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광역시 동구 찬샘마을(직동) 노고산(250m) 꼭대기에서 바라본 대청호 일부 풍경. 지난 4월4일 산 정상엔 진달래가 만발해 있었다.
[매거진 esc] 여행
대전 대청호반 노고산과 찬샘마을… 걷기 좋은 ‘대청호 오백리길’의 한 구간
“주변 산을 다 둘러봤어도, 여기가 최곱디다. 대청호 최고 전망대죠.”대전광역시 동구 직동(찬샘마을), 대청호반 노고산 꼭대기에서 만난 한인구(41·대전시 유성구 관평동)씨 부부의 찬사다. 탁 트인 전망이 그리울 때마다 이곳을 찾는다는 한씨 부부는 “이렇게 낮은 산에서 이토록 장쾌한 경관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매번 놀란다”고 했다. 물길·산길 아름답고 전망 좋고 이야깃거리도 많은 대청호 호반 일부를 둘러보고 왔다. 21개 구간으로 이뤄진 ‘대청호 오백리길’(대청호 둘레길)의 대전시 쪽 구간 중, 제2구간과 3구간에 속한 지역이다.백제·신라군 격전지 노고산의 빼어난 전망대청댐 남쪽, 대청호 물줄기 서쪽에 솟은 노고산(老姑山)은 높이 250m에 불과한 야산이다. 산이 그리 가파른 것도 아니다. 산길을 20~30분 걸어오르면 곧바로 탁 트인 전망과 마주하게 된다. 남북으로 뻗어 굽이치는 대청호 물줄기와 산줄기들이 좌우로 거칠 것 없이 펼쳐진다. 북으로 청원군 문의면, 동으론 보은군 회남면, 남으론 옥천군 군북면 일대가 다 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낮은 산인데도 전망이 빼어난 건 주변에 고봉들이 드문데다 낮게 뻗어나간 산줄기들이 구석구석 파고든 물길을 품고 있어서다. 마치 섬들과 반도들이 빼곡히 깔린 남해바다의 한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옥천 쪽에서 흘러온 금강 물줄기가 크게 굽이친 뒤, 수량을 불려 발밑 냉천마을 앞을 지나 청남대·대청댐 방향으로 흘러가는 풍경이 장관이다. 물빛은 잔물살 하나 없이 짙푸르고, 바람은 잔소리 하나 없이 부드러워, 물길 너머로 첩첩이 펼쳐진 산줄기들이 더더욱 아득해진다. 산 정상 주변엔 마침 진달래가 만발해 물빛·산빛을 돋워주었다.주변이 탁 트인 산꼭대기에 산성이 없을 리 없다. 정상 남쪽에 백제시대 산성으로 추정되는 노고산성 성벽 일부가 남아 있다. 노고산성은 둘레 300m쯤 되는 타원형 테뫼식 석성으로, 백제 성왕의 아들 창(후에 위덕왕)이 신라군과 격전을 벌였던 곳이라고 한다. 이때 군사들이 흘린 피가 내를 이뤄 흘렀는데, 피골마을(직동·찬샘마을) 지명이 여기서 유래했다고 전한다.대청호 일대 산엔 모두 25개의 산성이 있는데, 노고산성은 주변 대부분의 산성이 눈에 들어오는 요충지였다. 금강 물길을 앞에 두고 북쪽으로 성치산성, 서남쪽의 견두산성, 등 뒤인 서쪽으로 계족산성, 동남쪽으로 마산동산성 등이 이어지는 지점이다. 노고산성은 가장 높은 계족산성의 전초기지 구실을 했다고 한다.산 정상 부근에 깊은 홈이 파인 작은 바위 2개가 놓여 있어 눈길을 끈다. 찬샘마을 변대섭(55) 추진위원장은 “예비군 훈련용 진지를 파다 발견한 것인데, 디딜방아 흔적으로 추측된다”며 “발굴 때 말안장과 토기조각 등도 많이 나왔다”고 말했다.노고산 주변 마을 이름이 직동이다. 옛 지명인 피골을 한자로 적으며 ‘기장 직, 피 직(稷)’ 자를 썼기 때문이다. 직동은 피골(윗피골·아랫피골)과 가뭄에도 그치지 않는 찬 샘이 있었다는 냉천(찬샘내기), 두 물길 안쪽에 자리한 양구레 등 3개 마을을 아우른 지명이다. 그러다 직동의 중심인 피골에 농촌체험마을을 추진하며 마을 이름을 ‘찬샘마을’로 바꿨다. 피골 말고도 마을 주변엔 왕릉이 있었다는 능골, 철을 캐내기도 했고 대장간도 있었다는 쇠점고개 등 옛 지명이 전해온다.
노고산엔 백제 때 석성으로 여겨지는 노고산성 성벽 일부가 남아 있다.
옛 마을 수몰 아픔 딛고 체험마을로 인기‘찬샘마을’ 유래가 된 찬샘(냉천)과 옛 냉천마을은 대청호 담수로 물속에 잠겨 있다. 30가구 가까이 살았던 냉천마을 주민들은 대개 타지로 떠나고 일부만 현재 냉천 종점 부근에 모여 살고 있다. 노고산 밑 호숫가, 수몰된 옛 냉천마을 위쪽 길가엔 주민들의 망향의 한을 달래주는 정자 찬샘정이 있다. 정자 옆엔 “산도 좋고 물도 좋은 내 고향 냉천 땅에서 괭이 들고 땅을 파던 시절이 그립구나”로 시작되는 망향가를 적은 빗돌이 있다.노고산 주변 금강변엔 황호리 나루, 범말 나루, 누룩고지 나루, 아득이 나루 등 배로 강을 건너 오가던, 이름도 정겨운 나루터도 여럿 있었으나 모두 짙푸른 대청호 물속에 있다. 주민들은 대청호가 만들어지기 전에 잡초 우거진 아름다운 금강변 오솔길을 걷거나 물길을 건너 옛 대덕군 동면 등지로 두세시간씩 걸어서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주민들이 걷던 강변길은 이제 대청호 둘레길(대청호 오백리길)의 일부로 다시 살아나 걷기 여행자들 발길이 이어진다. 찬샘마을은 모내기 체험, 수확 체험, 공예 체험을 위해 도시민들이 찾는 인기 농촌체험마을로 거듭났다. 마을엔 가벼운 산행을 곁들여 찬샘마을 주변을 둘러보는 2개의 걷기 코스가 마련돼 있다. 마을회관(아랫피골)~쇠점고개~노고산성~할미바위(노고바위)~노고산전망대~찬샘정~성황당고개(윗피골)~마을회관 코스의 ‘노고산성 해맞이길’(대청호반길 3-1코스, 1시간30분, 3.5㎞)과 마을회관~성황당고개(윗피골)~성치산성~부수동~갈전동~마을회관 코스의 ‘청남대 조망길’(3-2코스, 2시간30분, 7㎞)이다. 성치산성길에선 대통령 별장이었던 청남대 쪽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대청호 둘레길 탐방로 안내판들엔 대청호 호반길, 금강 로하스 해피로드, 대청호 오백리길 등이 겹치고 뒤섞인 채, 각 구간이 숫자들로 표시돼 있어 혼란스럽다. 지자체들이 따로 조성했던 코스들이 이제 21개 구간의 ‘대청호 오백리길’로 정리됐지만, 안내판 지도나 이정표들은 옛것·새것들이 섞여 있다.
‘대청호 오백리길’의 한 구간인 추동(가래울) 호숫가 산책로.
‘대청호 오백리길’ 선인 발자취도 눈길대청호 오백리길은 대체로 물가의 자전거길·찻길을 따라 이어진 둘레길이므로, 마을 구석구석을 들여다보거나 물가 전망을 즐기려면 자주 옆길로 드나들어야 한다. ‘대청호 오백리길’ 찬샘마을 구간은 제2구간이지만, 노고산성·성치산성 산길은 직접 연결돼 있지 않다. 3구간(냉천마을 종점~냉천길~마산동삼거리·말뫼)과 4구간(말뫼~가래울(추동)~대청호자연생태관·습지공원·연꽃마을·오리골)도 대청호반 전망대가 즐비하고 선인들 발자취도 많은 구간이다. 찬샘마을에서 냉천길을 따라가며 마산동산성 입구 지나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들면 미륵원·남루 터, 관동묘려 등을 만난다.미륵원은 고려 말~조선 초(1332~1440) 100여년간 회덕 황씨 집안이 3대에 걸쳐 무료로 운영하던 일종의 여관이었다. 영남·호남 지역과 서울을 오가는 길목에서 길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민간 사회복지시설이었던 셈이다. 베풂과 나눔을 덕으로 여겼던 옛 선비 집안의 가풍이 전해오는 곳이다. 목은 이색의 ‘미륵원 남루기’를 비롯해, 하륜·변계량·정인지·송시열 등 거유들이 이를 칭송한 글들이 전해온다고 한다. ‘남루’는 미륵원에 딸려 있던 작은 누각이다. 본디 미륵원 터는 수몰됐다. 현재 자리로 건물 일부를 옮겨 지었다지만 옛 모습은 아니다. 지금도 회덕 황씨 후손이 살고 있다.미륵원 터에서 나와 한 굽이 돌아 들어가면 은골이란 곳인데 여기 유서 깊은 재실 관동묘려가 있다. 조선 초 문신 쌍청당 송유의 어머니 고흥 류씨를 모시는 재실이다. 류씨는 20대 초반 나이에 남편과 사별하자 친정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어린 송유를 업고 500리 길을 걸어 회덕의 시댁을 찾았다고 한다. 송유는 회덕 은진 송씨 집안을 명문가로 일으켜 세운 인물이다. 대덕구 중리동의, 송유가 낙향해 거처하던 별당 건물 쌍청당이 유명하다.미륵원·관동묘려 길에서 돌아 나와 마산동삼거리로 가는 길엔 조선 숙종 때의 효자 송상민을 기리는 정려가 있다.대청호수길엔 벚나무들이 즐비하다. 지난 주말 만개해 절정을 이룬 벚꽃·개나리 꽃잔치의 여운은 이번주까지 일부 이어질 전망이다.대전/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 대청호 찬샘마을·노고산 여행정보가는 길 수도권에서 경부고속도로 타고 가다 신탄진나들목에서 나간다. 17번 국도로 좌회전해 가다 신탄진네거리에서 대청호 쪽으로 우회전, 보조댐 지나 대청호수길 따라 우회전해 삼정골·갈밭골(갈전동)·이현동 거쳐 효평삼거리에서 찬샘마을 쪽으로 좌회전해 들어간다.
민물새우탕.
먹을거리 대전시 관내 대청호 주변 마을엔 어업 허가를 받은 원주민 29명이 있다. 이들이 민물새우·물고기들을 잡아 직접 매운탕집을 하거나 이를 받아서 쓰는 식당이 많다. 노고산 밑 호숫가 쪽 냉천마을 냉천골할매집, 추동(가래울) 도로변 강나루식당, 관동묘려 옆 은골 할먼네집 등. 강나루식당은 직접 생산한 울금(강황·카레의 원료)을 넣은 민물새우탕(사진)·메기탕·빠가사리탕 등을 낸다. 보조댐 부근 대청게장은 무한 리필 간장게장·양념게장을 내는 집. 1인 1만2000원.묵을 곳 찬샘마을 마을회관에서 묵을 수 있다. 예약 필수. 가족실 6만~7만원. 봄철 체험행사로 모내기·우렁잡기·쑥떡만들기·피자만들기·공예체험 등을 할 수 있다. 체험비 별도. 찬샘마을에서 30분 거리의 동구 시내에 호텔·모텔 등이 많다.여행 문의 대전광역시 관광산업과 (042)270-3970, 대전종합관광안내소 (042)861-1330, 동구청 문화공보과 (042)251-4205, 찬샘마을 (042)274-3399.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632002.html#csidx38192d654abbef0853a92a0175327d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