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보디가드처럼 뒤를 버티고 있는 한라산의 넉넉함 때문인지, 이
사진 한 장을 통해서는 그냥 여느 마을과 다름없는 평온함이 느껴진다.
제주도의 담벼락은 제주도민들의 삶을 반영한다. 구멍이 뽕뽕난 현무암을 쌓아올려 만들어
지는 담벼락은, 여느 시멘트 콘크리트 담벼락과 달리 각종 식물들이 그 틈을 자유로이 유영
하고 있고, 작은 곤충과 생물들의 보금자리 역할까지 하고 있다.
그렇게 삶 자체가 자연과 어우러져 있던 제주도의 평화롭던 강정마을의 거리에 심상치 외침이
울리고 있다. 여태껏 수천 수만년 자연과 함께 살아온 강정의 주민들은 그들의 삶의 터전을 송
두리 체 빼앗길 것에 두려움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야자나무가 10m 넘게 쭉쭉 올라 있다. 그 옆에는 거의 같은 크기로 전봇대가 하늘을 향하
고 있다. 인간이 타나타기 전까지 그 어떤 자연의 생성물도 저 쭉 뻗은 야자나무의 키를 당
해낼 수 없었다.
아마 수만년이 지난 후에도 이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지구 탐사에 나선 외계인이 이
현장을 발견했다면, 그들은 이 풍경이 바로 인류가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었던 직접적인 이
유라고 결론 내릴 것이다. 그리고 저렇게 인공건조물을 하늘을 향해 높이 세우는 인간의 행
태를 통한 욕망분석을 통해서 그들은 인간이 극심한 발기부전에 시달리고 있음을 확인할 것
이다.
더 높이, 더 멀리, 더 빠른 삶이 그들의 유일한 존재의 이유인 ‘인류’는 산하에 시멘트를 들
이 붓고, 건물을 세우고, 도로를 포장하면서 자연을 정복, 착취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한 생
태계 붕괴의 결과로 스스로를 멸종이라는 이름의 절벽으로 몰고 있다. 이는 외적인 충족을
통해서 스스로를 채워가려는 인간존재가 자처한 비극이다.
구럼비로 향하는 올레길 입구 모퉁이. 경찰이 길가는 사람을 감시-통제하기 위해서 진을 치
고 있다. 과거 2000년 전에 이곳에서 몇몇이 모여 저리 진을 치고 있었다면 그들은 틀림없
이 산적이었을 것이다. 그 산적이 2000년의 세월을 관통해서 지금은 저렇게 스스로를 ‘국가
권력의 집행자’라고 칭하며 합법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자들로 이름과 복장만 바뀌어 앉아
있다.
이들은 앞으로 2000년이 지나서는 자취도 없이 사라질 유형의 인간들이다. 하지만,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통제하고, 국가권력이 개인의 양심을 판단하고, 국가지도자가 자신의 취향에
따라 힘없는 지역주민들을 범법자로 만들어 내는 것이 상식이 되어 있는 작금의 사회에서
저들은 쥐라기 시대의 공룡이다. 누구도 대항할 수 없고, 대항했다가는 짓밟히고 갈갈이 찢
기는...
그 모퉁이를 돌아 잠시 걸으면 타는 듯 한 땡볕 아래 처량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영양가 다 털린 생선까시 조형물 아래,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몸에 쇠사슬을 두르
고 산적떼의 공격을 대비한 최후의 결사대가 결연한 표정으로 자리하고 있다. 히히덕거리는
웃음소리가 간간히 흘러나오지만, 그 웃음에 도사려진 불안감은 대기를 경쾌하게 울리지 못한
다.
생명이 존재할 수 없을 만큼 지글거리는 태양아래 잠시의 휴식처.
빛의 굴절원리를 이해하고 철강의 주조 능력을 갖춘 인간은 커브길 반대쪽을 살필 수 있는
간단한 장비로서 반사경을 개발해 놓았다. 하지만 반사경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앞길은 뒤
틀려있다. 이는 현대 기술문명이 우리 인류에게 보이는 미래상의 축소판이다.
첨단과학기술은 결코 인류에게 유토피아를 제공해 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과학기술은 인간
의 소유와 소비의 욕망을 더더욱 부추기고, 그 결과 고갈되는 자원과 소비되는 에너지는 엔
트로피를 증가시켜 결국 생태계의 균형을 깨트려 인간 존립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하나라도 더 갖고 높아지려는 인간의 욕망. 인간은 그 욕망 충족을 위해서 개인 간에 싸우
고, 집단 간에 분쟁을 만들어내며, 나라 간에 전쟁을 벌인다. 그 전쟁 준비를 위해서 수만년
우리 조상들이 거닐었던 이 길이 막힐 상황에 처해있다.
거대한 기중기가 한 대가 작업을 멈추고 고개를 땅바닥에 쳐 박고 있다. 기중기의 작업이
중지된 이유는 힘없는 지역주민들과 평화활동가 몇몇이 그간 끊질 긴 사투를 벌여온 결과이
다. 하지만 이 기중기가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쪽 해군기지사업단측에 사업재계를 명령하는
서류 한 장이 도착하면 그 직후로 이 잠자고 있는 거인은 밤낮 쉴 새 없이 검은 호흡을 토
해내며 대지를 뒤흔들어 댈 것이다.
앞으로 10년 후. 이 길을 통해서 우리는 지금 보고 있는 것과 같은 장면을 보거나 미국의
핵잠수함이 정박해 있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 두 모습 중에 어느 것을 볼 수 있을 것
인지는 국가권력자나, 거대여당이나, 해군이나, 시공업자인 삼성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
니다. 이는 오직 내 자신의 판단과 결정 그리고 실천과 그에 따르는 책임의 결과물일 뿐이
다.
해군기지에 자연이 갇혀져 있다.
하지만 그 이해의 한계에 체념하지 않고 앞으로 더 나아가다보면...
그 한계는 기필코 깨지고, 우리는 다시 자연 속에 서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 그러나... 참으로 해괴한 사실은 저 앞에 보이는 범섬에는 ‘주인’이 있다는 것이다. 자연은
결코 인간에게 스스로를 소유하도록 허락하지 않았는데, 인간들은 주제넘게도 자신들끼리
자연을 소유할 권리를 주고받고 있다. 그리고 그 소유권은 인간 존재를 거꾸로 집어 삼키고
있다. 이러한 미친 현실, 통념, 상식, 세태, 제도에 맞서 싸워야 함은 다만 우리의 존재를 잃
지 않기 위함이다.
해군기지사업을 통해서 시멘크 콘크리트로 메워질 중덕 해변 일대. 과연 누가 이 자연에 콘
크리트를 때려 부을 권리를 줬는가?
이곳 구럼비바위는 800m의 단일 용암바위로 그 안에는 한라산에서 30년간 흘러내려온
용천수가 흐르고 있고, 풀들이 자라나고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는 국내 유일의 암반 습지
지대이다.
수만, 수억 년 간 몰아친 파도와 비바람이 깎아 놓은 구럼비바위. 신성한 자연의 힘은 장구
한 세월을 통해서 이곳의 바위 모양을 이렇게 울퉁불퉁하고 거칠게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이명박과 한나라당, 대한의 해군, 삼성등의 건설업자들은 오직 자신들의 이권을 위
해서 이곳에 돌을 갖다 부어 평평하게 다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쏟아 부은 돌이라 할
라치면 어제까지 살아 숨 쉬고 있었던 어느 동네의 야산을 깎아낸 잔해이다.
누가 그들에게 이곳에 구멍을 내고 철심을 박을 권리를 주었는가!
바다에 정체불명의 선박이 등장한다. 거센 파도를 헤쳐 알몸으로 막아내야 할 이들의 심정
은 찹찹하기만 하다. -> 관련 동영상 보기 ■ 동영상 - 목숨걸고 강정 앞바다 지키기
지나던 산책객 하나가 중덕해변 전시관에 들어온다. 그는 자신은 해군기지를 결사적으로 찬
성한다며, 지금은 조만간 전쟁이 일어날 상황이기에 이렇게 해군기지를 반대만 해서는 안
된다며 전시관을 지키고 있는 이들을 설득시키고자 열변을 토한다. 그는 부산에서 왔다고
했는데, 아마 전날 부산의 영도대교에서 희망버스를 몸으로 막아냈다는 그 200명 중의 하
나 일수 있다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그는 논쟁 중에 뒤편에서 생명평화 100배 기도를 하는 이들을 힐끔 뒤돌아본다. 그러더니
“용왕님께 기도 드리냐?”고 대수롭지 않게 내뱉는다. 그 말투에는 조소와 비하와 모멸이 스
며들어 있는 듯 했다.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땡볕 아래, 온몸으로 평화를 외치는 저들의 모습을 겨우 그러한 방식
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는 그의 눈. 자신과 다른 것은 이해하지 않으려 하고, 자신의 이념과
다른 이들은 배척 하며, 사상이 다른 이들(북한)은 군사적 무장을 통해서 공격을 해야 한다
고 여기는... 오직 세상에 ‘나’만이 존재하고 나와 다른 것은 사라져야 한다고 여기는 그 유
아론적인 시야. 아마 이는 그의 존재를 잠식한 불안과 증오와 공포 때문이리라...
부디 그에게 평화가 있으라...
한라산 아랫자락으로 해군기지를 세우기 위한 방파제를 만들기 위해 삼발이가 쌓아 올려져
있다. 인간은 저 콘크리트 건조물이 한라산 높이만큼 쌓이기 전까지는 결코 자신들의 욕망
을 절제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그리고 한라산 높이로 저 콘크리트 건조물이 쌓여지는 순간
인간은 더 이상 지구상에 생존해 있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거대 야만에 맞서기 위한 몇몇 힘없는 인간들의 깃발 펄럭이는 투쟁은 언듯 가엾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단지 국가 권력과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국가는
국민의 반영일 뿐이고, 현정부의 야만성은 다만 현재 이 나라 국민의 내면에서 솟구쳐 나오
는 욕망을 대변한 결과이다. 따라서 우리가 싸우고 있는 것은 단지 야비한 국가권력이 아
닌, 우리 자신의 욕망이고, 우리 자신의 야만성이다. 결국 우리는 스스로와 싸우고 있을 따
름이다.
그러하기에 펄럭이는 저 깃발은 저들에게 언제곤 빼앗기기 쉬운 하찮은 천조각이 아니라,
꺾이지 않는 당당한 우리 자존의 모습이어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저들의 위세와 무력 앞에
깃발이 찟길 걱정을 하며 두려움에 떨 필요가 없다. 당당히 내 스스로 펄럭이기만 하면 된다!
- 2011.07.31 /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중덕해변에서...
첫댓글 제주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올레 7코스의 한가운데 있는 강정마을이 해군기지로, 그 아름다운 구럼비 바위가 콘크리트로 덮힐 위기에 처해있네요. ,,
아아 참 안타깝네요...
그럼 해군은 육지에? 아니면 전략적으로 요충지가 안되더라도 안아름다운 해안에? 너무 감정적접근인듯...
이성적인 접근이 그리우시다면 강제게시판 14999번 글을 참고하세요.
우리나라의 타고난 지형이 어느 한 곳도 다른 나라의 침략야욕에서 안전 할 수 있는 곳은 없지 않나? 서해로는 중국이 북으로는 북한이 남쪽으로는 일본이 동해에도 일본이...그렇다면 사방팔방을 다 에워싸야 하는거 아닌가? 몽땅 다 철근 콘크리트로 철갑무장을 시켜버리면 얼마나 안전할까요? 그러면 좋은 나라 안전한 나라될까요? 그걸 모르는바도 아닐텐데 왜 제주쪽만 방비벽을 세우려하는지, 다른 지역은 겁나서 못 살겠는데요..ㅉㅉ 참 어이없는 발상들이라서 이 더운 날 다시 열통 터지려고 하네요..불쌍한 대한의 백성들!
페이스북처럼 '좋아요' 버튼이 없는 다음이 안타깝습니다. ㅋ
국민을 자본주의적 정치로 좌우하기 위해 우리나라는 늘상.. 한 가지 수법을 써왔죠. 바로 '안보 위협' 지형적, 국제적 조건 때문에 안보 위협에 휩쓸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네요.
중심을 잡고 우리가 우리를 위해 정치와 자본을 좌우했으면 좋겠습니다.
나라가 있으면 그 백성들을 지킬려고 군대가 있는것. 군대가있으면 주둔지가 있어야하고.그주둔지는 어딘가에는 지어야 하는데...
어디에다가 지어야 하는가 내가사는 땅에는 안되고...육군은 아무도 안사는 오지에다(환경단체에서 반대)공군은 하늘위에다가(항공회사에서 반대)
해군은 바다가운데에(어민들이 반대)...이러다가 나라는 어디로.///
인간의 이기심은 끝이 없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