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사소한 것에 있고
마음이 어떠냐 따라 다르다.
오늘
마음에 잡초를 제거하고
행복의 씨앗을 심으면 어떨까요?
2005. 07. 15
서원을 가진 이의 하루는 알차다.
보람있게 보낸다는 것이
깨어
해야할 일을 잊지 않고 행하는 것이다.
인간 세상에 몸이 바뻐
시공에 걸려서 해야할 일을 못하는 일이 없게
오늘도 깨어서
관하여 살펴보며 행하자.
여느날과 다름없이
날마다 깨어서
빛 길을 향해 걷자.
깨어서 걷자.
깨어서 걷는 그 길이
빛으로 가는 길.
2017. 09. 25 07:41
확철 칠통 조규일 / 2017년 9월의 짧은단상중에서
주관을 객관으로 보라. / 칠통 조규일
남들이 하는 일들은
모두 쉬워 보이고
자신이 하는 모든 일들은 어려워 보이는 것은
객관과 주관의 차이이고
스치며 지나가는 바라봄으로의 생각으로 묻어남이고
부딪치며 넘어 가야 할 행이기 때문이다.
쉬워 보이는 일도 해 보면 어렵고
못할 것 같은 일도 시작하면
하게 되는 것과 같이
수행도 이와 같으니
언제나 초발심을 잊지 말고
늘 시작하는 마음으로 수행하는 것이 좋고
주관의 일들을
객관으로 바라보는 것이 좋고
역지사지(易地思之),
방하착(放下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 역지사지(易地思之) : 처지를 서로 바꿔서 생각함
* 방하착(放下着) : 집착을 놓아버림
2003. 10. 25
모든 행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 / 칠통 조규일
질문:
" 매우 고통스러운 것이 있습니다.
선악미추를 분별하는 것, 시비를 분별하는 것, 욕심이 일어나고, 사소한 것에도 집착을 가지는 것.
그러고 싶지 않은데 마음이 자꾸 이상한 생각들을 내어 저를 괴롭게 하고...
갑자기 울컥~~ 하면서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하고...
정말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번뇌와 망상에 허덕이는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지은 죄업에 대한 생각 때문에 심판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리기도 하고..이성을 보면 마음에서는 이미 범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어 그런 제가 너무나도 싫고...
누가 듣기 좋은 말을 조금 하면 어느 새 우쭐~해지는가 하면,
싫은 소리를 들으면 금방 그 사람에 대해 싫은 감정이 생기고..
항상 바른 마음과 바른 자세로 살아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기도 하고.
수행을 하면 할수록 마음은 평온해지고 초연해져야할 것 같은데,
어떻게 된 것이 갈수록 내면의 고통에 시달리는 것인지 정말 괴롭습니다.
이런 제가 금생 아니 내생에 생사 해탈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믿겨지지가 않습니다.
저는 정말 미천한 중생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이 하는 말에 대해서는 일단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출발하는 편인 것 같고,
제가 하는 말에 대해서는 거의 진리인 것인 양하는 제 태도가 정말...
조급한 마음이 앞서고 무엇 때문인지 두려움이 많아집니다.
108배 수행을 하면서도 현재 의식으로는 모두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하고 기도하지만,
깊은 내면에서는 그것을 깊이 받아들이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모든 행위에 대해 집착과 속박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제가 너무 싫습니다.
그것이 제일 고통스럽습니다.
내면에 있는 엄청난 양의 시기, 질투, 집착, 두려움 등...
하여간 그 모든 것들이 제 마음속에 있다는 것이 너무 싫습니다.
모든 행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십시오."
선사님 말씀:
이러한 질문들에 여기 저기서 여러 번 대답한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질문에 대답한 것들이 있다면 읽어보십시오.
그러면 그 속에서 질문하신 것들의 해답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한 생각들은 거의 모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고 있으나
표현하지 않고 생각하기를 싫어해서 아니 명상이나 참회를 하지 않다 보니 그냥 지나칠 뿐,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그러합니다.
이 세상은 나와, 시간과 욕망의 함수관계 위에서 굴러갑니다.
끝없는 시간 속의 속도전과
시간의 분절화,
단절된 시간의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며,
그 효율성은 나라고 하는 개체의 자본증식이라는 욕망을 위해 기여하고
시간과 욕망의 굴레 속에서 나를 노예적 타성으로 젖어
진정 우리가 추구해야 할 참된 나의 소중한 것들을 망각하게 합니다.
그대는 그래도 명상을 하고 수행을 하기에
참나를 향해
그러한 생각들이 나오는 마음의 안식처를 찾아가고, 가져갔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겠습니까?
말하는 것들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대로 그냥 두세요.
어떤 생각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생각을 쫓으니.
더욱 그 생각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마음이 편안하려면 자기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깊게 빠져있을 때,
다른 생각이 그 주변을 서성이지 않을 때입니다.
물론 깨달음을 얻으면 진리가 진리 속에 편안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생각이 일어나면 생각을 그냥 놓고 방하착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역지사지하십시오.
그러면 자연 마음은 편안해 질 것입니다.
근본 마음 자리에서 보면
말하는 것들은 없으나,
분별하는데서 나오는 것이며
업장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냥 그러니 하십시오.
2001-07-21
있는 그대로 봐 주고 인정해 줘라. / 칠통 조규일
어리석은 사람들은
사람의 마음을 얻어 가까워지면 가깝다는 이유로 소홀하기 쉽고
또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봐주기보다는 자신에게 맞추도록 하려고 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앎 속에 넣으려 하고
자신의 얄팍한 지식이나 습득한 지식의 범주 안에서 판단 인식 의식하고는
선입관을 갖고 분별을 일으키고는 우지 좌지 하려고 하거나
허물을 들추어내면서
자신에 맞추면
맞추어 주는 만큼 서로 통한다 하면서
좋게 말하다가도
자신과 맞지 않으면 허물을 들추어내거나
자신과 이견이 있어 보이면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하려고 하고
무슨 일에 있어서 잘 되지 않으면
자신이 잘못돼서가 아니라
상대방이 잘못되어서 그렇다는 지견을 가지고
상대방을
긍정적으로 보거나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으로 보거나 부정적으로 말을 하고
자신에게 맞추는 듯하면 노예처럼 여기는 이들이 있는데
이런 경우라면 그 누가 함께 하겠는가?
상대방을
자신의 사유세계나 의식세계 속에
넣으려 하지도 말고 가늠하지도 마라.
역지사지(易地思之)라고 바꿔서 생각해 보라.
이런 자와 같이 함께 더불어 하고 싶겠는가?
자신이라면 자신과 같이 누군가 자신을 대한다면 어찌하겠는가?
아만과 자만, 이기와 질투, 욕심이 가득하다면
아마도 마음의 문을 열었다가도 닫게될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의 상태에서
종속의 관계가 아닌
대등한 관계이고
상생의 관계라면 더욱 더 그럴 것입니다.
현명한 사람들은
상대방을 자기 자신의 사유세계나 의식 세계에 넣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분별하여 허물을 들추지 않으며
분별한다고 할지라도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있다고
나쁜 쪽 부정적인 쪽을 보기보다는
좋은 쪽 긍정적인 쪽을
보고 드러내거나 말을 할 것입니다.
그럼으로
서로가 발전할 수 있는 관계가 될 것입니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봐 주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 줘라.
그러면
싫어하거나 미워할 일도 없고
상대방으로 인하여 마음 상할 일도 없다.
있는 그대로 봐 주지 못하고
자기 자신에게 서로 맞추려하니.
다투게 되고 헤어지게 되는 것이지
(불만이나 부정적이게 보게 되는 것이지)
있는 그대로 봐 주고
자기 자신에게 맞추기보다는
상대방에게 맞추려고 한다면
싫어할 일도 없고, 다툴 일도 없고, 헤어질 일도 없다.
문제는
있는 그대로 봐 주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지 못하는데서 생기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이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봐 주지 못하고
인정해 주지 못하는 것이고
왈가왈부 상대방에 대하여 말이 많고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인 언어를 많이 사용하며
상대방을 억압하고 구속하고 소유하려고 하는 것이다.
현명한 사람은
친하다는 이유로
좋아한다는 이유로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억압하거나 구속하거나 소유하려고 하지 않으며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봐 주고 인정해 준다.
그리고 좀더 밝은 쪽으로 나오도록 다만 빛을 비추듯 비출 뿐이다.
어리석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궤짝 속 사고(思考)나 사유(思惟)세계 의식세계 속에
상대방을 너 나 없이 서로 넣으려고 하니
넣으려는 쪽과 들어가지 않고 자신을 보호하려고 하는 쪽,
저마다 각기 서로 다른 세계와 세계가 맞서게 되고 또 부딪치게 되어서는
서로 간에 잘 소통이 잘되어서는 평화로웠다가도
어느 순간 소통이 되지 않을 때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멸시와 부정적 이미지를 드러내고
상대방의 세계를 어떤 식으로든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다가 저마다 가지고 있는 세계와 세계가 마주쳐서는
자기 자신의 세계를 침범 당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침범 당하면 당하는 만큼 보호 본능적 사고로 다투고 싸우는 것이다.
현명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궤짝 속 사고(思考) 사유(思惟) 의식(意識)세계 속에 넣으려 하지 않고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세계를 인정해 주고 존중해 주며
태양이 빛을 비추듯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뿐이다.
있는 그대로 봐 주고 인정해 줘라.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고 공(空)의 법칙이고
평화의 법칙이고 자유의 법칙이다.
2007. 12. 07 17:17
양생법(養生法) / 칠통 조규일
마음을 양생하기 위해서는
우선 먼저 마음을 활짝 열고
회개 반성 참회해야 하며 물들지 않은 마음을 쫓되
삼독심에 빠지지 않고 집착하지 아니하며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명상과 좌선을 하는가 하면 선(禪)을 해야 하며
방하착(放下着)하는가 하면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해야한다.
육체를 양생하기 위해서는
머리 꼭대기인 정수리 백회에서부터 발가락 끝까지
맑고 신령스러운 기운과 함께 생명에너지를 가지고
수신(修身)을 해야 하고
수신을 통하여 육체에 안 좋은 곳에 기운을 밖으로 밀어내고
필요로 하는 곳에 생명에너지를 넣어주고
맑고 신령스러운 기운으로 바꾸어 주어야 한다.
이 방법도 방법이지만 이외에
가벼운 체조를 꾸준히 해 주는 것과 함께 기체조 및 운동이 있다.
운동은 현재 자기 자신의 몸과 육체에 맞도록 해서
점차적으로 그 폭을 넓혀 가는 것이 좋다.
머리를 맑게 하고 뇌를 양생하기 위해서는
머리를 전체를 가볍게 두드려주고
양 손바닥으로 이마를 감싸
이마에서부터 머리 뒤쪽으로 해서 목덜미로 쓸어내려 주되
머리 전체를 감싸며 뒤로 내려올 때
머리 속 뇌 전체를 맑고 신령스러운 기운으로
탁하고 흐린 머리 속 뇌 속에는 기운을 바꾼다고 생각하며 쓸어내려 주는가 하면
입을 크게 벌려 위아래 이빨이 소리나도록 부딪쳤다가 벌리고 벌렸다 부딪치되
입술을 가볍게 다물고 하루 2-3번을 하되
한 번 할 때마다 200회 정도 해 준다
이렇게 하는 것을 짚신법이라고 하는데
이를 할 경우 머리가 맑아질 뿐만 아니라
이빨을 양생하는데도 도움이 되고
이렇게 함으로 해서 입안에 침이 고인 것을 먹음으로 해서
입안에 고인 침이 몸에 들어가 진액이 되기도 하니
매일 아침저녁으로 해 주면 좋다고 하겠다.
눈을 양생하기 위해서는
양 손바닥을 비벼서 손바닥이 따뜻할 때
따뜻한 양손바닥을 양 눈에다 가볍게 갔다 데고
맑고 깨끗한 신령스러운 기운이 눈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하고
맑고 깨끗한 신령스러운 기운을 안구 깊숙이 의식을 가지고 들어가서
심안과 함께 의식으로 안구 안쪽에서부터 안구 밖으로
안구에 있는 나쁜 기운을 밖으로 빼내며
눈이 맑아진다고 생각하고...
또 손바닥을 비벼서 눈에 양손바닥을 양 눈을 갔다 데고
눈 운동을 해 주는가 하면
눈에 끼어 있는 듯한 나뿐 것들을 제거라도 하듯
눈 안쪽에서부터 눈 꼬리로 해서 밖으로 닦아내듯
손바닥으로 눈 안구가 맑아지도록 훔쳐내듯 하여
눈 꼬리 밖으로 마음과 의식으로 닦아주고 훔쳐낸다.
귀를 양생하기 위해서는
왼쪽 귀를 양생할 때
왼쪽 귀를 오른손가락으로 왼쪽 귀를 앞쪽으로 누르고
귀 바퀴가 눌러진 왼쪽 귀를
왼손가락 엄지와 중지를 모았다 튕겨서
한 번에 5-10회 정도 때려주고
오른쪽 귀를 양생할 때는
오른쪽 귀를 왼손가락으로 오른쪽 귀를 앞쪽으로 누르고
귀 바퀴가 눌러진 오른쪽 귀를
오른손가락 엄지와 중지를 모았다가 튕겨서
한 번에 5-10회 정도 때려준다
약한 이명이나
잇몸을 양생하기 위해서는
양 귓볼 아래에서 양 엄지로 양쪽을 각각 누르고 비비되
조그마한 원을 그리듯 누르며 턱밑까지 눌러준다.
관절을 양생하기 위해서는
눈을 양생할 때와 같이
양손바닥을 비벼서 따뜻하게 한 다음
관절 부분에 갔다 데고 따뜻한 손에 맑고 신령스럽고 기운이
생명에너지와 함께 관절에 들어가서
관절에 나쁜 기운을 몰아주고
관절부분을 부드럽게 움직이도록 해 주는 연골에 들어가서
관절에 있는 연골의 진액이 생겨서 원만해진다고 생각을 하고
관절 속 연골에 마음과 의식으로 닦아주고 기운을 넣어주고 생명에너지를 넣어준다.
2007 04. 18 13:36
질문:
업식덩어리 전체에서 볼 때는 흩어진다고 보지만 하나하나 닦아가는 입장에서 본다면
업습 소멸, 업식 소멸이라 해야 옳지 않겠는지요?
업을 녹이는 것이 아니라 붙어있던 업이 떨어져 흩어지게 하는 것이라 하셨는데
이 말씀은 업장을 녹여주시는 시술을 하여도
잘못된 습관의 행으로 인하여 업이 다시 달라 붙이니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수행하는 입장에서 보면 업을 관하여,
업습을 관하여 삼매에 들어 확연히 알고는
그 업이 눈이 녹아 없어지는 체험을 하고
그러한 업이 생성된 원인을 알고 행을 바르게 하여 닦아나가게 됩니다.
잘못된 행을 하다가
이제는 바른 행을 함으로, 반복해서 함으로 인하여 이 바른 행이 습이 되지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볼 때 삼매에 들어 업을 인식하고,
인식해서는 업습을 소멸해 가는 행으로
바른 행이 자리 잡아서는 업습이 소멸했다고 하여도 무방하지 않을런지요?
업을 업장을 확연히 인식하지 못하는 입장에서는 행을 할 수 없어 소멸을 시킬 수 없지만,
만일 업을 인식한 상태에서는
흩어지고 떨어진 상태에서 행을 통하여 업을 소멸해 갈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일어납니다.
선사님의 시술과 업등퇴명로 자등명으로 단박에 업장을 떨어지게 할 수 있음이니,
업장에 대한 혹은 하나하나의 업습에 대한 확연한 인식이 있고
그 업습을 닦아 나아가는 행이 뒷받침 된다면 업장소멸, 업습소멸로 이어지지 않을런지요?
선사님의 밝은 눈으로 헤아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업식덩어리 전체에서 볼 때는 흩어진다고 보지만
하나하나 닦아가는 입장에서 본다면 업습 소멸, 업식 소멸이라 해야 옳지 않겠는지요?
업식덩어리에서 보나 업식에서 보나 업이 붙어 있는 것이 떨어지는 것은
어느 쪽으로 보나 분명한데,
자등명에 붙어 있는 업식덩어리에서
자등명에 붙어 있는 업식이 떨어지는 것을 업식에서 보면
업이 떨어져 흩어지는 것이 마치 업이 떨어져 나가는 것과 같이 보이니
업장 소멸, 업식 소멸하는 듯 업습이 소멸하는 보이지만,
수행하는 분들이라 해도
자기 자신의 습을 쉽게 버리지 못하거나,
또는 업의 습이 그러한지 알면서도
쉽게 놓지를 못하고 습으로 살고 습으로 행을 하다보니
습으로 행하는 만큼 떨어졌던 업이, 소멸된 듯한 업이 다시 달라붙어
예전의 업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게 되는 경우들이 다반사이니
이를 어찌 업을 소멸했다. 업식을 소멸했다, 업습을 소멸했다 할 수 있겠는지요?
업장 소멸, 업식 소멸, 업습 소멸이 되었다면
아마도 업은 도래하지 않을 것입니다만
업을 놓았을 뿐
업이 소멸된 것이 아니라
인과법과 연기법에 의하여
업은
인과법과 연기법에 의하여 사라진다 할 것입니다.
다만 놓은 만큼 넓은 공간을 갖게 됨으로 해서
작은 배에 싣고 있던 업을 큰 배에 싣을 것과 같은 것이 된다 할 것입니다.
그런고로
업을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서
업식덩어리에서 볼 때는 업장, 업식, 업습 소멸이라 하고,
업식덩어리에서 떨어져서 볼 때는 업장, 업식, 업습이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떨어져 흩어지는 것으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업장 업식 업습이 있는지를 알고 놓는 것을
즉 방하착하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이는 업장과 업식을 볼 때 그러한 것이고 업습은 이와 또 다르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업습은
마치 산위에서는 산 아래로 굴러가는 돌(업식덩어리)이 굴러가는 것에 비유한다면
업습의 내려놓음 내지는 업습의 소멸은
굴러가는 돌(업식덩어리)에서 뛰어 내리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업습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행으로 놓아지고 이루어지는 만큼,
그 행의 근본바탕은 8정도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업장, 업식의 소멸,
즉 떨어지게 하는 것이 중요하고 떨어진 만큼 맑고 깨끗한 행,
8정도의 행으로
업장 업식 업습으로
떨어지고 뛰어내리고 방화착해야 한다고 하겠습니다.
이는 자기 자신이 수행하여 이룩하던
남이 떨어지게 하였던,
업장과 업식의 떨어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행이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무엇보다는 떨어진 것이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맑고 깨끗한 물들지 않은 행,
8정도를 통하여 방하착하고 역지사지하며 행하여 간다면
이것이 습이 되고 업이 된다면
이것을 통하여 이것을 통하여 깨달음도 증득하고 자등명 세계도 올라올 수 있겠지만,
스스로 수행하여
업장, 업식이 떨어졌다 할지라도 업습에서 뛰어내리지 않고
업식덩어리(돌)가 굴러가는데로 업식덩어리에 있게 된다면
굴러가는 만큼 업장 업식이 떨어졌다 할지라도 굴러가는 만큼 또 달라붙게 된다고 하겠으며,
집착하면 집착하는 만큼 떨어졌던 업장과 업식도 다시 달라붙게 된다고 하겠습니다.
이와 같기에
선사님의 시술과 업등퇴명로 자등명으로 단박에 업장을 떨어지게 할 수 있음이니,
업장에 대한 혹은 하나하나의 업습에 대한 확연한 인식이 있고
그 업습을 닦아 나아가는 행이 뒷받침 된다면 업장소멸, 업습소멸로 이어지지 않을런지요?
스스로 수행하여 업장 업식 업습을 떨어지게 하거나 소멸한다면
그러한 사실을 하나하나 알고 이룩되는지를 알겠지만
본인의 시술이나 업등퇴명로, 영적구조물 녹이는 용광로, 최종지를 통하여 떨어지는 경우라 할지라도
맑고 깨끗해진 만큼 맑고 깨끗한 마음을 갖고 8정도를 행한다면
스스로 이룩한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로되,
본인의 시술을 통하여 맑고 깨끗하게 해주었거나 업등퇴명로,
영적구조물 녹이는 용광로, 최종지를 통하여 떨어진 경우라 할지라도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8정도를 행하지 않고 습에 의하여 말하고 행동한다면
아마도 스스로 깨달음을 증득하고 자등명 세계에 올라왔다 할지라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겠습니다.
그런 고로 업장 업식 업습을 스스로 맑고 깨끗하게 하였던,
본인의 시술로 맑고 깨끗하게 되었던 중요한 것은 행에 있다 하겠습니다.
행에 있되 습의 행이 아닌 8정도의 행에 있다 하겠습니다.
8정도의 행 없이는 업장, 업식 업습을 어느 정도까지는 내려놓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깨달음의 세계, 자등명 세계로 올라올 수 없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행으로 지옥도 가고 천상계도 가고 자등명 세계,...
최초신자등명 최초묘비(妙秘:22) 최초묘비(妙秘:3) 최초묘비본성 세계로도 올라올 수 있다 하겠습니다.
이는 모두 다 행이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고 하겠습니다.
행의 뒷받침 없이는 어느 것 하나 이룰 수 없고,
행의 뒷받침 없이는 위 세계로 올라올 수 없고,
유지하거나 또는 떨어지기가 쉽다 하겠습니다.
고로 행을 조심해야한다 하겠습니다.
2013. 12. 15 17:00
어디서 무엇을 보고 행하느냐에 따라 / 칠통 조규일
본성에서 보면
모두가 뜬구름 같은 것을 두고
이 구름은 참이지 저 구름은 참이 아니지 하는 듯합니다.
어느 것 하나 본성 아닌 것이 없으니
참 아닌 것이 없으니 모두다 참이다 하겠으나
구름에서 보면 참이라 할 것이 없다 하겠지요.
지금 님이 어디서 무엇을 보고 행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여지고 느끼고 나타나는 것과 같이
님이 대하며 말을 주고받는 모든 분들과의 관계가 그러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전에도 말했듯 모든 사람들은 신끼가 있고 예정력이 있습니다
물론 정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쪽으로 개발 발전시키느냐에 따라서
그것은 더욱 더 빛을 발할 수도 있고 퇴색할 수도 있겠지요.
그럼에도 전생에 수행한 수행공덕으로
이생에 와서 인생에 고뇌하게 되고
그럼으로 철학을 접하고
단전호흡 및 수행..묵언을 하게 되는 경험까지도 하게 되었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묵언했을 때를 생각해 보면 단순히 말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 대화를 했을 겁니다.
다만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지 않았을 뿐
남들과 대화하는 것보다는 자기 자신과 대화를 통하여
자기 자신을 탐구해 가는 것이 더 좋았다고 봐야 할겁니다.
저 같은 경우는 그랬던 것으로 지금 생각하면 그래요.
저는 묵언 보다는 혼자 있는 것을 즐겨했던 것 같네요.
전생의 수행으로부터 ...이어 온
이생에서의 인생 탐구와 철학을 가까이 하게 되다 보니
남들보다 철이 빨리 들고 애어른이 되고...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 하나 둘 물어보는 질문에 대답하다보니
맑은 의식은 맑히게 되고 질문으로 하여금 더욱 더
자기 자신도 모르게 개발되고
하나를 맞추니 둘 셋 더 잘 맞추려고 하고 틀리지 않으려고 하고
그럼으로 더욱 더 예지력이 생긴 것으로 사료되는 바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스스로의 마음에
나는 이러 이러해 라고 하는 자성의 경계를 만들어 놓고
그 자성의 경계 속에 갇혀서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경계를 드러내며
그렇게 봐 주었으면 하는 자기를 위로 끌어올리려는
자기 자신도 모르게 자만심과 아만심이 혹여 자란 것은 아닌지
사실 벼가 익으면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수행이 깊어질수록 하심하는 것이 좋고
또한 말하고 있는 것을 수행인이라면 멀리하는 것이 좋음에도
그것들을 우선으로 하고 여타 다른 일반적인 것들을 가볍게 보는 것은 아닌지
여기서 바르면 다른 것 역시도 바르게 하면 되지
이것은 바르게 하면서 저것은 바르게 못하고
또한 어떤 행을 행함에 있어
지금 행한 행은 바르고 그르고 판단하고
또는 행하면서 이것은 거짓되고 저것은 진실 되고
진실과 거짓은 누구로부터 일어나는 분별이고
진실과 거짓은 누가 진실 되다 했으며 거짓되다 했는가요?
지금의 상황의 행함에 있어서의 표현으로 보면
이분법적 논리와 분별에 빠져
참과 거짓 진실 선과 악...에 빠져서
행함에 있어서 행함의 걸림을 가지고 있고
또한 그것이 육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의식 생각으로...거기다가 마음까지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그 가지고 있는 생각 의식 마음으로부터 걸려 있기 때문에
말이나 행동에 구애를 받고 중도의 행할 할 수 없을뿐더러
언제나 다른 사람보다 내가 나를 더 중요시하고
내가 하는 것은 옳고 진실 되고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은 옳지 못하고 거짓되고
내 입장에서만 바라보니 그런 것이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역지사지해서 바라보면 또 다를 겁니다.
님이 가지고 있는 생각 의식 마음부터 비워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참, 진실된 것에서 보면
어느 것 하나 참이 아닌 것이 없고
진실 되지 않은 것이 없지만
거짓된 것에서 보면
어느 것 하나 거짓되지 않은 것이 없이 전부다 거짓되고
오직 나만이 진실 되고 참인 듯 생각하고 의식하고
그런 마음을 가지고 바라보기가 쉽지요.
이는 상대방이 어때서가 아니라 상대방의 문제라기보다는 내 문제고
스스로 가지고 있는 문제로 인하여 그 문제로 인하여
문제 속에서 보고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니
혹여 그런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문제가 있다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며
스스로의 가지고 있는 생각 의식 마음에 갇혀서 그렇다면
마음을 비우고 물들지 않은 마음으로
바른 행으로 드러내며 주변 사람들과 또는 하고자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더불어 행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어요.
아무리
우주와 하나됨을 느끼며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며
말 한마디 한마디에 평화가 넘치는 것을 느끼고
사람을 마주할 때도 행복의 소리가 넘치는 것을 느끼고.. 한다하더라도
생각이 그러하고 의식이 그러하고 마음이 그러하지 못하여
말한 것과 같은 행동을 하게 된다면 서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할겁니다.
우주가 하나됨을 느끼며
우주 속에 있는 모든 것은 하나로 동체로 일체일 것이며
아름답다면 우주의 모든 것이 그러할 것이고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평화... 행복이라면...
진실과 거짓됨 속 선과 악....
이분법적 논리에 빠져 분별을 일으키지는 않을 겁니다...
마음을 비우고
하심을 가지고 생각해 봐요
좀 더 진지하게...
그러면 무엇인가 잡지 않을까 싶네요.
2005. 9. 27. 13:38
안으로부터 작은 변화가 크게는 개벽이 된다.
/ 칠통 조규일
의통이 없는 자는 죽는 겁니까.?
존재 자체를 사라지게 할 수는 없을 것 같고.
이 행성에서 추방당하기라도 하는 걸까요.?
어떻게 하면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할 수 있을까? 고민입니다.
이것에 대하여 저번에도 질문하여 대답한 것 같은데
또 질문하신 것으로 보아 아직도 그 단체에 있는가 봅니다.
"빛으로 가는 길"이란 책에서
그날에는 죽은 자는 산 자를 부러워 할 것이며
산 자는 죽은 자를 부러워 할 것이라 했고
저번 님의 질문에 대답하기를
선택되거나 솎아지는 것이 아니라 걸러진다고 했고
그날은 지금의 우리 세대 가까운 미래가 아닌
아주 먼 까마득한 미래의 일이라고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여기서 선택은 어느 종교를 믿음으로 생기는 선택도 아니고
누구를 믿음으로 선택될 일이 아니지만 혹 선택되어진다면
선택되는 것으로 말한다면
어느 종교 종파를 떠나고 누구를 떠나
각각의 심성 신성 본성이 어떠냐에 따라 선택된다할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육체와의 인연을 다하고 죽어서 영혼이 영혼의 세계에 갈 때
어느 종교 종파 누구를 믿고 믿지 않고의 선택이 아니라
죽은 이의 영혼의 심성 신성 본성이 어떠냐에 따라 가는 것과 같다할 것입니다.
의통(醫通)은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로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명에너지가 수치적으로 18인데 비하여
수행 정진하여 또는 그쪽으로 연구 개발하여
생명에너지가 수치적으로 23을 넘어선 자로써
밖의 생명에너지를 안의 생명에너지로 바뀔 수 있는
또는 부족한 에너지를 채워줄 수 있는
안의 나쁜 에너지를 밖의 좋은 에너지로 교환해 줄 수 있는 자
이는 주어지기도 하고 개발되기도 하고
수행 정진 중 생기기도 하나
이것에 얽매여 있어서는 더 이상 수행의 진전이 없고
의통을 계속 사용함으로 더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은 생기나 그것으로 인하여
수행이 정진되거나 또는 경지가 높아지지 않으니
수행 중 생기는 의통은 차장에 풍경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러한 의통이 그날에 걸러질까 싶네요?
님의 생각에 죽은 자는 어떤 자이고 산 자는 어떤 자라고 생각합니까?
그럼 그날에 죽은 자와 산 자는 어떤 이 죽은 자이고 어떤 이 산 자일까요?
의통이 열렸다고 의통이 있다고 살 수 있는 자가 될 수 있을까요?
그날 이후 산 자는 죽은 자를 부러워하고
죽은 자는 산 자를 부러워한다고 했는데....
왜 그렇게 말했다고 생각하는지요?
위 상황이 되려면 현실이 어떤 상황일 때 이러한 결과가 나올까요?
그리고 선택되거나 솎아지는 것이 아니라 걸러진다고 했는데...
선택되어지는 것은 어떤 현실의 상황을 두고 선택되어진다고 말하고
솎아진다는 것은 어떤 현실의 상황을 두고 솎아진다고 말하고
걸러진다는 것은 어떤 현실의 상황을 두고 걸러진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존재의 사라짐은
육체(형태의 형상)의 존재를 말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영혼이라고 하는 오온의 집합체, 업덩어리에 있어서의
영혼의 존재까지의 사라짐입니까?
이 행성(지구)에서 추방당하기라도 하는 걸까요.?
누가 누구를 추방하고 어디로 추방할 것이며
추방하는 이 누구이고 추방당하는 이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만약이 이와 비슷한 일이 발생 내지는 생긴다면
추방이라기보다는 여행 내지는 탐사로 인한 것이 될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할 수 있을까? 고민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를 생각하십시오.
어떻게 하면 좀 더 높은 의식에 이르고 경지에 이를까 를 생각하고
수행 정진하십시오.
그러면 어느 단계를 넘어서면 생사가 둘이 아님을 알 것이고...
님이 수행 정진하여 의식이 경지가 높아질수록
안으로부터 사랑과 자비는 넘쳐흐를 것이며
이 넘쳐흐르는 사랑과 자비는 님을 늘 기쁨과 환희 행복 안에 있게 하고
주변을 적시며 나누게 되고 그러므로 감화되어
사랑과 자비에 들고, 들어서는 이웃과 서로서로 사랑과 자비를 나누고
이는 점점 주변을 감화 화친 친화하며 온 누리에 퍼져가고 ...
님으로부터 퍼지기 시작한 사랑과 자비는 더욱 넓게 퍼지며...
이웃 사랑 ...조국애... 인류애 ... 우주애가 되고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인류애는 모두를 구할 것입니다만
그럼에도 다스리는 자들 일종에 통치권자들의 탐욕으로부터
인류애라는 이름 아래 조국애라는 이름 아래...사랑과 자비라는 이름 아래...
이들의 명명한 이름의 탈을 쓰고
속으로는 자기 자신의 탐욕을 위하여 시작될 것입니다.
대륙과 대륙간의 인구 분포의 차이 빈부의 차이 문명의 차이....
격차의 평형 형평 균형 유지의 조화를 위하여 지구는 용트림을 할 것입니다.
우주는 인간의 선악에 관심이 없되 형평 균형 유지에 조화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 용트림의 근원을 자연이라 신이라 하는 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근원은 인간으로부터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날은 아주 먼 미래의 일이긴 하지만....
그 경고의 메시지는 현재 여러 형태로 나타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산 자와 죽은 자는
육신으로 이름한 산 자와 죽은 자이며
걸러지는 것은 이 현상계에서뿐만 아니라
중음신이 넘쳐나는 현상계와 영계 천계까지를 포함하여
육도 윤회의 굴레를 이야기한 것입니다.
이는 미래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며
지구의 지구에서의 개벽, 종말, ...이후에도 있을 것입니다.
지구의 우주의 형평 내지는 균형 유지를 위하여...
그러니 개벽은
어느 한 행성 지구에서의 개벽만을 볼 것이 아니라
우주 전체를 보아야할 것이며
현상계뿐만 중음계 영계 천계 육도 윤회 전체를 보아야할 것입니다.
우주 전체를 보아 개벽을 말할 때에는
님이 믿고 있는 종교에서 말하는 개벽을
자세하게 살펴볼 여지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말은 우주의 개벽을 말하면서도 그것들을 하나 하나 살펴보면
지구에서의 개벽(변화, 종말),
현상계에서의 개벽을 말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지구에서의 개벽을 말할 것 같으면 제 글 중
"종말"이란 글을 읽어보기를 권하며
현상계에서 살 자와 죽을 자의 걸러짐은
전쟁 속에서의.., 붕괴 속에서의...매몰 속에서의.....지구의 용트림 속에서...
살아남기 힘든 상황에서
살아남는 자 산 자이고
그 나머지는 죽은 자라 할 것입니다.
이때 살아 남은 자 걸러진 자이며
지구의 형평 평형 균형 유지의 조화를 위하여 필요불가분에 해당하는 자들입니다.
이는 지구라는 행성을 관리하는 관리자 우주를 관리하는 관리자 신이라고 이름하는
신성으로부터 행해지고 걸러질 것입니다.
지구의 우주의 균형 유지를 위하여...
"우주는 인간의 일에 관심이 없다"란 글에서 밝힌 것처럼...
산 자 죽은 자
개벽으로 인한 신성으로 걸러짐 걸러지지 못한
걸러짐에 있어 걸러짐으로 육체(형태의 형상)로 산 자기 되기 위하여
육도 윤회에 있을 것이 아니라
살아서든 죽어서든 육도 윤회를 벗어나 있음을 위하여
수행 정진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는 신성이라는 님의 본성이 어떠냐에 따라 다릅니다.
신성 본성이 밝아야 ...
그래야 개벽이 있은 후
육도 윤회의 틀 속에서 형태의 형상으로 태어나기 위하여 ...
그곳이 지옥이든 영계이든 천상이든...
그 업들이 다하면
즉 선업이 다하여 악업만이 남으면 남았을 때 ...
형태의 형상의 몸을 받지 못하여...
또는 악업을 다하여 선업이 남으면 남았을 때...
형태의 형상의 몸을 받지 못하여...
산 자를 부러워하지 말고
살아서 변화된 지구의 환경으로 육체로...
죽은 자를 부러워 말고...
아주 오랜 동안 ...너무 나 오랫 동안 ....
서로가 서로를 부러워하며 헤매이지 말고
수행 정진으로 인한
의식의 성장 경지가 높이 이른 만큼
신성 본성이 밝디 밝은 만큼
업으로부터 벗어남 느슨함...
해탈이 벗어남이고
깨달음으로 생사 없는 윤회 없는 곳이 이름할 것이니
개벽은 이름이 개벽이고 변화의 큰 이름이되 작게는 변화입니다.
그 이름으로 한 우주에서 아니 지구에서의 개벽은
진정한 의미에서 자신의 안팎에서 밖의 개벽이 아니라
안으로부터 작은 변화이고 크게는 개벽이라 이름할 것입니다.
신성 본성으로의 밝디 밝은 쪽으로..
향하여 나아가야 하고
밝디 밝은 빛이 드러나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쁜 일을 하지 말고 좋은 일을 하고
남을 탓하기 보다 자신을 되돌아보고
남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속이지 말며
역지사지하는 가운데 방하착하며
수행 정진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해탈 성불할 때까지...
그때가 어느 생이 될지언정
2002. 8. 18
그대는 6개의 눈 중 어떤 눈으로 살아가는가?
/ 칠통 조규일
진리의 바다에 떠 있는 배(마음)가
고해의 바다에 이는 세파로 인한 파도 내지는 풍랑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뱃길은 달라질 것이다.
바라보는 눈에 따라
순항하기도 하고, 침몰하기도 하고, 물먹기도 하고, 파도타기....등등을 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는 6개의 눈이 있다.
6개의 눈은 육안, 심안, 뇌안, 혜안, 영안, 광안이다
육안(肉眼)을 가진 사람은 육체가 자신의 전부인 양
육체가 사라지면 모든 것이 종말이나 오는 듯, 이 세상이 끝나는 듯
타인은 생각지도 않고 이기와 탐욕으로 가득 차 자신의 욕심을 채우느라
선악의 구별도 없이 오직 '나'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육체의 존속을 위하여 사는 사람이다.
진리의 바다에서 보면 고해의 바다에 침몰한 것이다.
심안(心眼)을 가진 사람은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다.
영혼이 있음을 인식하고 육체가 사라지면 또 다른 세상이 있다고 믿고
이기와 탐욕을 부리기는 하나 역지사지(易地思之)하기도 하고
선악을 구별하여 악보다는 선을 쫓아 행하려고 한다.
육체의 존속을 위해서도 영혼을 위해서도 사는 사람이다.
진리의 바다에서 보면 침몰되지는 않지만 가끔 물먹는 것이다.
뇌안(腦眼)을 가진 사람은 대부분 지식과 학식이 풍부한 사람으로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이들의 대부분은 심안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다.
육체의 의지를 따르기보다는 영혼을 위하여 의식이 깨어 있고
이기와 탐욕에 약삭빠르기는 하나 탐욕에 물들지 아니하고
사뭇 이기적으로 추구하는 것을 향하여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피하기보다는 싸워 이기려하고 극복하려고 한다.
육체보다는 영혼 성장을 위하여 사는 사람이다.
진리의 바다에서 보면 파도타기 하려고 노력한다고 할 것이다
혜안(慧眼)을 가진 사람은
지식과 학식으로 지혜가 많은 사람, .
이들 대부분은 지식과 학식으로 여러 가지를 밝히는데 한정적이다.
또는 진리에 눈을 뜬 사람이다
지식과 학식보다는 진리(지혜)의 눈을 떠 사물을 밝게 밝혀 드러나는 것을 본다.
수행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제3의 눈이 열린 사람이 진리(지혜)에 눈 뜬 사람이다.
사실 혜안이 열림 사람이란 제 3의 눈을 뜬 사람, 진리에 눈 뜬 사람을 말한다.
의식이 늘 깨어 탐, 진, 치 삼독에 빠지기보다는 방하착(放下着)하고
타인을 밝은 쪽으로 진리 쪽으로 향하게 하여 인간구제를 하는가 하면
이웃을 사랑하고 봉사, 실천하며 전체가 하나라 인식하고 상생(相生)한다.
진리의 바다에서 보면 파도타기 한다할 것이다.
영안(靈眼)을 가진 사람은
진리에 눈을 뜨고 영혼의 세계까지를 관하여 살펴보는 사람이다.
제 3의 눈을 뜨고 수행이 더 깊어져 영안이 열린 사람이다.
이에 속한 사람들은 우리들 중 극소수에 속하며
우리를 진리로 이끌고 중음신을 천도시키는가 하면
인간계와 영계를 말하여 우리의 본성을 밝은 쪽으로 이끌며
영계로 가는 길 알려준다.
영안을 가졌다는 사람들 중 대부분이
자신의 수행으로 인하여 영안이 열린 것이 아니라 접신되어
접신된 이의 눈(영혼의 눈)을 통하여 영계를 말하고 살피는 이들도 있다.
전자의 경우는 세파로 인한 파도와 풍랑을 소꼽장난으로 보고 즐기지만
후자의 경우는 파도에 침몰되는 이도 있고, 파도에 물먹는 이도 있고,
또는 파도타기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있다.
광안(光眼)을 가진 사람은
제 3의 눈을 떠 해안이 열리고 영안이 열리고
의식을 넘어선 법성의 세계, 빛의 세계에 든 분으로
제 3의 눈 인당에서 빛을 발하는 빛으로 사는, 산 사람이다.
지구의 역사 이레 광안을 가졌던 분은 과연 지구에 몇 명이나 있었을까?
이 분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빛으로 자신의 주변으로 도량을 펼치거나 여래장을 연다.
진리 자체로, 법성의 빛으로, 빛으로...
삼천 대천 세계를 확연히 밝힌, 밝히는 분이라 할 것이다.
과연 그대는 어떤 눈을 가지고 살아가는가?
어떤 눈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바라는가?
수행하는 사람을 보니
많은 수행하는 사람들이 마음을 열어야 한다는 중요성을 알아서 그런지
중간에 있는 마음의 문은 많이들 열지만
안의 보호막이나 밖의 피해의식으로 인한 벽은
열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수행을 통하여 마음의 문을 여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쪽에 보호막이 약하게나마 있는 분은 제거해야 할 것이며
밖의 피해의식으로 만들어진 벽이 약하게나마 있는 분은
역지사지를 통하여 이해하고 사랑으로 용서를 하며
자신도 모르게 만들어 놓은 벽을 없애야 한다고 하겠습니다.
명상이나 사색 또는 참선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면밀히 살펴보고
자기 자신은 지금 어느 문이 닫혀 있고
어느 벽을 가지고 있으며
또 어느 벽은 없는지 스스로 확연히 살펴보시고
마음을 열고 안팎으로 통하기 위해서는
지금 자신 어느 문을 어느 벽을 없애야 하는지를 알고
스스로 문을 열고 벽을 없앨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07. 08. 08 09:28
'육도'윤회에 관한 ....진정한 무루법은? / 칠통 조규일
불가에서는 '천상계'도 육도윤회에 사이클 안에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비록 천상에 있는 존재들(천사, 선녀 등?)이라도 그들의 업이 다하면 다시 육계로 내려온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구원의 궁극적인 도달점이라고 하는 "하늘나라"(기독교의 천국), 또는 "선궁"(도가) 등도 육도윤회에서 말하는 '천상계'에 속하는 것인지요? 이를 놓고 볼 때 어디를 목표로 닦아나가는 것이 유루법이 아닌 진정으로 걸림 없는 무루법인지 궁금합니다.
님이 말씀하신 불가의 이야기는 맞는 말입니다.
타종교에서 말하는 "하늘나라" "선궁"이
불가에서 말하는 "천상계"에 속한다 할 것입니다.
지옥에도 수많은 지옥이 있고
천당(극락)에도 수많은 천당(극락)이 있습니다.
거의 모두가 육도 윤회의 틀 속에 있다할 것입니다.
"이를 놓고 볼 때 어디를 목표로 닦아나가는 것이 유루법이 아닌 진정으로 걸림 없는 무루법인지 궁금합니다."
일단, 수행자는 깨달음을 얻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수행을 합니다.
수행과정에서 처음 나는(假我) 내가(眞我) 아님을 인식하고
내 안의 내가 영혼이 있음을 인식하고는
"이것이 영혼이구나" 인식하고
영혼이 무엇으로 이루어졌음을 인식하고
그 이루어짐을 하나 하나 벗어버리고
여기서 벗어버리고 라고 했으나 방하착을 말합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인식하고
이 과정에서 인과법, 상대성 인연법을 인식하고
"이것이 마음이구나"를 인식하고
"일체유심조" "일체법"이 마음 작용인 줄을 인식하고
마음 작용이 일어나는 법(진리)을 알고
여기서 불성과 법성을 인식하고
이 과정에서 자신이 본래 빛이었음을 인식하고
한 소식 깨달음을 얻고
일체와 자기 자신이 하나인 줄 확연하게 인식은 했으나
자기 자신이 그 자체가 아님에 더욱 매진하고
(여기서는 각자에 따라...보림, 뜸들이는 과정에서...인식이 조금씩 다르게 나타납니다.)
이제 법이 이루어지는 성질, 법성을 확연히 인식하고
법성이 빛의 밝기임을 인식했으니
빛의 밝기를 더하는 ...수행을 하고, 즉 광계(光界)의 수행을 하고
자신이 빛으로 우주 전체를 밝힐 수 있을 때까지....
제가 보건데 인간의 몸으로 광계에 이르신 분은....
정말로 한 손에 꼽는 듯 싶습니다.
어떤 것이 진정한 걸림 없는 무루법인가?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증득한 것으로
일체 상을 가지지 않는 것입니다.
일체의 상을 가지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확연히 알아야 합니다.
확연히 알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수행이라는 것을 통하여
하나 하나 계단을 밟아 오르는 것처럼
산을 오르듯
올라가야 합니다.
올라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올라 선 만큼 아래가 넓게 멀리 보이는 것처럼
의식은 성장되어 있을 것이며
올라오면서 본 것들 체험과 경험한 아는 것으로부터는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계단 맨 위에 올라섰을 때
산 정상에 올라섰을 때
야호! 라는 오도송을 얻고 대자유를 얻는 것입니다.
님이 확연히 알고 있는 것으로 인하여는 더 이상 의심이 가지 않고
그것에 걸림이 없는 것처럼
확연히 알지 않고는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하나 하나 확연히 알아 가는 것이 수행이고
의식을 성장시켜 가는 것입니다.
수행하여 이르지 못한 이들은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 것인가?
그것은 업은 만나 풀되 더 이상 업을 짓지 않으면 될 것입니다.
업을 짓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는가?
그것은 모든 것(언행)에 상을 내지 않고
역지사지하는 가운데 방하착하는 것입니다.
2001. 1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