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로지(David Lodge)는 시나 소설 모두가 하나의 언어적 가공물이며, 플롯이나 인물, 사회적, 도덕적 삶의 창조는 그것을 가능케 하는 언어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것은 소설가의 매체가 ‘언어’이고 무엇을 하든 소설가로서 ‘언어 안에서, 그리고 언어를 통해서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를 매혹시키는 소설의 힘은 바로 이 언어의 힘에서 나오는 것이다. 짐작컨대 소설을 읽는 사람이나 쓰는 사람은 모두 이 말에 매혹되고 때론 절망한 이들일 것이다. 황도경, 『문체로 읽는 소설』,(서울: 소명출판 2000.3)
문체론은 바로 이 같은 언어에 대한 관심과 인식에서 출발한다. 문체론적 입장에서 볼 때 문학을 다른 예술장르와 구분 짓는 가장 본질적인 요소는 그것이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는 예술이라는 점에 있으며, 이는 곧 문학을 문학이게끔 하는 것이 바로 언어 안에 담겨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문체란 내용보다는 표현상의 선택의 문제로 생각되어져 왔고, 이에 따라 문체는 종종 ‘사상의 옷(dress of thought)’이나, ‘표현의 양식(manner of expression)'으로 정의되어 왔다. 문체란 단지 수사학적인 차원의 문제이며 소설을 설명하고 연구하는 데 있어 부차적인 문제라고 여겨져 왔던 것이다. 그러나 플로베르의 말처럼 소설에서 형식과 내용이란 마치 육체와 영혼과도 같이 분리될 수 없는 것이어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결국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의 문제가 된다. 이처럼 표현상의 선택으로서의 문체는 특히 소설에서 이야기의 내용이나 주제와 깊은 연관을 갖게 되며, 따라서 문체 연구도 단순히 언어의 표면적인 현상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최하위의 개념으로서의 언어에서부터 작가의 세계관에 이르기까지를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검토하는 작업을 의미하게 된다.
이와 같이 문체에 대한 포괄적인 개념을 바탕으로 본고에서는 한국 현대소설에 나타난 문체의 특징을 이광수, 손창섭, 김승옥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위의 세 작가들을 선정한 것은 이들이 각기 독특한 문체구현을 통해 한국 현대소설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광수는 한국 근대소설문체를 성립했고 손창섭은 독특한 그만의 문체를 소설의 분위기 형상화 방식의 도구로 삼았으며 김승옥은 한글 세대의 문체적 특징을 보여줌으로써 문학적 기법을 잘 드러내고 있다. 또한 본고에서는 작가나 작품을 역사적 존재로 보고 이들이 사회적, 문화적 배경과 유기적으로 상호 작용한다는 것을 전제하였다.
2. 고소설과 근대소설의 사이, 신소설
근대소설의 문을 연 이광수 소설의 문체를 거론하기에 앞서 고소설과 근대 소설 사이에 나타난 과도기적 단계인 신소설의 문체를 간단히 짚어보고자 한다. 고소설의 문체를 거쳐 일반적으로 학계에서는 이인직의 『혈의 누』를 신소설 문체로 옮겨 온 첫 소설로 본다. 고소설과 신소설은 표기나 표현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문체에 있어 신소설은 소설 문장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산문체를 이루고 있다. 고소설의 문장이 율문체인데 비해 신소설이 산문체로 발전된 것은 획기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고소설이 한문 문자를 즐겨 섞어 쓴 문어체인데 비해 『혈의 누』는 거의 구어체로 되어 있다. 둘째로 고소설이 서술 중심의 설명체인데 비해 신소설은 오늘날과 같은 묘사체는 아니라고 해도 고소설에서 볼 수 있는 설명체는 이미 벗어났다는 점이다. 이는 신소설의 문체가 묘사체로 접근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셋째로 고소설에서는 지문과 대화의 구별이 없었으나, 신소설에 와서는 지문과 대화를 구별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희곡처럼 대화의 주인공을 대화문 앞에 괄호로 표시하고 있는 점이 현대소설과 비교하면 어색하지만 어쨌든 지문과 대화를 구별하게 된 것은 하나의 발전이라 할 수 있다. 이규정, 『현대소설의 이론과 기법』, 박이정, 1998
화셜 됴선국 셰종됴 시절의 ? 재샹이 이시니 셩은 홍이오, 명은 모이라. ?? 명문 거족으로 소년 등과?야
벼?이 니조판셔의 니르? 물망이 됴야의 읏듬이오 충효 겸비 ?기로 일홈이 일국의 진동?니라. 일즉 두 아들
을 두어시니 일?? 일흠이 인형이니 뎡실 뉴시 소?이오 이?? 일흠이 길동이니 시비 춘셤의 소?이라.
우리 소설의 문체는 춘원 이광수에 와서 완전한 구어체의 문장, 묘사체의 문장을 확립하기에 이른다. 춘원의 이러한 문체를 이어받아 김동인과 김유정 등은 더욱 현대 소설의 문체를 발전시켜 나갔다. 1917년에 발표된 「무정」은 춘원의 민족 계몽과 이상주의를 표방한 최초의 장편소설로, 신소설에서 이미 그 초석이 놓여진 口語體 言文一致의 실현양상이 크게 진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춘원의 경우 문학관에서 취하고 있는 계몽을 위한 공리주의는 작품의 서사구조나 표현구조는 물론 그것이 고스란히 문체에 투영되었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단재의 국수적인 민족주의에 비해 춘원에게선 보다 개방된 민족의식을 볼 수 있으며, 이인직의 유형적인 표현양식에 비해 보다 응집된 개별성을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동희, 『한국소설문체론고』, 국학자료원, 1997
인간성찰에서 인생문제로, 또한 개화 및 계몽주의가 다소 예술적으로 심화되면서 나타나는 갈등의 시기를 한국 근대소설의 정착을 위한 이행과 진통의 시기로 본다면 춘원의 소설은 이러한 문체因子를 밀도 있게 구현한 대표적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인 춘원 소설의 문체적 특징은 그의 대표작 「무정」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3.1. 문체의 일반적 특징
㉠ 경성학교 영어교사 이형식은 오후 두시 四年급 영어시간을 미치고 내리쬐는 유월볕에 땀을 흘리면서 안동
김장로의 집으로 간다. (52字)
김장로의 딸 선형이가 명년의 미국유학을 가기 위하려 영어를 준비할 이형식을 매일 한 시간 씩 가정교사
로 초빙하여 오늘 오후 삼시부터 시작하게 되었음이다. (66字)
㉡ 마치 솔씨 속에 있는 솔의 움이 오래동안 솔씨 속에 숨어 있다가 봄철 따뜻한 기운을 받아 굳센 힘으로
그가 갇혀 있던 솔씨 껍데기를 깨뜨리고 가이 없던 세상에 쑥 나솟아 줄기가 되고 가지가 나고 잎과 꽃
이 피게 됨과 같이 형식이란 한 사람의 씨되는 속사람은 이제야 그 껍질을 깨뜨리고 넓은 세상에 우뚝 솟
아 햇빛을 받고 이슬을 받아 한이 없이 생장하게 되었다. (154字)
이광수 소설을 읽었을 때 느껴지는 문체의 일반적인 인상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표기가 한글이고 언문일치체이다. 이는 춘원이 그의 단편 소설집의 自序에서 말하고 있 는 바와 같이 ‘아무쪼록 쉽게 언문만 아는 이면 볼 수 있게 그리고 교육을 받지 않게’라 고 한 그의 투철한 언어관 또는 국어의식에 조금도 어긋남이 없는 문장이라 하겠다. 이 러한 언문일치의 표기는 이미 신소설에서도 이루어진 사실이지만 춘원의 문체만큼 완전 한 것이 아니었다.
② 문장의 길이가 고대소설이나 신소설에 비하면 짧지만 대체적으로 긴 편에 해당한다. 위 의 예문 ㉠이 52자, 66자의 두 문장으로 되어있고, ㉡은 154자나 되는 긴 문장이다. 평균 90자에 해당하니 이렇게 긴 문장은 오늘날 찾기가 힘들다.
③ 문장의 수식이 많고 직유적 수사법을 많이 쓰고 있다. 이는 작자의 미적 욕구와 정감의 충일에서 기인하는 것이겠지만, 문장의 정확성과 적절성을 감소하게 하는 결점이 되기도 한다.
④ 일방적인 주관의 流露가 많다. 근대 이후의 소설은 대체적으로 객관적 묘사보다도 일방 적으로 설명하고 호소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사실은 춘원의 문학을 논할 때 가장 두드러진 특성으로 지적되는 것이다. 춘원이 묘사위주의 자연주의적인 근대문학의 이론을 몰랐던 것이 아니고 민족이 큰 수난을 당하고 있는 시대에 문학자만이 리얼리즘 이라는 안일한 문학관을 가질 수 있느냐 하는 그의 문학관에서 나타난 현상일 것이다.
원래 문학의 양대 요소가 낭만과 사실이라고 하면 춘원의 문체엔 분명히 사실적 요소 보다는 주관적 요소가 더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김동인도 ‘그의 문학 적 주제로는 최남선과 마찬가지로 역시 민족의식의 고취에 있고 그의 작풍은 사실보다 낭만에 가까웠다’고 말하고 있다. 이동희, 『한국소설문체론고』, 국학자료원, 1997
3.2. 문체의 특이성, 역전기법
소설이란 그 기본적인 구조가 역전의 기법을 쓰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광수의 「무정」가운데서 역전의 기법이 복잡하게 나타나는 것은 그의 문체화 기법의 특징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역전 기법을 사용하더라도 다른 작가들은 하나의 서술시점에서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나중에 이야기한다든지 나중에 일어날 일을 미리 이야기한다든지 하는 역전기법을 대부분 사용해 명확한 서술시점을 보인다. 이에 반해 이광수는 「무정」의 시간 구조도에서 볼 때 처음부터 허리가 부러지는 서술순서를 가지면서 형식이 선형의 영어 가정교사가 되고 같은 날 오후에 옛 은사의 딸 영채가 나타나며 이야기는 잠시 중단되어 10년 전과 7년 전의 이야기로 지리하게 방황하게 된다. 그러다가 다시 처음부분의 서술시점으로 돌아와서 거기로부터 소설은 비로소 자리를 잡고 소설 전체의 서술기점을 향해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고대소설이나 신소설에서는 이야기의 진행이 시간의 직선 상에서의 진전으로 해서 차례로 연결되는 데 비해 이광수의 「무정」은 서술 시발점이 스토리의 흐름으로 보아서 중간시점이 되는데서 시작되었다는 점, 말하자면 전체 스토리를 하나의 물의 흐름으로 보았을 때 가운데 부분에서 이야기가 시작되어 여기서 다시 과거로, 과거에서 다시 중간시발점으로 왕복현상을 나타내다가 또 다시 이 중간 시발점인 서술 시발점에서 미래 쪽으로 향해 이야기가 서술되는 것은 시간 착오기법으로 볼 때 이광수의 변혁적인 기법에 의한 문체특성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문체 특성이 나타나는 몇 가지 원인은 ①주인공들의 지향적 욕구와 존재적 현실 사이의 갈등, ②작가의 불확실한 미래지향적 태도, ③춘원의 ‘흔들리는 줏대’의 성격에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미온적 완만성과 지속적인 움직임이 기법화하여 나타나게 된 것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김정자, 『한국근대소설의 문체론적 연구』,1985
4. 손창섭 소설의 문체와 형상화 방법
손창섭은 50년대 전후세대 작가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개성을 지닌 작가로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문학사적인 의의를 획득하는 작품들은 기존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형식적 새로움을 달성한 것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터이다. 이러한 형식적 새로움은 작가의 현실을 보는 시간의 독특함에 의해 결정된다. 작품에 대한 형식적 연구, 형상화 방식에 대한 고찰은 작품의 현실내용에 불가분 연결되어 있고 형식은 내용으로의 진화이므로 그 안에 내용적 요소의 규정성이 강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손창섭 소설에는 다양한 형식적 요소가 자리잡고 있지만 그것들은 작품 현실의 내용적 요소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그 내용을 변형시킨다는 점에서 내용-형식이 통일되어 있다. 따라서 내용의 구조적 요소들은 형식에 영향을 미치지만 반대로 형식에 의해서도 내용이 일정 정도 왜곡되고 굴절된다. 형상화 방식에 대한 연구는 문체 연구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다. 본고에서는 지난 시간에 논의된 문체연구의 방법 중 통계적 방법 위주로 내용을 전개하고자 한다.
먼저 어휘적 측면에서 볼 때 손창섭의 소설에는 의성어보다 의태어가 지배적으로 나타나있다. 이러한 의태어는 주로 음성모음으로 이루어져 있고 인물이나 공간을 음울하게 수식하고 있다. 이러한 양태는 인물의 환경 속에서의 소외된 모습을 부각시키는데 일조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손창섭 소설 세계의 전반적인 어둠의 색조와 조화를 이룬다고 볼 수 있다. 김진기, 『손창섭-무의미 미학』, 박이정, 1999, 225쪽 참조
손창섭 소설의 전반적 특징인 암울성, 비극성 등은 이와 같이 음성모음의 빈번한 사용으로 보다 강화되어 전달되어 있는 것이다. 이처럼 손창섭은 작품 속에 수많은 상징어들을 효과적으로 구사함으로써 작중 현실이나 인물의 심리를 전달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의 소설문장의 또 다른 특징은 종결어미에서 제일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것이다/것이었다’라는 종결어미는 손창섭을 뚜렷한 스타일리스트로 자리매김 하는데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김윤식은 손창섭 소설 문장의 거의 대부분이 ‘~것이다/것이었다’로 서술된 점을 중시하면서 이 ‘~것이다/것이었다’라는 종지형은 묘사를 거부하는 서술방식이며, 그 때문에 아무런 해결점도 없음을 표시하기 위한 기능절 기호라고 규정했다. 김윤식, 『6.25전쟁문학-세대론적 시각』, 문학사와 비평연구회 편, 예하, 1991;김진기, 앞의책, 229쪽 참조
정호웅 역시 김윤식의 입장을 수용하여 ‘~것이다/것이었다’의 서술형은 사회에서 소외된 이방인의 어떤 감정도 가치판단도 개입되지 않은 철저하게 방관적인 태도를 뚜렷이 드러낸 것이라 하면서 그를 통해 반영되는 현실은 실제 현실이 아니라 허무화 된, 부재의 현실이므로 이 서술형은 결국 묘사를 거부하는 형식이라고 주장한다. 정호웅『50년대 문학연구』, 예하 1991, 48~51쪽 참조
이렇게 비내리는 날이면 元求의 마음은 감당할 수 없도록 무거워지는 것이었다. 그것은 東旭남매의 음산한
생활풍경이 그의 뇌리를 영사막처럼 흘러가기 때문이었다. 빗소리를 들을 때마다 元求에게는 으로 東旭과
그의 여동생 東玉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비오는 날」중에서
「비오는 날」의 서두 부분인데 「비오는 날」은 현재-과거-과거의 plot으로 되어 있어 작품 전체가 초점화자 원구의 회상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구성은 그 자체로 결말 구조가 미해결인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에 대해 서술자가 어떠한 감정상태로 바라보고 있느냐에 따라 위 예문의 종지형의 성격을 알 수 있을 것인데 그것은 서술자가 동욱과 동옥 남매와의 어처구니없었던 별리를 허탈하게 바라보고 있음에서 ‘허탈함’에 가까움을 알 수 있다. 이상과 같이 ‘~것이다/것이었다’의 서술형은 흔히 말하듯 설명이나 요약, 또는 정보전달의 기능뿐만 아니라 서술자의 허탈, 모멸, 연민, 풍자, 아이러니 등의 감정, 즉, 현실에 대한 강한 참여의지를 수반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감정은 현실로부터 끊임없이 소외되고 있는 주체를 표상하면서 그러나 동시에 그 현실에 어떻게든 스스로를 개입시키려는 의지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작중인물들은 단순히 소외된 존재이기 이전에 그 소외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손창섭 소설의 구조의 형상화 방식은 인물, 배경, 사건을 통해 살펴볼 수 있는데, 인물의 구성은 주로 별명, 비유, 비속어의 사용을 통해 고찰할 수 있다. 손창섭 소설에는 별명이 많이 쓰이고 있는데 이 별명은 그것의 소유자가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물의 소외를 설명해 준다. 또 그것을 명명하는 서술자 역시 별명소유자와 괴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비유법은 주로 직유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특히 확장 직유 확장직유는 ‘A는 B와 같다’는 직유의 형식 중 A나 B에 단순 명사를 대입하는 단순직유와 달리 하나의 문장이나 구를 대입시킨다는 점에서 단순직유에서 단점으로 지적되었던 관용성과 단순성이 지양되고 생동감과 개성적인 문체를 느끼게 하고 있다.
의 사용은 의사소통적 관용성과 독창적인 개성이 동시에 살려지고 있다. 또, 비속어의 사용은 손창섭 소설에서 인물 구성 방식의 하나인데 이것은 각각의 인간에 대한 연민이나 모멸, 주체의 사회화를 방해하는 현실에 대한 적의가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형상화 방식의 특징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손창섭 소설이 ‘관용성’과 ‘독창성’이 조화되어 소설의 주제와 일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일반적으로 문체가 가진 기능의 수준을 넘어 독창적으로 스토리를 형상화해내는 수준에까지 이르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라고 여겨진다.
5. 김승옥 소설의 감각적 문체 -「무진기행」을 중심으로
1962년 신춘문예를 통해 탄생한 김승옥의 언어 재능에 대해서는 일찍이 ‘감수성의 혁명’ 유종호, 「감수성의 혁명」, 『유종호 전집1-비순수의 선언』, 민음사, 1995
이란 참신한 용어로 정의된 바 있듯, 그의 작품들이 작가의 감각적이고 주도면밀한 문체의 반짝임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김현은 김승옥을 비롯해 1930년대 말~40년대 초에 태어나 대학시절에 4.19라는 역사적 제의를 통과한 문학인들을 ‘4.19세대, 혹은 한글 첫 세대’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 한국어로 사유하고 한국어로 글을 쓴 세대이기 때문에 일본에 대한 콤플렉스가 없으며, 대학에서 정식으로 문학교육을 받아 문학의 최신기법을 잘 알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하정일은 이러한 한글세대가 문학에서 표면적으로 잘 드러내고 있는 특색은 ‘문체’라고 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세대의 대표주자인 김승옥의 문체를 논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여겨진다. 본고에서 특별히 「무진기행」을 텍스트로 선택한 것은 김승옥 소설의 문학사적 위치와 문체적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작품이 「무진기행」이라는 일반적 평가를 따른 것이다.
내가 이불 속으로 들어갔을 때 통금 싸일렌이 불었다. ① 그것은 갑작스럽게 요란한 소리였다. 그 소리
는 길었다. 모든 사물이 모든 사고가 그 싸일렌에 흡수되어 갔다. 마침내 이 세상에선 아무 것도 느껴
지지 않을만큼 오랫동안 계속할 것 같았다. 그때 소리가 갑자기 힘을 잃으면서 꺾였고 길게 신음하며
사라져갔다.(…) 어디선가 한 시를 알리는 시계소리가 나직히 들려왔다. 어디선가 두 시를 알리는 시계
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선가 세시를 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선가 네 시를 알리는 시계소리가
들려왔다. 잠시후에 통금해제의 싸일렌이 불었다. ② 싸일렌은 갑작스럽고 요란한 소리였다. 그 소리
는 길었다. 모든 사물이 모든 사고가 그 싸일렌에 흡수되어 갔다. 마침내 이 세상에선 아무 것도 없어
져 버렸다. 싸일렌만이 세상에 남아 있었다. 그 소리도 마침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오랫동안 계속할
것 같았다. 그때 소리가 갑자기 힘을 잃으면서 꺾였고 길게 신음하며 사라져갔다.
하인숙과 헤어진 윤희중이 밤새 잠을 못 이루는 정황을 묘사하고 있는 위 인용문은 그 이전의 소설작품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시간 변조기법의 탁월한 본보기이다. 「무진기행」의 가장 뛰어난 장점은 ‘담론-시간’과 ‘이야기-시간’의 차이, 그 중에서도 특히 순차와 빈도의 기법을 적절하게 이용하여 작품의 극적 긴장과 미적 효과를 증대시킨 점에서 찾아야 한다. 이러한 시간 변조기법의 적극적이고 능란한 활용은 김승옥의 선배세대 작품에서는 여간해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것으로 본다. 장영우,「4.19세대의 문체의식」, 『작가연구』 6호, 1998.6
밑줄 친 ①과 ②는 동일한 문장 같지만 네 시간의 시차에 따라 발생한 서로 다른 사건을 묘사한 ‘중첩 반복’ 서술이다. 서사 이론에서 빈도는 반복의 개념을 포함하는데, 이때의 반복이란 개별적으로 발생하는 사건의 특성을 제거하고 여러 차례 발생된 사건의 공통적 특성만을 서술함으로써 획득할 수 있는 정신적 구조물이다. S. Rimmon-Kenan, NARRATIVE FICTION, Methuen & Co. New York, 1984, 56쪽 참조
따라서 통금을 알리는 싸일렌 소리와 그것의 해지를 알리는 싸일렌 소리에 작중인물의 동일한 심리적 반응을 보였다는 것은 그가 네 시간 동안 거의 무의식 상태로 있었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또, 시간이 흐를수록 윤희중의 수동적, 방관적 태도는 더욱 심해지는데, 네 시간 동안의 일을 단 네 문장으로 압축, 반복하여 진술하고 있는 고딕체 문장이 그것을 증명한다. 중첩 반복의 기법으로 진술되어 있는 고딕체 문장은 단순한 물리적 시간의 압축일 뿐만 아니라 그 동안 작중인물의 의식의 변화가 거의 없었음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는 하인숙에게서 자신의 옛 모습을 발견하고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 같아도, 이내 그런 고민에서 벗어나 방관자의 처지로 돌아서는 것이다. 이처럼 「무진기행」은 생략과 빈도의 기법을 도입하여 ‘담론-시간’과 ‘이야기-시간’의 단절에서 비롯하는 극적 긴장을 높일 수 있었고, 작중인물의 방관적 태도를 효과적으로 드러내 보여줌으로써 뛰어난 소설 구성의 미학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문체론이 다룰 수 있는 범위는 작품에 나타난 언어현상뿐 아니라 작품의 구성, 작중 인물의 성격창조, 서술기법 등 창작 기법과 관련된 거의 모든 특성을 검토, 분석하여 그것의 역사주의적, 사회학적 의미를 해명하는 것으로 정리된다. 김정자, 『한국 근대소설의 문체론적 분석』, 삼지원, 1995, 21쪽 참조
한 마디로 문체론은 문학작품을 기법이라는 형식의 특이성으로 분석하고 연구하는 분야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작품에서 ‘문체소’ ‘문체소’란 어떤 특정한 문학 작품에서 미적 효과를 발휘하는 언어 요소를 말하는데, 이 언어 요소들에 의해서 문체가 구성된다.
를 찾아내는 일이 선결 조건이 되는데 「무진기행」에서 그것은 주인공 윤희중의 관찰자적, 수동적 태도를 암시하는 피동의 서술문 형태로 나타난다. 또, 이 소설의 주요 배경이라 할 수 있는 ‘안개’도 주인공의 수동적 태도를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무진의 안개는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쌓았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는” 마력을 가지고 있어서 “무진에서는 항상 자신을 상실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이처럼 「무진기행」의 기본 어조라 할 수 있는 피동 서술문과 주요 배경인 안개는 작중 인물의 수동적 성격을 형상화하고 강조하는 데 효과적으로 기여한다.
김승옥 소설을 연구하는 이들에게 하나의 정설로 인증받은 사실은 김승옥 소설의 가장 커다란 매력이 문체에 있다는 것이다. 김승옥의 문체에 대해 김현은 “중문과 복문의 알맞은 배합은 관계대명사의 부재로 우리 글에선 상당히 힘든 부분에 속하는데도 그는 교묘하게 그것을 행하고 있다. 청각적 이미지와 시각적 이미지의 결합은 거의 독보적인 것”으로 높이 평가하고 유종호 또한 “그의 신선하고 섬세한 문체는 문학 고유의 자산과 위엄의 모범 사례”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특히 김현은 김승옥 소설의 문체가 “서구적인 냄새를 풍기면서도 번역투 같지 아니한 교묘한 문체를 내보인다”고 말한다. 그런데 김현의 이 말에는 그가 김승옥의 문체에서 서구 문학의 번역체 같다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그것을 솔직히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도가 내재된 것으로 생각된다. 장영우, 앞의 책 50쪽 참조
① 그 여자는 개성 있는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② 그 여자의 노래가 끝나자 나는 의식적으로 바보 같은 웃음을 띄우고 박수를 쳤고 그리고
육감으로서랄까, 나는 후배인 박이 이 자리에서 떠나고 싶어하는 것을 알았다.
인용문 ①은 대표적인 번역체 문장이고 ②는 쉼표 뒤에 나오는 ‘나는’이란 주어를 생략하는 것이 보다 자연스럽다. 간단한 예를 들었지만,「무진기행」은 다소 서구 번역체 문장의 남용이 문제점으로 지적될 만 하다. 하지만 지적에도, 「무진기행」을 비롯한 김승옥의 소설에서는 무엇보다 스토리를 형상화하는 감각적 표현들이 돋보인다.
그 여자가 부르는 ‘목포의 눈물’에는 작부들이 부르는 그것에서 들을 수 있는 것과 같은 꺾임이 없었고
대체로 유행가를 살려 주는 목소리의 갈라짐이 없었고 흔히 유행가가 내용으로 하는 청승맞음이 없었다.
그 여자의 ‘목포의 눈물’은 이미 유행가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나비부인’ 중의 아리아는 더욱 아니었다. 그
것은 이전에는 없었던 어떤 새로운 양식의 노래였다. 그 양식은 유행가가 내용으로 하는 청승맞음과는 다
른, 좀 더 무자비한 청승맞음을 포함하고 있었고 ‘어떤 개인 날’의 그 절규보다도 훨씬 높은 옥타브의 절규
를 포함하고 있었고, 그 양식에는 머리를 풀어헤친 광녀의 냉소가 스며 있었고 무엇보다도 시체가 썩어
가는 듯한 무진의 그 냄새가 스며 있었다.
「무진기행」중에서
시골 세무서 직원들이 손가락으로 술상을 두들겨 주는 장단에 맞춰 유행가를 부르는 하인숙에 대한 묘사이다. 여기서 윤희중은 과거의 편린이라고 할 수 있는 역 앞에서의 미친 여자와, 자신의 생애 속에 끼어 든 것을 느꼈던 하인숙과, 바다로 뻗은 긴 방죽에서 본, 아프긴 하지만 아끼지 않으면 안 될 내 몸의 일부처럼 느껴진 술집 여자의 시체가 하나의 이미지로 뭉뚱그려져 있음을 볼 수 있다. 각각 따로 떨어져 윤희중이 맞닥뜨렸던 세 여자가, 사실은 타인이지만 타인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상관성과 그것을 느끼는 윤희중의 의식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이외에 여인의 욕망과 적극성에 의한 성적 결합을 가리켜, ‘조바심을 빼앗아 주었다.’고 표현한다든가 무진의 안개에 대한 묘사 등 작가는 섬세하고 예민한, 탁월한 언어의 조형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얼핏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인물 사건 등 구성의 문제에까지 작용하여 문체의 반짝임으로 스토리까지 강조해 주고 있다.
6. 결 론
지금까지 한국 현대 소설의 문체를 이광수, 손창섭, 김승옥을 중심으로 정리해보았다. 먼저 이광수의 문체는 언어 환경과 작가의 품성에 의해 결정 지어지는 문체소(文體素)로 접근방식을 가져감에 따라 고소설과 신소설에 이은 역사적 측면, 작가의 계몽주의와 공리주의적 입장에서 문체를 분석해 보았다. 또, 손창섭은 문체론 연구의 통계적 방법을 위주로 어휘적 측면과 분위기의 형상화 방법을 고찰했다. 마지막으로 김승옥은 한글세대 작가를 대표하는 참신한 감각적 표현과 시간 변조 기법 등을 중심으로 문체적 특성을 살펴보았다. 각기 다른 시대의 작가와 작품을 문체론적으로 접근하며 공통되게 느껴지는 것은 소설의 문체가 주제 형상화 방식의 중요한 수단이라는 점이다.
또, 이 글을 쓰면서, 같은 소설이라 하더라도 문체의 연구방향에 따라 작품에 대한 분석적 도출 내용은 무궁무진하다는 것과 함께 지난 시간에 언급했듯 우리 나라의 문체론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새삼 실감하게 됐다. 따라서, 더 많은 우리의 소설을, 더 다양한 방식을 통해 문체론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문학의 미개척 분야를 선점하는 깃대를 꽂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한 비평가가 소설의 문체를 만화에 비유한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어떤 만화가의 그림은 다른 만화가의 그림과 확연히 구별된다. 따라서 만화를 많이 보게 되면 나중에는 그 만화가의 이름을 보지 않고서도 그 만화의 그림만 가지고도 누구의 만화인지 구별할 수 있고, 그 만화가 풍기는 뉘앙스나 재미를 예측할 수 있는데, 이러한 만화의 특징이 곧 소설에서의 문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소설은 언어를 매개로 하여 씌어지는 언어예술이다. 이러한 언어 예술이라는 집을 창조하고, 연구하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들이라면 먼저 ‘문체’라는 골재를 튼튼히 세우는 일에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