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15일(월) 핸드폰 촬영.
3. 삶의 즐거움 - 멋진 삶에 대한 로마인의 사랑.
사랑이란 단지 열정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천상과 지상에서 신들과 사람들을 원시적 본능으로 되돌리는 더 거대한 힘이다.
이 섹션에서 선보이는 디오니소스의 이미지는 생명력에 대한 표상이자,
지상에서의 멋진 삶에 대해서 고대 로마인들이 품고 있었던 갈망을 보여준다.
디오니소스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술의 신이다.
올림포스의 12신 중 하나이며, 고대 그리스, 로마 세계에서 가장 복합적이면서도 매혹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스는 황홀경, 사랑, 기쁨을 상징하며, 그 안에는 광기와 지혜, 야생과 문명, 여성성과 남성성이 혼재되어 있다.
디오니소스는 인류에게 포도나무를 선사했고, 그가 내려준 포도송이로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전역을 통틀어서 최상의 포도주가 빚어졌다.
디오니소스는 술의 신일뿐만 아니라, 연극의 창시자로도 알려져 있다.
고대 사회에서 연극은 디오니소스를 기리는 축제의 필수적인 요소였으며, 인간의 본성을 재현하는 궁극적인 표상이었다.
디오니소스는 사람들의 삶에 깊숙이 파고들어 오랫동안 영향을 미쳤다. 이번 섹션에서는 모임과 축제의 장소였던 폼페이의 집들과
정원을 통해 음식과 포도주가 고대 로마인들에게 불러일으켰던 즐거움, 그리고 그들의 일상이 지녔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디오니소스 - 매력적이면서도 거친 신
신들의 사랑이나 신화 속 영웅을 표현한 이미지들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이들보다도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술과 여성의 신
바쿠스 / 디오니소스 이미지이다. 디오니소스를 둘러싼 숭배, 신화, 사상, 의례, 전설은 상호 연결되어 일종의 방대한 종교적 복합체를
만들어 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조형예술에서 묘사된 디오니소스의 형상은 이러한 성격을 반영한다.
디오니소스는 그리스와 로마 문화가 만들어 낸 가장 매력적이고 복잡한 존재이다.
그는 쉽게 파악할 수 없는 다면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심지어 그의 안에는 상반되는 특질들이 혼재되어 있다.
실질적으로 디오니소스는 남성성과 여성성, 광기와 지혜, 야만과 문명을 결합해 준다.
디오니소스는 인간에게 포도주를 만들 수 있는 포도나무를 주었다. 와인은 훌륭한 음료이지만 동시에 알코올 중독이라는 파괴적인
면모 또한 함께 지니고 있다. 사티로스들과 마이나테스 사이에서 디오니소스가 아리아드네를 신부로 맞아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결합을 이루는 장면은 다양한 작품들에서 재현되었다. 디오니소스가 손에 들고 있는 포도주는 그를 상징하는 요소이자,
춤과 음악을 통해 성취되는 행복, 사랑, 황홀경으로 이끄는 도취의 도구이다.
젊은 디오니소스의 거대 두상 / 2nd century AD, 64cm x 45cm x 45cm.
고개를 살짝 앞으로 숙이고 있는 이 흉상은 디오니소스의 젊은 시절을 표현하고 있다.
얼굴 표면은 매끄럽고 부드러우며 풍성한 곱슬머리가 어깨까지 내려온다.
이러한 디오니소스의 도상학적 모델은 기원전 4세기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사티로스 조각상 / 1st century AD, 178cm x 73cm x 37cm.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티로스를 표현한 조각상이다. 자연의 생명력과 힘을 의인화한 사티로스는 숲이나 산에 사는 신화적 인물로
디오니소스와 관련이 깊다. 초기에는 수염 난 인간의 외모에 뿔, 꼬리, 염소 발 같은 동물적 특징이 섞인 형태로 묘사되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동물적 요소들은 퇴색되었다. 이 조각상도 그런 예인데, 몸의 선은 여리고, 형태는 매우 우아하게 표현되어 있다.
춤추는 마이나드 / 1st century AD, 74cm x 60cm x 7cm.
춤추는 마이나드가 검은 배경 위에 표현되어 있다. 마이나드는 디오니소스를 따르는 여성 추종자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보통 황홀경에 빠져서 격렬한 춤을 추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들의 무리를 마이나데스(마이나드의 복수형)라고 부른다.
머리에는 화관을 쓰고 있고, 왼손으로는 티르소스를, 오른손으로는 탬버린을 들고 있다.
왕좌에 앉아 있는 디오니소스 / 1st century AD
디오니소스가 오른팔을 팔걸이에 걸친 채, 오른손으로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술잔인 칸타로스를 들고 있다.
폼페이의 와인
베수비오의 비옥한 토양과 기후는 포도 경작에 이상적인 환경을 제공했다.
폼페이에서는 광범위한 지역에 대형 포도밭, 포도 압축기, 발효를 위한 통이 발견되었고
도시의 주요 문들과 포럼 주변에는 와인 바가 즐비했다. 폼페이는 해안에 위치하여 다른 지역에 와인을 판매하는데 지리적 이점을 가졌다.
와인을 담아 판매하던 항아리에 새겨진 기록들은 이탈리아 내의 다른 지역에 폼페이에서 생산된 와인이 공급되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와인 운송 창고도 발견되었는데 수천 개의 운송용 와인 항아리와 석류나무의 씨 등 농작물을 보관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폼페이의 와인 문화를 상징하고 있는 프레스코도 발견되었다. 이 작품은 베수비오산에서 자라고 있는 포도나무를 묘사하고 있으며,
산 옆에는 포도로 덮인 모습의 포도주의 신인 디오니소스가 그려져 있다.
그 아래에는 포도밭의 선한 정령인 아가토데몬으로 여겨지는 뱀이 묘사되어 있다.
포도송이를 입은 디오니소스, 백 주년의 집
에로틱한 장면이 새겨진 등잔
원형 몸체에 부리가 소용돌이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고리 형태의 손잡이가 달린 기름등잔이다.
몸체 어깨 부분에는 동심원 홈이 여러 개 나 있고, 상단 가운데 부분에는 연인을 묘사한 장면이 있다.
남녀가 침대에 누워 시트에 뒤엉킨 채 안고 있다. 여자의 등 위쪽으로 작은 기름구멍이 나 있다. 등잔의 부리는 조금 파손되어 있다.
에로틱한 장면이 새겨진 등잔
원형 몸체에 부리가 소용돌이 형태로 장식된 기름등잔이다. 등잔 몸체의 어깨 부분에는 동심원으로 여러 개의 홈이 새겨져 있고,
몸체 상판 가운데 부분에는 에로틱한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침대 아래쪽으로 작은 기름구멍이 보인다. 등잔 부리의 구멍에서는 불에 그을린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사티로스 소상
춤추는 사티로스를 표현한 작은 청동 조각상이다. 이 조각은 사티로스가 춤추며 몸을 회전하고 있는 장면을 묘사한다.
왼쪽 다리를 앞으로 내민 상태에서 발가락 끝만 바닥에 대고 있고, 오른쪽 다리는 뒤로 뺀 채 역시 발가락만 바닥에 닿도록 하고 있다.
양팔을 들어 올리고 있는데, 왼팔은 얼굴 쪽을 향해 굽히고 있고, 오른팔은 앞으로 둥글게 뻗고 있으며, 성기는 발기되어 있다.
공중목욕탕
폼페이에는 포럼 목욕탕, 스타비안 목욕탕, 중앙 목욕탕 등 3개의 주요 공중목욕탕이 있었다.
공중목욕탕은 청결을 위한 장소로만 머물지 않았으며 사교적 만남이나 사업상의 회의 등 다양한 활동을 위한 장소로 사용되었다.
마사지, 미용, 운동 등 여러 목적의 시설이 제공되었고, 다양한 연령과 신분의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이었다.
남성과 여성이 분리된 별도의 탈의실, 냉탕, 온탕은 물론 운동 시설과 화장실도 구비되어 있었다.
포럼 목욕탕 건너편에는 모자이크와 프레스코화로 장식된 비극 시인의 집이 있다.
이 집 현관 바닥에 재미있는 모자이크가 있는데 개가 그려져 있으며, 라틴어로 '개조심'이라는 경고문이 적혀 있다.
사치와 휴식
고대 로마 사회에서 사람들이 밥을 먹던 장소는 꼭 필요한 가구와 도구들만이 갖춰진 다소 검소한 곳이었다.
초창기부터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이러한 관습이 유지되었다
그러나 기원전 3세기에서 2세기 사이에 부유층의 주거 공간이 확장되면서 거실이나 식당 같은 공간의 규모나 비중도 함께 커지게 되었다.
규모가 있는 저택에서는 트리클리니움이라는 식당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말발굽 형태로 배열된 테이블 주변에
연회용 침대가 놓여 있고 베개와 담요 등이 갖춰져 있었다. 사람들은 보통 왼쪽으로 기대 누워서 식사를 즐겼다.
부유한 가문에서는 커다란 조각상, 벽걸이 장식품, 프레스코화, 모자이크 등으로 응접실을 화려하게 꾸몄는데, 이러한 고급스럽고
귀중한 물건들에 둘러싸여 손님을 맞이하거나 휴식을 취했다. 탁자, 의자, 촛대, 난로, 화로 등이 갖춰져 있었다.
편안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더하기 위해 등잔 기름에 에센스 오일을 섞어 이국적인 향기가 나도록 하기도 했다.
가면이 있는 연극 무대 / 1st century AD, 72.5cm x 104.5cm x 9.5cm.
제3기 폼페이 양식에 속하는 프레스코화다.
계단 위에 놓인 가면은 화면의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비극과 희극에 자주 등장하는 노인 역할의 배우가 착용하는 가면이다.
기둥과 아키트레이브에는 식물 장식이 둘려 있고, 세 개식 묶인 사과가 띄엄띄엄 배열되어 있다.
오른쪽 하단에 있는 사과 묶음은 두 개로 되어 있다. 그 사이사이에는 술을 마실 때 사용하던 유리 뿔잔, 갈대로 만든 판 피리,
탬버린, 손잡이가 달린 유리 접시 등이 달려 있다.
가면이 있는 연극 무대 / 1st century AD,
제3기 폼페이 양식에 속하는 프레스코화다. 아키트레이브와 이를 받치고 있는 양쪽의 기둥 두 개가 호면 전체의 프레임 역할을 하고 있다.
화면 하단 중앙에 계단이 있고, 그 위에 가면이 하나 놓여 있다.
화면 가장자리의 기둥과 아키트레이브에는 식물 장식이 둘러 있는데, 세 개씩 묶인 사과가 띄엄띄엄 배열되어 있다.
가면이 표현된 부조 / 1st century AD, 26cm x 33cm x 5cm.
연극 가면이 새겨진 대리석 조각이다. 고부조로 표현된 두 가면이 화면 양쪽 상단에, 세 번째 가면이 아래쪽에 배치되어 있다.
오른쪽 상단에 있는 남성 희극 가면은 얼굴에 수염이 나 있고 주름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왼쪽 상단에는 젊은 여성의 가면이 있고, 그 뒤로 보이는 저부조의 인물은 옆모습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앞머리가 솟아 있다.
아래쪽에 있는 비극 가면은 여러 갈래로 갈라진 수염이 특징이다.
연회
연회와 같은 특별한 행사에서 호사로움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다. 연회는 사회적, 정치적 소통과 교류에 있어 무척 중요한 행사였으며,
연회를 통해 집주인의 친족 관계, 협력 관계, 신뢰 관계 등이 강화되었다.
로마의 연회는 각종 음악과 오락 거리가 가득한 지적이고 사교적인 모임이었다.
연회의 음식은 집주인의 사회적 지위, 교양, 부를 표현하는 수단이었다.
포도주, 음악, 노래, 대화, 놀이 등이 함께하는 음식은 쾌락과 즐거움을 고양하고 과시하는 기회가 되었다.
이러한 폼페이의 연회 분위기는 여러 그림을 통해서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연회실로 들어가기 전 거치게 되는 전실(前室)에서는
종종 연극 장면이 묘사된 작은 그림들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연회 중 공연된 연극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각종 요리와 식재료를 표현한 정물화에서는 물고기, 사냥감, 채소, 과일 등이 자주 등장한다.
등잔 받침용 청년 상 / 브론즈, 1st century AD, 150cm x 60cm x 60cm.
환상적인 건축 벽화 / 1st century AD, 73.5cm x 80.5cm x 7cm.
폼페이 프레스코 벽화 장식으로 건축물을 소재로 삼아서 3차원적인 환영 효과를 내고 있다.
포도와 자고새가 있는 정물 / 1st century AD, 30cm x 29cm x 6cm.
정물을 표현한 프레스코화다.
갈색 배경에 화면의 왼쪽을 바라보고 있는 새가 한 마리 서있다. 그 앞에는 잎사귀가 달린 풍성한 포도송이가 놓여 있다.
무화과가 있는 정물 / 1st century AD, 38cm x 55.5cm x 5cm.
무화과와 복숭아를 표현한 프레스코화다. 아래쪽에는 턱이 하나 있고, 오른쪽에는 무화과 다섯 개와 잎이 달린 가지가 턱 위에 놓여 있다.
화면의 왼쪽에는 복숭아 세 개가 표현되어 있는데, 하나는 턱 위에 놓여 있고,
나머지 둘은 상단에 매달려 있다. 배경은 전체적으로 갈색을 띤다.
무화과가 있는 정물 / 1st century AD, 23cm x 41cm x 6cm.
이중으로 된 선반 턱에 다섯 개쯤 되어 보이는 무화과가 표현되어 있다. 선반 턱과 과일의 그림자가 그림에 깊이를 더해 준다.
무화과는 고대 로마인들이 즐겨 먹던 과일이며, 프레스코화에 자주 등장한다.
물고기가 있는 정물 / 1st century AD, 36cm x 79.5cm x 6cm.
다양한 종류의 물고기 여섯 마리와 조개 하나가 그려진 프레스코화다.
푸른색 배경이 물을 표현하고 있고, 오른쪽과 아래쪽에 붉은색 테두리가 있다. 오른쪽 하단에는 흰색으로 된 작은 기둥 자리가 있다.
환상적인 건축 벽화 / 1st century AD,
연회 장면이 그려진 암포라 / 6th century BC, 37cm x 27cm.
암포라는 그리스 사회에서 액체를 담거나 운반하는 데 쓰였던 커다란 항아리로서, 두 개의 손잡이가 양쪽에 수직으로 달려 있다.
그림은 흑회식 기법으로 표현되었는데, 이는 적회식보다 더 오래된 기법이다.
연회 장면이 그려진 기둥형 크라테르 / 5th century BC, 37cm x 34cm.
기둥형 크라테르라는 명칭은 양쪽에 수직으로 달린 손잡이의 형태에서 유래한다. 연회 장면이 적회식 기법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손님들이 테이블 뒤 소파에 기대어 앉아 있고, 중앙에 있는 인물은 리라를 연주하고 있다.
오른쪽 인물은 킬릭스 잔을 들고 술을 마시고 있다. 고대 사회에서 연회의 역할과 술의 중요성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연회 장면이 그려진 종형 크라테르 / 4th century BC, 40cm x 39cm.
종형 크라테르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용기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유형이다. 보통 연회실 중앙에 눈에 띄게 배치되었는데,
크기가 크고 입구가 넓어서 포도주와 물을 섞는데 사용했다.
연회 장면을 그린 이 크라테르의 도기화에는 소파에 기대어 있는 인물 셋, 서 있는 인물 하나가 적회식 기법으로 표현되어 있다.
사모바르 / 브론즈, 1st century AD, 44cm x 37cm.
사모바르 또는 아우텝시는 음료를 데우거나 따뜻하게 유지하는데 쓰던 용기다.
시인과 건축물 / 1st century AD, 83cm x 80cm x 5cm.
폼페이 저택의 프레스코 벽화 장식으로 건축물이 실제처럼 느껴지는 환영적 효과를 내고 있다. 연극 가면과 시인이 함께 표현되어 있다.
폼페이 원형경기장에서 폼페이와 누케리아 주민과의 전투
폼페이 원형경기장 / 1870- 1889
폼페이 원형경기장은 BC 70년 경에 건설되었으며 로마의 콜로세움보다 100년이나 앞선다.
이 경기장의 객석은 당시 폼페이 인구였던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었는데,
이웃 도시의 방문객들까지 고려하더라도 이 엄청난 규모는 원형경기장이 로마 사회에서 대중적 장소였음을 시사한다.
원형경기장은 타원형 경기장과 그 주변의 관중석으로 나뉘며 경기장과 관중석 사이에는 2m가 넘는 방벽이 쳐져 있다.
좌석이 계단처럼 쌓여 있어 관객들은 탁 트인 시야와 함께 검투사와 맹수들의 격렬한 결투, 그리고 스펙터클한 마차 경주를 관람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경기가 있을 때마다 경기를 후원한 행정관의 이름이 소개되어 자연스럽게 정치적 홍보가 이루어졌다.
폭력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AD 59년 검투 경기 중 폼페이와 이웃 도시 누케리아 시민 간의 유혈사태가 프레스코에 묘사되어 있다.
로마 역사학자 타키투스의 <연대기>에 따르면, 경기 관람 중 관중들은 과열되어 서로 모욕을 주고받다가 무기를 들고 서로를
공격했고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이 폭동으로 인해 원로원 의원들은 10년간 유사 행사 개최 금지와 폭력 주동자의 도시 추방을 결정했다.
이 사건을 풍자하는 낙서가 발견되었는데 다음과 같다.
"캄파니아 사람들아, 너희는 누케리아 사람들과 함께 승리 속에 망했구나."
식기
고대 로마인의 식탁에서 사용된 식기는 매우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졌다.
저렴한 점토부터 유리, 값비싼 청동과 은까지 재료의 종류에 따라 소유자의 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당시의 식기류는 크게 고체 음식을 담는 그릇과 음료를 담거나 따르거나 마시는 그릇으로 나뉜다.
음식은 주로 큰 접시에 담겨 나왔고, 식사를 하는 사람들은 컵이나 작은 그릇을 이용해 음식을 덜어 먹었다. 주로 숟가락을 사용했는데,
이 시기에 포크가 사용되었는지는 밝혀진 바가 없다.
포도주를 위한 식기류도 다양했다. 암포라, 크라테르, 포도주를 섞고 덜기 위한
국자(당시 사람들은 포도주를 그냥 마시지 않고 물과 섞어 희석해서 마셨다), 포도주를 소분해서 따르기 위한 주전자,
포도주를 마시는 데 필요한 컵과 잔, 여과를 위한 체 등이 있었다.
사모바르와 유사한 형태의 우아한 용기를 사용해서 겨울철에는 물을 데웠으며, 여름철에는 눈으로 와인을 차게 식히기도 했다.
남부 갈리아 테라 시질라타 컵 / 1st century AD, 13cm x 25cm.
테라 시질라타는 광택이 나는 붉은 도기로 사모스 도기로도 불린다. 기원전 1세기부터 3세기까지 로마 제국 전역에서 사용되었다.
틀을 이용해 찍어 내는 방식으로 제작되었으며, 도공의 도장도 찍혀 있었다, 세월에 따른 양식의 변화와 도공의 표식은 연대를 측정하는
귀중한 수단이 되었다. 아름다운 모양을 자랑하는 테라 시질라타는 호화로운 연회에 꼭 필요한 그릇이었다.
아스코스 / 1st century AD, 11cm x 12cm x 6cm.
유리 주전자 / 1st century AD, 9cm x 10cm
푸른색의 유리 주전자, 몸통은 공 모양이며 목은 짧고 오목하다. 입구는 벌어져있고, 가장자리는 돌출되어 있다.
입구 가장자리에서 몸통까지 이어진 손잡이 역시 동그란 모양을 하고 있다. 가장자리에는 원반 모양의 돌출된 장식이 다섯 개 달려 있고,
손잡이 윗부분에는 사용자의 편의성을 고려한 엄지손가락 받침대가 있다.
골진 사발 / 1st century AD, 7cm x 14cm
사티로스와 님프 / 1st century AD, 122cm x 70cm x 65cm.
사티로스와 님프를 묘사한 대리석 조각상이다. 바위 위에 앉은 사티로스가 알몸의 님프를 왼팔로 감아서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마모된 부분이 많아서 인물들의 세세한 표정이나 동작은 알 수 없게 되었지만, 조각상이 가진 관능적 분위기와 율동감은 여전하다.
폼페이에서 발견된 낙서는 모두 1만 1천 개 정도다.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낙서는 이름과 날짜를 남긴 간단한 글로,
예를 들면 '가이우스는 이곳에 있었다'와 같이 자신의 존재를 남기는 내용이다. 이러한 낙서는 어린 학생들이 책상에 자신의 이름이나
이니셜을 새기는 행동을 연상하게 하는데, 이를 통해 2천 년 전 고대인들과 현대인들의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간단한 인사말, 문학 작품의 인용, 맹수와 검투사의 그림, 외설적인 농담과 욕설,
정치적 구호와 상대방 정치인에 대한 비방, 사랑의 고백 같은 개인적 감정 등 다양한 주제의 내용이 포함되어
고대 사회의 일상을 이해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여겨진다. 폼페이에서 낙서는 사적, 공적 공간 모두 나타나며, 공공장소에서는
의견과 감정을 나누는 소통의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런 낙서들은 종종 집단적인 언어적 놀이로 이루어지거나
당시의 유행이나 관심사를 반영했다. 이는 댓글이나 유행을 공유하는 현대의 소설 미디어와 유사성을 지닌다.
하르피이아가 조각된 라브룸(수반)
세 명의 하르피이아가 등으로 수반을 받치고 있는 형태의 대리석 라브룸(수반)이다.
반인반조인 하르피이아는 주로 날개와 날카로운 새의 발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는데 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삼각형의 튀어나온 부분에는 세로 홈이 나 있고 옆면 중앙에는 저부조로 된 장식이 있다.
상부 코니스에는 아스트라갈 프리즈가, 하부 코니스에는 이오니아식 잎사귀 프리즈가 있다.
스킬라가 조각된 정원용 수반 / 1st century AD,
포피리(반암)는 단단한 자줏빛 돌인데, 독특한 색상과 희귀성으로 인해 가치가 높았다. 포피리는 단단해서 채석이 어려웠고, 원산지였던
이집트에서부터 먼 거리를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비쌀 수밖에 없었다. 이 작품은 상류층 집 정원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스킬라를 표현한 정교한 조각에서 장인의 솜씨가 엿보인다. 스킬라는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여성 바다 괴물이다.
도무스와 정원 장식
로마의 주택에서 정원은 무척 중요한 공간이었다. 로마인들은 꽤 많은 시간을 정원에서 보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밖으로 나와
산책을 하거나, 나무 그늘 밑에서 휴식을 취하며 책을 읽고 시를 쓰고 철학과 정치에 관해 토론하는 것을 좋아했다.
빼어난 건축 양식과 훌륭한 장식품으로 꾸며진 정원은 집주인의 문화적 소양과 부를 과시하는 수단이었다.
물론 실용적인 기능 또한 갖추고 있었다. 혼잡한 도시 환경에서 정원은 빛과 신선한 공기를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특히 정원의 꽃과 향기 나는 식물들은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불쾌한 냄새를 가려 주었다.
정원 장식은 대체로 신화나 연극에서 영감을 얻어서 만들어졌는데, 특히 디오니소스와 관련된 주제가 인기를 끌었다.
야생과 자연, 전원생활의 즐거움, 트리페(호화로움, 장관)를 관장하는 존재인 디오니소스는 연극과 제전을 통해서 추앙되었으며,
이러한 주제는 정원 장식에서도 다양하게 적용되었다.
정원 프레스코 벽화 / 1st century AD, 23cm x 28cm x 6cm.
호박색 배경에 새, 곤충, 나뭇잎이 그려진 벽화.
정원 프레스코화 / 1st century AD, 38.5cm x 42.5cm x 5.5cm.
위를 바라보고 있는 새가 그려진 벽화, 화면의 오른쪽에는 하얀 꽃이 네 송이 피어 있다.
치장하는 장면이 그려진 적회식 히드리아 / 4th century BC, 47cm x 33cm.
무희가 그려진 레키토스 / 4th century BC, 28cm x 13cm.
레키토스는 목이 좁고, 손잡이가 하나이며, 나팔 모양 입구를 가진 길쭉한 용기로, 향유나 연고를 보관하거나 따르는데 쓰였다.
운동선수들이 많이 사용했으며, 장례 의식에서 사용하기도 했다. 이 도기에는 무희들이 적회식 기법으로 표현되어 있다.
장식 파티션 / 1st century AD, 235cm x 27cm x 9cm.
4, 고대 예술의 개념
역사를 통해서 인류는 아름다움에 관한 다양한 사상들을 발전시켜 왔다.
고대 미학에서 중요시하는 조화, 대칭, 균형 등은 심미적인 가치보다는 물리적인 가치와 관련되어 있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미에 대하 개념을 우아함과 비율에서 찾았다. 다시 말해 몸의 모든 부분이 균형, 대칭, 조화를 이룰 때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또한 아름다움이란 형태의 완벽한 비율뿐 아니라 내면의 조화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스인들이 생각했던 이상적인 인간은 아름답고 고결한 인간이었다.
나체는 영웅의 특징이자 도덕적 탁월함의 상징이며, 아름다움은 인간의 도덕적 차원을 드러내는 증거였다.
따라서 감탄을 자아낼 만큼 아름다운 모든 것은 또한 존경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겼다.
아름답다는 것은 인간의 절제력과 균형감, 즉 현명함에 대한 표현이었다.
이러한 관념을 바탕으로 고대 그리스와 로마 예술과 건축물은 정확하고 섬세한 비율을 통해 달성할 수 있는 완벽한 조화를 추구했다.
대장장이가 새겨진 오스킬룸 / 1st century AD.
오스킬룸은 양면이 부조로 되어 있는 대리석 원반으로, 보통 정원의 기둥이나 나무에 매달아 사용했던 장식용 소품이다.
앞면에는 대장장이가 모루 위에 놓인 어떤 물체를 집게로 잡고 있는 모습이,
뒷면에는 대장장이가 모루 위에 놓인 물체를 망치로 두드리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메두사 머리가 새겨진 오스킬룸 / 1st century AD,
바다 괴물을 타고 있는 여성이 새겨진 오스킬룸 / 1st century AD,
디오니소스의 헤르마 / (가운데) 1st century AD, 64cm x 15cm x 14cm. (오른쪽) 1st century AD, 112cm x 20cm x 18cm.
헤르마는 직사각형 기둥 위에 두상이 놓인 독특한 형태의 조각상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국경이나 교차로 등을 표시하기 위해 세워 두었던 기둥에서 유래했다.
돌고래와 소년을 표현한 분수 /1st century AD, 42cm x 36cm x 24cm.
(좌) 치장하는 장면이 그려진 적회식 히드리아 / 4th century BC, 43cm x 37cm.
히드리아는 주로 물을 운반하는 데 사용하던 용기지만 때로 유골함이나 종교적인 봉헌물로 사용하기도 했다. 손잡이가 세 개인데,
두 개는 몸통 가장 볼록한 부분에 양쪽으로 달려 있고 나머지 하나는 물을 쉽게 따를 수 있도록 목 부분에 달려 있다.
이 도기 유형은 크레타 지역에서 유래되어 그리스 로마 전역에서 사용되었다. 해당 도기에는 여인의 치장과 관련된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우) 치장하는 장면이 그려진 적회식 펠리케 / 4th century BC, 29cm x 21cm.
펠리케는 액체를 담는데 사용하던 주둥이가 넓은 항아리다. 몸통은 아래쪽이 살짝 더 불룩한 형태이며,
리본 모양의 손잡이가 수직으로 달려 있다. 치장을 하는 여인의 모습이 적회식 기법으로 표현되어 있다.
헤스페리데스 정원이 그려진 적회식 레키토스 / 4th century BC, 46cm x 28cm.
레키토스는 목이 좁고 손잡이가 하나이며 나팔형 입구를 가진 길쭉한 용기이다. 주로 향유나 연고를 보관하거나 따르는데 쓰였다.
운동선수들이 많이 사용했으며, 장례 의식에서 사용하기도 했다. 신화에 따르면 헤스페리데스의 정원에는 제우스가 헤라에게 선물로 준
황금 사과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헤라클레스는 열두 가지 노역 중 하나의 과제로 이 황금 사과 세 개를 따오라는 명을 받았다.
고인에게 인사하는 장면이 그려진 소용돌이 크라테르 / 4th century BC, 62cm x 37cm.
소용돌이형 크라테르는 이탈리아 남부 아풀리아 지역에서 만들어진 독특한 모양의 항아리다. 평평한 입구 테두리, 나팔 모양의 넓은 목,
달걀형 몸통을 갖고 있다. 양쪽에 손잡이가 수직으로 달려 있는데, 손잡이 윗부분이 소용돌이 형으로 말려 있고, 측면에 가면이 장식되어
있다. 도기화에는 고인에게 인사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는데, 특히 여성의 헤어스타일과 의상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좌) 헬레네의 탄생이 그려진 적회식 중형 크라테르 / 4th century BC, 36cm x 35cm.
전형적인 종형 크라테르이다. 적회식 기법으로 표현된 도기화에는 헬레네의 탄생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중) 헬레네와 메넬라오스가 그려진 적회식 스탐노스 / 5th century BC, 37cm x 37cm.
스탐노스는 기원전 6세기 후반부터 기원전 4세기까지 그리스와 에트루리아에서 생산되던 용기다. 둥근 몸통에 목은 짧고,
입구는 넓은 편이다. 양쪽에 수평으로 달린 손잡이가 있다. 헬레나와 스파르타의 왕이자 그녀의 남편인 메넬라오스를 묘사하고 있다.
(우) 헬레네와 메넬라오스가 그려진 암포라 / 5th century BC, 34cm x 20cm.
암포라는 액체를 담거나 운반하는데 쓰였던 큰 항아리다.
리본 모양 손잡이가 양쪽에 수직으로 달려 있다. 헬레나와 스파르타의 왕인 메델라오스를 묘사하고 있다.
헬레네 - 필멸의 인간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여인
'그녀는 불멸의 여신들과 놀라울 만큼 닮았어요"(일리아드 제3권 158행). 레다와 제우스의 딸인 헬레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인물이다. 그녀는 이상적인 여성상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아름다움이란 신과 비슷해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신성한 선물이면서, 동시에 불행을 가져다줄 수도 있는 독이었다.
실제로 헬레네의 운명은 파리스의 선택에 의해서 크게 달라졌다.
파리스는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가 자기들 가운데 누가 가장 아름다운지 결정하기 위해 선택한 젊은 목동이다.
세 여신은 파리스에게 온갖 선물을 약속하며 경쟁한다. 파리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인 헬레나와의 결혼을 제안한
아프로디테의 선물을 받아들이고, 그렇게 헬레네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트로이 전쟁의 불씨가 되었다.
헬레네의 매력은 너무도 치명적이어서 결국 수많은 죽음과 폐허를 가져왔다.
아름다움이라는 선물은 이렇듯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를 동시에 가진다.
헬레네
파리스, 헬레네, 아프로디테가 표현된 부조 / 1st century AD, 66cm x 68cm x 7cm.
아름답게 조각된 이 부조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 전쟁의 원인인 파리스의 선택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잘생긴 청년 파리스는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 중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황금 사과를 줄 것을 요청받는다. 고민하던
파리스는 아프로디테를 선택했고, 이는 다른 두 여신의 분노를 불러일으켰으며, 트로이 전쟁을 유발한 사건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시툴라
시툴라는 헌주에 사용하던 용기이며, 보통 큰 고리 형태의 손잡이가 달린 양동이 모양이다.
이 유물에서도 손잡이 부분이 남아 있다. 표면에는 여성의 몸치장에 관련된 장면이 표현되어 있다.
아케익 기 양식의 여성 두상 / 1st century AD, 86cm x 26cm x 23cm.
아그리피나 황후의 초상 / 1st century AD, 38cm x 30cm x 30cm.
아그리피나 황후의 특징인 헤어스타일을 잘 표현한 조각상이다.
로마 시대의 여인
베수비오 산 인근의 도시들은 엄청나게 풍부한 고대 세계의 벽화를 우리에게 남겼다. 그곳에는 여신, 여주인공, 여사제, 하녀 님프 등
다양한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다. 주로 신화 속 인물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지만, 때때로 일상과 관련된 현실적인 인물이 나오기도 한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로마 시대 여성들의 헤어스타일은 무척 다양했다. 머리 모양은 외모를 꾸미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로마 초기부터 기원전 1세기까지 로마인들의 헤어스타일은 남녀를 막론하고 매우 단순했지만,
기원전 1세기부터 패션을 주도하는 황실 여인들의 헤어스타일이 점점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율리우스 - 클라우디우스 왕조 시대(서기 14-68)에는 굵은 웨이브 스타일이 유행했고,
플라비우스 왕조 시대(서기 69-98)에는 좀 더 복잡한 컬이 인기를 끌었다. 2세기에는 헤어피스와 가발도 널리 쓰였다.
율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시대 공주의 초상 / 1st century AD, 60cm x 36cm x 28cm.
이 조각상은 율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왕조의 전형적인 헤어스타일을 보여준다.
왕조 초기의 단순하고 검소한 스타일이 보다 부드러운 형태로 바뀌었다. 관자놀이와 귀 앞쪽에 부드러운 컬이 추가되어
원래의 엄숙한 분위기가 완화되었으며, 목 아래로도 머리 가닥들이 자연스럽게 내려와 있다. 구슬로 된 머리띠를 두르고 있다.
플라비우스 왕조 시대의 귀족 여성 / 1st century AD, 71cm x 37cm x 34cm.
굵고 촘촘한 곱슬머리가 정교하게 조각된 한 여성의 초상이다. 높게 부풀린 윗머리는 거의 모자에 가까운 형태이며,
아래쪽으로는 꼬인 머리 가닥들이 장식 역할을 하고 있다. 귀족이거나 부유한 시민의 아내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베스타 신녀의 초상 / 2nd century AD, 58cm x 32cm x 25cm.
소위 '베스타의 처녀들'로 불리던 이들은 화로의 여신인 베스타를 섬기는 여사제들로서
로마의 광장에 설치된 베스타 여신의 불을 지키고 축제 때에는 이를 운반하는 역할을 맡았다. 베스타의 여사제들은
신부들이 쓰는 베일과 유사한 베일을 착용했으며, 브로치를 이용해서 베일을 단단히 여몄다. 이는 신부의 베일과 비슷했다.
첫댓글 덕분에
잘 보고 많은 것을
익힘다~감사합니다~^^
벽화,
그림 색감등 기픔있고 신비스럽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여러 차례 가야겠습니다
사진 찍을 곳도 많고
멀지 않은 곳에 국내외 역사 문화를 즐길 수 있으니,
이 또 한 복이요, 감사입니다
고맙고 김사드립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