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二 章 桃園의 봄
수레가 덜커덕---.
포물선을 그린 길을 달리는 마차 수레에서는 음침하게,
『삐이걱』
하는 소리가 계속 무거운 공기를 뒤흔든다.
『휘익』
하고 말채찍이 하늘을 날더니 수레바퀴의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해지며 온 하늘에 홍진(紅塵)을 불러 일으켰다.
하남(河南)의 관도(官道) 위에는 두 필의 준마가 한 수레를 끌고서 분주히 달려가고 있다.
다시 말채찍이 허공을 날자,
『히이 힝---』
말은 고개를 번쩍 쳐들면서 굽이굽이 굽은 관도를 화살처럼 달려가고 있다.
二, 三일을 계속하여 눈을 뿌리던 하늘이 처음 개어서 맑은 날씨였다.
본래 평탄한 이 관도에 눈이 내리면서 녹이는 바람에 길은 질척거려 아주 수렁을 이루다시피 하고 있었다.
맑은 날씨에 따스한 햇빛이 비쳐서 관도를 달렸으니 한편으로는 먼지가 일어서 마차는 뽀얗게 물들었고 더욱이 진흙마저 뒤집어쓰니 말과 수레와 말을 모는 소년의 모습은 이루 말이 아니었다.
먼지와 진흙과 땀으로 한 덩이가 된 소년의 모습은 마치 진흙으로 빚은 미이라와 같아 보였다.
『철썩---』
하고 소년은 오른손을 들어 한 번 채찍질을 하고 왼손을 들어 앞가슴의 단추를 풀어 헤쳤다.
풀어헤친 옷 속에서는 근육이 억센 희멀건 가슴패기가 노출된다. 그러나 서늘한 바람이 가슴의 땀을 말리기도 전에 먼지를 뒤집어써서 검붉은 색으로 변하여 버린다.
수레는 다시 한 굽이를 돌았다.
그 굽은 길이 끝나는 곳에 아늑한 한 촌락이 나타났다.
마을이 보이자 소년은 말고삐를 잡아 말의 걸음을 늦추었다.
그는 허리춤에서 수건을 꺼내더니 얼굴과 가슴패기의 땀을 닦았다. 수건자락에는 푸른색으로 사람의 해골이 그려져 있었다.
『아직 좀 더 남았어. 조금만 더 가면 된다.』
그는 흙투성이가 된 말에게 달래듯 말한다. 그것이 그의 어진 성품을 말하여 준다.
마차는 긴 여음을 끌며 촌락을 빠져 나갔다. 그리고는 이어 왼쪽 길을 돌아 노패복록전방(老牌福祿棧房)이라는 간판이 붙은 집 앞에서 섰다.
마차가 전방 앞에서,
『삐이걱---』
하면서 멈추자 전방 문이 열리더니 중년의 뚱뚱이가 나오면서 큰 소리로 맞이한다.
『운소가(鄆小可)! 고생 많이 했지! 짐은 가지고 왔나?』
소년은 말채찍으로 마차 위를 가리키면서,
『사람을 불러 운반합시다.』
『운소가, 몸이나 빨리 씻어! 말은 우리가 먹일게.』
『급히 서두를 것 없어요! 내 먼저 말을 먹이고 나서 몸을 씻겠소.』
『호(胡) 노인이 이렇게 복이 많을 줄은 몰랐군. 자네와 같은 이렇게 부지런하고 날랜 조수를 얻었으니 말야!』
그는 사람을 불러 짐을 풀면서 이것저것 쓸데없는 간섭을 하고 서성거렸다.
한편 소년은 말을 닦아주고 마초를 먹이고 있었다.
그는 말을 닦던 솔을 통에 던져버리고 한 묶음의 마풀을 한 아름 던져 주었다.
소년의 이러한 동작은 모두가 기계적이고 감각이 없는 행동같이 보였다.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운학(鄆鶴)아! 이 마부의 생애도 앞으로 열이틀이면 끝이 난다. 허지만 그 노인이 와야……』
중얼거리는 그의 얼굴에 한 가닥의 기쁨의 미소가 어리더니 차츰 얼굴 전체가 이죽거리며 마침내 큰 소리로 껄껄거리고 웃었다.
그는 펑퍼짐한 말 궁덩이를 투덕거리면서,
『자아! 이제는 내 차례다.』
그는 웃통을 벗어젖히고 먼지투성이가 된 몸을 씻기 시작한다.
『운학아 밥 먹어야지!』
운학은 물방울이 맺힌 머리를 수건으로 닦으며 자리를 떠났다.
먼젓번의 그 뚱뚱이는 건장하고 늠름한 소년의 몸을 부러운 듯이 쳐다보면서 감탄한다.
『참 잘 생긴 놈이거든!』
하며 뒤돌아서니 운학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의 뒤를 쫓아간다.
대청마루에는 밥상을 둘러싸고 대여섯의 건장한 남자들이 떠들썩하면서 무엇인가 웃어대면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밥상 위에는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차려 있었다.
하루 종일토록 풍진 속을 말을 몰라 달려 온 그는 몹시 시장하여 삽시간에 허기를 메우느라 체면도 인사도 차리지 않고 먹어댄다.
뚱뚱보 모거산이 그 옆에서 바라보고 있다가 운학이 수저를 놓는 것을 보고,
『운소가, 더 먹어!』
하고 권한다. 그러나,
『……됐어요.』
하며 자리를 뜨는 운학은 여전히 표정이 없다.
식탁 주위에는 모두 거칠은 행객으로서 이들에게 겸양하거나 인사를 차릴 필요는 없었다.
운학은 밥상을 떠나서 천천히 뒤뜰로 내려섰다. 뒤뜰은 넓은 화원으로 되어 있어서 기다란 수양버들 가지가 소슬한 바람에 흔들리고, 가지가지 철따라 피는 꽃은 벌써부터 초록색의 탐스런 움이 트고 있었다.
운학은 길게 숨을 들여 마셨다. 상쾌한 저녁 바람에 심신의 피로가 일시에 가시는 듯 생기가 솟아난다.
하늘에는 붉은 노을이 한참 물들고 있었다. 노을에는 물든 붉은 구름은 대지를 붉게 불태우는 듯, 황홀하고 아름답다.
운학은 화원의 오솔길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한유한 강남의 봄---.
머지않아 마을에는 온갖 꽃이 다투어 피리라. 복숭아꽃, 오얏꽃, 살구꽃, 그리고 스쳐가는 미풍은 인간을 살찌게 하리라. 온 마을이 꽃나무에 싸이고, 맑은 냇물이 마을을 씻어내니, 그 정경이야말로 해마다 강남의 도원경이요, 가히 선경이라 할 것이다. 운학은 이렇듯 아름다운 자연의 고장에서 때 묻지 않고 깨끗한 모습으로 성장했다.
안방 마루로 통하는 문이 열리면서 열서너 살 되어 보이는 한 소녀가 얼굴을 내밀었다.
소녀는 운학을 향해,
『오빠, 좀 오셔요, 조그만 고양이가 종이 원앙새를 찢었어!』
그 목소리는 영롱하게 굳으며 운학을 재촉한다. 붉은 입술과 깨끗한 용모가 흡사 작은 선녀와도 같았다. 운학과 소녀는 복록전방의 외로운 고아 남매였다.
소녀는 오색가지 색종이로 원앙새를 접다가 운학의 모습을 본 것이다. 소진은 원앙새를 집은 채 뛰어나왔다.
운학은 동생의 손을 잡아주고 옷맵시를 만져 주었다. 그리고는 안 마루로 들어가 거기 흩어진 색종이로 원앙새 한 쌍을 만들어 주었다. 소녀는 만족한 듯 어리광을 부렸다.
그 때 안에서 부르는 소리가 났다.
『소진이, 노모가 부르시는데, 가 보아야지?』
소녀는 품에 담긴 색종이를 털어버리고 안으로 들어가면서 활짝 미소를 지어 보인다.
붉었던 노을이 스러지면서 차츰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운학은 팔짱을 낀 채, 멍하니 서서 어두워가는 산 그림자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는 이제 소년이 아니었다. 어깨는 떡 벌어지고 버티고 선 두 다리는 힘이 넘쳐 있다. 순수한 눈매가 깊게 보이고 큰 눈동자는 사색에 잠겨 있다.
(---열 이틀, 열 이틀만 지나면 노인이 올 것이다. 노인은 무엇인가 말할 것이지. 그런데 너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이윽고 그는 전방으로 발을 옮긴다.
이제 밤은 나래를 펴고 소리없이 깊어간다. 사방은 죽은 듯이 고요하고 여기저기서 코고는 소리가 높았다.
운학은 조용히 삼문을 열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침상에 몸을 눕혔다. 하루의 피로가 일시에 밀려드는 듯, 그는 곧 깊은 잠에 떨어졌다.
이슥한 창공에 조각달이 떴다. 미풍이 불어와 나뭇가지를 흔든다. 코고는 소리도 이제는 들리지 않는다. 어느 때나 되었을까?
그때 문득 기계와 같은 동작으로 운학의 몸이 일어났다. 그리고는 그림자처럼 움직이며 단정히 무릎을 꿇는다.
---일초, 일초…….
그러나 그 몸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고 다소곳이 머리는 앞으로 기울고 눈은 지그시 잠겨 있다.
그는 이렇게 불가의 면전에 참선하는 도승과 같은 엄숙한 모습으로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구름 속에 들어갔던 초생달이 차츰 얼굴을 내밀었다. 어둠침침하던 방안이 희뿌옇게 밝으니 운학의 참선하는 그림자는 맞은 편 벽 위에 얼룩이 진다.
죽은 듯이 적막한 밤. 이 밤이 주는 야릇한 오기! 그리고 가벼운 바람소리---
무릎을 꿇고 단정히 앉은 운학의 몸은 아무 미동도 없다. 이제 그는 완전히 선계(禪界)로 들어섰다.
무념, 무상, 무아의 세계---
이는 그가 이 삼년 동안을 한결같이 지녀 온 모습이었다. 그것은 언제나 그 시각에 일어나 실행해 온 까닭에 이제는 거의 기계와 같은 동작으로 되었다.
이 운학의 선(禪)의 세계는 다시 공간을 메우고 때를 독촉하면서 삼경(三更), 사경(四更)으로 시간은 줄달음치고 있으나 적막을 깨는 벌레의 울음소리마저 들려오지 않는다.
동녘의 높은 산그림자가 어렴풋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더니 산정(山頂)이 차츰 밝아지면서 붉게 물들어 간다. 머지않아 대지는 밝아 올 것이다.
밭에는 벌써 바쁜 농부의 발걸음이 바삐 움직이고 있다.
운학은 전방에서 두 그릇의 콩국을 마시고 나서 새벽이슬에 젖은 뒤뜰로 나왔다.
그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이슬 맺힌 돌을 찾아 앉는다. 그리고는 장삼을 헤치고 낡은 책 한권을 꺼내들고 읽어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상쾌한 아침 바람!
맑고 깨끗한 아침 바람에는 새싹의 향기가 담겨져 있어 몸과 마음을 무아(無我)의 지경으로 이끌어 간다.
얼마 동안 책을 읽고 있던 그는 책갈피에서 한 장의 종이조각을 꺼내 들고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침사곡이라! 침사곡!』
하며 중얼거린다.
이때 전방 쪽에서,
『쉬…… 제가 잠깐 쉬어야겠어요!』
하는 나지막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운학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니 거기에는 이제 나이 겨우 십육, 칠 세 되었을까 말까 한 어여쁜 소녀가 기웃거리고 서 있었다. 그 모습이 가히 사랑스러웠다.
소녀는 볼에 패인 보조개를 손가락으로 누르고 망설이는 눈치였다. 그 모습이 무엇인가 걱정에 잠긴 듯. 상혈된 눈은 안정을 잃고 있었다.
소녀는 낮은 소리로 탄식처럼 중얼거렸다.
『아이 참, 어떻게 한다지……?』
운학은 호기심에 이끌려 찬찬이 소녀의 몸매를 살펴보았다.
소녀는 손을 들어 머리에 올리며 검고 윤기나는 머리카락을 움켜쥔다.
그 자태가 몹시 애처로웠다. 소녀는 양미간에 어두운 그늘을 지으면서 낮은 소리로 또 중얼거렸다.
『어떻게 할까? 사형(師兄)에게 다시 붙잡혀 간다면……』
운학은 한편 놀라고 한편 기이하게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 하는 양으로 보아서 누구에게 쫓기고 있음이 분명하였다.
소녀의 얼굴은 깊은 수심으로 그늘지고 그 모습이 가련하기 이를 데 없었다.
운학은 걸음을 옮겨 소녀에게 가까이 갔다. 그러자 소녀는 갑자기 숙였던 머리를 불쑥 쳐들었다.
운학은 어리둥절하였다.
그때 소녀는 용기를 얻은 듯,
『됐어……, 여기서 수레를 하나 얻어 몸을 숨겨 수구(水口)로 빠져 나가야지. 무섭기는 뭐가 무서워……?』
이렇게 중얼거리고는 이제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듯이 얼굴에 미소까지 떠 올린다.
그때까지 전방(棧房)에서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소녀는 기다리기나 하려는 듯이 뒤뜰로 걸어 들어와서는 거기 낮은 돌 위에 앉았다. 그 태도가 운학을 전혀 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운학이 입고 있는 겉옷이 실상은 말이 아니었다. 입고 있는 장삼은 때와 먼지가 앉아 남루하기 짝이 없고 아랫도리 또한 해쳐 누덕으로 기운 자국이 여기저기 드러났다.
운학은 팔짱을 낀 채 잠시 소녀의 모습을 관망하였다.
소녀는 작은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 땅에다 대고 뭣인가 쓰고 있었다. 무엇인가 궁리하는 것이리라, 그러다가 문득,
『아 참!』
하고는 고개를 든다.
그 모습은 고르지 못한 여름 날씨와 같은 것이었다. 금방 흐렸다가는 개이고, 개었다가는 곧 흐려지는 것이 마치 여우비라도 쏟아지려는 것인가?
『그러나 여비가 없으니 어쩐담!』
허공으로 눈을 보낸 채 혼자 자문자답하는 것이었다.
운학은 소녀의 혼잣말을 듣고 그의 걱정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소녀는 인지(人指)로 볼의 보조개를 만지작거리면서 무엇인가 궁리에 빠지고 있었다.
『어떻게 되겠지? 무조건 수레를 빌려 타고 수구(水口)에 도착해서 돈을 갚아 주면 되겠지!』
소녀는 영리했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이 미친 것인 거나 아닐까?
소녀는 전방(棧房)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더니 밭이랑 길을 따라서 마을로 향하였다.
운학은 이 소녀의 중얼거리는 소리를 나무 그늘에서 정신없이 듣고 있다가 소녀가 전방에서 몸을 돌리는 것을 보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이제 날이 활짝 밝아왔다.
전방 안은 몹시 시끄러웠다.
주책없이 수다를 부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분주히 짐을 꾸리는 사람도 있었다.
운학은 전방 안으로 들어가서 우두커니 이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시무룩한 모습은 거의 천성이 그러한 것일까!
여관집 심부름꾼이 양 손에 술병을 들고 가면서 운학을 보더니,
『한잔 하지 않겠나!』
한다. 운학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때---
『뚱뚱이 모씨! 모거산!』
하며 출입문이 시끄러워진다.
전방 안에서 이것저것 하인을 부리고 있던 뚱뚱보 모거산은 귀찮다는 듯이,
『무엇하러 날 찾아!』
하고 소리친다.
문 밖에서,
『나요, 나란 말야! 노왕(老王)이야.』
모거산은 출입문으로 뛰어가면서,
『노왕, 왜 그러슈!』
노왕은 무엇인가 신기한 것을 본 모양이다. 그는,
『오늘 여기서 수구로 떠나는 수레가 있나?』
『응. 오늘 수구로 가는 편이 있을걸.』
대답을 하면서 모거산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노왕을 쳐다보았다. 노왕의 옆에는 아까 운학이 뒤뜰에서 본 소녀가 서 있었다.
『왜? 이 아가씨도 타고 가시게?』
『응, 그래. 이 소녀도 급히 수구에 갈 일이 생겨서……』
노왕의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모거산은,
『그건 좀 힐들걸세! 짐수레에 타고 갈 손님은 마부의 특별 손님인가 보던데! 잠깐 기다려 보게나! 내 물어 봐 줄 테니……』
전방 안은 여전히 시끄럽고 떠들썩하여 대문 밖에서의 모거산과 노왕의 대화를 들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다만 물끄러미 앉아서 객주 안을 지켜보던 운학은 이 대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듣고 있다가 뒤뜰에서 보던 소녀의 생각이 나서 그는 문득 호기심이 일어났다.
모거산은 심부름 하는 아이를 불러서,
『너 가서 전보삼(錢普三)과 조승(趙勝)을 불러 오너라. 그들 두 사람은 수레를 몰고 수구로 갈 사람들이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맞은편 객주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야!』
옆에 서 있던 소녀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심부름하는 아이가 달려가는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얼마를 지난 뒤에 심부름하는 아이는 뛰어서 돌아왔다.
그의 뒤에는 四, 五명의 사나이가 뒤따라오고 있었다.
앞에서 달려오는 두 사람은 운학도 잘 아는 사람으로 즉 전보삼과 조승이었다.
이 두 사람의 뒤에는 몇 사람이 뒤따라 왔으나 잘 알지는 못하였지만 그들이 마부라는 것은 금세 알아 볼 수가 있었다.
이들이 전방 출입문에 도착하자,
『노전(老錢)! 내일 당신은 수구로 떠나는 거지? 마침 이 아가씨가 당신 수레에 타셨으면 하는데 어지간 하거든 편의를 좀 봐 드리게나!』
모거산의 이런 부탁을 듣자 그는 옆에 서 있는 소녀를 힐끗 쳐다보더니,
『모 뚱뚱이, 내 수레 위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 못한다는 것을 자네는 잘 알고 있을 터인데……』
그 따위 일로 나를 불렀느냐 하는 눈치이다.
모거산은 다시 옆에 서 있는 사나이를 쳐다보면서,
『그러면 노조(老趙) 당신은?』
조라는 사나이는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는 꼴이 단단히 한 잔 마신 것 같았다. 그는 취기 어린 목소리로,
『아가씨, 돈은 얼마나 내겠어?』
소녀는 눈을 깜박거리며 사나이를 쳐다보더니,
『돈은 상관하실 것 없어요! 얼마든지 드릴게요!』
운학은 이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서 새벽 뜰 뒤에서 소녀가 혼잣말로 지껄이던 생각이 문득 일어났다.
머리를 극적이며 무엇인가 생각하고 있던 조승은,
『좋습니다. 내일 이른 아침에 이곳에 오셔서 나를 찾으십시오.』
소녀는 고맙다는 듯이 발을 동동 구르면서,
『감사합니다.』
맑은 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목소리로 아양을 떨었다.
그리고는 바삐 되돌아 서서 그 자리를 떠나려 하니까, 조승과 전보삼은 의논이라는 한 듯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닌가.
『안 되겠는 걸! 우리는 이 아가씨를 태워줄 수가 없겠는걸!』
그의 태도는 표변하였다.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운학은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그들도, 이렇게 거절한 것이 순리에 어긋났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몸을 돌리더니 쏜살같이 달랴오던 길을 내빼고 있었다.
모거산이 손짓을 하며 무엇인가 항의의 말을 하였으나 그들은 들은척 만척 하고 도망치듯 달려간다.
옆에 서 있던 노왕(老王)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또 놀랐다는 듯이,
『에?』
하며 고개를 돌려 모거산을 쳐다보았다.
모거산은 전(錢) 조(趙) 두 사람을 따라왔던 사람을 두리번거리며,
『여보게! 자네 세 사람은 반달 만에 겨우 말을 모는 셈이니 심심풀이로 아가씨를 좀 태워다 드리게나!』
말을 들은 세 사나이는 어깨 너머로 소녀를 넘겨보더니 깜짝 놀란 듯이,
『안 돼요!』
하는 한 마디를 남기고는 두 손으로 머리를 얼싸 안고 앞으로 달려 가버린다.
모거산은 의아스러웠다.
간단히 이렇게 거절하는 꼴을 보니 무슨 곡절이 있는 것같이도 싶어 의아심이 들었다.
소녀는 땅바닥에 펄쩍 주저 물러앉더니 엉엉 소리 내어 울기 시작하였다.
전방의 심부름 하는 아이들이 그를 삥 둘러싸고 무엇인가 위로를 하여 주려고 하였으나 소녀의 우는 목소리가 하도 커서 멀거니 보고 서 있을 뿐이었다.
둘레에 서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얼굴색을 변하면서 소녀의 등 뒤를 쳐다보고 우두커니 그를 지켜보았다.
모거산도 아가씨 등에 쓰인 그 이름의 묘함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소녀는 좀체로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모거산은 앞으로 불룩 나온 배를 만지작거리면서,
『얘야! 너 다시 가서 소전(蘇全)을 불러와 보렴!』
그러자 한 나이 어린 홍안의 소년이 모거산의 귀에다 나지막한 소리로 무엇인가 소곤거린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소년의 귓속말을 듣고 있는 모거산의 얼굴빛이 차차 변하여 가더니 오른손을 들어 설레설레 흔든다.
모거산은 소녀를 데리고 온 노왕에게로 다가가더니 입을 손으로 가리고 노왕에게 무엇인가 설명하는 눈치였다.
얼마만에 모거산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노왕의 얼굴색도 변하더니 소녀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사라져 버린다.
운학은 이 모양을 처음부터 끝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보고 있던 운학은 못마땅하다는 듯이 퉷---하고 침을 뱉어 버린다.
그는 소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모거산은 황급히 운학에게 무엇인가 말하려 하였으나,
『여, 아가씨, 내가 당신을 수구까지 태워다주지.』
소녀는 눈을 크게 뜨고 놀랐다는 듯이 울음을 멈추고는,
『당신이 나를 태워다 주겠다고요?』
운학은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그의 남루한 옷은 바람에 날려 흔들리고 있었다.
뒤에서 모거산이 별안간,
『안 돼!』
『어째서?』
운학의 반문하는 태도는 아주 거만하게 보였다.
『며칠 있으면 자네는 마부 생활을 고만 둘 것이 아닌가?』
『아직도 며칠 남았으니 수구에 다녀와도 별 지장은 없을걸!』
『그래도 안된다니까.』
운학은 뚫어져라 하고 모거산의 얼굴을 쳐다본다.
모거산은 무엇인가 무서운 압박감을 느끼면서 내뱉듯이,
『자네가 잘 알아서 하게.』
하며 소녀의 등 뒤에 새겨진 이름을 가리킨다.
운학은 눈길을 돌려 모거산이 가리킨 손끝을 보니 아가씨의 등 뒤에는 색채도 영롱한 한 송이의 매화꽃이 수놓아져 있었다.
운학은 지금까지의 경위로 봐서 그 한 송이 매화꽃에 무슨 곡절이 숨겨져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단호한 태도로,
『어째서 안 되나요?』
모거산은 다시 얼굴색을 바꾸며,
『운학! 자네는 모르겠나? 신권금강을……』
운학은 모거산의 이 말을 들은 척도 않고서 소녀를 쳐다보면서,
『아가씨, 내가 틀림없이 당신을 수구로 태워다 드리겠소.』
하며 그는 뒤돌아 서서 전방 안으로 들어가려 발을 옮긴다.
소녀는 뜻밖의 이 지원자를 만나고 무척 마음이 놓이는 것 같았다.
『물론 내일 이른 아침에나 태워다 주시겠지요?』
『천만에 지금 당장……』
운학은 벌써 전방 앞에 세워둔 마차에 몸을 싣고 말채찍을 잡으며 소녀보고 타라는 눈짓을 하였다.
마부를 태운 두 필의 말은 고개를 번쩍 치켜 올리며 히힝거리니, 말 또한 빨리 가자는 몸짓이다.
어느 틈엔가 모거산이 맞은 편 객주집에서 조승과 전보삼을 앞세우고 수레 옆으로 다가서고 있다.
『어어 운학 잠깐 기다려!』
운학이 고개를 돌려 그 쪽을 바라보니 조승과 전보삼은 한 잔 간단히 얼어 있었다.
술 냄새와 안주 냄새가 마차 위에 앉아 있는 운학의 코를 콱 찌른다.
조승이 숨 가쁘게,
『운학, 이 화(禍)에 끼어들지 말게!』
운학은 대답 대신에 입을 삐죽하여 보였다.
뒤이어 전보삼이 음성을 낮추며,
『운학 하필이면 자네가 이 화중에 말려 들어갈 게 무어람!』
이런 말을 듣지 않았더라도 무엇인가 곡절이 있을 것이라는 것은 짐작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곡절을 끝내 아무에게도 묻지 않았다.
오히려 처음부터 자기는 모두 알고 있다는 눈치를 보이면서,
『픽---』
하고 웃음으로 대답에 대신하였다.
조승과 전보삼은 한참 서로 마주 보고만 서 있더니,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열려고 하자,
『철썩!』
하는 소리와 함께 수레는,
『끼익---』
하는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주위에 수레를 둘러싸고 서 있던 여러 사람은 혀를 내밀면서 놀라는 표정이었다.
다시,
『철썩』
하며 앞길을 재촉하는 말채찍 소리가 들려왔다.
조승은 바보처럼 멀거니 서 있었고 전보삼은 마땅치 않다는 듯이 발을 앞으로 다가서면서 침을 뱉고는,
『운학! 네 놈이 크게 맛을 봐야 될 놈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수레가 사라져 가는 길가에는 붉은 먼지가 뽀얗게 긴 선을 긋고 있었다.
운학의 수레가 마을을 벗어난 뒤에 반경(半更)이 지났을 무렵, 이 마을에 황급히 뛰어드는 한 필의 말이 있었다.
말은 붉은 먼지를 일으키며 마을을 벗어나더니 복록전방 앞에 이르자 말 위에 타고 있던 험상궂은 사나이가 말고삐를 당기며 멈추었다.
말 위의 사람은 험상궂게 생겼으나 말은 이 근방에서는 보기 드문 준마(駿馬)였다.
말 위의 사나이가 가까이 다가온 것을 보니 나이가 제법 어리게 보였으나 그의 모습은 지나칠 정도로 늠름한 것이 오히려 미욱하기까지 하다.
말이 멈추자 그는 눈을 부라리면서 전방 출입문을 노려보더니,
『야아! 전방 안에 있는 놈들은 모조리 이리 나와서 한 줄로 서라!』
모거산과 전보삼은 서로 눈짓을 하면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버리더니 모거산이 떨리는 음성으로,
『결국 화가 일어났구나! 신권금강……』
말 위의 청년이 성화같이 독촉을 한다.
『어째 나오지 않는가?』
모거산은 얼른 뛰어 나가서는 허리를 굽히면서,
『선생님께선 무슨 분부라도……?』
말 위의 사나이는 서슬이 시퍼레지면서,
『듣건대 방금 등에 매화를 수놓은 계집아이에게 너희들이 여기서 마차를 빌려 주었다면서?』
모거산은 사지를 벌벌 떨면서 머리를 조아리고,
『네 그랬습니다.』
대답하는 모거산의 목구멍에서 꿀꺽 하고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빌려준 마차는?』
모거산은 피할 길이 없다고 생각하였는지,
『예. 요즈막 새로 들어온……. 선생께서는 제가 말씀 올려도 잘 모르실 것입니다.』
『야 이놈아! 내가 너에게 수레를 빌려 준 일이 있느냐고 묻고 있지 않아!』
사나이가 화를 벌컥 내면서 모거산을 노려보는 바람에 그의 대답은 자꾸만 빗나가기 시작하였다.
모거산은 움찔 하고 질겁을 하더니,
『예, 예. 빌려준 일 있습니다.』
대답을 하면서 모거산이 눈을 치켜뜨고 말 위의 사나이를 쳐다보니 그는 화를 벌컥 내면서 말채찍을 허공으로 날린다.
『휘익.』
하는 소리와 함께 모거산의 머리 위에 차가운 바람이 일었다.
『죽일 놈아! 예이 이 건달 놈아. 수레는 어느 방향으로 갔지?』
모거산은 땀방울이 맺힌 이마와 머리를 얼싸안고 앞을 가리키면서
『저쪽……, 저쪽…….』
말 위에 젊은이는 모거산이 가리킨 쪽으로 말을 돌려 질풍같이 달려간다.
나란히 두 필의 말이 달려가는 말굽소리는 마치 교향악 같이 들려왔다.
운학은 말고삐를 왼손에 엇갈아 잡고 오른손으로 수레 곁에서 방한모를 집어서 머리에 비스듬히 썼다.
소녀는 전방을 떠난 뒤에 지금까지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운학의 머리에는 이상야릇한 생각이 끝없이 떠오른다.
---신권금강이라고? 도대체 신권금강이란 어떤 인물이냐? 또 그와 이 아가씨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이런 아가씨 혼자서 강호를 돌아다니는 것은 무슨 까닭이 있는 게 아닌가?
마차는 밭 사이 길을 경쾌하게 달려가고 있다.
마차 위에 앉은 운학은 멀거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귀에는 갑자기 멀리서 요란한 말굽소리가 들려왔다.
들려오는 말굽소리는 멀기는 하지만 운학의 머리에는 무슨 사건이 있음을 의식하였다.
『아가씨!』
그러나 마차 속에서는 아무 대답도 들려오지를 않는다.
『이봐요 아가씨!』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소녀는 깜짝 놀라면서,
『네? 왜 그러시지요?』
『누가 아가씨를 뒤쫓고 있는 게 아닙니까?』
꼬마 아가씨는 고개를 푹 수그린다.
운학은,
『그랬었군요!』
그는 고개를 돌려 앞을 노려보더니 고삐를 쥔 손에 힘을 준다.
수레는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하여 수레의 뒤쪽에는 먼지가 일어 전연 보이지를 않는다.
이 두 필의 말은 강호에서도 소문난 천리구(千里駒)이다.
허공을 나르는 말채찍 소리를 들은 천리구는 힘을 다하여 달리기 시작하니 수레 옆에 나타나는 경치도 수레와 같이 달리는 듯하였다.
그러나 운학의 온 신경은 마차 뒷면에 쏠렸다.
뒤쫓는 말굽소리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빨라지고 있었다.
『흥, 뒤 쫓는 놈의 말이 제법 빠르겠는걸!』
그는 경험으로 미루어 봐서 이 말굽소리가 보통 말굽소리와 다르다는 것을 직감할 수가 있었다.
얼마를 달리자니까 길은 두 줄기로 갈라진다.
운학은 왼쪽 길은 수구(水口)로 통하는 길이요, 오른쪽 길은 황폐한 언덕을 지나서 숲에 이르는 길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가령 수레가 수구에 닿았더라도 이 아가씨는 그곳에 적당히 숨을 곳이 없을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지금의 형편으로 봐서는 얼마 가지 않아서 추격자의 추격을 받을 것이 틀림이 없는데 그렇다면 이 평탄한 길 위 어디다 몸을 숨긴단 말이냐?)
운학은 뒤를 돌아보면서,
『아가씨 뒤에 추격하는 자가 가까이 온 것 같습니다. 만약 바로 수구를 향해 달린다면 그의 추격을 면하기 힘들 것입니다. 우리는 잠시 숲을 향하여 가다가 사잇길로 빠진 다음에 다시……』
말을 맺지 못하는 꼴이 급하게 소녀의 대답을 독촉한다.
이때 벌써 말은 두 갈래 길의 분계점에 이르고 있었다.
운학은 소녀의 대답을 기다렸으나 대답이 없었다.
『당신 편한 대로 하시오.』
하는 뜻인지도 모른다.
운학은 말고삐를 당기면서 수레의 속도를 늦춘 다음 고개를 갸웃하더니 말의 진로를 숲이 있는 곳으로 꺾었다.
그는 방향을 정하고 나서는 뒤쪽에 귀를 기울였다.
추격자의 말굽소리는 좀 더 가까이 온 것 같았으나 마음속으로는 그리 두려운 생각이 들지를 않았다.
그 까닭인즉 추격자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 수가 없으나 그리 대단하게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운학은 다시 고개를 돌려,
『아가씨, 도대체 신권금강이란 어떤 인물입니까?』
얼마동안 마차가 달리는 소리만 요란하게 들려왔다.
『그분은 바로 저의 사형(師兄)이랍니다.』
운학은 크게 놀랐다.
고삐를 쥐고 있던 손아귀에 힘이 저절로 빠지는 것 같았다.
수레의 속도도 떨어졌다.
달가닥 달가닥…….
추격자의 말굽소리는 아주 뚜렷이 들려온다.
수레 안의 소녀도 걱정이 되었는지 포장을 벗기고 뒤쪽을 바라다본다.
그러나 뒤쪽에는 아직 추격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운학은 입을 꽉 다물더니,
『아가씨, 자리를 꼭 잡으십시오. 수레의 속도가 빨라집니다.』
가죽 채찍이 공간을 지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온다.
마차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심한 동요를 일으키면서 총알같이 달려나가기 시작하니 얼굴을 스쳐가는 이른 봄의 바람이 한결 매섭도록 차가왔다.
수레 안의 소녀는 의자를 두 손으로 꽉 잡았으나 그의 몸은 제멋대로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려 가을바람에 날리는 낙엽과 같았다.
그의 얼굴색은 창백하였으나 긴장과 흥분이 엇갈려 있었다.
소녀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뛰기 시작한다.
(이 사람은 왜 자기 목숨을 걸고 나를 구하여 주려고 할까?)
소녀는 마부의 행동에 의심을 느낄 정도로 그의 인간성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 마부는 신권금강이 두렵지도 않은 모양이지? 그도 신권금강을 모를 리가 없을 텐데.)
그는 흐트러진 머리를 쓰다듬어 올리면서 자기 혼자의 결론을 내린다.
『여하간 그는 분명히 착하고 좋은 사람에는 틀림이 없다.』
그는 한 손으로 휘장을 쳐들어서 이 호인다운 마부를 훔쳐보았다.
그의 널찍한 어깨는 소녀의 시선을 가로 막았다.
그의 남루한 갈기갈기 찢어진 옷자락은 바람에 날려서 펄럭이고 있었으나, 뒷모습에 넘쳐흐르는 남성미에 자신도 모르게 옆얼굴을 쳐다보았다.
소녀는 기웃하면서 운학의 옆얼굴을 쳐다보았다.
비스듬히 쓴 방한모자 아래로 보이는 그의 옆얼굴은 분명히 여성의 마음을 동요케 하는 대표적인 남성의 뚜렷한 선이 엿보였다.
소녀는 이 마부에게 이런 매력이 잠재하여 있음을 처음으로 발견하자, 갑자기 호감이 그의 가슴 속에 샘솟아 올랐다. 그리고 보니 어디서 한번 본 듯도 싶다.
(그 역시 무예를 하는 사람일까? 분명히 무예를 할 줄 알거야! 신권금강의 이야기가 나와도 태연한 것을 보면 분명히 그의 무예가 뛰어난지도 모른다.)
그는 이런 생각을 하다가는 다시 고개를 좌우로 가볍게 흔들면서
『그럴 수가 있을까? 그는 한낱 천한 마부인데……』
소녀는 수레 뒤에서 수레를 추격하는 말굽소리가 뚜렷이 들려오는 것을 듣고 다시 근심스러운 눈초리로 뒤돌아보았다.
순간, 소녀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운학을 바라보면서
『여보세요, 말을 모는 양반! 내 사형 신권금강이 다가올 것 같습니다.』
운학은 그 소녀가 두려움에 떨면서 외치는 소리를 듣고서 자기도 모르게 왼쪽 눈썹이 흔들리고 있음을 볼 수가 있었다. 그는
『신권금강이란 어떤 물건인데……』
그러나 그는 묵묵히 말채찍을 힘차게 휘두르고 있었다.
갑자기 그는 고개를 돌려 소녀를 보고,
『아가씨는 말을 탈 줄 아시오?』
『네, 탈 줄 압니다.』
운학은 말을 멈추었다가,
『아가씨, 이 앞으로 나와 앉으셔야 하겠습니다.』
하면서 자기는 오른쪽으로 자리를 옮겨 앉으면서 소녀에게 앞으로 나와서 앉으라는 듯이 눈짓을 한다.
소녀는 그의 말대로 그와 어깨를 나란히 앉았다.
운학은 말을 한다.
『우리들의 말은 두 필이고 빠르기는 합니다마는 수레를 끌고 있으니 무거워서 뜻대로 달리지를 못하니 아가씨는 말을 타고 먼저 가십시오. 뒷일은 내가 맡겠습니다.』
소녀는 그의 생각이 옳은 것 같았다. 다시 소녀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서 앞에서 달리는 말 등에 재빠른 동작으로 올라탔다.
뒤에서 운학이 말고삐를 늦추고 말 허리띠를 푸르니 말은 수레를 벗어나면서 수레를 뒤로 남긴 채 무서운 속도로 달려 나간다.
소녀는 뒤돌아보면서 운학에게 무엇인가 말을 건네려 하였으나 그때 그녀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사형이 벌써 쫓아 왔어요.』
운학은 대답도 하지 않고 손으로 채찍을 잡고 말 엉덩이를 힘껏 내려 갈기니 말은,
『히히힝……』
하는 소리를 나면서 질풍같이 앞으로 달려간다.
마차가 들길을 빠져나가자, 앞에 그리 크지 않은 산이 우뚝 솟아 있다.
운학은 소녀에게,
『산 위로 달려갑시다.』
두 사람은 말을 몰고서 산 위로 달려갔다.
산은 높지는 않았지만 그 형세는 예상외로 험악하였다.
운학은 언뜻 보이는 지름길을 따라서 말을 몰고 가니 큰 바위가 솟아있는 것이 보인다.
운학은 고개를 들어 바위를 쳐다보았다.
바위를 쳐다본 운학은 가슴이 선뜻하여 졌다.
그는 몸을 돌려 소녀를 내려다보면서,
『아가씨는 한발 먼저 산 위로 오르시오.』
아가씨는 한동안 멈칫하였으나 지금의 사정으로 보아서는 그의 말을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말을 몰아 앞으로 전진하니 그때 갑자기 천지를 진동하는 폭음이 골짜기를 흔든다.
소녀는 깜짝 놀라면서 말에서 뛰어 내려 작은 바위 밑으로 몸을 피했다. 소리가 들린 쪽을 돌아보니 바로 자기가 지나온 그 길에 솟아 있던 바위가 둘로 쪼개져서 작은 길을 가로 막아 버린 것이다.
소녀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를 몰랐다. 먼지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고 여기 저기 나뭇가지가 꺾여져 나갔으나, 소녀는 무엇보다도 마부의 안부가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소녀는 어떻게 손을 써야 좋을는지 몰랐기 때문에 멍하니 서 있는 도리밖에 없었다.
이때 별안간 소녀의 뒤 쪽에서 말굽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온다. 소녀가 깜짝 놀라서 뒤돌아보았더니 마부 청년이 가벼운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 아닌가.
소녀는 놀라기도 하였지만, 한편 반가와서 어쩔 줄을 몰랐다.
『당신 나를 놀리시는 겁니까?』
소녀의 애교 섞인 항의에 운학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빨리 저 숲으로 몸을 감추어야 합니다.』
하며 소녀를 앞세운 운학은 숲으로 몸을 감추었다.
두 사람이 숲에 몸을 감춘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말의 울음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오는 것이, 수레를 쫓던 추격자가 숲 가까이 나타난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두 사람이 숨을 죽이고 있을 때, 추격하던 사람의 그림자가 숲으로 날듯이 달려오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는 무서운 경공법을 쓰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는 숲속에 들어서자 사방을 두리번거리더니,
『어이, 그 수레를 몰던 녀석 들어라! 빨리 나타나지 않는다면은 이 사람의 손이 맵다는 것을 보여 줄 테다. 원망하지 말아라!』
이 신권금강은 나이 비록 어리지마는 내공의 힘이 강하기로 당대에 알려진 위인인지라, 그가 소리를 지르자 산이 쩡쩡 울리면서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그러나 숲속은 조용하고 인적이 없을 알게 된 신권금강은,
『사매(師妹) 나오라.』
역시 무서운 소리였다.
숲 속에서 이 소리를 들은 소녀는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하며 공포에 사로잡혀 버렸다. 소녀의 얼굴은 백짓장같이 하얗게 되어 두려움에 몸을 와들와들 떨고 있는 모습이 보기에도 가련하였다.
신권금강은 아무리 발버둥치고 소리를 질렀으나 반응이 없자 숲속으로 들어서며 찾기 시작하였다.
소녀는 나지막한 소리로,
『여보시오! 당신은 정말 무예라는 것을 모르십니까?』
소녀는 걱정이 되어서 불쑥 이런 질문을 하였다.
운학은 못들은 척 시침을 떼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렇다는 표시를 하면서도 심중은 평온치가 못했다.
---그 사부(師父) 노인이 나더러 나의 정체를 절대로 밝히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에 이년(二年) 하고도 삼백 오십 삼 일을 숨겨 왔는데 나머지 십이 일(日) 동안을 숨기지 못하겠는가---
그러나 한편,
---그러나 사부는 나에게 약자를 돕고 강자를 억누르라고 이르셨고 또한 인(仁)에 당하여서도 남에게 양보하지 말라라 하셨는데 지금 이 소녀와 신권금강이 여기서 충돌한다면은 나는 어느 쪽을 택하여야 할 것이냐?
---만약에 내가 함부로 손을 쓴다면 사부 노인에게 공연한 번뇌를 이야기하는 꼴이 되기는 하겠지만 이 귀여운 소녀가 그에게 사로잡혀 가게 해야 한단 말인가?
그는 눈살을 찌푸리고 깊은 생각에 빠지는 듯하니 마음의 결정을 하기가 대단히 힘 드는 모양같이 보였다.
그러자 그의 눈이 번쩍하는 것을 보니 무엇인가 마음의 결정이 선 모양이다.
(됐어! 이것은 남의 파문(派門)의 사사로운 일이다. 내가 만약에 여기에 말려 들어간다면 무림에 큰 소동이 일어난 것임에 틀림이 없다.)
이런 마음의 결심이 이루어졌을 때 두 필의 말이 자기에게 다가오고 있음을 보았다.
운학의 손에는 진땀이 나기 시작하였다.
소녀가 운학에게로 바싹 다가서면서,
『당신은 빨리 몸을 피하세요. 나는 그의 앞에 당당히 나서겠어요!』
다가온 소녀에게서 이상한 이성감(異性感)을 느꼈다.
지금과 같은 위기 속에서도 이러한 이성간에 자기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 본능일까? 하는 생각에서 그는 자문자답을 한다.
(운학아! 너는 그래도 사내대장부가 아니냐? 너는 지금 사부의 훈계를 두려워하고 있지마는 네가 사부의 훈계만을 생각하고 지금 이 가련한 소녀를 버려둔다면 오히려 사부가 이런 제자를 두었다고 한탄하실는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냐?)
이런 생각에 잠겨 숨을 죽이고 숨어있는 동안에 마필을 보고 알아차린 신권금강은 더욱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