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30일 오늘의 역사
2022년 인도 서부에서 축제 인파가 몰린 보행자 전용 현수교가 무너져 130여명 사망
2021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이 30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개막, 세계 기후 변화와 코로나19 이후 경제 회복,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 등에 대한 논의
2018년 ‘중국의 셰익스피어’로 불리는 진융(김용) 세상 떠남(94세)
2015년 자전거로 미 대륙 횡단한 유민규씨, 여행 중 모금해 ‘기아대책’ 전달
2015년 10월 30일 서울에 있는 국제 구호단체 ‘기아대책’ 사무실로 명지대 3학년 유민규(23)씨가 찾아와 “식수난에 시달리는 필리핀 어린이들을 위해 써달라”며 200여만원을 전달했다. 지난 6월 27일부터 50일가량 자전거로 미 대륙을 횡단하며 만난 사람들과 인터넷을 통해 모은 돈이다.
유씨는 ‘세계 물의 날(3월 22일)’에 신문에서 필리핀 식수난 기사를 보고 미 대륙 횡단 계획을 다시 짰다고 한다. 필리핀은 물에 석회질이 많고 상하수 시설도 좋지 않아 만성적 물 부족에 시달린다. 유씨는 “기왕이면 물 때문에 병까지 앓는 아이들을 위해 뭔가 뜻있는 일을 하고 싶어 자전거로 횡단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자전거로 광활한 미 대륙을 건너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니다. 중서부 덴버에서 동부 뉴욕까지 하루 80~90㎞씩 달리는 강행군이다. 잠자리는 캠핑으로 해결했고, 끼니는 마트에서 산 쌀과 소시지 등으로 때웠다. 여행 초기에 체크카드를 잃어버려 ‘국제 미아’가 될 뻔도 했다. 유씨는 “그때는 기부고 뭐고 돌아가고 싶었다. 내 앞가림도 못하면서 모금한다는 게 우스웠다”고 했다.
고행(苦行)이 여행(旅行)으로 바뀐 건 20일쯤 지났을 때다. 다리가 아파 도로변에서 쉬는 그에게 검은 승용차가 다가왔다. ‘이젠 강도까지 만나는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차에서 내린 미국 여성이 “왜 혼자 자전거로 여행하느냐”고 물었다. 유씨 이야기를 듣고는 “현금이 없어 미안하다”며 20달러짜리 선불카드를 내밀었다. 유씨는 “진심은 통한다는 생각에 이후 여정은 즐거웠다”고 했다. 기아대책은 이 돈으로 필리핀 북부 카가얀주(州)의 파굴룻 마을에 우물을 파고 있다. 12월 초 완공된다.
2014년 공군 FA-50 전력화 행사
FA-50 (FA-50 Fighting Eagle)은 한국의 KAI가 개발/생산한 초음속 다목적 경전투기/경공격기이다. 미국 록히드 마틴사와 KTX-2 사업을 통해 만든 초음속 훈련기인 T-50 골든이글이 기반이다.
1960년대경에는 초음속 고등훈련기 겸 공격기/경전투기의 개발 조류가 유행했다. 대표적으로 유럽의 재규어, 미국의 T-38/F-5, 일본의 T-2/F-1가 있다. 1970년대에는 다시 BAE 호크, 알파제트 등 아음속기 위주가 개발된다. 그러나 FA-50와 T-50은 다시 초음속기로 개발되었다.
이유는 퇴역하는 F-5의 임무 영역이 근접공중지원을 포함해 공중전까지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최신예 기종이라도 마하 0.8~1.2의 천음속 영역에서 전투기급 기동능력이 없으면 대체가 어려워진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 결과 경전투기급 비행성능을 확보하면서 제공권 확보가 불확실한 환경에서도 운용성을 높이는 경향을 띠게 된다.
실제로 흔히 비교대상이 되곤 하는 A-10 공격기의 경우 최고속력 706km/h·순항속력 560km/h로 아음속 전술기 중에서도 느린 편이다. 또한 Su-25는 최고속력 975km/h·순항속력 750km/h 으로 A-10에 비해 고속이지만 역시 아음속기라는 한계를 지닌다. 둘 다 공중우세를 확보하지 못한 공역이나 고성능 지대공 미사일 방공망에는 대응이 어렵다. 속도와 기동성의 열세로 맨패즈나 대공포 수준의 단촐한 방공망을 돌파하는 정도가 한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FA-50은 최고속력이 마하 1.5에 달하며 기동성은 전술기에 버금가는 초음속 경공격기로 A-10이나 SU-25에 비해 일정 수준의 방공망이나 공중우세가 없는 공역에서 빠르게 이탈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2010년 조선내화 창업주 이훈동 회장 별세
세계적 내화물(耐火物·고온에 견디는 물질) 제조업체인 조선내화㈜ 창업주인 성옥(聲玉) 이훈동(李勳東·93) 조선내화 및 전남일보 명예회장이 2010년 10월 30일 별세했다.
전남 해남서 태어난 이 명예회장은 일제 강점기던 16세 때 일본전기공업㈜이 운영하던 해남 성산의 '쇼와(昭和)광업소'에 견습사원으로 취업한 이후 한 길을 걸어왔다. 해방 후인 1947년 창립된 조선내화화학공업 상무로 경영에 참여, 1953년 37세에 조선내화 대표가 됐다.
1970년대에 조선내화 포항1·2공장을 준공했고, 1986년엔 광양공장을 세워 제철산업 발전에 기여했다. 조선내화는 이후 중국 현지법인을 설립하는 등 성장해 현재 국내외 19개 공장을 거느린 글로벌 전문 기업이 됐다.
고인은 회갑이던 1977년 사재로 성옥문화재단을 설립, 현재까지 4000여명에게 35억원의 장학금도 지급했다. 1988년엔 차남인 고(故) 이정일 전 국회의원과 함께 전남일보를 창간했다.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은탑산업훈장과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2009년 정부, 아프가니스탄 파병안 발표
2009년 10월 30일 정부가 아프가니스탄 지방재건팀(PRT) 요원 확대 및 이들을 경비할 병력 파병 방침을 공식 발표했다. 구체적인 파견 규모를 밝히지 않았으나 PRT 요원을 기존 25명에서 130~150명으로 늘리고 이들을 경비할 군과 경찰 300여명을 파견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번 파병인원은 바그람 미군 공군기지 내에서 운영 중인 의료·직업훈련팀과는 별도로 아프간 내의 1개 주에서 PRT 활동을 하게 될 예정이며, 우리 인력과 시설의 보호를 위한 자체 경비와 이동시 안전호송을 위한 적정 수의 경찰 및 군 경비병력이 포함된다.
관계부처 합동 실사단이 다음 달 중 현지에 가서 PRT를 설치 장소를 물색할 예정이며, 정확한 PRT 요원 구성과 경비병력의 규모 등은 그 후에 결정된다. 현재 PRT가 설치돼 있지 않은 주는 3개 주(님로스, 다이쿤디, 카피사)로 이곳에 마땅한 데가 없으면 기존 나라가 운영하고 있는 PRT 지역을 인수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 등에서 향후 국회 동의 과정에서 파병에 반대할 가능성이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이날 아프간 추가지원안 설명을 위해 방문한 유명환 외교장관에게 “기본적으로 민주당은 파병과 관련해 PKO(유엔평화유지활동)가 아니면 부정적이다. (정부의 계획은) PKO와는 성격이 다른 파병 계획인 것 같다”고 했다.
2009년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타계
2009년 10월 30일 세계적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Levi-Strauss)가 타계했다.
1908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태어난 고인은 파리에서 공부했으며 브라질 상파울루 대학에서 인류학 교수로 재직했다. 프랑스계 유대인으로 제2차 세계대전 중 친나치 성향의 비시 정권을 피해 미국으로 피신하기도 했다. 뉴욕 망명 시절, 같은 이름의 청바지 브랜드 ‘리바이스’ 때문에 ‘클로드 L 스트로스’로 성(姓)을 바꾸기도 했다.
이후 그는 1940년대 말 프랑스로 돌아가 60년 넘게 ‘살아 있는 국보’로 불리며 ‘슬픈 열대(1955년)’ ‘야생의 사고(1962년)’ 등 저서를 남겼다.
1981년 방한하기도 했던 그는 현대 인류학의 아버지, 20세기 지성계의 거목, 프랑스 지성계의 전설 등으로 불렸으며 특히 프랑스에서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 이후 최고의 지성으로 평가되는 인물이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인간의 제도와 현상 속에 숨겨진 ‘구조’를 찾아내려 했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주의의 발견’은 ‘구조주의 인류학’의 창시로 이어져 인문·사회과학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2008년 인도 북동부서 연쇄 테러 사망 최소 61명
2005년 가장 오래된 광개토대왕비 유리원판 사진 공개
98년 전 프랑스 학자가 촬영한 광개토대왕비의 유리원판 사진이 30일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 사진은 촬영자와 연대가 확실한 광개토대왕비의 사진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1907년 유럽인 중 최초로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集安)의 고구려 유적을 답사했던 프랑스 학자 에두아르 샤반느(Chav annes·1865~1918)가 촬영한 것이다. 현재 프랑스 파리 기메미술관이 장군총 등 21장의 다른 유적 사진들과 함께 소장하고 있다. 이 사실은 임영방(林英芳) 전 국립현대미술관장과 서길수(徐吉洙) 서경대 교수(전 고구려연구회장)가 확인했다.
사진에서 보이는 1907년의 광개토대왕비는 표면에 석회가 발라진 상태로, 탁본을 뜨기 위한 나무 받침대가 보인다. 현재 높이인 6.39m보다 낮은 6.20m라고 기록돼 19㎝가 땅 속에 묻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샤반느는 답사 내용을 ‘고대 한국의 왕국 고구려(L’ancien Royaume Cor?en de Kao-Keou-Li) 유적에 관한 보고서’란 제목의 논문으로 기록해 당시 고구려가 한국사에 속한다는 분명한 인식이 세계적으로 통용됐음을 보여준다.
2003년 휴대용 대공미사일 ‘신궁’ 개발 발표
한국군은 레드아이, 재블린, 미스트랄, 이글라 등 다양한 외국산 휴대용 대공유도무기를 운용하다 국산 '신궁'(新弓 New Arrow)을 개발해 2006년부터 전력화했다. 국산화율이 90%에 이른다. 2명이 운용하는 신궁은 최대사거리 7.0km, 최대고도 3.5km로 피아식별기 및 야간조준기를 장착하고 있어 원거리에서 피아 항공기를 식별할 수 있고 야간에도 작전이 가능한 것이 장점이다. 신궁 미사일의 무게는 15kg이며 길이와 직경은 각각 1.6m, 8cm다.
2002년 중국, ‘양빈 재산몰수·국외추방’ 북에 공식통보
2002년 10월 30일 중국 정부가 탈세 등의 혐의로 가택연금 중인 양빈 신의주 특별행정구 장관의 재산을 몰수하고 국외로 추방하겠다는 방침을 북한 당국에 공식 통보했다.
북한은 네덜란드 국적의 중국인 기업가 양빈 어우야그룹 회장을 특구 행정장관에 임명, 과감한 개혁·개방의지를 대외적으로 과시하려했지만 중국이 양빈 장관을 연금하고 계좌를 전격 동결하며 반대입장을 표명함으로써 특구의 앞날이 불투명해졌다. 더구나 양빈의 기업인 어우야 농업마저 지난 4년간 대대적으로 장부를 조작했다는 분식회계 스캔들에 휩싸이게 됐다.
당초 북한은 9월 12일 신의주를 최소한 50년동안 독자적인 입법·행정·사법권을 갖는 ‘특별행정구’로 지정하고 이 지역을 국제적인 금융·무역·공업·첨단과학·오락·관광지구로 개발하는 내용의 ‘신의주 특별행정구 기본법’을 채택한 바 있다. 이 법에 따르면 북한 중앙정부는 외교업무를 제외하고 신의주 특구 사업에 일절 관여하지 못하며, 특구는 국가가 위임한 범위에서 독자적으로 대외사업을 할 수 있고, 여권도 별도로 발급할 수 있도록 했다. 특구내 모든 토지와 자연자원들은 국가 소유지만, 이를 개발·이용·관리하는 권한은 2052년 12월 31일까지 특구가 가지도록 했다.
양빈 회장은 9월 23일 북한 대외경제협력추진위 김용술 위원장과 평양에서 신의주 특별행정구 개발과 관리운영을 위한 기본합의서를 체결한 후 24일 초대 행정장관에 임명됐었다.
2002년 국산 초음속 항공기 T-50 첫비행 성공. 초음속기 보유 세계 12번째
2002년 10월 30일 국내에서 처음으로 개발된 초음속 고등훈련기 겸 경(輕)공격기인 T-50 ‘골든 이글’의 비행성공을 기념하는 행사가 경남 사천 공군기지에서 이준 국방장관과 길형보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사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지난 8월 20일 시험비행에 성공한 최고속도 마하 1.5의 T-50은 F16, F15, F22 등 세계 최신예 및 차세대 전투기의 조종 훈련을 위해 개발됐다. 디지털 비행제어 시스템과 첨단 디지털 엔진제어 방식의 엔진 등 최첨단 전자산업의 집약체로 고등훈련기 중 세계 정상급 성능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았다.
T-50 개발로 한국은 자체 개발한 고유 모델의 초음속 항공기를 보유하는 12번째 항공선진국이 됐다. 공군과 KAI는 지난 1997년 10월 개발사업에 착수한 이래 5년 만인 작년 10월 개발을 완료하고 출고식을 가졌다. T-50은 길이 13.14m, 폭 9.45m, 높이 4.91m, 최대 이륙중량 1만3454kg, 실용상승고도 1만4783m이다.
2001년 초음속 경(輕)공격기 한·미 공동개발
첨단 디지털 시스템을 갖춘 국내 최초의 초음속 고등훈련기 겸 경(輕)공격기(T-50/A-50)가 국내 기술진과 미 록히드 마틴사에 의해 공동개발됐다. 공군과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2001년 10월 31일 오후 김대중 대통령과 김동신 국방장관, 군 및 업체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KAI 사천 1공장에서 T-50 출고식을 가졌다.
이 항공기는 첨단 디지털 시스템을 채택, 라팔, F-22, F-15 같은 최신형 전투기 조종훈련에 활용할 수 있으며, 공대공(空對空) 미사일 2발과 폭탄 등 약 3t의 무장능력을 갖춰 경공격기로도 이용할 수 있다. T-50/A-50 항공기는 최대 속도가 마하 1.4로, 전장 13.13m, 폭 9.17m, 높이 4.91m이며, 최대 이륙중량 1만2000㎏, 실용 상승고도 1만4630m이다.
일명 `골든 이글(Golden Eagle)`로 불리는 이 항공기는 기동성 확보를 위해 디지털 비행제어 및 디지털 엔진제어 시스템을 갖춰 동급의 유사 훈련기 중 최고의 성능을 지닌 것으로 평가됐다.
2000년 동아건설, 채권단의 자금지원-워크아웃 중단 결의로 사실상 퇴출
1999년 충북 영동의 노근리 민간인학살사건 49년 만에 미국정부가 인정
1999년 인천 호프집 화재로 중-고생 등 56명 사망
인천시 중구 인현동 4층짜리 상가건물 지하 노래방 공사장에서 1999년 10월 30일 불이 나 이 건물2층 호프집에 있던 손님 등 56명이 사망하고 81명이 다쳤다. 불은 30여분 만인 오후 7시30분쯤 진화됐으나 지하에서 발생한 유독가스가 유일한 비상구인 목조계단을 타고 순식간에 2~3층으로 번지면서 사망자 대부분이 미처 피하지 못하고 연기에 질식해 숨졌다.
피해자 대부분이 고등학생으로 이날 축제를 마친 인근 고등학생들이 몰려와 인명피해가 컸다. 불은 내부수리 중인 건물 지하 노래방 공사장에 있던 시너통이 폭발해 일어나 삽시간에 건물 전체로 번졌다. 1층 음식점에 손님들은 모두 대피했고 3층 당구장에 있던 손님들도 창문을 깨고 대피해 부상자뿐 사망자는 없었다 이에 비해 피해가 컸던 2층 호프집은 창문쪽을 패널 등으로 가려놔 비상구를 찾지 못한 손님 120명이 주방과 화장실 등으로 피하려다 질식, 대형참사를 빚었다.
2층 호프집은 1999년 3월 구청에 폐업신고를 했으나 7월 호프집주인 김모(33)씨가 인수해 다시 영업을 시작했으며 10월 22일 무허가 영업이 적발돼 폐쇄명령을 받았으나 이를 무시하고 영업을 계속하다 8일 만에 이같은 대형참사를 빚었다.
1998년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정몽헌 현대전자 회장, 평양에서 김정일 면담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정몽헌 전 현대전자 회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평양에서 면담을 가졌다.
이 면담에서 현대는 금강산 관광사업에 대한 30년 독점권을 확보함으로써 현대의 대북 경협사업이 획기적인 전기를 맞게 됐다.
금강산 관광사업은 북한에 고향을 둔 실향민을 비롯한 많은 국민들의 관심을 끌었다.
첫 금강산관광은 1998년 11월 남북분단 이후 처음으로 관광객과 승무원등 천2백여 명을 태우고 동해항을 출항한 금강호가 북한 장전항에 닻을 내림으로써 시작됐다.
그러나 금강산 관광이 당초 기대와 달리 해마다 대규모 적자를 내면서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2003년 2월부터 시작된 육로관광으로 탈출구를 찾게 됐다.
1998년 미국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 호 발사
1997년 유럽 12개국 공동상업위성 `아리안5호` 발사
1992년 프랑스 화가 존 미첼 사망
1992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9호 경기민요 `선소리산 타령` 예능보유자인 정득만씨 별세
1991년 중동평화회담 마드리드서 개막
1991년 홍콩-베트남 홍콩수용 베트남 난민 6만 여 명 3년 이내 송환 합의
1991년 한국전자통신연구소 이일항 박경호 장순호 박사팀 실리콘 발광실험 국내 첫 성공
1990년 서울 국제무역박람회 개막
국내 최대규모의 무역전시회인 서울 국제 무역박람회가 1990년 10월 30일 서울 무역센터 종합전시장에서 개막됐다. 지난 1982년부터 격년제로 열려 이날 5번째를 맞는 이번 서울 국제 무역박람회에는 국내 252개사, 해외 183개사 등 모두 35개국 435개 업체에서 참가해 활발한 상담을 벌였다.
이번 박람회에는 특히 우리나라와 새로 경제협력관계를 맺은 중국과 소련 등 공산권국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사상처음으로 서울 국제무역박람회에 공식 참가하는 공산권 국가들은 총 8개국 46개 업체로, 이 가운데 체코 폴란드 불가리아 헝가리 루마니아 등 5개국은 독자적인 국가관을 설치해 주목을 받았다.
이번 박람회를 계기로 방한하는 공산권의 경제인들은 폴란드의 바르샤바 구매단 150명이 가장 많았고 소련의 모스크바 구매단 38명, 유고의 사라예보 사절단 23명, 중국의 천진시 사절단 15명 및 흑룡강성 사절단 15명 등 모두 241명에 이르렀다. 공산권의 대규모 경제사절단이 이처럼 한꺼번에 방한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참가업체들의 전시품목은 기계-기술-공구 및 부품, 가구류-가정생활용품이 가장 많았다. 이번 박람회 기간중에는 `90 서울 국제문구전시회` 와 `90 서울 국제선물용품 및 장신구박람회` 가 동시에 열려 박람회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켰다.
1990년 영국-프랑스간 해저터널 관통
나폴레옹 이래 정치가와 기술자들의 꿈이었던 영국과 프랑스 사이 해저터널 `채널 터널`이 1990년 10월 30일 맞뚫렸다. 착공 3년 만이었다. 도버 바로 옆 포크스톤에서 출발한 영국 토목 기술자들과 칼레를 떠나 바다 밑을 파 온 프랑스 기술자는 양국 국기를 흔들며 반갑게 만났다.
실제 승객이 오가는 철도 개통은 4년 후 이뤄졌지만, 유럽 대륙과 48㎞ 해협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나왔던 유럽의 변방 섬 나라 영국이 대륙에 문자 그대로 `연륙`되는 최초의 순간이었다. 나폴레옹 시대부터 꿈 꾼지 2백년. 스스로 20세기의 나폴레옹을 자임했던 미테랑 치하에서 영불 해저 터널 건설은 현실로 이뤄졌다.
유럽통합이라는 정치적-사회적-역사적 대명제도 200년간의 꿈을 현실화하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한가지 차이라면, 순수한 민간 투자 형태로 이뤄졌다는 것. 150억 달러가 투자된 20세기 최대 민간 토목 공사였고 정치적 투자이기도 했다.
해저 터널은 여객 전용 열차용과 자동차를 싣고 달릴 열차용 2가지로 설계됐다. 평균 깊이는 해저 44.4m, 총 거리 48㎞. 7년에 걸친 공사에는 모두 1만5000명이 투입됐다. 여객 전용 열차는 `유로 스타`, 자동차용은 `르 셔틀`로 명명 됐다.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벨기에가 투자한 유로 스타는 프랑스의 고속열차 TGV와 영국 벨기에의 열차 선로 관리 기술의 총화였다.
1988년 국내 가입전화 1천만회선 돌파
1987년 신민주공화당 창당(총재 김종필)
1983년 그레나다 북한 군사동맹
1983년 터키 전역에 진도 7.1 지진 사망 1,300명
1981년 폴란드, 파업금지법안 의회에 제출
1981년 정전위 중립국감독위 소속 체코병사, 판문점 유엔군 관할지역으로 망명
1979년 일본, 오오히라(大平)내각 총사퇴
1976년 중앙정보부, 거문도 침투간첩 김용규의 자수 발표
1976년 대화퇴 어장 풍파 어선 60여 척 침몰 사망·실종 349명
1975년 스페인왕에 후안 카를로스 즉위
1974년 무하마드 알리, 조지 포먼에 KO승
1974년 10월 30일 아프리카자이레 수도 킨샤사에서 열린 프로복싱 세계헤비급 타이틀매치. 도전자 무하마드 알리(32)는 8회 종반 챔피언 조지 포먼(26)의 턱에 날카로운 원투 스트레이트를 터트렸다. 휘청거리던 포먼은 알리의 오른손 피니시 블로를 맞고 그대로 매트에 쓰러졌다. 알리의 KO승이었다.
TV 위성중계로 이를 지켜보던 전세계 복싱팬들은 `의외의 결과`에 경악했다. 그리곤 약속이나 한 듯 `역시 알리`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당시 포먼은 KO율 92.7%(40승37KO승)를 자랑하던 `무패의 철권`. 복싱실력이 알리에 못지 않다던 조 프레이저를 6번이나 다운시키고 챔피언에 올라 `사상 최강의 주먹`으로 평가받던 선수였다.
이날도 7 회까지 포먼의 일방적인 공격이 있었으나 이 모두가 포먼의 힘을 빼려는 알리의 두뇌플레이였다. 8회 들어 알리는 힘이 빠진 포먼이 잠시 방심하는 틈을 놓치지 않고 집중타를 가해 멋지게 경기를 끝냈다. 이로써 두번째 헤비급 타이틀을 쟁취한 알리는 1978년 2월 7차 방어전서 레온 스핑크스에게 패했으나 리턴매치서 승리, 세 번 헤비급 왕좌에 오르는 최초의 선수가 됐다.
1964년 2월 25일, 22세의 나이로 세계 챔피언 소니 리스턴을 7회 KO로 쓰러뜨리면서 등장한 새 챔피언 알리는 당시 캐시어스 클레이라는 이름이었다. 다음날 "알라만이 유일한 신"이라며 자신의 이름을 무하마드 알리로 바꾼 알리는 한순간에 '권투 영웅'에서 '흑인 이교도'로 비난 받으며 백인들의 편견과 싸워야했다.
9차례의 방어전을 성공적으로 치른 1967년, 미국의 베트남 전쟁 징병소집을 거부한 알리는 유죄를 선고받고, 챔피언 자리를 박탈당했다.
반전 분위기와 흥행카드를 원하는 복싱계의 바램 속에 복귀한 알리는 1970년 10월에 성공적으로 복귀전을 치뤘지만, 1971년 3월 8일 헤비급 챔피언 조 프레이저에게 도전해 판정패했다. 벌써 그의 나이 스물아홉이었다. 그후 알리는 포먼에게 챔피언 자리를 빼앗긴 프레이저를 상대로 리턴매치에서 판정승하면서 1974년 포먼에게 도전할 수 있었다.
1972년 탄도탄 요격 미사일 조약(ABM) 발효
1971년 전남 소허사도 간첩 사살 및간첩선 노획사건
전남 소허사도에 괴선박 1척이 출현하였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산으로 도주하는 간첩 4명을 발견, 교전 끝에 전원 사살하고 유기한 간첩선 나포. 피해(전사 1명)
1968년 울진 삼척 무장공비 최초 침투
울진·삼척 무장 공비 침투 사건은 1968년 10월 30일부터 11월 2일까지 3차례에 걸쳐 북한의 무장 공비 120명이 울진·삼척 지역에 침투하여 12월 28일 대한민국의 토벌대에 소탕되기까지 약 2개월간 게릴라전을 벌인 사건이다.
이는 한국전쟁 휴전 이후 최대 규모의 도발로, 침투한 무장공비 중 7명이 생포되고 113명이 사살되었으며, 남한측도 민간인을 포함하여 40명이 넘게 사망하고 30명이 넘게 부상하는 등 피해를 입었다.
1967년 소련 인류 최초로 무인원거리조종 위성 코스모스 186,188호 자동도킹 성공, 3시간 30분 궤도 돌고 분리
1967년 중국-인도네시아, 쌍방 외교관 완전철수 합의 (사실상 단교)
1966년 아베베 동아마라톤(서울~인천)서 2시간 17분 04초로 우승, 1위로 골인한 마지막 레이스
1963년 알제리와 모로코간 사하라전투 휴전에 합의(2일 재발)
1962년 이스라엘, 벤스비대통령 3선
1962년 유엔총회, 중국 가입안 부결
1961년 소련 공산당대회, 레닌묘에서 스탈린유골 추방 결의
1961년 소련, 50메가톤급 수소폭탄 ‘차르붐바’ 실험
1960년 부산 밀수깡패 100여명의 경관납치 구타사건
1959년 서울지검, 위장자수간첩 김승균 월북 직전 체포
1957년 혼혈아 80명 미국으로 첫 이민
1953년 일본-중국, 무역협정 조인
1950년 영자 신문 ‘코리아 타임즈’ 창간
1948년 유엔임시총회, 총회에 대하여 남북평화교섭 달성시까지 점령군 계속 주둔 요청
1947년 미군정 장관에 딘 소장 취임
1947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조인
1947년 10월3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미국을 비롯한 23개국이 모여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 조인했다
협정의 목적은 관세 장벽과 수출입 제한을 제거해 국제무역 물자교류를 증진시키기 위해서 였다
주요내용은 회원국 상호 간의 다각적 교섭으로 관세율을 이하하고 회원국 끼리는 최혜국 대우를 베풀어 관세의 차별대우를 제거한다
수출입 제한은 원칙적으로 폐지한다
수출입 절차와 대금지불에 차별대우를 하지 않는다 등 이였다
한국은 1967년 4월14일 정식 가맹국이 되었다
1945년 군정청, 출판등록제 실시
1943년 일화(日華)동맹조약 체결
1938년 미국, ‘화성인 습격했다’ 대소동
1938년 10월 30일 밤8시. 미국 CBS 라디오가 ‘화성인의 습격’이라는 라디오 드라마를 방송할 때였다. 드라마는 23세의 오손 웰스가 ‘우주 전쟁’이라는 소설을 할로윈용(用)으로 제작한 가상 드라마였다.
그런데 방송 도중 갑자기 ‘임시 뉴스’가 흘러나왔다. 필립스 기자로 분(扮)한 오손 웰스가 뉴저지의 한 농장에서 “화성군(軍)의 습격으로 미국 곳곳이 파괴되고 혼란에 빠졌다”고 전하는 가상 실황중계였다. 뉴스를 들은 미국인들은 방송 중에 “오손 웰스의 드라마를 보내드리고 있습니다”라고 했던 성우의 목소리도 잊은 채 이를 현실로 착각, 공포에 빠져들었다. 뉴욕에서는 수천명의 시민이 피난하고 뉴저지주에서는 “유독가스가 퍼졌다”며 20여 가구가 탈출을 시도했으며, 전투 준비에 나서는 사람들도 나오는 등 미 전역은 거의 패닉 상태였다.
역사상 가장 대표적인 매스미디어 해프닝으로 기록된 이 사건은 곧 세계대전이 터질지도 모른다는 전쟁에 대한 미국인들의 막연한 공포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실제상황으로 착각하게 할만큼 뛰어났던 오손 웰스의 연출력이 크게 작용했다. 웰스는 이 드라마로 재능을 인정받아 ‘신동’으로 불렸고, 1941년에는 ‘20세기 최고의 영화’로 격찬받고 있는 ‘시민 케인’을 연출ㆍ연기했다.
1930년 일본 발명가 도요다 사키치 사망
1929년 나주역 사건, 광주 항거 시작
1929년 10월 30일 오후5시30분쯤, 전남 나주역 개찰구 밖이 소란했다. 일본인 학생들이 한국 여학생의 댕기머리를 잡아당기며 희롱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피해 여학생의 사촌동생 박준채가 일본인 학생에게 따졌으나 사과는 커녕 오히려 ‘조센징’이라며 놀림을 받았다.
순간 박준채의 주먹이 일본인 학생의 얼굴로 날아들었고, 이내 양국 학생들의 난투극이 벌어졌다. 일본인 순사는 사건의 경위도 묻지않은 채 박준채의 따귀를 때리고 욕설을 퍼부으며 일방적으로 일본인 학생을 두둔했다. 이날은 일단 이렇게 지나갔다.
그러나 다음날부터 며칠동안 광주 시내 분위기는 살벌해졌고 11월 3일에는 마침내 억눌렸던 민족감정까지 폭발했다. 광주 전역의 학생들이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시가지로 진출한 것이다. 하룻동안 40여명의 학생들이 체포됐으나 이날은 시작일 뿐이었다. 이듬해 3월까지 전국적으로 194개 학교 5만4000명이 시위에 참가, 퇴학 582명ㆍ무기정학 2330명ㆍ검거 1462명이라는 큰 피해를 입었다. 3ㆍ1운동 후 국내에서 일어난 최대 규모의 항일운동이었다.
1922년 이탈리아 파시스트당 로마 점령
1920년 경성복심법원, 3.1운동관계자 48인에 대한 공소심 경성복심법원에서 열림
1913년 부제(府制) 공포 (일본인거류민단법, 거류지제도철폐)
1910년 국제적십자 창시자 앙리 뒤낭 사망
이탈리아 통일전쟁의 체험을 담은 『솔페리노의 추억』에서 전시에 부상자구호 위한 중립적인 민간기구 필요성 강조. 이 제안으로 1863년 국제적십자사 창설, 적십자사 깃발은 뒤낭이 태어난 스위스의 국기를 거꾸로 한 것, 노벨평화상 첫 수상(1901) 전 재산을 적십자에 기증하고 빈민촌에서 살다 양로원에서 삶을 마침
1905년 러시아황제 니콜라이 2세 국민참정권 인정. 의회소집 선언
1885년 미국 시인 에즈라 파운드 출생
1883년 한국 근대신문의 효시, 한성순보 창간
수신사로 일본 문물을 경험하고 돌아온 박영효가 고종에게 신문발간을 진언하면서 조선에도 비로소 신문발간 바람이 불었다.
중국과 일본에서 신문이 들어오고 부산에서는 일본인이 조선신보를 발행하고 있을 때였다.
1883년 2월 고종이 발간을 허락하자 박영효는 실무를 유길준에 맡겼다. 유길준은 일본의 대표적인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가 천거한 3명의 일본인과 함께 귀국, 신문발간을 준비했으나 곧 박영효와 그 자신이 공직에서 물러나면서 발간작업은 자연스럽게 연기됐다. 얼마후 김윤식ㆍ김만식 등 온건 개화파가 바통을 이어받았고 집권층 역시 자신들의 홍보수단으로 신문발간을 지원했다. 8월에는 신문을 발간할 박문국이 설치됐다.
1883년 10월 31일(음력 10월 1일), 마침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신문 한성순보(漢城旬報)가 첫 호를 냈다. 관보(官報)와 신문이 혼합된 형태였다. 한성순보가 일본과의 긴밀한 유대속에 발행되자 청나라로부터 견제가 들어왔다. 이때문에 혼자 조선에 남아 발간을 도왔던 이노우에는 결국 귀국길에 올라야 했다. 순한문이었던 탓에 다양한 독자층을 확보하지는 못했지만 이듬해 갑신정변으로 박문국이 불에 탈때까지 열흘에 한번씩 꾸준히 발간됐다.
1871년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 출생
1861년 프랑스 조각가 부르델 출생
1861년 오스트리아, 루마니아와 동맹 결성
1823년 방직기 발명가 카트라이트 사망
근대 방직기의 기초를 확립한 영국의 발명가 에드먼드 카트라이트가 1823년 10월 30일 사망했다. 80세였다. 옥스퍼드대학을 나온 카트라이트의 본업은 성직자였다. 우연한 기회에 알게된 면직물 기계에 흥미를 느껴 기계 제작에 매달린 것이 그의 이름을 오늘날에까지 남기게 된 계기가 됐다.
최초의 역직기(동력 방직기) 발명이 첫 성과물이었다. 원동기를 이용한 역직기는 그때까지 손으로 하던 길쌈 작업의 대부분을 기계화했다. 개량에 개량을 거듭한 역직기가 많은 공장에서 가동을 시작했으나 방직기의 출현으로 실직을 우려한 직공들의 폭동으로 많은 기계가 파괴됐다. 산업혁명기의 러다이트운동(기계파괴운동)때문이었다.
그는 이 밖에도 소모기 등 몇가지의 발명으로 산업혁명을 더욱 발전시켰다. 특히 소모기는 당대의 방적기술을 한 단계 발전시킨 발명품이었다. 1809년 영국 의회는 그의 공적에 감사하며 1만달러의 상금을 수여했다.
1735년 미국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 출생
1451년 탐험가 콜럼버스 태어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