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무임승차 하지 말자
일본영사관 터 (인천시 중구 신포로27번길 80, 관동 1가 9-1)
1883년 일본이 자국민 보호를 위해 가장 먼저 설치한 건물이다
1883년 11월부터 정식 영사관을 개설하였으며,
영사관 내에는 인천항 일본 범죄 재판소를 두고 영사 재판을 집행하였다
소방서와 임시청사 부속경찰서도 설치하였으며, 최초로 우편사무소도 시작하였다
1906년 2월 영사관을 이사청으로 개편했다가, 1910년 9월 이후 인천부청으로 확대 개편하였다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인천을 통치했던 조선총독부 산하 인천부 청사로 사용됐다
인천부 청사는 1883년부터 사용한 목조 2충 건물을 1933년 헐고, 그 자리에 철근 콘크리트 구조인 2층 규모의 벽돌 건물을 지었는데 50개의 방과 증기 난방시설, 수세식 화장실도 갖췄다
해방 후 3층으로 증축되었고, 1949년 지방자치제 실시로 '인천시'로 명칭이 바뀌자 '경기도 인천시 청사'로 되었다가
1981년부터는 '인천직할시' 청사가 되었고, 1985년 인천시청이 현재의 남동구 구월동으로 신축, 이전하자 인천 중구가 입주해 사용하고 있다
인천우편국 터 (인천시 중구 신포로27번길 80, 관동 1가 9-1)
개항 이래 일본 영사관에서 겸무하던 통신 업무를 이어받은 인천우편국이 1896년에 영사관에 붙은 관사를 헐고 신축한 청사이다
청일전쟁을 전후해서 일본 거류민이 급증하면서 서울에 출장소를 둘 정도로 업무가 확장하던 시기였다
총독 정치가 자리를 잡게 된 1923년에 지금 있는 인천우체국 청사를 신축하여 보라는 듯이 이전했다
1897년 전에는 이 건물에 인천부립병원의 모태가 되는 공립의원이 있었고, 공립의원 전에는 인천 일본의원이 일본영사관 안에 있었다
♤ 이 무렵에 우리나라에서도 우정 제도를 창설하고 인천에도 우체사(郵遞司)를 두었으나 인천 우편국은 일방적으로 업무를 계속했다
곧 만국우편연합에 가입할 만큼 정비되었으나 득세한 일본이 1905년에 흡수하고 말았다
대화조 사무소 (인천시 중구 신포로27번길 96-2, 관동 1가 17)
등록문화재 제567호로 현재 카페(팟알, Pot R)이자 전시장으로 사용 중인 목조건물로 일제강점시 당시 인천항에서 하역업을 하던 대화조(大和組) 사무소가 있던 건물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항구에서 화물을 운반하는 노동자들을 공급하던 인력사무소쯤 되는 곳으로 일제가 우리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던 아픈 기억이 서린 역사적 현장이다
이 건물이 언제 처음 세워졌는지는 불확실하다
그러나 각종 기록에 따르면 건축 년대가 19세기 말까지 올라가며 건물 입구에는 그러한 역사를 적은 안내판과 당시 그대로의 화강암 돌계단이 남아 있어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또 이 건물은 목조로 지어진 전형적인 '정가(町家, 마찌야)' 양식으로써 인천 개항장의 옛 일본 조계지역에 현존하는 유일한 건물이라는 점에서 건축사적인 가치가 아주 높다
♤ 정가(町家, 마찌야) 양식
근대 일본의 점포 겸용 주택 구조를 말하는 것으로 1층에 영업장, 2층에 주거공간의 지상 2충 구조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대화조 사무소 건물은 지상 3층 규모인 것도 특별하다
청일조계지 경계계단 (인천시 중구 제물량로 232길, 관동1가 24)
1883년 일본 조계(租界)를 시작으로 1884년 청국 조계(租界)가 설정되는 경계지역으로 만국공원(현 자유공원)으로 연결되어 계단과 조경이 마련된 공간이다
약 120년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본 조계지 경계계단은 중앙에 석조 계단이 형성되어 있고, 양단을 중심으로 급한 경사인 점을 감안하여 계단참을 두고, 조경식재 공간을 마련하여 공간의 이용적 측면과 인천항 경관을 여유롭게 즐길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자유공원의 서남쪽 가파른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계단을 중심으로 청국과 일본의 건물들이 확연하게 서로 다른 양식들로 번화하게 들어서 있다
청·일조계지 경계계단은 계단 자체의 가치는 적으나 역사성 및 장소적 측면의 가치가 높다
조미통상수호조약 체결지 (인천시 중구 제물량로232번길 23, 북성동 8-3)
`조미수호통상조약 표지석`은 그동안 조약 체결 위치를 둘러싼 이견이 많아 동구 화도진공원과 중구 올림포스호텔 등 2곳에 각각 설치돼 있었다
`화도진공원에 있는 표지석`은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사업위원회가 조약 체결 100주년을 기념해 건립했고,`올림포스호텔 내 표지석`은 지난 2006년 인천시와 인천향우회가 설치했다
그러나, 지난 2013년 조약 체결 장소인 '인천해관장 (인천세관장) 사택 터'의 정확한 위치를 표기한 세관 문건이 발견됨에 따라 학술대회와 고증을 통해 자유공원 인근 삼국지 벽화 거리 옆 지점을 조약 체결 장소로 확정하고 새 표지석을 설치했다
인천시는 새 표지석 설치와 함께 `올림포스호텔 내 표지석`을 철거했지만,
'화도진공원 내 표지석'은 담당기관인 동구가 "잘못 알았던 역사도 역사인 만큼 표지석을 철거할 수 없다"며 철거에 반대하고 있어 그냥 남겨두기로 했다
♤ 조미수호통상조약(朝美修好通商條約)
조선과 미국 간에 조인된 조약으로 1882년(고종 19) 5월 22일 조선의 전권위원 신헌, 김홍집과 미국의 전권위원 로버트 윌슨 슈펠트 간에 제물포에서 체결되었다
이 조약은 구미 국가와 맺은 최초의 수호 통상 조약이며, 이후의 다른 구미 국가와의 통상 조약 내용도 이것과 비슷하다
최혜국 조항, 치외법권 인정 등의 모순점도 보이지만 상당히 우호적인 점도 보이고 있다
이 조약에 따라서 그 이듬해(1883년) 5월 13일에 초대 미국 전권공사(全權公使) 푸트(H. Foote)가 인천에 도착하여 19일 조약에 비준(批准)하였다
그 후 음력 6월에 조선 정부에서도 민영익을 전권대신에 임명하고 부관 홍영식, 서광범 등을 미국에 파견하게 되었다
♤ 인천 유일의 방송국이었던 한국복음주의방송국 (HLKX)이 1958년 12월23일 이곳에서 개국, 출범했다
이후 1967년 극동방송국(FEBC)으로 이름을 변경했다가 나중에 서울로 이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