, 거래의 대상이 되어 양도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모든 것이 부패하고 모든 것이 금으로 사는 시대, 경제학 용어로 바꾸어 말하면, 정신적인 것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모든 것이 매매 가치가 되어 있기 때문에 시장에 가져가서 그곳에서 각각의 가장 정당한 가치로 평가받는 시대, 이것이 그 마지막 시대인 것이다. (64-65)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관계, 시스몽디와 로더데일
프루동 |
경제학자들은 가치의 이중성을 훌륭하게 부각시켜 주었지만, 가치의 모순된 본성에 대해서 언급한 자료는 그리 많지 않다... 상품은, 양이 늘어나면 교환으로서는 불리하고 상업적 가치는 떨어진다. 이로부터, 노동의 필요성과 그 성과 사이에는 모순이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100) 사용가치와 교환가치 사이의 이러한 놀라운 어떤 대조는 지금까지 거의 지적되지 않았다... 왜 가치는 생산이 증대됨에 따라 하락하는가? 또 반대로 생산이 하강하면 왜 가치는 상승하는가. 전문용어로 말하면,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는 서로 상대방을 필요로 하면서, 서로 반비례한다. (102)
맑스 |
시스몽디는 사용가치와 교환가치 사이의 갈등에 그의 주요 학설의 기초를 두었다. 그리고 이 학설에 의하면, 소득현상은 생산의 증대에 비례한다는 것이다. 반면 로더데일은 두 가지 가치의 반비례에 체계의 기초를 두었다. 리카도 시대에 로더데일의 학설은 매우 널리 보급되어 있었고, 그 때문에 후자인 리카도는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과 마찬가지로 이 학설에 대해 말할 수 있었다. (66)
사용가치=풍부함=공급/교환가치=희소성=수요
프루동 |
즉 유용하고 꼭 필요한 것이라도 양이 무한히 존재하는 것은 공짜이고, 아무 소용이 없는데 양이 극단적으로 적은 것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가가 된다. 그러나 오히려 문제는 현실이 그렇게 극단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첫째, 인간이 생산하는 것은 결코 양이 무한대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정말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것이라면 어떤 가치도 없을 테니 아무리 희귀한 것이라도 어느 정도 유용성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는 끊임없이 반발하는 본성을 보이지만 숙명적으로 결부되어 떨어지지 않는다... 인간에게는 생산물의 다양성에 대한 욕구와 그 공급을 자신의 노동으로 이루어야 할 의무가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에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대립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102-103) 당신이 구매자라면 내 생산물은 당신의 마음에 드는 것이어야 한다. 당신이 판매자라면 당신의 생산물이 내 마음에 드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한 상호 자유성이 없다면 교환은 더 이상 산업에 있어서의 연대적 운영이 아니라 약탈로 바뀐다. 내친김에 말해 두지만, 공산주의로는 결코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없다. (104) 이미 보았듯이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대립을 가져온 것도 바로 인간의 자유로운 의지였다. 어떻게 하면 자유의지를 존속시키면서, 이 대립을 해소시킬 수 있을까. (105)
맑스 |
프루동 씨를 곤혹스러움의 극단으로 몰아가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단지 그가 수요를 잊고 있었다는 것일 뿐이다. 하나의 물건은 그것에 대한 수요가 있는 한에 있어서만 희귀하거나 풍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환가치와 희소성을, 사용가치와 풍부함을 등식으로 둔 후에, 프루동 씨는 희소성과 교환가치 사이에서 사용가치를 찾을 수도, 풍부함과 사용가치 사이에서 교환가치를 찾을 수도 없기 때문에 당황한 것이다. (68) 그렇게 해 놓은 후에, 프루동 씨는 사용가치와 공급을 동일시하고 교환가치와 수요를 동일시한다. (69) 공급만이 효용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고 수요만이 소견(opinion)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다... 수요는 동시에 하나의 공급이고, 공급은 동시에 하나의 수요이다. (70) 프루동 씨의 전변증법(全辨證法)은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그것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 공급과 수요, 이러한 것들을 희소성과 풍부함, 효용(utile)과 소견(opinion), 양자 모두가 자유의지의 기사(騎士)인 한 생산자와 한 소비자라는 추상적이고 상호 모순되는 개념을 가지고 대체하고자 하는 데에 있다. (73)
☞ 『철학의 빈곤』에 있어서의 리카도의 위치
프루동의 경제이론을 비판하는 맑스는, 리카도의 가치론, 임금론, 지대론 등을 전면적으로 원용했다. 그러나 맑스의 리카도 론의 전면적 원용 중에는, 프루동으로부터 리카도를 단순히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스미스→리카도 경제학의 적극적인 의의제기를 함으로써 동시에 리카도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제기가 포함되어 있다. 리카도는 상품의 가치와 노동(노동력)의 가치를 사실상 구별해, 자본축적의 원천으로서의 『노동상품』을 냉혹하게 말했다. 모자 제작비와 인간 유지비를 동일시해 ‘시급함을 띤 현실성으로서의 상품인 노동’을 부르주아적 부의 생산을 위해 적극적으로 승인했다. 리카도 이론은 노동자의 소외 과정에 근거를 두고, 그 안에서 만족을 찾는 부르주아적 실천에 조응한다. (모리카와 요시미오, 『프루동과 맑스』, 미래사, 1979년, 187-189페이지)
1.2 구성된 가치 또는 종합적 가치
<요약> 사용가치와 교환가치가 지양되면 사회적 부의 총체인 '구성된 가치(lavaleur constitu´ee)‘가 등장한다. 프루동은, ’구성된 가치‘는 노동에 의해 생산된 물건들 간의 비례관계로 이해되는 것이라며, 나아가 이를 스미스와 세이 등이 간과해 온 자신의 발견이라고 자부하지만, 맑스는 이에 대해 ’상품의 상대적 가치는 생산에 소요된 노동량에 의해 결정된다‘는 리카도의 학설을 제시한다. 다음으로, 구성된 가치로부터 프루동이 얻은 모든 결론 — (1) 일정량의 노동은 이 동일양의 노동에 의해 만들어내는 생산물과 등가이다. (2) 1노동일은 모든 다른 1노동일과 등가이다 – 에 대해, 노동(력)도 하나의 상품임을 감안하여 노동에 의해 측정된 상품의 가치와 노동의 가치에 의해 측정된 상품의 가치를 혼동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나아가, '구성된 가치'가 모든 생산물의 ’비례=균형‘에 의해 초래된다는 점에 대해, 그런 비례법칙은 대공업 시대에는 성립되지 않는다, '트로이는 더 이상 없다!(Fuit Troja!)'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맑스는 프루동이 주장하는 노동시간에 따른 생산물 가치결정의 법칙이 리카도의 것일 뿐만 아니라, 거기서 도출되는 노동량을 동등하게 교환해야 한다는 평등주의적 입장조차도 영국 공산주의자 브레이의 재탕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프루동은 영국에 설립된 공정노동 교환시장의 실패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
구성된 가치=절대적 가치=종합적 가치의 정의
프루동 |
부라는 것을 이렇게 이미지 해 보자. 그것은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는 큰 화합물과 같다... 가치란, 이러한 각각의 요소가 전체의 일부를 이루는 비례관계(각각이 각각의 척도)이다. (116)
바로 노동이, 그리고 노동만이 부의 모든 요소를 만들어낸다. (120) 가치는 법칙에 따르기 때문에 변동한다. 이 법칙은 노동시간이라는 본질적으로 변동하는 것을 원리로 하기 때문이다. (126)
맑스 |
'여러 상품의 상대적 가치는 오로지 그러한 것들의 생산에 소요된 노동량에 기초한다.'는 것을 원리로 하는 리카도 체계의 기원은 18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75) 노동시간에 의한 가치의 결정은 리카도에게는 교환가치의 법칙이고, 프루동 씨에게는 지양가치와 교환가치를 종합하는 것이다. (79)
프루동이 도출한 결론
프루동 |
세이나 그를 따르는 경제학자들에 따르면, 노동은 그 자체가 가치를 부여받는 것이고 노동 또한 하나의 상품에 불과하기 때문에 노동을 가치의 본원·동인으로 간주하는 것은 순환논법이다... 미안하지만 이런 경제학자들의 생각이 매우 얕다는 점이 여기서 드러났다. 노동이 가치를 부여받는다는 것은 노동을 상품 그 자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노동 속에 가치가 가능성으로 잠재한다는 시각에 따른 것이다. 즉, '노동의 가치'란 비유적인 표현으로 원인을 먼저 제시하고 결과를 표현하는 말투일 뿐이다. (126) 그러므로 이러한 인간의 하루 노동이 5프랑의 가치가 있다고 하는 것은, 이 인간의 하루 노동의 생산물이 5프랑의 가치가 있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127)
맑스 |
프루동 씨가 도출한 모든 결론으로 가보자. 일정량의 노동은 이 동일량의 노동에 의해 만들어내는 생산물과 등가이다. 한 노동일은 모든 다른 한 노동일과 동등하다. (79) 노동은 그 자체가 상품인 이상 그러한 것으로는 상품인 노동을 생산하기 위하여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하여 계량된다. 그렇다면 상품인 노동을 생산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노동자가 생활할 수 있고 그들의 종족을 늘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필요불가결한 물건을 생산할 만큼의 노동시간이 그야말로 필요한 것이다. 노동의 자연가격은 임금의 최소한과 다름없다. (80-81) (노동)시간에 따라 계량되는 모든 생산물의 이러한 교환이, 모든 생산자 사이에 평등주의에 기초한 보수를 가져온다고 주장하는 것은 교환에 앞서 생산물 배분에 대한 평등한 참여가 존재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81-82)
부를 구성하는 생산물의 비례관계
맑스 |
만약 프루동 씨가 생산물의 가치를 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용인한다면, 마찬가지로 그는 변동이 끊이지 않는 이 운동까지도, 그것만이 노동(시간)을 가치의 척도로 삼는 이 운동까지도 용인해야 할 것이다. 구성되어 버린 ‘비례성 관계’라고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구성되어 있는 하나의 운동(un mouvement constituant)이 존재할 뿐이다. (92) 사적교환이 함께 공존하는 것은, 과거 수 세기의 소규모공업과 그 필연적 귀결로서의 '올바른 비례'이다. 아니면 대공업과 그 필연적 수반물로서의 여러 형태의 빈곤과 무정부성일 뿐이다. (96)
노동시간에 따른 가치규정 공식의 평등주의적 적용
맑스 |
영국의 경제학 동향에 조금이라도 정통한 자라면 누구나 이 나라 사회주의자들이 거의 모두 다양한 시대에 리카도 학설의 평등주의적 적용을 제창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프루동 씨에 대해 홉킨스의 『경제학』(1828년), 윌리엄 탐슨의 『인간의 행복에 가장 기여하는 부의 분배의 여러 원리에 대한 연구』(1824년), T. R. 에드먼즈의 『실천적 도덕적 정치적 경제학』(1828년) 등을, 아니 이 외에 4페이지에 이르는 기타 저작물을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97) 그런데 말이다! 동일한 노동량의 교환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었는가? 과잉생산, 가치저하, 노동과잉 및 그에 따른 실업, 요컨대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바와 같은 현재 사회에 구성되어 있는 경제적 여 관(104)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