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18일 (목) 핸드폰 촬영
라 카페
라 카페 2층에서 박노해 시인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무료입니다. 차 안마셔도 됩니다.
사랑하다 죽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만 사랑 없이 사는 것은 더 두려운 일이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 박노해
박노해 시인 사진가 혁명가 그리고
1957 전라남도에서 태어났다. 16세에 상경해 낮에는 노동자로 일하고 밤에는 선린상고(야간)를 다녔다.
1984 스물일곱 살에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펴냈다. 이 시집은 독재 정권의 금서 조치에도 100만 부가 발간되며 한국 사회와 문단을
충격으로 뒤흔들었다. 감시를 피해 쓴 박노해라는 필명은 '박해받는 노동자 해방'으로, 이때부터 '얼굴 없는 시인'으로 알려졌다.
1989 <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사노맹)을 결성했다.
1991 7년여의 수배 끝에 안기부에 체포되어 24일간 고문을 당했다. 검찰 측은 '반국가단체 수괴' 죄목으로 사형을 구형했다.
"당신들은 나를 죽일 수는 있어도, 나의 사랑은 결코 꺾을 수 없을 것입니다."(최후 진술 중)
1991 사형을 구형 받고 환히 웃던 모습은 강렬한 충격과 울림을 남겼다. 결국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34살의 나이에 1평 남짓한 감옥 독방에 갇혔다.
1993 옥중 시집<참된 시작>과 1997 옥중 에세이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펴냈다.
"문학사적으로나 사회사적으로 우리는 이런 존재를 다시 만날 수 없을지 모른다." (문학평론가 도정일 해설 중)
1998 7년 6개월 만에 석방되었다. 이후 민주화운동가로 복권되었으나 국가보상금을 거부했다.
2000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며 권력의 길을 뒤로하고
비영리단체 <나눔 문화>를 설립해 '생명 평화 나눔'의 사상과 실천을 이어갔다.
2003 미국이 이라크 침공을 선포한 직후 "울고 있는 아이들 곁에 있어라도 주고 싶습니다. 저에게 비행기표 값을 좀 빌려주십시오,
살아 돌아온다면 꼭 갚겠습니다."라는 편지를 전하고, 이라크 전쟁터로 떠나 75일간 평화 활동을 펼쳤다.
2006 레바논 내 최대의 팔레스타인 난민촌 아인 알 할웨에 <자이투나 나눔문화학교>를 세웠다.
2010 팔레스타인, 아체, 쿠르드, 버마 등에서 평화 나눔을 이어가며, 현장의 진실을 전하기 위한 절실한 필요로 카메라를 들었다.
낡은 흑백 필름 카메라로 기록한 사진을 모아 첫 사진전 <라 광야>와 <나 거기에 그들처럼>(세종문화회관)을 열었다.
이어 12년 만의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를 펴냈다.
2014 우리 인생에는 각자가 진짜로 원하는 무언가가 있다. 나에게는 분명, 나만의 다른 길이 있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억되는
화재와 감동의 전시 <다른 길>(세종문화회관) 을 개최, 지구 시대 좋은 삶의 원형을 담은 사진에세이 <다른 길>을 펴냈다.
2019 <하루>를 시작으로 '박노해 사진에세이 '6권'
2020 시 그림책 <푸른빛의 소녀가> 2021 <걷는 독서>.
2022 신작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를 펴냈다.
'적은 소유로 기품 있게 '살아가는 <참사람의 숲>을 꿈꾸며, 39여 년간 써온 한 권의 책 '우주에서의 인간의 길'을 담은 사상서를 집필 중이다.
광야의 봉쇄수도원
유대 광야 한가운데 자리한 마르사바 봉쇄수도원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원 중 하나이다.
5세기경 광야와 동굴에서 은둔 수도 생활을 시작한 성(聖) 사바를 따라 그처럼 살기 원하는 젊은이들이 모여
당시 가장 크고 높은 수도 공동체를 이루었다. 세월의 바람은 모든 걸 휩쓸어가고, 이제 이곳에는 십여 명의 수도자만이 남았다.
바람 센 언덕에서 대를 이어 자라온 작은 올리브나무는 다시 온몸으로, 자신의 시대를 살아내고 있다.
노인과 나무
대대로 물려받은 올리브나무 사이를 걷는 농부. "어려서부터 할아버지 손을 잡고 아침저녁마다 이곳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쳤지요.
힘들고 괴로운 일이 있을 때면 올리브나무들이 '괜찮다 괜찮다 좋은 날이 올 거야' 저를 안아주었고
좋은 일이 있을 때면 나무 아래 감사 기도를 드리며 선조들을 기억하고 앞을 바라보곤 하지요.
그렇게 긴 세월 우리는 서로를 지켜왔지요." 붉은 석양이 물들어 오면 그는 한 그루 한 그루 올리브나무를 순례하며 하루의 생을 정리한다.
팔레스타인의 어머니
정성껏 올리브나무 가지를 손질하던 여인이 고원의 바람결에 잠시 숨을 고른다. "우리에게 많은 일이 있었지요.
땅을 빼앗기고 길을 빼앗기고 앞을 빼앗기고, 아이들이 자라나 청년이 되면 하나 둘 죽어가고...
그런 날이면 올리브나무가 말해주곤 하지요.
오랜 세월 동안 나에게도 많은 일이 있었다고,
그래도 살아왔다고, 푸른빛을 잃지 않았다고. 고난 속에서도 최선의 열매를 맺어 주었다고.
그렇지요... 그렇게 살아가는 거지요."
팔레스타인의 어머니는 먼 곳을 바라본다.
돌밭을 달려도
메말랐던 광야에 봄비가 내리면 온 대지가 하루아침에 싱싱하게 살아난다.
양 떼에게 새 풀을 먹이던 아이들은 공 하나만 있으면 신나게 뛰어논다.
돌밭을 달려도, 돌길에 채여도, 부딪히고 넘어지고 상처가 좀 나도, 공처럼 둥근 마음으로 통통 튀어 오른다.
등 뒤에 있는 올리브나무는 아이들의 수호자.
'네 뒤에는 우리가 있어, 마음껏 뛰놀고 꿈을 꿔. 울고 웃고 함께 앞을 바라보며 너만의 길을 가.'
봄이 오는 길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이 밀어 올린 알 자지라 평원에 다시 봄이 찾아왔다.
검붉은 대지에 연초록 밀싹이 돋아나고 올리브나무는 꽃눈을 틔워내고 둥근 언덕길로 유유히 양 떼가 지나간다.
농부들도 목동들도 어린 양도 올리브나무도 성실하고 부드럽고 끈질긴 걸음으로 자신의 일을 하고 자신의 길을 간다.
눈부신 고요, 신생의 아침, 봄이다 봄!
올리브나무 아래
양을 치던 아이들이 올리브나무 아래 책을 읽는다.
첫 나들이하던 날도, 첫 등교 날도, 첫사랑을 고백한 날도, 피난 가는 친구에게 우리 꼭 살아서 다시 만나자 언약한 날도,
전사한 형을 떠나보낸 날도, 이 나무 아래 울고 웃고 기도했다.
아이들의 엄마와 아빠도,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그러했다. 이 땅에서는 올리브나무 아래 모든 일이 시작된다.
삶의 중요한 사건이 탄생하고, 고귀한 무언가가 맺어지고, 내가 성장해온 기억의 층들과 내면의 나이테가 새겨진다.
내 인생의 목적지를 비춰주는 한 점 빛의 자리. 한 그루의 나무는, 하나의 유일무이한 장소이다.
저녁을 준비하는 여인
시리아 국경 사막지대의 삶은 고달프다. 여름에는 뜨거운 열풍이 땅을 가르고 겨울에는 추위가 뼛속까지 파고든다.
시리아 쿠르드인들은 언제 쫓겨날지 모를 불안한 삶의 무게까지 지고 살아야 한다.
황량한 사막에서 그이들이 지켜온 것은 마을 공터와 집 마당에 심어진 올리브나무. "풀 죽은 아이들에게 말해주곤 하지요.
올리브나무처럼 살아야 한다고요. 누가 돌봐주지 않아도 스스로 강인하고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올리브나무처럼요.
하느님은 올리브나무를 택하여 우릴 지켜주고 있으니."
작은 샘물 하나가
광야의 작은 돌샘에서 쉬임 없이 흘러나오는 물은 때가 되어 내리는 비와 함께 힘찬 물살을 이루며
메마른 땅이 푸르러지는 기적 같은 풍경을 낳는다.
불타는 광야의 이 작은 샘물로부터 푸른 초장에 야생화가 피어나고
올리브나무는 푸른 길을 내어가고 새들과 양 떼와 낙타가 새끼를 치고 사람이 그 길을 따라 살아나간다.
광야의 물줄기는 말 그대로 생명수, 생명의 길이다. 오늘도 광야의 작은 샘은 맑은 물을 흘려보낸다.
올리브나무 세 그루
한때는 올리브 숲이었으나, 세월이 흘렀다. 거친 바위 산에 살아남은 올리브나무 세 그루.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자신의 자리에서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서 있는 저 나무들은 세상을 떠받치는 기둥처럼 굳건하다.
사람은 나무와 같아서,
자신이 그런 줄도 모른 채 하나의 비밀스러운 기둥이 되어 이 세상을 지탱하고 있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나무와 함께 자란 소녀
시리아 평원의 흙집은 흙에서 태어나 흙을 일구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이들의 순박한 일생과 닮았다.
거친 흙바람 속에서도 모든 것이 정갈하다.
아픈 엄마가 해온 것처럼 날마다 흙마당을 쓸고 닦고 올리브나무에 물을 주는 건 소녀의 몫이다.
엄마가 손수 만들어준 솜 인형을 안고 서 있는 소녀의 작은 몸에 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데...
하지만 소녀야, 그림자가 없는 곳은 어둠뿐이란다.
그림자는 빛을 품은 자의 숙명이란다.
슬픔도 아픔도 그림자처럼 동행하며 마음의 빛을 잃지 말고 자라나는 거란다.
점령지의 푸른 띠
이곳은 예수가 태어난 베들레헴. 이스라엘에 점령당한 이 땅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예수 이전부터 대대로 일궈온 올리브밭조차 자유롭게 출입할 수 없다.
허가증을 받은 약 20%의 농민만이 수확기에 단 며칠만 접근이 허가된다.
이스라엘이 늘려가는 창백한 도시 '정착촌'. 그 맞은편에 최후의 진을 치고 버티는 듯 올리브나무들이 푸른 띠를 잇고 서 있다.
예수가 태어난 자리에
예수가 태어난 구유 자리에 세워진 '예수 탄생 교회'. 세계에서 찾아오는 순례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여러 종파의 각기 다른 십자가가 차지한 하늘 아래 한 그루의 올리브나무 고목이 묵연히 서 있다.
잘린 올리브나무에서 새순이 커나가고 있다.
묘석 위의 올리브 가지
전쟁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전쟁 그 후이다.
파괴는 한순간이지만 재건은 긴 가난과 노동이고, 죽은 자는 산 자의 가슴에서 매일 다시 죽는다.
살아남은 이들은 마을 묘지를 조성해 올리브나무 가지를 바치며 경전을 읽고 기도한다.
"죄 없이 죽은 자는 높은 자리에 있으리라." 신의 손길을 대신하듯 올리브나무 가지가 차가운 묘비를 푸른 숨결로 어루만진다.
천년의 시작은 이렇게
나무가 잘려나가고 좋은 땅을 빼앗겨도 팔레스타인 농부들은 황무지를 일구며 다시 어린 올리브나무를 심어나간다.
척박한 땅에서 올리브나무 하나 키우기란 아이를 기르듯 공력을 들여야 하는 일이다.
모래바람과 짐승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한 그루 한 그루 낡은 드럼통으로 감싸고 그 위에 팔레스타인 국기를 상징하는
초록, 하양, 빨간색을 기원하듯 칠해두었다.
이 작고 여린 나무들 중에 끝내 살아남아 다시 천년을 이어갈 올리브나무가 있으리니
그토록 길고 큰 '사랑의 나무'의 시작은 얼마나 미약하고 눈물겨운지.
영혼을 위한 자리
알 자지라 평원에 자리한 소박한 농부의 집.
따스한 햇살이 감싸는 흙벽에 기대앉아 향기 진한 아라빅 커피를 마시며 깊은숨을 쉰다.
이토록 작은 영토, 작은 장소, 작은 올리브나무인데
왜 이리 넉넉하고 따스하고 아늑하여 그대와 함께 오래오래 앉아있고 싶은지.
작지만 오롯한, 영혼을 위한 자리 하나.
불탄 나무에 새잎이 돋다
예수가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첫 기적을 행한 곳으로 기록된 까나 마을.
2006년 이스라엘이 떨어트린 폭탄으로 65명이 사상했고 그중 35명이 아이들이었다.
'올리브나무 아래 웃음 짓던 아이야. 올리브나무 아래 잠이 들고 말았구나. 이제 너는 영영 깨어나지 않으리,
그러나 너는 잠든 세상을 깨우리,'
불탄 몸으로 새잎을 틔워낸 올리브나무가 무심히도 파란 하늘을 향해 기도하듯 서 있다.
라 카페에 핀 동백꽃.
커피 한 잔 주문.
커피와 빵.
첫댓글 박노해 작가 사진전
즐감했슴다~^^
좋은작품들
즐감합니다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