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우리 팀이 일본에 머무르는 기간에 태풍(종다리)이 도쿄 쪽으로 접근한다는 일기예보를 접했다.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김해공항을 출발해 나리타공항에서 다시 3시간을 달려 해발 2,400m인 후지미야고고메로 이동하니 일본인 산악가이드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준다.
일정은 첫 날 칠합목까지 올라 휴식을 취하고 다음날 정상에서 일출을 보는 계획이다. 고고메(오합목)에서 고소적응을 위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오후 6시 30분이 넘어서 산행을 시작한다. 고산병 예방을 위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우리는 후지산에 발을 내딛었다.
고고메로 이동하는 동안 차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초록의 풀도,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야생화도 많이 보이더니 오합목 이상의 식생은 간간이 초롱꽃과 이름 모를 야생화만 보일 뿐이고, 그나마 칠합목 이상은 식물이 자라지 못하는 것 같다.
고도를 높여 올라갈수록 바람은 거세지고, 칠합목으로 가는 도중 날이 어두워져 헤드랜턴을 켜고 산행을 계속했다. 헤드랜턴 불빛이 저 아래까지 쭉 이어지고, 더 멀리는 이름 모를 도시의 불빛이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다.
칠합목에 도착하니 오후 8시가 조금 넘었는데 이미 잠들어 있는 등산객이 많았다. 카레로 저녁을 먹고 우리 팀도 잠깐 눈을 붙였다. 산장의 침구류는 깨끗하지 않았지만 얇은 보온 재킷을 입어도 추위를 느껴 어쩔 수 없이 사용해야만 했다. 밤 11시에 기상해 일출산행 준비를 하고, 고산병 예방을 위해 가져간 약도 미리 챙겨먹고, 12시에 칠합목 산장을 출발했다. 일출시각은 오전 4시 30분경이지만 정상으로 가는 길목은 종종 정체현상이 일어난다고 하니 서둘러야 한다.
고산증세는 보통 2,800m 이상에서부터 나타난다고 하는데, 고도를 높일수록 사람들의 발걸음이 자꾸만 느려진다. 어떤 사람들은 길옆에 앉아서 쉬고 있고, 또 아예 누워서 잠을 자는 사람들도 간간이 보인다. 다행히 우리 팀원들은 약간의 고소증세만 느낄 뿐 심각하지 않아 감사할 따름이다.
![운해 위로 떠오른 후지산 정상의 일출.](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san.chosun.com%2Fsite%2Fdata%2Fimg_dir%2F2018%2F10%2F24%2F2018102401866_1.jpg)
운해 위로 떠오른 감동적인 일출
후지산의 새벽바람은 7월 말인데도 차가워 추위와 싸워야 했다. 겨울복장을 했음에도 한기를 느껴 다들 춥다고 난리법석이다. 여름이라 생각하고 준비를 허술하게 했다가는 평생 잊지 못할 큰 고생을 할 것 같다. 유비무환, 언제나 준비는 철저히 해야 한다는 교훈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동쪽이 서서히 밝아 오고 있고, 일출을 보기 위한 행렬이 길게 인간 띠를 형성하며 움직인다. 해발이 높아서인지 평지보다 일출시간이 1시간 이상 빠른 것 같다. 지리산 천왕봉 일출도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데, 후지산에서 직접 보는 일출은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었다. 더불어 멋진 운해까지 깔리는 행운이 함께했다.
멋진 일출도 감상했으니, 후지산도 식후경이다. 근처 산장에서 라면 등을 주문해 칠합목에서 받아온 도시락과 같이 먹으니 꿀맛이다. 분화구 주변을 돌아 올라온 반대편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어제 올라 올 때는 어두워서 잘 몰랐는데, 앞사람이 걸을 때마다 먼지가 보통 일어나는 게 아니다. 바람을 타고 온몸으로 먼지가 날아든다. 먼지 고문이 고역이다.
중간 중간 산장이 나타날 때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주변 경치도 감상하며 다들 잘 걷는다. 출발 전 인원체크를 하고 산행 중 수시로 해서 이제까지 별 탈 없이 잘 왔는데 팔합목 갈림길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하산계획은 요시다구치인데 일행 중 한 명이 가이드를 앞질러 스바시리구치 등산로로 내려 간 것이다. 하필이면 무릎이 좋지 않은 회원이라 다시 되돌아오기는 힘들어서 우리 일행이 계획을 바꿔 스바시리구치로 하산했다. 급경사가 많고 화산자갈로 이루어져 몹시 미끄럽고, 먼지도 많이 일어나는 최악의 길이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즐기면서 내려가자고 마음을 고쳐먹으니 한결 기분이 낫다. 먼저 간 일행과 합류해 무사히 하산을 완료했다. 이런 저런 우여곡절 끝에 이렇게 나의 해외 첫 산행지인 후지산은 여러 가지 추억을 남기고 마무리를 했다.
그날 저녁 식사시간에 가이드는 “내일부터 모레까지는 태풍으로 인해 후지산이 입산통제된다”고 했다. 우리는 정말로 운이 좋은 팀인 것을 다시 느꼈다. 1박2일 동안 후지산 산행을 함께한 함양군청 백두산악회 회원 26명에게도 감사를 전하며, 우리 산악회가 나날이 발전하기를 기대해 본다.